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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3 10:05:44 조회 : 55         
20191111a 부산강의 : [시편]23(15편)-동거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71)
20191111a 부산강의 : [시편]23(15편)-동거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15편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이렇게 돼있지요. 하나님이 동거를 요구할 때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한 동거는 우리 체질에 안 맞아요.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항상 자기가 홀로 살아야 되거든요. 우리 인간이 있다면 항상 요구조건이 뭐냐 하면, 혼자 살아라. 이게 내부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주위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 돋보이고 독자적으로 살아라. 이게 악마한테 가르침 받은 거예요. 부추김 받았다고 할까요. 속성 자체가 혼자 사는 속성이 우리한테 어울립니다.

누가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버스를 기다릴 때 과연 그게 공동체일까? 버스 기다릴 때 줄 서있는 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니지요. 동일한 주파수를 맞출 때 공동체일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아니죠. 프로야구나 참석한다든지 어떤 게임에 접속할 때 과연 그게 공동체일까? 아니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의도 자체가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하는 게 아니고 자기 취향에 맞기 때문에 임시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모시는 자기가 즐기는 방법 중에 하나가 야구를 하고 어떤 공연에 가고 게임을 하고 그런 겁니다.

목적 자체가 혼자 사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여러 친구들이 있더라도 목적은 항상 어디로 돌아옵니까? 혼자 즐겁고 혼자 즐기고 행복하고, 이쪽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마귀가 하늘나라 주님의 통치를 반발하고 나왔기 때문에 친구가 있다 할지라도 친구가 있는 목적은 나를 위해서 있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동거를 요구하거든요. 그럼 나 동거하기 싫어요, 이러면 그만인데 문제는 주의 장막이니까 요즘말로 하게 되면, 신약에 오면 이게 뭡니까? 천국이란 말이죠. 너, 천국 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있어? 이런 뜻이란 말이죠. 천국이 어떤 동네인지 알기나 알아? 혼자 살고 싶고 혼자 행복 하고 싶고 혼자 구원받고 싶은,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티비 보고 울고불고.

모든 것을 혼자서 하는 경향을 가지고 그냥 천국이라는 곳도 나 잘 되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너 잘 되는 것이 아니고 동거를 요구하는 겁니다. 어느 강의에서는 이걸 공존이라 했는데 동거,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하면 동행이 되죠. 동행하니까 여러분 생각나는 게 있지요. 최성수. 누가 나와 함께 가겠느냐 하는. 한국의 다방마담들이 제일 좋아하는 가수, 최성수. <해후>, <동행> 등 여러 가지 있는데.

이 땅에서 진정한 동행이란 성립이 안 됩니다. 누가 하나 주인이 되든지 내가 종이 되든지 그렇게 돼야 돼요. 그래서 왜 천국에선 동거를 요구하는데 지상에서는 동거가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세게 닦아야 됩니다.) 새 칠판을 사용하는데 원래 초반에는 이래요. 잘 안 돼요.

개인이 어느 개인을 만날 때는 딱 둘 중에 하나에요. 첫째는 해방되든지, 아니면 지배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누구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지배를 받지 않아야 해방이 돼요. 해방이란 벗어나는 거거든요. 그러면 내 해방이 되려면 상대를 지배해야 돼요. 이게 개인과 개인의 만남에서는 둘 중에 하나에요.

여러분들이 개인과 개인이 만나면서 깊이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냥 부부사이 같으면 돼요. 남자가 여자를 만나지만 나이 들면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게 아니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요. 제일 좋은 부부관계는 친구가 되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중에 호르몬체제가 비슷해져서 나이 육십 넘으면 남자가 여자 돼버리고 여자는 애초부터 남자 됐고요. 그냥 여자가 아니었지요. 여자인 척했지요. 결혼 전까지는.

다만 차이점은 아기 낳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아기 낳을 수 없는 사람 그것뿐이었지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었지 여자 대 남자로 만난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여자나 남자나 만나보면 겉모습은 여자 같고 겉모습은 남자 같아도 속성은 둘로 나눠요. 남성 형이 있고 여성 형이 있다는 거예요. 융이 이야기한 거거든요.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성격상 남성 형, 여성 형이기 때문에 일단 남자, 여자라고 껍데기 보고 했는데 약간만 살면 껍데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 성격이 남성 형이냐, 여성 형이냐는 게 중요해서 그 다음부터는 해방 되느냐, 아니면 지배하느냐는 이 문제가 될 겁니다. 해방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지배함으로써 해방되는 반면에 내가 지배당함으로 해방되는 게 있어요.

사디즘, 마조히즘이라 하는데. 때리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일단 전두환 형이에요. 그 다음에 얻어맞는 데서 쾌감을 얻는 것. 예를 들어서 얻어맞는 게 나라면 내가 천사 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뭐냐 하면, 술 먹고 패줘야 돼, 나를. 술 먹고 패주고 나는 새벽기도 가서 울어줘야 내가 천사가 돼. 이게 길들여진다니까요.

다시 말해서 인간이라는 것은 단독으로선 내가 모르고 주변에 누굴 만나서 그쪽의 속성에 의해서 관계성에 의해서 인간이 비로소 주체가 되는 겁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다루어지느냐에 따라서 그게 나에요. 주체가 어려우면 그냥 나라고 하면 돼요. 인간이란 그냥 몸이고. 몸에서 나라고 할 때는 그냥 나가 아니고 나와 관련된 그것에 의해서 주체가 되는 겁니다. 이 관계성에서 흘러들어오는 것이 권력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힘이에요.

너, 지금 이 질서 속에서 네가 점유하고 있는 위치가 어디냐? 그 위치가 나를 말하는 거예요. 어떤 남자가 회사 취직하는 데, 당신은 누구지요? 나는 남자입니다. 뭐 어쩌라고? 여기 남자 세 명 뽑는데 남자 맞고, 그래 뭘 할 줄 아는데요? 나, 남자입니다. 뭘 할 줄 아시고 어떤 것을 이 회사에 제공할 수 있습니까? 남자입니다.

세상이란 몸으로 밀어붙인다고 받아주는 게 아니고 몸이 나가 될 때 받아줘요.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고 이런 자격증을 갖고 있고 우리 집안은 이렇게 빵빵하고 부동산을 얼마나 갖고 있고. 이런 것들이 나를 형성하는 겁니다. 결혼정보회사 가보세요. A등급부터 쫙 있거든요. A등급이 주로 어떠냐 하면, 교회 다니면서 집안이 고위층이고, 술 담배 안 하고. 그리고 여자 A등급은 무조건 예쁘고. 첫 번째 그 다음에 어느 대학 나왔는지. 남자는 나는 어느 대학 출신이고.

이것이 나라는 것은 관계성 속에서 관계에 휩싸였다고 보면 돼요. 이러면 시편 15편은 서서히 그 내막이 풀립니다. 하나님의 성산에 오를 자 누가 있느냐고 했잖아요. 그러면 이걸 쉽게 천국 갑시다. 천국 가는데 개인으로 천국 못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뭐냐 하면, 나라는 것이 홀로 나가 아니죠. 홀로 나는 몸이고 나는 남자라 해도 소용없어요. 나는 이 세상의 권력에 휩싸여 있는 나.

그리고 천국도 하나님께서 동거를 요구하니까 새로운 관계, 새로운 권력체제를 요구하니까 하나님께서 천국에 넣어줄 백성에게 말을 하실 때에 나를 고려하겠어요, 이 권력에 휩싸인 나를 고려하겠어요? 권력과 관계된 나를 하겠지요. 그러면 여기서 이 말씀은 무엇을 요구하느냐 하면 해방을 요구하는 겁니다. 출애굽.

이걸 기존 교회에서는 오해를 해서 나를 단독자로 오해하는 거예요.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며 성산에 거할 자 누구냐? 쉽게 말해서 천국에 갈 자는 누구냐?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며” 이렇게 나오니까 사적인 나의 자질을 발휘해서 자질을 발휘한 나만 천국 가고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다고 생각한 거예요. 사람이 늪에 빠졌으면 아무리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빠지는 것처럼 뭔가 시도하려면....

내가 스스로 해방한다는 것은, 권력에서 단독으로 해방으로 이해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강의를 다시 해보면, 내가 행방된다는 것은 권력에서 홀로 되고 싶다는 거예요. 이거는 뭐냐? 악마적이에요. 너무나 악마적 속성이기 때문에 어딜 못 갑니까? 천국에 넣어주질 않지요. 단독으로 해방하기 위해서 여기다 뭘 하느냐 하면, 선행과 경건과 거룩을 집어넣는다고요. 그러니 이것은 실컷 경건하고 거룩하고 착해서 지옥 가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권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방되기 위해서는 아까 뭘 짝을 이뤘습니까? 타인을 지배해야 되겠지요. 나 하나 천당 가기 위해서 남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 속에 인간이 있는 거예요. 내가 단독자일 때는. 그래서 나를 천사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남편이 필요하냐 하면 술 먹고 패는 남편이 필요한 거예요. 나는 가면 갈수록 주여, 지금 주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저 어때요? 맨날 이런 식이에요. 때로는 환란 가운데 참으리라. 죽으면 죽으리라. 아예 쑈를 하고 있어.

집에서 얻어맞고 교회에서 새벽기도하다 엉엉 울고, 또 가서 얻어터지고 울고. 그런 여자 집사들 교회에서 청소나 뭐 할 때 만나면 왜 그렇게 싸움은 잘하는지. 자기 남편한테는 못 이기면서 같은 여전도회에서는 그렇게 싸움을 잘하고 고집이 세고 삐지기도 잘하고. 왜냐하면 열등의식, 남편한테 얻어맞던 그 위로를 교회에서 받아야 되는데 위로를 안 해주니까 화나는 거예요. 왜 위로해야 되지요, 왜?

주님의 방식은 이겁니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려면 네가 악인이 되어라. 죄인이 돼야 돼요. 참 쉽지요. 우리 이런 것 잘하잖아요. 못되고 독한 건 우리 역할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 악마한테 세상을 맡겨놓은 것은 천국은 네 힘으로 단독으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고, 싱크대 밑에 배수구 있지요. 네가 쓰레기가 되어 배수구로 빠져나와야 천국 가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천국 가는 코스가 그 코스기 때문에 그래요. 십자가의 죽으심이에요.

주님이 의인의 대우를 받아 죽었습니까, 죄인의 대우 받아 죽었습니까? 의인이면 누가 죽입니까? 죄인이기 때문에 죽어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보지요. 주님은 그 당시 사회에서 예수님은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각인 되었어요. 그것을 베드로전서나 성경 여러 군데 보게 되면 그걸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라 그래요. 예수님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에요.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진짜 예수님은 교회부흥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교회부흥에 방해물일 뿐이에요.

이 세상에 교회가 있다. 교회를 키우려면 권력이 있어야 돼요. 목사가 권력을 추구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피지배자는 누굽니까? 바로 교인들이죠. 이 세상에 권력은 두 가지가 있거든요. 어렵지 않으니까 권력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정치적 권력이 있고, 하나는 경제적 권력이 있습니다. 경제적 권력이야 여러분이 아는 자본주의 아닙니까.

정치적 권력이란 정치 엘리트의 문자적인, 법적 지식에 의한 정신적 권세지요. 이게 전부 다 어디 출신이냐 하면, 서울법대 출신이거든요. 판검사 출신 아닙니까. 그들이 쓰는 문자를 일반인들이 몰라요. 국회에서 법 만들고 모든 것을 법으로 만들거든요. 법치주의 국가니까. 법을 만들기 위해서 단어 하나하나가 함축이 돼있단 말이죠. 함축된 것을 어느 세월에 다 설명해줘요. 멋지게 용어 하나 만들면 뭔지도 모르고 오케이 해서 다 통과돼버린단 말이에요.

소위 무식한 사람은 국회의원 돼도 소용없어요. 왕따 당해요. 요새 국회의원 하는 사람들 전부 다 법률가들입니다. 법률가들이 자기들끼리만 아는 그런 지식이 상대적으로 무식한 국민들을 정신적으로 통치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말발이거든요. 교회에서 하여튼 공부보다도 다른 데 있던 사람이 장로 돼보세요. 목사는 완전히 무시할 수밖에.

다시 합시다. 시편 15편에서 여호와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냐고 할 때 주님께서 동거를 원했고 천국에서 동거가 되려면 이 지상에서 우리가 동거란 생활을 받아줘야 되는데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단독이고 개인적이에요. 개인적이기 때문에 천국이 있다고 해서 가는 게 아닙니다. 이게 바뀌어져야 되거든요. 개인주의가 탈피해야 되고 그 개인주의가 부정당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개인주의가 부정당할 때 이 세상에서는 개개인 권력자체가 마귀가 지배하기 때문에 이걸 이 세상 신이라 합니다. 이 세상에 오야봉 되는 악마가 천국에서 나올 때 독단적으로 나왔거든요. 대장하겠다고 나왔단 말이죠. 그래서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를 시켜서 훼손했고 그 아담과 하와가 한 패 먹었단 말이죠. 악마와. 아담과 하와의 속성 자체가 뭡니까? 최고가 되고 아무도 나를 간섭함이 없기를 바라는 그런 이상, 그런 속성이 지배하는 거예요.

따라서 권력이란 지배하는 쪽이 계속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지배받는 쪽이 나타나겠지요. 그 권력 양상이 두 가지지요. 정치적으로 문자에 대한 지식이 확보된 자가 상대적으로 무식한 사람을 지배하는 거예요.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걸 정치적 권세라면, 경제적 권력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지요. 돈 있는 자가 갑질하는 것. 이것 예시가 이 두 가지밖에 없어요.

그럼 이 땅에서 우리가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강요받은 게 뭐냐 하면, 출세거든요. 출세란 반드시 목표가 있게 마련이잖아요. 목표는 이 둘 중에 하나밖에 없어요. 돌 잔치할 때 판사 봉 쥘래, 아니면 돈 쥘래? 이거지, 성경책은 갖다 놓지도 않아. 여자 아기면 마이크 쥘래? 아나운서 하라는 말 아닙니까. 요새는 실도 없어. 실 잡으면 요양병원에 호스 꼽고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것도 치워버리고

정치할래, 법을 알래. 안 그러면 돈 알래. 부자 될래. 이게 이미 목표가 된 거예요. 이게 누구의 목표냐 하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는 없어요. 나뿐이에요. 그런데 천국은 뭐냐 하면, 나가 없어요. 우리밖에 없어요. 그래서 천국에서 오신 주님께서 이 지상에서 하실 일이 있는데 우선 요한복음 12장 잠깐 봅시다. 12장 31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목표가 있었지요. 뭘 노립니까? 이 세상 임금만 조지면, 내가 쫄지 않을 인간들에게 쫄았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걸 주님은 자유라 하는데 그 자유가 해방인데 해방이란 말이 되려면 그전에 우리가 철저하게 자력으로 독자적으론 해방될 수 없는 지경에 완전히 놓여있어야 돼요. 본인이 스스로 구원받을 것이라면 뭐 때문에 하늘에 계신 분이 일부러 땅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인생관이 내가 뭘 하겠다는 걸 세우지 마세요. 주님께서 하늘에서 땅에까지 내려온 그 취지가 유일한 인생관이 돼야 돼요. 내가 뭘 할 것이냐가 아니라 주께서 나한테 무슨 짓을 하셨습니까? 저한테 뭘 하셨습니까? 이게 인생관 돼야 돼요. 주께서 뭘 하시기는 우리가 평생 벌벌 떨며 살았다는 모든 구조를 완전히 부수시려 왔지요. 다 깨버리는 거죠.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나라는 것은 주위에서 나에게 관계, 너 뭐 할 줄 알아, 관계할 때 비로소 나가 된다는 것. 우리는 아기처럼 태어났잖아요. 아기가 뭐로 변합니까? 자아로 변하는 거예요. 6~18개월 사이에 자아가 되는 거예요. 점점 더 몸 하나밖에 없는데 아기 하나 태어나면 처음에 아기는 아무 생각도 없어요. 2개월쯤에 되면 까르르 까꿍, 반응을 나타내요. 특정인에게 반응을 나타내는 거예요.

엄마와 독점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거예요. 엄마의 권력 안에 들어온 거예요. 그 아기가 다른 아줌마가 젖 준다고 반응 보이는 것 아니거든요. 엄마가 웃게 할 때 그때 까르르 한다 이 말이죠. 이미 그것이 인간의 몸의 한계성을 드러내요. 엄마가 까꿍 할 때 이름 부를 때 몸에서 서서히 자아가 돼가는 거예요. 자아라 하는 것은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은 특별히 정해져 있다. 나에게 젖 주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럼 나는 정해진 사람의 관계 속에 예속돼있는 거예요.

책상 위에 대표이사 아무개라는 명패가 있는데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오셔서 닦다가 이게 있더란 말이죠. 이걸 샌드페이퍼로 문댄 거예요. 그럼 어떻게 돼요? 지워지겠지요. 이때 사장이 왔을 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잘리란 뜻이야, 이러겠지요.

어제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며느리 하는 일 누가 정해준 거예요? 너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야, 할 때 이 며느리를 지워버리는 이것을 누가 할 일이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 하실 일입니다. 지워버리는 거예요. 이게 가능할까요, 과연. 가능하냔 말이죠. 내가 짐처럼 운명처럼 짊어지워진 모든 수천 가지의 권력들이 또는 질서들, 체제들이 거기에 꼼짝 마라.

나는 며느리라고 호명이 되면 그 다음에 나올 역할은 하나밖에 없어요. 며느리다움, 이것밖에 없지요. 며느리다운 게 어떤 게 있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한도 끝도 없어요. 며느리다운 게. 시가집에 전화를 몇 번 해야 되고 봉투에 얼마 넣어야 되고. 이걸 소극적으로 할 거냐, 적극적으로 매진할 거냐. 자기 아이 셋을 나도 시가집에 올인하는 분도 있어요. 울 엄마^^

그래서 어머니, 왜 그렇게 했습니까? 여자가 시집갔으면 시집의 귀신이 돼야 돼. 시집에서 예쁨 받아서 여자로서 사는 행복이 있지, 시집에서 뭐 이렇게 하면 그건 여자로선 끝난 팔자라는 거예요. 시집에서 예쁨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분위기 파악을 잘한 건 좋은데 자식 셋은 관심도 없고 할머니가 늦게 낳은 시누이와 시동생 받들기 바빴어요. 왜? 그 시누이와 시동생 배후에는 시어머니가 연결되니까. 자기 새끼 놔두고 남의 새끼라 하면 안 되지만, 엎어지는 거예요. 그래야 예쁨 받으니까.

얼마나 독자적이에요. 주변에 있는 모든 관계에서 나름대로의 해방감은 제한된 질서 안에서의 해방감, 그 안에서 나름대로 숨 좀 쉬어보자는 것, 이게 바로 이미자가 불렀던 <여자의 일생> 아닙니까. 그 자체 내에서 나도 숨 좀 쉬어보자. 온 눈치 봐가면서 빨리빨리 행동하고, 시아버지 눈짓하면 가야 되고 모든 게 철저하게 시집에 길들여진 며느리가 되는 겁니다.

바로 주님이 오신 것은 자식이나 남편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그런 말씀 좀 외워놓으세요. 마태복음 10장. 천하 자식이나 나보다 더 생각하는 자는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 하늘나라의 모든 질서와 관계가 세상 것을 완전히 거부하는 합니다. 그야말로 산 채로 갈 수 없는 나라에요. 왜냐하면 며느리란 살아 있을 때는 계속해서 붙어있는 운명 같은 거거든요. 족쇄 같은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께서 누구 이름 부르는 게 아니고 누구 며느리를 죽여 버리죠. 죽을 때 그냥 죽으면 안 되고 같이. 같이 죽었다는 이유 때문에 같이 천국에 가는 겁니다. 해병대 훈련 그렇게 힘들어도 그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같이 견뎠다는 것. 같이 고생하고 같이 울고 같이 땀 흘렸다는 이유 때문에 동지애가 생기는 거예요.

그게 뭐냐? 바로 주님과의 동거고 동행입니다. 이게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나와요. 하나님이 천국 백성을 이야기할 때 너는 내 이름으로 고생 많이 했잖아. 네 이름 말고 네 독자적인 출세고 구원이 아니라 나름대로 예수님으로 인하여 수난과 핍박이 오니까 그걸 본인이 원했던 아니에요. 아까 이야기한 정치적으로 출세하려고 시도한 게 아니고 그냥 난데없이 쳐들어온 거예요.

기존의 권력이 있는데 새로운 권력이 와서 새로운 천국이 온 거예요. 그래서 천국은 죽어서 가는 데가 아니라 미리 시작된 나라에요. 두 나라가 중첩된 현실이에요. 현실이 위로 중첩된 거예요.

쉬운 예로 여러분 금은방에 가게 되면 유리로 만든 진열장 있지요. 진열장 앞에 서있다면 잠시 착각할 때가 있어요. 유리 안에 보석들이 들어있는데 유리가 너무 맑다보니까 손이 가도 유리에 닿지요. 유리 위와 유리 밑이 유리는 투명하니까 같이 내 손과 밑에 있는 시계가 같은 공간에 있다 하지만 유리로 나눠져 있잖아요.

주님께서 이 유리를 뭐로 보자? 요한계시록에선 이 유리를 성령으로 보는 거예요. 성령 안에 있는 사람과 성령 밖의 사람은 완전히 관계가 없어요. 도저히 연결이 안 돼요. 안 되지만 성령 자체가 보이질 않아요. 보이질 않으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유령 같은 존재로 살아가면서도 다른 사람 보기에는 같은 육체를 가진 보통 사람으로 보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3장에서 요단강에서 성령 받았지요. 성령 받았으면 이 세상사람 아니에요. 중첩된 나라에서 이 세상 권력에 속하지 않은 거죠.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 보면서 목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심지어 자기 아버지도 예수님을 못 알아봤어요. 유월절 명절 행사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잃어버렸어요. 나중에 수소문해서 찾으니까 아버지 요셉이 나무랐습니다.

우리가 널 얼마나 찾았다고,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영재발굴단 같아. 영적인 것엔 천재 같아.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몰랐습니까? 찾으려면 내비게이션 해도 성령 나오면 바로 내가 있는데 우리 하나님 집이 내 아버지 집인데 거기서 찾아야지, 하고 오히려 반격을 하고 있어요. 중첩된 현실에서 소속이 다른 것을 아버지, 엄마도 못 알아보는 거예요.

나중에 엄마도 마찬가지지요.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 떨어졌다고 하니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있습니까? 내가 이 땅에 포도주 만들려고 온 게 아니잖아요. 정말 포도주를 만들 때 이 지상에 있는 포도주 안에다가 천국의 요소를 집어넣으니까 뭐가 포도주냐 하면 예수님의 피가 포도주 됐어요.

이렇게 중첩된 의미를 갖고 있는 걸 표적이라고 합니다. 표적은 기적이 아니에요. 기적은 일으키면 이쪽 권력으로 도로 회수가 가능하지만 표적은 나로 하여금 이 권력 세계에서 떠오는 존재인 것을 자각하게 만드는 이게 표적이에요. 암에 걸렸다. 기도했다. 어, 병이 나았네. 이러면 기적이 되지요. 그건 도로 나 건강했다가 되기 때문에 이 세계에 있어요.

그런데 암 나을 것을 기도했는데 암 나은 게 아니고 내가 죄인인 것을 알았어요. 그럼 이 사람은 암 낫고 안 낫고는 시시한 문제 되지요. 내가 암 4기라는 문제가 나한테는 너무 시시한 거예요. 감기 걸려서 콧물 난다고 자살할까요? 그럴 수 없잖아요. 그야말로 암 4기의 극심한 고통이 감기 걸려서 콧물 질질 나는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주께서 콧물 나게 하셨네. 주께서 암 4기 걸리게 하셨네. 그것뿐이에요.

자기 암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어요. 나는 암에 걸리든 3기든 2기든 관계없이 나는 이미 시작된 천국의 백성이다. 왜? 중첩됐으니까. 나는 죽었고 내 생명은 하늘에 간직된 바이다. 골로새서 3장 4절 말씀.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는, 제가 일단 정리해야 되겠지요.

시편 15편에서 천국은 이미 마련돼 있고 이스라엘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성산에(천국입니다) 유할 자 누구며 성막에 거할 자 누구냐, 라고 물을 때 이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바로 동거의식이 동행의식이 밑에 바친 채 들어오는 거예요. 동행을 해야 이 관계에 끌린 사람이 천국에서 동행이 되기 때문에 되겠지요.

천국은 나 혼자 사는 동네가 아니잖아요. 나 혼자 살면서 입 튀어나오고 삐지면 안 된다 말이죠. 동행해준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격해야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가 있어요. 여기서 훌적훌적 울고 그러면, 그런 인간 들어오지도 못하지만. 엄마가 보고 싶어, 이러면 안 된단 말이죠.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은 이쪽 세계에서 엄마와 동행해서 그런데 엄마가 자리가 누가 들어온단 말이죠.

그러면 오늘 시편 15편의 해석은 간편해요. 말씀을 주시는 그분이 문제 출제자가 말씀을 성취하는 용도로써 밑에 깔고 들어오시는 거예요. 말씀만 들어오는 게 아니고 말씀을 제시하신 분이 같이 들어오는 거예요. 같이 들어오게 되면 여기 있는 사람은 그 말씀을 성취하신 분, 말씀을 주신 분=성취하신 분이에요.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 하기 때문에. 자신이 자기 성취, 자기 숙제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 말씀이 들어왔잖아요. 유대인들. 이 사람들 아까 개인주의라 했지요. 개인의 출세, 악마의 속성이 있으니까 나만 잘되면 하겠지요. 그러면 여기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자기 실력으로 지켜보려고 하겠지요. 시편 15편 봅시다. 주의 성산에 유할 자 누구냐, 하니까 이게 미끼상품이 되는 거예요.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셨구나.

그러면 우린 그 다음에 궁금한 건 어떻게 하면 내가 천국 갈 수 있어요, 라고 하겠지요. “정직하게 행하며” 그러니까 보통 통지표에 보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자연이라고 칸막이 있잖아요. “정직하게 행하며”는 국어 란에 집어넣어요. 그 다음에 산수 란에, “공의를 일삼으며” 그 다음에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이건 사회, 그 다음에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이건 자연, 그 다음에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이건 도덕,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이건 체육, 그 다음에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이건 음악, 그 다음에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을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이건 기술,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이거는 생활기록부 기록 란.

그래서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위한 내신 성적 또는 생활 관리부를 본인이 만들어요. 국어 80점, 수학 몇 점, 이렇게 점수를 매겨요. 본인이. 점수를 매겨서 수학에 치중했다 싶으면 여력이 있으니까 사회가 50점 밑으로 내려가면 관심사를 정력을 수학은 잠시 미루고, 혀로 참소치 아니하는 묵언수행에 들어가요. 앞으로 한 달간 말 안 하기. 그렇게 해서 조정에 나서는 거예요. 각자의 개별 통지표를 가지고.

이걸 가지고 교회에 갑니다. 교회 가면 지배자가 있잖아요. 목사. 성경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목사가 있지요. 목사한테 가서 질문을 이렇게 해요. 천국은 어떻게 갑니까, 그건 안 중요해요. 그건 시편 15편에 나오는 거니까.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혀로 참소치 않는 방법이 뭡니까, 이렇게 물어요. 이게 오늘날 교회만 하는 게 아니고 이걸 오랫동안 천년 동안 한 단체가 있습니다. 유대교입니다. 선배들이에요.

선배들이 뭘 만들었느냐 하면, 하나님 말씀에다 해설서를 붙여요. 말씀을 잘 지키는 해설서. 그러니까 성문종합영어 또는 수학정석을 붙여놓는 거예요. 수학정석1, 수학정석2를 붙여서 교과서 말고 보충수업을 하는 겁니다. 안식일이 나오잖아요. 안식일에 어떻게 잘 지키는지 보충해설서를 갖다 붙여놓은 거예요. 이걸 넓게 이야기해서 탈무드라 하는 거예요.

이 탈무드에 정통하고 거기에 달인들, 그런 것을 자기가 지은 게 아니고 전통적으로 내려온 거니까 이럴 때 가장 안식일답다고 삼백 몇 가지인가 엄청난 그걸 관리하고 가르쳐 교육하고 거기에 전문 강사로 나선 게 누구냐 하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입니다. 로마서 2장 봅시다. 누가 21절부터 23절까지 읽어보세요.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이렇게 돼있지요. 야고보서 2장에 가면 더 심하게 이야기합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모든 것을 어긴다. 성경이 잘 안 될 때는 독서모임에 가서 이렇게 하면 읽어져요. 광산 김 씨에 보면 독서모임에.

율법은 체인이 연결돼있거든요. 마치 옥수수 밭에 멧돼지 들어오면 경고음 날릴 때 딸랑이처럼 남쪽에서 건드리면 북쪽 딸랑이까지 건드려요. 이 말은 율법은 하나의 목적으로 뭉쳐져 있기 때문에 너는 조항들마다 끊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율법 전체가 한 덩어리로 돼있어요. 이게 주님의 사랑인데 이걸 건드리면 사랑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우리가 저주를 받게 돼있어요.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자가 간음한 자가 돼요. 여자를 보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 자가 간음한 자가 된다고. 그러면 간음한 자인 동시에 뭐도 딸랑대겠습니까? 살인죄도 딸랑딸랑, 안식일도 딸랑딸랑, 이 바보 같은 유대인들은 도대체 율법에 대해서 하나님이 율법을 준 것으로 하나님의 손을 떼게 만들어요. 하나님은 더 이상 할 것 없고 이제 나머지는 우리 역량에 따라서 천국 가고, 합격, 불합격은 우리 역량에 달렸다고 보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와 똑같아요. 유대인 사회나. 성적표, 내신 성적이 있으니까.

제가 어떤 한국기독교단체의 교리를 말할 테니까 뭐가 잘못됐는지 봐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 지셨다. 모든 인간을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 지셨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 따라서 구원받는 문제는 십자가 지기까지는 하나님이 하시고 그 다음부터 십자가 믿고 안 믿고는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셔서 자율권에 달려서 십자가를 외면하면 지옥 가고 십자가 믿으면 천국 간다.

이 교리를 내세운 단체가 있어요. 침례교입니다.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이 이론이 맞아요, 안 맞아요? 이게 우리는 뭔지 모르지만 무조건 아니어야 한다고 우기는 데 왜 제가 이 교리를 소개하느냐 하면, 이게 우리 기본 심성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호와증인도 이 파고요, 모든 구원파가 바로 여기서 나온 거예요. 구원파의 목적은 뭐냐? 구원에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나는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구원파나 침례교나 이쪽은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 안 해요. 구원받기 위한 대기상태에 있을 뿐이지 죄인은 아니라는 거예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고요.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천국에 못 들어가는 존재라는 걸 생각 못하고 천국에는 들어갈 권한이 있다고 우기는 겁니다. 생각 자체가 성령을 안 받았으니까 자기가 죄인인 걸 모르는 거예요.

천국 갈 때 성령이 오시는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가 구원할 때 말씀을 주시고 말씀 성취는 누가 합니까? 예수님만 다 이루고 예수님만 다 하셨다는 걸 누가 알려줍니까? 성령이 알려주지요. 성령이 왔다는 말은 우리는 말씀을 줘도 아무리 지켜도 천국 갈 만큼 의가 되지 못함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잖아요.

그러면 구원받으려면 오신 성령께서 성령 자체가 하나님이 성령을 소환하게 되면 그 성령이 있는 사람이 같이 딸려서 구원받는 거예요. 주께서는 성령을 요구한다고요. 나의 자질을 요구하는 게 아니고요. 나의 솜씨를 요구하는 게 아니고 한평생 네가 어디서 뭘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옥경이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고요. 희미한 등불 아래서 울든지 말든지 관계없어요.

이걸 더 심하게 말해서 주께선 자기 편지를 던져놓고 우리가 쥐고 있는 자기 편지를 회수하다보면 딸려가는 거예요. 말씀이 편지 아닙니까. 말씀이 와서 말씀을 회수하면서 우리는 거기 딸려서 콩고물 묻히듯이 그냥 구원받는 거예요. 거기에 내 솜씨를 왜 갖다 묻혀요. 콩고물 다 떼어내야 돼. 그냥 와서 그냥 구원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내 구원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하지요. 아까 수학, 영어 하지요. 그러면 성령께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의 솜씨를 이미 중복된 현실 속에서 성령이 와서 강제로 우리의 잘남과 성경 말씀을 떼어내겠지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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