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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4 22:42:26 조회 : 76         
원주 특강 -잠언 속의 지혜 B 이름 : 정인순(IP:116.42.61.51)

원주 특강 -잠언 속의 지혜 B

강사: 이근호 목사

 

 

강의 다시 하겠습니다. 지혜가 이렇게 창세부터 태초 전부터 개입했으면 왜 지혜가 알아서 다 하면 되잖아요. 지혜가. 작정은 여호와가 작정하시고 그러면 하나님이 시작부터 끝까지 관여하시면 끝까지 관여하시면 되잖아요. 왜 인간에게 콩 내놔라 팥 달라 할 이유도 없고 인간은 로봇 같고 장기알 같을 것 같으면 인간에게 책망한다든지 인간을 벌칙 준다는 자체도 모순될 같은 느낌 들지요. “똑바로 안 했어? 벌 받어.” 이 말은 뭐냐 하면 똑 바로 할 수 있었는데 니가 게을러서 못했다,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벌칙이라는 것은 그 행동을 잘못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벌칙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벌칙 준다는 자체가 이상하다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이 모든 것을 다스렸다고 그것이 진실이라면 인간은 완전히 소외되어서 관람객 또는 구경만 하면 되는 입장이 앞뒤가 맞는 그런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인간을 구경꾼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다고 하면서도 하신 일에 인간을 거기다가 집어넣어버린 거예요. 인간을 집어넣어버리면 어떤 현상이 생기느냐 하면 만약에 인간이 선악과를 안 따먹고 에덴동산에 그대로 있었다고 친다면 하나님의 일은 어떻게 되느냐? 그냥 만든 그 상태로 그대로 가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일에 인간들이 넘어설 수 없는 인간의 지혜로서는 돌파할 수 없는 다른 영역이 있어요. 그것을 지난 시간에 미제로 남아있는 것을 해보겠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천국은 없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전부예요. 주님께서 에덴동산을 파괴시키고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인간에게 없는 나라, 하늘나라를 이제는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늘나라는 인간에게도 없는 나라이지만 하나님에게도 없는 나라예요.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계신 나라가 아니고 아들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래요. 아들의 나라. 아들의 위상이 바뀌어야 비로소 생기는 나라, 아들이 존재함으로 생기는 나라가 아니고 아들의 위상이 바뀌어야 생기는 나라가 아들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아들의 나라, 하나님의 계획에 아들의 나라가 되려면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 나름대로의 프로젝트가 절차가 있어야 되겠지요.

그 절차의 완성을 지혜라 하고 지혜가 절차 속에 조금씩 조금씩 미리 미리 스며들도록 그렇게 조치를 하신 겁니다. 그 지혜가 뭐냐? 그 지혜를 잠언에서는 다윗의 아들의 지혜로 보는 겁니다. 솔로몬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요. 솔로몬 이야기할 때 일반 언약을 이야기하는 사람들한테는 빠트리기 쉬운, 핵심적인 것을 빠뜨리기 쉬워요. 뭐냐 하면 솔로몬이 언약의 제일 정점에 있다는 사실을 빠뜨려요. 버스 정류소가 똑같은 정류소가 있잖아요. 원주도 있죠. 서고 서고 이렇게 간다 말이죠. 같은 정류소가 동일한 노선에 있다고 보통 생각해요. 마지막 예수님 오실 때까지.

그러나 구약에 보면 표고차가 달라요. 고도가 달라요. 솔로몬 대에 와가지고는 언약이 최정점에 이르는 겁니다. 그것을 어디서 보여주느냐 하면 마태복음 1장 족보에서 나와요. 14대에서 최정점에 이르릅니다. 그 다음에 내려가기예요. 올라가기 내려가기 모든 것을 그 역사에 없는 무역사 또는 비역사 쪽으로 등장하기 이렇게 되어 있어요. 마태복음 1장 42 대가. 14대 14대 14대 그렇게 되어 있다 말이죠. 사람들이 역사를 좋아하다 보니까 버스 정류소는 그 동네가 그 동네고 그냥 똑같은 건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고도의 차이를 고려해서 설명해줘야 돼요.

솔로몬에 있어서의 애기 낳은 아줌마 둘이 있었지요. 창기라 했는데 그 솔로몬이 애기 낳은 창기를 재판 할 때 전제가 뭐냐 하면 이건 인간의 지혜가 아니고 신의 지혜를 가진 자가 한 재판이라고 봐요. 신의 지혜를. 그러면 그 소리 딱 들어보면 사람들이 뭐가 궁금하느냐 하면 신의 지혜가 어떤 것인지를 나한테 한번 들려다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지혜에 견주어서 얼마나 대단한가 한번 보자, 라고 어떤 경쟁심이 슬슬 유발 되는 거예요.

두 여자가 애기를 낳았는데 한 여자가 너무 뚱뚱했는지 밤에 질식시켜가지고 자기 애 하나 죽였어요. 자기 애 죽여놓고 간난애니까 표시 안 난다고 생각해가지고 제끼고 옆에 같이 자고 있던 동료 여자의 애기를 내 아기라고 우기겠다 하고 아침에 눈을 떴다 이 말이죠. 보니까 엄마가 자기 애가 저기 있거든요. 달라고 하니까 내 애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자기 애라고 하니까 선악이 밝혀지지 않으니까 이걸 솔로몬에게 온 거예요. 솔로몬에게 왔을 때 솔로몬이 솔로몬의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솔로몬이 재판했다 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인간들의 관심사는 어디 있느냐 하면 이 재판의 진행과 결과에 있어서 과연 우리 인간들이 생각 못한 요소가 뭐가 있는가를 찾아낼 거예요. 인간들 감히 예상못한 요소가 뭔가 찾아본다 이 말이죠. 그런데 재판 과정과 결과를 보니까 인간들이 생각 못한 요소가 아니고 내라도 그런 재판하겠어요. 어머니의 모성애에 호소해가지고 진짜 애기 같으면 애기 아픔에 대해서 양보해서 애기 살리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엄마냐 가짜 엄마냐 하는 것은 애기에 대한 모성애가 어느 것이 강렬하냐 강렬한 쪽은 진짜 엄마고 약한 쪽은 가짜 엄마다. 그 정도 재판은 나도 하겠다 이 말이죠. 그게 뭐가 초월적이고 신비한 오직 하나님만이 해낼 수 있는 그런 거냐 이 말이죠.

그러니까 솔로몬의 지혜라든지 성경해석에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부실하고 모자라는가를 우리가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란 것에 대한 우리의 상상이 멋지고 대단한 것을 끄집어내려고 기대하는 우리 인간의 심보는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가 하면 수학에 무한집합과 관련되어 있어요.

1 2 3 4 5 6 해놓고 점 점 점... 하고 뒤에다가 n 쓰지요. n과 앞에 있는 n-1과 단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단절이 없지요. 숫자 하나 1만 더하면 n 되니까. n-1과 n이 단절 되지 않고 n-2와 n-1과 단절 될까요? 안 될까요? 단절 안 되지요. 6하고 7하고 단절 안 되지요. 75676하고 75677하고 단절 안 되지요. 인간의 신 개념이 그래요.

인간하고 단절 없는 신 개념, 그게 집합 개념입니다. 수학의 집합 개념. 신을 그렇게 묘사합니다. 수학을 통해서 노골화 되었어요. 신? 그거 인간이 못하는 것이지만 인간과 떨어지지 않은 관계, 그게 신의 관계, 그게 바로 과학적 사고방식입니다. 언젠가는 진리는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우리가 부족해서 못 찾지 우리가 지식이 축적 되면 진리에 어프로치 진리에 접근해 갈 수는 있다고 보는 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진리는 갈 수 있습니까? 떨어져 있어요? 끊어져있지요. 요한복음 13장에 베드로가 하는 말이 뭐냐 하면 예수님 계신 곳에 내가 가겠다 했지요. 주께서 하신 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그래. 니가 목숨까지 바쳤으니까 정말 대견하구나. 이 정도 되면 내가 천국 넣어줄게. 이렇게 했습니까? 뭐라고 했어요? 니가 못 간다 했지요. 왜? 니 자리가 지 처소가 없어요.

다시 말합니다. 천국은 인간에게는 없는 곳입니다. 천국은 없어요. 열두 제자까지 사람들은 계속 하늘나라를 유대인들의 하늘나라는 있다고 생각하고 그 나라 간다고 생각하고 그 나라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율법이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밧줄은 그 사닥다리를 계속 밟고 올라가면 결국은 까꿍 하고 목 내밀면, 천로역정 하는 것처럼, 까꿍 하고 목 내밀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단테의 신곡 그런 것도 지옥과 천국을 계단으로 만들었잖아요. 계층화시키고 계급화 시킨 거예요. 그 당시는 봉건사회니까. 이걸 제가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걸 철폐를 좀 해줘야 해요. 단계 밟으면 까꿍 하고 여기였었어? 내가 많이 왔네. 이 의식을 이걸 박살내야 돼요. 그러지 말아야 된다 이 말이죠. “하나님 계세요. 내가 찾아갈 테니까. 내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거룩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게 끊어져야 돼요. 가보면 망상이에요. 그걸 신기루라 하잖아요. 신기루는 있는데 가보면 현장에 없는 것, 현장에 아무것도 없어요. 왜 현장에 없는가 하면 현장에는 내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사람이 내가 있는 한 내가 가는 한 그곳에는 이미 진리가 저만치 없어져요. 멀리서 보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가게 되면 내가 간다는 이유 때문에 진리는 거기서 떠났습니다. 잠언의 지혜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끝까지 단절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늘나라가 없다 할 때 솔로몬에게 지혜가 온 것은 솔로몬의 지혜가 인간이 사법고시 법 공부 하게 되면 알 수 있고 동양철학 서양철학 공부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전도서에서 많은 사람이 공부를 해도 그게 몸만 피곤하다 했거든요. 아무리 공부해도. 백 성도님 얼마나 공부하는지, 얼마나 물어대고, 이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물어대시고 공부를 하시는지, 그 공부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그거 제비 뽑는 거예요. 열심히 뽑으세요. 머리털도 뽑는데, 계속 뽑아대는데 작정하기는 여호와께서 하십니다. 그 공부 하는 거 내가 구원받는 것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겁니다. 그래도 궁금한 걸 어떡해. 궁금하면 해야지요. 움직여야지요. 움직여야 사는데.

솔로몬 지혜의 재판의 핵심은 죽음입니다. 죽음이에요. 뭐냐 하면 그 두 여인 중에 누가 죄인인가를 알아야 돼요. 아무나 안 가르쳐주는데. 진짜 죽은 애의 엄마가 죄를 느낍니까? 가짜 엄마가 죄를 느낍니까? 진짜 엄마가 죄를 느낍니다. 재판할 문제가 아니었던 거예요. 재판할 문제가 아닌 걸 너희들은 제비 뽑듯이 재판을 걸었던 겁니다. 이 자체가 재판을 건다는 것은 뭣이 전제가 되느냐 하면 나는 저 여자보다 정당하다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서, 누구에게? 솔로몬과 같이 있는 연결된 하나님 앞에 보장받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자기 자식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 내가 어떤 자식을 소유한다는 것은 소유할 정당성이 있기 때문에 소유한다는 의식과 결부 되어 있어요.

내가 내 인생, 아파트든지 어떤 소유물을 내꺼라고 우기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 나한테 있다고 보고 주께서 준 걸로 본겁니다. 옷에 보면 벽에 보면 찍찍이 붙어있지요. 찍찍이 붙어있을 때 찍찍이 용도는 뭐냐 하면 다른 걸 찍찍이 붙어있는 데 하면 딱 붙잖아요. 이렇게 다른 것이 붙을 만한 권한이 있다고 자부하고 우리는 자아 자체가 일종의 찍찍이에요. 새로운 TV를 사게 되면 저 TV는 내가 살만한 자격자가 된다는 식으로 우리 집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럼 묻습니다. 태풍은 왜 붑니까? 태풍은 왜 찾아오지요? 태풍 오라고 누가 빌었습니까? 기도했습니까? 태풍은 왜 왔어요? 태풍을 한국 배달의 민족에 전화해가지고 태풍 2인분 오라고 누가 배달시켰습니까? 흰머리는 왜 오지요? 머리는 샴푸 TS 발라놔도 자꾸 빠져. 왜 머리는 빠지는 거예요? 왜 늙는 겁니까? 달리 얘기하면 왜 죽습니까? 내가 죽음을 요청한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혜는 완결입니다. 과정이 아니고 완결이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인간사회의 종결을 완결을 보여주는 사건이 이 두 아줌마 사이에 일어났다고 보는 겁니다. 이게 두 아줌마의 문제가 아니고 솔로몬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여. 이 백성을 하나로 뭉쳐서 하나의 바구니에 담겨있는 이스라엘로 본 겁니다. 전체 이스라엘에 누구나 다 공통적으로, 아까 이야기한 신탁이죠. 누구나 다 적용되는 것, 그런 지혜를 하나님이 주겠다고 했어요. 뭐냐 하면 “하나님이여. 이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주옵소서.” 하니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하시는 말이 “니가 오래 사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부자 되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또 한 가지 있어요. 원수가 니 웬수가 일찍 뒈죽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그러니까 사적인 복수심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뭐만 구했습니까?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지혜로 다스리는 이스라엘 되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최정점에 와있거든요.

다윗을 통해서 시온성이 확립되게 되면 시온 성에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십니다. 그러면 다윗 언약의 완성이 그거예요. 다윗의 시온성이에요 그게 솔로몬이 그대로 거기다가 성전 지었거든요. 솔로몬 때가 마태복음 1장에 최정점에 와있는 거예요. 최정점에 와있는 이 백성들에게는 사적인 것, 내 자식 니 자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국 인간이 죽고 아들의 나라에 왔을 때 인간은 어떤 의미로서 그 나라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 살아야 되는가를 알려주는 겁니다. 그건 나는 죽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야 한다는 것, 사적인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적인 죽음은 어차피 인간은 다 부활되니까, 산 자나 죽은 자나 다 부활 되어가지고 심판 받는 것도 다 부활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그것만이 최종 지혜거든요. 십자가 죽음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잠시 태어났다가 살다가 죽는 겁니다. 그 과정이 예수님의 지혜의 일부로서 모자이크의 하나의 작은 조각으로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 가야되는 겁니다. 그게 잠언서 8장에 나오는 통합된 지혜의 뜻입니다. 통합된 지혜, 예를 들어서 하늘에서 꽃봉오리 벚꽃잎이라든지, 색종이, 백일의 낭군에 나오는 그런 것, 해가지고 한꺼번에 확 뿌려버리면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반짝반짝 빛나면서 떨어지겠지요. 떨어진 조각들이 잠언서의 한 부분들이에요.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그걸 지키려면 지혜자만이 하는 자유로운 활동 자체가 반짝이는 꽃잎 하나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 보기에는 모순되어 보이는 거예요. 어떤 데는 술 먹으라 하다가 먹지 말라했다가 가난한 자 무시하지 말라 했다가 무시하라 했다가 어떤 데는 부자 되기를 힘쓰지 말라 했다가 어떤 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부자 되게 해준다고 했다가, 도대체 우리보고 어느 장단에 어느 비트에 어느 박자에 맞춰야 할지 몰라요. 4분의 4박자인지 어디에 맞춰야 되는지.

그러니까 사적인 것이 아니고 위에서부터 반짝이가 반짝반짝 삐라 뿌리듯이 내려오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를 그냥 덮는 거예요. 우리는 그의 일부입니다. 지혜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거예요. 다만 우리 입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내가 제비를 뽑지만 작정하는 것은 위에서 이미 작정했습니다.” 하는 이야기가 나와야 된다는 것이 잠언이라 말이죠. 아직 구약이기 때문에 십자가라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런 건 언급 되지 않지만 잠언서 8장 보면 태초 전에 지혜가 있었다는 것이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에요.

솔로몬의 지혜 같은 것은 이미 예수님도 악하고 음란한 죄 요나의 이야기할 때 거기 솔로몬의 남방 여인이 나옵니다. 어쨌거나 솔로몬 이야기 계속 해보면 솔로몬에 있어서 여자가 잠을 잘 때 애기를 죽일 때 이쪽 여자가 죽인 게 아니에요. 누가 죽이느냐? 하나님이 죽인 거예요. 하나님이 죽게 한 거예요. 이걸 과학에서는 변수라고 합니다. 애초부터 처음부터 같은 방에 안 잤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하는 거예요. 같은 방에 잘 수밖에 없는 것이 같은 직업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같은 직업이 안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같은 직업이 아니었으면 두 부모가 떨어져 살아야 되는데 그야말로 세상에서는 우연히라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걸 변수라고 하지요. 우연히 같은 동네 친구가 되어가지고 우연히 직업 괜찮은데 해볼래? 해가지고 한 거예요. 하필이면 그 때 그 타이밍에 나보고 그런 창기라는 직업을 권했던 그 타이밍조차도 그 때 그 이야기할 때 화장실 갔으면 안 들었을 것 아닙니까? 하필 그 이야기 듣고 따라 가가지고 창기 된 그 변수조차도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조종 국면에 있었던 겁니다. 이게 잠언 이야기가 아니고 욥 이야기이고 전도서 이야기고 아가 이야기고 시편 이야기입니다.

시편 말씀 보면 이런 이야기 나오죠. 사람 살아가는 것이, 시편 91편입니까? 슬픔과 괴로움밖에 없다. 그런데 전도서에 그런 내용이 있어요. 모든 인간은 고통뿐이다. 그럼 왜 살게 했습니까? 니 좋아라고, 니 사적인 니 개인 좋아라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아들의 나라,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 낙원에서부터 시작 이야기가 스토리가 시작된 거예요. 흐름이.

낙원에서 주님께서 부정적인 것을 심어놨습니다. 아예 선악과 안 심어놨으면 아무 탈도 없는 걸 괜히 심어놔가지고 그것도 십년 째 참아냈으면 그 다음부터는 따먹어도 산다 해야 되는데 이건 끝도 없이 박아놓은 거예요. 백 년 째 참다가 백일 년 째 그걸 어기면 쫓겨나는 거예요. 이 세상에도 그런 법률이 있지요. 오래 지켰다고 처벌을 면해주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바람을 피우다가 걸렸다 이 말이죠. 당신 바람 피웠지? 결혼하고 처음 아닌가? 그래도 한 5번 하면 나한테 문제 삼아라. 적어도 이스람 사람들은 네 번해도 괜찮은데. 니도 왜 맞바람 피우지. 일대일 상쇄하면 되니까. 이게 수학적 개념이에요. 이게 뭐냐 하면, 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의 연장선 위에 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단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솔로몬 지혜에는 단절이 있다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인간은 부분이고 완성은 그 앞에 십자가, 언약의 완성 십자가가 개입 돼서 부분이 완성으로 통합이 되거든요. 이스라엘이 나올 때 어린 양의 피를 발랐어요. 히브리인이라는 혈육적인 조건으로 왜 그게 안 되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아브라함 자손 같으면 약속대로 그냥 이스라엘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이스라엘이든 애굽이든 간에 문설주에 뭘 발라야 돼요? 문설주와 문지방에 피를 발라야 돼요. 피를 바르지 않으면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울산 강의에서 뭐라 했습니까? 이스라엘은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 이스라엘은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어요. 조건이 있어요. 피 발라야 됩니다. 찬송가에 나오잖아요. 피를 보고 넘어가리라, 피를 보고 넘어가는 거예요. 멀쩡한 우리를 피 흘릴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보는 거예요. 포도 먹었을 뿐이고 감 먹었을 뿐인데 이것도 죄입니까? 포도 먹고 감 먹는다 해서 피 없이 구원받을 수는 없어요. 아무리 포도 먹고 감 먹어도 피로 인하여 하는 거예요. 포도 안 먹어도 감 안 먹어도 구원받는 것도 아니에요. 이 땅에서 어떤 경우라도 천국의 조건에 맞춰야 되는데 그게 죽음인데 그 죽음은 무슨 죽음이냐?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에요.

아는 이야기이지만 한번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다. 아들의 나라는 어떤 나라냐? 아들의 죽음을 기념하는 나라가, 기념하는 그 원칙만 작동이 되는 나라가 아들의 나라예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뭐냐 하면 예수님이란 표시를 안 해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일찍이 죽음을 당한 어린 양으로 되어 있어요. 그 자체가 죽음의 표상이 되지요. 죽음의 표상이 보좌에 앉았어요. 보좌에 보면 죽음이 보좌에 앉아있는 거예요. 죽음의 세계예요.

그런데 거기서 영생의 물이 흘러요. 생명나무, 영생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생명이 흘러나와요. 나의 죽음을 통해서는 생명이 안 나와요. 베드로가 백날 죽어봐야 처소가 없어요. 하늘나라 베드로가 있는 처소가 없어요. 처소 하려면 예수님이 가서 십자가 죽으심으로서 처소가 그때사 비로소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성령을 보내가지고“만들었다. 야야. 내가 만들었어. 니 자리 만들었단다.”라고 불러내줘야 그 자리에 앉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입장에서는 뭐냐 하면 그 애기를 잃어버린 여자 마음속에 재판을 걸 때 그 심보가 바로 내가 미쳐 애기를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몰랐던 나의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그 여자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에 보편적인 하나의 헌법이 되어버려요. 솔로몬 자리가 제사지내는 자리고 성전의 자리거든요. 그게 단절이에요. 그러면 솔로몬이 이야기한 죽음이라는 것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완료거든요. 완료가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완료라 하는 것은 이 땅에 죽음 현상이 없으면 완료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도 늙고 죽어가고 있는 겁니다. 죽어가고 있으면서 우리가 성도라면 죽어가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즐겨야 되고 고맙게 여겨야 되지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까 이 땅에서는 그냥 막 살아야 되지요. 스피드 너무 내가지고 스피드 차 몰다가 개죽음 당하지 말고요. 그냥 죽는 것이 낫다가 아니라 주님의 계획된 작정한 일이거든요. 주의 작정한 일을 미리 알았다는 것은 이미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연결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과 단절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죽음 안에서 연결된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서 내 삶을 고집을 안 하니까. 나는 기어이 살아야 되겠습니다를 안 한다 이 말이죠. 솔로몬의 재판 받았던 여자가 진짜 엄마가 내 애를 살리겠다고 고집했습니까? 그걸 보는 거예요. 솔로몬이. 살리겠다고 고집 안 하는 것은 처음에 재판 할 때는 무슨 마음이었습니까? 재판 이겨서 꼭 내 애를 나한테 데려오겠다고 한 그 마음과 재판 결과와 단절이 일어나는 겁니다. 나는 나만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제비 뽑았잖아요.”만 생각하는 거예요. 내 제비 뽑는 것하고 작정은 별개라는 생각을 우리는 안 하고 있었던 겁니다.

평소에 내가 열심히 내 인생 꾸려나가는 것과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은 별개 문제예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로마서 3장에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님의 화목제물을 인정함으로서 주께 영광이 돼요. 다른 영광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누군지 알면 그게 영광이지, 열심히 반듯하게 산다고 영광이 되는 것 아닙니다. 내 모든 일이 주의 일이 되려면 내가 어떤 일에도 내가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줄 때 그게 모든 일이 뭘 먹든 뭘 마시든 주의 영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이야기했지만 니나 신경써. 아내 남편 자식 신경 쓰지 말고 니나 잘 하세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솔로몬에서 지혜라는 것은, 그러니까 솔로몬의 지혜를 보여주면서 재판 이야기를 거론하는 이유가 솔로몬 자체가 지혜의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지요. 잠언서 자체가 뭐냐 하면 1장에 보면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지요. 1장 1절에. 그렇지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이라 되어있지요. 그러고 난 뒤에 여기에 왜 솔로몬의 잠언이라 하지 않고 다윗의 아들이라고 왜 했을까요? 제가 그냥 말씀드릴게요. 다윗은 다윗 언약을 말합니다. 다윗 언약의 자식은 없습니다. 천국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 언약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천국도 만들어내고 아들의 나라도 만들어내고 아들도 만들어냅니다. 아들 나라 들어갈 자기 백성을 친히 하나님의 지혜가 만들어냅니다.

그러면 지혜가 만들어내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 만들어진 사람만이 알아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일의 작정은 이미 여호와 안에서 확정되었다. 또는 아까 이야기했던 표현대로 하면 완결되었다. 지금 우리는 완결되어있는 겁니다. 애들 노는 모자이크 그림 있잖아요. 그림 끼워 맞추는 거 있잖아요. 여러분들이 그 한 조각이라 생각하고 누워서 옆을 눈으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나하고 다르잖아요. 다른데 둘 다 공통점이 있어요. 내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라고 하지 않아요.

딱 보니까 저 사람은 예수님의 귀 모습의 일부를 해놓았고 나는 예수님의 머리카락 모습의 일부분을 걸치고 있는 거예요. 각자 다르지만 어떤 평원 어떤 평평한 면에 같이 누워있어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같이 누워있지요. 이게 바로 교회 아닙니까? 이게 교회잖아요. 달라요. 아파트 평수 같을 필요 없어요. 약간 곁눈질해도 놀라운 사실은 같아서 놀라는 게 아니고 다름에도 불구하고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십자가 앞에서 나는 개뿔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백을 한다는 사실이 인간의 동창회에서는 이런 고백 안 나와요. 술친구한테서는 이런 고백 안 나옵니다. 지 잘난 체하지.

많은 걸 제가 요구할 수는 없지만 부부 두 명이라도 한번 실험적으로 실시를 해보세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아내 하는 일에 남편이 간섭 안하기, 평소에 늘 해왔던 겁니다. 그 다음에 남편 하는 일에 일체 간섭 안하기, 이건 여자 입장에서는 곤란해요. 때려죽여도 못하지 싶어요. 당신 나쁜 거 나는 못산다. 이렇게 나오지요. 또 자기가 선택하고 제비 뽑아요. 남편이 날 살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남편과 같이 살게 했다는 거예요. 만약에 남편이 죽고 아내가 죽는다면 그 일도 누구 작전입니까? 우리가 같은 예수의 평판에 누워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나를 떠나기 위해서 나는 내 위주로 사는 세상에 있지않다는,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이 터지게 한다는 것이지요.

갑자기 남편 되시는 분이 안 하던 복권을 했는데 10억 된다든지 갑자기 일이 터져버리는 거예요. 내 몰래 땅을 사놨는데 열배가 올랐다든지, 일이 터져버리는 거예요. 주식을 몰래 했는데 갑자기 주식 좀 폭락했지만, 갑자기 올랐다든지, 이건 남편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곁눈질해서 그래요. 요래 보니까 저쪽에서 일이 터진 거예요. 덩달아 같이 기쁘죠. 왜? 한 식구니까 기분 좋지요. 아까 내가 뭐라 했습니까? 아내 일에 남편이 간섭하지 말고 남편 일에 아내가 간섭하지 말고. 그러나 이건 매우 매우 difficult. 매우 어려워요. 그래서 성경 보고 돌아서면 5분도 안 돼 가지고 다 끝나는 거예요.

우리의 육적인 본성, 우리는 평생토록 내가 제비를 뽑아요. 제비를 뽑는다는 것은 선택한다, 제비와 선택의 차이점은 제비 뽑으면서 입에 뭐라고 거짓말을 하느냐 하면 주여 이것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주께 일임하겠습니다. 절대 일임 안 해요. 화나가지고 있어요. 뭔가 뿔따구 내고 있다구요. 안 되기만 해봐라. 내가 이 정도로 겸손한 티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일 터지게 해봐라. 또 반발 같은 게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제비 뽑을 때 인간의 마음은 순수하지 않아요. 마치 그 아줌마들이 솔로몬에게 재판 걸 때 마음이 순수하지 않은 것처럼 그냥 우리 애는 주의 뜻에 맡깁니다. 이렇게 했을 것 아니냐 말이죠. 그게 마음이 순수하지 않아요. 다 노림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주께서 그 노림수를 주께서는 고맙게도 재껴버리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게 하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예수님도 잠언이에요. 예수님도 지혜에 속한 분이에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이제 그걸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그대로 하도록 주께서 하게 하시는 겁니다. 처음에는 안 돼요. 성질나서 안 돼요. 그러나 성령께서 가만히 차분히 생각해보면 그동안 햇빛 주시고 공기 주시고 아직까지 안 죽었지만 죽을 때까지라도 살게 해주시고 이만큼 먹을 것 입을 것 주셨다는 것은 이건 내 솜씨도 아니고 주께서 작정한 일에 주시는 것인데, 그 작정한 일이 먹을 걸 주는 걸 작정하는 게 아니고 니게 주신 분이 바로 인생을 이 땅에 니가 태어나게 하신 분 그리고 십자가 지신 그 분이라는 것을 아울러 알게 하는 언약의 완성을 알게 하는 그 분이라 깨닫게 하는 겁니다.

이제 마무리 하겠습니다. 딴 거 다 잊으세요. 그냥 애들 노는 퍼즐에 모양은 수제비처럼 모양이 다 다르잖아요. 인생이 다 달라요. 아내는 아내의 과거가 있고 남편은 남편의 과거가 있고 어릴 때 과거가 다 달라요. 하지만 옆에 보게 되면 둘 다 결국은 진정성 있게 나오는 고백은 우리의 만남은 주의 뜻이다. 하나님의 작정한, 가보면 알겠지, 하는 것은 완료가 아니에요. 이미 작정된 거예요. 이렇게 살아야 돼. 니 좋아라가 아니라 예수님 좋으라고 이렇게 살아야 돼. 라는 고백이 있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뭘 걱정했습니까? 무엇에 쫓겼습니까? 매일같이 바들바들 무엇이 두려워 벌벌 떨고 살았습니까? 주제넘게 너무 걱정 많이 했고 염려 많이 했습니다. 그 나라 의를 구하라 하고 주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지혜 있는 자 되지 말고 지혜를 보여주는 지혜를 증거하는 지혜를 나타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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