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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3 13:12:07 조회 : 22         
안양20200910b슥3장2절(성전과 제사장)-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안양20200910b슥3장2절(성전과 제사장)-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서 여기에 3장에 보면 사단 나오는데, 사단이 고소를 하고 여호수아가 여기 서있을 때,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이제 더는 다른 약속이 없어요. 끝났어요. 약속이 마지막 최종에 도달했습니다. 마지막 최종 약속은 여호와께서 마지막으로 일방적으로 한쪽을 몰아버렸습니다. 일방적으로 편을 해버릴 때 끝났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는 느낌은 뭐냐 하면, 최종 약속을 받을 때 구원받은 겁니다. 뭐냐 하면 ‘편애’에요. 편애. 야, 이 제목 또 바뀌어야 한다.

부당한 사랑을 받을 때 더는 남아있는 약속은 없어요. 왜냐하면 다 사태를 알아요. 이 옷이 더러운 것을 알아요. 악마의 말이 하나도 틀린 말 없는 거 알아요. 아는데, 최종적으로 뭐냐 하면 사탄보고 내가 최종적으로 옷을 벗기고 다른 옷을 입혀라. 저는 이것을 예수님의 티셔츠라 합니다. 티셔츠. 예수님의 옷을 입는 거예요. 갈라디아서3장에 나옵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남자, 여자 관계없이 전부다 뭘 입었다? 옷을 입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제 오늘 교재 하는 걸 봐야 될 채비가 왔는데, 제사장이 훌륭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옷값 하는 사람이에요. 옷값. 옷값을 하기 위해서 옷이 주가 돼요. 옷값이 옷값 하라고 몸통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 옷을 가지고 제사장 옷을 언약을 모세언약이라 하거든요. 출애굽기에 보면 제사장 복장이 아주 막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 말은 뭐냐 누가 이 옷에 합당한 몸을 갖추느냐 하나님께서는 그걸 계획 잡고 니가 와서 한 번 입어봐라. 아니다. 너 입어봐라. 너도 아니야. 죽어버리지요. 또 너도 아니야. 마지막 히브리서에 보면 마지막에 하나님 자신이 그 옷을 입어버리면 이게 최종 마감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옷을 입기 전에 여기 스가랴 말씀처럼 그냥 하나님께서 옷을 입은 게 아니고 더러운 옷이라는 것을 입게 더러운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쭈욱 자기보다 먼저 밑에 깔아놨어요. 그러니 주님의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계속 나오는 겁니다. 여호수아가 주님의 티셔츠를 입었다고 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티셔츠.

노래 나오기 전에 먼저 다른 가수가 노래 부르는 거 있지요. 커버송이라 하는가 이렇게 정식 가수 말고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이고 인기 있겠는가 알기 위해서 미리 인기 없는 가수보고 한 번 불러보라고 하는 게 있어요. 견본으로 불러보는 거예요. 견본. 바로 견본이거든요. 이 구약에 있는 제사장이 전부 다 견본인데, 견본의 끝은 뭐냐 예수 그리스도와 닿게 되어있어요.

자, 교재 한번 봅시다. 족보인데. 레위지파가 나와요. 아까부터 강의 계속 강조하는데. 레위지파 하는 일은 뭐냐 하면 농사짓는 일이 아니에요. 고기 잡는 게 아닙니다. 고기 잡을 일은 없지만. 그 사람들은 뭐하느냐 옆에 네모 난 거. 레위 해놓고. 네모난 거. 성막이에요. 이게 뭐냐 하면 성막이에요. 성막, 성소. 성막, 성소는 거기에서 지성소에서는 누굴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아~~ 이건 뭐 정말 창조주가 피조물과 만나는 장소에요. 창조주가. 인간이란 피조물. 천사는 하나님과 늘 만나지만.

인간이란 피조물은 그것도 지상에서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만나는 것을 다른 민족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 내에 그것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자부심은 자존심이라 하는 것은 대단한 겁니다. 너희들이 하나님 만나봤어? 이리 나온 거예요. 너희는 기껏 인간과 인간이 만났지? 징기스칸? 단군? 누구 만났어요? 하나님하고 안 만났지요. 하나님 만난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 위에 모세를 불러 세워서 성막에 대한 모든 설계도를 그의 머리속에 기억해 했습니다. 그러면 모세와 하나님의 만남이 성사가 된 거죠. 요 성사되는 조건이 뭐냐 율법대로 언약대로 될 경우에만 모세와 하나님이 만나듯이 그렇게 만나주는 겁니다. 만나주는 거예요.

그러나 아직까지 율법시대기 때문에 예수님의 티셔츠는 입었지만 예수님의 몸까지는 아직 안됐어요. 신약에 와서 되니까. 그 율법이란 몸을 걸치고 내려오게 되면 벌써 여기서 예수님의 티셔츠는 벌써 더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더러워진 게 아니고 모세가 아주 티셔츠를 찢어버렸지요. 산 밑에서 우상 숭배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에서 지금 그냥 하면 너희는 다 죽어. 하고 죽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계명부터 옷부터 벗은 셈이 되지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은 만나면 심판이기 때문에 그걸 사전에 예방한 거예요. 모세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만났듯이 모든 모세 따라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나왔던 그 백성들도 그렇게 만나기를 원할 때에 하나님께서 특정 지정 장소를 만들었어요. 크기가 45m, 22.5m 동쪽, 서쪽, 북쪽, 남쪽, 요런 크기에요. 천막 쳐놓고 방을 두 개 쪼갭니다. 야전 사령부들이 주로 이래요. 안에는 침실, 대장 침실이 있고, 쪼개가지고 여기에 지성소, 우리 하나님 계시는 침실이 있고, 여기는 그냥 들어가면 안 되죠. 거룩한 분이라. 아련하기 위해서 여기서 코로나 방지하기 위해서 손을 소독하는 것처럼. 정화 작업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고, 여기는 제단이 있어가지고 정화할 때 나올 때는 그냥 우리는 소독제로 하지만, 여기서는 뭐로 하느냐 하면 피로해야 돼요. 피.

그러니까 제물을 잡아버리면 제물은 죽었지요. 죽고 난 뒤에 죽었다는 표시가 피를 흘리잖아요. 피와 기름이잖아요. 피와 기름을 해가지고 “저, 죽은 자 맞습니다. 죽었어요.” 하고 죽음을 몸에다가 바르고 난 뒤에 죽었으니까 이미 한 번 죽었으니까 또 죽을 일은 없으니까 죽음을 바르고 제사장들이 여기까지 들어가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 면접하는 순서에요. 절차에요. 죽지 아니하면 못 만나는 겁니다.

죽지 아니하면 못 만나요. 얼마나 하나님이 거룩한지 몰라요. 그래서 살아서 눈뜨고 하나님 만난다는 것은 이건 오만입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이 모든 작업이 하나님의 마지막 더는 주지 않는 마지막 약속, 최종 마감 약속의 취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거예요. 취지를.

더러운 것들은 오라. 다만 내 백성이잖아. 더럽던 어떻든 간에 내 백성이잖아. 내 백성이라면 더러워도 할 수 없어요. 내가 알 수 있으니까. 더러운 옷을 입은 인간들아 오라. 이 제단을 통해서, 이 피를 통해서 더러운 죄가 뭐로 바뀌지요? 하나님의 의로 바뀌는 거예요. 의로.

여러분, 이 두 가지를 구분하세요. 죄에서 무죄가 되는 겁니까? 죄에서 적극적으로 의가 되는 겁니까? 어느 쪽입니까? 죄가 무죄가 되는 것은 인간들의 생각에 한계에요. 죄 지었지만 없애주세요. 요게 인간들의 생각이에요. 그러나 인간들의 생각은 여기까지는 나갔는데 모든 종교가 이건 안돼요. 죄가 뭐가 된다?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죄가 의가 된다는 이건 너무 황당한 거예요. 아니 내가 한 것이 의가 된다는 겁니까? 그래.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선지자의 요건 중의 하나가, 선지자의 요건은 계시 줄 때만 입을 열어라. 평소에 입 다물라. 그겁니다. 그냥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하지 말고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라 말이지요. 왜? 너무 엄청난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죄인데 하나님 믿으면 죄 없어집니다. 이 정도 같으면 말을 해도 돼요. 그런데 죄가 의가 될 때에는 이건 인간의 모든 생각을 초과해버리지요. 성령 안 받으면 감당 못합니다. 너무 큰 것이라 감당 못해요. 너무 큰 것.

그 말썽꾸러기 아들이 돈 만원만. 친구와 술 먹는데 만원만 필요해. 이너무 자식이! 해가지고 대번에 방에 가가지고 몽둥이 들고 나올 줄 알았지. 방에 들어 가가지고 오만원짜리 다발을 이만큼 해가지고 오만원짜리 다발을 끄집어내가지고 귀싸대기 가지고 가! 가지고 가! 한 번 때릴 때마다 이백만원짜리. 가지고 가. 다가지고 가! 2억5천. 자기는 돈 만원 달라고 했는데 받은 것은 2억5천 받았어. 황당해도 너무 황당한 거예요. 인간의 윤리적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돼요. 너무 커서.

어떻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칩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 하나님의 의가 왕 노릇하고 있는 거예요. 의가 의되기 위해서 죄 짓게 했다 이 논리거든요. 결국은. 그것도 내가 의도적으로. 안 짓고자 도망쳐도 죄 짓게 만들었다 이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니 일 없고 주의 일밖에 없지요. 이게 너무나 엄청난 거예요.

그래서 이러한 죄가 의되는 이 공식에 의해서는 뭐가 없어야 되느냐 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희망과 기대는 어줍짢게 갖고 있으면 안돼요. 이걸 없애야 돼요. 만약에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되면 이게 바로 죄가 되는 겁니다. 희망과 기대를 갖는다는 것은 내 생각의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을 이해하겠다는 그 생각밖에 안되거든요. 아직까지 내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밖에 안돼요. 희망을 갖는 게 범죄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 말이 맞아요. 모든 범죄는 희망 때문에 생겼어요. 이 세상의 모든 범죄가 희망 때문에 기대 때문에 있는 거예요.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먹는 거, 입는 것으로 족합니다. 이러면 범죄 안 생겨요. 코로나 재난기금 그걸로 감사합니다. 이리 되는 거예요. 자영업자 한 달 가게세가 한 이백만원 나가는데 나라에서 자영업자한테 여러분들의 짐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십 만원 드리겠습니다. 실제에요. 실제. 고맙습니다. 이리 되어야 돼요. 적어도 1,990,000원 이리 되면 안돼요. 고맙습니다. 이리 되어야 돼요.

바로 이것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택배가 왔는데 택배를 보니까 아무것도 안 들었어요. 막상 드니까 너무 무거워요. 아무것도 안 들었는데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무거워요. 이게 최종 약속이 그래요. 이게 예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너무 무겁게 우리가 내가 감당하기에 무거운 거예요. 그러면 감당 안하고 눌리면 돼요. 끼이면 돼요. 거기에 끼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성도의 삶은 희망이나 기대 이것이 좌절당하면 되는 거예요. 왜? 뭘 해도 의가 되니까.

내 평가가 아닙니다. 내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에 눌려 살면 되는 거예요. 수요일날 제가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거지 나사로. 거지 나사로가 평생을 자기가 살았는데 결국은 마감이 뭐로 마감되었습니까? 거지였지요. 끝부분에 어떤 귀인이 와서 도와주고 그런 거 없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께서는 거지 나사로를 실망하지 않고 거지로 살게 하셨습니다. 어떤 기회나 일말의 희망을 싸그리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끝까지 희망 없게 만들어버려요. 없어야 천국다워요. 없어야 신앙인답다니까요. 내 희망, 내 뜻 이런 게 있으면 범죄에요. 아예 나를 철저히 밟아버려야 그게 하나님의 하나님다움이에요.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지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끝까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마지막 십자가까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중간에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끝까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내 뜻이 없는 거예요.

저는 이것을 달리 표현하겠습니다. 만두 없는 만두집. 어제 골목식당에 나왔어요. 간판이 만두 없는 만두집이에요. 내가 살다 살다 이렇게 난해한 간판 처음 봤어요. 만두가 없는데 어떻게 만두집이 될 수 있느냐. 이게 복음이냐. 고객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돼요. 뭔가 사연이 있을 거 같아요. 그러나 그 사연은 만두집 빼고는 그 사연은 백종원도 몰라요. 왜 만두가 없는데 만두집이냐.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까 정말 별게 아니었어요. 간판을 안 바꿔서 그래요. 옛날에는 만두집을 했는데 이제는 만두를 안 하기 때문에 간판 바꾸려고 하니까 돈 드니까 만두집이라고 오시는데 만두는 없습니다. 백반 집으로 바꿨어요. 그걸 보면서 주님의 하시는 일을 왜 우리는 감당을 못하느냐.

우리는 주님의 티셔츠를 입었지만, 우리의 행함 때문에 연탄재 뿌려놓은 것처럼 시커멌어요. 스스로 자기 의로 한 번 살아보려고 천국 한 번 따내보려고 자기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 천국 보내줘 보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어요. 기도, 전도, 헌금, 예배참석, 온갖 이웃사랑, 성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다했어요. 하지만, 그들이 누구냐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유다였습니다. 그들은 바로 깡그리 그들은 약속의 땅을 비워줘야 했습니다.

자, 여기에 레위지파 나오는데. 여러분들이 실력이 있으니까 어렵게 나가겠습니다. 레위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올 것 같으면 이렇게 굳이 4명이 딸 하나에, 아들 3명이 필요가 없어요. 왜 간편하게 하나에서 하나, 하나에서 하나, 하나에서 하나, 이리 나오면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레위 아들 몇 명입니까? 3명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뭐냐 하면 숫자가 세 명이니까 3이 되겠지요. 주님께서는 3을 뭐로 보느냐 하면 0으로 봐요. 아무도 레위지파의 자식은 없다, 가 되는 겁니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가 돼요. 그런데 무슨 아무도 없기는. 고 핫이 혈통을 이어받았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는데. 요게 3에서 하나가 레위지파에 되려면 여기 언약의 개입이 있어야 돼요. 언약의 개입이라 하는 것은 아까 여호와 이야기했지요. 언약은 누가 관리하고 누가 개입시킵니까? 하나님이 개입하는 거예요.

모세가 허수아비지요. 모세가 지팡이에요. 진짜는 모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고, 바깥은 모세가 되지요. 그렇지요? 그래야 모세는 시키는 대로 해서 니 혼자 가는 게 아니라 내가 함께 간다 했으니까. 함께 가면서 일을 하듯이. 레위지파도 마찬가지에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고. 이삭도, 야곱도 마찬가지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개입시켜 버리면 3명다 이게 제로가 됩니다. 그래서 제로 = 제로 맞아요.

그런데 3이라는 숫자를 0으로 만들 때, 언약이 와서 개입을 해버려요. 그러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레위지파의 언약을 이어받을 위인은 아무도 없음이 당연해야 되고 그게 밝혀져야 됩니다. 밝혀지고 그리고 하나님이 아무나 선택해 버려요. 선택된 자가 0에서 나온 출현된 1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인간이 성도되는 방법이에요.

아무도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자격이 없음을 분명히 할 때 그래서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개입과 성령의 개입으로 택하심으로 일방적으로 찍은 거예요. 착해서 성도되고 없어요. 사전에 예비단계 있어서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찍어버려요. 사울에게 그냥 예수님이 찾아온 것처럼. 그냥 찍어버려요. 찍어버리면 찍어버린 이 사람은 없는데서 됐잖아요. 레위인의 후손이 됐지요. 그러면 이 사람이 뭐라고 고백하겠습니까? 나는 될 만해서 됐다. 아니면 하나님의 개입을 온 몸으로 품어지겠어요? 하나님의 개입으로 온몸으로 품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다시 스가랴3장 봅시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 앞에 섰는데, 거룩하지 않습니다. 옷이 더럽지요. 더럽다는 것은 사탄이 와서 분명히 증거 해줍니다. 했을 때에 천사 앞에 섰는지라. 4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자에게 명하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지요. 그럼 제사장 옷을 벗어버리면 이건 제사장 아니에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제사장은 완전히 옷 때문에 제사장이에요. 옷 때문에. 몸에 걸친 옷 때문에 된 겁니다.

그 옷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가서 다 배운 대로 그대로 직조해가지고 짠 거예요. 속옷부터 해서 겉옷까지 전부다 장치가 있고 여기에 여러 가지 또 훈장처럼 달린 게 많아요. 흉배와 가슴팍에 단 것도 많고요, 열 두 아들의 보석을 또 이름 새겨가지고 앞에 달고 아주 복잡해요. 그 복잡한데 그 옷을 벗겨버리면 결국 이것은 제사장이 박탈된 겁니다.

그런데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섰는지라, 명하여 옷을 벗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다음에 뭡니까? 죄를 제하여 버렸으니 이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옷을 벗기고 다시 옷을 입히는 그 절차, 그 절차가 그 현장에 있었던 누가 아느냐, 당사자인 여호수아가 그걸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알았겠지요.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그게 바로 최종적인 제사장의 위상입니다. 그걸 제가 지금 앞당겨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기에 고 핫 중에서도 아므람이 나오지요. 레위 다음에 고 핫입니다. 고 핫 다음에 아므람이에요. 아므람 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여기에 모세와 아론 나오지요. 드디어 아론 딱 등장하니까, 아~ 이 아론이 대제사장의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최초의 인물이 아론이 되는 겁니다. 자, 아론다음에 아들이 몇 명입니까? 4명이지요. 4명 중에서 나답과 아비후는 지워버리면 돼요. 왜? 술먹고 상피우다 죽어버렸어요. 그러니까 2명 죽고 난 뒤에 누구한테 가느냐 하면 세 번째 아들 엘르아살에게 가는 겁니다. 엘르아살 가고 그 다음에 누구냐 하면 바로 비느하스 나오지요. 비느하스. 여기서 비느하스에 대해서는 제가 언급을 해야 되겠어요.

민수기25장 11절 보세요.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그 다음에 누굽니까?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을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했지요. 왜냐하면 두 사람을 죽였으니까.

제가 아까 강의한 거 다시 한 번 여러분이 잊어버렸으니까 회상하겠습니다. 자, 요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정확해요. 아담의 혈통이 있잖아요. 아담의 혈통. 그다음에 여기에 이름도 참 거룩한 신의 혈통이에요. 우리가. 혈통에 갈 때, 어떻게 들어간다 했습니까? 여기서 망하던지 죽던지 이게 살점이 푹 파이듯이 완전히 내 자리가 망하던지 죽던지 같은 말입니다만. 저주받던지 심판받던지 같은 말이에요. 파여야 신의 혈통으로 들어간다 했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마련한 것이 요 파인 이 부분을 거룩으로 의로 채워주기 때문에. 요 파인 부분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죄로 말미암아 마땅히 저주받을 요 자리가 저주 자리가 뭐로 바뀝니까? 의로 바뀌어서 의로 채워주는 거예요.

그러하기 때문에 비느하스가 하는 일이 뭐냐,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스라엘 사람이 제사장이면서 이스라엘을 죽여 버렸어요. 그런데 죽인 것에 대해서 여기 민수기25장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비느하스가 한 행동을 칭찬했어요? 아니면 책망했습니까? 아주 칭찬한 거예요.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요것만 생각하시고 그 다음에 출애굽기32장을 봅시다. 귀찮더라도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 됩니다.

출애굽기32장 26절을 보게 되면,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여기서 레위지파가 형제들을 삼천 명 가량 죽인 이유가 뭡니까? 산 밑에서 모세가 부재한 상태에서 우상 숭배했기 때문에 죽인 거죠. 그래서 모세가 죽일 때에 다 죽인 게 아니고 여기서 너희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라, 인정할래, 안할래, 해서 인정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사람 삼천 명을 죽였잖아요.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원래 하나님이 보시기에 죽은 자입니까? 산자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죽은 자에요. 왜냐, 언약이 없으면 다 죽은 자에요.

요즘 말로 하면 예수님의 피가 안 나오면 죽은 자에요. 바닥에 어떤 행동이나 말에 그리스도의 의가 안 나오고 자신의 의가 깔려있으면 하나님의 의가 없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 사망한 자에요. 이미 죽은 자라니까요. 피가 생명이거든요. 생명이 받쳐줄 때만 산자지, 피가 없으면 죽은 자라니까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삼천 명 안 죽어도 원래부터 이 사람들은 죽은 자에요. 다만 레위지파가 그 점을 알고 그 관점을 알고 어떻게 그 형제를 죽입니까? 살았다 하면 어떻게 죽이겠어요? 죽은 놈 죽인다는 마음으로 죽인 거예요. 이미 죽은 놈. 다만 무엇을 살리기 위해서? 율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인간은 죽이고 그 과정, 절차 가운데서 율법은 살아있고. 말씀만 살아있지 너희들은 죽은 자야. 이 말은 말씀이 임해야 너희는 죽은 자가 산자가 되는 그 원리를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서 주셨어. 그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아이구, 삼천 명 심하다. 어떻게 자기 친구를 죽이냐. 형제를 죽이냐” 이렇게 할 필요 없어요. 바로 이 정신, 언약이 살아있어야 되고, 말씀이 인간보다 더 중요함이 살아있는 것을 합류한 사람이 누구라고요? 비느하스에요. 그러니까 이 대제사장 계열은 이건 뭐냐 하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다 죽었어요. 여기에 이스라엘 나라를 이렇게 진을 원으로 그리겠습니다. 중간에 성전 있고, 성소 있고, 성막 있겠지요. 성전, 성소. 여기에 누가 관리하느냐 하면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이, 제사장은 레위지파에서 나왔으니까. 레위지파가 관리하고 있지요. 그럼 여기 농사 짓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죽은 사람들이지요. 죽은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제사를 온전히 드리면 제사의 효과가 여기에 농사 짓는 열 두 지파에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서 거기에 알곡이 나오고 생산물이 나오게 되는 것은 제사가 흠향하게 되면 생산물이 나오고, 제사를 제대로 못하면 생산이 안 되고, 여기에 가뭄이 들어요.

그러면 곡식 없어 죽어요. 이러나저러나 레위지파 없으면 죽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이에요. 레위지파 없으면. 그러니 죽은 이스라엘을 엔진 역할을 누가 한다? 강력한 엔진으로서 레위지파가 활동하고, 레위지파 우두머리는 누굽니까? 대제사장. 대제사장이 활동을 해줘야 비로소 이스라엘은 살아있는 나라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방나라가 돼요.

그래서 살아있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동행이 여전하다. 하나님과 함께 있음이 여전하다. 누구 때문에, 대제사장의 활동 때문에. 레위지파의 활동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니 이 레위지파가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지난주일 낮 설교에 레위지파 숫자 이만이천 이야기했지요. 레위지파 한 사람이 다른 사람 한 사람을 일대일로 대응해서 살린다. 대속해서 제사를 드리게 되면 제사 덕분에 산다는 겁니다.

그럼 오늘날 신약 시대에 보면 히브리서에 보면 이 대제사장이 누굽니까? 예수님 덕분에 사는 거예요. 이 관계가 의의 관계이고, 이게 바로 생명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은 자에요. 산 자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사람 죽였다. 지옥 갑니까? 천국 갑니까? 사람 죽였다는 것 때문에 천국 못가는 게 아니에요. 이 땅에 사람 죽이느냐, 안 죽이느냐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피가 안 나오면 죽은 자에요.

그 레위지파 삼천 명 죽일 때는 죄목이 뭐였습니까? 우상숭배였지요. 민수기에서는 뭐냐 하면 이방 신을 섬기면서 간음을 했기 때문에 죽은 거예요. 이방 신을 섬기던 간음을 했던 여기에서 우상을 섬기든 죄든 어떤 죄든 간에 그 죄 안하면 산다는 게 아니고 그런 거 아니하더라도 이미 죽은 자에요. 제사장 없으면. 그 막중한 제사장하면서 나답과 아비후가 술 먹고 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중국산 라이터 불을 했는지 불이 나와서 높은 사람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요. 그냥 나답과 아비후의 면상을 때려가지고 죽어버리고 말았어요. 두 제사장이. 어디 겁나서 일하겠습니까. 직장 정말 극한 직업이에요. 잘못하면 산채로 불에 태워죽는 직업이에요. 이 직업이.

그래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몸에다가 방울을 달아서 딸랑 딸랑 소리 들리면 아직까지는 안 죽었구나! 방울 달고 일했어요. 얼마나 무서운지 벌벌 떨 수밖에 없지요. 제가 지난 낮 설교에 했잖아요. 방안에 있는 것과 여론 안에 있는 것이 차이난다고요. 방안에 혼자 있으면 지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지요. 그러나 여론에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그러나 그 보다 더 무서운 게 뭐냐 하면 주 안이에요. 주 안인데 성령을 받아야 주 안에 있지. 성령 안 받으면 여론 안이 다에요. 교회 갈까요? 말까요? 지금 여론 보고 있는 거예요.

본인이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해라. 안 오면 또 목사님이 안 온다고 할까봐. 거봐. 그게 바로 여론의 안이다. 여론 안. 왜 기름부음이 니 안에 있으면 아무도 가르칠 필요가 없는데 니가 왜 발발 떨고 있느냐 말이죠.

그 다음에 비느하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리하고 그 다음에 아비수아, 북기, 웃시, 스라히야, 므라욧, 아마랴, 아히둡, 사독, 사독 이거 놓치면 안 됩니다. 사독이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에서 제사장 홀로 있을 경우에 홀로, 이것은 제사장나라에요. 제사장나라. 제사장나라에는 뭐가 필요 없느냐 하면, 왕이 필요 없습니다. 왜 제사장 위가 뭐냐, 왕이 계시기 때문에. 이 왕은 보이지 않는 왕.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에요.

그러면 다윗시대는 어떻게 되는가, 다윗시대는. 요 위에 있는 왕이 위에 계시지 않고 나란히 제사장과 이게 결합이 돼요. 제사장과 왕이 결합이 된다고요. 요게 무슨 약속이냐 하면, 이게 바로 다윗에게 준 약속, 다윗언약입니다. 다윗언약. 언약은 뭐냐, 왕이 제사장 되는 것. 또는 다른 말론 제사장이 왕 되는 것. 베드로전서에 보면 왕 같은 제사장. 제사장 같은 왕. 왕과 제사장이 결합이 되는 이것이 요 약속을 다윗언약에서 하는 겁니다. 다윗언약에서. 다윗언약에서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스케줄이에요.

자, 그러면 이 제사장 이것은 왕이 오려면 제사장으로 온전했다면 왕이 굳이 제사장하고 결합될 권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사장이 온전했다면. 안 되지요. 그런데 사무엘상보면 제사장 계열에 보면 엘리 제사장 나와요. 이게 개판이라. 그래서 아무 나라에 맥을 못 춰요. 블레셋하고 전쟁할 때에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있었지요.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사합니다. 말이 전사지 까불다가 죽었지요. 엘리제사장이 결국은 나중에 목이 뒤에 넘어가 죽어요. 비참하게 죽는다고요. 완전히 괴기영화처럼 죽었어요. 자기는 오래 살긴 살았지만, 비둔해서 죽었어요.

그러니 제사장 자체가 이렇게 이방나라에 힘을 못 쓰니까 백성들이 뭘 하느냐 하면 “아, 제사장 때려치우고 왕 달라” 고 했습니다. 왕 달라고 할 때에 백성들이 여호와의 왕보다도 이방나라처럼 눈에 제사장 같이 사람 모습으로 등장한 우리도 사람에서 뽑은 우리 중에서 뽑은 왕이 되기를 원했을 때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로 이게 뭐냐 하면 이방나라의 전형적인 표상이라고 본 거예요.

왕이 필요 없어야 되는데 왕을 달라는 것은 뭐가 필요 없다? 제사장 때려치우자 이 말입니다. 그럼 왕은 뭐냐, 왕의 특징은 영웅이거든요. 우리는 영웅을 원하지 우리 죄 때문에 대신 죽는 거 그러한 우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제사장은 필요치 않다. 우리가 어떻든 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힘으로 박살내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지금 형편에 어떤 형편에 관계없이 잘 먹고, 잘 살아라. 이렇게 해주는 그런 영웅을 우리는 원하고 싶다. 이리 되는 겁니다. 서서히 이스라엘이 죽을 이유를 자기 죄를 점차, 점차 한 꺼풀 두 꺼풀 발각되는 거예요.

아, 우리한테는 내 죄를 고발하고 죄를 대신 씻음으로서 자기가 늘 부인해야 될 그러한 상대자를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사탄이 원하지 않지요. 악마가 원하지 않듯이 내가 그걸 원하지 않아요. 나는 긍정적이 되고 칭찬받기를 원하고 조금만 해도 잘한다, 잘한다, 그 소리를 듣기를 원하지. 니는 쓰레기야. 니는 지금 코로나 걸려서 죽어도 괜찮아. 니는 마땅해. 이런 소리 듣기는 내가 왠지 싫어. 왠지 오늘은 싫어. 나는 나를 긍정하고 싶어. 내가 마지막 목표라는 것은 나니까.

제사장이 하는 것은 피를 내는 건데, 그 피와 연결이 안 돼. 연결이 끊어졌어요. 왕은 힘이거든요. 왕은 힘이고, 제사장은 피고. 피 대신 힘을 원하고 있습니다. 서서히 맛이 가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오래 진행되니까 맛이 간 거예요. 죄인 듣기 싫다 이 말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이 이스라엘 왕 사울 왕을 이방나라 왕처럼 주께서 변모시킵니다. 처음에는 겸손을 떨면서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왕이 됩니까, 이리 해놓고 막상 왕이 되고 나니까 천하의 자기 백성 그 성질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내 거다! 나한테 무조건 복종해야 된다.” 그러니 자기 아들 요나단도 반항하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 이방나라 왕을 주께서 세워주는 왕이 이방나라를 완전히 쳐버립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해서 열배나 해서 쳐버려요. 골리앗을 누가 이겼느냐, 누가 공로자냐, 보게 하면서 쳐버립니다. 칠 때, 차이점을 보라는 거예요.

사울 왕은 지가 왕 되고 난 뒤에 잘난 체하지요. 그런데 다윗은 내가 왕이다가 아니라 왕께서 나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이리 되는 거예요. 왕께서. 이 왕의 자리가 기름부운 자리에요. 따라서 다윗은 사울 왕이 이렇게 괴롭혀도 사울 왕을 직접 안쳐요. 왜냐하면 사울왕은 하나님이 기름 부었기 때문에 기름 부은 그 자리가 중요하지 사울 안 중요하거든요. 그 자리가 인간을 만든다고 본 거예요. 이 생각을 다윗이 갖고 있어요.

내가 잘나서 골리앗을 이긴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한 거예요. 왕 되려고 한 게 아닙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사무엘이 와가지고 참기름은 아니지만, 그냥 기름을 부어버린 거예요. 왕 되라고. 누가 와가지고 탁치고 가는 거예요. 이게 뭐가 묻었는가 딱 보니까, 당신은 차기 대통령입니다.

아니 내가 뭐 하려했어요. 무조건 해야 돼. 이게 열왕기상에 나옵니다. 예후. 무조건 예후는 왕 되어야 돼요. 예후는 본인이 왕 될 자격이 있는 줄 착각했어요. 왕 될 자격 없어요. 성령이 와서 “딱!” 뭔가 해서 보니까 “너는 성도다.” 주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야. 주께서 일방적으로 붙이고 가는 거예요. 내 스케줄 아닙니다.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서. 그게 다윗이고, 다윗언약이에요.

다윗언약은 니가 비록 인간이라는 껍데기를 썼지만, 내용은 뭐냐 제사장도 예수님, 왕도 예수님. 왕 같은 제사장이 너로 하여금 이 땅에서 왕같은 제사장 노릇하도록 성도되게 했다는 사실을 성령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은 없고 모든 일이 누구 일이다? 주님의 일이에요. 그냥 탁치고 가는 주님의 일이에요. 애들하는 숨바꼭질 놀이 같아. 술래잡기 놀이 같아. 날 잡아 봐라. 치고 도망가는 것 같아.

그러면 다윗이 왕이잖아요. 다윗이 왕 되었을 때에 그러면 여기 제사장은 아비아달 제사장인데 그 제사장은 잘립니다. 제사장 되지를 못해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 고생은 많이 했는데 다윗 왕 다음에 솔로몬을 하나님께서 찝었거든요. 왜냐 하면 솔로몬은 죽은 자가 아담의 죽은 자가 신의 가족이 되기 때문에. 혈통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죽음이 있어야 돼요.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대신 죽은 분이 있어야 돼요. 나를 죄인이라고 지목하고 대신 죽으신 분이 있어줘야 우리가 신의 가족이 됩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이 뭐냐, 지 자랑 안하지요.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피 때문에 그것이 어떤 행동과 모든 말, 모든 게 다 깔려있어요.

식당에 가서 떡 볶기 하나를 먹어도 말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구 못난 인간 살려내려고 떡 볶기 주시니까 떡 볶기 먹고 죽자. 아줌마 하나 더요. 하나 더 먹고 죽자. 악착같이 돈 벌어서 죽자. 이런 거요. 모든 것이 이미 죽은 자로서 이렇게 받쳐주잖아요. 그것처럼 다윗이라는 왕 되기 위한, 다윗을 왕이라고 득의한 새로운 제사장이 사독입니다.

사독은 아비아달 제사장을 교체해서 들어가는 거죠. 이 교체가 중요해요. 교체해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럼 사독되겠지요. 사독 제사장 계열이 됩니다. 그 계열이 죽 나오잖아요. 그래서 나와서 여기 5페이지에 보게 되면 제일 끝에 여호수아 나오지요. 스룹바벨 성전 때. 여호수아 나오지요. 그 다음부터는 개판되어 버립니다. 그 다음부터 임명하는 사람들이 엉터리로 임명해요. 죽 죽 임명해가지고 계속 지 마음대로 정치적으로 합니다.

어딜 보셔야 되느냐 하면 주후26년 유대 총독 그라투스 임명되어있지요. 주후. 거기에 요셉 가야바 나오지요. 그 때 이 제사장이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 선 사람들이 돼요. 이제 인간의 제사장이 어떻게 점점 더 악해지는 걸 알겠지요. 인간의 종교라는 게. 형식. 형식. 오직 그래도 기독교. 그러니까 하나님이 율법 종교가 있어줘야 마음이나 편하지 않겠느냐, 라고 꾸역 꾸역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이 종교라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살해한 겁니다.

종교 만들어서 뭐할라고. 일부러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를 인간 쪽에서 내세우는 고상함과 거룩함과 율법 준수가지고 그걸 형성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인간 마음속에 하나님을 만날만한 자신의 의로움을 거룩한 장소를 누가 만든다? 인간의 아이디어로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예배당 아닙니까. 파이프 오르간 예배당. 교회. 전부 다 그 아이디어에 뭐가 포함되어있습니까? 예수님을 죽였던 그 아이디어가 거기에 다 포함되어있는 거예요.

앞자리에 앉아야 은혜 받는다. 이런 거요. 거기서 파생되는 법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거예요. 해병대 찬양을 해야 은혜 받는다. 이런 거부터 해가지고. 십일조는 깨끗한 돈으로 해야 된다. 온갖 교회법들이 다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으로 할 것은 3장에 보면 여호수아는 어떻게 됐다? 일단 하나님 앞에서 거지꼴로 나오세요.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거지 아니라도 거지고, 깨끗해도 거지에요. 그냥 주께서 택해가지고 불러줄 때는 연탄재로 불러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예 받지도 않아요. 우리가 내세우는 것은 기도고 뭐고 아무것도 안 받습니다. 헌금도 아무것도 안 받아요.

오세요. 그리고 무슨 작업이 필요하냐, 악마가 지적하도록 지적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그 작업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 세상이 악마의 세계인데 우리는 가는 곳마다 지적 받습니다. 밥 먹는 거 흘리는 거 봐라. 칠칠맞게. 육개장 옷에 다 튀는 거 봐라. 저. 저. 아 하나 키우지도 못하고. 그냥 온갖 지적질은 다 받아요.

배후에 마귀가 그렇게 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또 의도적으로 하십니다. 기도하라 하니까 15초도 안되게 예수 이름으로 끝내버리고 말야. 봐라. 저 기도하는 재주도 없잖아. 온갖 것은 전부다 하도록 하세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최종 마감 계시가 있어요. 약속이 있어요. 그리스도로 실컷 더럽혀 놓고 옷 입어라. 저 가서 옷 갈아입으세요. 우리의 죄가 주님의 의가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바꿔치기로 성전 만들어지고, 성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죄인이 의인되는 그걸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절차인 것을 우리는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강의 전 질문>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약속을 주시는 거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모세 같은 경우에는 모세는 하나의 히브리서에 보면 종에 불과해요. 주인이 아니에요. 모세는 시나리오가 어떻게 짜였는지, 사태가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모릅니다. 주어지는 상황이 어떤 상황으로 번질지를 모르지요. 그래서 모세한테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알려줍니다. 나는 여호와라. 여호와 뜻이 뭐냐, 나는 일을 내가 한다는 뜻이에요. 뭐 나 스스로 있다. 뭐 여러 가지 복잡한 거 있지만, 간단히 말해서 내가 던진 일은 내가 하는 것이지 니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모세가 지팡이를 들지만 사실은 지팡이 같은 입장이 모세고, 모세 입장이 바로 하나님입장이고 그래요. 모세는 그냥 종으로서 쫄랑 쫄랑 뒤에 따라가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겁니다. 굉장히 편해요. 편한데 가끔 그 하나님이 안 보이는 백성들이 달려들기를 모세보고 달려드니까 짜증나는 거죠. 자기 잘못도 아닌데. 자기가 한 일이 아닌데 원망들을 하니까 모세도 나중에 성질나가지고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지요. 어차피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인물입니다.

어차피 성질내던 안 내던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또 성질내게 만들어요. 일부러 만들어요. 그러나 모세가 약속의 땅에 안 들어갔다고 해서 구원 못 받은 것이 아니고 마태복음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변화산에 모세와 엘리야 양쪽 다 있잖아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름이 있다는 말은 마치 투명인간인 것처럼 어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름을 언급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다는 뜻이에요.

거기 그냥 있는 게 아니에요. 활동하시면서 있는데 그 활동하는 모든 그 시나리오 계획은 여호와의 본인이 주신 스케줄대로 밀어붙인다. 그게 여호와의 이름이에요. 아시겠지요. 그 이름이 신약에 오게 되면 누구 되느냐 하면 바로 주님이 되지요. 주님의 이름. 주님은 자기 계획대로 밀어 붙어요. 인간의 어떠한 방해공작도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이 예스가 돼요. OK. 패스가 돼요. “일 잘 됐어! 아~ 일 잘했어.” “저 사람은 교회 안 나오는데.” “아이구, 잘하는 거야. 원래 하나님나라는 내가 이야기했듯이 들여보내는 작업이 있는 반면에 내보내는 작업도 있잖아. 본인이 나간 게 아니고 내가 내보냈어.” 천국 오지 말라고 내보내신 거예요.

그래서 주의 일에 대해서 항상 우리가 할 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겁니다. 끝.
 첨부파일 : 안양20200910b슥3장2절(성전과 제사장)-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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