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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9 09:06:40 조회 : 140         
20181005a 울산강의-레위기 18장 : 토해냄 이름 : 한윤범(IP:14.39.134.5)
20181005a 울산강의-레위기 18장 : 토해냄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18장 24절.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가 성경을 믿어야 될지 아니면 무시해야 될지 당황스럽게 되는 대목들의 나옵니다. 그걸 제가 적어보게 되면, 땅이 토한다는 말이 나오지요. 땅은 그냥 흙으로 만들어졌잖아요. 흙이 무슨 혀가 있습니까, 입이 있습니까? 왜 땅이 토해요? 참 희한한 이야기가 적혀있지요.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서 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것은 이 성경이 비현실적인 내용의 책이 아닌가? 우리는 현실을 살고 있는 데 성경은 비현실적인 책일 때 우리가 어느 것은 무시하고 어느 것을 받아들여야할지 상당히 모호해져요. 그래서 현대과학에 맞는 것, 윤리도덕에 맞는 것은 받아들이고 과학적 인식에 안 맞는 것은 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걸 제가 설교에서 했는데 반은 믿고 받은 안 믿는 것은 아예 안 믿는 거예요. 우리가 성경을 보고 믿고 안 믿고 정할 수가 없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이겁니다. 범인을 잡는 형사가 범인이다. 드라마를 약간 이야기하게 되면 내가 지어낸 드라마지만, 형사가 경찰에 입문해서 잘하고 있었는데 임무 중에 머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기억상실증에 약간 걸렸어요. 한 일주일짜리 기억상실증에 걸렸다칩시다. 그러다 일주일 뒤에 사건을 맡았는데 도대체 범인을 모르겠어요. 그래서 옛날에 하던 촉으로 범인을 잡았는데 모든 증거가 누굴 가리키느냐? 나를 가리킬 때에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나를 범인으로 가리킬 때 과연 자기를 범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잘 안 되지요. 범인 잡는 형사가 그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라면 어떻게 범인을 체포할 수 있겠어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 범인을 아담으로 봅시다. 창세기 3장의 범인이 아담이죠. 이 세상이 힘들고 사는 게 피곤하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들면 몸이 점점 더 말을 안 들어요. 쪼그라든다고 할까요, 몸이 회복할 수 없어요. 한 방향으로 쳐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백날 해독주사 맞아봐야 소용없어요. 범인이 아담이라면 어떻게 아담이 자기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아예 단정 짓습니다. 죄란 혼자 사는 거예요. 처음에 인간을 만들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있었어요. 그 말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창세기 2장에서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는 명령 앞에 서있습니다. 잔소리지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어떤 잔소리도 인정하지 않아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거예요. 본인이 형사라는 거예요. 옳고 그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해야 천국 가고 어떻게 해야 지옥 가는지 그 정도는 내가 상식으로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있는 기준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본인이 만들었지요. 누구와 의논했어요? 의논한 적 없어요. 아무와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날 때부터 인간은 혼자 사는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아담이 범죄 하고 난 뒤에는 모든 인간은 그 범인의 자식들이에요. 범인의 반복들입니다. 혼자 사는 것은 타고난 거예요.

여러분 다 손자, 손녀 키울 연세 됐지요. 아이들 보세요. 날 때부터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의 식성이라든지 밥 때 되면 알아서 찾아옵니다. 밥 달라고 땡깡을 부리죠, 울고. 젖 달라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젖 달라합니까? 무슨 주의 영광이 있어요. 부모한테 효도하기 위해서 젖 달라합니까? 그런 것 없어요.

인간 제대로 봅시다. 인간은 자기 사는 것, 그게 시작이요 그게 끝입니다. 날 때부터 혼자 살아요. 누가 만들어졌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그것 관심 없습니다. 관심 있다할지라도 그 밑바닥에는 내가 혼자 사는 데 필요한 정보, 그런 지식 같으면 내가 알아서 찾을게. 하지만 나 혼자 살겠다는 강한 의지는 양보할 생각 전혀 없다, 나는 포기할 생각 없다.

그것은 결혼하고 난 뒤에 부부생활하면서 확실하게 점점 느끼죠. 절대로 상대보다 궁극적으로 양보한 적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서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양보하더라도 내 행복이 돌아올 조건 하에 양보를 해주는 척하지요. 간 내놓고 쓸개 빼놓는 철딱서니 없는 일은 신혼 초에나 있지, 무슨. 누굴 등신인 줄 아나. 절대로 양보한 적 없습니다. 하여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자기를 누구한테 양보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요.

만약에 태풍 오잖아요. 내일 울산 한복판을 태풍이 지나가는 데 주차를 잘해놨는지 걱정이 된다. 그건 내일까지 살아있는 사람한테는 걱정거리가 되지만 오늘 열두시 반쯤 돌아가시기로 돼있는 요양병원 노인네한테는 태풍만 아니라 지진까지 진도 8.5로 와서 내가 죽는 마당에 다 죽여 버려라. 이런 심술을 부릴 수 있어요. 내가 죽는 마당에 내일 태풍 오고 노벨상 누가 타고, 아무 관심 없어요. 류현진 가을야구 1승하고, 내가 죽는 마당인데.

따라서 모든 인간은 아래지 나보다 위에 서서 나를 지시하는 자는 내가 용납하지 않겠다. 이게 범인이에요. 그런데 모든 인간은 그렇고 그런 인간이어서 서로 동의하는 데 땅은 동의가 안 돼요. 땅은 하나님 손에 있는 자연물이기 때문에 땅은 누구 지실 받느냐 하면, 땅은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 앞에 서는 게 아니고 모든 인간은 자기가 내려다보고 사는 것을 본성으로 태어났지만 땅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무대거든요. 땅은 주께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이게 창세기 4장에 나오지요. 몰래 형이 동생을 죽인 사건이 나옵니다. 최초의 범죄는 살인사건이었습니다. 최초의 범죄가 살인사건이란 말은, 최후의 범죄도 살인사건이란 말이죠. 최초의 범죄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거거든요. 아벨을 죽이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고 동생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동생을 죽입니다. 이 세상의 속성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걸 용납하지 않는 세계에요.

마지막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을 죽이는 사건입니다. 살인으로 시작해서 모든 것이 살인으로 마감되는 세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궁극적인 살인이 아니에요. 진정한 살인은 사람이 하나님을 죽이는 그것을 구현한다고 할까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땅에 사람이 번식하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왜 사람들은 성경을 비현실적인 책, 전혀 현실과 상관없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아무 도움 안 되는 그런 책으로 보는 이유가, 나부터 살아야 되겠다는 것이 철두철미하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사는 것이 진리고, 내가 사는 것이 복음이고, 내가 영원토록 잘 되는 이것이 옳다. 그래야 돼. 너 말고 나, 나. 내가 우선 살고 잘 돼야 된다는 것은 본성적으로 철썩 같이 진리로 확정했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한테 그다지 필요한 책이 아닙니다. 현실과 괴리가 있고 현실에 보탬이 안 되는 책이라고 우리는 슬그머니 자꾸 치워버리죠. 남는 건 뭐냐? 나만 달랑 남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땅이 토해낸다고 했거든요. 그게 형이 동생을 죽였단 말이죠. 아무도 없었어요. 그 벌판에 두 사람이 나갔다가 한 사람이 죽었으니까 집에 한 명만 돌아왔어요. 보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보는 사람은 없었는데 보는 쪽은 있었어요. 그게 땅이에요. 피를 낸 모양이죠. 형이 짱돌로 쳤는지 피가 쏟아졌어요. 그래서 그 피를 머금은 땅이 누구한테 고소하느냐 하면, 하늘을 향하여 고소합니다. 이것을 인간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죠. 땅과 하늘이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샌드위치가 뭐예요? 두 조각의 빵 사이에 내용물이 들어있지요. 햄버거도 마찬가지고.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들어있는 햄버거 속 같은 거예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는 겁니다. 바다 끝에 갈지라도 땅 끝에 갈지라도 인간은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요 근래 제가 자주 쓰는 멘트인데, 세상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갇혀있다. 성경에서는 세상이 갇혀있다고 해요. 하늘과 땅 사이에 갇혀있는 거예요.

그런데 세상이 흘러간다는 것을 어디서 이야기하느냐 하면, 유행가 가사에 다 들어있어요. 청춘을 돌려다오, 하잖아요. 현철이가, 나훈아가. 청춘을 돌려달라는 거예요. 아주 애통해해요. 또 이애란이 불렀던 <백세인생> 이 노래들의 특징이 뭐예요? 그리고 <봄날은 간다> 아는 것 다 나온다. 전부 다 수평적이에요. 단선적이에요. 과거에서 우리 알지 못하는 미래로 그냥 철로 위에 기차 달리듯이 인생이란 그렇게 흘러간다는 겁니다.

여러분, 종지기에 잣이 흘러가는 거예요, 갇혀있는 거예요? 그냥 동동 뜨는 거죠. 폐쇄된 것, 갇혀있는 거예요. 세상은 악마의 힘에 갇혀있는 겁니다. 신약에 보면 그걸 저주에 갇혀있다, 율법에 갇혀있다, 죄에 갇혀있다, 죽음에 갇혀있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동그란 구라고 보면 돼요. 들여다보면 다 보이는. 그게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이었어요. 동그란 구에요. 죽으면 어디 가느냐? 땅 밑에 음부란 곳에 가요. 쓰레기장이에요.

땅의 기능은 사는 용도만 아닙니다. 파먹는 기능이 있어요. 인간은 죽는다고 딴 데 가는 게 아니고 땅에서 와서 그냥 땅으로 가는 거예요. 그걸 창세기 3장에서 흙에서 와서 흙으로 환원되는 거예요.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니고 갇혀있으니까 갇혀있는 관점에서 보게 되면, 인간이란 흙이 뾰루지 돋아나는 것처럼 사람 되었다가, 그러니까 미술시간에 진흙으로 사람 모양 만들 듯이 지겹다고 뭉개버리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 잠시 나온 것을 물방울, 안개 같다고 하지요. 잠시 등장했다가 없어지는, 날아간 겁니다.

요 그래 끝난 <미스터 션사인>란 드라마가 있는데 구한말 시대에 의병들의 활동을 그린 드라마에요. 의병들이 희생적으로 대한제국을 살리기 위해서 활동했고, 거기에 칠적, 오적 나오지요. 이완용부터 해서 나라 팔아먹은 인간들 있잖아요. 이게 세월이 흘러간다고 보면 참 분통 터지지요. 그때 고종이 잘만 했으면 일본한테 압제 안 당했을 거라고 후회하지만 세상을 흘러가는 게 아니라 갇혀있는 것으로 보게 되면, 일제한테 지배당하든 지배 안 당하든 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별 의미 없어요.

지금은 일본 통치에서 해방됐으니까 그때 고생, 고생했다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완용이 나쁘고 의병들은 훌륭하다고 보이지만 20~30년 후, 50년 후에 2018년도 울산에 사는 여러분 보세요. 얼마나 여러분들의 바보 같이 보이겠습니까. 그 땅 팔고 이것 샀으면 떼 부자 됐을 텐데. 사람들이 그런 머리가 안 돌아간 모양이라. 그러나 50년 전에 미리 알아서 부자 되는 것보다도 지금 자기 인생 만족하게 되면 50년 후에 부자 되는 것, 그런 것 귀찮아요.

지금 만족하면 지금 감사하게 되면 횡재한 겁니다. 과거 너무 애달아하지 마시고, 미래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고 잠간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이 자체에 우리가 의미를 알아야 돼요. 우리가 왜 뾰루지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지, 누가 그렇게 했는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돼야 됐는지, 이 땅에 왜 태어나야 됐는지 그 이유를 알면 돼요. 그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아까 땅이 추궁한다고 했지요. 땅에 일어난 모든 범죄는 땅이 알고 하늘이 알아요. 땅이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땅의 속성을 알아야 돼요. 땅은 누구 말을 듣느냐 하면, 이건 어려운 게 아니고 간단한 거예요. 땅은 하나님과 내통돼있어요. 그래서 땅에서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무늬, 먹구름이 지나가면 땅에 그림자 생기잖아요. 하늘의 뜻을 반영해주는 무늬라든지 색깔이라든지 형태 같은 걸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게 땅의 현상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인간이 에덴동산에 살다가 근본 된 토지로 내려왔거든요. 토지 공개념은 대구강의에서 강의했지요. 땅은 하늘에서 어떻게 내정됐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으로, 약속으로. 약속이 실현되는 무대입니다. 이 무대에 하나님께서 언약 또는 약속, 어렵습니까? 그럼 계약이 실현되는 무대에 그때마다 주인공을 보냈습니다. 그 주인공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으로 돼있단 말이죠.

이 땅에 하나님의 본뜻을 복사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림을 그리겠다, 하나님의 뜻을 복제하겠다. 땅은 빈 땅일 수가 없어. 땅에 하나님의 계획된 프로젝트가 실행에 옮기는 거예요. 그러면 두 가지가 나와요. 하나는 복이 나오고, 다른 하나는 저주가 나옵니다. 결국 나중에 세상이 망하면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지는 것을 이 땅을 통해서 인간 역사를 통해서 미리 보여주는 거예요.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 어떻게 이 땅에 실현되느냐 하면, 바로 애굽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애굽에서 토하듯이, 토하는 것 알지요. 누굴 토하느냐 하면, 이스라엘을 토해냅니다. 마치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는데 물고기가 견디지 못하고 니느웨 앞 바다에서 토해내서 도착해보니까 그게 바로 울산 장승포라. 이건 완전히 운임도 안 받고 운송수단 됐어요.

그처럼 애굽 나라가 이스라엘을 성숙하게 만들고 이스라엘을 만들어내는 공장 같은 역할을 한 겁니다. 하나님을 도전하고 배격하고 잡신을 믿고 미신을 믿는 애굽 나라가 다 쓸데없는 게 아니에요. 지옥 같은 세상이 쓸데없는 게 아닙니다. 세상 자체가 공장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지고 톡하고 토해내게 돼있어요. 그것이 우리가 아는 이야기로 분리잖아요. 이걸 오늘 성경에서는 거룩이라 합니다.

이제 머리 좋은 사람은 아실 거예요. 죄냐, 죄 아니냐를 생각해봅시다. 제가 뭐가 죄인지 자꾸 거론하는 이유가,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개념과 단어를 지가 범인이면서도 지가 형사노릇하면서 나쁜 놈 잡겠다고 설치는 데, 그 인간이 나쁜 놈이거든요. 내 안에 들어있는 벌레, 내 안에 들어있는 나쁜 생각, 악한 생각, 내가 천국 가는데 방해되는 지옥적인 요소를 핀셋으로 족집게처럼 뽑아내겠다고 설치는 내가 바로 지옥 가는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는 거예요.

뭘 뽑아냈습니까? 이놈은 나쁜 놈이라고 뽑아냈는데 이건 나쁜 생각, 이건 옳은 생각 그 작업하는 당사자가 나쁜 인간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선과 악을 본인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악과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버린 자식이에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토해내면 애굽은 자동적으로 뭐가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입장에서 애굽은 버려진 대상이 되겠지요. 이게 바로 지옥 아닙니까.

그냥 애굽 하나만 있으면 뭐가 지옥인지 뭐가 천국인지 누가 지옥 가는지 누가 천국 갈지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께선 애굽을 다루고 때가 되매 숙성시켜서 그 안에서 애굽과 같이 살면서 전혀 애굽 같지 않은 비 애굽적인 그러한 균열 또는 차이, 갈등, 대립요소와 같은 결이 나오도록 해놓고 결국은 애굽이 못 견뎌서 토해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 사건이 바로 출애굽이에요. 출애굽을 두 자로 하면 구원이죠.

그럼 제가 여러분에게 묻기를, 구원이 내 일입니까, 주의 일입니까? 주의 일이죠. 그럼 나는 뭐냐 하면, 구원받은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어떤 대장간에서 호미를 만든다고 칩시다. 대장간이 호미 겁니까, 아니면 대장장이 겁니까? 대장장이 것이죠. 대장간은 호미 것이 아니죠, 그렇지요. 분명하지요. 그럼 교회 누구 겁니까? 교회를 하나님 것이라 하지 말고 우리 것은 아니다. 말을 제대로 합시다. 인간의 것은 아니죠. 하나님 것이라 하면, 하나님 것이라 여기는 우리 겁니다, 라고 꼼수를 쓰기 때문에 아예 제거합시다.

이건 우리 것이 아니에요. 교회됨은 우리의 의사도 아니고 우리의 뜻도 아니고 우리의 소망도 아니고 우리의 기대도 아니에요. 우리는 범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나 홀로, 최후로 영광 받는 것을 목적으로 움직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그런 게 있어요. 심지어 하나님도 우리의 경쟁자로 여기는 겁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아주 못 돼먹었어요.

주님의 구원을 누가 방해하느냐 하면, 우리자신이 방해해요. 왜 구원하는 데 주님 혼자 했습니까? 그것 때문에 삐지는 거예요. 참 천국 가게 해도 불만이라. 나한테 묻지도 않고 내 장기 발휘하지도 않고 그냥 천국 넣어줬다고 그게 그렇게 불만이에요. 새순교회도 그렇지요. 새순교회 불만도 그거지요. 왜 나 같은 인간을 천국 넣어줍니까? 좀 나한테 시키지. 헌금 많이 해라, 봉사해라, 이런 것 좀 시키지.

이것저것도 없이 태풍 올 것 다 오고 몸 아픈 것 다 아프고 나중에 죽어보니 천국이라. 죽어서 천국 가면 안 돼요. 살아있을 때 천국인 걸 알아야 되니까. 이럴 때 우리는 잘난 나한테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내 미래와 운명을 확정지었습니까, 하는 거예요. 그럴 때 너희 구원을 인함이라, 하면 그건 정답이 아니에요. 우리가 아까 배웠으니까 이렇게 해야 돼요. 세상이 지옥인 걸 알려주고자 함이라. 분리니까. 갈라섬이란 말이죠.

왜 세상이 버림받아야 되는가, 왜 세상은 지옥으로 가야 되는가를 우리의 생산을 통해서 밝히고자 하는 겁니다. 온 천하에. 그들은 얼마나 열심인 줄 몰라요. 자신의 가치를 자기가, 자기 자신을 너무나 귀하게 여기고 자기 자신을 빛내고 자신의 가치를 연마하고 어떤 누구한테 내세워도 자랑할 만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평소에 모든 행위와 모든 생각에 자제하고 조심하고 철저하고 완벽에 완벽을 기하고 있습니까. 범인이 범인 잡는 식이에요.

그런데 성도는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이 이미 합격통보가 왔어요. 그래서 내가 행한 것과 천국에 합격한 것과 연결고리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워요. 사람이 기뻐해도 이유를 알아야 기뻐하죠. 선거철 됐는데 여러분 집에 갑자기 큰 케이크가 왔다면 기쁩니까? 이거 선거법 위반해서 50배로 물어주는 게 아닌지 걱정되지요. 왜냐하면 내가 달라고 할 때까지 내가 기대했다, 내가 희망했다는 요소가 담긴 채 내 것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굉장히 기분 나빠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홈쇼핑에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택배 와보세요. 이건 남의 물건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심지어 선물도 내가 원하는 물건 아니면 기분 나빠요. 그런 단편소설 있잖아요. 남편 시계사기 위해서 여자가 자기 머리 다 잘랐는데 남편은 아내 생일선물로 참한 빗을 사보세요. 이건 타이밍도 안 맞고. 오랜만에 착한 일 해보려는데 영 안 맞아요. 꼭 우리가 그런 식입니다. 은혜 받고 주 앞에 뭘 하려했는데 그게 주님한테는 전혀 무의미하거든요. 나는 구원받아서 주님한테 찬양도 해드리고 싶고 봉사도 하고 싶은데 주님이 그것이 구원하고 관계없데요. 자존심 팍 상하지요. 그걸 극복해야 된단 말이죠.

그게 뭐냐 하면, 구원받은 자가 생각이 완전한 자가 아니란 뜻이에요. 완전하기 때문에 구원시켜주는 게 아닙니다. 어설프고 등신 같아서 구원하는 거예요. 매사에 어설프고 등신 같아요. 그런데도 구원받았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구원의 근거와 구원의 이유는 내가 너희에게 찾지 않겠다. 앞으로 네가 어떻게 잘 하는지 두고 볼 거야, 그걸 언급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도리어 구원을 시켜주고 네가 생각하는 세상과 나의 차이, 네가 생각하는 천국 가는 사람, 지옥 가는 사람의 차이는 완전히 잊어버려라. 저 사람은 지옥 가야 되고 나는 천국 가야 된다면 그 이유를 이제부터 내가 그때그때마다 새롭게 알려줄게. 이게 바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된 이유입니다. 구원문제는 이미 해결됐어요. 구원문제 때문에 한 게 아니에요. 구원받은 근거가 네가 예상 못한 데서 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우릴 구원하신 거예요. 이스라엘이 그런 입장에 있어요.

오늘 본문을 보시게 되면, 26절에,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시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도 행하지 말라”고 돼있지요. 여기에 ‘법도’ 나오지요. 이건 어렵지 않아요. 왜 어렵지 않느냐 하면, 법도라는 것이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규칙입니까? 자기들이 만든 거예요? 아니죠. 외재성이죠. 외부에서 제공된 거잖아요.

그러면 본받지 말라는 그것은 외부에서 제공된 법도에 준해서 본받지 말라고 된 거예요. 맞지요. 그 다음은 어렵습니다. 외부에서 제공된 법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할까요? 이해 못하지요. 이해 못하니까 이방민족, 즉 지옥 갈 사람들을 정죄할 때 자기가 옛날에 애굽에 살던 그 기준 있잖아요. 나는 잘 났고, 저 사람은 못 났다. 그 기준을 동원해서 저 사람은 지옥 간다고 퍼부어대는 겁니다. 심판하는 거예요.

형사가 범인인데 형사는 자기가 범인 아닐 거라고 장담하고 남을 정죄하는 겁니다. 네가 내 돈을 떼어먹었으니까 지옥 가도 마땅하다, 이런 식으로. 내 기도하는 것을 욕했기 때문에 너는 지옥 가라. 우리 교회 욕했기 때문에 지옥 가도 마땅하다. 이 기준은 본인을 뭐로 봅니까? 자기는 멀쩡하다고 보는 거예요.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구원받은 것은 누가 개입해서 그렇습니까? 언약이 개입했지요. 여기 떡 한 판이 있다고 칩시다. 칼은 계약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입니다. 언약으로 판을 둘로 쪼갰습니다. 한쪽은 천국 가기로 확정하고 한쪽은 지옥 가기로 확정했습니다. 그러면 둘로 쪼개진 양쪽 떡에 질적인 차이가 있어요, 없어요? 질적인 차이 없지요. 그런데 구원받은 떡이 지옥 간 떡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맛없는 떡이라 했단 말이죠. 그게 성립될 수가 없지요. 오히려 의아해해야 된다니까요.

나는 저것과 똑같은 별난 것도 없는데 왜 나는 천국 가고 저긴 지옥 갑니까? 둘 다 마찬가지로 본인 잘남의 기준을 본인이 정해요. 선악적으로. 본인이 알고 기준이란, 항상 자기는 좋은 편이고 자기는 훌륭하고 자기는 괜찮은 존재고 자기는 신사고 자기는 괜찮은 숙녀고. 뭔가 나는 탓할 게 없음을 기준으로 깔아요. 그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범인 된 형사가 범인 찾아다니는 것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선 어떻게 하느냐 하면, 주어진 칼 있잖아요. 하나님의 언약, 법도, 율법이에요. 법도를 저쪽을 치는 것이 아니고 시범조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쪽에 적용시켜버립니다. 그 적용시키는 방법이 이방민족과의 전쟁입니다. 이방민족과 전쟁할 때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예를 들게요. 골리앗이 등장하는 전쟁 있지요. 골리앗이 뭐라고 큰소리치느냐 하면, 일대일로 붙자는 거예요. 그래서 이긴 쪽이 다 먹기. 신장이 3미터가 넘어요. 이스라엘이 벌벌 떨었어요.

이스라엘은 뭘 생각하느냐 하면, 적이 3미터니까 하나님이 우릴 도와주셔서 이스라엘 쪽은 4미터 등장해야 돼요. 4미터라야 3미터를 이긴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계약에 의해서 투입된 사람이 어른이었습니까? 소년 다윗이잖아요. 시편 8편에서 다윗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젖먹이와 어린아이 입으로 주께서 승리케 하셨다. 이건 인간들이 평소에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하나님의 칼을 통해서 다 보여줍니다.

지옥 가는 인간이나 너나 똑같은 사고방식, 뭐냐? 힘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사고방식, 권력과 명예와 자존심과 돈이 내 가치를 지켜줄 것이라는 사고방식, 인생 행복은 내 가치가 높아지는 데서 온다는 사고방식, 남한테 기죽지 않고 내세울 만한 것 있으면 그게 사는 재미라는 사고방식. 그건 바로 애굽 나라에 보편적인 거예요. 하나 예외 없이 전부 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고방식,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겁니다.

그걸 그냥 내버려두면 우린 어느 쪽이냐 하면, 하나님의 법도에 의하면, 법도의 완성이 예수님이니까, 그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지옥 가야 합당한 자가 된다는 사실들을 아는 자가 이미 구원받은 자에요. 너무 착해서 토해내는 게 아니에요. 토해내는 방식, 애굽 나라에서 이스라엘 나라로 이르는 방식이 여러분 잘 알다시피 칼이 아닙니다. 말이 아니에요. 군사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피였습니다. 무슨 피였지요? 어린양의 피죠. 전혀 예상 못했지요. 똑똑하고 지혜로운 자가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피로써 구원받는다면 우리 인간은 모조리 피 앞에서 개 무시당함이 합당하다. 인간취급도 안 하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네가 착해서 천당 올 수 없다는 거예요. 나눠짐이에요. 거룩이 훌륭함이 아닙니다. 착함이 아니에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눠진 거예요.

1학년 1반 같은 반 짝꿍이었다. 남녀공학에서 나란히 앉았는데 운 좋게도 정말 동화책에 나오는 상상의 그 소녀가 무슨 행운인지 1년 동안 내 짝이었다. 소원이 뭐겠어요? 2학년 진학할 때 같은 반에서 내 짝꿍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담임선생의 칼날, 법도가 둘을 잘라냈죠. 그럴 때 기쁩니까, 섭섭합니까? 섭섭한 정도가 아닙니다. 공부도 안 될 거예요. 그리워서. 옆에 있을 때는 그리운 줄 모르는 데 떨어지면 더 그리워요. 사랑의 감정은 이별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거예요. 같이 붙어있으면 좋은 줄 몰라요.

김춘수란 시인이 자기 아내와 50년 살다가 아내가 먼저 죽었거든요. 김춘수가 지은 이런 시가 있어요. 아내가 죽은 걸 못 받아들이는 거예요. 고등어 굽던 당신 어디 갔나. 이젠 지가 구워야 돼. 빨래하던 당신 어디 갔어. 지금 이 시간에 고등어 구워야 되고 지금 이 시간에 빨래해야 되는데 당신은 어디 갔냐 이 말이죠. 너무 그리워하다가 1년인가 2년 후에 죽었어요. 아내는 아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해야 되는데 오래 살다보니까 아내가 나의 일부였습니다. 아내가 없으니까 살아도 산 게 아니에요. 결국 허전함을 이기지 못해 죽었거든요.

우리가 아무리 십자가, 예수님, 복음 하지만 여러분들이 복음 알고 살아가면서 세상이 주는 그 기쁨을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있겠어요? 돈이 준 희열을 우리가 마다할 수 있습니까? 돈하면 대번 넋이 나가고 혼이 나갈 거예요. 돈에 환장합니다. 우리가 그랬던 자고 그게 습속이에요. 우리 몸에 이게 인습돼있어요. 몸의 모든 장치가 누가 잘한다고 칭찬하면 우린 껌뻑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3만원밖에 안 하는 황금이불을 34만원 주고 산 사람 있어요. 실제로 있어요. 노인들 속이는 사람들 있잖아요. 방송에 나왔습니다. 그걸 보고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로버트 할리 장모가. 이불을 빨지 않아. 황금이불 너무 비싼 거라서. 그 황금이불을 팔 때 얼마나 많은 말을 했겠습니까? 이 이불을 쓰면 온 몸에 건강에 좋고 자식 잘 되고.

건강, 자식, 돈, 명예, 이게 다 어디서 온 인습입니까? 애굽이죠. 세상에서 온 거잖아요. 이걸 어떻게 독소로 여기고 빼낼 수 있겠어요. 같이 살지요. 이것 안 빼앗기려고. 빼앗기면 자살까지 할 거야, 아마. 이것 안 놓치려고. 돈, 건강, 자식, 연세 많은 사람 이 세 가지 빼놓고 뭐가 있습니까? 없지요. 평생토록 노력하고 고생해서 다 누구 주려고 합니까? 대한민국 주려고 합니까? 자식 주려고 하는 거예요. 자식 주려고 그렇게 고생, 고생하면서도 보람을 느끼는 거예요.

너흰 없어. 내가 맛있는 것 사먹을 거야. 말은 그렇게 해놓고 자식 못 줘서 환장했습니다. 마음속에는. 그 자식, 남의 자식입니까? 내 자식 아닙니까. 벌써 나잖아요. 보세요. 나를 못 떠났잖아요. 돈 벌면 누구 잘 돼? 나 못 떠났잖아요. 남의 건강이 아니라 내 건강이잖아요. 나 못 떠났잖아요. 때려죽여도 나를 못 떠나요. 나는 나를 벗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제일 힘든 것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 속에서 나와 나를 분리시키는 이 작업이 되지 않으면 이스라엘 구원 없습니다. 이게 제일 힘든 작업이에요. 그래서 뭐가 필요하냐? 법도가 들어가는 거예요. 법도가 들어가고 쪼가리 내는 나에게서 나를 떼놓는 그 작업을 위해서 하나님께선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의도적으로 유발시킵니다. 이방나라와 전쟁 붙여서 아까 골리앗, 다윗 이야기했지요. 이 이스라엘은 네 나라 아니다. 요즘 말로 하면, “어이, 구원받은 너. 니 인생, 니 몸 니 꺼 아니고 주님 꺼다.” 그렇게 주께서는 상황을 몰아세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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