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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7 18:15:35 조회 : 83         
66강-욥기 19장 13~22절(은혜받은 자)20210117 이근호 목사 이름 : 송민선(IP:119.206.92.141)
66강-욥기 19장 13~22절(은혜받은 자)20210117 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욥기 19장 13~22절입니다. 구약성경 778페이지입니다.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어린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뿐이로구나,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

욥을 통해서 욥이 새삼스럽게 알게 된 하나님은 그냥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치는 경우도 있구나,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낼 때 자기 택한 자를 직접 치는 식으로 나타난다는 새로운 하나님의 상이 여기서 부각이 됩니다. 그냥 하늘에서 저 멀리 계시고 더러운 인간과 상종도 안 하는 하나님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거룩함을 생각한다면 그럴거라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욥을 직접 침으로써 인간에게 관여하는 인간세계에 들어오실 때 하나님의 모습이 평소에 하는 인간들의 생각과 너무나 차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욥이 가련하고 불쌍하지만 우리는 눈이 확 뜨이는 거예요. 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마냥 추상적이 아니고 구체적이라는 사실, 하나님이 택하고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믿음이 있다고 온 우주에 자랑하시는 그 사람을 직접 때리는 식으로 하나님 쪽에서 먼저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는 거.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모른다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이것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때리고 다시 싸매주시고 죽이시고 다시 건져주시고 이 하나님 뜻 외에는 다른 뜻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4절에 보게 되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하나님은 주님을 죽은 자에서 다시 살린 것처럼 우리도 죽은 자를 살리신다. 이렇게 하나님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거죠. 모르고 있으니까 고린도전서 2장 7절에도 사도바울이 그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2장 2절에 먼저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리고 고린도전서 2장 7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그 비밀이 뭐냐 하면 십자가인데 그 십자가는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니고 2장 12절에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안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라고 해서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은 우리만 아는 은혜이고 선물이라는 거죠. 12절에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세상에 영이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모두 요물이죠. 있는데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심이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켜라, 보관하라, 간직하라”라고 하시는 겁니다. 나는 너희 것을 간직하라고 내가 당부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너에게 준 것 있잖아. 준 것. 준 것을 간직해라. 그러면 준 것이 뭡니까. “죽은 자를 살린다” 죽어 마땅한 자를 살려 마땅한 자로 만들어 내겠다는 거예요. “살아야만 하고 너는 꼭 천국 가야 해”라는 내용을 네가 간직하라는 말이죠. 꼬라지는 이래도 너는 꼭 천국 가야 해. ‘이거는 결코 내 뜻이 아니야. 주의 뜻이야. 나는 이것을 간직하기 위해 평생을 다 소모할 거야. 나는 평생을 여기에 다 집어 던질 거야’라는 식으로 그렇게 살라는 말이죠.

아직 욥은 이런 신약에 복음의 내용을 모릅니다. 모르고 만약 욥기 끝에 하나님이 나타나게 되면 좀 감을 잡지요. 아, 내가 얻어맞고 주께 복을 받았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뭔가 다녀갔다는 거예요. 뭣이 다녀갔는가. 하나님의 뜻이 쑥하고 다녀가서 나를 통해서 쑥 빠져나간 거예요. 그 경로가 중요한 거예요. 구약에 치고 빠지는 거나 신약에서 죽이고 살리는 거나 같은 맥락이에요. 이게 하나님의 은혜고 숨겨진 비밀입니다.

이게 왜 아무나에게 은혜를 주지 않고 특별한 사람에게 주시는가.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데요. 읽지 않았지만 19장 29절에 보면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라고 되어있어요. 왜 특정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게 하느냐 하면 심판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들이 거기에 가담되게 만들어서 만들어지게 되어있어요. 하나님의 지옥이라는 것, 하나님의 심판을. 심판 만드는데 심판받아야만 하는 자들이 같이 거들어야 심판이 되는 거예요.

딱 정해놓고 ‘너는 심판 받아라’가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그게 맞는데요, 딱 정해놓고 지옥 갈 사람은 지옥 가는데 그냥 곱게 보내는 것이 아니고 심판받아 마땅함을 계속 유발시키면서 심판의 정당성을 일으키기 위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은혜를 아는 자들에게 대들도록 그렇게 조치를 하셨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지옥의 주가 되기 위해서, 심판 주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다시 오늘 욥기 19장 본문으로 돌아와서 욥이 지금 누구보고 이야기하느냐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타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외인이 되었다는 말은 남, 타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뭐냐 하면 내가 그동안 세상과 엮였던 모든 관계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를 침으로써 그동안의 모든 관계도 두두둑 다 끊어졌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 사람이 그동안 욥을 안 싫어한 이유가 그들 보기에 욥이 그럴싸해 보이고 사귈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이 여기서 들통이 나는 겁니다. 인간은 상대방이 이용할 거리가 있고 얻을 거리가 있다는 조건 하에 이렇게 관계를 맺게 되는 겁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가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이라는 소설에 나옵니다.

충실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흉물스러운 큼직한 바퀴벌레 같은 벌레로 변하니까 그동안 아버지를 존경스러워하고 남편을 좋아했던 모든 가족이 마음이 다 달라지죠. 몸의 변신은 주인공 남자가 변신하지만 그 다음부터 식구들 마음의 변신은 그들 몫이 되는 거예요. 어느 인간도 타인이 아닌 자가 아무도 없는 겁니다. 진정으로 너는 나와 하나라고 자부할 수 있는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식구들은 욥을 버렸으나 욥의 특징은 그렇게 때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욥을 쳐도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릴 수가 없다는 이 점이 특이한 점이에요. 어지간히 치면 하나님 버릴 만하고 이제 안 믿는다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내기에서 누가 이기냐 하면 악마가 이겨요. 이게 인간에서 시작한 믿음 같으면 악마가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욥 1장부터 하나님이 꽂아놓은 믿음이 있고 관계가 있어요. 그 관계는 아무리 이렇게 때리고 치고 때리고 치고 해도 얻어맞으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마감 조치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게 끈질김이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영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실컷 불신의 세계, 지옥 같은 세상에서 떠나면 안 돼요. 죽을 때까지 시달려야 합니다.

그들보다 내가 낫다고 하는 그것이 얼마나 헛된 꿈인지 그들보다 조금도 나은 것이 없어요. 그들보다 조금도 뛰어난 점도 없고 그들보다 믿음이 좋은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꽂아놓은 그 은혜로 주신 것들 은혜로 주신 것이 있어요. 그것이 내 결심보다 더 우월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4~5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다고 하면서 완전히 호박죽 끓일 때 호박 속 파내듯이 우리의 것을 완전히 파버리고 그 파인 내부를 주님의 은혜로 꽉꽉 채우는 그 작업을 하나님은 계속해서 쉬지 않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 안에 내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수련회 때 이야기했잖아요. 유명한 사자성어 ‘영구 없다’

영구는 자기가 있어요. 있는데 자기가 없대.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욥의 친구들이 욥을 보고 하는 이야기가 네가 지금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을 모르겠다. 하나님이 왜 때리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면서 왜 내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을 안 하느냐는 겁니다. 친구들이 이야기하기를.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라고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치심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의 자신 됨을 드러내는 거예요. 얻어맞지 아니하면 욥은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모르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욥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 욥이 아주 특이한 점입니다. 특이한 믿음.

물론 그 믿음을 알아야 하겠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너무 복잡하고 힘든 이야기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사극을 하는데 예를 들어 철인왕후 같은 사극 있잖아요. 사극을 할 때 여러분이 티비에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그들이 마스크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 사극에. 만약에 그 사극 연출가가 왕후와 철종과 이야기하면서 둘 다 마스크 쓰고 이야기하면서 “코로나 주의합시다. 그럽시다. 중전마마”라고 한다면 그 사극을 보는 사람이 완전히 혼돈에 빠질 겁니다.

뭐야 저거. 완전히 가상과 현실이 같이 혼재되어 있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마스크 쓰고 살아도 사극만큼은 대왕 대비마마도 중전도 마스크 쓰면 안 돼요. 그때는 마스크 만들지도 않았지만 마스크 쓰면 안 된다고요. 그래 줘야 이게 가상 현실이 돼요. 욥의 친구들은 마스크를 쓰면 안 돼요. 그래서 그들이 가짜인 거예요. 그들의 믿음이 가짜인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자기는 멀쩡한데 자기는 하나님을 잘 알고 복 받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갑자기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이렇게 얻어터지고 엉망진창 죄인처럼 저주받는 모습으로 나타나니까 그들은 지금 마치 사극 속에 주인공들이 마스크 쓰고 대화하는 것처럼 그들은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럴 일은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아는 현실은 깔끔한 현실이에요. 하나님이 착하게 살면 복 주고 죽어서 천국 가고 나쁜 놈들은 이 땅에서 저주받고 지옥 가고 하면 얼마나 이게 얼마나 깔끔하냐는 말이죠. 그거 믿는데 무슨 마음의 갈등이나 번민 같은 것이 생깁니까. 안 생기죠. 욥의 친구들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아프리카 사람 중에 뱀을 섬기는 종족이 있답니다. 뱀을 섬기는 종족이 있어서 “당신은 왜 뱀을 숭상합니까? 그 흉한 짐승을 왜 숭상합니까”라고 물으니까 뱀은 온몸을 대지에 쫙 깔고 살기 때문에 대지가 품고 있는 그 지혜와 그 비밀을 뱀만큼 다 쏙 빨아들여서 알고 있는 짐승이 없다는 거예요. 뱀은 늘 대지 위를 깔고 다니니까 온몸으로 다 받아내는 거예요.

대지에 지혜에 귀 기울이면서.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더 똑똑한 뱀을 숭상하는 거예요. 그 짐승을 섬기면 뭐 얻을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상당히 단순하지요. 그러면 그들이 믿는 신은 물론 뱀을 섬기겠지만 신을 믿는다면 그 신은 본인들이 납득이 되는 신이에요. 모순되지 않는 신이란 말이죠. 그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누구도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와서 이 땅에 사람에게 맞아 죽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이 그 하나님이 맞아 죽는 그 심판에 너 인간이 때림으로 그 종말에 심판에 이미 인간들이 가담되게 되어있는 그래서 형성된 심판, 네가 날 때렸으니까 이제는 네 차례이고 지옥 가라는 그런 식으로 지옥을 유도하고 심판을 유도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가 알겠어요. 아무도 모르죠.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더라도 내가 성경을 해석해서 구원받는 방법을 인간은 깔끔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성령을 받지 않더라도. 십자가의 영을 받지 않더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거, 더 나아가서 십자가 알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고 변두리에 밀어내고 착한 인간 복 받고 천당 간다는 그런 식으로 내 구원을 챙길 수 있는 그게 깔끔하다고 보는 거죠. 인간들은.

그걸 뭐라고 정리하느냐 하면 내 신체가 중심이 된 그런 세상관.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 중심의 사건으로 이 세상에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내 중심체 중심에서 십자가 중심으로 우리가 만약에 바뀌었다면 내 신체 중심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내 신체 중심이 곧 이게 심판과 종말과 저주를 유발시키는 그런 신체라는 것을 본인들이 인정해야죠.

멀쩡하지요, 죽을 때도 아프지 않지요, 악인들이 너무너무 잘 되죠, 부자 되죠. 그런데 예수님 꼴을 한번 보세요. 거기에서 뭘 얻을 게 있습니까. 욥의 꼴을 한번 보세요. 욥에게 뭘 얻을 게 있습니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요. 전부 다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에요. 식구도 밀고, 종들도 얕잡아 보고, 어린아이들도 “아저씨 저리 가세요”라고 밀고, 아내도 싫어하고 내 동포도 나를 혐오하고 조롱하고 돌 던지고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거예요. 모든 모습이. 철저하게. 그러니까 오늘 본문 욥을 보면서 우리 자신이 이런 상황이 될까 봐 우리도 지레짐작하며 겁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약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이런 험한 꼴을 안 볼 거라고 생각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23절에 보면 험한 꼴 한번 여기에 나옵니다.

제가 고린도전서 6장 7절과 두 군데를 읽어 볼 건데 7장 23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라고 되어있어요. 여기에 “값으로 사신 것이니”라고 나오는데 예수님의 생명을 값으로 주고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라는 대목입니다.

만약에 삼성그룹에서 면접 보는데 “입사하면 소망이 뭡니까?”라고 물으면 면접 보는 졸업생이 “저는 사람의 종이 되지 않는 겁니다. 저는 살아있는 권력을 다룰 겁니다”라고 하면 “합격”이라고 해 줍니까? 여러분, 사람의 종이 되지 않는데 회사가 그 사람을 뭐하러 취직시켜주겠습니까. 이게 얼마나 험한 꼴입니까.

욥 개인적인 신체가 다치는 것도 아프지만 이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자기를 끼워주지 않는 거, 왕따시키는 거, 자기 조직에 넣어주지 않을 때 그 사람은 무슨 힘으로 돈 벌어서 밥 먹고 삽니까. 욥 못지않은 험한 꼴 나는 거예요. “선생님은 인생의 모토가 뭡니까?” “나는 사람의 종이 되지 않는 거” 이건 불가능한 일이죠. 사람의 종이 되어야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먹고 사는 법입니다.

또 험한 꼴이 뭐냐 하면 고린도전서 6장 6~7절에 나와요.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남이 속일 때 속아주라는 말이거든요. 이건 차라리 죽으라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왜 속이는데 거기에 대들지 못하고 그냥 속아줍니까.

그러니 지금 우리가 욥을 보면서 ‘욥은 안됐다. 우리는 욥에게 좀 미안하지만, 욥 혼자 당해라’라고 하는데 혼자 당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 오늘날 우리가 모든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나는 사람의 종이 되지 않고 나는 소송 같은 거 안 한다. 나는 재판 안 한다. 얻어맞아도 얻어맞은 채로 파스 하나 붙이고 돌아다닌다’라는 식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써는 전혀 감당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욥이 불쌍한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봐야 해요. 고린도전서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에 보면 나옵니다. 아주 거창해요.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지금 아멘 할 문제가 아니고 그래서 얼마 챙겼어요? 이 모든 만물이 내 것이라고 해 놓고는 실제로 지갑에 얼마 들어왔어요? 통장에 몇만 원 들어왔습니까. 개코도 아무것도 없어요. 이 말씀은 뭐냐 하면 우리가 주님 앞에 개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이미 주인이 있고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는 말은 이미 네 주인은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너의 주인이니 네가 단독적으로 나는 남보다 더 잘살아 보려고 남보다 비교해서 멋있게 사는 거 그런 거 스트레스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가 곧 하나님의 종인 거예요. 하나님이 때리면 맞으면 되는 거예요. 왜? 주인이 때리겠다는데 종이 맞아야죠. 남들이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오해하고 곡해하고 ‘인간아 왜 저래 사냐’라고 혀를 차도 바로 이게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이 심판받아야 할 기준.

종이를 볼 때 여러분 자신을 종이 면적처럼 인생이 이렇다고 보지 말고 인생을 종이 세워서 선으로 보세요. 한 선만 보는 거예요. 주님과 나와의 관계만 보는 거예요. 종이 펼쳐진 면적으로 보게 되면 ‘나는 일곱 살 때 뭐했고, 12살 때 뭐 했고, 개근상 받았고, 사업하다 사기당해서 망했고, 뭐 이렇게 쭉 있는데 이거 다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 일어나야 할 사건의 굴곡입니다.

그 사건들이 일어나야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된 거예요. 어떤 경우라도 종이 세워서 보면 선이 보여요. 주님과의 관계선. 욥처럼 이렇게 때리고 맞아도 나는 그게 하나님이 하신 줄 믿는다는 거, 이 모든 일이 나의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인 거예요. 이게 바로 내 중심이 아니고 십자가의 사건을 드러내는 중심으로 욥과 같은 맥락이고 노선인 성도의 모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면적 자랑하다가 주님의 관계를 잊어버리고 놓쳐버렸습니다. 핫도그에 소시지 들어있는 것처럼 핫도그 밀가루 자랑하지 말고 내 안에 소시지 들어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복음을 드러낼 수 있는 은혜로 주신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저희들의 남은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66강-욥기 19장 13~22절(은혜받은 자)20210117 이근호 목사.hwp (70.0K), Dow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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