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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8 15:22:17 조회 : 47         
163강-창 41장 54-57절(에브라임)181107-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61.84.208.92)
163강-창 41장 54-57절(에브라임)181107-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41장 54-57절입니다. 구약성경 65페이지입니다.

창 41:54-57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쌔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오늘 본문 대목을 보면서 제일 먼저 와 닿는 이야기는, 요셉 같은 신앙인만 우리 가운데 있으면 굶어죽을 일은 없겠다, 라는 생각을 가질 겁니다. 왜냐하면 요셉과 하나님이 통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요셉의 신앙발로 인하여 남들은 다 힘들지만 우리는 편안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산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이 말씀을 주실 때에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얻을까를 위하여 주신 말씀이 아니고 우리가 모든 사고방식이나 생각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신 거예요. 진리를 안다는 것은 거창하게 뭘 하나 더 획득하는 것이 아니고 미처 몰랐던 내가 이정도로 잘못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최고입니다. 이것보다 큰 행운이 없어요.

아, 내가 세상을 봤을 때 완전히 엉터리로, 거짓되게 세상을 봤고 거꾸로 세상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통감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혜택입니다. 주의 마음입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좋았던지 예수님 옆에 있던 강도는 자기가 강도질해서 살아왔던 그 뻔뻔스러움을 능가하고 그것을 극복해 냈어요.

강도질해서 자기로 인하여 피해자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천국이 곧 내 나라라는 사실, 자신이 들어갈 곳이라는 사실을 파악을 했다는 이것은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요셉으로 인하여 벌어진 이런 일은 흔한 일이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 기적이라는 그것을 염두에 두셔야 되고, 그리고 그 기적을 우리가 마땅히 받을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을 또 명심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제성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어떤 기적은 괜찮은 나에게 칭찬조로, 보상조로 주어지는 것이 기적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기적이라는 것은 더욱 더 우리 자신이 얼굴을 못 들게 만들고, ‘우리 자신이 참 부끄럽구나. 우리가 이렇게 문제 있구나.’ 하는 것을 더 깊이 자각시키는 그 자체가 기적이 되는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은, 너무 잘난 체하면서 살았어요. 제가 이렇게 세상을 보면서 사람들마다 어떤 공통점이 있어요. 자기를 자꾸 피해자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부모를 잘 못 만났고, 세상을 잘못 만났고. 이렇게 피해자로 간주해요.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요. 아버지가 70이 훨씬 넘었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병에 들었어요. 누나와 남동생 둘이 있는데 아버지에게 14억짜리 빌딩이 하나 있어요. 딸이 효심이 극심하지요. 효심이 문제에요. 효심이 극심해서 요양병원에 보내야 되는데 자기 집에서 요양사 불러서 맏딸로서 봉양을 한 겁니다. 맏이는 맏이 값을 해요. 희한해요.

그 아버지가 요양사하고 주로 있고 딸은 가끔 봤지요. 그 요양사는 남자 요양사에요. 아버지가 몸을 못 움직이니까 그 요양사가 수발 다 들었어요.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뒤에 보니 그 14억짜리 빌딩이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돌아오지 않고 옛날에 아버지가 작은 공장 운영할 때 알게 된 4촌 누이인가 그 사람에게 재산이 다 가게 되었어요.

지금 세상 이야기나 하려고 이 귀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을 때 이 딸이, 요양사와 그 사촌하고 짜고 유산을 빼돌렸다고 길길이 뛰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경찰에 고소를 했지요.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실제로 쓴 일기장이 있어요. 일기장에 보니 뭐라고 되어 있느냐? 아내가 나를 구박하고 딸이 나를 때려서 한 푼이라도 내 재산은 자식이나 아내에게는 가지 않게 하겠다는 야무진, 마지막 있는 정신을 다 써서 유언장을 써버렸습니다.

딸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 경찰서에 가서 알아봤지요.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딸이 이렇게 구박했다고 하는데 몰랐습니까?” “우리는 아버지를 구박한 적이 없습니다. 얼마나 제가 효도를 했는데요.” 했을 때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내는데 아버지가 현재 아내 말고 여자를 사귄 적이 있어요. 그걸 알고 딸이 아버지에게 따지면서 좀 밀치고 했는데 “감히 딸이 나를 때리다니.” 해서 시집간 딸의 집에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딸이 유산까지 한 적이 있었어요.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자, 거기서 14억을 날려버린 그 딸의 심정,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 하고, 요양사도 자기가 다 알아봐서 붙였고, 그렇게 했는데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을 때. 꼴에 바람 핀 아버지가 아버지 값 한다고 자식한테 일체 알리지도 않고 내 재산 내가 처분한다는 식으로 된 겁니다.

이러한 기구한 사연, 애통, 절통한 사연이 있는 사람이 교회 와서 성경 봤을 때 오늘 본문을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아, 참, 나는 신앙이 없지만 내 곁에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이렇게 모든 일이 원만하게 되어서 아버지 유산이 나에게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생각할 거예요.

오늘 보면서 인간들이 성경 볼 때 근본적으로 뭐가 잘못되었다, 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이 본문 보면서 ‘요셉 하나 하나님께 잘 보여서 애굽사람들이 큰 혜택 입고, 애굽 사람들뿐만 아니라 애굽땅 주변의 나라까지 다 애굽나라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이렇게 잘되는구나. 그러니 하나님은 참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다.’라는 생각으로 해석할 거라는 말이지요.

그게 글러먹은 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54절에 보면,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가뭄, 기근, 흉년, 이것은 뭐냐 하면, 애굽땅 자체를 황폐화 시키는 겁니다. 애굽땅 자체를 황폐화시킨다는 말은 곧 애굽 땅 자체가 없어지고 소멸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 애굽 땅 자체를 소멸함으로 말미암아 그 반대결과로서 부각되는 것이 있어요. 상승되는 효과가 뭐냐 하면, 55절에 나옵니다.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라는 말이 나와요. “요셉에게 가라.” 나한테 묻지 말고 뭐든지 해결책은 요셉에게 가서 물으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복이 뭐냐? 요셉을 부각하는 것이 복이에요. 요셉이 그냥 부각되면 더불어 같이 사는 것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흉년이나 기근이 일어나야 돼요. 쉽게 말해서 애굽은 소멸되고 요셉의 있음의 의미는 상승되고. 지금 성경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 이야기입니다.

나에게 돌아올 14억이 날아갔다고 자꾸 내 것, 내 세계, 내 인생, 이것 챙겨주려고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에요. 내 인생 그것 챙기려는 그것이 나 자신에게 오류가 되고 나 자신에게 크게 잘못 생각하는 요소가 되는 겁니다.

지난번에 한 꿈 이야기지만 다시 해 봅시다. 오늘 약간 복잡할 수 있는데요, 풍년이 오고 그 다음에 흉년이 왔다. 꿈 이야기는 이걸로 분명히 종결됩니다. 제가 수요일에 설교를 하니까 누가 이야기하기를, 약간 억지가 아니냐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멀리서.

제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바로의 꿈은 풍년이었는데, 그래서 좋았는데 그 좋았던 것이 아예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황폐하기 되었다. 그걸로 꿈은 끝나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운명은 그걸로 종치는 겁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그런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14억 아버지 유산 받는다는 그런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인간들은 14억이 있든 몇 억이 있든지 간에 전부 다 황폐하게 없어져요. 지진 일어나서 남 죽은 것 좋아하지 마세요. 우리도 그렇게 되고 그런 것은 다 세상의 전조, 징조, 다 그렇게 돼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 그렇게 된다고요.

없어지는 것이 당연지사고 그래야만 하는 속성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오는 풍년 - 흉년 - 풍년, 또는 축복 - 저주 - 축복, 두 번째 나오는 그 축복은 첫 번째 축복 때 좋아라, 했던 그 축복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사람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축복이에요. 이런 점이 복잡하고 어려운 거예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요셉이 자식을 낳았습니다. 요셉의 자식에 대해서 51절에 보면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지난 수요일에 므낫세에 대해서 먼저 중점적으로 했어요. 오늘은 두 번째 자식 이야기를 할 겁니다. 첫 번째 자식 이름이 므낫세인데 나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뜻이지요.

두 번째 자식이 에브라임, 52절에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창대한다, 창성하게 한다고 되어 있어요. 이게 복입니다. 애들, 소녀들 방이나 이런 데 보면 스노우볼이라는 것이 있어요. 유리알 속에 눈이 오는 풍경이 들어 있어요. 흔들어서 놓게 되면 눈이 또 와요. 내부적으로 눈이 와요.

하나님의 복음바깥의 애굽과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어요. 동그란 스노우볼 안처럼 거기는 낯설고 예상 못한 새로운 신세계가 그 안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요셉의 활동에서 결과물로 나온 거예요. 요셉이 어디와 견주냐 하면, 요셉이 남의 땅 애굽에서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애굽 땅이기 때문에 비로소 생겨버린 하나님의 신설된 복, 새로운 복이 뭐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에요.

이 말은 뭐냐? 요셉의 자식이 되는 것이 궁극적인 복이 되는 겁니다. 내 세계, 14억 유산 받는 것이 복이 아니고,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 경찰서 왔다갔다, 하는 그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는 요셉이 없었으면 창성, 또는 창대라는 이름으로 운명 지어진 나는 이 땅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좀 얄밉게 이야기하면, 세상이 황폐하고 세상이 지옥이 되지 아니하면 내가 갈 나라는 없다는 거예요. 얄밉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제가 아까 한 유산문제 이야기는 <제보자>라는 프로에 나오는 이야기이에요. 유산문제로 울고불고 하는 그 이야기가 실화인데 그 이야기를 왜 언급하느냐 하면, 요셉 이야기 하면, 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 들어요. 심지어 교회에 와서도.

무슨 이야기를 알아듣느냐 하면, 아버지가 아팠는데 유산 빼앗겨서 고소해서 빼내려고 애쓴다는 그 이야기는 어째 그렇게 머리에 깊숙하게 들어오는지. 그 말은 뭐냐? 하나님이여, 내가 이 땅에 살 때에 요셉 같은 분 좀 만나서 이왕 사는 것 풍부하게, 진짜 잘 먹고, 잘 입고, 내 세계가 내가 원하는 세계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라는 기대감 가지고 교회 들어오는 거예요.

교회를 들어오든, 예수를 믿든, 하나님을 믿든, 그런 겁니다. 대구강의에서도 했지만 내 것 다치지 않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있음에서 계속 있음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러나……, 지금 세 번째 이야기합니다. 바로의 꿈은, 모든 있음은 없음으로, 저주로 끝나요. 그걸로 끝난다고요. 더는 욕심내면 안돼요.

나의 가진 모든 재산과 수고한 인생은 결국 주님 보시기에는, 지옥이나 가라, 그 말이에요. 없는 거예요. 그 다음에 나오는 그것은 덤으로 주는 것이고 그것은 없어도 상관없는 덤이고 의외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 요셉덕분에 남들은 기근인데 우리는 밥 먹고 사는구나.’ 이러면 그 사람은 전혀 복이 아니에요.

그 저주와 동일한 저주를 받고 있는 입장입니다. 그게 아니고, ‘누구 덕분이지?’ 또는 ‘누가 계시기에, 나 없음, 나 지옥 감, 나 멸망, 나 황폐함, 14억 유산 다 날림, 그래야 내가 마땅한데, 그게 당연한 것인데, 도대체 우리 가운데 누가 있기에 이런 혜택을 받지?’ 이렇게 우리가 의아해 해야 된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될 때 내 것을 복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내가 꾸려놓은 인생자체,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언제든지 놔버릴 대상으로 보는 거예요. 이것 때문에 진짜 복을 가리는, 저주받을 것들을 아직도 쥐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성경은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게 문제라고.

지금 애굽사람들 좋아하는 그것은 네가 좋아하는 그것과 똑같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요셉의 복, 애굽사람이 요셉의 혜택은 입지만 요셉을 통해서 정작 하나님이 보이고자 하는 그 복은 바로의 꿈 + 요셉의 꿈이에요. 바로의 꿈에서 머물면 지옥 갑니다. 어디를 건너와야 되느냐 하면, 바로의 꿈에서 요셉의 꿈으로 건너가야 돼요.

요셉의 꿈, 복은 뭐냐 하면, 기근인데 밥 먹고 산다, 가 복이 아니고 나의 운명은 잊어버림이고 새로운 창성의 질, 새로운 속성, 영원히 마르지 않는, 계속해서 번창하는, 영원히 번창하는 천국의 복에 이미 소속된 신분으로서 재탄생한 거예요. 우리가 새로운 예수님의 형제, 주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이게 복입니다. “14억 가져가! 잘 먹고 잘 살아.” 왜? 내 신분이, 내 이름 자체가 이제는 창대고 내 이름 자체가 14억 가지고 애걸복걸하는 그것을 잊어버린 나거든요. 그것과 결별된 나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뭐냐?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하는 일을 모독하고 있는가, 그것을 아주 무가치하게 보고 훼방질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겁니다.

우리의 초점은 므낫세, 그리고 에브라임입니다. 지난 시간에 므낫세를 했기 때문에 이번 시간에는 에브라임을 설명해야 할 순서가 되었습니다. 에브라엠이나 므낫세라는 요셉의 두 자식은 요셉이 애굽에 오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자식입니다. 따라서 므낫세나 에브라임안의 바탕에 뭐가 깔려 있었느냐 하면, 우리 아버지 요셉이 애굽에서 받았던 수모와 무시와 모멸과 고난이 항상 카펫처럼 깔려 있어야 돼요.

그래야 새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운이 좋아서 천국 가는구나, 이것도 좋지만 그렇게 가게 된 값을 치르게 된, 나대신 값을 치르신 분이 우리 안에 내장되어 있어야 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이 복을 내가 받아야 될 마땅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겁니다.

따라서 정말 우리가 므낫세나 에브라임처럼 거듭난 천국의 백성이라면 두 가지 요소를 항상 생각해야 돼요. 하나는 뭐냐 하면,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돼요. 처음에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성경말씀은, 내가 뭐가 문제고, 내가 세상을 어떻게 잘못보고 있으며 오류냐 하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줬다고요. 나는 이 정도로 문제가 있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새로 밝히 보는 그것이 행운이고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그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때 그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그것이 바로 신약에 나오는데 신약 두 군데를 찾아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8절에서 21절까지입니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게 이사야 42장부터 나오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 가운데서 유명한 말씀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면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한다. 저는 이것을 수백차례 들었어요. 왜냐하면 장로님들이 주일 오전에 대표기도 할 때 상투적인 메뉴처럼 나오는 멘트에요.

이 말을 얼마나 오해하는지. 다시 말해서 “주님이여, 우리 교회 좀 봐주세요. 우리가 죄 짓더라도 좀 봐주세요. 그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잖아요. 그러니 우리상한 심령을 봐주시고 눈감고 넘어가 주세요.” 그런 잘못된 해석을 가지고 이 대목을 거론하는 거예요.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아마 그 장로님이 어떤 사업을 하는 모양이라. 까딱하면 부도냐, 아니야, 하는데 아주 간절한 심정으로 부도 맞지 않게 하옵시고, 와 같은 말로 꺼져가는 심지를 끄시지 마옵소서. 아마 태극기 집회하는 사람들은, “주여, 이 보수의 기치를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이렇게 할 거예요.

이 말은, 그런 뜻과 정반대의 뜻입니다. 심판을 유보한다는 거예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한다는 것은,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입니다. 이걸 오늘 본문에 적용시켜 보게 되면, 지금 다른 나라 다 기근이에요. 황폐하고 비가 안와서 난리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있는 애굽나라는 여유분이 있어요.

이걸 볼 때 그 여유분의 양식을 먹을 때마다 그 낱알 하나하나는, 벌써 바로의 꿈에 의하면 이미 그것은 끝난 이야기에요. 이런 곡식을 우리한테 줄 이유가 없어요. 우리의 본질과 우리의 본성에 부합되려면 이런 양식이 우리한테 올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바로의 꿈에서는 저주로 끝나버렸으니까요.

그러면 과연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냐 하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저주 받아야 되는데 뭔가 누구로 인하여 저주에서 유보되어서, 누군지 모르지만 그 분의 활동 때문에 우리가 우리한테 해당도 안 되는, 그냥 공짜로 봐주기 식의 은총을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더 이상 내 세계, 내 것, 14억,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안 나오지요.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얻은,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만한 공장 하나 얻었고, 이만한 농토를 얻었다든지 내 자식을 이렇게 잘 키웠다, 라는 소리는 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이 교회는 내가 얼마나 새벽마다 기도하고, 우리 교인들 모으는데 얼마나 애를 쓰고, 내가 얼마나 설교하고, 이런 소리는 나오면 안 되지요.

오히려 아직까지는 건재하고, 단풍들고,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항상 ‘곧 끝장 날 것인데. 오늘 밤에 끝장나도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이의를 걸 수가 없는 세상인데.’ 라는 그런 안목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바로의 꿈은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이라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계속 하나님께서 봐주고, 또 봐주고 있는 거예요. 자기 택한 백성, 므낫세와 에브라임에 해당되는 사람 다 마무리 지을 때까지, 그 사람을 다 생산할 때까지, 그 사람을 위해서, 자기백성 생산하기 위해서 그냥 계속해서 봐주고 있는 겁니다. 질질 끌고 있는 거예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것은 상한 갈대 안 꺾기 위해서가 아니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택한 백성을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신분변화가 복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계속 지연되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마태복음 12장의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바울편지에서는 어떻게 완성되어 있는가? 그게 로마서 1장 18절부터 길게 나와 있어요. 다 읽을 수는 없고 듬성듬성 읽어보겠습니다.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우리가 새사람 되었다. 우리가 므낫세가 되고 에브라임 되었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증거를 찾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겁니다. 저 짓 하니까 지옥가지, 라는 징후와 징조를 볼 수 있는 눈이어야 돼요. 왜? 우리가 전에 그렇게 살던 사람이니까.

지금 그런 세상과 결별해서 스노우볼 안에 들어 있거든요. 스노우볼 안에 들어 있으면서 스노우볼 바깥쪽을 보는 거예요. 주일 오전에 본 갈라디아서 6장의 말씀이 여기에 적절하게 적용이 돼요.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렇게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그 십자가를 스노우 볼로 보자는 말이지요. 반짝반짝 빛나는 투명한 볼 안에 들어앉아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세상없어도 괜찮아요. 내가 가꾸어놓은 사업체 다 날라 가도 괜찮아요. 왜? 그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새사람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주께서 펼쳐놓은 배경, 나를 나 되게 하는 배경에 불과하거든요.

내가 집착하고, 이것은 죽어도 못 놓겠다고 하는 거기에서 나를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그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옮겨놓았던 그 흔적이 이 땅에 있는 나만의 세계라는 겁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제가 수백 번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데가 아니고 이미 들어와 있어야 돼요. 오늘 설교제목을 ‘스노우볼’로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미 동그란 그 투명하고 밝은, 흔들면 항상 겨울, 그 소박하고 포근한 신천지가 그 안에 잠겨 있는, 신천지라 하니 좀 이상하지만, 그렇게 딱 있는 것처럼 그 안에 들어서서 세상을 볼 때 세상은 죽었고 그 사람 보기에 나는 죽어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걸 보면서 남들하고 다른 인식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세상 사람들은, “아이고, 내 재산! 아버지 유산 다 누가 가져갔다.” 울고불고 고소하고 하는데 우리는 뭐냐?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가를 보자는 거지요.

보는데 로마서 1장 20-23절에 보면 거기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잘 나와 있어요. 어떻게 세상을 보면 제대로 보는 것인가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라는 증거를 찾으라고 우리보고 아직도 이 세상에 살게 하는 거예요.

이 버러지 형상의 우상의 대표적인 것이 뭐냐? 교회입니다. 복음을 좋아하는 데가 교회가 아니에요. 교회를 좋아하는 데가 교회에요. 교회가 복음을 가로막잖아요. 왜냐하면 가장 고상해 보이고 거룩해 보이거든요. 만약에 교회 목회하는 목사가 교회를 못 잊는다면 그 사람은 므낫세가 못되는 사람이에요.

므낫세는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될 쪽으로 이끌림을 받아야 될 사람이 므낫세거든요. 기차를 타면서 제일 뒤 칸에 타봅시다. 거기서 지나온 것을 바라봅시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잊어버림의 폭이 점점 더 증가하지요. 내 잘함이 아니라 내가 버려야 될 것들이 매일매일 살면서 이것도 버려야 되고 저것도 버려야 되고, 잊어야 되고, 잊어야 될 것들이 계속 쌓이는 거예요.

한 달 전에 뭐였습니까? 잊어버리세요, 라는 것이 주의 뜻입니다. “하나님, 5년 전에 나쁜 짓 했어요.” 주님이 뜻은 잊어버리라는 겁니다. “네가 므낫세니 잊어버려라.” “3주 전에 나쁜 짓 했어요.” “잊어버려라.” “두 달 전에 제가 잘나갔습니다.” “잊어버려라.” 안 잊어버리면 그게 우상이 돼요. 버러지의 형상이 되고.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되는 겁니다.

로마서에서 이 말씀이 얼마나 친절합니까? ‘내가 성도인 것을 어떻게 알지? 하나님의 흔적을 어떻게 찾지?’ 보라는 말이지요. 스노우볼 안에서 다 보세요. 살아가는데 뭐 때문에 삽니까? “아이고, 아버지 유산! 내 것, 내 효심이 날라 가버렸다. 내가 아버지 안 때렸는데 때렸다고 했다.” 때렸어요. 왜 안 때렸겠어요. 성질이 나는데.

“그것 가지고 삐져가지고 심지어 귀한 돈 14억을 남에게 주고.” 이 모든 것 때문에 고소하고 고발하고, 미투하고, 세월 호 아직까지 따지고 있고. 므낫세가 안돼요. 일단 므낫세로 건너오고 그 다음에 에브라임으로 쫙 가야 돼요. 창성하고 창대한 것은 세상 끝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께서 친히 마련해주신 새하늘과 새땅이에요.

정말 그것은 빛의 세계입니다. 어두운 것도 없고, 악한 것도 없고, 눈물 흘릴 일도 없는 그런 곳입니다. 그곳에 죽어서 가지요, 가 아니라 미리 와 있어야 돼요. 진즉에 있어야 돼요. 지금 들어오지 아니하면 그 나라 못갑니다. 강도는 십자가 질 때 이미 그 나라에 도달했어요. 세상에 이것보다 더 행운이 어디 있겠습니까?

로또가 터졌다고? 로또 터진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세상 것을 다 잃어버려도 될 정도로 그들이 꿈도 못 꾸는 복을 받은 이것은 요셉의 꿈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 다 이루심 때문에 생겨버린 새로운 현실 속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 것 못 가져서 주님 주신 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꿈을……. 세상 사람과 똑같아요. “주여, 이거 더 키워주시고, 이것 좀 잘 해주시고, 이거 형편 좀 펴게 해주시고, 만사형통하게 해”달라는 사고방식 가지고 계속 오는 거예요.

로마서 1장 24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이 대목을 보면 자꾸 교회가 생각나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교회부흥으로 바꾸었으니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교인들이 나빠요. 목사도 나쁘지만 다 나빠요. 목사나 교인들이 자기가 돈을 낸 그 사업체, 교회라는 사업체를 크게 키우는데서 자기의 어떤 보람을 느끼는 겁니다. 그것은 애굽 아닙니까? 그것은 자기 것 아닙니까? 자기가 돈 내놓고 잊지를 못해요. 므낫세가 안돼요.

그들은 교회번창이 에브라임인줄 알고 있어요. 이 세상은 이미 바로의 꿈으로 분명히 계시를 다 보여줬어요. 세상은 바로의 꿈으로서 끝났어요. 황폐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거예요. 그러면서 아직까지 황폐하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계속해서 활동해서 므낫세와 에브라임같은, 애굽에서 요셉이 고생한 덕분으로 애 둘이 이름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서 십자가 지고 고생한 덕분에 천국갈 수 없는 자기백성을, 이렇게 왕으로서 자기백성을 만들어낸 그 보람을 우리가 내 것으로 가리지 맙시다.

어제 강남강의 했거든요. 왕은 자기백성을 착복한다고. 착복이라는 것은 착 달라붙도록 내 것이라는 말이지요.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알거든요. 내가 세상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딱 달라붙게 하는 거예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제대로 보게 하는 거예요. 저주받을 짓거리와 교회라는 이름이 전부 다 우상의 단체라는 것을 보게 하면서 그들에 미련두지 않고 잊어버리게 하는 겁니다.

므낫세를 거쳐서 그 다음에 방향 맞춰서 창대함만 남아 있음을, 창성함만 남아 있음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을 우리에게 경험케 하는 겁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세상의 뉴스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절절하게 다가오게 하고, 또 우리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모였다 하면 나오는 이야기가 아까 제가 이야기한 14억 유산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 돈과 돈의 관계거든요, 그런 이야기가 들어올 때에 거기에 장단을 맞춰서 “그래, 그래! 그럴 때는 판사가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아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속으로는 ‘아, 저게 내가 므낫세 되기 전의 상황이고 에브라임 되기 전의 상황이구나. 주님의 꿈이 나구나.’

주님의 꿈이 나에요. 요셉의 꿈이 나에요. 꿈의 생산물로 살아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아프게 한 사람이 누구냐고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매일같이 주님의 복을 가리고 아프게 하고 상처 낸 당사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우리 문제점이었습니다. 하나님덕분에 보란 듯이 성공하게 해달라는 이 욕심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비현실적인가를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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