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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6 08:31:03 조회 : 103         
2021 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제1강-사무엘상 강해 : 유령의 영토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96)
2021 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제1강-사무엘상 강해 : 유령의 영토
(강의:이근호 목사)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주신 말씀의 모임에 오직 주님도 함께 계셔서 저희들이 세상에 치우친 마음이 주의 말씀의 세계에만 몰입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무엘상이 우리에게 놓인 것은 이것 하나 이야기하는 거죠. 사실이 뭐냐? 진실 된 것이 무엇이냐? 내가 얻을 이익은 무엇이냐가 아니고 진실 된 것, 내 이익과 상관없이 확실한 것은 무엇이냐? 그걸 묻는 겁니다. 만약에 그 진실 된 것을 내가 알 수만 있다면 목숨, 그까짓 것 얼마든지 버릴 수가 있다는 말이죠.

문제는 우리의 목숨이 죽어가면서 이걸 처리할 데가 없어요. 가만있어도 닳아서 없어지거든요. 다 빼앗기기 전에 먼저 내 목숨, 나의 모든 것을 던져 넣을 적절한 어떤 진리가 있어야 되겠는데 그 진리가 성경에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거든요. 성경에 있다고 생각한 진리를 보게 되면 성경을 아무리 백독을 하고 읽어도 목숨까지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성경을 따로 다루고 계신 분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을 우리가 읽고 내가 이해하면 된다고 하지만 성경에 있는 이 사실을 실제적인 현실로 바꿔주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성경은 진리고 이게 진실의 세계인데 이걸 말씀하시는 그분은 어떤 분이냐 하면 언어에 포착되지 않는 분이에요. 이걸 유령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와 싸워야 되느냐? 유령과 싸워야 될 문제에요. 성경해석에 있어서 인간 언어에 포착되지 않는 분이 성경을 다루고 그리고 거기서 진실 된 진실의 세계를 나름대로 펼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의 언어에 포착되지 않는. 지금이 사실이 뭐냐, 라고 시작했는데 진짜 사실이 뭐냐?

인간의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분이 성경을 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기껏 할 수 있는데 사무엘상을 펼쳐놓고 이게 언어로, 문자지요. 문자로 말로 접근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 진짜 하나님을 다루시는 분은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데 우린 언어로 접근되니까 이 자체가 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죄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성경이 있는 겁니다. 죄의 결과는 저주지요. 저주, 죽음, 참혹한 죽음, 처참한 죽음.

인간을 사실이 뭐냐를 하기 위해서 사실이 뭔지, 진실이 뭔지 알기 위해서 성경에 접근했는데 우리 인간들만 성경에 접근하게 되면 여기서 무엇이 펼쳐지느냐 하면 여기서 신학이 펼쳐지지요. 인간들에 나오는 아이디어란 말이죠. 그런데 신학을 펼치면서 인간을 언어를 하면서 자신이 죄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죄라는 생각을 못합니다. 인간이 죄고 죄 되기 위해서 성경을 줬는데 우리 인간 입장에서는 그게 뭐가 나쁘냐 하는 거예요.

사무엘상의 전개과정을 아주 쉽게 이야기하게 되면 어떤 연못이 있는데 연못에 물이 꽉 차있어요. 물속에 어떤 게 들어있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연못의 물을 다 빼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뭐가 들어있냐 하면 괴물들의 등장하는 거예요. 이상한 물고기들의 등장하는 거죠. 이게 바로 인간세계입니다.

인간세계가 근사하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성경에 나오는 진리를 쏙 빼버리면 호수 밑바닥에 펄떡거리는 기괴한 물고기들, 괴물들이 있다는 것이 여기서 노출되겠지요.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언어로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이 사무엘상을 시작하면서 이것만 생각하시면 사무엘상에 대해서 거의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사무엘상은 무슨 사회냐? 샤먼사회, 무당사회라고 보시면 좋아요. 사무엘상만 아니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무당들의 사회. 무당들의 세계니까 인간들은 거기에 대해서 굉장히 기분 나쁘겠지요.

그래서 인간들이 하는 죄는 뭐냐? 무당사회를 무당이 아닌 사회로 바꾸고 싶은 거예요. 샤먼사회, 무당의 세계 반대말이 바로 문명사회죠. 문명의 사회에서는 질서가 있는데 샤먼에서는 질서가 없지요. 무질서하지요. 지 도 닦았다 하면 끝나는 문제 아닙니까. 문명사회는 통합이 돼야 되지요.

통합된 문명사회에서 핵심요소는 뭐냐? 질서가 한곳에 모여야 되는 거죠. 문명사회는 뭐가 보장되느냐 하면 왕 자리가 늘 보장이 돼야 됩니다. 왕 자리가 보장이 되면서 인간사회에서 모든 언어나 모든 힘들은 어디서 스톱되느냐 하면 왕 자리에서 극한을 보여요. 왕 자리 끝까지 가버리는 겁니다. 왕 자리에 가게 되면 모든 건 다 온 거예요. 더 이상 갈 데 없어요. 왕 다음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왕이 하는 일은 뭐냐 하면 국가를 보위하고 국가를 유지시키는 일이죠. 그러면 왕 자리가 전부란 말은 뭐냐 하면 최고의 인간의 공동체 모습은 모양새는 국가라는 사실, 그것을 사무엘상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늦게 오신 분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이 사무엘상에서 모든 성경말씀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계시로 달려들지만 이미 사무엘상의 모든 말씀을 달리 따로 다루시는 분이 계시다. 그것은 어떤 분이냐? 인간의 언어에 포착되지 않는 분이 사무엘상을 현실화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유령이죠. 유령의 세계는 어떤 세계냐 하면 셔먼사회입니다.

사무엘상 10장,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6절) 사무엘상 10장 10절에 보면,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라고 돼있지요.

뿐만 아니고 사울이 다윗을 잡기 위해서 갔는데 사무엘상 19장 23절에 보면,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사울이 미친 것 아니에요. 옷을 왜 벗어. 예언을 하든지.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통제가 안 되지요. 무슨 사회냐? 샤먼의 사회. 인간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사회, 유령의 사회. 인간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다는 말은 그 말씀을 캐내서 의미를 도로 나에게로 가져올 수가 없다 이 말이에요. 그걸 허용하지 않는 사회지요.

그러면 이 샤먼사회에서 인간의 죄를 지적하는데 지적당한 사회가 어떤 사회냐 하면 문명사회, 체계가 있는 사회, 질서가 있는 사회, 앞뒤가 분간되는 사회, 그 세계에서 힘이 집결화 된 사회. 그 세계가 왕의 자리였단 말이죠. 그러면 이스라엘은 왕이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이스라엘은 왕이 있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왕이 있으면 샤먼사회가 되질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포착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포착이 안 되는 그 지경에 있는 왕은 아니지만 왕 위치에 있던 것이 제사장이었던 거예요. 그 제사장 있으면 되지 왕이 끼어드느냐 말이죠. 그러면 제사장은 인간들의 무당 모집해서 했느냐? 아니에요. 제사장은 어디서 내려왔느냐 하면 시내 산에서 내려온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서 시내 산에 도착시켜놓고 그 다음에 시내 산에서 무엇이 오느냐? 율법을 통해서 제사장의 지위와 복장, 해야 될 기능, 제사장 사회가 어떤 사회란 것을 계속해서 거기서 지시가 내려오는 겁니다. 제사장 사회의 특징은 중앙부분이 인간의 힘으로 채워지지 않고 비워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막에 있는 지성소에요. 그 지성소에서 올라오는 것이 뭐냐?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비워 놔라, 그 말입니다. 이 땅의 것으로 다 채우지 말란 말이죠.

그런데 사울을 왕으로 할 때 이 문명사회에서는 뭐냐 하면 왕의 자리를 비워놓으려니까 뭔가 허전한 거예요. 힘이 나오는 출처를 세상나라처럼 왕의 자리로 매워놓는 게 안심이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왕의 자리를 매워놓으면 무엇이 막히느냐 하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든 언어를 초월한 계시가 예언이 막히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하기를 왕은 왕이고 예언은 예언대로 주면 되지 않겠느냐. 예언을 그냥 줘버리면 이미 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은 예언의 내용을 분석할 수 없어요. 해석할 수가 없어요. 둘 중에 하나만 해야 돼요. 힘의 중앙을 비워놓을 것인가, 아니면 납득되는 식으로 왕으로 채워 넣을 것인지 둘 중에 하나만 해야 돼요. 이성적인 문명사회를 원하느냐, 아니면 샤먼사회를 그대로 고수할 것이냐? 분명히 해줘야 됩니다. 그래야 시내 산에서 주어지는 그 교류가 계속 이스라엘에 유지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 자리라 하는 것은 국가에서는 왕 자리, 가정에서는 가장의 자리, 교회에서는 당회장 목사의 자리, 뭐든지 힘을 유지하려면 구심점이 있어야 되고, 그 구심점을 위해서 각자가 갖고 있는 양도해야 돼요. 자기에게 있는 힘을 양도하고 그 양도된 힘이 집결된 한 자리에 모인 것이 왕 자리입니다. 그러면 힘을 양도한다는 것은, 나는 당신의 지시를 온전히 따르겠다는 그런 뜻이거든요.

당신의 지시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이 말은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이미 예고한 대로 왕이 너희들을 찾게 되면 너희들은 너희 자신에게 직접 오는 하나님의 계시는 없고 왕에 종속된다. 왕의 힘에 종속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왕이 있어야 될 나라가 아니다. 인간의 왕의 자리는, 중앙의 힘의 자리는 비워놔야 돼요.

예를 들어서 제사장 같은 경우에 제사장제도에서 그 중앙은 비워놓지요. 텅텅 비었단 말이죠. 여기 지성소에 하나님의 힘이 주어지잖아요. 그 힘은 어떤 힘이냐 하면 인간과 협의하고 타협한 힘이 아니고 인간을 죽이는 힘이에요. 이걸 지난 수요일 설교에서 이렇게 설명했지요. 생명나무가 눌러버리면 선악과로 사는 인간들은 여기서 마땅히 심판받아야 된다는 사실. 심판받아야 돼요, 인간의 세계는.

그래야 선악과 존재를 부각시키는 취지에서 선악 지식을 아는 인간들은 심판받는 이걸 유지시켜줘야 처음에 하나님의 인간창조 취지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정녕 죽으리란 말씀처럼 정녕 죽어야 돼요. 거기서 토 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을 쭉 보게 되면 샤먼사회와 문명사회의 대비, 대결구조로 보게 되면 여러분들이 사무엘상을 하나로 꿰뚫을 수가 있어요.

사무엘상에서 한나가 기도하는데 엘리 제사장이 그걸 술 취한 걸로 보지요. 술 취했다. 특징이 뭐냐 하면 언어의 혼란이에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단 말이죠. “포도주 잡수었어요, 아줌마?” 이렇게 되거든요. 언어의 혼란, 언어가 정돈되지 않은 겁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어린 사무엘이 자기가 언어적으로 언어와 분리된 세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이라고 부를 때 하나님이 부른 줄 모르고 엘리 제사장이 부른 줄 알고 세 번씩이나 헛걸음질하고 있어요. 이것은 언어와 밀착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무엘상을 어떻게 봐야 되느냐 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성과 인간이 못한 을 분리시켜보면 사무엘상은 그대로 다 윤곽이 잡혀요. 사무엘상 이대로라면 한 시간 만에 다 떼겠다.

사무엘상 5장에 보면 아침에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로, 언약궤는 상자인데 금도금한 상자를 놔두었는데 거기에 다곤이라는 신이 물고기 형상을 닮았다는 소리가 있는데, 다곤 신이 언약궤 앞에서 엎드러졌단 말이죠. 마치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엎드러져서 땅에 닿았다. 난 굴복 합니다는 식으로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이것 문명사회에서 이럴 수 있습니까? 무슨 상자 하나 놔두었는데 상자에서 어떤 우주의 기가 뻗쳐서 주변에 있는 거울이 깨진다든지 귀신 영화처럼 그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 다음에 여러분 아시다시피 벧세메스 가는 암소. 암소 목에 내비게이션 달아놨어요? 지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소들이 인공지능도 아니고 지가 알아서 벧세메스에 도착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6장 19절에 보니까 언약궤 들여다봤다고 무려 70명이 죽었어요. 도대체 하나님은 아군도 적군도 분간도 안 돼. 그 다음에 사무엘상 7장에 하나님께 번제 드릴 때 블레셋과 싸울 때 우레가 발하여 승리했고요. 이것도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하기가 곤란하지요.

아까 봤던 사무엘이나 선지자들, 사무엘상 10장 6절에 사울도 예언을 하고 변하여 중얼거리는 것,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예언도 하는 이런 이야기, 10장 10절 이런 이야기도(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그리고 그 다음에 계속 이어지지요.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왕 있는 이스라엘로 진격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샤먼사회에서 이 전체를 문명사회를 아까 뭐로 규정한다 했지요? 이걸 죄로 규정하는 거예요. 죄로 규정하면 죄를 멈추어야 되는데 오히려 죄를 더욱 더 커져요. 죄가 죄답게 더욱 더 커지고, 다윗이 그 정도로 이스라엘에게 공로를 세웠잖아요. 골리앗을 처단하고 블레셋을 했으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내가 너한테 졌다고 하고 신하로 받아들여서 좋게 해야 되는데 호시탐탐 사울 왕은 다윗을 못 잡아먹어서 환장을 했어.

다윗에게 일어난 이해되지 않은 그러한 승리가 사울로 하여금 점점 약을 올려서 결국 사울을 악신 걸리게 만들었어요. 다윗은 성신 걸리고. 이러한 샤먼사회에서 일어나는 두 힘의 충돌로 볼 수 있는데 결국 힘의 문제에요. 힘은 네 자로 하면 상호작용입니다. 하나만 있어선 안 되고 둘이 있어야 돼요. 둘이 상호작용할 때 힘이 생기고.

인간 세상의 힘은 뭐로 만드느냐 하면 힘의 구심체로 만들지요. 이걸 제가 다른 표현으로 개별적 단위체, 이걸 물리적으로 말해서 입자가 되는 거예요. 자, 힘은 어디서 생기느냐?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사울은 본인이 결정했는데 하잖아요. 그러나 여기서 뭐가 등장합니까? 악신이 걸리죠. 다윗은 하프, 수금을 타니까 악신이 물러가지요. 다윗에게 온 성신의 힘으로.

그러니까 성신, 악신 이것은 중심엔 등장하진 않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을 제시하는 것, 그래서 이것을 뭐로 보느냐 하면 매개입자로 보면 돼요. 매개입자라 하는 것은 어떤 힘에 있어서 그 두 사이를 붙잡아주는 그런 힘이 매개입자라 하는 겁니다. 물리학에서 글루온이라는 강력의 입자에서는 쿼크라고 하지요. 쿼크 입자에서는 글루온이라고 해주고 있어요.

그리고 광자도 매개입자, 그 다음에 보손이라 해서 물리학의 표준 모형에서 W보손 +/- Z보손, 그렇게 매개입자가 있어줘야 전기나 자기의 힘에 의해서 한쪽으로 확 쏠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묶어주는 겁니다. 전기나 자기는 광자라는 매개입자가 있어서 그 힘을 발휘하거든요. 무슨 소린지 몰라도 그냥 들어놓으면 됩니다.

이 우주에는 물리학에 네 개의 힘이 있고 중력이 있고 제일 약한 것, 그 다음에 전자기력, 그 다음에 강력, 약력이 있는데 전자기력보다 강한 걸 강력이라 하고 약한 것을 약력이라고 해요. 그걸 인간이 조사해보니까. 그 말은 뭐냐 하면 입자를 쪼개고 쪼개보니까 거기엔 뭐가 있느냐? 매개입자가 있더라. 매개입자가 있고 그걸 통해서 입자가 있고, 입자가 뭉쳐져서 원자가 되고, 원자가 뭉쳐져서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서 바로 단백질 구조가 되고, 단백질 구조가 모여서 유기체가 되고, 그 유기체가 모인 것이 인간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모든 두뇌는 전자기, 전기적 힘에 의해서 신호를 주고받고 그런 거란 말이죠. 고통 받는다는 것은 전기적인 힘과 중간에 있는 두뇌와 두뇌를 연결하는 시냅스라는 곳에 화학적 물질적 이동에 의해서 인간에 자극과 고통이 오고 거기서 나온 결과들이 뭐냐?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에너지가 전달되는 과정 속에서 자극이 생기고 자극이 다른 과거, 두뇌 속에 있는 자극을 끄집어내면 거기서 개념이 생기고, 그 개념이 인간 속의 전체를 진동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면 그 이미지에 의해서 언어가 생기고, 그 언어가 단체로 모인 것이 바로 소통이 되고, 소통이 되면 그것이 집단적 지향성을 나타내고 집단적 지향성이 사회를 나타내고 사회는 실제를 이루고 그것이 상호작용, 힘을 이룬다. 그것이 국가다. 끝. 이 세상에서는 바로 그런 것들이에요.

그러면 성경은 왜 있는가? 성경이 있어줘야 기독교를 믿는 사회가 국가가 유지되기 때문에 목사들도 있어야 된다. 왜? 모든 의미는 힘의 중심축에 의해서 계속해서 과거로부터 유지돼야 되기 때문에 그렇단 말이죠. 혈육이 있어야 가족이 생기고, 가족에서 시민단체가 생기고, 시민단체에서 국가가 생기고. 혈육에서 가족, 가족이 모여서 시민단체 또는 사회라 볼 수 있고 그것이 국가를 이루고 국가를 이루었다면 뭐 되느냐? 국가 그걸로 끝이에요.

국가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느냐? 남의 국가를 침범해야지요. 왜? 이 나라에 내가 살기 때문에. 그러면 시민단체나 사회는 왜 안 되는가? 시민단체나 사회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국가가 단단히 단속을 해야 될 필요가 있어서 국가가 있어야 된다. 그래서 모든 개인, 국민들은 국가가 충성해야 된다. 나라가 있어야 교회라도 있고 나라가 있어야 성당이 있다. 가정이란 것은 나라가 든든해야 그 가정이 사니까 정 힘들면 든든한 나라로 이민 가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국가가 서로 협의하고 단합해야 되지 않느냐? 미쳤어요. 국가가 협의하게. 나 손해 보는 짓을 왜 해. 다른 나라 국민들을 이용할 순 있지만 그 나라와 동등하게 같은 국민이라고 할 순 없다. 국가주의, 전체주의라 하는데 전체주의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실제로 인간들의 살아가는 속내, 진짜 마음은 우리나라 만세에요. 그냥. 대한민국 만세라니까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살아생전에 내가 속해 있는 나라가 든든하게 되면, 만약에 우리나라가 모자라면 침범을 해야지요. 남의 나라를 빼앗아야지요. 그래서 다른 나라 백성들을 노예로 삼아야 될 것 아닙니까. 제가 지금 무리한 짓을 합니까? 인류역사가 내가 말한 무리한 짓을 해오고 있었어요. 고상하게 한 것이 근대국가고, 막무가내로 한 것이 옛날국가고.

지금은 고상하게 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금융자본주의 아닙니까. 베네수엘라 조져놨잖아요. 이렇게 돈 빌려주고 이자 받아먹는 식으로 남의 나라의 모든 걸 가져오는 남미의 나라들을 가져오는 이런 식의 고상한 방법이지만 옛날에 총 들고 하는 방법보다 이게 훨씬 종속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회, 국가라 하는 것은 오직 인간은 무엇을 숭상한다? 힘만을 숭상하는 거예요. 이 힘이 뭐냐? 내 속의 입자의 힘이고 이 입자의 힘을 분해해보니까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란 말이죠. 이 힘으로 버티는 거예요. dna라는 것도 분자로 만드는 것 아닙니까. dna가 만들어서 세포가 만들어지고요.

그러니까 모든 힘인 거예요. 그럼 힘 뒤에는 없는가? 힘 뒤에 있는 게 뭐냐 하면 파동입니다. 파동 밖에 없는 곳에 내가 관찰할 때 파동이 갑자기 입자로 바뀌고 내가 안 보면 파동으로 도로 보이고 나타나고. 이 파동은 어디서 나오는가? 에너지 파동이죠. 이 세상은 에너지 파동으로 돼있는데 인간이 뭔가 이용해볼까 관찰해보면 갑자기 그게 입자로 바뀌는 거예요. 마치 내 뜻을 아는 것처럼. 파동과 내가 상호작용하고 있는 거예요. 전자가 꼭 유령 같아. 이게 상호작용이에요.

그러면 왜 사람은 힘의 응축을 좋아하느냐 하면 힘을 다 한 데 모으게 되면 그게 나 또는 나의 구체화가 되게 되면 나만 올라오게 되면 ‘너’가 필요 없게 돼요. 그래서 최후의 내가 되기 위해서 뭘 하느냐 하면 남이란 남은 모조리 다 죽이면 되는 거예요. 이걸 달리 이야기하면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 뭔가 역사적 사명을 위해서 태어났나? 역사적 사명이 뭐냐 하면 만나는 자는 다 죽이게 위해서 이 땅에 사는 거예요.

만나는 자는 다 죽여 버리는 거예요. 왜? 그게 나다우니까. 그게 나다운 거예요. 그런데 죽는데 누구도 걸려드는가? 하나님마저 걸려든 거예요. 그게 십자가 사건입니다. 니는 내 앞 길 막지 말라 이 말이에요. 내가 절대적인 내가 되는데 니 하나님이면 다야. 니가 왜 내 앞길을 막아. 죽여 버리는 거예요. 그게 십자가 사건이에요.

사무엘상에선 어떻게 되느냐 하면 반대입니다. 유령이 입자를 죽여 버리는 게 사무엘상이에요. 사무엘상 마지막에 유령이 등장하지요. 누굽니까? 사무엘이 죽습니다. 사무엘이 죽고 난 뒤에도 무엇은 살아 있느냐 하면 예언은 살아 있어요. 사무엘이 죽었으니까 입자가 없는 거죠. 입자는 없어도 파동은 남아 있거든요. 그 사무엘에서 나온 파동, 그게 뭐냐 하면 너는 죽는다. 그러니까 사울을 죽이기 위해서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미리 죽이신 거예요.

역대상 10장에 보면 사울이 죽는 이유가 나옵니다. 13절에,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런데 사울의 입장에서는 신접한 여인에게 물어야 될 이유가 있어요. 왜냐하면 자기는 힘의 집결자잖아요. 자기가 무너지면 이스라엘이 무너지잖아요.

왕의 임무는 뭐냐? 이스라엘을 지켜내는 겁니다. 블레셋이라는 나라 보세요. 그 나라도 힘의 나라지요. 제가 아까 이야기했습니다. 힘의 나라는 오직 자기 국가밖에 모르지요. 내가 국가에 힘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은 딱 하나만 있는 겁니다. 내 앞에 눈에 띠는 모든 다른 나라 다른 국가는 어떻게 돼요? 죽여 없애는 겁니다. 이 짓을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했고, 이스라엘은 누구한테 했고? 블레셋에 했고.

그런데 그 당시는 사무엘 죽기 전까지는 사울이 누구로 받았느냐 하면 샤먼이죠. 무당이라 할 수 있는 사무엘로부터 모든 참고를 받았잖아요. 그런데 사무엘이 죽었단 말이죠. 하나님은 사무엘을 왜 죽게 하십니까? 사울을 죽게 하기 위해서, 사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다시 아까 처음에 강의할 때 했잖아요. 하나님께서 말씀을 예언을 주신 것은 죄를 더욱 더 죄로 드러나게 함이라. 또는 우물에서 물을 다 빼내었을 때에 남는 건 이 안에 뭐냐? 괴물이 남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인간은 영물이다. 첫째 제목으로 적절한 것 같은데, 인간은 영물이에요.

인간은 영물인데 인간은 자기가 요물이고 영물이고 괴물인 걸 왜 모르나? 본인이 본인을 보니까 보는 순간 뭐로 변한다고요? 입자로 변하잖아요. 영이 아니고 하나의 개별 존재처럼 보이는 거예요. 힘의 구심점으로 보이는 거예요. 영적인 존재가 아니고. 그러나 창세기에서 보면 인간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인간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지요. 하나님은 입자입니까? 하나님은 입자가 아니지요. 보이지 않지요. 천사처럼. 천사나 악마는 보이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창조했고 낳은 겁니다. 낳게 한 거예요. 그런데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면서 본인을 누가 살려야 됩니까? 본인이 본인을 살려야 되겠지요. 그러면 본인이 누굴 관찰해야 돼요? 본인은 본인을 지키고 지탱하고 관찰하는 그것밖에 없지요. 그렇게 본인이 보니까 거기서 힘의 구축이 나와서 그 힘은 저주받은 땅에서 이마에 땀을 흘린 그 노력으로 내가 밥 먹고 사는 겁니다.

개인의 그런 밥 먹고 살고 아기를 낳으니까 혈육이 되고 혈육으로 가족을 이루고 그런 사람들의 모여서 공동체를 이뤄서 사회를 이뤘고 그 사회는 뭐를 최종목표로 한다? 국가로 최종목표로 하는 거예요. 저 국가의 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약속된 히브리인들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만든 거예요.

자, 둘 중에 어느 국가가 표준이냐는 거예요. 표준이란 말을 쉽게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공장에서 제품을 나왔을 때 그 제품에 하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키트 같은 게 있어서 규격이 맞아야 본 회사에 납품이 되거든요. 그러면 검사과에서 뭘 합니까? 표준 키트로 맞으면 통과, 안 맞으면 불량, 이렇게 되잖아요. 하나님께서 키트로 너희들이 내가 창조한 그 인간 맞는지 안 맞는지 계속 대조해보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만들었으면 이스라엘답게 돼야 되겠지요.

아까 들었던 이야기 다시 해봅시다. 이스라엘은 모든 구조와 모든 질서가 어디서 나왔다고 했습니까? 시내 산을 통해서 밑으로 내려온 거죠.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될 수 있는 모든 제도는 위에서 내려온 거죠. 거기엔 모세만 올라갔고 다른 사람은 못 올라갔죠. 집에 개도 올라가면 죽여 버립니다. 개도 길 잘 들여야 돼요. 멋도 모르고 올라가다가 거기서 벼락 맞아 죽어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체의 모든 시작점이 샤먼의 사회기 때문에. 인간의 입자의 사회가 아니에요. 예언의 세계고 말씀의 세계란 말이죠. 그럼 끊임없이 이 말씀의 세계에 대해서 이스라엘 자체가 맞는지 안 맞는지 대조가 돼야 되잖아요. 그래서 아까 말한 사무엘상에 나오는 모든 흐름이 두 층으로 돼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일을 통해서 가능성이 둘로 나눠지는 걸 중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능성들이 포개져있어요.

중첩이 되면 갈라지면서 뭐가 나와요? 분기점이 나오겠지요. 그 분기점에 서 있는 사람이 사무엘이고 다윗이고 그렇지요. 다윗은 결국은 제사장 중심의 이스라엘이 분기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매개입자로 등장하는 쪽이 바로 다윗, 요나단, 그전에 사무엘. 사무엘, 다윗, 요나단 이런 사람들이 바로 매개입자가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망해도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다시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매개적인 다시 하나님이 떨어지지 않도록 붙여주는 그 기능을 다윗이나 요나단과 사무엘이 하는 겁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와 같이 있다가 죽어버리지요.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은 무슨 계약을 맺느냐? 하나님의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다윗을 예언하고 있어요. 내 앞에 기름 부은 자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가 따로 놀고 밑에 있는 사울의 세계도 따로 노는 겁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상적인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필히 이 지상에 다윗과 요나단, 사울이 등장하는 그 의미가 이 세상의 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필히 죄악 된 현상들의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이 땅에서.

그럼 오늘날 성도한테 이 죄가 없습니까? 아니지요. 성도한테는 하나님과 교환되는 성령과 더불어서 육신이라는 죄와 함께 있는 겁니다. 아주 악마로 떨어지지 않고 아주 예수님과 하나가 되지 않고 그 자체에서 결합이 돼있는데 그걸 물리학에선 스핀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전자가 원자핵으로 빠지지 않고 자체적으로 오비탈 궤도를 유지하는 것은 안에 한쪽의 전자가 자전하기 때문에, 이걸 디렌이란 사람이 발견했거든요.

스핀으로 설명하니까 이게 한쪽으로 빠지지 않는 거예요. 만약에 스핀이 없다는 모든 전자가 붕괴되어 원자핵으로 다 흡수되면 이 세상이 갑자기 전부 다 한 점으로 빅뱅 되어 빅 크런치가 되어 완전히 납작하게 된다고요. 그래서 유지하는 것은 상반되는 대립되는 힘이 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열린 구조지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 열린 구조면서 자기 안에 육신이라는 닫힌 구조도 같이 갖고 있는 겁니다. 우리 육신으로 하는 것은 끊임없이 죄가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를 보여주는 방법에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이루었다는 걸 보여주는 방법은 죽을 때까지 육신의 죄만 나오는 그 방법이거든요.

육신의 죄가 뭐냐, 이걸 누가 보여주느냐? 고맙게도 사울 왕이 우리를 대표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답게 된다는 것은 키트에 보게 되면 사울 왕도 있어야 되고 다윗 왕도 있어야 되고 두 가지 요소가 있을 때 이게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는 거예요. 물론 미완성적 이스라엘이지만. 이것이 나중에 어디로 가느냐? 예수 그리스도까지 온전한 이스라엘까지 계속 하나님의 악과 의가 나란히 중첩되어 가는 겁니다. 사무엘상 참 쉽지요.

언어의 파괴뿐만 아닙니다. 문장의 파괴도 일어나요. 하나님께서는 전쟁할 때 언약궤에 제사부터 먼저 드려서 했거든요. 여기 사무엘상 15장 같은 경우에는 제사를 반드시 드리게 돼있어요. 사무엘상 15장 22절 보게 되면,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돼있어요.

진작 이야기하지 진작. 사울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하기 전에 약속시간이 사무엘이 안 왔어요. 약속은 누가 어겼는가? 사무엘이 어겨놓고 나중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까 군사들이 사기가 떨어지고 흩어지기 시작한 거예요. 입자의 힘이 끊어지니까 사울이 급해서 왕 행세한다고 얼른 제사 드리고 빨리 진격해야 되는데 제사 드릴 그 타이밍에 까꿍하고 사무엘이 등장한 거예요.

그럼 사무엘이 뭐냐? 질책하기 위한 존재가 사무엘이에요. 일을 저질러놓고 나중에 잔소리하기 위해서 등장한 게 사무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방법을 사용하시고 우리에게 마음껏 죄 지어라 해놓고 맨날 돌아서서 성령으로 책망하시죠. 미리 말 안 해줘. 왜? 그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키트에 맞아요. 그래야 되는 거예요. 맨날 쥐어 박히면서 이제는 더 이상 책망 없는 하늘나라를 사모하게 만들지요.

첫째 시간 마칩시다. 첫째 시간 제목은 <유령의 영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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