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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15:47:27 조회 : 69         
안양20210715B슥7장8절(죄의 생산)-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안양20210715B슥7장8절(죄의 생산)-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아까 첫째시간에 주님께서는 죄가 없는 곳에 죄를 나게 하는 것이 주님의 솜씨라 했습니다. 죄가 없는 곳에 죄가 난다는 말은 인간은 자기의 죄를 죽어도 몰라요. 왜 죽는지도 모르고, 내가 왜 잘못됐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 이유가 죄를 안 지어서가 아니라 나라는 그 자체가 이미 자기는 나는 옳다, 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옳지 않은 경우를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옳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내가 진짜로 내가 정말로 옳지 않는 거라면 무엇이 생각나지 않느냐 하면 의미라는 것, 의미 자체가 소실됩니다. 의미라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옳다가 될 때 의미가 생기는 겁니다. 중국에 태풍 분다. 뭐 어쩌라고. 중국에 태풍 부는데 내가 뭐 어쩌라고? 왜 중국 태풍 부는데 내가 거기에 관여할 필요 없잖아요.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이 세상 일어난 모든 것은 나와 관련 있는데 그냥 나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관계 속에서만 의미가 있는 거예요.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첫째시간 공부를 했으면 우리는 압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뭘 생산하는 겁니까? 죄를 생산하기 위함이지요. 죄를 생산함인데 나라는 것이 나는 옳다. 나는 옳다가 되어버리면 뭐냐 하면 ‘내가 옳기 때문에 내가 옳다는 사실을 하나님도 아시기 때문에 이 옳은 나를 천국에 보내려고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방법을 나한테 주셨구나!’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끌어 모으는 거예요. 성경 모든 구절을 어디에 끌어 모으느냐, 누구를 구원시키는데 끌어 모은다? 나를 구원시키는데 끌어 모으는 거예요.

첫째시간에 한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없는 죄도 생산한다. 없는 죄. 요 말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죄라는 말이 있잖아요. 죄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죄라는 단어가 있으면 그 안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함축해서. 죄라는 개념이 있지요. 이 모든 죄라는 단어는 그게 바탕에 뭐가 있느냐 하면, 역시 나는 옳아, 증명하기 위해서 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거예요. 저 사람 죄인이야. 그 뿐만이 아니고 역시 나는 못났어. 무슨 뜻입니까? 나는 못났다고 반성함으로서 그 결과는 뭐하다? 역시 나는 잘났어! 가 되는 거예요. 나는 잘났어! 가 되는 거예요.

내가 옳다, 를 어떤 경우라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낮춰라, 하잖아요. 그 마음을 낮추면, “마음을 낮추겠습니다. 하나님. 나한테 뭐 해줄 거요?” 마음을 낮출 테니까 뭐해줄 겁니까? 우리애가 고3인데 수능 잘 치게 해줄 거요? 마음 낮추는 대신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마음 낮추겠습니다. 그러면 이 옳고 옳은 나에게 뭘 해주겠어요? 뭐 해주렵니까? 이리 나오는 거예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았더냐? 이런 말이 있지요. <이수일과 심순애> 심파극에서 이수일이 말했지요. 그 말은 뭐냐 하면 그 다이아몬드에 팔려가지 말라는 그런 뜻이거든요. 김중배역은 주로 허장강이 역을 많이 했어요. 옛날에. 옛날이야기입니다. 심파극에서. 나쁜 사람을 굳이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될 이유가 상대적으로 우리가 내가 옳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나보다 더 착한 사람은 우리가 굉장히 질투심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분노해요. 드라마 거의 안 보는데 어떤 드라마에 보면 드라마 거의 안보는 거 안 믿지요. 어떤 드라마에 보면 이혼하고 난 뒤에 자기 남편이 열 살 아래의 같은 직장 내에 있는 아가씨를 좋아할 때 자기는 벌써 이혼했는데 인사팀장이어서 직위도 높은데 했는데 지가 버린 남자가 지보다 10년 젊은 여자하고 이렇게 사귀니까 화가 난 거예요. 왜, 상대적으로 자기가 버려졌다는 것이 화가 나는 거예요.

한 번 따져봅시다. 나는 버림받았다. 이게 왜 화가 날까요? 왜냐하면 나는 결코 나를 버린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는 나를 버린 적이 없거든요. 니가 뭔데 나를 버리래? 그런데 버림받은 여자보다 더 혹독한 시련은 뭐냐, 잊혀진 여자에요. 왜냐하면 나는 결코 나를 잊은 적이 없어요. 내가 나를 다루는 방식의 확장, 그게 내가 꿈꾸는 세계에요. 내가 나에게 잘해주고 나를 칭찬해주고 나를 격려하고 내 노력에 대해서 누가 인정해 주는 그 세계, 그 세계라면 그게 어느 교회든 등록합니다. 그게 어느 교회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오늘 제목을 이걸로 할까요. 모든 인간의 행동은 이게 있어요. ‘keep’하는 게 있어요. 킵하는 게 있어요. 커피 먹다가 남겨두면 뭐합니까. 내일 올 테니까 키핑해주세요, 하지요. 커피.

뭔가 나의 것을 꽂아 놓은 게 있어요. 꽂아 놓고 늘 그게 뭐냐 구심점이 되는 거예요. 나에게는 오직 나만이 구심점이 되는 겁니다. 킵 한 것이 없으면 그건 뭐 저능아인지 바보인지 그리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진도 나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곳에 죄가 되고요, 오늘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없는 죄를 생산한다. 없는 죄를 생산해요. 왜냐 하면 인간은 근원적으로 따지고 따지고 보지만,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마저도 죄라고 하면 너무 심하지요. 어떤 경우라도 나는 선하기 위해서 노력한 그것은 인정해 줘야 되지 않습니까. 기어코 자기를 옳다고 보는 거예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은 같은 죄가 되도록 묶어버린다.’ 끈으로 묶어버려요.

인간 대 인간 사이에 죄의 차이가 경중이 없도록 만들어버려요. 하나님께서. 인간 대 인간 사이에. 하나의 예를 들게 되면 여러분들이 열 살 때 지었던 죄와 여러분이 40이 되었던 지은 죄가 그게 어디서 나온 겁니까? 같은 몸에서 나왔지요. 그렇다면 열 살 때 지은 죄는 덜 나쁘고, 40때 지은 죄는 큰 죄 지었다고 성립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지요. 안 되는 거예요. 4살 때, 5살 때, 그 애들이 갖고 있는, 옛날이야기입니다. 지금 이야기 말고. 컴퓨터 인터넷 시대 말고 옛날에 우리 세 살 때 4살 때 5살 때 6살 때 놀던 거 있어요. 그 때 우리가 가장 어릴 때 7살 때 가장 보물로 여겼던 것이 뭐냐 하면 구슬입니다. 유리구슬. 구슬 있지요. 장군 따먹기 할 때 구슬. 동글동글한 구슬 있잖아요.

이게 그들은 그들 시대에 비트코인입니다. 그들 시대에 주식이에요. 이거 많이 모으면 자기 세계에서 최고가 되는 거예요. 구슬 모으는 거. 그런데 지금 나이 60이 넘어서 다시 이 구슬을 보니까 제가 한 번 찾아봤어요. 다이소 가서 찾아봤습니다. 구슬100개에 천원해요. 500g해서 한100개쯤 돼요. 구슬 1개에 10원밖에 안 해요. 부모가 되어서 애들한테 구슬 차지할 때 부모가 한 십만원치나 사줘버려요. 그러면 그 애는 부자로 느끼겠습니까? 안 느끼겠습니까? 안 느끼지요. 뭐가 빠졌습니까? 구슬이 5개에서 10개, 10개에서 20개, 40개에서 50개 되는 그 과정들이 빠졌지요.

그 과정이 뭐냐 하면 나는 너를 이겼다! 나는 너보다는 옳았다! 는 거. 구슬치기 더 잘한다는 것. 이 사실이 빠져버린 구슬 10만원짜리 구슬은 의미 없습니다. 왜냐, 의미는 나의 옳음. 나의 의로움이 첨가되어야 이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첨가가 되어야. <마인>이라는 드라마에 보면 애를 키운 엄마가 자식의 엄마냐, 애를 낳은 엄마가 자식의 엄마냐, 낳고 도망친 엄마가 엄마냐, 그 이야기가 나왔다고요. 결국 그 드라마에서는 키운 엄마가 엄마다. 끝났어요. 낳고 키우기 싫은 여자는 엄마라는 자격이 없다. 이리 되는 거예요. 키운다는 거, 양육이라는 거, 해산의 고통만 있는 게 아니에요. 여자한테는 해산의 고통이 곧 양육의 고통입니다.

그 자식이 왜 귀하냐 하면 키울 때 고생했기 때문에 키우잖아요. 자식이 귀한 것이 아니고 자식에게 부여된 투자된 나의 아픔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 자기의 아픔이 자기의 옳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의 옳음에서 도망칠 수 있는 어떤 대책이 없어요. 그러면 이건 뭐냐 자기 의가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아까 이야기했지요. 거미줄이 있는 곳에 뭐가 있다? 거미가 있듯이 자기 의가 남아 있는 곳에 뭐가 있다 했습니까? 지옥이 있는 거예요.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옥 가는 사람의 공통점이 전부 다 훌륭하다는 거예요. 지옥 가는 사람의 공통점이. 그리고 천국 가는 사람의 공통점은 뭡니까? 다 죄인이라는 거예요. 특징이. 나는 뭘 하나 나는 옳은 게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천국을 가고 있고, 어느 것 하나 내 솜씨 아닌 게 없고 내 애씀이 없음이 없다고 여기면서 지금 그들은 지옥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천국과 지옥 구분하기가 의외로 참 쉽죠잉. 진짜 쉬워요. 마태복음18장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두 사람이 나오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고 하나는 세리 나오지요. 주님께서 순회 재판합니다. 그냥 본격적인 재판하기 전에 내가 현지에 가서 니는 지옥행! 너는 천국행! 할 때 바리새인이 먼저 지 자랑 늘어놓습니다. 십일조하지요. 금식하지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구제하는데 왜 구제합니까.

여기에 오늘 스가랴7장에 보면 고아와 과부 불쌍한 사람 도와주라고 돈 모으는 게 그게 구제잖아요. 구제했습니다. 그리고 더 첨가해서 나는 저 사람과 같지 아니함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리 나왔다고요.

자, 그렇다면 그 바리새인 속에 자기의 죄라고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근거가 투입됐습니까. 투입 안 됐지요. 아까 첫째시간 끝에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지요. 어디로 데려갑니까? 십자가로 데려가지요. 그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뭐 불 받았다! 그게 성령의 일이 아니고.

십자가로 데려가요. 방언하는 게 , 방언 터지는 게 그게 성령의 일이 아니고. 자기를 십자가로 데려가는 겁니다. 뭘 해도 나는 의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확정되는 그러한 상황들 속으로 계속해서 몰아내어 세우시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의롭지 않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뭐가 되느냐 하면 자기뿐만 아니고 별나게 나는 이렇게 죄인인데 나 말고 아주 뛰어나게 착한 사람은 따로 있다. 가 자기가 죄인된 사람한테는 성령 받아 죄인된 사람한테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요. 그냥 사적으로 반성이나 하고 사적으로 회개를 해버리면 ‘아휴, 저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나보다 너무 착해.’ 착한 사람이 발생돼 버려요. 주위에서 착한 사람이 발생된다는 말은 그렇게 이해되시거든 아직도 본인은 십자가 근처에도 안 갔습니다. 근처가도 소용없지요. 근처에 가도 합체가 돼야지 근처만 가서 관람객 되면 안 되잖아요.

첫 번째는 하나님이 없는 죄를 발생시킨다. 두 번째는 모든 인간의 죄는 똑같다. 죄와 죄 사이에 어떤 차등을 두지를 않았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모두 다 누구의 자식이냐 하면 아담의 자손이거든요. 그럼 아담 안에 뭐가 들었느냐 하면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죽고, 죽고 하는 거예요. 죄가 아담의 실력보다 더 우세해요. 더 셉니다. 그러니까 이 죄는 아담을 통해서 퍼졌다가 성립돼요. 퍼져버린 거예요. 이렇게 죽 퍼진 거예요. 퍼진 것을 말리거나 처리할 수 있는 방안, 대안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암세포가 대단한 암세포가 되어가지고 아무리 착하게 해도 그 착함 속에 죄까지 착함이라고 하는 그것이 죄가 되게 만들어버려요.

죄의 위력이 그런 겁니다. 죄가 아담에 들어왔기 때문에 아담에 있던 모든 퍼져있는 모든 영역은 전부 다 죄의 통제와 죄의 지배 속에 죄의 힘 속에 놓여있게 돼요. 그러니까 죄들이라는 것은 하나의 죄에서 나온 것은 죄들이에요. 단수에서 복수가 나오던 이 복수는 하나로의 죄로 구치고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자, 이 작업을 많은 죄들, 율법에 의해서 일어나는 많은 죄가 결국은 하나의 죄였다. 그 죄가 뭐냐 하면 바로 십자가를 믿지 않는 죄. 십자가를 믿지 않는 죄.

그럼 십자가를 믿지 않는 죄가 뭐냐 하면 십자가는 모든 인간을 뭐로 보느냐 하면 죄인으로 규정했거든요. 모든 인간입니다. 한 모든 죄를 하나로 묶었어요. 어느 니 내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은 죄인이 되는 거예요. 이걸 로마서5장에서는 죄의 뭐냐, 죄의 왕 노릇이라 합니다. 왕.

왕은 요번 수련회에서 왕에 대해서 할 거예요. 왕이라는 게 뭔지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이라는 것이. 왕이라는 것은 유일하게 있음의 세계에 포함되지 않는 존재 이게 왕이에요. 유일하게 있음에 있다는 것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가 왕이라는 말은 있음에서 있음의 세계, 인간의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여호와는 없는 분이에요.

없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입니다. 있음의 세계와 연결되어있는 연속되어있는 신은 우상이에요. 사울 왕이 그래서 잘못된 왕이에요. 왜? 사울왕은 누가 원했던 겁니까? 시작을 백성들 쪽에서 먼저 시작했어요. 왕 주시옵소서! 저만한 왕 같으면 괜찮습니다. 이리된 거예요. 제안을 인간 쪽에서 제안했다는 요소가 포함된 왕이 사울 왕이에요.

그런데 그 사울 왕과 따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제안을 하지 않았던 준비된 왕이 있었지요. 사무엘도 사울 왕이 무서워서 몰래 했는데 막상 그 현장에 왕은 없었어요. 이새의 아들 일곱명이 있는데 일곱명 다 주님께서 전부 다 보이콧했어요. 거부했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거 아니야. 그 아니야. 결국 나온 것은 없는데요. 없음이에요. 왕은 없어요. 없는데 사무엘보고 가라고 기름 들고 가라고 한 거예요.

기름부음은 있는데 기름 받을 대상은 없는 겁니다. 없을 때는 모든 있음을 제켜나야 돼요. 있다, 있다, 있다를 다 제켜나야 돼요. 그래야 그 있음에서 예상도 못한 없음은 그냥 왕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고 모든 있음을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있다는 내가 여기 있다는 자체가 바로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있는 거예요. 죄 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로 있다가 되는 겁니다.

이 땅에 태어난 자체가 죄고 살아온 것도 죄고 죽는 것도 죄고 그렇게 규정할 수 있는 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그 분이 십자가지신 분이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1절에서 뭐냐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 했지요. 십자가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를 보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따라간 겁니까?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따라간 거죠.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부활에서 탈락한 겁니다. 십자가는 봤는데 그 다음에 부활에 대해서 그들은 보고 즐거워한 게 아니고 두렵다. 뭐가 두려워요? 부활이 두려운 거예요. 부활이. 부활이 두려운 거예요. 왜냐 하면 인간은 있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있음의 끝은 뭐냐 하면 죽음이 있음의 세계에 한계점입니다. 따라서 내가 죽는다, 까지 아는 것 안에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인간은 내가 죽는다 하는 것은 각오했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익히 알기 때문에. 내 아는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라는 게 성립되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에 어떤 묘지 청년도 아니고 어떤 낯선 사람도 아니고 “마리아야! 누구를 찾느냐? 그 분은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약속했잖아. 약속대로 왜 안 믿어? 그 분은 살아나셨느니라.” 할 때, 그 여인들은 그 3명의 마리아와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두려웠어요. 두렵다는 말은 나에게 하자가 있음을 최초로 지각한 겁니다. 알게 된 겁니다. 내가 붙들고 있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최초로 알게 된 거예요. 붙들고 살아온 이것이 오류고 이건 실수였던 겁니다. 평생 나를.

만약에 진짜 부활을 만난 사람은 두 번 다시 뭐냐 하면 나의 부활은 물 건너 간 걸 알아요. 부활은 나의 부활이 아니에요. 성도의 부활이지. 새로운 사람의 부활이지 나의 현재의 구닥다리의 부활이 아니에요. 주님이 주신 주님의 내 안의 자기의 부활인 거예요. 우리는 그냥 그걸 실어 나르는 하나의 냄비지요. 냄비 우동 할 때. 냄비. 냄비 우동 씹으려고 하지 않지요. 그 안에 내용물 담아 있잖아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여러분이 수박화채 할 때 수박 껍데기 먹으려고 화채하지는 않잖아요. 그 안에 내용이 있잖아요. 우리 성도라 하는 것은 그 내용은요, 주님의 말씀이 채워져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그 말씀을 그냥 담을 뿐입니다. 담을 때 그냥 담는 게 아니고 그릇도 의미 있다. 그런 식이 아니고 그릇은 껍데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라는 것을 절감하면서 그 내용들을 담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구원 받는 내가 구원 받았다,에 증인이 아니고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내가 이래서 천당 간다, 의 증인이 아니라 주님의 증인돼요. 나는 물 건너갔어요. 킵을 해도 주님을 킵해야지 나를 킵하면 안돼요. 교회 다닌 역사라든지 헌금한 거라든지 킵하면 안됩니다. 내가 전도한다고 몇 명을 전도하고 이런 거 킵하면 안됩니다. 따라서 신앙의 특징은 뭐냐 결코 나는 신앙인이 아니다를 왜 진작에 이제야 알았다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신앙인이에요. 왜냐하면 자기를 킵 안하니까.

신앙인 아닌 나를 하여금 주님을 알게 했으니까 주님을 알게 한 게 키핑 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주님을 알게 된 거. 내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요,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그거 다 도루묵으로 다 날아가 버려요. 치매에 걸려가지고 아버지도, 엄마도, 자식도 다 못 알아보는데 뭘 그걸 믿어요. 믿을 걸 믿어야지. 목사님이 와가지고 요양병원에 와가지고 “권사님, 새벽 기도하는 권사님 저 아시겠습니까?” “아저씨? 누구? 내 신랑인가?” 거기에 실망한 목사가 “이 권사님, 지옥 갔다.” 니도 나중에 늙어봐라. 니도 늙어봐라. 지옥가지. 젊은 사람들은 자꾸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당한 잔소리를 꼰대라고 하는데 니도 세월한번 먹어보지. 니는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다! 이리 하거든요. 니는 늙어봤나? 나는 젊어도 봤다. 나는 니가 어떤 수준인지 안다 이 말이거든요.

주님이 우리를 알아요. 아시기 때문에 다른 대안은 없어요. 십자가 죄용서 외에는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그걸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의 행동 하나 태도 하나, 하나에 대해서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신경 쓰면 안 되지요. 그걸 신경 쓰면 안돼요. 내가 어떻게 됩니까? 가 아니라 “주여, 오늘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무슨 지시를 내리실 거예요?” 어제 수요 설교에 그런 이야기했지요. 그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수박 얼마 주고 샀나? 삼만원 줬습니다. 니는 봉 썼구나! 봉 쓰는 일을 하면 돼요. 그거 뭘 수박 사기 전에 서울깍쟁이 돼가지고 비싸게 받았느니 온 생각 쓰잘데기 없는 생각, 완벽에 완벽을 기하려고 하지 마세요. 인간은 완벽은 없습니다. 철저에 철저를 기하지 마세요. 그것도 자기 의가 돼요. 그냥 어설픈 그것도 주님의 주신 은혜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정리합니다. 우리는 나의 죄에서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도가 할 것은 앞으로 죄 아닌 것도 죄였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그런 재미가 솔솔하시기 바랍니다. 아~ 이것마저 죄! 이것마저 죄였구나! 이미 주께서는 다 아시고 죄를 한 묶음 되게 하셨어요. 해태종합선물이에요. 죄가 한 묶음 되어야 될 이유가 죄의 용서가 단번에 한 묶음으로 예수님의 피로 단번에 다 처리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피의 단회성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여러 가지 죄가 한 묶음 되어야 돼요. 이건 내 좋아라가 아니라 주님에 하신 일을 드러내는 방식이 이 방식밖에는 없어요. 심지어 밥 먹는 것도 죄고, 잠자는 것도 죄고, 그렇게 되어야 예수님의 피흘림의 죄사함이 우리의 모든 것을 능가한다는 것을 알지요. 로마서5장에 보면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가 왕 노릇한 것처럼 예수님의 한 분의 의가 우리에게 넘치도록 은혜가 넘치는 거예요.

그 냄비 우동에 냄비가 다 못 받아요. 우동을 너무 많이 줘가지고. 우리는 그냥 죄 씻음 해가지고 다시 상쇄하는 죄의 의가 없어지는 그 정도로 중성쯤 평균 마춤도 감사한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고 죄가 있는 곳에 의가 흘러넘치게 만들었어요. 감당이 안 돼요. 마구 넘치니까. 이제는 뭐 주님의 덕분입니다. 말도 부끄러워. 그 말을 능가해요. 실제로 주신 의가.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신 모든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죄 아닌 것도 죄를 생산하게 하시고 그리고 그 죄가 니만 있는 죄가 아니고 아담에 속했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생긴 그 죄인데 그 죄가 있는 곳에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그 죄보다 더 훨씬 더 넘치도록 우리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니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니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니가 성경공부해서가 아니라 주님 자신이 주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냥 주님의 자의적인 일방적인 사랑에 의해서 그렇게 퍼부어주는 겁니다. 그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자기의 행함으로서 마중 나와서 모독하지 마세요. 그 우리의 마중 나올 행함은 우리에게는 애초에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어요.

자, 그러면 그 다음 진도 나갑시다. 그 다음 문제, 죄가 없는데서 죄가 생기고, 그 모든 죄가 결국 한 묶음이 된다는 그 작업을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던져 넣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던져 넣었다 할 때에 요 경우를 분명히 보여주는 그 성경구절이 뭐냐 하면 다니엘 +3인조, 다니엘 세 친구, 저는 다니엘밴드라고 하는데. 다니엘밴드. 드럼, 베이스, 퍼스트기타 보컬까지 합해서. 다니엘밴드.

다니엘 세친구가 어디서 그들이 신앙의 티가 나던가요? 따로 산기도 했습니까. 기도원에서 합숙했어요? 아니죠. 어디 있었습니까? 더러운 공무원생활하지요. 다니엘 세친구가 직업이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그 국가가 어떤 국가냐 하면 짐승이에요. 어두움입니다. 여러분들이 차를 몰고 가다가 짧은 터널 말고 긴 터널을 차를 몰고 가다가 바깥에 환하게 맑게 개인 하늘이 오게 되면 확 눈부시지요. 그게 어두움이 있었기 때문에 눈이 부시는 겁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어두움에 있다는 말은 그 빛이 왔을 때, 어두움에 있었던 모든 시절이 아무것도 아니고 신경쓸거리도 안 된다는 것을 확 눈부시게 찬란한 그 빛 앞에서는 우리로 하여금 할 말을 잊게 만들어요. 제가 이런 잘못했습니다. 저런 잘못했습니다. 그런 말조차도 주께서 손가락으로 쉿! 그런 말도 하지 마! 그것도 자칫하면 니 의가 돼. 하지 마! 하지 마!

이 찬란한 눈부신 빛으로 그걸 니가 찬미해. 그걸로 니가 고마워해. 그걸로 끝이야. 그러면 돼. 딴소리하지 마! 어릴 때 했고, 내가 목사 욕을 했고. 목사 욕을 해도 괜찮아. 목사 욕 얻어먹어도 괜찮아. 뒷담화해도 괜찮아.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내가 아내를 때려가지고 늑골 나가고. 늑골 두 대 더 나가도 돼. 어차피 그 아내 내가 죽일 거야. 일단은 하지 마! 이 빛을 바라보는 거예요. 방향성이지요. 방향성.

어디를 쳐다보고 사느냐, 이 더러운 공무원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다니엘 세 친구가지고 여기다가 집어넣어버린 거예요. 여기에 얼마나 치열한 암투와 경쟁과 시기와 질투, 정치적인 모함, 얼마나 많겠습니까. 누가 대선 후보라 하면 마누라 논문 같은 거 다 뒤집고. 술집에서 일한 거부터 해가지고 전부 다 엎고. 이 더러운 세상에 던져놔 버린 거예요. 여기다 던져 놓습니다.

그러면 왜 그래야 되느냐 죄를 한 묶음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서 뭐가 필요 하느냐 하면 어떤 씨앗이 필요해요. 구심점이 필요하다고요. 이 다니엘 세 친구 밴드는 바로 그 당시 율법입니다. 율법은 이 땅에 딱 떴다 하면 주위에 어두움이 율법을 질식시켜 버립니다. 군말 못하게. 왜? 여기는 뭐가 있느냐 하면 어두움은 어두움의 권세가 있어요.

오늘 스가랴 한 번 봅시다. 스가랴7장14절,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어졌지요.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이리 되어있지요. 원래 이 땅은 이방인들이 살던 그 토착민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히브리인들을 이 땅을 몽땅 차지하게 하셨지요. 차지하면서 조건이 있었습니다. 율법대로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쉽게 말씀드리면 이스라엘은 전부 다 한 묶음이에요.

여기에 10절에 봅시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 압제 받는 자 이 모든 사람은 그 당시 애굽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당했던 일들이에요. 그게 출애굽21장에 나옵니다. 출애굽기21장에 보면, 사람들을 빼낼 때 사람만 빼낸 게 아니고 거기에 뭐도 같이 묻혔느냐 하면 율법이란 걸 새롭게 첨가해서 갖다 붙여놓은 거예요.

그 율법의 내용이 뭐냐, 출애굽기22장 20절을 보면 여호와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해놓고 21절에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뭐 되었다 했습니까? 너도 같은 처지 나그네처지였잖아. 왜 니 옛날 신세 모르느냐, 니가 만일 노가 분열하면 내가 만약 가난한 사람들에게 학대하게 되면 나는 나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가 되고, 과부의 남편이 되어가지고, 직접 내 몫을 내가 니한테 찾겠다. 이리 나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지상에 나타나는 방법은 이 세상에서 의지할 데 없고 오갈 데 없는 고아와 나그네와 그리고 과부의 모습으로 주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율법이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 공부한 거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면 없는 죄를 생산한다, 했지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하느냐, 율법을 개입시켜서 성사시킨다. 율법이 개입시키게 되면 없는 죄니까 이 죄는 뭐냐 하면 내 것을 키우고 내 것을 보호하고 내 것을 사수하는 게 죄거든요.

내 것을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키는 게 그게 왜 죄냐 할 때는 여기에 율법 속에 뭐가 있느냐 하면 내 것이라고는 아예 없는 자가 누구의 보호를 받는다? 주님의 보호를 받을 때 주님으로부터 보호 받는 것이 뭐냐, 긍휼과 자비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 게 있다고 자기를 지켜버리면 무슨 요소가 누락이 되느냐 하면, 긍휼과 자비 요소가 거기에는 없어요. 긍휼과 자비 요소가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없는 거예요. 아담에 속한 자를 건져줬다. 죄밖에 없는 인간을 천국가게 한다. 이것은 자체적으로 자기를 격려하거나 독려해가지고 천국갈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 것을 내가 지키게 할 때 내가 내 것을 지킬 때 내 것을 잃어버려도 나는 남잖아요.

그런데 고아와 과부라 하는 것은 이건 주님께 종속되었기 때문에 주님과 연관되어 있는 과부요, 주님과 연관된 고아요, 주님과 연관된 나그네가 되는 겁니다. 그럼 이스라엘은 어떤 사람이 된다? 주님에 의해서 과부되고, 주님에 의해서 나그네 되고, 주님에 의해서 고아가 되는 그 집단체가 될 때 그건 이상적인 하나님이 원하는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속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요소가 우상 섬기면서 하나님의 정신이 사라지기 시작해요. 사라지니까 여기서 나오는 유명한 사자성어, 어두움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자성어, 이건 팻말로 크게 한다든지 표구점에 가서 액자 만들던지 해야 돼요. ‘각자도생’ 식구가 아빠, 엄마, 아들, 딸 있거든요. 이거 하나 붙이세요. 나이 서른 되면 각자 나간다. 각자도생하기로. 부부는 각방쓰기. 이런 거. 각자도생. 이게 원래 인간의 본모습이에요.

예선전 거쳐서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 결국 남는 마지막 최종적인 승리자는 누굽니까? 나에요. 나라고요. 그래서 이 각자도생에 결정판이 뭐냐 하면 자살입니다. 자살. 자살할 때 어떤 인간도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어요. 끝내 이기리라. 마포대교에서. 끝내 이기리라. 누구하고 의논하느냐 하면 본인하고 의논해요. 본인이 본인하고 의논해서 죽기로 결심한 겁니다. 완전히 귀신이지요. 귀신.

나의 옳음. 나의 옳다는 것을 누가 지켜주느냐 하면 내 말고는 지킬 자가 없어요. 세상은 자꾸 나를 지적하니까. 평생을 도망치듯이 살아요. 내 지적 받음을 내 옳음을 지키고 견디기 위해서는 지적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는 거예요. 월급 준다고 대기업에 갔다가, 어디로 도망칩니까? 중소기업으로 도망쳐요. 중소기업에서 또 잔소리 하니까 어디로 도망치느냐, 치킨 집으로 가요. 치킨 집을 하든지 아니면 퇴직해서 파리바게트 하던지. 대기업 있을 때 일주일52시간 근무하고, 지가 카페하든지 커피 전문점 할 때는 15시간 일하고, 이렇게 일해도 다시는 그 대기업에 안 가는 이유는 누구든지 나를 지적질 하지 말라는 거예요.

무엇이 옳은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한테 잔소리하지 않는 게 옳은 거예요. 특히 부부사이. 잔소리 좀 하지 말라. 내가 잘못한 것은 인정해주는데 잔소리 좀 하지 말라. 잔소리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이게 부부사이만 아니라, 자식도 마찬가지에요. 눈 콱 닫고 문 잠겨버려요. 밥 먹어라. 내가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대화가 그리 가요. 꼭 나를 집어넣어요. 나를. 밥 먹어도 내가 나를 지시할 거야. 내 말고 지시할 사람 아무도 없게 하는 거. 천상천하유아독존. 천상천하유아각자도생이에요. 이게 결정판입니다.

이게 다니엘 세친구가 있던 그 동네에요. 이게 참 어려운데, 이스라엘이 망했잖아요. 오늘 스가랴7장14절, 망하게 되어있지요. 마지막에. 망하는데 주께서는 흩어지게 하면서 구심점으로 다니엘밴드, 다니엘과 플러스 삼인조밴드, 그것을 어디에다가 집어넣습니까? 짐승의 나라 그 당시 최강의 바벨론 짐승의 나라 집어넣는 이유는 끝내 진짜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가 세상의 가장 위대한 제국을 어떻게 한다? 박살내버리더라. 박살내버린다.

이 다니엘 세 친구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속에서 그들이 어떤 수모를 받았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승진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지요. 그래서 그들은 왕에게 칭찬받았다. 그걸로 끝이 아니지요. 세상이 가만두지를 않지요. 그걸 끄잡아 당기기 위해서 법을 만들되 한 놈만 밟아라. 위조로 법을 만들잖아요. 한 놈만 밟아라. 다니엘 기도를 하는 것을 기회를 통해서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서 법을 만들 정도에요.

따라서 오늘 공부에 의하면 다니엘의 존재는 모든 인간의 세계를 한 묶음으로 하는데 핵심씨앗이다. 알맹이가 돼요. 구심점이 돼요. 오늘날 성도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도가 행복하고 편안하게 인생을 마감하라고 성령 준 게 아니에요. 성령은 성도를 어디로 인도한다 했습니까?

반드시 십자가로 인도하지요. 제가 오늘 강의 중에서 끝으로 진짜 중요한 거 이야기하고 싶은 건데, 기존 세상에서 특히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면 일단 하나님을 하나의 냄비우동의 냄비로 이렇게 걸쳐놓으라는 거예요. 기존의 목사들이. 하나님이라는 것, 계시다는 것. 하나님은 계시니까 요거는 괜찮으니까 두고 거기다가 여러분들이 뭐가 지금 모자르냐 하면 성경 내용이 모자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냄비에다가 성경 내용들을 다 끌어서 집어넣으면 당신은 구원받습니다. 천당 갑니다. 이게 오늘날 교회에서 하는 이론이에요.

이 냄비 자체가 죄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교인이 와서 하나님 믿으면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 뭐로 굳히냐 하면 자기 의로움으로 자기 옳음으로 굳히게 돼요. 굳혀 있어요. 32년 동안 집 앞에 있는 교회 가서 32년 동안 배운 게 이거 배운 거예요. 끌어 모아! 끌어 모아! 성경 보고 기도해서 모든 십자가든, 피든, 다 끌어 모아. 그러면 이 냄비는 멀쩡할 거다. 천만에 말씀. 이 냄비는 찢어버립니다. 이 십자가 내용이.

하나님 믿는 거 자체가 죄가 된다는 거예요. 이게 성령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겠어요. 하나님보고 하나님이라 하고. 하나님 계시는 거 보고 살아있다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를 얼마나 칭찬하겠는가, 얼마나 맛있게요! 얼마나 칭찬하겠지요! 칭찬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게 바로 우리가 죄를 모르는 이유에요. 하나님 믿는 게 죄가 돼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할 수 있는 것은 일체 구원의 방식에 담길 수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동안 성경 말씀을 몰라도 이상하게 하나님 존재는 인정한다. 그 인정하는 거 그거 우상입니다. 그거 인간태어나면 다 할 줄 아는 거예요. 로마서1장21절에. 저희가 하나님을 알되, 인간 태어나면 애들보고 3개월 된 애에게 해보세요. 기도하자. 예. 기도 누구한테 했어요? 하나님한테 기도했어요. 그러면 너가 갖고 있는 신학적인 견해는? 이건 몰라요. 하여튼. 무조건 하나님만 있으면 그건 이제 시작은 제대로 된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 믿으니까.

왜냐하면 인간의 악마가 준 이성가운데서 초월적인 내용을 계속 요청하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왜냐하면 신이 라이벌이기 때문에. 목표가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인간들 상대해서 저 사람들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뭐냐, 내가 신처럼 되는 게 이게 선악과 따먹을 때 휴유증이에요. 신이 라이벌이기 때문에 일단 라이벌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건 하나님 보기에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냄비는 괜찮다고 보고 지금 직장일한다고 바빠서 성경 못 봤는데 목사님은 성경 연구하니까 그저 이 냄비나 채워주세요.

냄비 자체가 이게 저주인데요, 저주에다가 저주를 추가해봐야 안에 들어오면 전부 죄로 다 변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변한 것이 사울에서 사도로 변한 이유가 요거 변한 거예요. 내가 여호와라고 한 그 여호와가 우상이었다. 내가 하나님 하는 그 하나님이 가짜였다는 것. 이게 변한 겁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가 나에서 나왔던 모든 것은 이게 배설물 쓰레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이것이 뭐냐, 나의 부활을 기대하는 게 아니고 나의 부활은 애초에 생기지 않고 주님의 부활 안에 우리가 참여함으로서 부활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첫째 부활 그 다음은 우리 부활이에요. 주님의 부활이에요. 그런데 그 주님은 사람에게 납득되지 않는 분이에요. 사람들에게 내쫓음을 당한 분이에요. 인간의 자아들의 집합체, 인간의 자아들의 무리에서 전혀 끼어들 수 없는 자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인 겁니다.

모든 인간들에게 소외당한 아담. 그게 진짜 인간이에요. 진짜 인간의 영이 성령이 우리에게 와버리면 나라는 인간은 인간도 아니고 가짜인 것을 아주 휘파람 불면서 우리는 고백해야 되지요. 신나서 고백해야 돼요. 주여, 나는 인간도 아닙니다. 집안에 있는 그릇 하나 전부 다 선물입니다. 자식도 선물이고, 이만큼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입니다.

이것이 바로 뭐냐 하면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 의, 그 의 안에 있는 이미 들어온 이스라엘의 구성요건이 되는 거예요. 오늘 스가랴 본문을 죽 보면서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죄를 생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내에 고아와 과부를 일부러 발생시켰습니다. 고아와 과부되는 것이 지 죄 때문에 된 게 아니에요. 남보다 더 죄를 지어서 고아 되고 과부된 게 아니에요.

바리새인이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않고 흉을 봤는데, 세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바리새인 옆에 있는 세리는 감히 고개를 못 들었어요. 뭘 보는가, 같은 사람하고 비교를 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 주님 보시기에 맞습니다. 나는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니가 바로 의인이다, 라고 해요. 의인.

뭘 잘한 게 아니고 니가 의가 있기 때문에 나는 죄인이다. 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고백할 수 있는 거예요. 아주 자유롭게, 가볍게,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오히려 본인이 화들짝 놀랄 정도에요. 아~ 나같이 잘난 체 하는 인간이 내가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죄인이구나! 그걸 알아챈다는 게 자각한다는 게 이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겠어요.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이 기적은 주님의 작업이기 때문에 마음껏 우리가 주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켰다는 것은 이제는 어떻게 되느냐,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 갈라디아서6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십자가만 자랑한다, 했지요.

십자가만 자랑하는 그것이 율법을 완성하는 모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스가랴를 통해서 어떻게 예언되었는지를 왜 이 말씀이 인간 세계 속에 들어왔는지를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왜 스가랴 말씀의 완성인지를 왜 그 안에서 새롭게 이스라엘이 탄생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하신 일만 증거 되고 자랑하고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보충강의)
시간 있으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 하면 자아에 관한 거거든요. 자아. 자아가 어디서 생기느냐 하는 거예요. 나가 어디서 생기느냐. 원래 아담은 자아가 없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왜 아담이 자아가 없느냐 하면 자아가 되려면 하나로서 온전해야 자아가 되는데 아담에게는 육체가 둘이 있어요. 여자. 그래서 둘을 유지해야 하나가 돼요.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둘이 있어야 하나가 돼요. 혼자서 자아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거예요. 둘이 있어야 하나가 되거든요. 그래서 그 아담이 요즘 사람 같으면 이해 안 되는 이야기에요. 내 살 중에 살이요, 내 뼈 중에 뼈다. 나라는 것을 어디서 찾느냐 하면 바깥에서 찾아요. 바깥에서. 자기가 아니고.

아담을 잠들게 해서 그 갈비대를 여자를 만들었지요. 그러면 아담의 중요한 요소가 아담 몸체 안에 있는 게 아니고 아담의 몸체 바깥에 새로운 개체로서 성립이 돼버린 겁니다. 그러면 이리 되어버리면 내 하나로서 자체적으로 순환시켜서 모든 걸 완결시킬 때는 그 완결이 깨져버리고, 관계, 그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가 온전하게 드러나게 되어있어요.

한 쪽은 사랑을 받아야 되고, 한 쪽은 사랑을 주는 관계, 그 사랑이 이쪽에서 이쪽으로 이동하는 관계를 통해서 사랑은 구현되는 겁니다. 혼자 지 사랑하는 것은 그건 지 자살할지언정 그건 사랑이 아니고요. 내 사랑을 받는 쪽이 있어줘야 사랑이 살아요. 그래서 주님도 혼자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주님이 사랑해야 될 자기 백성이 있어줘야 주님의 사랑이 완성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아담이었고, 그 아담이 범죄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 아담, 마지막 아담이 예수님에게 그게 아담에게 있던 모든 그 성과가 성취가 되잖아요. 그래서 인간의 자기를 지어서 자기를 자아라 하는 것은 이것 자체가 주님보시기에 반칙이고 일체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미 있었던 제도와 형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형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실패한 형식을 도입한 것이 결혼제도에요. 결혼해봐라. 이게 제대로 된 결혼이 되는가, 일단 해봐. 일단 해보라고. 해보니까 특히 해보면서 거기에 뭐가 따라오느냐 하면 모세의 율법이 따라오지요.

엄연한 연고 없이 아내를 못 버린다. 라고 해놓고는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혼증서 써주면 이혼가능하다, 이리 되는 거예요. 그런 법이 올 때마다 이혼하고 싶어 환장한 남자들은 혼자 살기 위해서 온갖 정당화된 합리화된 성경 법을 찾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어떻게 했습니까? 마음속으로 간음한 게 뭐라고 했습니까. 간음죄죠. 완전히 모든 걸 뒤엎어버리는 거예요. 판을 뒤엎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간음죄만 성립되는 게 아니고 누구 형제를 미워하게 되면 살인죄 되지요. 덮친데 겹친 거예요. 한 번 행해도 징역15년에다가 그거 하면 징역20년, 징역56년, 계속 덮친 것 해가지고 나중에는 내 몸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저주의 요인이 되게 만들어버려요. 나한테 육체가 있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의 신체를 다른 신체로 바꿔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예수님의 아주 세밀한 배려에요. 그 신체 가지고는 어떤 법도 어떤 말씀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시고자 우리의 신체를 허락하신 거예요.

이런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신체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그걸 감사해야 돼요. 어차피 깨질 거 부러질 거, 넘어지고, 자빠지고, 나중에 정신까지 없어지면 진짜 헤매게 되지요. 그래서 요양병원에 우리 어머니께서 가셨지만 가보면 그 요양병원에 있는 사람마다 젊을 때는 제정신이라고 우길 때는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 같고,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막상 몸 불편하니까 자기만 사랑했다는 것이 그게 안에 진열장에 빵처럼 죽 누워있습니다. 또 할머니들끼리 싸워요.

내 기저귀 누가 가지고 갔느냐, 해가지고. 인간의 본색이 그대로 다 노출되지요. 얼마나 교회의 교인들이 위선자인가를 목사부터 해서 얼마나 위선자들인가 분명히 아셨지요. 아까 그 냄비우동했지요. 됐어. 됐어. 이제는 됐어. 이제부터는 담으면 돼. 이것 담고, 이것 담고, 비빔밥 다 만들어놔요.

자아라는 것은 원래 없던 건데 악마가 집어넣었다. 요렇게 보시면 돼요. 자아라는 것, 타인을 통한 자아가 아니고 내 육신, 거울에 비친 내 신체만으로 그걸 자아라고 보는 것은 이것은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신도 아니면서 신인 체 하는 그 거짓된 악마의 계략이었습니다. 참, 어느 누구도 아담에 속했기 때문에 이러한 속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자꾸 의롭게 살려고 하지 말고 착하게 사는 것은 조폭들이 하는 짓이지 조폭들이나 차카게 살자. 하지요. 그렇다고 일부러 악하게 살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는 고마운 줄 아는. 감사하면서 잡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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