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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9 00:03:56 조회 : 54         
강남-누가복음 7장 32절 (미로) 211005b-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7장 32절 (미로) 211005b-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에 세례 요한이 기존의 인간의 시간이라든지 그런 것에 접촉을 안 받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의 말씀이 세례 요한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세례 요한은 세례 주는 사람이에요. 요한 앞에 세례 있죠. 새로운 세계를 너도 나처럼 이렇게 겹치게 만듭니다. 물론 세상 사람한테는 온갖 소리 다 듣겠지요. 그게 바로 좁은 길 아닙니까.


그게 주님의 형상이 덮쳐버리면 주님의 가시는 길을 그냥 재현하게 되어있어요. 그 자체가 완료이기 때문에. 그걸 저는 좌표계. 새로운 시간이 적용되는 사람. 그리고 내부에서 기존의 인간들의 시간과 새롭게 덮쳐진 성령의 세계에 어떻게 차이 나는 것을 자기의 생을 통해서 자기의 인생을 통해서 그 두 가지를 다 보여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 그 사람을 성도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성도의 위치가 자기한테 관심을 두지 말라고 했거든요. 소실점이라고 하는 것은 점점 더 사라지는 거에요. 사라져서 하나의 점이 되는 거죠. 하나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사각형이 하나 있다면 이 사각형 소실점은 이렇게 어디로 모이느냐 하면은 모든 선들이 여기가 소실점이다. 소실점. 저쪽에서 봤을 때 이렇게 보이는 거에요. 소실점이 두 개일 경우를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소실점이 두 개일 경우.


두 개일 경우는 이렇게 그리는 거에요. 수평을 이렇게 그려놓고 수평 네 개를 연결시켜보게 되면 이렇게 소실점이 여기도 당기고 여기도 당기죠. 모퉁이에 미도파 백화점. 백화점 보게 되면 이쪽에 창문이 여기도 있고 이렇게 있지 않겠습니까. 소실점이 두 개지요. 소실점은 뭐냐 하면은 그 점에서 보내심을 입었을 때 현장에 등장한 것과 그 출발점, 그 보내심을 입은 출발점은 저 뒤에서 당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두 개인 경우고 세 개인 경우가 있을 때 바둑판같은 것을 입체로 그릴 때는 세 개로 그려요. 여기 하나, 여기 소실점 하나. 여기 세 개를 그리게 되게 되면 이것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해가지고 중간에 그어놓을 것 그어놓고 이 중간에 그은 데다가 촘촘히 선을 이렇게 연결시켜 버리고 또 연결시켜 버리면 이게 소실점이, 여기서 밑에서도 당기고 여기서도 당겨버리면 이것은 2차원 평면이 입체로 보이게 되어있어요.


바둑판 면적이 사각형이 이렇게 되니까. 삐뚤삐뚤하지만 입체로 보이게 되어있어요. 소실점. 이러한 소실점이 있다는 말은 이 자체가 결국은 이 도형 같은 내가 결국은 하나의 점으로 점 있는 쪽에서 나를 출발시키고 결국 그걸로 귀화시키기 때문에 현재에 있는 나의 어떤 형식에 대해서는 내가 이것을 붙잡을 이유가 없다 이 말이죠. 있다가도 없어지니까.


그런데 이걸 제가 설명했다면 그 다음에 뭘 필히 설명하느냐.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 세상 사람들은 뭐가 없어요? 소실점이 없어요. 그렇지요? 누가 당기는 게 아니잖아요. 이만큼 키우는 것도 내가 애써 힘들었다. 건드리지 마. 내가 이만큼 만드는 것도 내가 얼마나 애쓰고 양보해가지고 더러운 짓까지 하면서 이만큼 키웠다. 자기 자신에서 응축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뭐냐 하면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소실점의 반대말이 뭐냐 하면은 미궁이에요. ‘미궁’. 또 다른 말로 하면 미로. ‘미로’. 미궁. 소실점은 한 점으로 당겨가지고 딸려가지만 미궁은 자꾸 중앙으로 갇히게 돼요. 갇혀있어요. 중앙으로 갇혀있다고요. 자, 중심이 자기 자신이잖아요. 그러면 자기 자신을 일단은 하나의 자동차라고 봅시다. 자동차를 봅시다. 이렇게 생겼다고요.


내가 이 자동차라면 나이기 때문에 뭘 생각하느냐 하면은 나 중심이기 때문에 항상 가까운 자기의 보이는 것들을 자기 현실로 봅니다. 7살이면 7살. 10살이면 10살. 세월 따라 커지기는 맞아요. 커지기는 맞지만 절대로 내가 40되었다. 내가 50되었다 이 말은 여전히 내가 중심이다 이 말이에요. 나를 지금 차로 그린 거에요. 차로 지금 대신 그린 겁니다.


그러나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내게 필요한 것만 잡아당기는 거에요. 필요한 것만. 세계 정세든 국가 정세든 내게 필요한 것 이것만 하는 거에요. 내가 만든 현실에 내가 이렇게 놓여있는 거에요. 놓여있다면 그 다음에 이걸 키워보자 이 말이죠. 키워보면 차가 이렇게 되겠지요. 이정도 되겠지요. 이걸 더 키워보자. 어떻게 키우느냐 하면은 이렇게 키우는 거에요.


차가 여기 들었겠지요. 그렇지요? 그럼 이걸 더 키워보는 거에요. 이 안에 차가 들었겠지요. 이게 뭐냐? 이게 바로 미궁 아닙니까. 내가 필요해서 내 생존에 필요해서 얻었던 그것이 나를 미궁에 빠트린 겁니다. 내가 필요해서 원했던 모든 사물과 그런 재산과 재물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 미궁에 빠지도록. 미궁에 빠진다는 것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요. 출구가 없습니다.


이걸 요한계시록에 이게 5장 9절과 5장 6절에 이걸 가지고 5장에 보면 봉인. 가둬놔 버려요. 인간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고 그 원함 속에 가둬놔 버려요. 이런 예는 많지요. 촌에 농사 짓다가 아빠 서랍에서 돈 통장 훔쳐가지고 편지 한통 쓰고 아빠 출세하고 올게. 출세한다고 가가지고 성남에 땅 하나 사가지고 해가지고 출세해서 퇴직금 50억 받았다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 남들한테는 뭡니까? 성공한 거죠. 성공한 건데 그림에 보면 뭡니까? 면적이 50억만큼 휙휙 자기 안에 감긴 거에요. 그래서 그 사람은 어디 갇혀 있습니까? 자기가 받은 그 재산에 자기가 스스로 갇혀가지고 못 빠져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만약에 나라에서 50억 회수하라고 하면 이 사람은 자살해버려요. 갇혀있기 때문에. 옛날 촌에 가가지고 그냥 농사 안 짓습니다. 놀던 가락이 있거든. 놀던 가락이. 놀던 가락이 있어요.


미국에 뉴욕이 유명한 그 비싼 아파트에 사는 모델이 자살했다. 왜 자살했느냐? 인기가 예전만큼 못하기 때문에. 인기가. 옛날엔 자기 잘 나갔는데 젊은 애들이 막 모델서고 자기는 점점 더 모델계에서 소외되니까 지금 입을 거 먹을 거 없어서 죽는 게 아니에요. 옛날 그 인기 있잖아요. 인기. 자기 팬들. 자기 알아주는 사람. 자기 뭐 올리면 좋아요 막 팍팍 누르는 거 있잖아요. 그 사람이 없다고 자살했어요.


자기가 자란 그 꼬리가 자기를 질식시키는 겁니다. 이게 마귀가 인간에게 한 짓이 이 짓이에요. 돌이 떡 되게 하고 한번 인기 얻고 한번 배부르게 되면 권력 얻으면 그 쇠사슬에서 못 벗어나요. 그게 지금 마귀가 하고 있는 거에요. 그게. 이게 교만이고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답니다. 단칸방에 살았는데 애들은 참 솔직하지요.


단칸방에 살다가 33평짜리 아파트로 옮겼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이사한지 얼마 안 되서 불편한 겁니다. “엄마 밥 먹으로 오는데 너무 멀어.” 이게 단칸방은 돌아서면 상 펴면 되는데 밥 먹을려면 걸어가야 돼요. 걸어서 저 부엌까지 걸어서. 33평이니까. 50평사는 사람은 “그게 뭐가 머냐?” “50평 안 살아봐서 몰라.” 이렇게 되거든요. 애한테 어울리지 않는 게 휘감기는 이런 위상 공간이 있었던 거에요. 이게 바로 세상입니다.


살고자 싶어서 내가 요청한 것들이 나를 휘감아서 질식을 시키는 겁니다. 질식을. 아 공부 좀 이렇게 못하고 이렇게 체육 좋아하면 놀텐데 이건 뭐 7살 먹은 애가 공룡이름 다 외우고 하루 종일 책 만 들여다보고 이렇게 사는 애가 만약에 전교 1등하고 1등 놓친 적 없다가 한 10등 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엄마는 큰일났다. 어떻게 하면 1등으로 회복할까.


애한테 그만큼 기대를 건 만큼 그게 자기 몸에 휘감긴 겁니다. 자기를 질식시키지요. 주님께서는 여기 갇혀있는 이 인간을 세상 부귀 영화 명예거든요. 명예 자기 정당성에서 못 빠져나옵니다. 자,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기 못 빠져나온 이 차, 이 성도를 어떻게 합니까? 이걸 캡쳐를 해요. 이걸 오려냅니다. 이걸 오려내요.


이걸 오려내게 되게 되면 이게 뭐냐 하면은 새로운 시작점이 여기서 발생돼요. 새로운 시작점. 오려내게 하신 주님이 시작점이 됩니다. 그럼 시작점에 들어오게 되면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은 다 이루었다. 말씀으로 다 이루었다가 새로운 시작점으로 그 인간을 새로 개시하게 되는 겁니다. 도려내는 거에요. 자기 힘으로 이차원 평면을 못 벗어나면 도려내서 위로해서 바짝 크레인가지고 들어올리는 거에요.


자, 이거 한번 생각해보세요. 세례 요한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하면은 세례 요한은 이런 위치에 있어요. 세례 요한이 알고 있던 이 모든 세계, 세계 있을 거 아닙니까. 세례 요한이 차라면 차가 이 바깥에 있어요. 차가 이 바깥에. 이런 세상 바깥에 있다고요. 그러면 세례 요한 살면서 계속 어떤 새로운 현실이 만들어지겠지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세례 요한이 어디에 관여해서 죽음을 당했습니까? 정치적인 일에 말려들었지요. 어떻게 사촌 간에 결혼하느냐 이래 가지고 말려들었잖아요. 주께서 그렇게 하신 거에요. 말려드니까 분명히 정치권력도 세례 요한을 둘둘 말겠지요. 몇 바퀴 돌겠지요. 몇 바퀴. 아무리 돌아도 이 안에 있는 게 아니고 이 바깥에 있어요. 처음부터 바깥에 있었던 거에요. 처음부터.


왜? 이 땅에 태어날 때 인간의 아빠 엄마 혈육적인 것을 차단한다는 신호를 가지고 천사로부터 신호를 가지고 아이 못 낳는 부부에게 아이 낳게 했으니까요. 이건 시작점이 뭐냐? 말씀으로 시작된 거에요. 세례 요한같은 경우에. 오늘날 성도도 마찬가지이지만요. 그러니까 이 세상이 가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생산될 수 없는 이 세상이 해내지 못하는 존재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이게 뭐냐 하면은 시작점이에요.


시작점이고 이게 뭐냐? 새로운 좌표계에요. 예수님이 속해 있던 좌표계. 그 하늘나라의 요소요소 요건들이 세례 요한을 말씀의 완성이 세례 요한을 이 땅에 보낸 겁니다. 태어나게 하신 거에요. 그러면 세례 요한은 이 자체가 시작이 되고 세례 요한은 이 자체가 뭐냐? 끝이 되겠지요.


세례 요한이 어떻게 죽는다 할지라도 세례 요한의 본인한테는 소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바깥에 있기 때문에 어차피 이 세상 바깥에 있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상관없고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은 자가 되는 죽은 자로서 이 땅에 같이 살아온 여유를 부릴 수가 있는 거에요. 여유. 이걸 가지고 겸손하다 합니다.


왜 세례 요한은 저렇게 하느냐 하면은 세례 요한의 그 뒤에 오시는 분, 달리 말해서 세례 요한보다 앞서 세례 요한을 설계하신 분, 계획하신 분이 그 분의 인생이 바로 이 인생이에요. 하나님인데 분명히 이 땅에 왔는데 이 세상의 어떤 것들과 섞이지 않으면서 이 속에 섞여 살아가시는. 어두움에 생명으로 살아가시는 거에요. 죽음 속에 생명으로 살았고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신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을 못 알아듣는 겁니다. 제자들도 못 알아듣고.


그럼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은 예수님이 하시는 그 좌표계 시간계 있잖아요. 아킬레스의 시간계와 거북이 시간계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공간적으로 앞서가도 아킬레스는 오히려 뒤따라 오는 거북이를 또 따라가야 돼요. 뒤따라오는. 이게 세례 요한의 모습이에요. 나보다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섰다 이 말이거든요.


그 우리나라 못 먹고 살 때 소고깃국에 하얀 쌀밥 먹었으면 좋겠다. 옛날 50년대 60년대 그때 그런 일 많이 있었잖아요. 그렇지요? 하도 못 먹고 사니까. 그 때 살았던 사람 맨날 엄마 아빠한테 원망하면서 또 보리밥이야? 이랬거든요. 그래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하얀 쌀밥에다가 고깃국 끓여줄게. 해서 70년 80년대 하니까 한 80년대 되니까 가끔은 고깃국에 쌀밥이 나오는 거에요. 그때 뭐가 유행했느냐 하면은 보리밥 잘하는 집 찾아다녀요.


왜? 너무 쌀밥 많이 먹어가지고. 거꾸로에요 거꾸로. 우리가 버리기를 원했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리운 거에요. 보리밥집 순례하기. 보리밥 맛집 찾기. 인간이 이 세상 육에서 태어났거든요. 아무리 해도 육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요. 그런데 여기 세례 요한을 딱 대비시켰잖아요. 대비시키니까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아이들이. 이 세대 사람들은 마치 이와 같다.


문제가 어려운 게 뭐냐 하면은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과연 아이가 예수님편의 아이인가 아니면 이 세상편의 아이인가. 그건 어떤 아이라도 상관없어요. 하여튼 안 맞다 그것만 그게 주가 되니까 안 맞아요. 사고가 안 맞아요. 이 세상 사고가. 한쪽은 열심히 해보자. 발전 해보자. 더 희망 있다 이거고. 한쪽은 끝났어. 그럼 한쪽은 끝났는데 왜 사냐?


그게 뭐냐 하면은 왜 내가 생각하는 다 이룸과 주님 주시는 이룸과 이게 왜 틀리는지를 보게 하는 거에요. 미리 예측하고 미리 예상하면 주께서는 절대로 그걸 안 들어주세요. 왜? 그것은 인간에게 나올 수 있는 인간의 아직 한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죽었을거야 하면 안 죽었거든. 살았을거야! 죽었거든. 마치 인간을 갖고 노는 것처럼.


인간은 처음부터 말씀의 위배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주님은 인간들을 갖고 노시는 겁니다. 의도적으로 세례 요한을 고생케 하고 죽을 때 말로가 비참하게 죽게 만들어서 어느 누구도 자력으로 세례 요한 할래 하고 손들고 나올 사람 없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말로가 더 비참합니다. 왜? 설계도니까. 설계하신 분이니까.


그저 세례요한은 기껏해야 설계하신 분을 약간 모방했을 뿐이지. 진짜 말씀으로 말씀 그대로 하신 분들은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따라올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가 바깥에 튀어나올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 한계를 이 단절을 더욱 더 확고하게 하시는 거에요. 주님께서.


여기 28절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은 인간들 가운데 나실인이거든요. 특별한 사람이에요. 세례요한이 나실인이라는 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이런 거 이야기할 때가 제가 약간 염려가 돼요. 왜냐하면 그런 신학적인 거 좀 이야기 안 하면 안 됩니까 뭐 이렇게 하는데.


1장 15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이게 바로 민수기 6장에 나오는 포도주 관련된 술과 관련된 것을 금지하고 나실인이라고 하는 것은 구별된다. 차이 나게 한다. 차이 난 인생 그거에요. 그래서 세례 요한이 없다고 한다면 서로 인간은 경쟁적으로 누가 누가 말씀 많이 지키느냐 누가 겸손했느냐 누가 하나님 말씀에 영광을 돌렸느냐 이거 하겠지요. 그 경쟁을 완전히 묵살시켜버립니다.


인간이 인간끼리 하는 경쟁, 선악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 그걸 무효로 칩니다.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 앞에 세례를 받아야 돼요. 세례 요한이니까. 세례 받는 이유는 바로 나를 소급하는 거에요. 아 나는 신경 써서는 안 되는구나. 왜냐하면 내가 나를 신경 안 써도 되는 이유가 나보다 더 나를 신경 쓰시는 분이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좌표계, 새로운 환경, 새로운 요소로서 우리를 거기에 이끌고 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끌고 가기 때문에.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주께서 주의 일을 스스로 하기 위해서 벌리신 일이에요. 그 일이 뭐냐? 나의 파괴입니다. 자, 나의 파괴할 때 이걸 굉장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대구강의에서 했지만 하나님의 특이한 점은 어떤 인간도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딱 하나 있어요.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를 파괴했기 때문에 그래요.


이게 여러분 상상이 갑니까? 절대자가 하나님인데 절대자가 자기 절대를 부셔버렸어요. 자기가 자기를 찔러 죽인 것과 똑같은 거에요. 이거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죽인 거에요. 이래도 너희들이 신을 안다고 할 수 있느냐고 우리한테 딱 내미는 것 같습니다. 그 파괴, 하나님도 하나님 먼저 자진해서 파괴시켰다면 너도 이 파괴에 참여하라. 이게 세례 아닙니까. 물에 뛰어들어. 풍덩. 죽어버려라. 인간아. 그거잖아요. 죽어버려라. 앞당겨 심판받아라와 같은 말이거든요.


2006년도에 mbc에서 하는 드라마가 제가 아주 참 재밌게 봤다는 드라마가 두 개 있어요. 내 이름은 김삼순하고 환상의 커플. 여기에 한예슬 나오고요 오지호 나와요. 오지호 이름은 장철수. 있는데 이 한예슬이 재벌의 상속녀에요. 그런데 요트에서 까불다가 머리 다쳐가지고 기억이 상실되어 버렸어요. 이름이 기억나요. 뭐냐? 나상실. 이게 얼마나 복음적인지.


나 상실해서 나상실.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는 게 고양이가 이름이 프린세스에요. 그 드라마 잊지 못하는 것은 남해에 비오면 머리에 꽃 꽂고 미친 여자처럼 나오는 배우가 있어요. 아주 연기 잘하는데. 남해에 눈이 온 적이 없는데. 나상실이라는 이 아가씨가 한예슬인데 이게 벌써 몇 년 전입니까? 2006년이니까 15년 전 이야기에요.


오지호가 기억에 없으니까 그냥 데리고 사는데 그냥 동거하는 게 아니고요. 조카가 3명 있어요. 오지호가 하는 일은 허드렛일 하고 노가다 온갖 것 다하는데 재주는 좋아요. 장철수가. 여기 와서 식모일하면서 사는 거에요. 자기 자신을. 나중에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데 알게 되면서 또 드라마는 오지호를 또 사랑하면서 이렇게 되야 되거든요.


여기 보세요. 나상실. 나상실 되니까 재벌녀의 색깔이 뭔가 몸은 남아 있는데 나중에 조카 키우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장철수의 좌표계에 완전히 빠졌어요. 자기 것이 없으니까 자기는 상실했으니까. 나상실. 상실했으니까 그 오지호의 조카 3명 열심히 키우는 그 따뜻한 그 가정에 옴팍 다 젖어버린 겁니다. 짜장면 못 먹다가 짜장면도 먹고 서민들 음식도 먹고 말이죠.


그러니까 성경 보면서 헛되고 헛되고 뭐 다 부질없다. 도인되는 게 아니에요. 성경은 도인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초월하는 게 아니에요. 주님이 오신 것은 기존 세계가 전혀 바깥세계를 모르고 있는 무지한 상태라는 것을 유발시키고 자극시키기 위해서 성도로 하여금 성령을 주신 거에요. 도 닦아서 천당 오라는 말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세례 요한처럼 살게 만드는 겁니다.


외쳐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울어도 울지도 않고. 웃어도 왜 웃는지도 모르고. 그걸 혼자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세례라는 것. 물세례, 성령 세례. 이 세례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하게 하신 거에요. 그래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주께서 성령께서 어떻게 하느냐? 이 세상의 푹 빠져 있는 우리를 도려낸다.


도려내놓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게 하게 되면 윤곽이 생기죠. 윤곽. 내가 사는 것과 다른 사람 사는 것과 다르지요. 다르다보면 주의 좌표계가 있어야 되는데 또 세상에 또 물들어 가지고 난 뭐 구원받았는데 뭐 이렇게 되겠지요. 그러면 뭐가 없어져요? 윤곽이 없어지잖아요. 윤곽이. 나상실에서 나회복이 되어버려요. 그럼 다시 또 성령으로 도려낸 나를 또 도려내버려요. 그럼 또 주님이 시작했던 십자가로 시작했던 새로운 시작을 개시하게 만듭니다. 성령께서. 또 캡쳐를 하는 거에요. 뽑아내는 겁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것은 뭐냐? 이왕 그림을 그렸으니까 그림이 복잡한데요. 아까 미궁 속에 빠졌지요. 내가 이 세상에 원하는 내가 스스로 살려고 하다보면 이런 미궁 속에 빠집니다. 미궁의 특징은 뭐냐? 항상 중앙으로 빠지기 때문에 살면 살수록 점점 더 깊숙이 자기밖에 몰라요. 치매 걸린 노인들 보면 자기밖에 몰라요. 평소에 속성이 그런 거에요. 자기중심이죠. 자기중심이란 내가 여기 있다는 말이 아니고 성향이 자기중심 쪽으로 이렇게 쏠리게 되겠지요. 스스로 갇혀버립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올 때 바깥에 있지요. 바깥에 있으면서 보고 있는 것은 다 자기를 둘러싸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라고 해가지고 자연인 되겠다고 지리산 기도원 가지 마세요. 주께서는 세상에 보내버려요. 세상에 보내되 속하지 않는 티를 내게 만듭니다. 그러면 옆에서 한번 봅시다. 이렇게 보게 되면 이렇게 되는 거에요. 옆에서 보게 되면 뱅뱅 돌렸던 세상적인 모든 사물과 경험했던 이것은 평면에 둘러싸여 있지요.


그럼 여기 세례 요한이 있다 합시다. 세례 요한은 뭐냐 하면은 주님의 좌표계에 포함이 되어있는 거에요. 주님의 좌표계에. 수직적으로. 그러면 수평적으로 이런 세상적인 좌표가 있고 여기에 속하지 않은 수직적인 좌표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 있는 거에요. 주기도문에 이런 말씀 있지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어디서 이루어진다? 땅에서 이루어진다. 이게 바로 원래 계획했던 예수님의 좌표계에요. 그걸 지금 세례 요한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세례 요한의 요한복음 1장에 나옵니다. 물세례 줄 때 누가 여기서 무슨 이야기했느냐 하면은 지금 너한테 세례 받는 그 분이 장차 올 성령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되어있지요. 같은 세례 속에 물이라는 땅의 현상에서 그 다음에 하늘에서 주어지는 물이라는 땅의 현상은 뭐냐? 인간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잖아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세례에서 성령 세례는 인간이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하지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세례로 자기의 그 본질이 드러나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세례 요한은 물세례 기능 끝났으면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께서 이 바톤을 이어서 성령께서 물세례 준 것처럼 성령 세례를 줘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줬는데 그 주는 자가 뭐냐 하면은 창세 전에 예정된 자에게 이것이 도려내버려요. 자기 있는 위치에서 가위로 도려내요. 캡쳐. 동영상에서 사진을 하나 캡쳐하듯이. 스탑. 하나를 캡쳐해요. 포획한다. ‘포획’. 딱 둘러 포획해버려요.


그러면 이 사람은 여기에 살고 이 땅에서 미국 가든 일본 가든 북한 가든 간에 뭐가 따라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좌표가 같이 따라가는 거에요. 마치 사도 바울같이. 사도 바울이 터키에 가나 그리스에 가나 어디가도 심지어 지중해 폭풍 속에서도 어떻습니까? 그때 누가 나타났어요? 밤중에. 사도 바울아 걱정하지 마라. 너하고 구원받을 사람 내가 지켜준다. 이 폭풍은 해야 네가 또 로마에 가서 전하니까 로마에 가서 전해야 돼.


지금 현상적으로 죽을 판인데 풍랑이 일어나는데 로마에 가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본인이 가겠다는 게 아니에요. 내가 가게 하겠다는 겁니다.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가게 하겠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성령 안에서는 매일 뭐냐? 매일 시작점이 되는 거에요. 매일 시작점이 되는 겁니다. 자, 그 다음의 이야기. 33절요. 오늘 참 어렵지요. 참 어렵지요.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이렇게 되어있지요. 아까 슈뢰딩거의 고양이 한번 보세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렵더라도 참으세요.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먹지 않으니까 뭐라고 합니까? 귀신 들렸다 했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세례 요한과 어떻게 했습니까? 반대로 해버렸지요.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속했으니까 예수님 하는 것과 똑같이 한다 이 말이 똑같이 한다는 말이 아니고 인간들의 한계, 인간들의 사고방식과 한계를 드러내는데 있어서 똑같다 이 말입니다. 일체 인간들과 안 섞이게 하는데 똑같다 이 말입니다. 안 섞이게.


인간들의 선도 악이고 인간들의 악도 악이라는 것을 알려줄려면 인간의 선과 악 자체를 무효로 하는 새로운 게 등장해야 되거든요. 그 새로운 것이 뭐냐 하면은 새로운 것이 뭐냐가 아니라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게 등장하는 거에요. 참 너무 어렵지요. 우리는 그냥 아 저거 괜찮네. 좋은 거네. 백화점에 물건 보듯이 저것 원하는데 저것 주세요 이러고 싶지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안줘요. 우리가 싫어하는 것도 안 줘요.


그럼 뭘 주느냐? 달라는 것은 안 주고 그럼 주지 마세요 하면 주는 거에요. 그래야 우리가 시작점이 돼요. 아 내 인생은 내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걸 매일같이 하지만 우린 매일같이 잊어버립니다. 매일같이 잊어버린다는 것은 주께서는 매일같이 나상실인데 우리는 매일같이 상실한 나를 또 만들어버려요. 돌아서면. 나 괜찮다 복음 안다 또 만들어버려요.


한예슬이 다시 와야 되나. 환상의 커플 그 드라마 제 2편을 찍을려면 한예슬이 까불다가 차에 부딪혀서 기억 상실 또 해야 돼요. 이번에는 한예슬이 검사가 되가지고 싸움 잘하는 검사 됐다가 재벌집 상속녀, 유산녀가 되가지고 회장 자리 앉아 있는 그런 원더우먼 정도 되든지 이래야 돼요. 드라마 보면 기억상실 되면 뭐라고 합니까? 자꾸 기억을 살리려고 하잖아요. 그게 교만이라 이 말이죠.


우리의 기억은 우리가 살리는 게 아니고 주께서 살려줘요. 왜? 우리가 살리려는 것이 영이 아니고 육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살려줘요 자꾸.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주님 앞에 농락당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34절에서 보면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여기 지혜라고 하는 것은 지혜를 인격화하면 주님이 돼요. 예수님이 돼요. 그리고 예수님이 갖고 있던 그 세계관, 세례 요한 포함하고 성도 포함하지요.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똑같이 이래도 비난받고 저래도 비난받는 사람으로 동참했다는 의미에서 옳다, 의롭다 하는 평가를 새로운 세계, 하늘나라 좌표에 의해서 인정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성도의 특징은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어떤 요소를 주님께서는 우리한테 한시도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의롭다하는 것을. 그럼 뭐냐?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이것. 이게 바로 주께서 의롭게 하시는 증거가 되지요. 해봐야 또 몇 분 안 가가지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으니까 나는 의롭잖아 또 이렇게 나상실이 아니고 나를 도래할 수밖에 없지요.


왜냐? 인생이란 그런 거에요. 주께서 그것 때문에 안 죽이고 계속 살려주는 거에요. 매일같이 새로운 은혜를 주시려고. 새로운 시작점이 새로운 은혜에요. 아 내 힘으로 나를 못 살리고 못 구원하는구나. 그럼 주님이 뭐라고 합니까? 안 해도 돼. 다 이루었으니까. 그게 다 이루어진 증거에요. 그게. 그게 다 이루었으니까 회까닥이 되는 거에요. 이루어진 증거에요. 구원받은 증거라니까요. 내가 원하는 이상형 있잖아요. 그게 매일같이 내 쪽에서 만드는 거에요. 주께서 맨날 그걸 엎어버려요. 엎어준다는 그게 이미 구원됐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요. 구원됐기 때문에.


자, 아까 요한계시록 5장 해보겠습니다. 5장 9절. 주님께서는 성도를 샘플로 시료로 사용합니다. 딱 도려내가지고. 성도 자체의 구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주님이 이미 구원했기 때문에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례 요한같은 기능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 있거든요. 따라서 내 구원에 대해서 내가 신경 쓸 이유가 있다? 없다? 없지요. 없는 거에요. 괜히 우리 속에 있는 옛날 그 세상의 사물에 갇혀있던 그것이 그냥 육이 살아있으니까 그게 매일같이 터져나올 뿐이죠. 그것조차도 주님께서 의도한 거지만.


여기 요한계시록에 5장 9절에 보면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다음에 뭡니까?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인봉’. 거꾸로 하면 봉인. ‘봉인되었다.’ 봉인이 뭐냐 하면 가두는 거에요. 가두는 것. 다윗이 소년 때 그 사울 왕이 악신이 들렸습니다. 악신 걸려가지고 미친 짓하고 있으니까 그 때 다윗이 비파 있죠. 기타지고 노래 부르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악신이 떠났지요.


그러면 이 악신은 성신 받은 다윗에 의해서 풀려났다 갇혔다 풀려났다 갇혔다가 이게 가능한 거에요.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통해서 볼 때에 성경에서 그런걸 한번 여러분들이 찾아내보세요. 이게 인간세계 속에 세상은 뭐냐?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세상을 크게 한번 해볼게요. 잊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을 잊어버리면 복음을 잊어버리면 내가 다시 생생히 살아나게 되어있어요. 갇혀있는 상태. 세상은 갇혀있다. 갇혀있다. 이런 상태로 만들어버렸어요 세상을. 갇혀있다. 세상이 갇혀 있는 그 이유가 악마 이걸 창세기에 뱀이라고 되어있지요. 뱀이 피조물이잖아요. 피조물. 뱀이 피조물이라고요.


그러면 이 피조물이 피조물에게 인간에게 관여해서 하나님의 선악과를 따먹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뭐냐 하면은 선악을 아는 선악체제가 낙원에서 분리된 이 체제가 이게 무슨 상태냐 하면 갇혀있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갇혀있다는 말 이래가지고 여러분이 잘 설명이 안 되니까 이렇게 해봅시다. 마왕, 악마죠. 악마가 임금에게 사울 왕에게 들어왔다.


그러면 지금 저의 이론에 의하면 악마는 갇혀있는 상태지요. 갇혀있는 상태가 악마가 임금 몸에 들어갔다 이 말이죠. 귀신이 돼지한테 들어갔잖아요. 그러니까 이 갇혀있는 상태에서 이 악마는 같이 자꾸 뭘 하느냐 하면은 변신, 변형 밖에 못해요. 다른 사물을 이렇게 자꾸 이동하고 자기를 변신하는 것밖에 없지 갇혀있는 상태는 여전히 갇혀있는 거에요.


홍천기라는 드라마에 보면 임금에게 마왕이 들어가니까 여기 그림 잘 그리는 소녀가 그림 잘 그려버리면 이 들어온 악귀가 그림에 의해서 이게 조절이 되는 거에요. 마치 다윗이 기타 치게 되면 순하게 되는 것처럼. 그 악마가 악신이 다윗의 기타 노래에 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갇혀있다는 거에요. 이게. 갇혀있는 거에요. 갇혀있는데 악마가 홀로 갇혀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부하들 있어요? 귀신들도 있고 누가 있어요? 인간들도 있지요.


그러면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뭐에요? 세상에서 도려냄을 당할 때 우리가 성령에 따라 나올 때 세상 전체를 뭐로 봅니까? 이것은 악마한테 마왕한테 마귀한테 악귀한테 갇혀있는 세상이라고 비로소 그걸 보는 눈이 열린다 이 말입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그거에요.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뭐냐 하면은 바로 그걸 갇혀있다는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여기에 주님께서 그 봉인을 열어버려요. 갇혀있는 것을.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인봉을 뗌으로서 이 세상이 왜 멸망해야 되며 악마는 왜 유황불에 들어가야 되는가. 비로소 이 세상은 악마가 귀신이 갇혀있는 게 아니고 활개치면서 세상 전체에 갇혀있는 것이 활개쳐가지고 자기 맘대로 살겠지요. 그렇게 되면 멸망의 범위가 어떻게 되겠어요? 무저갱에 갇혀 있던 귀신이 나와서 이제 벌떼가 확대되니까 확대된 모든 지역 전체가 주님에 의해서 심판과 멸망하기에 합당하게 되겠지요.


그걸 바로 사도 요한이 그걸 요구하는 거에요. 이 세상 작살내게 해달라고. 그 증거가 있어야 되니까. 귀신들로 하여금 자기 패거리 지옥 갈 인간들 마음대로 유린하고 마음대로 활동해서 그들 자기 사람들로 다 만들고 666 표 없는 것들은 전부 다 장사도 매매도 하지도 못하게 하는 거 있지요. 그걸 주께서는 의도적으로 그걸 가동시키는 거에요.


갇혀있는데 갇혀있는 곳에 갇혀있는 무저갱 하나 놓고 갇혀있는 유리관에 모기떼 갇혀있게 해 놓고 안 물리게 그 입구를 팍 터트리면 모기떼가 살았다 하고 유리관 내부의 세상에서 지 세상이다 하고 활개치겠지요. 활개치게 되면 유리관 그 자체를 유황불에 집어넣는 것이 이게 합당하다 이 말이죠.


왜 주께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담겨있는 그 긍휼과 혜택이 그 효력이 어느 정도까지 효력이 있느냐를 주께서는 증거 해야 십자가의 피의 가치가 온 우주에 찬양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참 예를 드는데 자꾸 어려운 예를 들 수밖에 없어서 참 죄송한데요. 예를 들어서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있잖아요. 조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와가지고 조수미가 나이가 이제 60 다 되가니까 아줌마 왕년에 노래 좀 했어? 조수미가 응. 했어요.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아줌마 노래 좀 했으면 나리 나리 개나리 한번 불러봐. 조수미 잘 모르는 사람이 나리 나리 개나리. 어후 노래 너무 잘한다. 조수미는 기가 차가지고.


왜냐하면 그 사람이 아는 수준은요 나리나리 개나리 잘 부르면 노래 잘하는 걸로 하잖아요. 그러나 조수미가 독주회 하면서 자, 첫 번째 부를 노래는 나리 나리 개나리 하면 환불하라고 난리날 겁니다. 그러면 뭘 불러줘야 돼요? 랄랄라랄라라~~ 이걸 불러야죠. 오페라. 마술피리 오페라를 불러줘야지요. 이거는 아무도 못하니까.


악마를 지옥 불에 보낸다? 나쁜 짓했다 그 정도가 아니에요. 온 세계를 전부 다 점령해야 돼요. 온 세계 이 세상 끝까지 전부 다 점령을 해줘야 돼요. 그래야 지옥 불에 들어갈 지옥 불에 처단할 수 있는 그 정당성이 확보하고 그리고 거기서 구원받는 그 위력이 오직 하나님 자기 피를 흘려야 된다는 십자가, 찌른 자도 볼 것이요.


자기 십자가 찔린 그 효력을 보기 위해서라도 너무나 그게 대비가 되고 대조가 되는 어떤 누구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귀신, 악마로 인하여 완전히 갇혀버린 세상. 어떤 것도 세상에 선한 것 하나도 없다 라고 그것이 갖춰져야 “세상에 그 가운데서 빠져나오다니” 그게 바로 십자가의 위력이고 십자가의 혜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것이 얼마나 엄청난 감옥에서 엄청난 악마의 위세에서 주께서 도려냄을 당하고 뽑혀나왔는지 그걸 주께서는 그 쪽 일하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으로 세례를 하고 그 폼 낸다고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 준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다 이루었고 이제는 적용만 남아있는 그런 판국에 그 적용 대상으로 저희를 채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되었기에 세례 요한처럼 주의 십자가 복음 전하라고 구원해주셨사오니 세상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날마다 증거케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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