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HOME > 게시판 > 자유게시판
2020-03-19 00:11:03 조회 : 90         
33강-호 8장 11-14절(제단)200318-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61.84.208.92)
33강-호 8장 11-14절(제단)200318-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호세아 8장 11절에서 14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263페이지입니다.

호세아 8:11-14

“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찌라도 저희가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먹거니와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이스라엘 나라의 특징이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제대로 망함으로서 제대로 하나님을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나라, 다른 나라보다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부여받은 나라, 그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스라엘을 통해서 다른 민족들은 알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이 대체 뭐냐?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것이 뭐냐? 하나님 뜻의 중심은 뭐냐? 그리고 인간 자신들은 어떠한 존재냐?’ 하는 사실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다 보여줍니다.

14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라고 되어 있지요.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온 인류를 대표해서 인간이라 하는 것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는 존재라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었지만 만드신 하나님을 제켜버리고 자기자신을 중심에 세우는 그 모습을 이스라엘 역사 내내 하나님께서는 들춰내는 일을 벌이시는 겁니다.

들춰낼 때 들춤을 당할 수밖에 없도록 주께서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게 12절에 나옵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천도 아니고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하나님께서 그냥 천둥번개만 치시는 것이 아니고, 자연현상으로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선지자를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법을 주었지만 그들은 주는 족족 치워버리고 외면해버리는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 이스라엘이 인간을 대표하니까요, 그 인간의 범죄함, 죄라는 것이 완전히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다,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듯이 이스라엘을 다뤄왔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가 기록된 것으로 보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뭘 잊어버리는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뭘 잊어버리는가? 이스라엘을 잊어버렸어요. 세계 2백여 개중의 하나로 쳐버리고 이스라엘하고 대한민국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렇게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뉴스 보니 어느 가정이 소개되는데, 애들이 요즘 학교를 안가고 있으니까 가정주부들이 골치가 아픈 모양이에요.

아침에 부엌에서 앞치마 두르고 짜증스런 얼굴로 아침밥을 해줘요. 딸애는 자기 방에서 인터넷 강의로 공부를 해요. 12시도 안되었는데 애가 배고프대요. 아침 준비하고, 설거지 하고 돌아섰는데 금방 점심한다고 또 딸그락딸그락 하네요. 애들이 학교에 못가고 있는 동안 가정주부가 집안에서 일이 많아졌다는 그것에 관심을 두지 이스라엘에는 관심을 안둬요.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스라엘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인지 이스라엘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호세아 8장을 펼쳐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소한 가정문제가 아니지요. 11절에 “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도다.”

제단이 거기에 팍 나와 버린 거예요. 지금 애들이 학교에 못가는 동안 아침 점심 차려내기 바쁜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들이대느냐 하면, 제단을 딱 들이대는 거예요. 제단을 통해서 너희들이 범죄함의 극치를 다 밝혀 보일 수가 있다는 거예요. 제가 다시 말합니다만, 현대인들은 하나님은 물론 관심이 없고, 이스라엘조차도 물론 관심이 없고,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제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제단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끄집어냈어요. 신명기 12장 5절에 보면 제단을 몇 개 만들라고 했는가? 달랑 하나만 만들라고 했습니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되 그 넓은 약속의 땅에서 꼭 한곳에만 제단을 세우고 그 외에는 제단을 못 세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절기 때마다 각지의 이스라엘사람들은 그 제단이 있는 그곳으로 와서 단체로 특별제사를 일 년 세 번의 절기,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맞춰서 드리도록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호세아 8장 11절에 보니까 그 제단을 너무 많이 만들었어요. 사람들의 어떤 편리를 위해서 한 곳이 아니고 제단을 너무 많이 만들어놓았다는 말이지요.

원래 이 제단 만들 때 신명기 12장 5절에서 제단을 만드는 그 위치가 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곳에 제단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특정지점에 단을 세우라고 하지 않고 왜 주의 이름이 있는 곳에 세우라고 했느냐?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신명기가 광야 때의 이야기거든요. 광야 때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하나님의 이름이 최종 멈추는 곳에 제단을 쌓아야 되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이 먼저 앞장서서 약속의 땅, 그 가나안 땅에 언약을 모르는 적들이 있는데 그 적들, 그냥 빈 곳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들어오면 다 죽이겠다고 작심하고 있는 적들이 가득 찬 원래의 토착민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은 앞장서서 뭘 하느냐? 그들에게 사정을 한다든지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애굽에서 내 백성이 이렇게 왔는데 전세나 빈집이라도 있으면 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쳐들어가요. 전쟁을 일으켜요. 여호와의 이름은 무슨 이름이다? 전쟁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인간의 이름을 이기고, 하나님의 이름이 기존민족들이 갖고 있던 그들의 신이 있는데 그 신들과 여호와 하나님의 싸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렇게 이겼다, 라는 최종적인 점령지, 모든 전쟁을 마감하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자리고 제단이 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제단이 어디 있느냐 하면 하늘나라에 있어요. 지상에서 하늘나라 갈 때 하늘나라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을 가진 예수님께서 이 땅의 악마를 이기고 최종 승리했던 그 지점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거기서 생수가 흘러나오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 22장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전쟁하는 하나님입니다. 전쟁한다는 그 말은 인간의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전쟁, 그리고 무슨 명분이냐? “너희들이 언약을 모르잖아.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지? 약속을 모르니까 그 약속이 빠져버린 신을 믿었잖아.” 그 신이 바로 우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인간들은 절대 신이라고 믿지만 그 인간의 믿는 신의 내용을 끄집어내 보면 인간들이 원하는 것, 기대와 희망만 가득 들어 있는 거예요. 거기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 없어요.

인간이 하나님께 요구하는 요구사항만 가득 들어 있다고요. 마치 새벽제단이라 해서 새벽기도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것, 요구사항을 제단 두드리면서 하듯이 하나님의 약속은 생각도 안하고 있고, 오직 내가 내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게 바로 이방인들의 제단이에요. 오늘날 한국교회 보면 딱 이방인의 제단이에요. 약속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용쓰고, 애쓰고, 정성 기울이면 천국 열릴 줄 알고 있는 거예요. 천국은 약속의 나라고, 그 약속을 이루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기 때문에 오직 약속을 이루신 그 분의 이름으로만 구원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내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모든 내 포부와 희망을 쓰레기처럼 주님의 약속 앞에 “그 딴 것 나는 집어던졌습니다.” 하는 그런 각오에 전제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저는 버립니다.’ 그 뜻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약속만 충만해야 될 그 땅에서 어느새 약속을 빼버렸어요. 그리고 주변 나라에 있는 약속 없는 신,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잘사는 신, 자기욕망을 자극하는 신, 뭔가 저 신으로 옮겨 타면 나도 저 나라처럼 잘 먹고 잘살고 가정이 평안할 것 같은 그 신, 표면은 여호와지만 내용은 전부 다 이방신의 내용, 비는 것으로 하다 보니까 국가가 왕부터 나서서 백성들을 달래준다고 제단들을 가까운 장소에 많이 세운 겁니다. 산당이라는 것을 세운 거예요.

선지자들, 선지생도들을 양성해서, 요즘으로 하면 목사지요, 목사들을 양성해서 세워진 제단에 파견근무 하듯이 해서 그들의 복채를 받고 밥 먹고 살도록 나라가 허용하고 장려한 겁니다. 약속이 없어요. 오늘날의 최종약속, 모든 약속의 완성은 십자가지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했기 때문에. 약속의 완성이 십자가가 되면 제단은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은 십자가를 우리가 믿으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기 욕망과 야욕을 버리고 십자가의 진짜 의미, ‘오직 주님이 하신 그 약속만을 좋아합니다.’라는 마음으로 바뀔 리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10장 16절에서는 십자가에 달린 그 주님께서 십자가의 의미를 담아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 자기가 택한 백성 마음속까지 친절하게 택배로 보내주시는 겁니다.

지난 주일에 이야기했지요. 주께서 보낸 택배는 빈 상자에요.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일체 들어있지 않다고요. 주께서 보내신 택배상자는 오직 주님만이 원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만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히브리서 10장 1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참 친절하지요. 우리 마음속까지 들어와요.

옛날 구약은 성령이 없기 때문에 십계명처럼 우리 앞에 딱 버티고 있어요. 이거 지켜라, 저거 지켜라, 이웃을 사랑하고 뭐 어쩌고……, 지키라는 것이 우리 앞에서 책임감과 의무감을 요구했던 것이 구약시대라면 신약의 성령께서는 친절하게도 우리 실력을 뻔히 알기 때문에 우리가 저항할 수 없도록 우리 마음속까지 주님의 모든 율법의 완성을 집어넣은 거예요. 컴퓨터 칩을 우리 마음안에 집어넣듯이.

이게 복음이잖아요. 기쁜 소식이잖아요. 오뚜기 안에 쇠뭉치 들어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길에 다니면서 그런 것 못 느꼈던가요? 내안에 뭐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가는 그 제단, 성전, 신약시대에는 아예 우리 마음 안에 집어넣었다니까요. 우리 마음 안에 제단이 있어요.

그리고 구원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님께서 집어넣어놓고 하나님 자신이 집어넣은 그것을 하나님 스스로 확인하면서 데려갈 때 껍데기 같은 우리도 같이 데려가게 되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구원받은 겁니다. 굉장히 쉽지요.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세상을 입시전형체제로 바꾼 거예요. 합격자와 불합격자.

일방적으로 집어넣어놓고 안에 완성된 제단, 또는 성전이 완성된 사람은 합격, 안 그러면 불합격이 되는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기대를 걸다가 우리 뜻대로 안되고, 경제도 어렵고, 생활도 어렵다고 짜증을 내지만 그러나 이런 말이 있어요. 마지막 웃는 자가 승리자라고. 주님의 입시요강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하신 그 일로서만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겁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

그 하신 일이 우리 앞에서 멈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이제부터 네가 믿으라.”가 아니라 이미 선물로 집어넣어놓고 선물로 집어넣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새로운 믿음으로 고백케 되는 겁니다. 고백하게 만들어요. “주께서 뭔가 집어넣었습니다.” 하는 거예요. 이러한 신약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세아가 필수적이지요.

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집어넣어줘야만 되는가? 그것은 인간의 실력과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하나님의 제단을 유지하거나, 붙들거나, 주의 취지에 맞도록 살 수 있는 역량들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 제단을 주신 이유, 만 가지 율법을 주신 이유는 죄를 더욱더 죄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인간이 이렇게 율법을 버리고 죄를 좆는 이유는 주위의 이방나라들이 자기들의 소원을, 자기들의 희망사항을 먼저 다 성취하는 듯해서 그것이 굉장히 좋아보였던 겁니다. 그래서 호세아 8장 14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이것은, 남쪽과 북쪽의 이스라엘이 이웃나라를 닮아서 거창하게 건설공사 해서 남들처럼 잘 사는 티나 내고 폼을 잡으려고 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내가 그 고을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없애버린 겁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그들이 제사에 대해서 들은 것은 있어가지고 제사는 드리지만 사실은 제사자체에 의미는 없고 제사가 끝난 뒤에 고기 먹는 재미로 제사를 드린 거예요. 고기 먹는 하나의 절차로서 제사를 드리고 마음의 관심사는 어디 있느냐? 맛있는 단백질 보충하는 거기에 관심을 두고 살아온 겁니다. 그래서 13절에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벌하려면 죄가 있어야 되잖아요. 죄가 있고 난 뒤에 벌한다고요. 그 죄는 율법을 통해서 다 들춰내고요. “이런 죄 있으니까 너희 벌 받아도 당연하잖아. 그지?”라고 해서 벌을 내리는데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앗수르로 잡혀가고 바벨론으로 잡혀간 사람도 있지만 그 당시에 애굽으로 도로 피신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하나님의 어떤 능력으로 나온 것은 생각 못하고 자기 살길 찾아서 그냥 애굽으로 가버립니다. 그들이 애굽으로 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가 있느냐?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제단, 이 제단이 여기서 갑자기 나오느냐? ‘제단이 왜 거기서 나와? 제단이 왜 거기서 나오지?’

제단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전쟁에서 승리할 때 이방인들은 뭐가 없는데, 이스라엘에 뭐가 있을 경우에는 그 이스라엘에게 있음이 이방인들을 이길 수가 있는데 그게 언약이거든요. 언약이 있음에 이길 수가 있기 때문에 제단이 멈춘 곳이 하나님이 자기 원하는 백성과 함께 사는 영원한 장소가 됩니다.

그러면 제단에 뭐가 투입되는가?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제단은 범죄했음을 드러내는 요소가 제단과 결합이 돼요. 그걸 가지고 제물이라고 하는 겁니다. 제물에 대해서 레위기의 경우에 많이 나옵니다만 제물을 아주 일목요연하게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단출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제물은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가 있지만 처음에 제사는 홀라당 다 태우는 번제 달랑 하나밖에 없었어요.

번제에서 그 다음에 화목제가 생겼고, 그 다음에 속건제 속죄제가 생기는데 번제와 소제는 같은 것으로 보면 돼요. 소제는 식물성 제물을 소제라고 하고 동물성은 번제라고 하는 겁니다. 왜 이렇게 속죄제 속건제가 뒤에 나오는가? 율법이 계속 추가되면 범죄의 깊이가 점점 더 폭이 넓어져요. 범죄의 폭이 넓어지고 세밀화되는 만큼 병행해서 그 죄들을 처리하는 방식, 제사도 그만큼 다양해지고 늘어나는 거예요.

처음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드린 것이 번제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 바치는 것도 번제였어요. 그냥 다 태우는 거예요. 번제가 원형인데 그 원형에서 더 세밀하게 들어가게 되면 화목제도 나오고, 속건제도 나오고, 속죄제도 나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일 제사의 모든 면면을 다 보여주는 경우가 다섯 가지 제사 중에서 속죄제가 돼요.

속죄제를 통해서 제물과 죄, 제사의 관계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이 딱 하나의 방법이 아니고 누가 드리냐에 따라서 네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첫째는 대제사장이나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의 속죄제가 달라요. 그 다음 온 회중을 위해서 속죄할 때 그것은 제사장의 제사와 또 달라요. 세 번째가 족장들, 지도자급이 범죄했을 때 그 제사는 또 달라요. 그리고 평민이 개인적으로 제사할 때 또 달라요.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 그리고 전체 인민들이 범죄했을 때, 그리고 족장들, 곧 지도자급이 범죄했을 때와 평민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 네 가지가 다 틀리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틀리게 만들었는가? 다르게 제사를 하게 한 그 취지를 설명하려면 이것 한 가지만 생각하면 돼요. 성소의 뜰에 제단이 있어요. 지붕 없는 한데에 나와 있는 것은 제단이에요.

그리고 천막처럼 생긴 것을 가지고 성막이라 합니다. 지붕이 있는 성막, 그리고 제단자체를 하나님께서 구분지어서 네 가지의 제사를 달리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하느냐? 제사장과 전체 회중의 범죄했을 때는 제사장이 이 죄를 가지고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성막까지 갔다가 제단에 와요. 성막까지 갔다가. 성막이라 하는 것은 가로가 14미터쯤이고 세로가 4.7 미터 그리고 높이가 7.7미터 정도 돼요.

그 성막이 보고 싶은 사람은 우리교회 가족 나눔터에 보면 이스라엘의 성막모형이 동영상으로, 우리말 통역으로 잘 나와 있습니다. 속죄제에서 첫 번째로 제사장이 범죄를 하게 되면, 제사장이 수송아지를 잡아요. 수송아지를 잡는 것은 제사장과 이스라엘 온 회중이 범죄했을 때의 그 급이에요. 그 클래스에서는 수송아지를 잡아요.

그리고 그보다 단계가 낮은 족장에서는 수송아지를 잡는 것이 아니고 수염소를 잡아요. 그리고 평민에 대해서는 얌염소가 암양을 잡아요. 제사장과 전체 회중과 족장의 제물에서는 수컷이 들어가는데 평민에서는 암염소나 암양이 들어가는 거예요.(레 4:3,22,27,32)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는 수송아지를 잡는데 머리에 안수를 해버립니다. 안수를 해버리면 죄가 저쪽으로 전가가 되는데 그 원리는 이스라엘이 처음 애굽에서 나올 때 유월절의 원리와 동일해요. 죄가 제물로 전가가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유월절식으로 설명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 날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맏이를 위해서 1년 된 수양을 잡아요. 1월 10일 날부터 나흘 동안 뒀다가 1월 14일 밤에 잡는데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맏이의 자리를 빈공간으로 남기는 거예요. 빈공간으로 남겨둔다는 이 말은 뭐냐?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대신 잡았기 때문에 우리의 맏이는 살았다는 생각으로 되돌아오지 않게 만드는 거예요.

인간에서부터 해서 인간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는 하나님의 구원에는 없습니다. 십자가 이용해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이런 스토리는 하늘나라 천국에는 용납되지 않는 거예요. 이런 구원은 성경에 아예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은 신천지나 가라고 하세요. 자기가 용서받아서 구원받는 것.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죽여 버립니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이스라엘의 죽음은 그 죽은 자리를 빈자리로 만들고, 그 빈자리를 어린양이 대신 채우는 것으로 어린양의 희생의 원리에 준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천국백성이 되는 거예요.

‘내가 천당 가고 싶다. 그런데 죄가 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죄를 씻고 천당 가지?’ 벌써 이런 아이디어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와 위배돼요. 그런 것은 없어요. “하나님,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래?”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옴으로서 우리는 빈자리를 제공하는 거예요. 우리가, 내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내가 없는 자리를 그릇으로 주님 앞에 제공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빈그릇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어린양의 의가 담기게 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여주는 껍질로서 같이 천국의 영원한 백성이 되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모로 가도 구원만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데 구원받겠다는 그 의지, 그 욕구 자체가 죄가 된다 그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릴 때 제사의 주인공이 따로 있어요. 제사의 그 주인공은 예수님이지 우리가 제사의 주인공이 아니에요.

이야기 다시 하겠습니다. 내가 만약에 구원받겠다고 예수님 십자가를 이용해버리면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말미암아 도로 그 결과가 나에게로 되돌아와 버려요. 그러면 천국은 나의 세계지 주님의 세계가 아닙니다. 나의 노선에서 도중에 이탈하는 계기가 있어야 돼요. 성령이 오게 되면 그전까지는 내 이익을 챙기겠다는 심보로 하다가 성령이 와버리면 ‘아, 나는 주님의 도구에 불과하지 내가 따로 챙길 것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마태, 마가에서는 주인행세 하다가 종이 되는 거예요. 내가 스스로 주인이고 절대자, 신처럼 살다가 누구의 종이 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로마서 6장에서 의의 종, 이렇게 종이 되는 거예요. 의의 종이 되다 보니까 의의 종이 된 상태에서 다시 옛날 내 모습을 보니까 내가 결코 주인이 아니라 죄의 종, 악마의 종으로 살아온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지 내가 구원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이 이야기만 해도 성령 받지도 않았으면서 성령 받은 체 하는 사람은 들통 다 납니다. 성령 부르짖고, 성경 만 독하고, 성경연구, 성경공부, 신학박사 되고, 다 해도 뭔가 나로부터 해서 은근히 나를 위해 뭔가 노리는 것, ‘그게 나에게 이익이잖아.’라는 것을 노린다면 그것은 결코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성령 받은 사람은 두 가지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어야 돼요. 나의 육신이 나밖에 모른다는 그것과, 주께서는 그것을 부정하는 그 내용까지 둘 다를 알고 있어야 돼요. 그게 바로 성도입니다. 따라서 그 원리에 준해서 하나님의 속죄제가 잘 보여주고 있어요.

제사장으로 하여금 제물에 안수를 하게 됩니다. 안수를 한다는 말은 죄가 이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이제는 누가 처리하느냐? 넘어간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인간의 죄를 받은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이 갖고 있는 죄를 제물에 전가, 이전했으니까 그 이전된 죄를 하나님이 받으시는데 하나님이 그걸 받고 뭐 하느냐 하면, 그 죄를 받으심으로서 하나님께서 그 죄를 타고 내려오는 그 과정을 통해서 죄가 뭐로 바뀌느냐? 하나님의 의로 바뀌어요. 죄가 있어야 하나님의 의가 발생된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올린 그 죄를 하나님께서 의로 전환시키는 재료로서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 과정을 누가 밟아오느냐? 하나님의 독생자 되시는 분이 그 인간의 죄를 밟고 이 땅에까지 오신 거예요. 주님께서 이 땅에까지 내려왔다 올라가는 그 과정을 통해서 어느새 죄가 의로 바뀌는 겁니다. 왜? 율법을 이루었기 때문에. 율법을 이루었다는 말은, 인간이 율법을 이루었다는 말이 아니고 인간이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대행, 대신했다는 겁니다. 대신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의 만족이고 영광이 되는 거예요.

“아, 피조물이 못하는 것을 내 아들 예수님이 대신했구나.” 그게 바로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것, 오직 그것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대신했다는 그 사실. 그래서 천국은 예수님 아들 중심의 보좌에서 생명나무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떻게 하느냐? 자기가 알아서 착한 일 하려고 해요.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선한 것이 50이고 나쁜 것이 40이라면 50-40, 그러면 10이 남으니까 그것가지고 가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아담이 생명나무를 못 따먹었지요. 아담이 못 따먹었으면 아담의 후손 아무도 생명나무를 못 따먹었어요. 못 따먹고, 선악과 따먹은 그것가지고 살아가는 거예요. 생명나무쪽으로 가지를 못하고 생명나무 언저리에서 왔다가 가버리는 겁니다. 그게 종교잖아요. 열심히 노력하는데 생명은 아니고요.

‘내가 신을 믿는 것은 착한 일이다.’ 맨 날 이 주장을 한다고요. ‘내가 예수 믿는 것은 착한 일이다.’ 맨 날 자기 착한 일 찾기에 바빠요. 그게 얼마나 가증된 것이고 사기입니까? 대국민 사기지요. 대국민 사기는 허 경영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런 사기가 어디 있어요? 교회라는 것이요.

전가된 그 죄의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이 어디까지 가느냐? 회막까지, 성막까지 갑니다. 여기서 제사장과 온회중이 잘못된 것은 회막까지 가요. 그리고 나머지 족장과 평민의 죄는 회막까지 가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제단에서, 뜰의 제단에서 다 처리해버리고 말아요. 그런 차이가 있어요. 그걸 통해서 뭘 보여주느냐? 제사장이 죄인을 대역하지 않는 한 인간의 죄는 씻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제사장이 대역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약의 베드로전서 2장에서 오늘날 성도를 가지고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하지요. 제사장나라에요.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이스라엘을 제사장나라 만인에 대한 제사장나라라고 보여주는 겁니다. 제사장이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제사장이 제물을 다 태우기 전에 그 제물에서 피를 내요. 피가 중요합니다. 그 피를 하나님이 계시는 회막에 일곱 번을 뿌립니다.

뿌리고 제사장과 전체 회중이 잘못했을 때는 회막, 텐트까지 가서 피를 텐트 앞에 뿌리고 들어가서 거기에 향을 피우는 향단 뿔에 그 피를 발라요.(레 4:16-18) 이것은 제사장과 온 회중의 죄에 대해서만 그래요. 족장과 평민의 죄에 대해서는 향단 뿔에 바르지 않습니다. 어디서 처리하는가? 피를 뿌려도 뜰에서 끝내요. 피를 제단에 뿌리고 바르는 것도 제단에서 나온 네 뿔에 피를 바르고 나머지는 제단 밑에다 다 쏟아버립니다.(레 4:30)

왜 그렇게 하느냐? 높은 등급에서 제사장이 모든 것을 다 대역 처리했기 때문에. 제사장이 죄의 이동을 제대로 하게 되면 그 제사장이 갖고 있던 그 죄 때문에 흘린 피가 나중에 의로운 피가 되는 겁니다. 생명의 피가 되지요. 피를 쏟음으로서 하나님의 제사를 기쁘게 흠향하시고 죄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input, output, 들어올 때는 죄가 들어왔다가 제사장의 활동여하에 따라서 나갈 때는 의로 나가는 겁니다. 죄로 들어가서 의로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주께서 반드시 죄인을 부르러 오신 거예요. 죄가 유발되어야 의가 돼요. 죄가 없으면 의가 없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 넘치는 거거든요. 따라서 모든 성경말씀, 이스라엘이 이렇게 멸망한 이것은 뭐냐? 우리 자신이 얼마만큼 죄의 종으로 살아왔는가를 전부 보여주는 거지요.

제가 여기서 제물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이 제사 제물에 있어서 제사장의 범죄를 위한 제물도 수송아지고 온 회중이 잘못했을 때도 수송아지에요. 족장이 잘못했을 때는 수염소고 평민들이 잘못했을 때는 암염소나 암양, 이렇게 암컷이에요.

제물에 있어서 수컷이나 암컷을 바치게 되는데 처음의 제사에 있어서는 수컷이 아니고 암컷이에요. 창세기 15장 9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여기에 등급이 나와 있습니다. 소의 등급, 그리고 염소의 등급, 수양의 등급, 이렇게 되어 있는데 아브라함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을 때입니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언약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언약을 맺을 때에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높은 클래스, 높은 등급에서는 수컷이 아니고 암컷이 들어가요. 소도 암컷, 염소도 암컷, 그러나 그 아랫단계의 양에 대해서는 수컷이 들어가고 그 다음에 산비둘기, 집비둘기,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레위기에서는 왜 제사장과 온 회중을 위한 제물에 수컷이 들어가고 아브라함의 번제에서는 왜 암컷과 수컷을 이런 방식으로 등급지어서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언약자체가 사래가 사라로 바뀌면서 거기서 비로소 아브라함의 자손이 나와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같이 자손이 많겠다고 했을 때 그 첫 번째 자손은 잉태치 못한다는 요건에 충족돼야 돼요.

이 땅의 범죄한 아담의 혈통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천국백성은 인간의 혈통 말고 인간의 혈통에 없는 다른 하늘나라 혈통이거든요. 인간의 혈통은 전부 다 남자 이름이 돼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는 거예요. 남자 이름으로 연결되게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사야의 경우도 보게 되면 잉태치 못한 자, 여자 쪽에서 잉태치 못한 여자를 뭐로 보느냐? 남편 없이 여자만 있었는데 태어난 자식으로 보는 거예요. 이사야 7장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 육적인 아담의 족속에 해당되지 않지만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겁니다.

그것을 창세기 3장 15절에서 남자의 후손이라 하지 않고 여자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싸움에서 남자의 후손은 아니에요.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이기는 겁니다. 잉태치 못한자의 자식이 잉태하는 자식보다 많다. 갈라디아서 4장 27절에서도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고 되어 있어요. 성령 받은 자가 그런 거예요.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도 아직 결혼도 동침도 안했어요. 잉태할 수가 없어요. 잉태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기존의 아담의 혈통에 속하지 않은 인물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를 통해서 만들어 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높은 등급에다 암컷을 넣어버립니다. 암소, 암염소, 그러고 난 뒤에 수양으로 내려갑니다. 아브라함 때에는.

이것이 모세 때에 와서는 이제 높은 등급으로 수컷이 그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는 식이 됩니다. 제단이라 하는 것은 이처럼 인간이 자기 욕망이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신에게 비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제단에 있는 없음의 의미가 소위 “나 여기 있습니다. 복 주세요.”라는 이 있음의 의미를 유지하려는 우리 인간을, 아담에 속한 이 혈육을 하나님께서 공격하고 그 공격에 성공한 자리가 우리 안의 자리가 되고, 그것이 바로 주의 이름이 아담의 이름을 이겼던 그 증상, 그 증거를 오늘날 성령을 받은 성도가 보여주게 됩니다.

“저의 공로가 아니고,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공로로 저는 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라는 고백, 될 수가 없는데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고백, 이것이 바로 죽고 난 뒤에 다시 산다는 십자가 안에 들어가서, 빈자리에 들어가는 제물 말씀 드렸지요, 어린양의 원리로서 우리를 채울 때 이것이 진정한 참된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안에 제단이 들어 있는 합격자가 되는 거지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제단을 제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참된 제사, 희생의 의미를 모르고 그 제단 이용해서 자기 야욕을 채우려는 거짓된 죄악들을 오늘도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혀 없어도 주께서 원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33강-호 8장 11-14절(제단)200318-이 근호 목사.hwp (64.0K), Down:7
게시물8,416건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읽음
공지   [책]2020 신간 '말씀의 움직임'출간&구입안내 최지영 19-12-09 361
공지   대장간 출판사에서 이근호목사님 저서를 다량 구입했… 관리자 18-08-25 1611
공지   이스라엘 유적 답사 동영상 (1) 이근호 18-03-10 1888
공지   십자가마을(도서출판)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김종인 17-05-29 2527
공지   실시간 생방송 새주소 입니다. 관리자 17-02-19 8919
8933   안양20200514b슥1:8(재앙 속에서)-이 근호 목사 공은주 20-05-26 15
8932   안양20200514a슥1:8(재앙 속에서)-이 근호 목사 공은주 20-05-26 21
8931   32강-욥기 9장 25~31절(단선과 복선)20200524 이근호 … 송민선 20-05-24 35
8930   14강-빌 2장 12-14절(구원의 원천)200524-이 근호 목… 오용익 20-05-24 39
8929   주일학교 설교 / 작은 겨자씨 / 200524 정인순 20-05-24 30
8928   대전강의 안내 김성은 20-05-22 39
8927   연습 인생 송민선 20-05-21 81
8926   42강-호 11장 1-4절(아들 만들기)200520-이 근호 목사 오용익 20-05-21 56
8925   313강-YouTube강의(함께 있는 악마 마태복음 4:1)2020… 이하림 20-05-20 40
8924   312강-YouTube강의(자기를 위한 노고 사무엘상 15:25)… 이하림 20-05-20 39
8923   광주 강의 안내 김을수 20-05-18 31
8922   강남-누가복음 2장 9절 (죄의 증상) 200505b-이근호 … 홍민희 20-05-18 23
8921   강남-누가복음 2장 9절 (죄의 증상) 200505a-이근호 … 홍민희 20-05-18 40
8920   13강-빌 2장 9-11절(주의 이름)200517-이 근호 목사 오용익 20-05-17 56
8919   31강-욥기 9장 22~25절(연습 인생)20200517 이근호 목… 송민선 20-05-17 39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