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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19:58:46 조회 : 168         
14강-욥기 5장 1~7절(인생 고난) 20200119-이 근호 목사 이름 : 송민선(IP:14.55.184.154)
14강-욥기 5장 1~7절(인생 고난) 20200119-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욥기 5장 1~7절입니다. 구약성경 765페이지입니다.

“부르짖어 보아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내가 미련한 자의 뿌리 박는 것을 보고 그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그 자식들은 평안한 데서 멀리 떠나고 성문에서 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그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재앙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요 고난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들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죠? 이게 누가 하는 말이냐 하면 욥의 친구가 욥에게 하는 말입니다. 누가 누구보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이 본문에 해석이 달라지게 됩니다. 욥의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욥이 이 사실을 다 안다는 거예요. 욥은 지겨운 겁니다. 이정도 수준의 신앙은 이미 본인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겁니다.

욥의 친구 하는 이야기는 이미 욥 본인이 욥 자신보고 자신의 고난을 해명하기 위해서 무수하게 되풀이하면서 자기가 자기에게 지적했던 이야기예요. 그러나 고난은 가시지 않고 없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욥이 본인 보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욥의 친구들은 마치 욥은 모르고 본인은 안다는 식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겁니다.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주책을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엘리바스가 제일 나이 많은 친구예요. 오늘 본문 해석하면서 어려운 대목들이 여러 가지가 나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남과 남을 비교할 때 유사, 쉬운 말로 비슷한 것은 통한다는 그런 원칙으로 이 세상은 움직이게 되어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으로 치료시킨다.

옛날 주술적인 것도 그런 식으로 하지요. 아기를 낳을 때 골짜기에서 아기 낳는 이유가 비슷한 구조는 접촉점이 있을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동생이 가게를 하고 있는데 형이 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동생아 좀 도와줘”라고 형이 이야기하니까 동생이 형에게 못 도와준다고 한 거예요. 그때 형이 하는 말이 “너 내 얼굴 자세히 봐라. 내 얼굴 속에 네 얼굴 없는 줄 아나?”라고 한 거예요.

같은 형제니까 닮았다는 겁니다. 형을 도와주는 것이 너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유명한 말로 “우리가 남이 가?”라는 말과 똑같은 거예요. 내 얼굴 안에 네 얼굴 들어있는데 나를 안 도와주는 것은 곧 너를 안 도와준 게 되니까 이럴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형이 반격에 나서는 겁니다.

지금 욥의 친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욥이나 나나 레벨이 같다고 보는 거예요. 수준이 같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짐작하는 거예요. 내가 만약에 고난받았으면 이런 교훈과 이런 훈계를 내가 나에게 내려서 이런 하나님이 주신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거예요. 어떤 비법이 있는 거예요.

교인들이 교회 올 때 어떤 비법 얻으러 오잖아요. 옛날 여기에 다니던 급행 1번에 보면 광고가 있어요. 광고 밑에 보면 어떤 앞산 밑에 있는 어떤 절에서 광고한 건데 열 가지를 제시하고 거기 070으로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하면 다 해결된다는 겁니다. 어떤 열 가지가 있느냐 하면 이사 갈 때 날짜 잡는 거, 고부간에 갈등 있는 거, 이상하게 아픈데 병명을 모르는 거, 성적이 떨어지는 거, 집값 떨어지는 거, 하여튼 인간이 살아가면서 아쉬울 때 어떤 해결책 구하는 열 가지를 내놓고 전화하면 해결책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교회나 절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어떤 해결책 구하러 오는 거예요. 해결책. 기도가 굉장히 간절하면 집구석에 무슨 일이 있다고 보시면 되고 우리교회처럼 기도해도 아무 내용 없을 때는 지금 태평이구나 무사안일이 오든지 뭔가 아무 끄집어낼 것이 없다는 뜻이거든요. 어쩌면 이게 위기의 순간일 수도 있는데.

욥의 친구가 자신이 입장바꿔서 생각하면서, 역지사지라고 하나요, 자신이 욥의 자리에 있다면 이런 식으로 생각할 거라고 말하면서 “너는 왜 이 비법을 모르냐. 내가 한 수 알려줄 게”라고 하면서 5장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거예요. “부르짖어 보아라. 네가 고난에 있는 것은 필시 너의 기도가 응답이 안 되어서 그렇다”라고. 욥의 친구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죄가 있는 자는 기도의 응답이 안 된다. 기도의 응답이 안 된다고 너무 서러워하지 말고 도대체 나의 죄가 뭐인지 발견만 한다면 기도 응답은 얼마든지 된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고생하시는 것을 그냥 방치하는 분이 아니고 도와주려고 해도 본인이 회개를 안 하니까 지금 못 도와주니까 회개만 하면 원상 회복된다는 생각이 욥의 친구가 주장하는 거예요. 일종의 건강한 자의 갑질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무 무탈한 자의 갑질.

제가 지난 화요일부터 뭘 잘못 먹었는지 머리가 빙빙 돌고 어지럽고 구토가 일어났어요. 인터넷 쳐보니까 이석증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지럼증을 방지하는 약을 병원에서 처방받았어요. 이유는 그 의사는 모르겠다고 하고 신경과로 가보라고 하는데 어쨌든 그 의사 하는 말이 어지럼증은 치료가 되나 잠이 올 거라고 했어요. 그다음부터 약을 먹고 난 뒤에 계속 잠이 오는 거예요. 그 의사 참 용하지요.

그러고 난 뒤에 이온 음료를 마시고 나니까 깨끗하게 치료가 되었어요. 그다음에 내가 뭘 시도했느냐 하면 내가 어지러울 때의 그 기분을 아무리 생각해 내려고 해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게 뭐지?’ 사흘 동안 어지러웠는데 어지러움이 끝나고 난 뒤에는 체험이 되질 않아요. 어지러움이 기억나지도 않고 체험되지도 않고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인간은 존재가 아니고 사건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지금 욥의 친구는 인간을 존재로 보는 거예요. 한결같이 존재의 바탕이 그대로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매일같이 사건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못 하고 네가 마음을 이렇게 먹으면 앞으로 잘 풀릴 거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 마음먹으면 내일도 모레도 지금 마음먹은 것이 네가 마음을 좋게 가졌던 그 효과를 계속 이어나가서 계속해서 너는 아무 탈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우기는 겁니다.

이 바탕이 동질성으로 계속 이어져 나간다고 보는 거예요. 그게 욥 친구 자기나 욥이나 같은 유사성, 비슷한 점이 아니겠는가 하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욥의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문제는 이거예요. 욥이 그 점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예요. 본인은 친구들이 해답을 제시하는데 정작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는 욥은 그게 네가 헛다리 집었다는 거예요. 인생에 대해서.

쉽게 말하겠습니다. 욥 친구 엘리바스나 나나 우리 둘은 친구고 다 아는 사이인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의 신학에 대해서 얼추 우리가 공통점이 많았다는 것은 욥이 인정하는데, 네 생각이나 내 생각이나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공통점을 유지한다고 치고, 문제는 그 공통점이 무산되었다는 거예요. 아무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네가 아무리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지난 시간에 보면 자신이 흔들리고 귀신 봤는지 뭘 봤다고 하는데 귀신을 보든 하나님을 만나든 어떤 이야기를 했으면 정작 지금 하나님과 관련되어있는 내가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였어’라고 동의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동의가 안된다는 거예요. 동의가. 주도권을 지금 누가 쥐고 있느냐 하면 욥의 친구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욥의 친구는 지금 어부지리예요. 그냥 걸치고 있는, 그냥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야 할 거예요. ‘이건가? 아닌가? 이거? 이것도 아니구나’라고 욥의 친구 말을 우리가 그냥 넘어가자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이 욥의 친구가 하는 말을 평소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하나님의 의미 있는 고난을 받지 않은 우리들이 평소에 이런 생각으로 무장되어서 자기 인생을 사건으로 끊지 않고 존재로 계속 이어나가려는 탐욕과 욕심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을 상상하면서 서울 가본 척할 때 나타나는 말들이 욥기 4장 5장이고 뒤에 또 나올 거예요. 계속. 거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욥의 친구가 하는 이야기예요. “인생에 대해서 내가 한마디 할 자격 되는데 살 만큼 살았기 때문에 나는 자격 되는데 내가 한평생 살아 보니까 사람이 난데없는 어려움이 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의 죄가 많아서 그렇게 하시는 신호로 보자”라고 하는 겁니다.

그거 말고는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는 거죠. 그게 지금 욥 친구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죄 회개 안 하고 이렇게 고난받는 사람보고 회개하라고 하니까 그쪽에서 자꾸 회개 대신 분노를 유발하니까, 욥 너처럼 분노를 유발하니까 3절에 보면 그 사람에게 단방에 뭐라고 했느냐 하면 “에이 저주받아라”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 저주받으라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3~5절까지 나오는데 너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가 다 먹고 너는 손도 못 대고 7절에 보면 사람에게 오는 모든 재앙은 바로 인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인간과 관련 없는 티끌이나 돌멩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걸 아주 유식하고 고상하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욥 친구의 말에 대해서 우리가 흠잡아야 하고 문제점을 찾아내야 하죠. 안 그러면 이 설교는 소용없는 거니까. 미리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 바뀌면 사는 방식 달라져요. 이게 정답입니다. 상황 바뀌면 사는 방식 달라집니다. 다른 말로 말씀드릴까요? 사건 바뀌면 기존에 있던 모든 존재가치는 무용지물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예수님을 왜 죽이느냐. 이해가 안 되어서 죽이는 거예요. 왜 이해가 안 되는가? 예수님의 사건과 우리에게 있는 사건이 질이 다르기 때문에 예수님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사는 방식은 내 존재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이 괜찮은 이 평온한 존재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제가 알기는 현재 우리교회 나오는 사람 중에 가슴 치면서 새벽에 “교회 문 열어 주세요. 기도해야겠습니다”라고 오시는 분은 제가 아는 한 아직 없습니다. 살만하다 이거죠. 견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살만하고 견딘다는 말은 뭐냐 하면 이정도 어려움은 내 손에서 처리 가능하다는 뜻이에요. 저에게 신방 해달라고 그런 이야기 없죠. “목사님 늘 강의 바쁘신데 내 손에서 처리하죠. 내 손에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해요. 아이 아프면 병원 가면 되고 부부 싸움하면 참으면 되고 여자는 노루처럼 먼 곳을 바라보면 되고 남편에게 기대 안 하면 되고.

말씀을 듣는 그것이 자기 존재를 자르고 분해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끈질기게 이어나가는 용도로 그걸 자꾸 활용하는 거예요. 오늘도 괜찮고 내일도 괜찮고 혹시 조금 괜찮지 않은 증후가 보이면 후딱 기도하거나 빌면서 자기 나름의 수를 발휘해서 “잘못했습니다. 성경 2장 더 볼게요”라고 그때그때 마다 메꿔 나가면 존재가 존재를 엿가락처럼 쭉쭉 늘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 이게 욥 친구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겁니다.

여러분, 일기예보에는 재방송이 없어요. 일기예보에 무슨 재방송이 필요합니까. 일기예보 재방송은 소용없는 거예요. 드라마는 재방송이 있지만 일기예보는 그때그때 달라요. 인간들은 자기 위주로 살기 때문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나라고 착각을 해도 엄청난 착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도와주시는 은혜를 다 놓쳐버려요. 하나님의 살려주신 은혜를 찾을 데가 없어요.

자기가 자기 관리 잘해서 이만큼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만큼 살아온 것에 대해서는 자기보다 못하니까 지적질하는 거예요. “네가 죄지은 것이 있다”라고. 지금 누가 누구보고 손가락질해야 해요? 욥이 욥의 친구보고 손가락질해야 합니다. 지금 너는 나보다 착하게 살아서 아무 일 없다고 여기는가? 그거 아니거든요.

히말라야 갔다가 교사 4명 죽고 3명 실종이라고 하죠. 만약 간 사람들이 노인정 모임에서 70세 넘은 분들이 갔다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별 관심 없습니다. 그런데 간 사람들이 교사라면 아까 유사 원칙에 의해서 비슷함의 원칙에 의해서 내가 만약에 그 집에 부인이라면. 교사가 연봉이 얼마입니까? 제일 먼저 돈부터 계산되거든요. 교사가 연봉이 얼마냐. 교사가 공직에 있다고 안심하고 애들은 둘이나 셋은 낳았을 거고 그러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지요?

제가 너무 심하게 이야기했습니까? 죽는 사람은 아무 문제가 아니고 산 사람이 문제가 돼요. 서울 못사는 동네에 노인정에서 심심풀이로 히말라야 갔는데 하나는 78세 하나는 82세라고 하면 다들 잘됐다 하지 관심 없어요. 그런데 팔팔하게 한참 아이가 클 때 아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고 있는데 가장이 죽었다면 그 집안이 어떻게 살지 걱정되지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죠. 이게 뭐냐 하면 남의 일을 볼 때 자기의 공통부분만 오려서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과 우리 사이는 유사성이 아닙니다. 대조성이에요. 대립 되는 거예요. 왜 대립이 되느냐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십자가 앞에 다 내놓으라는 겁니다. 다 끄집어내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나 예수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다 끄집어 내보라는 겁니다. 설명해 놓고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님을 압니다”라는 소리를 해보라는 겁니다. 너는 나를 모른다고 내가 이야기할게.

이게 욥기의 의미입니다. 아는 거 다 끄집어내란 말이죠. 영적 세계의 기본은 이렇습니다. 내가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지금은 아는 체를 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제 뜻은 이렇습니다’라고 간절히 새벽기도하고 철야 기도한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뜻은 이거예요. “네 뜻은 필요 없고”

얼마나 인간은 자기 자신이 존재에 자기 상상력을 보태서 존재 끝에 내가 잘 되는 것을 지금 나의 인생 모델로 삼는 게 문제예요. 내 존재가 뭐가 문제냐 하면 존재는 자꾸 나를 좋은 쪽으로 구상을 하게 만들어요. 만들어서 나중에 5년 뒤에 10년 뒤에는 잘 될 거라는 것을 모델로 삼아서 지금 시점과 모델 되는 시점을 이어지게 평지처럼 쭉 이어지는 상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유사지요.

대조는 뭐냐 하면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것과 내 뜻은 다르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르다는 뜻으로 우리의 존재를 돔베기, 제사 지낼 때 상어고기를 딱딱 잘라서 올리는, 그 돔베기처럼 딱딱 끊어 놓지요. 우리는 눈만 뜨면 상상하는데 눈만 뜨면 괜찮은 나, 저녁 때쯤이면 괜찮은 내가 되어있는 것을 상상해요.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놓쳐버리고 나 잘난 맛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는 욥을 통해서 알아야 해요. 지금 욥의 친구가 욥에게 쓸데없이 훈계하잖아요. 평소에는 누가 나를 훈계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나를 훈계해요. ‘내가 뭔가 일이 잘 안되는 걸 보니까 뭔가 나쁜 짓 해서 그런 모양이다’라고 스스로 훈계하는 것이 선악적 구조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자꾸 자기 단도리를 해요. 그리고 자기 단도리하는 것이 굉장히 착실하게 신앙생활 잘 하고있는 것처럼 그동안 존재의 바다에서 우리는 그렇게 정보를 흡수해 왔습니다. 지금 나 하나 건사하기 위해서 조심할 것 조심했고 피할 것 피했다는 거예요. 악을 멀리하고 선은 가까이했기 때문에 그만한 보상을 지금 받고 있다는 겁니다. 부들부들 떨면서. 이게 욥의 친구예요.

그러나 문제는 그런 사고방식이 결국은 십자가를 비켜 간다는 거예요. 잘난 내가 나중에 천국 가는 우승자가 되는 천국에서 화려한 면류관 쓰는 그쪽으로 빠지지 십자가로 가지를 않아요. 십자가 경유하지 않고 십자가 빠진 채로 우회해서 엉뚱한 길로 천국 가 있는 내 모습에 대해서 스스로 자기가 반하고 있습니다. 이건 에고이즘이죠. 나르시시즘이고요. 절대적인 자기 애착에 불과한 겁니다.

지금 욥의 친구로 하여금 욥 앞에서 이런 소리를 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욥에게 사건을 일으키고 그 주변에 욥의 친구를 모이게 한 겁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욥을 통해서 욥에게 “네 자리에서 일어나. 거기 네 자리 아니야. 그거 가짜야”라는 지적을 욥으로 받게 하는 겁니다. 끝으로 이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빛이라는 것은 어둠을 피해서 빛이 아니라 온통 빛이 아니라 어두움 가운데서 빛이 없는 가운데서 비로소 예상 못 한 빛이 나오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에 있습니다. 빛이 와도 세상은 어두움이기에 빛을 빛으로 알지 못하느니라. 바로 그 자리가 우리 존재의 자리이고 빛은 그 존재에 비취는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사건으로써 빛이 우리 어둠 속에 십자가로써 박히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건방 떨지 말게 하옵소서. 남의 사정을 아는 척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부터 십자가 앞에서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나 잘남으로 이어지는 엉터리인 것을 늘 자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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