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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6 07:40:42 조회 : 44         
20181102a 울산강의-레위기 20장 : 차이의 생산 이름 : 한윤범(IP:14.39.134.122)
20181102a 울산강의-레위기 20장 : 차이의 생산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20장 22절은 지난 시간에 했습니다. 땅이 너희를 토하리라고 해서 땅이 토한다는 게 참 이상하잖아요. 땅은 그냥 흙덩어리인데 사람을 토해낸다는 것은 약속의 땅이 흙으로만 돼있는 것이 아니고 흙과 더불어 하나님의 약속이 거기에 첨부돼있습니다. 참 이상하죠.

흙+약속, 이렇게 돼버리면 땅에 약속을 첨부한다는 것은 성립이 안 돼요. 왜냐하면 약속이란 게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또는 살아있는 어떤 인격적 존재들 사이에서 성립되잖아요. 땅에 있는 돌과 돌 사이에 약속이란 게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땅에서 약속을 한다는 말은 이 땅에 누가 들어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은 약속이 아닌 것은 토해내 버리는 거예요. 거부하는 겁니다. 결국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성립되느냐 하면, 약속의 없으면 약속의 땅에 못 가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약속의 땅은 나중에 신약에 오면 천국이 되는 겁니다. 교회 나온다는 것은 천국 간다는 희망을 가지고 나오잖아요.

천국이란 약속의 땅이에요. 당신은 무엇에 근거해서 그렇게 강렬하게 주장하느냐? 구약에 근거해서 그렇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계시가 이스라엘에게 먼저 주어졌습니다. 신약은 모든 민족에게 주어졌지만 모든 민족에게 주어진 약속이 구약에선 하나 유일한 특정국가에만 완전히 퍼부은 거예요. 그리고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어떻게 변화돼 가는가를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이스라엘이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냥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인수인계 받는 게 아니고 약속이 받아 챙기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보통 교회에서는 예수님 믿고 천국 가고 하나님 믿고 천국 간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것을 거부해요. 그 믿는다는 것을 포기해야 됩니다. 약속이 없을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약속이 오게 되면 우리는 결코 믿는 자가 아니란 것이 들통 나야 됩니다. 예수 안 믿고 천국 가고 예수 안 믿고 영생 얻는 겁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걸 믿음이라 해요. 내가 믿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안 받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 내가 구성하는 믿음은 하늘나라에 아무 쓸데없다는 것을 믿는 것, 이게 믿음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돼있고 이것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단서를 붙여놨어요. 그러면 선물 안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선물 안 받았으면 그냥 지옥 가시면 되는 겁니다. 깔끔해요. 이야기가 아주 단출합니다. 믿음의 선물 안 받았으면 믿을 생각 말고 믿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자기 갈 길이 지옥이라고 그냥 가시면 되는 겁니다. 복잡한 게 전혀 없지요.

그런데 이 세상 살면서 어떻게 그걸 구분하느냐고 하는데, 이렇게 구분하는 거예요. 인간이 믿는다고 하는 것을 따져보면 문화입니다. 문화를 이제 설명할 텐데 문화는 쉬운 말로 오락이에요. 또는 취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게 유흥이에요. 즐기는 것. 그럼 여기서 줄줄 내려가면 뭐냐 하면, 낚시, 등산, 주부가요교실.

주부가요교실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앙과 주부가요교실이 어떻게 일치되는지. 직장도 안 다니고 집에서 놀고 있는 아줌마들이 주부가요교실에 가게 되면 여러 가지 면으로 자기에게 유익되는 게 많아요. 일단 마음을 열고 외쳐보는 거예요. 시키는 대로. 소리 지르고 울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분풀이하기도 하고. 혼자 집에서 노래 부르면 재미 하나도 없어요. 같이 부르는 겁니다.

<안동역에서>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집에서는 안동역 생각 안 나는데 거기선 안동역 생각나는 거예요. <고장 난 벽시계> 같은 것.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잘 모르지요. 얼마나 유익되는 게 많아요. 스트레스 풀지요, 기분 좋지요, 화병 다 달아나지요, 정신적으로 안정되니까 몸도 건강해지고. 집구석에 있어봐야 짜증만 나는데 밖에 나가 서늘한 가을바람도 맞고 거기서 적당한 사람 만나서 가요교실 끝나고 찜질방 갔다가 술 한 잔하고 저녁 시간 맞춰서 놀고. 다 유익되는 게 굉장히 많아요.

다시 적어보겠습니다. 이런 취미, 오락, 유흥은 소용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한테 유익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실제적인 이익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줌마 남편이 갑자기 실직을 했다, 사업부도가 나서 어렵다, 애는 아직 어리다, 남편은 빚 때문에 도망갔다. 그러면 주부가요교실에 나올 수 있습니까? 못 나오잖아요. 아르바이트 하거나 애 키워야 되니까. 오락, 문화, 취미, 유흥, 낚시, 등산, 주부가요교실, 이런 것은 유익은 되지만 진정성, 진지함은 없어요. 이건 부차적인 거예요. 반찬? 인생에 대해서 반찬 같은 거지 밥은 아니란 말이죠. 주식은 아닌 거예요. 이게 바로 문화에요. 신앙이란 겁니다.

신앙 있다는 사람들, 돈 문제 건드리면 한순간에 신앙은 다 날아가 버려요. 왜? 그동안 취미생활로 교회 나왔고 여흥으로 교회 나왔고 오락으로서 교회 나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락을 오래 하게 되면 집사에서 권사 되고, 남자들은 장로 되고. 전부 다 오락단체, 문화센터에서 오래 하게 되면 지분 좀 늘어나게 되면 장로도 되고. 그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보조역할이지 주가 되지 않아요. 그럼 신앙 자체가 뭔가 다른 주가 되는 게 있고 시간 남아서 보조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주가 뭐냐는 겁니다. 주가 돈입니다. 목사가 왜 그렇게 교회에 목을 맵니까? 다른 사람은 교회가 취미단체고 낚시동호회지만 목사는 거기서 돈이 생기는 자기 가족들 생계가 달린 문제거든요. 그래서 교인들 닦달 내는 거예요. 전도하세요. 전도한다고 노는 노인들 불러오지 말고 돈 되는 사람 불러와라. 돈푼이나 내는 사람 불러와야 돼요.

그래서 주부가요교실에서 가장 진지한 사람은 누구냐 하면, 거기 참석하는 주부들 아닙니다. 이것해서 자기 생계유지하는 사람이면 진짜 주부가요교실에 목매지요. 정리해봅시다. 주가 되는 것은 뭐다? 내가 살기 위한 활동이 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믿었다는 것은 사실은 거짓말이죠. 뭘 믿었습니까? 내가 살아야 되겠다는 것을 믿는 거예요. 살려면 이 땅에서 돈이 있어야 되지요. 친구 있어야 되고 권력 있어야 되고. 그래야 행복하니까.

인간이 신앙한다는 것은 사실은 창세기 3장에 의하면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보조적인 활동을 이야기합니다. 이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문화 활동, 오락 활동, 취미 활동처럼 신앙 자체가 신앙 아닌 걸 알아야 되죠. 왜냐하면 이런 취미는 나름대로 유익과 실익을 주기 때문에. 누구한테 유익을 줍니까? 주님한테? 아니에요. 본인한테 이익이 되는 거예요.

보험을 들 때 생활비 하고 여분이 있을 때 보험을 드는 겁니다. 만약에 정말 부도나서 집안이 어렵다면 보험 해약하지요. 천국 가는 보험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약간 밥 먹고 살기 때문에 여유 있어서 교회 나오는 거예요. 만약에 여유가 없다면 보조적인 실익은 나중으로 미뤄야 되겠지요. 나중 문제에요. 실제 문제 아니란 말이죠.

지금 이스라엘을 제쳐놓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신약부터 이야기하는데 신약에서는 복음이 나타났고 복음을 믿으면 천국 간다 하지요.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제가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가 방금 뭘 배제했다고 했습니까? 이스라엘을 배제했지요. 제 말의 취지를 아시겠습니까? 제가 아까 뭐라 했습니까? 이스라엘부터 출발해야 된다 했지요.

이스라엘을 배제하고 신약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나타났다, 복음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하니까 그 좋은 것 왜 안 믿겠어요. 왜냐하면 자기에게 실익이 있고 유익이 있기 때문에 믿지요. 지금 뭘 빼놓은 거예요? 우리가 지금 레위기 20장 23절 하는데 뭘 빼놓은 거예요?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의 운명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완전히 빼놓고 이야기하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주가 된다는 것은, 벌써 내가 뭘 믿어야 된다는 것을 본인이 알아요. 인간이 궁극적으로 놓치지 않고 이것만은 꼭 쥐고 믿고 싶은 게 뭐냐 하면, 나는 이유가 어떻던 어떤 경우든 지진, 태풍, 화산폭발 어떤 경우든 비행기 사고가 나든 나는 살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이 ‘나’를 쪼개보면 내 안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내 가족은 살아야 되겠다. 내 가족, 다른 말로 하면 나는이죠. 남의 가족 아니잖아요. 내 가족이니까 나잖아요.

나는 살아야 되겠다는 걸 철석같이 믿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 강한 자기집착이에요. 이거는 천하에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와도 포기 못해요. 이미 이걸 믿고 있는 거예요. 이걸 믿고 있다가 다른 것, 성경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이미 이건 주가 돼있고 보조로 뭘 믿느냐 하면, 죽으면 천당 가고, 여러 가지 믿는 거예요.

이걸 아까 제가 뭐라 했습니까? 문화 활동이에요. 이게 문화 활동이고 취미고 오락이고 여흥이고, 낚시, 등산, 주부가요교실 이런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그다지 다급하고 시급한 문제는 아니에요. 애 아픈 게 중요해요. 애 사고 난 게 중요하지 애 성적 오른 게 중요하지 예수님이 어떻게 되고 관심 없다니까요. 구약성경 레위기 20장 그걸 왜 알아야 되는데, 이렇게 나온단 말이죠.

그냥 보조니까 교양 또는 자기의 지식확보, 하나님께 잘 보이면 혹시 천국 갈까하는 기대감, 이런 거지만 정작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죽지 않고 버텨내야 한다는 그 사실은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누가 와도 나는 양보 못한다는 자기집착은 대단한 겁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는데 여러분 답변해보세요. 뭘 누락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했어요? 이스라엘을.

정작 하나님께 계시 받은 이스라엘은 오늘날 교회에서 바겐세일 하듯이 복음입니다. 받으세요. 아멘 천당 가게 됐습니다. 거듭났습니다. 신앙인입니다. 이런 식으로 복음이 값싸게 남발되는 게 아니에요. 정작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스라엘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뭘 변화시킨다 했어요? 우리와 똑같아요.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했으니까 우리가 잘 될 것이라는 그 사고방식을 하나님 쪽에서 강제로 변화시켜 버립니다.

신약에서 아까 이야기한 문화센터에서 모든 결정은 누가 합니까? 본인이 결정하는 거예요. 내게 도움 되고 내게 이익이 있으면 이런 건 얻어 챙겨야지 하면서 극히 자기 자신에 대해선 손톱만큼도 건드리지 말라는 거예요. 내 인생 흠집 내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굳은 신앙이라니까요. 진짜 나를 믿는 신앙 확보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 보여주는 신앙은 따로 구성하고 조작해내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걸 모를 리가 있습니까? 저도 아는데. 오락 생활하고 교회 와서 취미 생활하는 걸 모를 리가 있겠어요?

무엇이 진지하냐? 내가 존재하는 게 진지하고 내가 사는 게 진지해요. 그게 우선이에요. 그 다음에 살기는 살되 윤택하게 남한테 좋은 소리 들으면서 교회 와서 칭찬 들으면서. 그거는 좋긴 좋지만 실익은 있지만 부수적인 거라니까. 교회에서 누가 욕하면, 여기 아니면 교회 없나, 하고 딴 데 나가면 그만이니까. 내가 원하는 게 없을 땐 딴 데로 빠지면 그만이거든요. 그런데 딴 데 갈 때 나만은 귀함을 내가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마음을 갖고 딴 데 가요. 모든 취미 모임이 그렇잖아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놀라운 나라입니다. 딴 데 갈 데가 없어요. 마치 조롱박에 사로잡힌 참새 신세라고나 할까요? 원래 이스라엘은 그들이 나라를 만든 게 아닙니다. 히브리 민족은 있었지만 나라 만들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왜냐하면 잘 먹고 잘 사는데 자기가 나라를 만들어요. 우리 따로 국가를 만들세, 히브리인들 속에 나와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애굽나라 백성으로 충분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 이후에 바로가 나와서 히브리인들을 노리고 공격하니까 그들이 힘들었을 뿐이지 애굽 말고 다른 나라라는 의식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에 여기서 경상도 대통령이 나와서 전라도 사람들을 다룬다면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서 북한 가자, 이런 식으로 하진 않는단 말이죠. 이러진 않거든요.

북한이 저런 나라 된 것도 북한주민의 의사가 반영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소련 점령 하에 있었고 김일성이 인수인계 받았을 뿐이에요. 일반국민들은 이제 일제에서 벗어나서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몰랐어요. 사람들은 원래 정치에 관심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에 관심 있느냐 하면, 내가 사는 그 땅 있잖아요. 땅에 농사짓고, 장사하면 그걸로 만족해요. 인간들은 원래 소박해요.

후삼국 이후에 고려 시대 될 때 궁예란 사람이 있지요. 자기가 자칭 부처라고 등장한 사람 있잖아요. 관심법이라 해서 뭘 본다 하잖아요. 그 뒤에 나오는 왕건, 최수종입니다. 그래서 학교 시험에서 고려를 누가 세웠느냐고 하면, 최수종이 세웠다고 해요^^ 이 사람들 깡패에요. 이성계도 마찬가지고.

나라 안 바뀌었어요. 대장질하는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지 일반백성들은 그냥 조상대대로 내려온 자기 토지나 가꾸고 소박하게 그것뿐이에요. 인간은 나와 내 가족, 내 새끼 그거면 끝이에요. 나 잘 되고 내 자식 잘 되면 끝이에요. 하늘의 별을 따겠습니까, 달을 따겠습니까? 그런 욕심 없습니다. 바깥 사회가 가만두질 않아요.

토마스 하디가 쓴 [테스]라 소설이 있어요.

원제는 〈더버빌가의 테스〉이며 '순결한 여성'(A Pure Woman Faithfully Presented)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주인공 테스는 몰락한 농가의 딸로, 더버빌 가문의 후예라는 벼락부자 집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다. 집의 아들인 바람둥이 알렉에게 유혹되어 사생아를 낳지만 아이가 죽자 남몰래 매장하고 타향으로 도망가 목장에 취직한다. 몇 년 후 부모의 신앙에 반발하여 농장 경영을 지망하는 목사의 아들 엔젤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한다. 결혼 첫날 서로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데, 테스의 과거에 충격을 받은 엔젤은 그녀를 버리고 브라질로 떠난다. 그 후 테스는 그녀의 부모형제가 마을에서 쫓겨나 유랑하게 되자 이들을 구하기 위해 알렉과 다시 동거한다. 이때 엔젤이 뜻하지 않게 돌아오자 격정에 사무친 테스는 알렉을 살해하고 엔젤과 도피하지만 곧 체포되어 처형된다. 운명에 희롱당하는 한 여인의 삶이 극적인 구성에 의해 표현된 작품으로 19세기 후반 영국 문학의 대표작의 하나이다. *다음백과*

이 책의 주제가 뭐냐 하면, 남성 위주의 사회적 편견이 그저 조용하게 살고 욕심 없이 소박하게 애 낳고 살겠다는 일반적인 가련한 한 여성의 꿈을 짓밟아버린 것이 사회란 것을 고발한 소설이에요. 뭐 대단한 여자로 외무부장관 되고 그런 것 안 했다고. 여자가 공부해서 사법고사 합격하고 그런 것도 안 했어요. 그냥 남자와 결혼해서 애 낳고 애 키우고 소젖 짜고. 그것도 죕니까? 그 여자를 몇 번이나 버린 것은 여자 쪽이 아니에요. 남자가 여자를 버린 거예요.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란 노래를 불러야, 눈물로 지새우는 거예요.

자, 그 [테스]에 나오는 여자가 지옥 갔다면 이유가 뭡니까? 그 여자는 뭘 모릅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지금 제가 테스 이야기하면서 마음이 갑자기 그 불쌍하고 가련한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남자한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여인 편을 들어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여자만큼은 천국에 보내주고, 그 여자를 찼던 목사 아들부터해서 지옥 보내고 싶지요.

그러나 그건 이스라엘을 배제한 거예요. 이스라엘은 네가 착하면 천국 가고 나쁘면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에 의해서 변화되지 아니하면 전부 다 지옥 갑니다. 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소박하든 욕심이 많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언약의 관계에서 끊어진 자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죄인으로 태어난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 만들 때 그 나라 만드는 계획과 작업은 누구 소관이냐 하면, 하나님 소관이에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히브리인들이, 더러워서 못 살겠다. 애굽에서 나오자, 지금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인간은 관성의 법칙이 있어서 살던 대로 살아요. 어지간하면 안 가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이북 사람들 운명은 그야말로 타이밍 문제에요. 그때는 삼팔선이 있어도 왕래가 되었어요. 차도 다니고. 언제 남쪽으로 갈 거냐? 그 타이밍 놓쳐서 죽어요.

이차대전 때 독일에 사는 유대인들 있잖아요. 처음부터 유대인들 다 잡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야금야금 잡아갔어요. 그때 유대인 지도자들과 독일이 한 패였어요. 나치가 유대인 지도자들을 회유한 거예요. 내 말만 들으면 유대사회를 봐줄게, 라고 한 말을 그들이 믿어서는 안 되는데 유대인들이 믿었어요.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 말을 안 믿었지만 너희들만은 특별대우해서 빼줄게, 라는 말을 믿었지요.

왜? 인간 누구 중심이기 때문에? 인간은 믿음이 있어요. 어떤 믿음입니까?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는 믿음이 확고해요. 이 믿음에 예수 믿음, 하나님 믿음이 들어갈 침투할 여지가 없어요. 이미 믿음은 확고해요. 나만 살면 돼, 나만. 우리가 구약성경을 왜 봅니까? 구약 나라가 이 사람들이 하나님 안 믿는다고 데모하는 나라에요? 아닙니다. 가면 갈수록 하나님만 믿겠다고 우겼던 사람들이에요. 다 망했어요. 이상하지요. 철석같이 하나님에 매달린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이스라엘 전부 다. 몽땅 다 망했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주사바늘 주입하듯이 선지자들을 통해서만 주입됐어요. 선지자는 일시적인 지도자지 지속적인 세습적인 지도자는 아니에요. 순간순간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자가 선지자입니다. 그 선지자가 이스라엘 내부에 하나님의 계시를 줬어요. 계시를 줄 때 선지자의 자세나 특징은 뭐냐 하면, 현재를 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오실 메시아니까 오실 메시아를 믿는 안에 뭐가 빠져있냐 하면, 나는 이 복음 전하다가 밥 먹고 살아야지, 하는 것이 빠져있어요. 그래서 선지자는 천상회의를 본 사람들이에요. 이미 하늘의 계획이 어떻게 잡혀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거예요. 물론 모세도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신이 임했으니까.

이들은 현재를 위한 믿음이 있는 게 아니고 미래에 오실 분을 생각하면서 그분은 지금 소개하는 사람들이 선지자입니다. 그러면 일반 사람들은 누굴 소개해요?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까요, 자기가 자기를 소개하지요. 이게 바로 선지자와의 차이점입니다. 예수 믿으면 어떤 실익이 나한테 있습니까? 우리 가정에, 내 신상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 묻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것은 이미 신앙이 아닌 거예요. 그건 문화 활동, 오락이에요. 자기가 자기를 쥐고 있으니까 놓을 줄 모르고 있단 말이죠.

신약에 와서 그걸 지적하는 말씀이 한두 개가 아니고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그 말씀을 이야기하면 안 들은 것처럼 합니다. 뭐냐 하면, 내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란 말씀을 또 끄집어냅니다. 더 쉽게 하면 고린도전서 6장에 의하면, 내 몸은 값을 주고 샀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니고 내 몸은 누구 것이라 했습니까? 주의 것이지요. 그러면 내 몸으로 인수되는 내 몸은 이 세상에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나는 없는 거예요. 내 몸에 근거한 나는 없어요. 주님의 몸에 근거했다는 전제 하에 주님이 원하시는 나, 약속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나만 있어요.

그러나 그 조건이 내 몸이, 내 인생이 내 계획대로 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전제로 해서 나에요. 그렇다면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권리주장하지 못하지요. 왜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습니까,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거는 아직도 지 인생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왜 내 자식은 공부를 못합니까? 그렇게 우기지 마세요. 왜 내 남편은 술 먹고 늦게 들어옵니까? 그러지 마세요. 술 먹고 들어오는 건 프라이팬으로 안 패서 그런 거고. 내 인생을 가꾸려고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내 인생 자체가 없어요. 그런 조건 하에 내가 되는 거예요. 이게 신약입니다. 복음 밖에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에 의해서 다른 인간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원칙은 어디서 나오느냐? 구약부터 나와요. 이제 진도 좀 나가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정리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만드신 나라에요. 맞지요. 아까 히브리인들이 고안해낸 게 아니라고. 따라서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이 결론이 도출돼야 돼요. 이걸 믿어야 돼요. 이스라엘은 아무도 못 들어가요. 허락된 사람만 들어갑니다.

이스라엘이 있다면 히브리 백성이라도 못 들어가요. 들어갈 때는 조건 하에 들어갑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른 사람만 들어가는 거예요. 이 조건은 인간들이 만든 조건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이스라엘 되기 위한 조건이거든요. 그럼 이스라엘 내부에 이 조건이 멈추겠습니까, 계속 가동되겠어요? 이스라엘 내에 계속 가동되겠지요. 그게 오늘 22절 토해낸다부터 시작해서 27절까지 계속해서 그 이야기에요. 내 율법의 율례를 지켜야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23절부터 보면,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기업이란 유산입니다. 너희가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니란 말이죠.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이 모든 이야기에 하나님의 조건이 있어요. 그 조건이 약속 또는 언약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조건을 걸어서 이 나라를 만들었다면 이스라엘은 무너질까요, 안 무너질까요? 안 무너지는 거예요. 안 무너지니까 이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얻어요. 여러분, 울산바닥에 살면서 안정감 얻었습니까? 현대중공업 부도나도 안정감 얻겠어요? 울산경제가 위축돼도 여러분 안정감 얻겠습니까? 울산이 아파트값 제일 많이 떨어진다는데 안정감 얻겠어요?

만약에 세상이 요동치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거기에 대해서 마음이 흔들린다면 아직도 우리는 내가 살아야 되겠다는 내가 내건 조건을 집착하는 가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가짜 믿음은 특별한 사람만 아니라 성도라 할지라도 모든 인간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가짜 믿음이 발산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돼요. 나는 옳은 믿음을 유지해야지. 그거는 본인이 손댈 문제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내 몸은 내게 귀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 귀한 몸이에요. 주님께 귀한 몸을 주께서 쓰시도록 내놓으세요.

우리의 몸은 아담의 죄의 몸이에요. 그 몸은 비록 쓰레기지만 주님한테 들어가면 그 쓰레기가 보석이 돼요. 그게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옵니다. 황금집이에요. 하늘에서 내려온 예루살렘 보석집이고, 보석으로 단장한 이유는 신랑을 빛내기 위해서 신부 단장하는 게 정상이지, 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신부 자체를 위해서 단장하는 게 아니고 신랑이 대단하니까 격에 맞추기 위해서 보석 같은 신부를 만드는 그 작업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 포함된 겁니다. 그 약속이 우리를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낼 거예요. 쓰레기를 찬란한 백설공주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건 우리가 못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뭐냐 하면, 아예 내가 나한테 손 안 대기로 명심해야 됩니다. 우리는 쓰레기니까. 쓰레기 몸인데 쓰레기에서 나온 손가락으로 손대봐야 쓰레기가 더 쓰레기 될 뿐이에요. 막 사시면 됩니다. 그냥 막 사세요. 막 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자기한테 가치가 남아있다고 자기 자신을 믿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왜냐하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평생을 신앙인으로 살아왔는데 그 신앙은 자기를 교주로 만드는 신앙인으로 살아왔어요. 아파트는 자기 성전이고 자기는 제사장이에요. 그걸 네 자로 하면, 광산김씨. <살림하는 남자들>에 나오는 김언중, 백씨 부부 보게 되면 모든 행동이 오직 종교에요. 가장이 유일한 교리가 돼요. 우리 집에 내가 가장이라는 게. 가정이 하나의 종교단체에요. 가부장제도.

교주 되는 아버지한테 머리만 숙이면 사십 된 아들 둘도 빈대 붙어 살 수 있어요. 자식이 독립하는 건 문제가 아니고 내가 아버지라고 가치를 인정해준다면 모든 걸 용납하고 자식을 위해 헌신할 마음준비가 돼있습니다. 나만 절대화시키는 조건 하에. 그런데 칠십 된 노인에게 그걸 변하라고 요구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우리도 서서히 그렇게 돼가니까. 돈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아직도 내가 가장으로서 꿀리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교구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몰라요. 다시 말해서 자식이고 아내고 오직 나만 알아요.

아까 차타고 오는데 안 보려고 했는데 보였어요. 휴대폰에 전화가 어디서 왔는지 나오잖아요. 마누라. 아내, 부인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마누라. 참 소박하고 순박하게 보인다는. 나한테는 상당히 낯설어 보였어요. 그런 걸 탓하는 게 아니고 은연중에 우리는 자기 자신 위주로 옛 신앙, 옛 종교의식을 아무리 해도 죽을 때까지 변경이 안 됩니다. 주께서 손을 대줘야 돼요. 그러면 이걸 변경해서 사모님으로 할까요? 그것도 이상해. 부인님도 이상하고. 그냥 하던 대로 하되 그것이 주의 구원받는데 전혀 지장 없다는 거예요.

지금 뭐가 문제냐 하면, 그걸 바꿔서 믿음 없는데 믿음 있는 척하는 그 믿음을 저는 빼라 이 말이죠. 니가 믿음 생활 잘하면 그걸 근거로 구원해주시겠다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변화시키는 내용이 뭐냐 하면, 네가 전에는 나를 무시하다 또는 잘 안다, 이게 아니라 내가 내 구원에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그것이 확정적으로 받아지는 그 자유함, 그런 식으로 변화돼야 돼요. 내가 내 가치를 훌륭하게 조정하거나 관리해서 구원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 확정이죠. 확정 난 존재. 우리 힘으로 절대 구원받을 없다는 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다시 봅시다.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못 들어가요. 유월절 양 피 바른 조건으로 들어왔다면 이스라엘 내부의 원칙이 뭐냐 하면, 인간의 행함으로 약속의 땅,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그 원칙이 계속해서 가동되는 중이에요. 처음에 들어올 때만 믿음이고 그 다음엔 행함이 아니고 이스라엘 내에 들어와도 처음 들어올 때 조건이 계속 반복해서 적용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천국은 내가 못 들어가. 예수 믿음으로 들어가. 예수 믿음으로 들어간다고 해놓고 믿었으니까 바르게 살아야지. 오늘 본문에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가 거룩하라 했으니까 거룩하게 살아야지. 이렇게 돼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이 사람이 피를 통과할 때 뭔가 포기해야 되는데, 나의 행함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동안 나만 집착했다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들어와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포기가 안 되잖아요. 안 되니까 주님께서 예수님의 반복적인 십자가의 피로 또는 언약의 피로 매일같이 이스라엘 내에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인간이 아는 죄만 아니에요. 모르는 죄까지 7월 10일에 한꺼번에 드려요. 그래서 죄 용서가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서 뭐가 중요하냐 하면, 내가 스스로 훌륭하다가 아니라 용서받았다는 사실이 훌륭한 거예요. 이게 거룩인 거예요.

용서 없는 사람과 용서 있는 사람 사이, 이걸 차별하는 것이 주님의 심판입니다. 잘났는지 훌륭한지를 묻는 게 아니고 용서받았는지를 묻는 거예요. 그럼 용서란 게 성립되려면 우린 죄인이란 건 기정사실이죠. 그럼 용서받기 위해서 우린 어떤 걸 해야 됩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용서받으려고 사람들이 뭘 시도하느냐 하면, 자기 행함 가운데서 선한 것은 빼는 거예요. 착하기 때문에 용서받을 게 없고 나쁜 짓한 것만 뽑아내요.

여러분 옛날에 부흥회 참석한 기억이 납니까? 목요일 쯤 되면 죄 회개하란 말 많이 하잖아요. 부흥회에서 목요일은 끝날 때에요. 이 날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어요. 목요일 저녁에 헌금하는 순서가 있어요. 하나님 앞에 죄용서 받고 돈 아끼느냐는 마지막 멘트를 날리기 위해서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서 회개하란 말이죠. 사람들이 회개할 때 죄가 생각나야 하잖아요.

그러면 작년 부흥회 때 회개해서 용서받은 죄까지 다 끄집어내는 거예요. 왜냐하면 용서받을 재료가 변변치 않아요. 주님 앞에 회개라는 잔치를 벌여야 되는데 반찬이 몇 가지 돼질 않아. 그래서 용서했다는 것까지 끄집어내서 다시 시작해요. 최근에 사태를 볼 때 용서받을 만한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회개한다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거예요. 진짜 이스라엘, 교회, 하나님나라는 행함이란 게 없어야 돼요. 행함이 없이 용서되려면 용서가 먼저고, 왜 용서돼야 되는 이유를 새삼스럽게 필요한 죄를 깨닫는 작업이 본격화되는 겁니다. 그게 뭐냐? 계속된 율법의 투입이에요.

옛날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우리 동네에서 유교적으로 엄격하기로 소문난 분입니다. 깐깐한 할아버지, 동네에서 자칭 유지고 자식들만큼은 남한테 욕먹지 않기 위해서 이걸 신조로 엄격하게 했어요. 물론 대가족으로 삼촌, 고모, 손자들까지 살았으니까 나한테도 그 여파가 오은 거예요. 그래서 자식 하나하나 면담해서 하나하나 지적해요. 너가 뭐가, 뭐가 잘못됐고, 그 다음 너는 뭐가 잘못됐고. 그걸 아침마다 계속하는 거예요.

나한테는 여러분 다 아시다시피 성질이 급하고 신발 함부로 던진다는 것, 문 닫을 때 몸부터 나가고 뒤돌아서 문을 닫아야 된다는 그런 것.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취미가 관찰하는 거예요. 그 다음 날 잔소리할 걸 관찰하는 거예요. 그래야 점점 더 어른다우니까. 그 당시는 몰랐는데 복음을 알고 보니까 문제가 할아버지를 가장 힘들게 화나게 만드는 것은 자기 지적대로 그게 따라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부터 지적할 게 없기 때문에. 할아버지 권위가 추락할 판이에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자기 말을 그대로 하는 사람에게 부담을 느껴요. 또 계발해야 돼요. 죄를. 이건 기 싸움이라. 손자나 자식들과 기 싸움하는 거예요. 식사할 때 소리 내지 마라. 된장찌개는 두부부터 먼저 건지지 말고 국물부터 하고 먹는 사람이 넷인데 두부가 다섯이면 그걸 계산하고 건지라는 거예요. 소고기라면 몇 개인지 계산하고 혼자 먹지 마라. 그리고 갈치는 중간부터 먹지 말고 꼬리부터 먹고. 중간은 어른 몫으로 남겨두고. 그런 지침들이 계속 계발되는 거예요.

그런 영향 때문에 나중에 교회에서 교인들 모습 보니까 복음을 모를 때 평신도일 때 사람들의 태도가 얼마나, 지옥 가겠다 싶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행동을 함부로 하고 말을 함부로 해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유교교육을 단단히 받은 괜찮은 나와 저쪽이 완전히 차별화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로 그 작업을 벌이시는 겁니다. 백 개를 지키면 그 다음에 백한 개를 내세워요.

그래서 이렇게 합니다.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키기 아니하면 저주 아래 있다. 천 개를 지켜도 하나를 어기면 다 어긴 것이다. 끝까지 몰아붙입니다. 예수님은 더 몰아붙여요.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찍어버려라.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죄다. 더 매몰찹니다. 구약에선 맹세한 것은 지키라 하지만 예수님은 아예 맹세조차도 하지 말라에요. 기도도 소용없다는 거예요. 기도할 때 맨날 맹세하잖아요.

이건 뭐냐? 주님께서 끝까지 몰아붙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천국은 인간의 행함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 동네기 때문에. 그래서 십자가의 강도는 자기가 강도인지 내가 강도질할 때 자기 때문에 피해 입은 가족들 생각하고 자기한테 도적질 당해서 굶어죽은 사람 생각하는 것 없어요. 강도는 본인이 강도인 줄 모르고 다만 내가 어떤 직업이냐, 과거에 한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일체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생각해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그렇게 나아갑시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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