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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4 14:25:16 조회 : 6830         
[이근호씨와 손무성씨 보십시요] 2006-11-16 이름 : 관리자(IP:122.47.52.38)

이근호씨와 손무성씨 보십시요 
James J Lee   2006-11-16 19:24:47, 조회 : 148, 추천 : 5


목사님이란 존칭을 생략한걸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읽는 분들이나 당사자들께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거의 2주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기 주장에 댓글에 이제는 답답한 정도가 아니고 욕으로 변하는 사태를 보려니까 한심하기도 하군요.
제가 글을 올리는 이유는 어느 누구의 주장에 동조하자는게아니고(물론 같은 형제는 있지요) 이 사태를 이제는 정리해야 할 때인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니골라당을 미워하노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도 니골라당을 미워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육이 아니라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이지요. 그렇게도 주장하시는 갈2:20의 말씀을 저도 인용하고 싶습니다. 미워해야하는 상대와 같이 동거를 계속하려는 이유를 모르겟군요. 십자가의 공로만 믿고 있는 성도님들 언제까지 바라보고 회피하시렵니까?


서로 가는 길이 다른데 언제까지 이렇게 한 지붕에서 상대에게 욕들을하며 지내려고 하시는지요?
두 분께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길로 나누기를 바랍니다. 비슷해서 오해하는것이 아니고 이제는 확실히 서로를 알았는데 이 상태로 더 진행한다면 두분은 정말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큰 상처를 남김은 물론 두 분께서도 마음의 상처만 커지리라 생각됩니다.


정말로 서로를 너무나 잘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길이 다르고 주도 다르고 믿음도 다르고 하나님도 다르다는걸 부인하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동안의 세월은 그냥 인간관계였을 뿐입니다.십자가의 피가 제일 아닙니까? 부모,형제나 나자신보다도.
그 인간관계를 혹시 연결하려고 하시는것은 아닌지요? 그 동안의 인간적인 정 때문인가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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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씨와 손무성씨 보십시요 
이근호   2006-11-16 20:43:09, 조회 : 130, 추천 : 0


일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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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씨와 손무성씨 보십시요 
곽진계   2006-11-16 22:49:51, 조회 : 96, 추천 : 1



제임스 리씨의 글 중에 그동안의 손무성 목사님과 이근호 목사님과의 관계가 “인간관계”였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십자가의 피가 제일 아닙니까? 부모,형제나 나 자신보다도”


그렇습니다. 부모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자신보다도 십자가의 피가 더 소중하고 우리 인생의 우선순위입니다.(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동의합니다.)


저의 신앙고백은 예수 믿고 나서도 거룩한 삶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예수 믿으려면(교회 다니려면) 거룩하게 된 후에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였으며,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만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에 저의 모든 사고는 바뀌게 되었습니다.(그전에도 이 말씀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만 이 말씀의 사전배경을 설명해주는 목사님이나 교인들을 아무도 몰랐으나 제가 늘푸른교회에 다니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안타깝지만(화평교회에 계시는 구자근 사모님도 이런 표현을 하셨지만) 그동안의 인간군상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현장이 지금의 “십자가마을” 논의들입니다.


제가 고민에 빠진 부분은 이런 부분입니다. 손무성 목사님이 그동안 이근호 목사님과 함께 교제를 하면서 어려운 중에서도 “십자가마을” 사이트를 운영하였지만 결국에는 이번처럼 이렇게 확실하게 자기의 주관(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더란 말이지요.


욕망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이근호 목사님의 이에 대한 응대도 만만치 않더란 말이지요. 이근호 목사님의 욕망(?)도 여기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근호 목사님의 욕망이 드러날 정도로 주장하는 게 뭐냐는 물음을 저는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사실 이근호 목사님의 책들이나 글들 중에서 우리가 몰랐던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통찰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가 놀라웠단 말입니다.


그 때문에 이제는 제대로(저의 관점이지만) 성경을 보게 되었습니다.(사실 저는 창원 늘푸른교회에서 설교하시는 이장우 목사님으로부터 복음을 듣게 되었지만, 이장우 목사님의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근호 목사님의 관점이 일치(비슷?)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근호 목사님의 인간적인 욕망이 드러나면서까지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과연 그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이근호 목사님은 자신이 주장(주장 보다는 복음이겠지요.)한 내용 그대로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 행동이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복음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근호 목사님 자신도 주님께로 부름 받았으면 그대로 전할 뿐이고, 자신의 믿음을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처분대로(그 사역이 가룟 유다의 역할이면 그 역할 대로, 사도 바울의 역할이면 그 역할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그 처분을 주님이 아시고, 은혜 받은 성도들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여기서 고민은 주님의 처분을 우리가 알 수도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만 저는 느낄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 믿는 자나 예수 믿지 않는 자나 주님의 그릇으로 사용될 뿐입니다. 진노의 그릇은 진로의 그릇대로, 은혜의 그릇은 은혜의 그릇대로.


이근호 목사님도 인간입니다.(천사가 아니고, 신도 아니란 말입니다. 말 그대로 타락한 인간이란 말입니다. 제발 좀 간절히 원하는 바는 여러분도 인간이고, 저도 인간이고, 이 세상도 인간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세상에서 뭘 더 바랍니까? 인간세상에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것도 타락한 피조물이고, 다윗의 고백처럼 죽은 개이며, 바울의 고백처럼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근호 목사님께서 인간적인 욕망까지(제가 보기에) 드러내면서까지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행함을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다시 이근호 목사님의 “자기 의”로 표현한다기 보다는 그동안의 이근호 목사님이 주장(?)한 십자가(저는 “십자가”라는 표현보다는 “복음”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만 강조한다고, 십자가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나 “씹자가”라는 아이디도 등장한 것을 보면 많이 오해도 받는가 봅니다.) 신앙을 그대로 표현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진흙입니다. 신약을 보기 전에 구약을 먼저 보십시오. 우리는 토기장이의 마음대로 만들어 질 뿐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구원 받았다는 것(하나님의 언약과 은혜 때문에)에 대해서 먼저 감격해야 할 것이고,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천국을 가게 되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우리의 머리에 씌여진 면류관을 주님의 보좌 앞에 갔다 받쳐야 할 것입니다. 그 어린 양의 보혈의 공로가 고맙고, 우리는 면류관을 쓸 자격도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가 측량할 수가 없고, 인간들은 1분 후의 미래도 계획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이 사실을 실감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고마울 뿐입니다.) 미래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시간과 상관없이 오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이것을 손성식 목사님은 “묵시세계”라고 표현을 합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 이후의 삶은 성화가 아니고, 구원 받은 성도로서의 행동도 아닙니다. 구원 이후의 삶은 늘 찬양하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원 이후에 내가 성화롭게 살자고 한다고 성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성경에는 성화라는 개념도 없고, 성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성화롭게 살자고 성화롭게 되던가요? 저는 성화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자기의 인생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의 처지가 비참한 죄인으로 느껴지지 않는가요?)


거룩은 구별이고,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은 받는 것입니다. 은혜나 믿음도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되듯이...


“십자가마을”은 인간군상들의 욕망이 분출하는 곳입니다.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를 통하여 주님의 은혜는 드러납니다. 해가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고, 무지개가 노아언약을 증거하듯이.(주님 은혜의 가장 큰 증거는 물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자체가 증거일 것입니다.)


저는 손무성 목사님이나 이근호 목사님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를 봅니다. 그리고 저의 욕망도 보고.


그래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역시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귀는 온유한 모습으로도 역사하고(마치 천사처럼) 거친 모습으로도 역사합니다.(마치 몇몇 사람들의 글들처럼)


저도 주님이 어떻게 사용하시던지 할 말이 없는 자입니다. 그저 주님의 은혜를 사모할 뿐입니다...


제발 “예수 믿고 삽시다.”(문제는 그 믿는 “예수”가 진짜 예수인가가 문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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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씨와 손무성씨 보십시요 
이근호   2006-11-16 23:25:54, 조회 : 100, 추천 : 5


영적 싸움에서 항상 마귀가 시비거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네가 뭐 잘난 것도 없으면서 예수님의 공로를 거론하느냐?"입니다.


영적 싸움은 아예 안 하겠다면, 남들 치고 박고 싸우는데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재미나게 구경만 하면 됩니다.


"야 이 병신들아, 그렇게 많이 떠든다고 주님께서 너를  귀한 종이라고 간주하느냐 아는가? 너의 떠듬이 오히려 주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가만 있거라. 너희들 가만 있어도 하나님 일 다 하신다. 괜히 나서서 자기가 곧  병신이며  바보인 것을 만 천하에 까발리고 난리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영적 싸움없이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합니까?


조용히 도를 닦는 것은 참으로 품위있는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인격의 품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고 아이들까지 나서서 떠드니, 바리새인이 그 환호를 역겨워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가만있으면 돌들이라도 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점잖은 바리새인보다 들석대는 돌이 품위가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광채에 눈이 부시는 마당에 과연 자기 품위까지 꼭 챙겨야 되겠습니까?


십자가 마을에 처음 참여하게 될  때 약속처럼, 십자가를 모독하는 자의 글을 삭제하고, 그들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오로지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외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판에 와서 깽판놓는 자들까지 환대하는 것이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일까요?


구원이 나를 위해 내가 하는 일이라면, 더러운 욕망이 언어를 매개로 하여 뒤섞이는 음식쓰레기통 안으로 얼굴을 처박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 깨끗하고 고상한 내 얼굴에 오물을 묻힐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가 알기에는  언어 폭력정도가 실제로 목숨이 뻬앗기는 사태를 당하신 그 분의 아품과 쓴 잔을 마시지 않고 피해가는 방식으로 구원은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사람보지 말고 예수 십자가만 바라보자'고 외쳤다고해서 방종을 유발시킨 악하고 독하고, 거짓 목사라고 독한 소리듣는 사례가 과연 성도로서 피할 수 있는 혹은 타협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보십니까?


이것을 피한다고해서 나에게 이익될게 뭡니까?


피하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그야말로 '이근호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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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님께 질문합니다. 
정영균   2006-11-17 19:14:41, 조회 : 127, 추천 : 2


여러 글에 답하시느라고 바쁘신 줄 알지만 게속 질문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성도가 자신을 자신이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살았다' 또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


신다'는 고백을 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 십자가의 평가에 자신을 넘기라고 하셨는데, 십자가가 나를 평가하는 그 평가를 성


도가 고백할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라는 제 질문에 (그것을 평가라 하지 않고 고백 혹은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라고 답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고백은 분명 성령이 역사 하신 결과일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성령의 역사를 우발적인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즉 성령의 역사로 고백이 있을 때가 있고 없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백이 있을 때만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고백이 없을 때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성도인 것입니까?


그리고 성령으로 인한 고백이 성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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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 목사님께 질문합니다. 
이근호   2006-11-17 19:22:02, 조회 : 134, 추천 : 2


그것이 인간의 인식과 관련있습니다. 


예를 들면, 비록 부부가 같이 살아도 늘 배우자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순간을 딱 잡아서 "당신의 배우자가 누구입니까?"라고 묻게 되면


그 순간만이 배우자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배우자와 함께 산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창세 전부터 예정된 것임을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깨우치게 해주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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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 목사님께 질문합니다. 
정영균   2006-11-17 19:32:33, 조회 : 101, 추천 : 1


그러니까 성도에게서 고백이 있든 없든 그리스도와의 관계안에서 항상 성도라는 것입니까?


그런데 이 사실이 성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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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인가? 로맨스인가? 
이가노   2006-11-17 19:28:40, 조회 : 139, 추천 : 4


이근호의 글 -
야고보서와 한국교회
성도란 어차피 세상 유혹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단정하고
믿음이란 바로 이러한 유혹을 이기고
행위로 나타남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야고보서의 내용이다.


손무성의 글 -
그러므로 인간은 죄만 짓는다는 말은 맞지만
성도는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자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새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다 죄를 짓기도 하지만)
성령을 좇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하나님 아버지) 앞에 세우고자하는 것.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된 존재로서의 목적’으로 성도 만드신 것이다.


이근호의 글 -
에베소서와 한국교회 중에서
새 사람이란 성령충만한 사람이며 범사에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며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의 참 모습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며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빌립보서와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현실에 있어 자기의 행실과 인간됨을 날마다 원망하고 분석하며
주의 형상 닮기에 열중할 때
비로소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다.
반대로 자기는 변화됨이 없이
환경이 변하여 천국이 되기를 바란다면 소망이 없다.
고난을 통해 천국을 맛보지 않으면(예수님의 삶을 살다가 당하는 고난)
영원히 천국을 맛보지 못한다.


손무성의 글 -
그 누가 이 세상에 이런 존재를 만들었단 말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이런 차원에서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에서 ->새 사람을 입은 자로  만드신 목적을 따라
주 안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로서, 부활의 삶을 살아갈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윗 글에서......자유토론 주제로 제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성령의 열매 맺기위해 힘쓰라는 권면 등을 두고
언 놈이 주장하면 불륜이고
언 분이 주장하면 로맨스인가?


예상되는 답변
1. 비록 다 떠나고 몇 몇 소수만 남더라도
내가 목숨을 내놓고 부르짖는 십자가가
바울신학이요 십자가 신학이다.
아바리바차, 잡것은 가라!
설령 나 혼자만 남는 경우라도
십자가 복음의 투사로 살다가 주님 앞에 서리라! - 이근호목사님과 그분의 지지자


2. 이근호목사님과 그의 일당들이 추종하는 십자가는
십자가의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매우 빗나가고 있는 중이며
같은 내용의 권면이라도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 버리는
독선과 아집의 극치 집단이다.
소위 십자가 신학을 자신들의 차별화 전략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그 내용을 참 복음이라고 맹종해버리는 
마약성의 굴레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내지는 길게 빠져있다가
이건 아니다라고 느끼면서(지혜의 성령께서 깨우쳐주셔서)
그 집단에서 복음에 대한 양심선언을 하고 빠져나온 분들이
박길현, 이명호, 손무성 등이다
이제 안약을 사서 발라서 시력을 회복하시고
자신도 모르게 쓰고 있는 색안경을 벗어야한다 - 몇 몇 분들


가급적이면
위의 두 예상 답변 말고
왜 같거나 비슷한 내용을 두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을 하는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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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불륜인가? 로맨스인가? 
이근호   2006-11-17 19:46:43, 조회 : 161, 추천 : 5


십자가 피를 쳐다보는 것과 자기 자신을 쳐다보는 것은 천국과 지옥 만큼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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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목사님께서 스스로 수정하신 교회론(2)-이근호목사님께 
손무성  (Homepage)  2006-11-17 20:59:28, 조회 : 131, 추천 : 6


이근호목사: 답변>이해가 안되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보다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


어떻게 '아래' 내용을 이해가 안되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 보다싶게 설명한 것입니까?


'아래'에서 보듯이 이근호목사님께서 부산강의 때 제가 질문할 때 오목사님의 <어제의 신자는 오늘의 신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잘못 된 것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목사님 답변이 : 그러면 안 되지요. 그건 잘못 되었지요. 그걸 못 느낀다 해야 말이 맞는 건데, 아니다 하면 곤란하지요."
라고 한 것은


1. 그러면 안되지요. 그건 잘못 되었지요 라는 말에서 뭐가 안되고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
2. '그걸 못 느낀다고 해야 말이 맞는 건데 라고 하는 것은'  목사님께서 이전에 말씀하실 때는'성도는 죽었기 때문에 ' 깜빡 깜빡 우발적으로 성령께서 깨우지 않으면 불신자 같은 상태이기에 ,깨우지 않으면 어제 교인은 오늘 교인이 안된다는 논리, 우발적으로 성령께서 깨워 주시면 신자, 라고 해버리면 신자는 불신자 되었다 신자 되었다 해버리는 이상한 신자이지요. 그래서 이런 지적을 받을까 싶어 최근에 '그걸 못느낀다고 해야 말이 맞는 건데..'라고 수정하신 것 아닙니까?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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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무성 : 이근호 목사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신학의 수정을 하셨습니다.


이근호목사의 20050307 부산강의 -칼빈의 교회론에서
“어제 교회가 우리교회가 아니고 다음 주일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 말이죠. 아무도 몰라요.” 라고 했다.


그래서 이러한 교회론을 이미 오용익목사님께서 이근호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채용하여 화평교회 “버리기아까운휴지통” 게시판 2006-04-06에 <어제의 신자는 오늘의 신자가 아니다?> 보충--d 오용익 님의 글에서 이근호목사님의 신학을 그대로 전했다.
<어제의 신자는 오늘의 신자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제가 해놓고 여러 분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 같습니다. 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타이밍은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어가서 ---- 라고 말이다.


그런데 2006년 9월5일 20060905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세례 요한(1) 강의에서 본인과의 논쟁 중에 질문할 때 이 부분을 슬그머니 바꾸어버렸다.
손무성: -그러니까 오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제 교회가 오늘 교회 되질 못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말이죠.
이근호:그러면 안 되지요. 그건 잘못 되었지요. 그걸 못 느낀다 해야 말이 맞는 건데, 아니다 하면 곤란하지요.
이근호 목사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신학의 수정을 하셨습니다.


이근호목사의 20050307 부산강의 -칼빈의 교회론에서
“어제 교회가 우리교회가 아니고 다음 주일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 말이죠. 아무도 몰라요.” 라고 했다.


그래서 이러한 교회론을 이미 오용익목사님께서 이근호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채용하여 화평교회 “버리기아까운휴지통” 게시판 2006-04-06에 <어제의 신자는 오늘의 신자가 아니다?> 보충--d 오용익 님의 글에서 이근호목사님의 신학을 그대로 전했다.
<어제의 신자는 오늘의 신자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제가 해놓고 여러 분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 같습니다. 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타이밍은 빠를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어가서 ---- 라고 말이다.


그런데 2006년 9월5일 20060905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세례 요한(1) 강의에서 본인과의 논쟁 중에 질문할 때 이 부분을 슬그머니 바꾸어버렸다.
손무성: -그러니까 오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제 교회가 오늘 교회 되질 못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말이죠.
이근호:그러면 안 되지요. 그건 잘못 되었지요. 그걸 못 느낀다 해야 말이 맞는 건데, 아니다 하면 곤란하지요.


이근호 목사님은 십자가 신학에서 나온 교회론을 스스로 번복했다.


결국 이근호목사님께서 가르친 교회론 신학부분을 부산 강의에서 수정하심으로 오용익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틀린사람이 된 셈이다. 또한 자신의 신학의 한계를 드러내신 것이다.


이근호 목사님은 십자가 신학에서 나온 교회론을 스스로 번복했다.


결국 이근호목사님께서 가르친 교회론 신학부분을 부산 강의에서 수정하심으로 오용익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틀린사람이 된 셈이다. 또한 자신의 신학의 한계를 드러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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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쯤에서 장을 접읍시다. 
정낙원   2006-11-18 00:00:54, 조회 : 127, 추천 : 5


손 목사님


이제 자기 주장을 펼칠대로 펼쳐 보앗으니 이쯤 파장을 합시다.


서로 귀를 막아 버렸으니 들릴리도 없습니다.


양 쪽 모두 지나가는 개를 붙잡고 소리치는게 나을 듯 싶습니다.


서로가 자기 주장이 너무도 뚜렷하니 합일점이 도출 될리가 없지요.


지금  이곳은 예수님이 오셔도 말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부 저마다 하나님도 설득할 진리관을 가지고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지요.


절 위시해서 이 잘난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또 죽어야 되겠지요.
결국 피해자는 예수님 몫으로 남겨 두게 되는 군요.



이번 사태로 가장 마음 아픈 분은 이 목사님과 손 목사님이라 봅니다.


20년동안 지기로 지내다가 이렇게 갈라진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손 목사님도 많은 고민을 하고 이런 결정을 하였을 터이구요.


그러나 영적인 일엔 부모 자식도 양보 할 수 없는 일이니 어쩌겠습니까?


 


전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인간이 이런 자구나 라는 것을 또 한번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전혀 무익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 됩니다.


 


부탁하건데 십자가 마을은 손목사님을 지원하는 분들의 말대로 라면 이근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십시일반
회비를 내어서 운영되는 곳이니 손 목사님께서 조용히 손을 떼시면 문제는 간단할 것 같습니다.


상스러운 말들도 이젠 듣기가 거북스러우니 내일이라도 당장 십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싸이트를 인수인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운한 감정도 섭섭한 감정도 다 십자가에 못을 밖고 훌훌 털어 버립시다.


영원한 이별이 될지 아니면 잠시 이별이 될지는 모르지만 비록 기약없는 이별이긴 하지만 혹시 압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한 쪽을 굴복케 하셔서 하나 되게 하실지,,,,,,


주께서 하시면 그런 날이 오겠지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자들은 자기 뜻이 없으므로 언제든지 주인이 화해 하라 하면 해야겠지요.



이 모두가 올바른 복음을 알고 싶어하고 예수를 잘 믿어 보자는 지나친 열정 때문이리라 생각하겠습니다.


그 동안 제 딴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순수하게 교제를 나누었는데 이렇게 헤어진다고 하니 조금은 연민과 씁쓸함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네요.


만남이 잇으면 이별도 있고, 이별이 잇으면 만남도 있으니,,,앞 일은 주께 맡기고 이제 자기 자리로 돌아갑시다.


전 솔직히 요 몇일 사이에 몸무게가 2키로나 빠졌습니다.
평상시 약 2키로 오버였는데 이렇게 해서 몸무게를 빼게 하시는군요..


그래서 믿는 자에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신 것인진 몰라도,,,,,감사 할 일이지요.


김영길님이나, 정의호님이나, 씹자가님이나, 부산님이나, 가을바람님이나,,,그 밖의 등등의 분들
모두가 일면식도 없이 서로의 주장을 펼친다고 치열하게 논쟁을 하였지만 악감은 없습니다.


어차피 인간이란 자기 주장이 옳다고 하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고 또 자기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고래심줄 같은 고집들이 잇는 자들이라서 일단 주장이 전개 되면 하나 되기는 불가능하지요.


특히나 하나님께 열심이 특심한 분 일수록 더 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누가 틀렸고 누가 옳은 지는 주님께 맡겨 두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미운 감정 다 접으시고 각자 갈길로 갑시다.


이제는 각자가 주어진 곳에서 여기서 펼치던 열정으로 일을 해야겠지요.


한 하늘 아래 살다보면 먼 발치에서나 서로가 서로를 관찰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부디 강건하시고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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