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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00:22:18 조회 : 58         
서울의존강의20190111b 베드로전서2장 20-21절(최종성)-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70.138)

서울의존강의20190111b 베드로전서220-21(최종성)-이 근호 목사

 

, 두 번째 시간을 합시다.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이 땅에 개입하심으로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걸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누구한테 시험을 받았느냐 하면은 마귀한테 시험받았죠. 그 세상의 정신이 예수님과 맞닥뜨렸던 그 마귀, 마귀의 정신으로 완전히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 사상에서 못 빠져나와요. 사실 모두가 마귀의 자식이라고 보시면 되죠. 사람은 떡, 돈이 최고고, 돈은 떡의 교환수단이니까. 떡으로 살고 돈으로 사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은 혼자 살면 외로우니까 인기 있을 때 한 사람보다도 여러 사람, 천명 만 명, 조회수가 일억이 되면, 재원이 노래가 조회수가 한 일억이 되면, 좋아요! 누르기가 한 일억이 되면 고정수입만 해도 엄청나죠. 그러면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고, 죄를 많이 받은 게 되죠.

 

그 다음에 세상의 인간이 설정한 그 목표라는 것, 목적이라는 것은 세상에 있는 권력에 대해서 유혹되게 되어 있어요. 마치 악마가 선악과를 이용한 것처럼. 인간이 뭘 원하는지를 악마가, 이 세상 신이 다 장악하고 있고. “내 말을 들으면, 내 영혼을 나한테 다 팔아버리면 이것 줄게.”라고 빅딜을 하게 되어 있어요. 영혼을 팔면 성공하고 영혼을 안 팔면 너는 이 땅에서 개처럼 너는 빌빌거리다가 너는 소리 없이 죽는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대처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 악마에게 이기는 것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아버지로부터의 지시에 종속되는 거예요. 내가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가라하는 대로 하라하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요. 여러분들이 성도로서 난처한 지경에 있을 때에 바르게 살라고 하지 마세요. 그거는 악마의 시험이에요. 바르게 살라고 하지 말고 주께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해요.

 

왜냐하면 세상에서의 그 의로움과 가치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일임한 게 아니고 주님이 개입했기 때문에 그래요. 내 인생이 있는데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알아서 혼자 낑낑거리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내 인생에 주어진 모든 상황은 누구의 개입이라고 했습니까? 주님의 개입입니다. 주님의 개입으로 벌어지는 모든 상황 속에 있기 때문에 주님의 지시에 따라야죠. 주님의 지시에.

 

그 주님의 지시가 뭐냐 하면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말씀이 내용도 몰라요. 법의 내용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이거는 지켰다, 안 지켰다고 하지를 못해요. 뭐냐 하면 내가 내 관리와 내 능력을 포기하는 쪽으로, 내 목숨을 버리는 쪽으로 주의 지시가 이어지는 겁니다. 잃는 자만이 얻을 수 있어요. 그것도 주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진자만이 주의 계신 곳에 갈 수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제자리 뛰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따라가야 해요. 나를 따라오라 했으니까.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온 천하에서 그 온 천하가 우리의 목숨을 살린다? 못 살린다? 온 천하가 못 살려요. 나를 살릴 수 없는 온 천하의 사람에게 지금 매료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회사라든지 모든 가정이라든지 가정교육, 자식교육, 부부생활, 이 모든 것이 목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있는 목숨도 저주받는 쪽으로, 거기에다가 방향성이, 성격이 고정되어 있어요.

 

한 마디로 이 세상은 미친 세상이에요. 이 세상이 미친 세상이기 때문에 안 미치려고 하지 말고 같이 미쳐야 돼요. 다른 곳에 미쳐야 돼요. 주님에 미치고 복음에 미치고 십자가에 미쳐야 돼요. 멀쩡하게 살 생각하지 마세요. 점잖게 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인간은 어느 쪽이나 한 곳에 미쳐야 되기 때문에. 지옥에 미치면 지옥 가고 천국에 미치면 천국 가는 겁니다.

 

그런데 지옥에 미친 사람밖에는 없지 천국에 미친 사람은 없어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마귀가 인간의 정신과 양심을 뭐로 완전히 조립했느냐 하면 법적으로 가두어놨기 때문에 그래요. 법을 지키면 지킨 만큼 향상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예수님은 죄인으로 죽었어요? 의인으로 죽었어요? 세상에서 취급받기를. 귀신들린 자로 봤죠. 미친 자로 봤죠. 율법의위반자로 봤죠. 요한복음 7장에서.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는 사람을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의를 율법을 지키는 데서 찾지 말고 율법을 어기는 데서 의를 발견해야 돼요. 죄를 안 짓는 방법은 죄를 짓는 겁니다. 이번 아가서 수련회에서 제가 이야기를 할 것이지만, 간음을 안 하는 것이 간음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게 간음법이 돼요.

 

왜냐하면 나 자신만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지키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게 바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존재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주님에 의해서 간음이라고 보거든요. 에스겔 23장에 보면 언니 오홀라와 동생 오홀리바가 나오죠. 자매가 전부 다 음란하다고 이야기한 것이 뭐냐,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자체를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을 간음이라고 본 겁니다. 남편을 잊어버린 거예요.

 

다시 말해서 사랑할 대상이 없는 거예요. 자기한테 자기 목숨을 바친 겁니다. 그것보다 더 큰 간음은 없어요. 음행은 없어요. 방송에 나오는 죄인들, 사람 죽이고 도둑질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죄는 뭐냐,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자기가 목숨을 바칠 대상이 없다는 거예요.

 

요즘은 유행이 전부 다 혼자 사는 것이 되죠. 아내는 아내대로 혼자 살고 남편은 남편대로 따로 살고. 각자 혼자 살아요. 한 집에 두 개의 세계관이 같이 있는 겁니다. 한쪽은 개 키우고 한쪽은 아무것도 안 키우고 뭐 이런 식으로. 진리는 법에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을 위반하는 그 현장에만 비로소 진리가 나타나요. 법이 위반되지 아니하면 진리가 안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위반자임이 이미 확정적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법이 있는 거예요. 율법을 더한 것은 새삼스럽게 잘해보자는 것이 아니에요. 잘 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니는 니를 몰랐어, 라는 뜻이거든요. 율법에 의하면 니가 얼마나 평소에 죄 짓고 있느냐를 들통 내기 위해서 법을 준 거예요.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거기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있죠. 그럴 때 바리새인들이 돌을 던지려고 하니까, 주님께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했죠. 간음한 자가 간음한 자를 돌로 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시행하려면 율법에 의해서 완전한 자만이 시행할 수 있어요. 완전히 죄 없는 분만이 율법을 시행할 수 있어요. 율법대로 처리하고 실행에 옮길 수가 있습니다. 죄인은 율법을 거론할 자격도 안 돼요.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법 없는 곳으로 도망치기 바쁘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법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기 바쁜 이유가 뭐냐, 그래야 남은 거라도 자기가 의롭다고 우기고 싶어서 그래요. 왜 말씀을 안 듣고 말씀도 안 보고 복음도 안 듣는 이유가, 얼 추 자기 자신을 괜찮은 존재로 계속 지켜내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드라마 같은데 그런 것이 있잖아요. 하여튼 막장드라마를 120회 한다고 한다면, 1회부터 119회까지는 볼 것이 없어요. 마지막 회만 보면 돼요. 마지막에 가서 범인은 정신병자가 되고 끝나요. 1회부터 120회까지 계속 가는데, 다 들통 났거든요. 거짓말한 게. 그때 그 죄인이 귀를 막고 말합니다. “그만! 그만! 그만하란 말이야!”이러잖아요. 이게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이에요.

 

왜 그만하라고 합니까? 현재 누가 나한테 지적을 안 하면 나는 나름대로의 건전하고 괜찮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름대로 우길 수 있는 근거를 내가 장만하고 있다고 여기는 거예요. 장만하고 있다고. 이 정도 열심히 살았으면 이 정도 맛있는 스테이크는 썰 자격이 있지 않느냐? 이런 식이에요. 왜 팔순잔치, 칠순잔치를 뷔페 집에서 합니까? 팔십년 살고 칠십년 살았으니까 뷔페정도는 먹을 자격이 있다고 당당하게 돈 내고 식구들 모아서 팔순잔치, 칠순잔치를 하는 겁니다. 집에서 하려고 하니까 골치 아프고. 집에서 하면 음식 되지도 않고 떡이 되고 번잡스럽고. 음식 잘했네, 못했네, 궁시렁하는 소리나 들리고.

 

주님께서 말씀하는 선이라고 하는 것은 선의 최종성이 있기 때문에. 선의 최종성은 예수님의 행하심이 곧 법이 돼요. 법이 정답이에요. 법이 되고. ? 예수님은 왕이시니까요. 그러면 예수님이 율법 보는 해석과 인간들이 율법 보는 해석과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르죠. 인간은 자기가 의롭게 되기 위해서 법을 보는 반면에 예수님은 이미 지키든 안 지키든 상관없이 죄인인 게 확정되었음을, 최종적으로 확정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율법을 해석하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보지만 주님은 기대할 게 없다고 아주 확정짓기 위해서 이미 결론이 난 문제를 가지고 해석을 한다 이 말이죠. 니가 법적으로 니가 의로울 게 하나도 없다. “열 개 중에서 아홉 개는 지켰잖아요?” “한 가지 어기면 다 어긴 것이다.” 이게 주님 쪽에서 나온 결론이라 이 말이죠. 최종성이니까.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는 뭐냐, 그래도 열 문제에서 아홉 문제 맞혔으면 90점이라는 거예요. 90점 가지고 지옥가라 이 말이에요. 90점 가지고 지옥가면 돼요. 온전하지 아니하면, 100점이 아니면 천국에 못 가요. 다시 말해서 천국 못 갑니다. 뭐 궁시렁궁시렁 할 것이 없이 우리는 천국 못 가는 거예요. 그러면 지옥세상입니다.

 

지옥세상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인간들이 전부 다 미쳤어요. 미쳤으니까, 우리가 여기 복음에 미쳐도 괜찮아요. ? 니는 복음 아닌 것에 미쳤으니까. 이래나 저래나 안 미친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안 미치려고 애를 써요. 그게 더 미쳤어요. 제가 보기에는. 정상적이고 싶어요. 수련회에 가려고 하는데 남편이 반대한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정상적인 가정이고 싶다 이 말이거든요.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어요.

 

왜 가정을 유지하려고 합니까? 남들 보기에 저 가정은 참 정상적인 가정이라는 미친 사람들의 평에 너무 신경을 많이 써버려서 그래요. 그들은 평할 자격도 없어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했잖아요. 가정은 주님이 조성한 것이지 다른 사람의 눈치 봐서 조성한 것이 아니에요. 주님이 조성한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수련회에 억지로 오려고 하지 마시고요. 뭐든지 억지로는 악마의 일이지 성령의 일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돼요. 어디 뭐 수련회 와야 구원받습니까? 한 번도 안 온 사람도 있는데. 괜히 압력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요.

 

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생각해봐야 해요. 내가 지금 잘못된 신념을 갖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보세요. 예수 십자가를 생각하고, 모든 게 십자가 중심으로 생각나는 게, 이게 내가 과도한 잘못된 신념자라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겁니다. 신앙이 아니고 신념. 엉터리인데 그게 진리라고 굳게 믿는 이 정신병자, 사이코가 아니냐? 스스로 사이코가 아닌지를 점검해보라 이 말이죠. 좀 조용하게 살면 안 됩니까? 물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 예 좋아요! 그거 좋거든요. 근데 자연스럽게 살아서 미쳤습니까? 안 그러면 자연스럽게 살아서 자기가 정상인처럼 느껴집니까? 어느 쪽입니까? 자연스럽게 살아서 정상인처럼 느끼면 그거 지옥 가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살았는데 진짜 미쳐가더라, 그러면 그건 천국 가는 사람이에요. 어쨌든 목적이 뭐냐, 주님이 미쳤죠. 제자들 다 미쳤잖아요. 성령이 임한 사람은 다 미쳤거든요. 오죽했으면 세상한테 미움을 받을까요. 얼마나 미쳤으면.

 

그런데 우리는 뭐냐 하면은, 그런 미친 사건에 주목하지 않고 그 사건이 주는 결과를 따먹으려고 해요. , 어렵게 갑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죠. 사건입니까? 사건 아닙니까? 사건이에요. ? 사건은 뭐냐 하면 내가 원인으로서 가담하지 않은 것은 사건이에요. 내가 원인으로서.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하고 의논해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내가 개입하지 않은 것은 사건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냥 주어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어느 점을 자꾸 주목해야 해요? 없었던 내가 새로 생겼다. 거기에 주목해야 하죠. 왜냐하면 거기에 누가 개입했습니까? 내가 개입 안 했는데 내가 여기에 있다는 말은 누가 개입했다는 말이죠? 나를 누가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주님이 만드셨잖아요. 근데 과학은 주님을 허용하지 않고 주님 대신 과학적 확률을 집어넣었어요. 1억분의 1의 확률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니가 태어났다는 거예요.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뭐를 제키고 뭘 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주님이 일으킨 사건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그걸 가로막기 위한 악마의 술책이 과학입니다. 주님이 개입했다는 생각을 안 하고, 주님이 우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안 하고 확률이라는 거예요. 확률. 여러분, 확률은 뭐냐 하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확실한 게 아니에요. 가능성이 높아지면 없는 데서 새로 생긴다는 겁니다.

 

그 확률에 의한 과학이 뭐냐 양자역학이라는 거예요. 양자역학. 확률로 시작해서 확률로 끝나는 거예요. 확률을 더 정밀하게 가져가는 것이 미분이고 그 미분에 대한 내용을 모은 것을 적분이라고 합니다. 수학에서 뭘 배워요? 미분, 적분을 배우죠. 확률을 높이자는 겁니다. 그것 높여서 뭘 할 건데? 우리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뭘 살리는데? 내 목숨을. 그 목숨이 목숨이에요? 그게 목숨입니까? 그 목숨은 어디 갈 목숨이냐 하면 지옥 갈 목숨이에요.

 

우리는 아무리 복음 듣고 성경을 봐도 우리는 자꾸 어디에 영향을 받느냐 하면은 나를 지옥 보내는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 너무 심한 영향을 받고 있어요. 마귀는 우리를 지옥 못 보내서 아주 환장을 했어요. 사실은 마귀도 미쳤어요. 마귀와 같이 미친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정상인이라고 합니다. 정상인. 이 정상인의 특징이 뭐냐 하면 선과 악을 우리가 결정하자. 이게 정상인입니다. 옳고 그름을 우리가 결정하자는 겁니다. 뭘 참고로 해서? 성경을 참고로 해서. 율법을 참고로 해서.

 

그러면 사건은 날아가 버려요. 사건 대신 확률만 남아있어요. 다시 말해서 확률은 뭐냐, 우리가 원하는 사건은 우리가 노력하게 되면 유사한 사건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가 있다는 거예요. , 거듭남이 중생이죠. 다시 묻습니다. 태어난 것이 사건입니까? 노력한 거예요? 사건이죠. 그러면 예수님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했으니까, 다시 태어남이니까 이거는 사건을 의미하죠. 그런데 사람은 그 사건을 내가 빡세게 기도해서 응답받고 노력하면 그 다시 태어남이 우리 힘으로 가능하다고 본 거예요.

 

이게 어디서 배워먹은 정신병자냐 하면 마귀한테 배워서 그래요. 마귀한테. 열심히 성경보고 열심히 기도하게 되면 우리가 거듭날 수 있다는 거예요. 성령이 안 주고는, 성령이 오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 거듭남을 우리가 생산해내고 창조해낼 수 있다는 거예요. 지가 완전히 창조자에요. 지가. 문제는 다들 그러고 싶은 거예요. 제가 뭘 하면 거듭납니까? 라는 질문 자체가 이미 우리의 가능성을 집어넣고 물음을 그런 식으로 묻는 거예요.

 

교인들이 다 그런 마음을 갖고 와요. 노골적으로 저한테 와서 묻는 사람도 드물지만. 사실은 잠재적으로 그런 질문을 가지고 와요. 안 미치려고 하는 겁니다. 안 미치려고. 한 평생 살면서 미쳐보는 것도 괜찮은데. 미쳤다는 말은, 남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 거기다가 자기 목숨을 거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목숨을 어디에다가 던져 넣어야 해요.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을 발견하고 거기다가 던져 넣는 겁니다. 내 목숨 줘도 아깝지 않는 곳이 있어야 돼요. 그게 없으면 우리는 세상 따라 가게 되어 있어요. 내 목숨 아깝죠. 하지만 내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드리리다가 되는 겁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든 것을 준다고 했잖아요. 신성일이가 안인숙보고 이야기를 했지요. 별들의 고향에서 이야기를 했죠.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이런 대사 나와 가지고.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 노래를 누가 불렀죠? 이장희가 불렀죠. 그게 아가의 사랑입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릴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 이건 그 사람한테 미침인데, 미침에서 오는 그 행복은, 희열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죽음을 이기죠. 천하보다 더 좋아요.

 

어떤 것이 천하보다 더 좋은가 하면은 내 목숨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에게 내 목숨을 몽땅 다 쏟아 붓는 것이 내 존재의 가벼움을 제공하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나는 아버지께 다 바쳤잖아.” 다 탈탈 털어가지고 주의 십자가 피에다가 모든 것을 거기다가 던져버리라 이 말이죠. 던져버려라! 인형 뽑기는 오백 원 주고 인형 못 뽑으면 이거는 헛방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던져 넣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바깥에 있는, 내가 예상 못한 내 목숨을 유지하려고 하는 그 바깥세계에서 니 목숨을 새로운 사건으로, 거듭난 사건으로 바꿔줄 그 세계 안으로 이미 우리가 들어와 버리게 되면, 쑥 들어와 버리면 그 안의 세계가 무슨 세계냐 하면 십자가 세계에요. 성령 안의 세계입니다. 그거는 하나의 사건이에요.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거기다가 보탠 적이 없는 사건. 그 십자가 안의 세계에서 나는, 나의 의미, 나의 가치 일체 인정받지 못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설교한 것을 잠시 해볼게요. 지난 수요일에 한 설교의 부분이 있다면 그겁니다. 구원의 표준형은 내가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근데 사람들은 내가 구원됐느냐 하는 그 표준형을 내 쪽에서 만드니까, 지가 지 숟가락으로 지 눈을 찌르는 것하고 똑같은 거예요. 내가 만들어놓고 내 기준에 내가 쫓아가려고 헉헉거리고 있어요.

 

주님의 구원의 표준형은요, 수요일 설교에서는 요셉의 울음으로 다 이룬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다 이룬 겁니다. 그 피 안에 다 담겨있어요. 그 피를 내 선악의 행함으로 왜 자꾸 바꾸려고 시도하는 그것은 악마가 그렇게 자꾸 부추겨서 그래요. “니 선하게 될래? 미칠래?” 이걸 자꾸 따지는 거예요. “니 착한 사람 될래? 미칠래?” 이래 되는 거예요.

 

그럼 선한 사람 돼서 지옥가세요. 선한 사람이 되면 이미지가 벽지 이미지가 아니라니까요. 또 더 선하기 위해서 동굴을 파야 돼요. 앞에 동굴 판다고 드릴나사 다 나갑니다. 교회충성, 교회충성 했는데 나중에는, 충성도 젊을 때 돈이 좀 될 때 알아주지, 나중에 퇴직해서 노인연금으로 살아가지고 돈 한 푼, 자기 점심 값도 안 되는 푼돈을 바치면요, 교회에서 그 노인네 별 가치가 없다고 내치게 되죠.

 

그걸 토사구팽이라고 하죠. 젊을 때 사냥감으로 충실하게 부렸는데 이제는 더 나올 것이 없으면 내치죠. ? 교회라는 회사에 보탬이 안 되니까. 올라온 것 해주고 내쳐버려요. 안 내침 당하려거든 자식들 주려고 남겨둔 부동산 팔든지 땅 팔든지. 교회목사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동산과 부동산을 봐요. 보자~ 우리 외손녀 아민이 이야기인데. 보자~ 당신 비키세요. 얼마나 갖고 있는가? 자식한테 유산주려고 그린벨트 땅 사놨는지 한번 보자~ 이것만 본다니까요. 이것만. 그동안 많이 바친 그것은 소용이 없어요. 그건 다 까먹었어요.

 

그래도 그 교회에 갖다가 목숨을 바치는 이유는 거기에 자기의 과거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 와서 그 과거를 파기하기에는, 그 과거를 쓰레기라고 간주하기에는 그동안 퍼부은 내 울음이 너무 아까워요. 남자라는 이유로 덮어버린 그 세월이 너무 길어요. 가슴을 열고 이제는 울고 싶어요. 가슴을 열고 마음껏 울고 싶어요. 그동안 남자라는 이유 때문에 너무 참았어요. 그 세월이 너무 길어요. 이제 와서 그게 다 헛수고였다. 그게 바로 나로 하여금 지옥 보내는 일이었다고 이제 와서 고백하기에는, 누구한테 속았다는 그게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고 내가 나한테 속았다는 그게 수치스러워서 내 자존심이 용납이 안 돼.

 

연이은 패착(바둑에서, 그 자리에 돌을 놓는 바람에 결국 그 판에서 지게 된 나쁜 수)입니다. 장고(오랫동안 깊이 생각함)뒤에 패착 둔다고, 실컷 생각하고 했는데, 결국 그것이 뭐냐 하면은 남들 보기에 내가 얼마나 훌륭한 정상인이냐, 목표를 거기다가 둔 거예요.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면 되는데, “저건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 이렇게 그런 소리 좀 들으면 되는데, “나도 할 만큼 했습니다.” 자꾸 자기를 정상인으로 하는 거예요.

 

특히 누구한테 이런 경향이 많은가 하면은 좀 유식하고 배운 사람들. SKY캐슬 사람들. 평소에 남들 무식하다고 개무시하는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자기 고상함을 못 버려요. 아주 도도하기 짝이 없어요. 그놈의 콧대가 언제 꺾어질까? 말로는 쓰레기인데 쓰레기 아니에요. 자기를 하나의 고상한 실체로 본다니까요. 실체. 실체가 아니고 뭡니까? 그냥 얼룩무늬에요. 해병대 옷 입히고 싶어요. 그냥 무슨 소? 얼룩소.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오늘 제목은 엄마 닮았네.

 

우리는 이미지에 불과해요. 이미지. 아무 두께도 없는 이미지에 불과하다니까요. 물론 공부 많이 한 거 맞아요. 근데 공부 많이 한 거 그냥 얼룩이에요. 얼룩. 이 벽지 벗겨버리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종이 나와요. 종이. 인간 죽으면 흙 돼요. 나라는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그 세계는 누가 넣어주는가? 요한계시록 5장을 한번 봅시다. 5장을 보기 전에 다시 한 번 걱정이 돼서 묻는데, 사람이 정상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내가 괜찮게 법대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법대로 사는 것은 진리가 없어요. 법에 위반했을 때 진리가 있어요. 근데 그 법의 위반이라고 하는 것은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나쁜 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롭다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탐탁지 않게,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내가 예수 없이 살아보겠다는 그 정신을 말하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나 예수 없어도 이 정도로 고상하고 잘난 존재라는 그것을 남 앞에 뽐내고 싶은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 나는 죄인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예수 믿고 내가 훌륭하게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거예요. 그럼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 정상인이에요. 세상은 윤리도덕으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지금 법을 위반하고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고 있어요.

 

근데 기꺼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우기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막 속 터지죠. 툭 치면 내놓는 게 나 그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게 나오더라 이 말이죠. 그게 무슨 성도에요? 손대면 톡하고 내가 터져 나와야 해요. 나의 고상함이 찢어지고 안에 죄가 들어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가끔씩 뱃살 들어가라고 운동하면서 한 번씩 옷을 걷어보고 아랫배를 톡톡 손으로 쳐보세요. 북소리 나요. 통통통~ 안이 비어있다는 뜻이에요. 피부는 껍데기고 안에는 비어있는 거예요. 물로 차있든지.

 

아가서에서 냉철하게 파고들어가는 것이 뭐냐 하면은 인간은 겉모습이 전부다라는 거예요. 겉모습이. 겉모습이 전부에요. 인간은 안에 아무것도 안 들어있다는 뜻이에요. 포장지로 포장은 되어 있는데 안에 아무것도 내용물이 없는 것. 그것 포장지를 가지고 서로 잘났다 못났다 경쟁하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말려들어서 심지어 자살까지 하죠. 집안에 먹을 것이 있어도 자살해요. 자존심 상했다고. 이 얼굴 들고 부끄러워서 못 다니겠다는 거예요. 아가서에서는 어디 보자. 코 있고 눈 있네. 그래서 뭐? 니 얼굴에 뭐가 있는데? 뭐 고상함이 넘치는 것 같은데 뭐예요? 그 얼굴이 아담의 얼굴이지 뭐 있어요?

 

우리는 우리 보기에 볼 것 별거 없어요. 이쁘게 보이지만 나이 팔십, 구십 돼보세요. 안 이뻐요. 오죽했으면 사진을 안 찍겠습니까? 자기 사진보고 자기가 깜짝 놀라니까. 뭐 이런 귀신이 살아있네, 하고 깜짝 놀라요. 사진은 열여덟 살, 열아홉 살에 이래 찍고 저래 찍고 셀카 찍고 나란히 찍고 팔 올리고 찍고 얼짱 각도로 찍지만. 무슨 팔십 노인네들이 놀러가서 이래 찍고 저래 찍고 요래 찍고 이런 게 어디에 있어요. 없어요. 치워라! 치워라! 하죠. 친척들 결혼사진도 안 찍습니다. 단체사진도 안 찍습니다. 찍을 나이 지났다고. 사진 찍으라고 하는데 내가 못 찍겠다고 해가지고, 이거 실화입니다.

 

요한계시록 한번 봅시다. 누가 읽어보세요. 5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됐습니다. 사도요한이 왜 울었느냐 하면은, 우는 이유가 뭡니까? 누가 꼬집었어요? 누가 돈을 떼먹었어요? 누가 밥을 안 줬어요? 왜 웁니까? 왜 울죠? 봉인된 책이, 이게 공개가 되어야 이게 현실화되거든요. 실현이 된다고요. 봉인된 책이 갇혀있어서 우는 거예요. 사도요한은 지금 미쳤어요. 어디에 미쳤습니까? 하나님의 성경책에 미친 거예요. 그걸 보고 사도요한을 존경한다고요? 존경하면 니도 한번 그렇게 살아보지. 이 성경책에 한번 미쳐보죠.

 

성경책이 그냥 책이 아니에요. 이게 펼쳐지면 이게 세상이 되는 겁니다. 세상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처음이고 나중이죠. 처음과 나중이 성경책 안에 다 들어있어요. 방금 제가 말한 이 멘트를 믿는 사람도 미친 사람이에요. 미친 사람이 너무 적어요. 성경 말씀이 현실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 더 많고. 지금 예수님이 부활해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너무 없어요. 근데 제대로 미친 사람이 없어요. 사도바울은 사랑에 미쳤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안 미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 점잖네,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해요. 점잖은 사람 하다가 지옥이나 가라. 거기가면 점잖은 사람들 많이 모여 있어요.

 

, 그러면 봉인되었어요. 웁니다. 크게 울었는데, 그 다음 5절에 봅시다. “장로(순교자)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아멘. 이 대목을 우리가 보면서, 이 책 저자가 우리 인간은 아닙니다. 그렇죠. 그러면 제가 문제를 제시한다면, 이 봉인된 책과 이 현실과의 관계는? 그게 문제입니다. 책 안에 있는 내용이 진리죠. 그렇죠. 그럼 진리가 책 안에 들어있으면 진리입니까? 진리 아닙니까? 진리 아니에요.

 

그럼 뭐가 되어야 해요? 책 안에 갇혀있는 진리가 뭐를 필요로 해서, 이 빛이 더러운 악마의 세계를 필요로 해서, 악마의 세계가 펼쳐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 진리가 다가오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야기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진리가 빛을 낳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 소속이 되어야 마땅하죠?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일원으로, 거기의 일부라는 사실을 우리가 스스로 인정을 해줘야 돼요. 우리는 주님에게 미치기 전에 먼저 마귀에게 미쳤어요. 악마의 유혹에 미쳤습니다. 돈과 인기와 세상 권력에 미쳤어요. 이거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맞닥트린 거니까.

 

저는 강의하면서 속으로 생각해요. 도대체 이걸 좋아라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하다고. 이런 이야기가. , 봉인된 책이 곧 현실화되려면 뭔가 그 중간에 개입이 되어야 해요. 유다지파의 사자, 사자라고 하는 것은 창세기(49:9)에 나오는 라이언Lion입니다. 사자는 메신저라는 뜻도 있지만.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는데, 이게 지금 성경책에 나오거든요. 그렇죠. 다윗의 뿌리가 태권도 8단입니까? 어떻게 이기는 겁니까? 다윗의 뿌리가 칡넝쿨입니까? 칡넝쿨이 아니죠. 근데 어떻게 이기죠? 휙휙 감는 코브라에요? 그래서 이긴 거예요? 다윗의 뿌리가 어떻게 이기죠? 바로 죽음을 이긴 거예요.

 

그러면 다윗의 뿌리,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죽음을 이겼다는 것을 경험하기위해서 예수님은 어디에다가 몸을 던진 겁니까? 죄 죽음에다가 자기 몸을 던진 거예요.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누구 뜻대로? 아까 했죠. 아버지의 지시가 중요해요.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러니까 참된 거룩, 참된 경건은 뭐냐 하면 나를 포기하는 거예요. 아버지의 뜻대로 하게 하시면 내가 죄인인 것을, 내가 미처 몰랐던 죄까지 들추어내는 그것이 그게 곧 누구의 승리다? 다윗의 연속적인, 유다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의 승리가 되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뭐냐, 날마다 주님의 승리의 현장으로 제공되면 이게 성도의 역할입니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누가 이긴다? 주님이 이기는 거예요. 주님이 이긴다는 그 모습이 뭡니까? “내가 이런 죄도 지었구나.”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드러날 때 그게 다윗의 뿌리죠. , 그러면 한번 질문을 하겠어요. 유시민이 다윗의 뿌리를 이겼습니까? 못 이겼습니까? 유시민은 신을 안 믿기 때문에 못 이겼잖아요.

 

못 이겼는데 거기에 대해서 본인은 사도요한처럼 웁니까? “주여, 어떻게든 주의 봉인이 풀리게 하옵소서.”라고 하면서 웁니까? 아니죠. 근데 본인을 정상으로 봐요? 죄인으로 봅니까? 절대로 죄인으로 안 보죠. 민주화투쟁을 위해서 투사로 보죠. 근데 그 사람의 그러한 기준에 대해서 우리는 그걸 최종성으로 볼 수 있습니까? 죄의 최종성으로. 못 보죠. 그 사람은 자기 자신한테 미친 거고. 그것이 바로 주님 앞에서 지옥 갈 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지, 지옥 갈 사람을 우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문재인도 마찬가지고. 문재인은 천주교 신자니까 또 모르죠.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베드로전서 221절 봅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라고 되어 있죠. 아까 강의한 게 여기서 기억났네.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의로움에 의해서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다면 우리는 하나의 벽지와 스크린이 돼요. 스크린. 스크린골프 한번 해봐야 되겠네. 백날 공쳐봐야 그 골프공은, 실내골프장은 절대로 그 스크린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툭 치면 떨어지죠. 저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그것도 의인가? 거기 가봐서 죄를 지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거기까지는 기회가 안 닿아서 골프 치는 그런 죄를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안 오네요.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은 우리가 단독적으로 살 수 있다? 없다? 불러주는 분과 연계되어 있으니까 주도권이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고 주도권이 누구한테 있어요? 주님한테 있죠. 이게 천사도 부러워 할 친한 관계, 친한 사이입니다. 여러분들이 뭐 내세울 게 없을 때 일가친척을 내세우잖아요. “나 무시하지마라. 우리 삼촌이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다.” 이렇게 할 때는 고뤠?! 우와!” 그러면서 갑자기 잘하죠. 애들 빵 사준다고 이래 나온다고요. “삼촌이 청와대에서 뭐 댔대.” “고뤠?!” 그러면 갑자기 선생님도 애를 무시 못해요.

 

그런데 까불지 마! 나 주님하고 아는 사이다.”라고 하면 이거 미쳤구나! 오죽 이 땅에서 가진 게 없으면, 변변치 못하면 그러한 신념이라도, 그런 신앙이라도 쥐고 있어야 위로가 좀 돼?” 이렇게 조롱당하죠. 그럴 때, “주여, 기쁩니다. 주의 이름으로 고난 받았습니다.” 이러지 말고 과연 내가 의도적인 신앙가인지, 신념이라도 쥐고 있으면서 남한테 기 안 죽으려고 하는 질투심인지.

 

그렇게 돼버리면 나는 죄인이 돼요? 의인이 돼요? 나는 잘난 의인이 돼요. 의지의 신앙인이 돼요. 의지의 신앙인은 하늘나라에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죄인이 되어야 해요. 처음부터 그렇게 안 되겠죠. “주여, 예수 믿는데 제가 이렇게 설움을 받습니다. 주께서 지켜주옵소서.” “그게 니가 몰랐던 죄야. 니 자존심 채우려고. 예수 이름으로 니가 남한테 기 안 죽으려고 하잖아. 그게 바로 숨겨진 죄야.”라고 주께서는 알려주죠.

 

그럴 때 왜 내 쪽에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왜 불러줘야 하는가? 왜 부르심을 입어야 되는가? 그것은 바로 21절에 나오죠.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고난이 우리에게 장착이 되게 되면 그 다음에 뭡니까?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그 안에서 반복해서, 십자가 안에서 계속해서 따라가게 되죠. 따라갈 때 착한 자로 따라가요? 우리가 죄인인 것이 더욱더 노출됩니까? 죄인인 것이 노출되면서 오직 의로 계속 우리 죄인을 용서한다는 그 용서가 그리스도의 선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여러분들이 베드로전서를 보면서, 1장을 다시 보게 되면, 1절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흩어진 나그네라고 되어 있죠. 현재 전부 다 터키지역에 있는 거예요. 나그네라고 했죠. 어떤 나그네입니까? 흩어진다고 했죠. 십자가마을 수련회에 참석한 그런 나그네가 아니고 흩어진 나그네에요. 어느 자리에 있든지, 어느 구석에 있든지 상관없이 각자 주께서 그 현장에서, 주님의 십자가에 미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부르심을 입은 거예요.

 

그 모델을 제시하라면 그게 바로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이고. 사도요한이 울었잖아요. 아버지 죽어서 울었습니까? 엄마 죽어서 울었습니까? 아니에요. 뭘 위해서 울었습니까? “주여, 내가 목숨을 건 이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기를!” 봉인이 풀려서 실현되어야 하는데, 지금 그 봉인이 풀렸다는 말입니까? 안 풀렸다는 말입니까? 풀렸다는 거예요. 단추가 일곱 개인데 탁탁 터지는 거예요. 터질 때마다 그리스도 심판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는데, 그 재편되는 모습이 세상은 요지경이 아니고 세상은 지옥이다, 라는 거예요.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이 단추가 열릴 때마다 우리에게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옥인데, 평소에 성도는 그걸 보고, 그 지옥에 갈 것에 완전히 내가 혼이 빼앗겼구나, 내가 정신을 거기다가 다 쏟았구나, 그놈의 승진, 그놈의 출세, 그놈의 돈벌이에, 그동안 나의 건전함과 우리 가정의 행복함, 우리 가정은 사이좋음, 우리 가정은 남들 보기에 부러움을 삼, 여기에 완전히 미쳐가지고 나도 내 인생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거기에다가 내 목숨을 도박하듯이 걸었던 이 철딱서니 없는 우리의 모습. 그걸 깨닫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옛날 노래가 생각이 나네요. 제목이 철없는 아내. 남편이 그렇게 사랑해줘도 자꾸 떠나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철이 없죠.

 

자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사건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사건의 결과를 따먹으려고 합니다. 마치 선악과를 따먹듯이. 그러나 사건이 뭐냐, 내가 없어야 되는데 있다는 그 자체가 사건입니다. 내가 죄 지었다, 죄 안 지었다, 그것가지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없는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 더 큰 기적이 아닐까요? 내가 죄 안 짓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죄 짓고 안 짓고의 당사자가 마땅히 없어져야 될 당사자인데, 지금 이 땅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죄 짓고 안 짓고 보다 우선되어서 챙겨야 될 기적이 아니에요? 그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렇게 만들어놓고, 그 만든 곳에다가 주님의 의가 담기도록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우리가 목숨을 바치는 것도 어폐에요. 바치는 것이 아니고 아예 빼앗아갔죠. “이제 너를 위한 내 목숨은 없어. 내 십자가를 위한 목숨이야.” 그런 관계로 우리 몸 자체가 매개체가 되어서 결속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주님이 이 땅에서 미친 사람 소리 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미친 사람 소리 듣는 것을 일대 영광으로 아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이여, 기죽지 않게 살게 하옵소서. 변변치 않게 살아가고, 매일같이 힘들게 겨우겨우 살아가는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주님의 십자가를 외면해버리고 세상을 따라가는 그 자체가 엄청난 주님에 대한 모독인 것을 알고, 회개하고 자기를 칠 수 있는, 그래서 구원해주신 주님께 더욱더 감사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서울의존강의20190111b 베드로전서2장 20-21절(최종성)-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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