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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0 19:57:00 조회 : 234         
강남-요한복음 17장 2절(제3의 조건)180501b-이 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121.165.203.222)
강남-요한복음 17장 2절(제3의 조건)180501b-이 근호 목사


자, 두 번째 시간합시다. 첫 번째 시간 끝에 이런 이야기 했지요. 욕심을 안 냈을 경우에는 욕심이 안 났을 경우에 그 의식은 가만히 있겠느냐 말입니다. 욕심을 안 냈을 때.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잖아요. 그럼 나 욕심 없어. 그건 욕심 아닌가요? 가만있습니까? 인간이? 머리가 딴 데 가지요? 딴 데 갈 때 그냥 가는게 아니고 그 방향에 대한 새로운 성과와 기대와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 기대와 목표라 하는 것은 여기 나 있음과 관련성 있어요. 나를 키운다든지 나를 지킨다든지 나의 생존에 유리하다든지 나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라든지 인간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여기서 펌프질하고 있는데요. 생존에 대한 욕망이 계속 세포가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이 말이죠.



가만히 있는게 뭐예요? 인간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니까.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머리카락이 자라는데. 심장은 뛰는데 잠잘 때도 심장은 뛰는데요. 가만히 있는게 뭐예요? 가만히 있어 해가지고 어디 시위할 때 데모할 때 가만 있는가?



왜 인간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냐 하면 하나님이 가만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이 그 인간을 가만두지 않고 계속 손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손길이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가만있지 않아요. 멈출 때 그 기회 그 작전 그 계획 그 프로그램이 뭐냐? 그게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계속 세상을 움직여요. 예수그리스도의 속성은 계속 움직인다고요. 버림받을 자는 버림받아야 되고 구원될 자는 구원되야 되고, 내가 일하니 아버지도 일하고 아버지가 일하니 내가 일한다는 것은 이것은 인간이 일 그만하세요 노세요 쉬시지 이게 안돼요.



그런데 인간은 제1요소 제2요소 자기를 표적으로 삼다보니까 계속 내가 일 안하면 지금 세상이 안 돌아가고 있는 줄 알고 있어요. 목회는 누가 합니까? 주님이 하셔요. 제일 중요하죠. 왜? 택한 백성과 안 택한 백성을 철저하게 가려내니까. 가짜를 용납하지 않거든요. 슬그머니 발 하나 집어넣고 천당가려고 이렇게 꼼수 쓰는 사람들을 여지없이 전부다 다 가려내서 다 발 빼! 어디 개다리 집어 넣는거야. 다 빼게하고 철저하게 완벽에 완벽을 기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에 보면 1장에 보면 2장인가 거기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no가 아니고 전부다 yes가 되는 거예요. 빈틈이 없는 거예요. 빈틈이. 쉴 수도 없고 빈틈이 없어요. 미션 임파서블. 우리 입장에서는.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이 possible 모든 것이 가능해요. 불가능은 없습니다. 가능한 미션인거예요 전부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성령이 와야 알지요. 성령이 안 오면 모든 측정을 내 인생 조져놨다 내 인생 잘 풀렸다 이걸 측정을 판단을 누가 하느냐 하면 있는 내가 판단해요. 내가 판단하면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어요.



그 영재들이 나오는 아이들 영재들 나오는 tv가 있어요. 어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보는 아이가 하는 말이 뭐 들은 풍월은 있어 가지고 7살인가 9살인가 그런데 나의 재산은 책이다. 아~멋진 말이죠. 9살인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하는 아이인데. 나의 재산은 책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명언을 자기가 그냥 그대로 그만큼 똑똑하니까 이걸 인용할 줄도 알죠. 똑똑하니까.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래서 내 재산은 20만원입니다. 이게 뭐야 이게 사단났어 이게. 여기서는 얼마나 고상해요. 책 안에 있는 모든 지식이 나의 재산이다. 이렇게 했는데 그래서 내 재산은 20만원이다. 그 아이가 어른되어도 20만원에 족하겠습니까? 어른되어도?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은 자기가 아는 만큼의 그 사람의 월드예요. 세상이예요. 자기가 아는 그 세상은 참고되는 아는 만큼만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 판단하는 그 판단은 전부다 하늘에 이르지 못합니다.



공자가 지가 뭘 알고 맹자가 지가 뭘 압니까? 공자 맹자 형제간 아닙니다. 소크라테스가 지가 뭘 알아요. 소크라테스는 자기도 모른다는 거예요. 니가 뭘 모르는데 그걸 이야기 해야지. 뭘 모르는지를 몰라요. 자기가 모른다는 그 개념조차도 정리가 안돼있어. 자기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자꾸 우기는 겁니다. 석가모니가 지가 뭘 압니까. 머리만 깎았지. 석가모니가 머리 깎았나? 모르겠어요. 지가 머리만 깎았지 알기를 뭘 알아요. 지가 죽어 봤어요? 이 땅에 있는 존재가 없는 존재 돼 봤어요? 없는 존재가 다시 살아나 있는 존재가 되어 봤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앞에서는요 자기 인생의 서글픔과 낭패를 논하지 마세요. 그것은 사치입니다. 우리는 내가 잘 되는게 진리가 아니예요.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걸로 진리가 끝이예요. 모든 진리는 마감되어 버렸습니다. 그 앞에서 목회가 되니 안 되니 우리 아이가 아프니 장로님 지금 허리 아파서 누워있고 이런거 어떤 것도 tv가 고장났니 이런거 있잖아요. 이거는 그야말로 극히 지극히 사소한 문제예요. 너무나 사소한 문제입니다. 입에 담을 필요도 없어요. 모든 것이 끝났어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끝났어요. 우리가 증거할 것은 그것만 증거하면 되요. 내 인생이 이렇게 화려하다 그거 증거하면 안돼요. 그 증거할 필요도 없고. 남이 나를 이렇게 괴롭히더라. 어떤 사람이 와서 내 돈 사기쳐서 가져갔다. 그런 것은 고민거리도 안 들어갑니다. 거지돼도 괜찮고 죽어도 괜찮고 중요한 것은 내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1일의 문제 가지고 제 3의 문제를 통해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관한 문제가 그게 진리지 내가 천당가는게 진리가 아닙니다. 내가 산다는게 진리가 아니예요. 영생 얻는게 진리가 아니예요. 예수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게 진리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뭐냐 하면은 있어도 없는 사람 되어 버리죠. 왜? 신경 뚝, 신경 쓸 필요 없기 때문에. 있어도 없는 사람 이게 투명인간이잖아요. 투명인간. 저승사자. 저승사자의 특징은 시키는대로 한다는 거예요. 천사들이 시키는대로 하는 거예요. 애굽에 천사들이 와서 사무라이처럼 칼 들고 와가지고 집집마다 다 쳤습니다. 쳤는데 그 하늘나라 사무라이가 딱 보니까 어떤 애가 갓난아이가 너무 불쌍해. 맞이인데, 첫 아이인데. 너무 이뻐. 이제 60일 됐는가 그래요. 두 달 되었어요. 죽일까요? 아닐까요? 죽일까요? 안 죽일까요? 맞이인데 맞아들인데. 죽일까요? 안 죽일까요? 답변해보세요.



죽이지요. 어차피 걔 커도 죽으니까. 죽이는 겁니다. 이것은 뭐냐 뭘 없앴느냐 하면 모델로 없앤거예요. 있음이 찾는 그 모델을 애초부터 없애버리고 그 죽음, 현장에 나타난 모델 무슨 모델이죠? 어린 양. 어린 양, 피흘린 어린 양 그게 유일한 모델이 되는 겁니다. 그게 유일한 모델이예요. 이걸 가지고 언약이라고 해요 언약. 요한복음 17장에 들어와서 16장 이야기를 왜 했느냐 하면은 이쪽과 저쪽에서 단절되어 있는 겁니다. 이쪽과 저쪽에서. 이쪽이 어느 쪽이고 저쪽이 어느 쪽인지 알아야 되니까.



이쪽은 여러분 성령받았으니까 이쪽은 우리 편 예수 편 합시다. 저쪽은 성령 없는 사람. 이쪽과 저쪽을 나눌 때 여기에 뭐가 되느냐 단절되거든요. 단절될 때에 왜 단절이냐 하면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 올수가 없는거예요. 왜 없느냐? 그것은 저쪽 사람들의 그 바닥을 조사해봐야되요. 바닥을. 바닥을 조사해보니까 그거는 뭐 되냐 하면 죄로부터 시작되더라 말입니다. 이 바닥이. 그들이 시도하는 그 모든 영광 그들이 시도한 모든 경건 바리새인이 시도한 율법 지키기 모세 숭배하기 모세대로 살기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은 뭐냐 하면은 바로 주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가 되는 겁니다. 죄니까 이거는 뭐냐 그 저주에서 뭐가 소복히 쌓이겠어요? 하나님의 저주가 쌓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선택의 여지가 없지요. 왜냐 단절되었기 때문에 이쪽은 없는 거예요. 이쪽은 없는 세계입니다. 없는 세계이니까 인간 세계에는 자기들 밖에 없으니까 따로 이쪽세계를 설정할 수 있는 그러한 그 자질이나 능력이나 그런 상상은 소용없는 거예요. 어떻게든 이쪽에서 자기들 있음에서 있음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그런 궁지에 몰려있습니다. 말씀은, 율법은 줬고 모세의 율법은 받았고 그 율법대로 살아야 복을 받는다고 하니까 온갖 아이디어를 끄집어내서 그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거예요. 그러나 지키면 지킬수록 그들은 점점 더 자기의 저주성만 노출될 뿐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걸 안한다고 해서 이걸 안한다고 해서 인간의 의식이 멈추어져 있는가? 그거는 아니지요. 안하면 또 딴거 생각한다니까. 딴거 생각해도 그것도 저주가 되요. 이래도 저주 저래도 저주. 왜? 갇혀있으니까. 있음의 세계에 갇혀있으니까. 우선 있는게 내가 있고 그 다음에 있는게 남이 있고 그 다음에 세상에 다 해와 달과 별이 있고 다 있음의 세계로 구성된 있음의 현실, 있음의 세상, 이것 외에는 다른 것은 의미 없다고 인간들은 이구동성으로 거기서 확정해버렸어요. 있음의 세계에서 만든게 바로 성전 있음이 아닙니까. 성전 있음.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걸 뭐라고 합니까? 헐어버려라. 이 있음을 뭐로 바꾼다? 없음으로 바꾸는거예요. 없음으로. 오병이어에서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그 기적에서 사람들은 뭘 따라오느냐 하면 떡을 먹고 배부른거죠. 떡은 어떻습니까? 떡은 있지요. 떡을 먹는 나도 있잖아요. 있음이 떡을 먹고 있음이 더 생존되고 크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예요. 살과 피를 마셔라. 식인종 되라는 말입니까? 육회 먹으란 말이예요? 선짓국 먹으라? 아니거든요. 살과 피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예요. 이거는 죽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죽음을 마셔라. 죽음을. 죽음을 마시는 거예요. 죽어라 이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런데 죽을려고해도 안돼요. 살아있는데 죽어버리면 또 기대하게 되요. 죽고 난 뒤에 뭐 주렵니까? 또 기대하게 되어서 안돼요. 그냥 죽어라. 그냥 죽어라. 죽어라 이 명령은 성립이 안됩니다.



사실은 인간에게는. 안되지만 왜 명령을 하시는가? 성령이 오게 되게 되면 정말 죽어요. 이때는 죽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은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의 이미 죽었던 이미 죽으신 그 예수님의 죽음으로 움직이는 살아가는 존재의 등장. 이게 성령받은 성도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그 죽음이 동력이 되어서 에너지원이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 나는 이미 죽었다고 죽었다고 하나님께서 확정지어 놓고 이 땅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120세. 너무 키웠나?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이 땅에서 살게 하는 겁니다. 저승사자지요 뭐. 투명인간이고.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유명한 말씀있죠. 내가 날마다 죽고 내 안에 누가 산다? 그리스도가 사는 것. 그것은 성령이 왔을 때 그거는 우리가 멈추세요 라든지 하지마세요 라는 말이 소용없어요. 주님이 그렇게 하겠다는 건데 어떻게 합니까. 주님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계속 적용시키겠다는데 누가 말려요. 말릴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네가 한다는 말이 아니고 네 속에 성령이 그렇게 하게 하신다는 뜻이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네 몸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있는 성전이라는 말을 먼저 하는 겁니다. 이거는 지금 성령을 안받았으니까 예수도 내가 믿고 십자가도 믿고 그 다음에 그러므로 그 다음부터 착한일하러 나서기. 누가한다? 성령받은 자기가 나서서 한다는거예요. 자기가. 자기가 나서서 한다고 하니까 이게 안 돼요. 무시로 기도가 안 돼. 시도때도 없이 기도가 안 되는 거예요. 시간 정해놓고 기도해요.



그럼 시간 정하면 오후 2시 하고 7시 하면 4시간 동안 뭐하는데? 4시간 동안 기도해야지. 쉬지 말고 복음 전하라. 어떻게 쉬지 말고 복음 전합니까? 잠 안자고? 꿈속에서 복음 전할까요? 성령께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바닥을 간다는 것은 계속해서 그 단절성을 성령께서 그 단절성을 계속해서 각인시킵니다. 확인시키고 확인시킵니다. 너 죽었잖아. 왜이래. 네 생각 뚝! 네 인생 뚝! 너 죽었어.



이럴 때 어떤 미친 인간이 생각나네요. 자기가 닭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외부에서 자기를 공격하게 되면 방어가 안 된다고 걱정하고 있는거예요. 그 의사가 6개월 후에 당신은 누구인가요? 닭이예요. 아니예요. 사람이예요. 사람이예요. 아이고 이거 나았습니다. 정신병원 나오자마자 다시 튀어 들어갔어요. 왜? 나는 내가 사람인줄 알겠는데 나는 내가 신자인줄 알겠는데 남이 나를 신자로 안 알아주면 나 어떡해 이거랑 똑같은 거예요. 제1의 요소와 제2의 요소가 여전히 살아 있어요. 여전히 살아있어.



주님의 성령을 받게되면 제1의 요소가 인간이 아니고 뭐가 되느냐 하면 죄인입니다. 우리가 이 있음이 자아내는 모든 죄를 성령이 와서 바닥까지 들추어내는 작업이 제1단계 아닙니까? 의인이 하늘에 계신 의인이 뭐가 됐다? 죄인이 됐다. 예수님의 이 단계를 우리에게 적용시켜 버립니다. 적용시킬 때 적용시킨 그 대상자는 제 2단계 그 죄인을 뭐가 된다? 죄 사함에 의해서 의인이 되는 그 과정에 이미 그 사람은 그 안에 들어와 있는거예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면 목사님 그걸 내가 알겠는데 나는 믿는데 다른 사람이 안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나오면 답없다 정말. 저 정신병을 어떻게 고치지. 그래서 나는 아는데 남이 내가 그런 믿음이 있다는걸 안 알아주면 어떻게 됩니까? 왜 남이 구세주입니까? 남이 구원자예요? 왜 남한테 물어보고 왜 남한테 물어봅니까? 왜 남한테. 왜 그걸 확인받으려고 합니까?



성령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찾아가서 하신 그 일은 제자들에게 이미 주신 그 모든 말씀, 이 말씀이 이제는 내 안에서 그 말씀이 위배되는 그 상황이 계속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깨우치게 될 때 우리는 이미 성령받은 사람입니다. 죄인 앞에 제 3의 요소 성령께서 십자가 이미 구원 하시고 십자가 주셨음에 1단계 의인이 죄인 되고 죄인이 의인되는 1단계 2단계 다 작용한다고 했지요? 작용하게 되면 우리한테 그대로 적용시키게 되면 우리가 죄 인임이 들어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거든요. 예를 들면 카게무샤라는 말 들어 본적 있습니까? 카게무샤. 카게무샤라 하는 것은 뭐냐하면 위장대역이라는 뜻, 또는 카게무샤 원래 뜻은 그림자 위상. 옛날 일본에 영주쯤 되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와 똑닮은 사람을 무사들을 쫙 한 몇 명 둬요. 해가지고 자기를 대역해가지고 그 사람을 여러사람을 보냅니다. 왜? 그래야 이게 암살을 안당해요. 암살을 당해도 자기는 살아남기 때문에. 스탈린이 그랬고. 어떤 사람들은 얼마전에 김정은 왔잖아요. 김정은 아니고 김정은 대역하는 배우라고. 진짜 정신병자가 있데요.



그런데 소위 성령을 받지 않은 인간이 자기 대역을 계속 양산해 만들어 내요. 자기 대역을. 카게무샤를. 계속해가지고 그림자 무사처럼 예수 믿는 나와 안 믿는 나와 자기가 만들어 내는 거예요. 하나 실패 하면 또 하나 밧데리 하나 집어넣는 것처럼 하나 없어지면 하나 가지고 들이밀고. 그런데 결국 어떤 인간 앞에 카게무샤 대리 위장대리를 한다는 것은 결국 이 것 가짜인 나도 여유분이 있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전략입니까? 이게. 성령이 오게되면 바로 내가 이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를 고백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에 예를 들어야돼요 그냥 하면 무슨 말인지 몰라.



‘맹세하지 말라’라는 말씀있지요? 맹세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딱 듣게 되면 내가 여기서 뭐를 발동 뭐를 출동시키느냐 하면 맹세하지 말라를 지킨 나와 지키지 못한 나를 발동을 시킵니다. 그래서 맹세하지 말라를 못 지키는 나가 없어져도 맹세하는 나가 있으니까 주의 말씀은 지킨 셈이 되지요. 이해 못하는 모양이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성경을 보잖아요.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할 때에 인간은 여러 가지 하는데 빛과 소금을 한 20% 가동, 20%는 빛이고 나머지 80%는 어둠이 되는 그런 나를 또 생각할 수 있고 70%가 빛인 여러 가지 경우를 우리가 생각해가지고 20% 인정하는 70% 가지고 복 타내겠다는 그것을 우리가 이 말씀 보는 순간 이런 자기 대역을 임의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말입니다. 만들어 내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죄인인 것을 성령을 통해서 보여준 바닥을 드러낸 하나의 증거가 된다 이 말이예요.



그런데 성령 받고 난 뒤에 나는 빛과 소금됐다 이 말은 이거는 뭐냐 하면 빛과 소금됐다면 카메라 한번 찍어보자. 빛과 소금인지. 그 사람 일거수 일투족 다 찍어 봐요. 빛과 소금인지. 아니거든. 인간은 자기 이익 자기부터 챙기게 되어 있지 자기 챙기는 빛이 어디있어요. 자기부터 챙기는 그런 소금이 있습니까? 소금이란 희생의 의미인데 미쳤다고 희생을 해요. 미쳤다고 희생을 해요. 자기 이득 없는데 일을 벌리지 않아요. 자기 손해 되는데 일을 벌릴 인간 없어요. 이 땅에서. 성령을 받고 뭘 받건간에. 그러면 자기 이익을 해 놓고 조금 미안하잖아요.



하지만 이익 받은거 중에서 조금은 그래도 10%는 어려운 사람 도와줬잖아. 이게 말하는 카게무샤라니까요. 자기가 봐도 이거는 온전치 못한 것을 알기 때문에 이거를 앞장세워놓고 뒤에는 진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주여 해놓고 진짜는 다치기 싫은 그 주인공은 따로 또 뽑는 그런 식으로 위장대행으로 도망치는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산다 이 말이죠. 누가? 성도와 성도 아닌 자 모두가.



그런데 성령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이 모델이기 때문에 그냥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 십자가 죽은 것 외에는 알지 않겠다 했잖아요. 어떤 예수입니까? 죽었던 예수님이거든요. 죽었던 예수님에서 예수님이 죽으셔야 성령이 와요. 죽었던 성령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드러내는 겁니다. 그래야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지요.



멀쩡한 예수님 드러나게 되면 제자들처럼 멀쩡한 것 붙들고 이렇게 된단 말이죠. 성령께서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심판하려면 멀쩡한 주님이 아니고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전면에 딱 내세우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내가 예수의 죽은 것 외에는 너희가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이야기 했다 이 말이죠.



그 십자가를 우리가 하루에 몇 초를 좋아할까요. 별로 안 좋아해요. 생각나지도 않고. 그러면 그 한 5초동안 좋아한다 칩시다 십자가. 그러면 나머지 24시간 5초 빼고 23시간 59분 55초는 뭐합니까? 누구 변명해요? 누구? 나 변명하잖아요. 나. 그때 누굴 모델로 삼습니까? 예수님을 모델로 삼아요? 다른 사람을 모델로 삼습니까? 다른 사람을 모델로 삼는 거예요.



장사하면 장사 잘 되는 옆에 가게 모델로 삼고 저 집은 왜 장사 잘 되지? 우리는 손님 하나도 안 오는데...항상 인간은 모델을 그냥 자연스럽게 평소에 자기가 욕구하는게 모델로 등장합니다. 모델로 등장해요.



그게 바로 악마가 욥에게 찾아오도록 우리 주님이 허락했지요. 마귀야 너 가서 욥 한번 건드려 봐라. 보낸 것처럼 지금도 주님은 악마를 우리한테 보내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외에 다른 모델을 계속 찾게 만듭니다. 찾게 만들고 왜 나는 저거 안줍니까? 애들 장난감 떼쓰는 것처럼 나는 저거 왜 안줍니까?



애들 보면 진짜 괴물 키우는 거예요. 분명히 약속을 했거든요. 호두과자 5개 주면 5개주고 해야될거 아닙니까? 그런데 5개 받고 빨리 가면 되거든요. 빨리 동생 받고 하면 되는데 받은 그 자리에서 형한테 두 개 더 줘서 7개주면 동생 5개 다 던져 버려요. 형아는 7개주고 나는 5개 밖에 안주고. 싫어 싫어. 처음에 받을 때는 감사하다가 다 던져 버립니다. 왜? 모델이 바뀌었으니까. 모델이 그 5개로 종결될지 알았지. 7개짜리 모델이 나왔어. 7개 짜리가.



교회에서도 없는데서 한 10명 오게 되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지요? 50명되면 처음엔 좋아합니다. 이거는 계속해서 모델 바꾸는데 마귀가 그렇게 해요. 마귀가 그렇게 만듭니다. 그래서 바닥을 드러내요. 우리의 바닥을 다 드러나게 만들어요. 역시 나는 있음의 한계에서 못 벗어난다. 뭐니뭐니해도 손에 쥐는게 최고다. 이 이야기 해놓고 왜 내속이 시원하지. 뭐 복음이고 진리고 예수던 간에 손에 있는 현찰이 최고예요. 채권도 싫어 현찰. 현찰 박치기. 현찰이 최고예요.



왜 그 본성이 바로 본성으로 인하여 아버지께 영광이 되지를 못하는 겁니다. 자, 그런데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니까 개인이 기도하게 되면 자기 개인 기도밖에 기도하지 않지만 예수님이 기도하면 포괄적이예요. 주님의 모든 계획 전체가 다 한덩리가 되어서 기도 내용에 담깁니다. 기도 내용에 담기는데 기도 내용의 초점은 뭐냐? 전체를 아우르지만 초점은 달랑 하나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 2절에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그다음에 뭐냐 하면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죠. 택한 백성.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와야되죠.



성령 줄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아무나 성령 주지 않아요. 성령 줄 때는 근거가 뭐냐 하면 예수님의 기도에 부합되어서 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예수님의 기도인데.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무조건 ok입니다. 성취돼요.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는 이거는 마귀가 흔들어도 인간이 흔들어도 우리가 도망가도 기도가 따라오죠. 기도의 응답이.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요나잖아요. 요나의 내용은 구약의 요나서의 내용은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요. 계속 죽음입니다. 계속 죽음이예요. 처음의 죽음은 다시스로 가다가 잡혀와가지고 잡혀와가지고 죽지요. 요나가 날 죽이라고 하지요. 선원들보고. 왜?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들한테 피해가 가니까 미안하니까 날 그만 죽여버리세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나는 죽어요. 진짜 죽는줄 알았죠? 죽은줄 알았는데 살아났어요.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게 성령이 오게 되면 요나의 내용이 오게 되어 있어요. 왜냐면 요나의 완성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요나를 요나의 표적을 예수님이 완성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뜻이 들어왔다는 말은 요나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겁니다. 요나에게 들어오게 되면 나는 이미 죽은 자인데 이게 살아있어요.



이게 본인이 알아요. 본인이 닭이 아니고 인간인지 본인이 알아요. 그런데 이걸 남한테 이야기 할 수가 없어요. 왜? 본인이 아는데. 이게 남들한테 참 좋은데 뭐 말할 수가 없네. 이게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요. 이미 자기는 죽었어요. 죽었는데 누가 살렸어요? 고기 큰 고기 물 속에서. 하나님이 살렸잖아요. 죽었는데 살렸다고요. 이미 죽었는데 살았어요. 죽음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죽었는데 살았으니까 살았다하는 것은 사명 때문에 살았다 여기고 사명을 전합니다. 사명을 전하는데 원래 받은 사명이 뭐냐? 40일 되면 다 망하라고 했는데 이게 망하지를 않아요. 사명이 뭐 잘못되었어. 전달 과정에서 잘못 되었는지 사명이 주신 분과 하청업자가 본사에서 받은 설계도와 달라요. 자기는 사명대로 했는데 사명대로 그 결과가 안 나왔어요. 도리어 회개했다는 것을 처음에는 그런 언급이 없었어요. 그들은 전하게 되면 회개할 것이다. 그 회개할 것이다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그게. 원래 그냥 망하기 때문에 망한다고만 이야기 한다 했지 망하면 그들이 심지어 닭부터 해서 모든 사료까지 다 끊고 짐승까지 해가지고 다 금식했어. 그래서 살 것이라는 내용은 없다 이 말이예요.



없으니까 그 죽음이 누구한테 갔느냐 하면 그 죽어야 될 죽음이 요나한테 와버린거예요. 차라리 저를 죽이옵소서. 저를 죽이옵소서. 요나가 자살하려고 합니다. 계속 죽음 이야기예요. 죽음의 길이 바뀐거예요.



여기서 아는 죽음과 그 다음에 아는 죽음은 또 달라요. 여기서 아는 죽음은 내가 나빠서 죽어 마땅한 죽음이라면 이거는 뭐냐하면 내가 주님의 사명과 틀려버리니까 이건 내가 살아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명 자체가 내가 아는 사명과 내가 아는 주님과 다르기 때문에 삐져셔 자살해버리는 거예요. 할 때 이 죽음은 바로 그들에게 니느웨에게 주었던 그 심판이 요나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 요나한테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북이스라엘에게 전달됩니다. 왜? 북이스라엘이 선지자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회개치 않으면 너희도 망한다는 것을 니느웨가 회개하면서 보여주는 거예요.



지금 요나가 왜 삐졌습니까? 요나는 자기가 있음이예요 있음. 그런데 니느웨는 왜 심판에서 면제되었어요? 있으면서 그들은 내가 있는 것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죄 지음의 있음이니까 우리는 저주 받아도 마땅하다 라는 것을 금식으로 보여줬거든요. 어느 쪽이 주의 뜻입니까? 있음을 유지하는 것이 주의 뜻이 아니고 이게 우리가 진작에 없어져야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북이스라엘 요나가 아니고 바로 니느웨를 통해서 보여 준거예요. 요나는 거기에 하나의 심부름꾼이고.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네가 구원이 아니고 언약의 살아있음. 너희의 살아있음이 아니고 내 속에 우리 속에 언약이 살아 있기를 바래요. 언약은 뭡니까?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언약이죠. 그 죽었다 살아난 것이 무슨 뜻이예요? 의인인데 죄인 찾아왔다가 그 죄인을 뭐로 바꾼다? 의인으로 바꾸어서 데려가는 그 작용이 현재 네 속에서 가동되고 있다.



따라서 너는 의인되야돼? 죄인되야돼? 죄인 되야 되는 거예요. 죄인되면 죄인이라는 것은 있음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바닥에 드러나 있는 꽉 차있는 죄는 죄다 다 드러내는 겁니다. 그게 바로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냥 . 편하게. 내 잘난 모습으로 내 자존심 위해서 그걸 뭉치면 내 영광을 위해서. 내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이용하고 예수님 이용하고 남을 이용하고 사기치고 전부다 자기 잘 되기 위해서예요.



우리는 우리 잘 되기 위해서 내 가정 내 자식 잘 되기 위해서 내 남편 잘 되기 위해서. 전부다 내 교회 잘 되기 위해서. 항상 그겁니다. 내가 깃발처럼 중앙에 누가 꽂혀 있어요? 내가 꽂혀있는 이 인생이 바로 주님을 죽게한 바로 그 낮짝이였다는 것을 성령이 와서 다 뜯어내는 거예요. 뜯어내서 그 낮짝을 그대로 공개하는 겁니다.



그 뜯길 때마다 내 영광은 이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요. 그게 바로 주의 영광이잖아요. 나는 믿을게 못 된다는 것을 알지요. 그게 바로 주님에 대한 믿음 아닙니까. 같이 있으니까요. 혼자 있으면 용써 해봐야 혼자서 아무리 천국 가봐야 혼자서 아무리 천국 가봐야 혼자거든요.



김정은이라는 그 사람이 평양에서 혼자서 가상 문재인하고 미국하고 대화해봐야 안 알아주잖아요. 실제로 판문점까지 내려왔잖아요. 판문점 왔으면 혼자예요? 둘이예요? 둘이잖아요. 둘. 어떤 노래보면 가사 이런게 있어요. 운명을 알아낸 것이 둘이다 뭐 이런 노래 있어요. 그 노래 알아요? DNA라는 노래. 방탄소년단 노래.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 가사를 잘 모르겠다만. 둘이 있다는 것은 혼자 있는게 아니잖아요. 혼자 있으면 신자 아니고 둘이 있으면 신자고 그래요. 혼자 있으면 성령 안 받은 사람이고 둘이 있으면 성령 받은 사람이예요 둘. 십자가 지신 분의 영.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뭐가 아니다?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다.



자, 그 다음에 계속해 봅시다. 목적은 정해졌습니다. 모든 힘이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성령을 줘서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어떤 경우냐 하면은 예수님이 가셨던 그 경로를 경로에 포함이 되는 거예요. 포함이. 이게 수도 파이프 관인데 수돗물이 흐른다. 여기서 뭐 이빨 좋으라고 불소 가루를 탄다면 그 불소가루는 어디에 흐릅니까? 이 관 밖에 나갑니까 안 나갑니까? 안 나가지요. 이 수도관 타고 계속 흐르겠지요.



이게 언약이라면 이게 성령이라면 성령 안에 우리는 이 하나의 죄인으로서 계속 흘러가는 거예요. 이 안에. 포함해서 덮친다 했잖아요. 성령세례 안에 우리가 계속 흘러가는 겁니다. 흘러가고 있을 때 이거는 혼자가 아니고 둘이 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둘이 되게 되면 여기는 뭘 하느냐 하면 아까 그 방탄소년단처럼 운명을 알고 원천을 알고 원리를 알고 세상에 모든 것이 어떻게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이제는 아는 거예요. 왜냐면 왜 아느냐 하면 자기 중심, 자기 이익 중심으로 안 살아가기 때문에. 자기 이익중심으로 안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성령께서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어떤 교회에서 한 20억되는 예배당을 지었다. 혹시 복음을 아는 목사가 있다면 있는 사람 같으면 짓지도 않겠지만 20억 돈도 없겠지만 하여튼 지었다 칩시다. 교인들이 자기가 정성해가지고 영광 돌린다고 난리도 아니겠지요. 그런데 목사가 여러분 이거 이 예배당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이거는 뭐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그 원천과 운명과 우리의 미래를 지금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정성의 집결인 예배당이 거기에 빠져가지고 왜? 자기가 돈 냈으니까. 그리고 내 교회니까 우리 교회니까. 그것이 뭘 가리는 거예요. 바로 십자가를 가리는 거예요.



그러면 교인들 중에 손들고 그래도 예배당 많이 지어서 십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 알리면 더 좋지 않습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많은 사람에게 십자가 알려버리면 그 교회는 점점 더 커지겠지요. 지금 그걸 기대하잖아요. 그런 성과를 기대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점점 더 그 교회는 진짜 성과가 계속 남아 있는 한 뭐가 가리워집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십자가가 십자가를 가려버리는 겁니다. 십자가 복음이.



그러면 뭐 목사님 나보고 뭐 어떡하란 말이예요? 이 불소 알갱이 덩어리가 본인이 어떡하라는게 없어요. 왜냐? 이 수돗물에 휩쓸려가기 때문에. 휩쓸려가잖아요. 그러면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성령께서 유발시킨 상황들이죠. 나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이. 이걸 가지고 오늘 본문에 기도에 뭐냐 하면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말이죠.



권세가 왔을 때 하나님께 권세 있는거하고 아들에게 권세 있는거하고 달라요. 하나님께 권세 있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끝이겠지만 예수님에게 권세 있어버리면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군요 하고 십자가를 증거하는 힘, 십자가를 증거하는 용도의 관계가 형성되는 겁니다. 내가 예배당 이거에 미쳐서 하는 이것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군요 하는 거예요. 내가 자식에 미쳐서 자식에게 흠씬 빠졌을 때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가리는 일이군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자식 사랑하지 말까요? 하는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자식을 안 사랑합니까? 그런 재주 있습니까? 그런 재주 있거든 사랑하지 마세요. 우리는 자식 안 사랑할 재주가 없어요. 자식을 남의 자식 볼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 없습니다. 아무리 애 먹여도 내 자식하고 남의 자식 구분할 줄은 다 알지요. 그렇죠? 구분할 줄 알잖아요. 구분한다는 것은 차별화 시킨다는 거예요.



내 아이가 팼을 때는 학교에서 패버리면 용감한 다윗 같은 인간이 되지만 얻어맞고 왔을 때는 그 다음에 그 애는 깡패가 되는 거죠. 모든 것이 내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이것을 이 수도관의 불소 알갱이처럼 같이 하면서 그걸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 수돗물이라 하는 이것이 수돗물이 아니고 뭐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이예요.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살과 피. 예수님의 살과 피 통해서 우리는 흐르고 있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오늘 밤부터 남부지방 비 온다고 하는데 비는 왜 오느냐? 비는 하나님에게서 오는게 아니예요. 바로 예수님에게서 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비가 오는 겁니다. 모든 만물의 권세는 아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 없는 비는 없습니다. 왜그러냐 하면 지금 시대가 십자가 이후 새 언약의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약을 앞장세워서 하는 거예요. 언약을.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어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원수한테 밥 퍼주라는 이야기예요? 밥차 만들어가지고 없는 사람 도와줘라 그런 이야기 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남편을 사랑하라. 자식을 사랑하라 뭡니까? 십자가 복음을 전하라. 참 갑자기 기분 좋아지죠. 왜? 돈이 안 드니까.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잘나고 못나도 넌 죄인이야. 그걸 증거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게 우리가 살과 피 속에서 불소가 움직이기 때문에 불소 덩어리가 움직이기 때문에 이것도 시도 때도 정한게 아니예요. 성령의 지시 따라 전해야 되요. 안 그러면 자기 오기가 되고 또 어떤 성과를 기대하면서 억지를 부리는게 되니까 전하면서도 고맙지도 감사하지도 않아요. 복음을 전할 때 성령으로 전하는 느낌이 뭐냐 하면 전하는 그 모습을 보고 본인이 주님께 감사가 되어야해요.



내가 전하니까 몇 명 더 건졌다가 아니라 내가 이런 나같은 이런 돼지같은 인간 속에서 이 더러운 인간 속에서 이런 고상한 내용의 은사가 울려퍼진다는게 그게 이게 나온다는게 어떻게 죄인을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사용하십니까? 본인이 깜놀. 본인이 깜짝 놀라야 되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두 시간 동안 돈 들여 가지고 밥 퍼주면 먹였는데 네가 안 믿어? 이럼 성과가 되어 버리니까.



이것은 안 되지요. 이것은 마귀짓이지요. 하면서도 어떻게 내가 이 무식하고 모르는 내가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진짜 로마서에 나와요.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여 이렇게 나오잖아요. 어떻게 아름다운 소식을 그게 복음 아닙니까. 복음소식을 상대방의 반응도 상관하지 않고 서슴없이 편하게 전할 수 있을까? 이거는 성령의 도움이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성령의 일의 특징이 있어요. 항상 고맙고 감사해요. 뭘 하든지 고맙고 감사해요. 어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결정하지 않았는데 주께서 이렇게 조성해 내시는 그 손길이 어떻게 고마운지 지금 죽어도 괜찮은데 안 죽이시고 일을 더 시키시고 내 죄를 더 들추어 내셔서 죄를 아는 마음으로 뭘 보느냐 하면 죄인이니까 볼 거 없고 나한테 볼 거 없어요. 없고.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했다는 그 죄사함의 실제성. 지난 낮 설교에 이야기 했지요. 인간의 자아는 뭐의 실제성이라고 했습니까? 힘의 실제성이라고 했지요. 힘의 실제성과 그 다음에 설교 끝에 부분에 했어요.



뭐냐하면 죄사함의 실제성을 충돌시킨다 했지요. 이 현실세계에서. 세상은 모든게 힘이예요. 힘이 있어야 사니까. 힘이 있으면 되니까. 이것밖에 모르는데 있어서 주께서는 힘을 주는게 아니고 죄사함의 실제성. 힘이 진짜다 힘이 현실이다 힘이 전부다 할 때 이쪽은 뭐냐. 죄사함이 진짜다. 죄사함이 진짜다. 죄사함이 진짜고 나머지는 진짜가 아니고 그건 악마의 허망한 것들이다. 허망한 것들. 죄사함만 실제다. 죄사함이 되려면 주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를 따로 만나 계속 만나게 하고 부딪히게 하고 상황 만들어 가면서 내가 바로 내가 얼마나 나를 구원하느냐가 내가 바로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고백케 하는 겁니다.



둘다 십자가만 바라보는데 부부생활이 안 좋을래야 안 좋아질 수가 없지요. 여보 내가 정신이 없어 현금 지급기에서 현금 50만원 빼놓고는 그냥 가가지고 다시 가보니까 돈 50만원 날라갔더라. 아내가 뭐라고 합니까?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지. 뭐 싸움이 일어날 이유가 없지요 싸움이. 싸움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니까요. 잘했군 잘했어 하는데 뭐. 등신 아니면 성령 받은 사람. 둘 중에 하나 둘 중에 하나예요. 지금 내가 하는 소리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서 잘했군 잘했어 하는 것인지 진짜 알고 잘했군 잘했어 하는 것인지.



다 이루었다 하는 그 성령이 오게 되면 마지막 영이 성령이예요. 다 이루어진거예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언약을 우리에게 그냥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장착시켜버린겁니다. 그래서 지난 낮설교에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 복음을 빨아당기는 장치가 장착되어 있는지 한번 보라고. 복음을 쑥 빨아당기는. 그 복음 빨아당기는거 없는 사람은요 가족이라도 이야기 할 것도 별로 없어요.



성령 안 받은 사람한테 이야기 할 일이 뭐 자기가 허세와 허풍밖에 아무것도 없어요. 자기가 잘난줄 알아요. 자기가 잘난줄 알아요. 꼭 댓가 바라고 자기가 한걸음 더 월등하게 된 것처럼 우수한 것처럼 있음이 있음의 티를 내잖아요. 그럴 때 성도는 딱 보면서 물끄러미 그냥 보지말고 물끄러미 봐야되요. 보면서 당신 사랑이나 내 사랑이나 똑같은데 단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찾아왔음과 찾아오지 않았다 그 차이뿐이예요. 사는 것은 똑같아요.



힘의 실제성, 힘 있으면 자랑질 하고 없으면 음매 기죽어 사는게 있는데 성도한테는 죄사함이 힘보다 더 중요하니까 이런 복이 어디 있어요. 이런 행운이 어디 있습니까? 로또 천번을 해도 되는가. 안 되는 거예요. 이런 복을 받은 것을 어떻게 내가 죄 짓는다고 날라가는 것도 아니예요. 왜? 오히려 더욱더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무심코 있어도 우리는 나만 생각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고개 끄덕이면서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대한 자기 긍정이죠.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 오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우리를 책망케 하신다는 그것이 날마다 우리의 현실이 됐다는 그 자체로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알게되었습니다. 우리의 영광말고 주께서 기쁘고 하나님이 기쁘다면 더는 소망 갖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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