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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4 16:56:36 조회 : 100         
2019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이사야서(1~9강)(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20.87.70.166)
2019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이사야서(1강) - 문서 선지자

강의 이근호 목사, 정리 한윤범 목사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늘 챙겨주시던 주님, 이제 말씀으로 우리에게 깊이 주시기 위해서 한 자리에 모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말씀 외에 아무 것도 이 시간에 들어오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문서 선지자, 기적인가? 책망인가?

이번에는 이사야서를 하겠는데, 이사야서 1장부터 주님의 욕설이 난무한다는 말이죠. 자기 백성을 닦달내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사야를 통해서 제공되는데, 이런 내용이 하나님의 글로 되어있다는 겁니다. 글로 되어있다고 해서 '문서 선지자' 라고 하는데, 선지자 앞에 '문서' 라는 게 붙었다는 것은, 문서가 없는 선지지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시대적으로 먼저 있었던 '기적 선지자' 라는 겁니다.

기적 선지자와 문서 선지자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기적 선지자는 문서를 남기지 않다는 말이죠. 기적은 그냥 혜택을 주는 것인데, 또는 난제해결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즉 어려운 문제를 풀어주고 고맙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문제라는 말이죠.

반면에 문서 선지자는 그 기적의 폭이, 즉 인간들이 어려울 때 기적과 같은 혜택을 주는 게 아니고, 물론 주기는 주는데, 그런데 인간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성질의 기적을 준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기적이 아니고 오히려 책망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을 기적으로 본다는 말이죠.

* 하나님의 오버플로우(Overflow) !!

그래서 여기 1장 3절에서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너무 과잉해서 닦달하신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죠. 주님의 지적이 좀 억지스럽다는 겁니다.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이런 과잉지적이 계속 이어질 때, 물론 그래도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지적하게 되면,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라는 것이 가능한데 말이죠. 그런데 너무 오버해서 지적하게 되면, 이게 자기의 성질을 푸는 것인지 개선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게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바깥에 나가서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데, 집에 와보니까 딸이 청소도 하지 않고 자기 침대도 치우지 않고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다고 하면, 그러면 좋게 "정리를 좀 해라" 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너 죽고, 나 죽자" 라고 한다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냐는 말이죠.

그러면 오히려 딸이 뭐라고 합니까? "엄마, 오늘 왜 이래? 정신을 차려. 이것은 아니잖아. 엄마는 왜 오버하고 있어?" 라고 하면서 엄마를 말린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개선의 여지를 찾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화풀이하는 느낌이 강렬하다는 말이죠.

* 이스라엘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서 !!

그렇게 문서 선지자들이 책망을 하고 지적할 때는, 제대로 고치라고 지적하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지적해버린다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기 선에서 하나님의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 있는, 그러한 선을 그만 넘어버린다는 말이죠.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고,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활동 범주를 인간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훌쩍 넘어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면 무엇이 풍부해지느냐 하면, 하나님에 대한 내용, 즉 이전까지 알고 있던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것을 넘어서 확장시켜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하나님에 맞춰 살려는 그 속도가, 하나님이 늘어나게 하는 범주를 전혀 따라오지 못한다는 말이죠.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책망하고 지적을 하면서, 그 지적과 책망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 하나님 자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강렬하다는 겁니다.

* 너, 왜 5억을 대출을 받지 않았어?

이것은 "내가 시키는 대로 왜 하지 않았어? 침대도 정리하고 옷도 치워야지"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늦게 와서 침대를 정리하지 않은 아이에게, "딸아, 이리와 봐라. 네가 이번에 5억을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했는데, 왜 대출을 받지 못했지?" 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딸에게 할 이야기가 아닌데, 사업은 부모가 하면서 5억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딸에게 닦달을 내면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딸은 "엄마, 그것은 내 할 일이 아니잖아"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엄마는 "네가 할 일이 아니더라도, 같은 가족이니까 똑바로 알아들어라. 앞으로 5억을 가지고 …" 라는 이런 식으로, 그렇게 괜한 억지를 부린다는 겁니다.

이게 문서 선지자의 특징인데, 문서 선지자라는 것은 기적을 이야기할 때, 그들이 아는 내에서 기적을 제시해서, "아이고, 놀라워라. 주께서 이렇게 큰사랑을 주시네"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예상도 못한 일까지 먼저 앞장서서 일을 벌인다는 말이죠. 주님께서 일을 벌이고, 그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책임으로 인수인계를 해버린다는 겁니다.

* 하나님이 추가적으로 어떻게 개입하시는가?

그러면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이 추가적으로 어떻게 개입하시는가?" 라는 것인데, 이게 주제가 된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어떻게 개입하시는가? 하나님은 앞으로 역사를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쪽으로 이끌어나가시는가?" 라는 것인데, 그러면 인간의 능력은 굿바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미 그 범위를 넘어섰다는 말이죠.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동안 알고 있던, 즉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면 복을 주고 어기면 벌을 받는다" 라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이스라엘에게 문서 선지자가 와버리면, 이것은 "너희들은 어쩔 수 없구나" 라는 식인데, 쉽게 말해서 "너희들에게 책임을 묻는 내가 나쁘지, 내가 나빠요" 라는 겁니다.

* 내가 책임지겠다 !!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가시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스라엘을 지탱하고 유지하는데 하나님 자신도 책임지고 가담하겠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에게만 책임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도 같이 책임질 용의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냐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경우에, 개인적 입장에서 사는 게 힘들다면, 그러면 "하나님의 율법에 위배해서 저주라는 징벌을 받았기 때문에 힘들다. 따라서 말씀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이 힘듦을 없애주겠지" 라고, 그런 기대라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되는데, 그런데 이것은 기적 선지자 쪽에 속한다는 말이죠.

반면에 문서 선지자는 뭐냐 하면, "너희들이 내가 하는 계획을 알기는 알아?" 라는 것인데, 물론 모른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르지만, 이스라엘이 장차 하나님이 계획한 이스라엘 쪽으로 나가려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것은 "너희들의 노력, 그 수위를 넘어서서 직접 하나님이 개입해야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앞으로 완성의 이스라엘로 갈 수 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두고두고 확인해봐라 !!

그러면 여기 앞에 붙는 것이 '문서' 라는 것인데. 이 문서 선지자라는 것은 무슨 내용이 포함되느냐 하면, "인간은 역시!" 라는 겁니다. 그 뒤에 나오는 것은 뻔한데, "인간은 역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수 없는 존재다" 라고, 그것을 확정한다는 말이죠. 그 확정이 뭐냐 하면, 바로 '문서' 라는 것인데, 즉 "두고두고 확인해봐라. 글자로 되어있으니까" 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역시 인간은 잠재적인 그 어떤 능력을 동원해도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해내는 자질은 없었다" 라는 것이죠.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끌겠다는 말은, 그것은 곧 "인간이 하는 모든 솜씨가 배제된 상태에서, 하나님은 홀로 이스라엘을 이끄는데 얼마나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는지 너희 두 눈으로 똑바로 봐라. 그게 바로 기적이다" 라는 겁니다.

* 떨어져나가는 구원욕구 !!

그러면 이 기적에서 어떤 요소가 빠지느냐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즉 "아쉬운 것을 주께서 채워주고 도와주는 것이 기적이다" 라는 우리의 관점, 거기서 무엇이 떨어져 나가는고 하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 예상치도 못한 것, 또는 하나님이 자기 혼자만 꼬불쳐놓고 알고 있는 내용, 그것을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어 나가신다는 말이죠.

이것을 기적으로 본다면, 이 기적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예측한 게 아니라, 전혀 동떨어졌다는 겁니다. 그렇게 동떨어지면서 무엇도 떨어지느냐 하면, 우리 자신의 구원욕구. 이것도 같이 떨어져버린다는 말이죠. 즉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를 천국에 보내려고 오신 분이다" 라는 것도 같이 떨어져버린다는 말이죠. 은근히 하나님을 이용해서 천국에 가려는 모든 자기의 계획도, 그것이 자기의 기적이라고 하면, 그런 기적은 이 기적에 전혀 어울릴 수 없기 때문에, 떨어져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인간 !!

인간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왜 인간이 알고 있는 기적이 떨어져나가야 합니까?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죠. 그것은 간단한데, 인간은 자기 일에만 열중한다는 것이죠. 이게 전부인데, 인간은 자기 일에 열중하는데, 이게 인간의 한계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까, 그렇게 열중했다고 하면, 그 열중의 끝은 무엇입니까? 열중의 끝은 늙어서 죽는 것이란 말이죠. 우리 인간이 하루도 쉬지 않고 얼마나 자기에게 열중하고 집중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열중, 열중, 집중, 집중, 그것은 곧 "무조건 나는 내 일에 책임져야 한다" 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 끝은 무엇입니까? 죽음이라는 말이죠.

* 열중했는데, 죽음이다 !!

다시 말해서, "열중했는데 죽음이다" 라는 겁니다. 누구 일에 그렇게 열중했다는 겁니까? 자기가 자기 일에 열중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죽음이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자기 일에 열중했으니까 열심히 하는 그 에너지를 어디에 퍼부었다는 겁니까? 자기 일에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죽음은 애초부터 어디에 있었는고 하니, 자기 안에 들어있었다는 말이죠. 그렇게 자기 안에 들어있었는데, 그런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살려고 열중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살아보려고 한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했습니까? 죽음으로 인도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죽어야할 자가 과연 하나님의 이스라엘 건설에 보탬이 되겠느냐? 너희들이 생각해봐라. 과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라는 것인데, 보탬이 전혀 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보탬이 될 리가 없는데, 죽어가는 인간이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기껏 한다고 해봐야 저지레나 사고를 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 죽음의 나라인가? 약속의 나라인가?

이스라엘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집합인데, 모든 인간이 죽고자 시도한다면 이스라엘 자체가 무엇으로 끝납니까? 죽음의 나라로, 죽음의 민족으로 끝나고 만다는 겁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건지는 겁니까? 오히려 이스라엘을 침몰시킨다는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라엘 나라를 어디에 입각해서 합니까? 언약, 또는 약속에 입각해서 이스라엘을 견지하신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견지한다면, 인간이 여기에서 "야 좋겠다. 우리는 이스라엘이다" 라고 해서 참여해보니까,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어떠한 위치에 있다는 겁니까? 기껏해야 죽음으로 끝나는데, 그렇게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는 요인밖에 되지를 않는다는 것이 이사야 선지자 앞에서 대비가 되고 대조가 되면서 만나게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라고 한다는 것은, 여기서 "소와 나귀는 주인을 알건마는, 너희들은 왜 주인을 모르느냐?" 라고 닦달을 내봤자, 이스라엘이 주인을 알겠습니까? 모른다는 말이죠. 자기 일에 열중하는데,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자들이 무슨 주인을 알겠느냐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주인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은 누구를 위해서 한다는 겁니까? 자기를 위해서 한다는 겁니다. 죽는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한계가 무엇인고 하면, 자기 일에 열중한다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거기에 의미를 둡니까? 그것은 자기 일이기 때문에 의미를 둔다는 말이죠.

* 기적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 !!

여기까지 여러분이 안다고 치고, 다시 한 번 기적 선지자를 봅시다. 기적 선지자에 대표적 두 사람이 있는데, 엘리야와 엘리사라는 겁니다. 이들은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는데, 그때그때마다 도와주었다는 말이죠. 사르밧 과부 집에 가서 도와주고, 선지자 생도들이 물이 좋지 못하다고 하니까 소금을 던져서 수질을 좋게 하고, 그리고 물에 빠트린 도끼도 떠오르게 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7월 25일에 선지가가 와서 쓴 물을 단물로 바꾸었다고 하면, 그러면 지금이 7월 28일이라고 하면. 7월 25일은 과거입니까? 현재입니까? 미래입니까? 7월 28일 입장에서는 과거라는 겁니다. 기적 선지자라는 것은, 아무리 혜택을 주어도 과거이기 때문에 사라진다는 말이죠. "그분이 참 좋았어. 그분의 혜택을 많이 입었어" 라고 하면서 끝나는데, 왜냐하면 과거라는 겁니다.

여러분 중에서 혹시 이순신 장군의 혜택을 보신 분이 계십니까? 우리는 이순신 장군 혜택을 봤는데, 그렇지 않으면 일본에 점령을 당했을 테니까 말이죠. 그런데 그때 이순신 장군만 없었으면 점령을 당해서 선진국이 되어서, 지금의 수출규제도 없고, 다같이 잘 살 것이라고, 그런 주장을 하는 인간들도 있다는 겁니다. 물론 완전히 친일파인데 말이죠.

아무튼 과거에 아무리 좋은 혜택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돌아서면 인간은 어디에 열중한다는 겁니까? 지금 현실에 놓여있는 자기 일에 열중한다는 겁니다. 물론 "참 고맙습니다" 라고 하기는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는 가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에게 열중하겠습니다" 라고 나오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어머니, 이렇게 저를 키워주시고 공부도 시켜주셔서 시집을 잘 가게 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살림살이를 어머니에게 모두 맡기진 않겠습니다. 그냥 손자나 잘 봐주시면서, 월 삼십 만원에 만족하세요"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뿐인데, 결국 "나는 나에게 충성하기 바빠요" 라는 것인데, 자기가 아닌 다른 것에는 충성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이게 기적 선지자인데, 혜택을 주어서 참 고마운데, 그런데 그 혜택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자기가 살았으니까 감사하기는 감사한데 말이죠.

* 문서는 고발용 !!

거기에 비해서 문서란 것은 뭐냐 하면, 지금까지 강의를 했지만, 문서 선지자는 바로 이러한 인간형을 잘라낸다는 겁니다. 문서란 고발용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에게 이렇게 혜택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고맙다고 할 일은 없다" 라고 하는 것이 문서 선지자라는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 "아니요. 고맙다고 하겠습니다. 소도 임자를 알고 나귀도 자기 주인을 알듯이,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문서 선지자가 하는 말이, "아이고 잘하겠다. 너희가 그럴 인간이라면 하나님께서 계시하지도 않아. 제발 너희 주제파악이나 해라. 너희는 백날 줘도 절대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길 위인들이 아니야. 주제파악도 못하고, 어디서 까불고 있어"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제는 정신을 차려서 이스라엘답게 하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답게 하는 것은 너희 몫이 아니야. 그것은 내 몫이야. 너희는 그냥 훼방질만 했을 뿐이야. 그러니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야지"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 테스트가 끝난 구약, 그리고 신약 !!

이제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알겠지요?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이 어떤 식으로 차이가 나는지 서서히 감이 옵니까? 신약시대에 살면서, 성경을 구약 식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실력과 솜씨를 보시려고 말씀을 주셨구나" 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이미 구약의 테스트는 끝났는데, 인간에게 백날 말씀을 줘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구약을 통해서 이미 다 들통났다는 겁니다.

* 고유정, 김숙자도 안 돼 !!

예를 들어서,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필요해서 광고를 냈더니 지원자가 5명이 왔는데, 첫 번째 지원한 사람이 '고유정' 이라는 겁니다. 예가 너무 심합니까? 아무튼 고유정이라고 하면 뽑겠습니까? 아이를 압박해서 죽여버리는데, 그러니 당연히 뽑지 않는다는 겁니다.

고유정이 왜 어린이집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느냐 하면, 고유정이 남들보다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 "나는 나의 일에 열중한다" 라는 것의 대표자가 고유정이란 말이죠. "나는 나의 일에, 내가 기뻐하는 일에, 내 욕망이 만족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라는 것을 아주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은 어떤 체면과 같은 게 있는데, 이 사람은 용감해서 체면도 없다는 말이죠. 새로운 남편을 만나서 사는데, 옛날 남편이 그만 방해가 된다고 해서 죽여버렸다는 겁니다. 그것도 힘으로 안 되니까 비겁하게 약을 먹여서 말이죠. 얼마나 비겁합니까? 그런 여자가 어린이집의 교사가 되겠습니까?

그러면 두 번째로 '김숙자' 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되겠습니까? 고유정보다는 낫다고 하겠지만, 또 언제 술을 먹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3번, 4번, 5번, 그렇게 백 명이 와도 어린이집은 무엇이 안 된다는 겁니까? 이스라엘이 안 된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이 될 수 없는데, 아무리 와도 안 된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족속이기 때문에,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일에 손톱만큼도 기여할 리가 없다는 말이죠. 기여분이 없는데, 전혀 기여한 게 없다는 겁니다. 이게 신약의 복음인데, 신약의 복음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죠. 철저하게 구약의 검증을 거쳤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 일에 열중한 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인간이 먼저 자기 일부터 해야지, 오지랖이 넓게 남의 일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 일을 열심히 한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냐고 하는데, 하지만 인간이 자기가 맡은 일에 열중하게 되면 의미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의미가 발생되면, 진짜 의미인 주님의 문서내용이 인간이 만든 의미에 의해서 가려진다는 말이죠.

* 전라북도에 비가 많이 왔다 !!

예를 들어서, "전라북도에 비가 많이 왔다" 라고 하면, 그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장마철이라서 비가 왔다는 겁니다. 그것으로 땡인데, "장마철이라서 비가 많이 왔다" 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기껏 인간들이 아는 범위 내에서 내놓은 의미가 그것이란 말이죠.

사람이 왜 삽니까? 살고 싶어서 산다는 겁니다. 인간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까 말이죠. 니체가 그러한데, 그게 자기가 아는 전부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것을 컨닝하고, 들었던 것과 배운 것을 모으고 모아도, 그 정도의 의미밖에 안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의 행위에서 나온 어떤 의미도,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어난다" 라는 사실의 의미까지 연결될 수 없다는 겁니다. 연결점이 없다는 말이죠.

* 의미는 '나'에게 올 때 비로소 스톱을 !!

여러분이 여기에 대해서 안다고 치고, 이 의미가 뭐냐고 했을 때, 인간이 사는 보람, 가치, 의로움, 정당함, 이런 것은 뭐냐 하면, 반드시 누가 있다는 겁니다. 의미가 보람이 되려면 "의미가 여기까지다" 라고 하는 스톱장치가 있다는 말이죠. "여기서 멈춰!"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 멈추는 자리에 누가 있느냐 하면, '나' 라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모든 의미는 '나' 라는 것에게 의미가 올 때, 비로소 의미는 그 의미의 순환이 막을 내린다는 말이죠. 의미의 연쇄사슬은 그것으로 끝나는데,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즉 "너말고 나에게 의미가 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비가 오든 뭐가 오든 자기와 관련성이 있어야, 그것이 자기에게 의미가 된다는 겁니다. 자기 일에 열중한다는 것은, 그냥 열중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의미는 '나'에게 와서 뭐가 되느냐 하면, 자기에게서 마감이 된다는 겁니다. 인간이 기껏 할 수 있는 이게 전부라는 말이죠.

* 욕설을 내뱉는 하나님 !!

그런데 여기에 그만 하나님이 욕설을 해버린다는 겁니다. 어쩌라는 겁니까? 늦게 일어나서 자기 침대도 치우지 않고 어지럽혔다고 하면, 그러면 엄마가 딸에게 납득되도록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네가 옷을 치워야 깨끗하고, 그러면 너도 좋잖아" 라고 하면, 그것은 충분히 그 딸아이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는 인상을 쓰면서도 치울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네가 이렇게 침대와 옷가지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잘 치우지 않으니까, 그것 때문에 우리 집이 부도가 났어" 라고 한다면, 그것은 딸의 역량을 넘어선다는 말이죠. 대출 5억을 받는 것과 자기 방을 정리하는 것과 무슨 관련성이 있느냐는 겁니다. 거기에는 관련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 아이스크림이 좋아요 !!

예를 들어서, 4살 아이에게 "다음 중에 화가 나는 경우는?" 라고 물었을 때, "1번, 아이스크림을 먹게 해달라는 것을 엄마가 거절했을 때", "2번, 일본의 수출규제" 라고 한다면, 과연 몇 번일까요?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했다고 삐쳐서 화를 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있는 의미의 장(Field)이 자기가 알고 있는, 즉 그동안 주고받고, 주고받고 순환했던 확장된 범위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아이스크림이 맛있다" 라는 것 정도만 알기 때문에, 일본의 수출규제는 그 아이에겐 의미가 없다는 것이죠. 물론 5살이 되면 더 나가는데, 그리고 7살이 되어서 영재발굴단이 되면 안드로메다가 어떻고 하는데, 물론 그것은 특수한 경우겠지만 말이죠.

여러분, 도대체 나이를 얼마나 먹어야 철이 듭니까? 범위를 좁혀 보면, 칠십, 팔십, 구십, 도대체 언제 하나님이 원하는 의미에 도달하겠습니까? 그러니 죽어도 된다는 겁니다.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전부 다 자기 위주인데, 무슨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느냐는 것이죠.

* 은혜인가? 한풀이인가?

그러니 한국교회가 지금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전부 다 자기가 기껏 아는 자기 소꿉놀이를 펼쳐놓고, 거기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자기 혼자 눈물을 찔찔 흘리고 한다는 말이죠. 젊은 아이들이 밴드를 만들어서 가스펠 송을 부르는 것을 보세요. 자기들 마음대로 은혜를 마구 받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다 자기 한풀이인데, 자기 소원을 현실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니 한풀이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성경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겁니다. 문서 선지자의 의미를 모르고, 그냥 기적 선지자에게만 매료가 되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설마 내 뜻대로 해주지 않겠어? 당연히 해주실 거야" 라고 하는데, 도대체 바른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게 바른 겁니까? 아무튼 자기는 바르게 살아가는데, 자기에게는 참 좋은 엄마라는 겁니다.

* 이번에는 다같이 스카이 콩콩을 !!

또 하나의 예를 들면, 둘이 연애를 하는데 순수하다는 말이죠. 남자가 돈이 없어서 하얀 민들레꽃으로 반지를 만들어서 꽃반지를 끼워주면, 여자는 그것 하나로 감동을 받아서 "세상에 아직도 이런 순수 로맨티스트가 있구나. 이런 남자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거기까진 좋은데, 그런데 결혼식장에서도 꽃반지로 하면 너무 이상하다는 말이죠.

제가 아는 집사님이 아파트에 사시는데 위층에서 너무 쿵쿵거린다는 겁니다. 그분이 사람이 좋아서 평소에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할 수 없이 위층을 찾아가서 "아주머니, 아이들을 키우는데 그럴 수도 있지요. 괜찮습니다. 우리는 개의치 않습니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러자 그 다음부터는 장난이 아니라는 겁니다. 스카이 콩콩으로 쿵쿵거리고 말이죠. 그래서 "이것은 너무 심합니다" 라고 하니까, 그 싸가지가 없는 아버지가 하는 말이, "괜찮다고 했잖아요?" 라고 나오더라는 겁니다. 한껏 참고 있는 것도 모르고, 괜찮다고 했다고 아버지도 같이 뛰고 난리라는 말이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우기는데,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문서 선지자를 통해서, 그게 이사야뿐만이 아니고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등등, 하여튼 성경에 문서로 작성된 선지자는 다 문서 선지자라는 말이죠.

* 왜 인간은 배제되어야 하는가?

이들 문서 선지자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하면, 인간을 배제하되, 왜 인간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지, 그 내력이 그 안에 같이 담겨있다는 겁니다. 그 문서 선지자들을 경유해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나오고, 또한 요한복음이 나온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마태복음의 족보가 너무 지겹다. 넘어가자"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냥 마태복음을 다 지키려고 하다가 보니까, C.C.C.의 경우에는,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너희가 어디를 갈 때는 돈을 들고 가지 말라. 일군이 자기 먹을 것은 받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했다고 해서, 그대로 해야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완전히 거지로 만들어놓았다는 말이죠.

(마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마 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 밥을 주세요 !!

제가 과거에 대구 근처의 청통면 박사 동네의 박사교회에 있었는데, 그 교회에 젊은 아이들이 한 떼거리가 왔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10장을 실천에 옮긴다고 하는데, 완전히 민폐라는 말이죠, "복음을 전할 테니까 밥을 주세요" 라고 하는데, 그래서 제가 "누가 여러분을 이렇게 만들어놓았습니까?" 라고 하면서 야단을 쳤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민폐라는 것이죠.

그러자 "우리는 성경대로 하잖아요. 성경에 보면, 두 벌 옷도 가지지 말고 되어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나오면 안 되고 구약을 거쳐 나와야 한다는 말이죠. 건방지게 새치기를 해서 신약을 바로 뚫고 들어오지 말고, 반드시 구약을 거쳐서 와야 한다는 겁니다.

* 구약은 과거사가 아닌가?

사람들은 구약을 거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그것은 '과거사' 라는 말이죠. 즉 옛날 이순신 장군이라는 겁니다. 지금은 현실성이 없다는 말이죠. 옛날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지금 당장에 급한 것은 자기 천국이고 자기 구원이니까, 그래서 "목사님, 무엇을 하면 천국에 갑니까?" 라고 나오는데, 단박에 그것을 내놓으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한의원에 가서 "무슨 약으로 내 병이 낫습니까?" 라고 하면서 들이대는 것과 똑같은데, 말을 하고 보니 조금 이상한데, 한의원이 보약만 파는 곳에 아니니 가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있는데 말이죠. 아무튼 "내가 무슨 약을 먹으면 병이 낫습니까?" 라는 것과, "내가 무엇을 하면 천국에 갑니까?" 라고 하는 그 들이댐이 똑같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당부했는데, 그것은 이방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무슨 이방인이 있고 유대인이 있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하지만 사도바울이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나누었는데, 그렇게 나눌 때는 다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다 개무시를 해버리고, "나는 인간입니다. 그러니 천국을 내놓으세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가게로 가보세요. 믿고 기도하면 천국을 준다는 가게로 가면 되는 것이지, 여기에서 이렇게 고집을 부리면 곤란합니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 !!

구약의 문서 선지자에서 우리가 구원을 요구할 수 없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방해자라는 겁니다. 로마서 5장에서 이것을 '하나님의 원수' 라고 했는데,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이고 방해자인 것을 모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의미를 가로채고 중간에 막아버리기 때문인데, 자기 의미로 종결된 의미로 인하여 참된 주님의 의미를 가리고 있는 겁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 예수님에게서 종결 !!

그러면 물어봅시다. 주님의 의미는 어디서 종결됩니까? 모든 의미는 자기에게 일조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의미가 있으면 그 의미의 모든 개념은 종결되지만, 그러면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의미는 어디서 종결이 됩니까? 과연 누구에게 종결이 되느냐는 말이죠.

예수님에서 종결되는데, 그리고 예수님께서 실제로 "다 이루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까?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여러분이 알기는 얼마나 잘 아는지 모른다는 말이죠(ㅋㅋ).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의 멱살을 쥐고 어디까지 끌고 가느냐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를 넘어서서, 십자가 앞에 가서 "네가 왜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인간인지를 알아?" 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우리의 멱살, 아니 모가지를 끌고 어디로 갑니까? 십자가 앞으로 끌고 가서, 그 현장에서 "너는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존재다" 라고 알려줄 때, 그것이 바로 문서 선지자에 근거한 기적이라는 말이죠.

어떻게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 수 있을까요? 모든 의미는 자기 정당성으로 마감되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는 죄인이 아닌데, 항상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는 의인이고 잘난 사람이란 겁니다. 그것 때문에 한 평생을 버틴다는 말이죠. 자기가 힘들어도 기어이 살아야할 이유는, 자기만 정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즉 "당신이 죽든 말든 나만 정당해야 돼" 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을 만들어놓고, 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면서, 인간이 기여하는 것과 인간이 기여하지 못하고 방해하는 것을 문서 선지자의 기적을 통해서 밝혀준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기적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인간의 모든 의미가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것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이스라엘을 위해서 한다는 그 짓거리가, 즉 이스라엘을 위해서 노력했던 그 모든 것이 도리어 이스라엘을 파괴시키는 행위로 이어지는 모습, 그것을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다는 말이죠. 이스라엘과 유다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왕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왕들이 하는 짓거리 하나하나가 점점 더 이스라엘 역사는 질곡으로 빠지게 한다는 겁니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꼭 설쳐댄다는 말이죠.

*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

마치 선거로 뽑은 지방자치제의 장과도 같은데, 4년 동안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꼭 일을 벌려서 저지레를 한다는 겁니다. 박물관을 짓는다고 하면서, 그런 자기의 업적이나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 국가예산을 쓴다는 말이죠. 즉 "내가 도지사가 되어서 이만한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설치면 설칠수록 지자제의 빚만 더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퇴직하고 난 뒤에 부인들이 남편에게 당부하는 게 있는데, "논다고 욕은 하지 않을 테니 제발 가만이나 있어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냥 가만히 있어만 달라는 것인데, 그러면 "아니야. 내 나이가 아직 60대 초반인데 커피점이라도 열어야지" 라고 하는데, 물론 하는 족족 다 망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남아있는 노후자금까지도 다 날리는데, 그래서 "가만있기만 해줘. 밥은 먹여줄게. 저녁에는 국수도 해줄게. 제발 나대지만 마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프로야구나 보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고 "아니야. 내가 죽지 않았어" 라고 나오는데,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이사야가 1장에서 지적하는 내용들은, "다시 잘해보자" 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미 잘해보자는 한계는 넘어버렸는데, 언약의 내용이 그만큼 넘어서서 확장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설 문제지, 너희들이 나설 문제는 아니다" 라고 선지자가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 그루터기만 남기고 잘라라 !!

그들이 하는 짓거리라고 하면, 예를 들어서 이렇게 나무가 있다면, "너희들이 하는 짓거리를 알기 위해서는 잘라버려라" 라는 것인데, 즉 그루터기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넘어지게 하는 짓을 인간들이 해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그루터기, 바로 여기서부터 주님께서는 일을 새로 개시하신다는 말이죠.

인간들이 호작질을 했고 인간들이 전부 다 엉망진창으로 만든 그 바닥 위에, 거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즉 하나님의 약속을 약속답게 성취해내는 솜씨, 바로 그것을 이사야가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쫙 펼쳐서 보여준다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을 위함이 아닌데, 그러면 인간의 위함이 아니니까 자기가 혜택을 받기 위한 모든 기대나 욕구는 완전히 비껴나간다는 말이죠. 우리가 "하나님, 이렇게 좀 해주세요" 라고 할 때, 일체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부해버린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줘봐야 자기 잘났다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말이죠.

* 다시, 기적 선지자와 문서 선지자 !!

다시 하겠습니다. 처음에 무슨 선지자라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답변해보세요. 기적 선지자, 결국 기적 선지자의 결과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나를 알아준다. 내가 나에게 열중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해주셨다" 라는 것인데, 이런 시절이 기적 선지자라면, 그러면 문서 선지자는 무엇입니까?

문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일하지 않고, 나를 피해서 하나님이 스스로 계획한 거기에 개입하셔서 주님께서 그것을 기적이라고 우리에게 안겨주신다" 라는 것인데, 과정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서 피해서 간다는 것이 중요한데, 왜 피해서 갑니까? 우리 자신의 속사정은 이미 다 까발려졌기 때문인데, 우리 인간에 대해서 말이죠.

* 역시 오버하시는 하나님 !!

여기서 1장 6절을 봅시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백성들이 어리둥절할 겁니다. 자기가 잘못이라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과도하게 그 잘못을 지적하는데, 이 말을 계속 듣게 되면 결국 나오는 것은 뭐냐 하면, 오기만 남는다는 말이죠.

(사 1: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여기 10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또 오버하고 있는데,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어떠냐 하면, 완전히 불바다가 되었다는 말이죠.

11절에는 그 이유가 나오는데, 즉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받지 않는다고 진즉에 이야기하시지, 실컷 받아놓고 도대체 어쩌라는 것이냐는 말이죠. 그러면 인간 쪽에서는 갑자기 화가 난다는 겁니다.

(사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 진즉에 그만 먹는다고 하시지 !!

예를 들어서, 식사를 대접하니까 그 집의 가장이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먹는다는 말이죠. 2019년 1월 1일에, 평소에 미역국이 좋다고 해서 해주었단 말이죠. 잘 먹는데, 그게 언제까지인고 하니, 7월 28일까지 해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미역국을 7개월 동안 잘 먹었단 말이죠.

그렇게 잘 먹더니만 그 다음 8월 4일에 엎어버린다는 겁니다. "네가 미역국에 배불렀고"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럼 진작에 그만 먹는다고 하면 되지, 그렇게 나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죠. 그러면 당장에 "이 답답한 양반아, 이제는 가져오지 말라고 하지. 나도 미역국을 끊이는 것이 귀찮았는데, 그냥 말을 하지 왜 가만히 있었는가?"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 나는 너희들과 놀기 싫어 !!

그렇다면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하나님은 인간과 거래하기 싫다는 말이죠. "미역국이 아닌 소고기국을 끊여라" 라고 하면, 그러면 거래가 유지된다는 겁니다. 또 "앞으로는 콩나물국이다" 라고 하면 거래가 유지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너희가 콩나물국을 끓이던 미역국을 끓이던 소고기국을 끓이던, 이제 꼴도 보기 싫다" 라는 것인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너희들의 마음이 문제다" 라는 겁니다.

13절에 보면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를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라고 되어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받아먹을 것 다 받아먹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느냐는 겁니다.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 손에 피가 가득하구나 !!

15절에 보면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는데, 금요기도회는 처음부터 받지 않는다고 하든지, 그런데 기도를 시켜놓고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라고 하는데, 이것은 또 무슨 오버입니까? 손을 씻었는데, 그런데 무슨 피가 있느냐는 말이죠..

(사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 우리 그만 헤어지자 !!

죄를 씻는 방법에는 5가지가 있는데, 옷을 벗는 것과 물로 씻는 것과 피로 뿌리는 것, 또 여러 가지 향을 뿌리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모두 다 사용했다는 겁니다. 그래도 손에 죄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는 이야기라는 것이죠. 지금 주님께서 억지를 부리는 것인데, 결별하자고 말이죠.

그 다음에 17절에 보면,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라고 하는데, 우리 인간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죠. 교도소도 만들어서 착한 사람으로 교화도 시키고 말이죠.

그리고 복지대책이 왜 있습니까? 전국에 있는 과부 아줌마들을 모두 모이라고 해서, 그 생활대책으로 기술을 배우게 해서 취직을 시켜주고, 그래서 월 이백을 주고,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또한 고아의 경우에는, 고아원을 많이 세워서 돌봐주면 된다는 겁니다.

* 인간들은 손대지 말라 !!

그러나 지금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닌데, 굉장히 하나님께서 하는 일이 늘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무엇을 하더라도 내 마음은 이미 너희들에게서 떠났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곱게 떠나지 왜 자꾸만 시비를 겁니까? 그것은 시비를 걸어줘야, 확장된 언약완성은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그것을 문서 선지자인 이사야가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즉 인간은 손을 대어서도 안 되고 댈 수도 없다는 말이죠.

* 왕이 괜히 설쳐서 !!

인간의 왕도 안 되는데, 왕이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괜히 설쳐서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왕은 백성을 의식하고 백성의 인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죠. 소위 정당 지지율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정당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가정도 그러하다는 말이죠. 아들 둘, 부모, 그렇게 네 식구가 살아도, 아버지가 그냥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죠. 아버지를 빼놓고 나머지 셋이 얼마나 존경하는지, 이러한 지지율을 늘 고려한다는 겁니다. 남자는 그러한데, 물론 여자는 잔소리를 해대서 지지율이 필요가 없지만 말이죠(ㅋㅋ).

* 남자는 지지율만 생각해 !!

여자는 남자가 가장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자꾸만 달려들고 쏘고 할퀴고 하면 되는데, 그렇게 여자는 그렇게 뭔가 공격하는 대상이 있지만, 남자는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가 어른이고 하늘이라는 이상한 자부심이 있어서, 항상 지지율을 생각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괜히 이따금 처갓집 치킨을 사들고 인기몰이 해보려고 애도 쓰고 한다는 겁니다. 괜히 술을 먹고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갑자기 "옷이나 하나 사 입어라" 라고 하면서 봉투를 주는데, 뭔가 켕기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과도하게 나온다는 말이죠.

소위 "내가 아직도 이 가정의 가장이다" 라고 하는 것인데, 즉 "너희들은 나를 쳐다보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것에 걸 맞는 책임감이 있는 가장이 되리라" 라고 하는데, 그것이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겁니다.

10분만 쉽시다.


2019,8,8 다시 정리함 - 녹취 구
2019,8,21 또 다시 정리함 - 녹취 구
 첨부파일 : 19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말씀의움직임(이사야서)(강의정리)(재정리).zip (617.6K),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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