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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2 22:25:12 조회 : 94         
강남-누가복음 4장 10절 (유골단지) 201020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4장 10절 (유골단지) 201020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4장 10절부터 하겠습니다. 4장 9절부터 보면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그렇게 되어있지요.


이 성경말씀인데 시편 91편에 나오는 성경 말씀이에요. 이 성경 말씀인데 이 성경 말씀을 누가 사용을 하느냐 하면은 악마가 사용하지요. 시편 91편에 나오는 그 말씀을 악마가 그걸 사용하여 주님에게 시험을 하는 대목입니다. 시험을 한다는 것은 시험 치는 자가 있고 시험을 출제를 내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되지요.


그럼 시험 출제를 내버리면 출제 내는 사람은 선생님이고 문제 풀어야 될 사람은 학생이죠.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은 이 선생님은 문제 삼지 말라는 뜻이죠. 학생아 너는 학생의 그 영역에서 머물라. 학생이 내가 내는 문제를 시험 치면 되지 우리가 선생님한테 시험문제를 받았으니 이제는 제가 문제 낼 테니 선생님 맞춰보세요 이러지 말란 말이죠.


그래서 악마가 예수님께 시험한다는 것은 나에게 함부로 나의 영역에 나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악마가 여기 이렇게 나와 있는데 오늘날 우리는 악마를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이미 악마가 오늘 누가복음 4장 10절에서 알려줬습니다.


악마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은 악마는 언어에 있다. 언어에 실존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악마는 사진 찍으면 나타나지 않아요. 그리고 만져도 오감으로 만져지지 않고. 악마는 언어를 사용하죠. 말을. 말과 글을 사용해서 나타납니다.


악마가 시편 91편 11절부터 사용했다는 말은 시편 91편을 주님한테 가면 완성이 돼요. 주님한테 가면 완성이 되니까 주님은 말씀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시편 91편 이것이 악마한테 가면 이게 뭐가 되느냐? 이게 말이 돼요. 말씀이 아니고 말이 됩니다. 언어가 돼요. 언어.


그러면 말과 말씀 사이에는 대척 관계에 있어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밀어내는 관계에요. 서로 서로 반대방향으로 밀어내는 관계입니다. 마치 자석에서 밀어내는 것처럼 그렇게 밀어내겠지요. 그럼 여기도 시편 90편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예수님도 시편 91편 말씀이 있다면 동일한 말씀을 가지고 서로를 밀어내는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똑같은 말씀을 사용했는데 그 말씀에 대한 그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와있지요.


그러면 인간의 그 악마가 쓰는 말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 하면은 악마는 십자가까지 갈 수 있어요. 십자가라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희생, 순교. 그냥 순교가 아니고 장렬한 순교, 희생, 봉사 이런 것은 악마가 다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은 악마는 인간에게 말을 주었고 그 말에 대해서 악마가 말을 줬기 때문에 그 말을 그냥 던져주는 것이 아니고 작살에 꽂힌다 하지요. 말을 탁 던지게 되면 그 말에 내용을 이해한 내가 그 말과 내가 일치하려고 애를 쓰겠지요.


예를 들어서 악마가 이런 겁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 지셨다 한다면 그거는 악마한테는 말이 아니고 말씀이 아니고 말이 되겠지요. 말씀이 말이 되어버리면 이 말이 우리한테 꽂혀버리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죽을려고 애를 쓰겠지요. 이게 바로 악마의 고난 안에서 놀아나는 겁니다. 희생하고 장렬한 봉사하고.


선교사로 가고 뭐 온 난리를 하고 천주교 신부 같으면 신부될 때 바닥에 십자가로 엎드려가지고 이렇게 하거든요. 마귀 짓이죠. 십자가에 엎드려가지고 하고 가족들은 울고 있고 울면서도 주님께서 제 아들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도 울긴 또 왜 울어요? 섭섭하다 이 말 아닙니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말한대로 합치 또는 일치, 내용과 일치시키기 위해서 애를 써요. 애를 쓰는데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 하면은 불교도 마찬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 하면은 이게 십자가는 가는데 부활까지는 가지를 못합니다. 이게 악마의 안타까운 점이에요. 여기 간격이 있거든요 간격. 그 간격을 뛰어넘을 수가 없네요. 그냥 예수님 믿고 죽을똥 살똥 해요. 거의 초죽음 될 정도로 해요. 그러나 백날 초죽음하고 심지어 잘못 실수해서 죽는다 할지라도 부활에 이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은 악마는 이 인간세계에서 뭐냐 하면은 기호이기 때문에 그래요. 기호. 언어이기 때문에. 더 어렵게 이야기하면 기표라고 하는데 그냥 쉽게 기호라고 생각하면 돼요. 기호기 때문에 그냥 ‘말’이에요. 기호는 말이거든요. 그러면 사람이 말을 할 때 날라다니는 말을 주워 담습니까? 아니면 말하는 그 사람을 먼저 전제로 하는 거에요?


소리를 들으니까 이 소리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살피는 거에요. 살피죠? 그 말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말로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실체를 찾아가게 되어있어요. 어떤 말을 해도 그 실체는 말한 본인들에게 있거든요.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있다고요.


그런데 사람이 있다는 이 말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연구하고 물리적인 탐사도구를 사용 해도 악마는 포착이 된다? 안된다? 악마는 포착이 안되지요. 포착이 안돼요. 악마는 포착이 안되고 악마가 던져주는 말에 대해서는 인간이 미친 듯이 그것에 대해서 일치시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그러니까 여기 순교, 악바리 희생을 해봤자 그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그 말에 대해서 이끌린 내가 그 말의 내용과 일치되겠다고 애쓰는 본인이에요. 본인. 본인은~~ 본인이라고 본인. 어떤 순교의 현장에 가도 거기서 만져지는 것은 물컹물컹한 본인의 근육들이에요. 본인뿐이에요. 그럼 본인이 악마에요? 아니잖아요. 악마 안보이고 되는 모든 일은 사람의 일이지.


그러니까 사람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악마를 뽑아내고 집어내야 될 것을 사람보고 이야기 안하고 누구보고 이야기합니까? 인간보고 이야기하면서 똑바로 하라는 거에요. 똑바로. 본인이 똑바로 안하고 싶어서 안합니까? 자신도 그 말에 현혹되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요.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여러분들 다시 한번 시편 91편을 다같이 한번 볼께요. 악마가 사용한 말입니다. 시편 91편 11절에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렇게 되어있지요. 시편 91편 11절, 12절 그렇게 되어있지요?


이 말씀을 어떤 사람이 우연히 봤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말씀은 내가 신앙인인지 아닌지 자기가 모른다는 거에요. 그러면 어디로 가야되느냐? 요새 단풍 좋겠다. 설악산 절벽 있잖아요. 울산바위나. 절벽에 올라가는 거에요. 올라가서 본인이 본인을 테스트 시험하는 거에요. 내가 믿음 있으면 여기서 뛰어내리는 겁니다.


뛰어내려 버리면 천사가 와서 성경말씀 그대로 천사가 와서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면 나는 신앙인이고 신앙인 되면 어디 간다? 천국 가는거고. 만약에 여기 울산바위 낭떠러지에서 설악산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는데 그 발모가지가 와장창 부서지게 되면 이거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린 패로 여겨가지고 내가 나는 천국가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런데 만약에 내가 절벽에 올라서면 주저주저 하겠지요. 주저주저 할 때 옆에서 내가 내 속에서 어떤 양심의 소리인지 무슨 소리가 있어요. 왜 주저하느냐? 왜 머뭇거리느냐? 너는 성경에 다른 구절 못 봤느냐? 야고보서 못 봤느냐? 호세아 못 봤느냐? 두 마음을 품은 자여 이런 식으로 나오거든요. 두 마음을 품은 자여 정함이 없느니라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래 이거는 어차피 믿음은 오기야. 모험이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이래가지고 뛰어내릴려고 할 때 누가 그 일을 시키겠어요? 방금 우리가 누가복음 4장에 의하면 누가 시켰습니까? 악마가 시킨 거에요. 인간은 악마의 하수인이니까. 악마는 어디까지 들어간다? 성경말씀까지 말로 인간의 말로 다 집어넣는 거에요. 말로.


뭐 울산바위나 살벌하게 절벽 안 뛰어내려도 나는 십자가를 그냥 집에서 가만 앉아있으면서 십자가를 믿는다. 내가 믿는다는 것이 믿음이 아닐 수도 있지 아니한가 뭐 이런 거 있잖아요. 내가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지만 내 일방적인 착각일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내가 십자가를 믿지도 않으면서 십자가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여기면서 십자가 믿을 경우에 제가 대구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지만 같이 잠을 자는데 아내는 휴거받아서 올라가버리고 아침에 딱 일어나니까 옆에 아내가 없네. 어디 갔지? 아무리 봐도 휴거한 거 같애.


그러면 아내가 휴거한 것이 지금 문제가 아니고 본인이 휴거 안 당했다는게 문제 아닙니까? 이 세상에 이만큼 절대적인 낭패는 이보다 더 큰 낭패는 없어요. 왜? 다시 휴거될 어떤 다음 기회라는게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사다리도 없을 뿐더러 한번 이렇게 휴거 안 되면 끝장난 거에요. 볼일 다 본거에요. 뭐 선교단체에다가 뭐 성공회 그게 무슨 소용 있어요 그게.


우리 아들이 의사고 판사고 내가 어떻고 그게 휴거가 안 되어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 있어요. 내가 아는 훌륭한 목사가 몇 명이고 뭐 나는 장로하고도 잘 놀고 잘 놀면 뭐합니까? 다 같이 이 땅에 바닥에 남아있는데. 그동안 무슨 짓 했어요? 결국 교회를 50년 다녀놓고 무슨 짓 했어요? 휴거도 되지를 못한 그 짓을 한 거에요. 휴거도 되지 못할 짓을 한 거에요.


아내가 휴거되면 나도 휴거됩니까? 택도 없는 소리죠. 안되지요. 완전 닭 쫓던 개 꼴이 된 겁니다. 이제 와서 주여 용서하소서 긍휼히 여기소서 백날 해봐야 게임오버. 게임 끝났어요. 문 닫았단 말이에요. 끝났어요. 이게 하나의 소설 같으면 우린 뭐 소설 짜릿하네 반전있네 하겠지만 소설이 아니고 이게 실제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실제상황.


이게 실제상황인 이유가 바로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이런 이야기 끄집어내는 내가 밉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1장 9절에 보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지요. 이 세상에서 휴거 된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예수님 뿐이고 나머지는 땅에 그냥 다 남아있어요. 끝났어요. 제자들도 끝났어요.


제자들이 얼마나 황당한지. 가신 님을 쳐다보고 있다고요. 가신 님을. 뭐에요 지금. 우린 놔두고 가버린 거에요. 놔두고. 애 키워본 엄마는 알겠지요. 그렇게 잘 놀다가 엄마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애가 따라와요. 그냥 좀 놀면 될텐데. 기어이 막 따라와요. 걷지도 못하면서 기어서 따라온다고요. 엄마하고 떨어지기 싫어서.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 다 방치하고 홀로 휴거된 거에요. 그러면 제자들은 뭡니까? 황당하지요. 결국 따라가다 따라가다 못 따라간 거에요. 버려진 겁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 짐 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뭐가 없느냐? 구원은 애초에 없었다. 구원은 애초에 없었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내가 알려줄께요. 그것이 알고 싶다. 구원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그걸 주님이 증명했어요. 주님의 생애를 통해 증명했어요. 아무도 휴거될 자격은 없었다. 이 말은 어느 누구도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 악마를 포착할 수가 없었다.


악마를 포착해야 악마를 패든지 죽이든지 하는데 언어 자체 바깥에서 인간이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인간이 애를 써도 내가 내뱉은 그 말과 내 행동이 합치되지 못한다는 그 미흡 점이 있는 이상은 온전히 그 성경말씀대로 못 지키거든요. 지금 시편 91편 11절 지금 예수님도 사용하지만 누구도 사용해요? 오늘 본문에서. 악마가 사용하지요.


악마는 시편 91편 11절 지킵니까? 못 지킵니까? 못 지키지죠. 악마가 못 지킨다는 말은 악마에 예속된 모든 인간들은 이 성경 말씀을 못 지키는 거에요. 못 지키니까 말씀을 말씀으로 보지 않고 뭐로 보는가. 말로 보는 겁니다. 말로 봐야 내가 행함으로 그 내용과 합치시킬려고 애를 쓸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 헛된 희망이지만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잖아요. 희망.


희망을 갖는 것 하고 실제로 휴거되는 것 하고 이거는 하늘과 땅 차이지요. 희망이야 누군들 못 품어요. 희망인들. 다 희망 품지요. 고3 애들 보세요. 지금 수능 얼마 안 남기고 전부 다 희망한다고요. 막 꿈에 400점 만점에 400점 막 꿈꿔요. 깨보면 꿈이에요. 그 날이 12월달 올 때 까지 점점 초조해져요. 자기가 공부한 그대로 나왔으면 좋겠다. 희망이죠.


그런데 내가 공부한 거 하나도 안 나오면 어떻게 되는가 또 걱정이 되고. 합치되지 못해요. 성경말씀 자체가 시험이거든요. 성경말씀 시편 91편 11절에 대해서 악마가 예수님 보고 시험하는 것은 악마 본인도 못 지켰고 악마의 예속된 모든 인간들도 이 말씀 지킨 위인이 아무도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악마가 하는 말이 너도 마찬가지지 뭐 너도. 너도 마찬가지야. 악마가 테스트한 테스트가 얼마나 실감나는 테스트인지 그 많은 성경 가운데서 실제로 뛰어내리라고 하는 거에요.


어떤 사람은 어떤 전도사는 기도 많이 하다가 뭘 응답받았느냐 하면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 바치는 대목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가지고 “네가 전도사냐?” “네 전도사입니다.” “네가 목회자로서 앞으로 하늘나라를 이 땅까지 확장시키겠는가?” “예, 하늘나라를 확장시키고 악마를 몰아내겠습니다.”


악마가 뭔데. 악마를 봐야 몰아내지 보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큰소리는 다 치는 거에요. “그렇다면 네가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믿음 저 있습니다.” “정말 믿음 있다면 방금 믿음 있다고 이야기했나?” “예, 했습니다.” “두 말 못하지? 너 사나이지?” “사나이입니다.” “그렇다면 믿음 있다면 네 아들 죽여라. 왜? 쫄아? 너 지금 쫄은거야? 지금?” “아닙니다. 쫄다니요?! 지금 당장 기도원 내려가서 아들 잡겠습니다.” 잡았잖아요. 자기 아들만 죽었지. 자기 아들만 죽었어요.


우리는 악마한테 속았다하는 게 아니고 말을 달리 해야 돼요. 악마한테 속은 게 아니고 악마한테 못 벗어났지요. 악마의 권세에서 못 벗어 난거에요. 속은 게 아니에요. 속기는 뭘 속아요. 악마를 알아야 속지요. 악마도 모르면서 자기가 생각한 악마는 자기가 이겨요. 하지만 악마는 인간의 말로 물러나고 말고 할 퇴마사가 아니고요 지금 우선 만나야지 퇴마하고 말고 하는데 만나지도 못해요. 악마를 만나지도 못해요. 만날 방법이 없다니까. 만날 방법이.


악마를 만날 방법이 분명히 성경에는 있다는데 우리는 못 만나고 주님은 만나고 있고. 악마부터 만나야 소문을 내든지 하는데 만나지를 못하는데요. 악마다 싶으면 악마가 언어를 바꾸거든요. 그래서 악마의 세계에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정리하면 악마의 세계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 했습니까? ‘아들이어든’ 이죠.


그러니까 언어가 먼저 언어 안에 당신은 이걸 지킬 경우에만 당신은 실존이 된다. 언어 안에 실존이 되는 거에요. 인간의 실제가 언어 안에 들어있어요. 네가 시편 91편 못 지킨다면 너는 하나님의 아들 아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다루어왔다. 악마가 나 다루는 방법이다. 그래서 인간의 실존은 악마의 말 바깥으로 못 벗어납니다. 악마의 바깥으로 못 벗어나요.


왜? 악마는 성경말씀 다 알고 있으니까. 성경말씀 언어로 못 벗어나지요. 그걸 성경말씀을 지켜야 악마를 벗어날 수 있는데 못 지키니까 계속 악마한테 추궁을 당하는 겁니다. 지켰어? 지켰어? 네가 아브라함처럼 믿음 있어? 네 아들 잡아봐. 에이 이거 못 하는 것 봐. 못 잡는 것 봐. 어디서 믿음, 너 믿음 없는 거야. 그럼 믿음 없습니다 하면 네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그럼 천국 못가지 이런 식으로요. 지속적으로 악마는 우리를 정죄합니다.


아까 그 사도행전 1장에 다시 보게 되면 예수님만 휴거하고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둔 거에요. 인간들 속에서 대책이 있어요? 없어요? 아무런 대책 없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어요. 악마는 인간들로 하여금 말이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말씀, 십자가 죽기까지 해야 되고 자기를 부인 하면 자기를 부인해야 돼요. 그런데 자기를 부인을 해야 되는데 자기를 부인하는 그 나는 또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를 치워도 또 내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흔히 인간들은 악마를 어떤 사물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죄처럼. 그러나 악마는 중립적인 중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백군일까? 청군일까? 골라잡을 대상이 아니고 악마는 이미 우리를 덮쳐 있는 덮치고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점에 대해서 제자들은 휴거도 못하고 주님이 혼자 휴거해버리고 제자들은 덩그러니 남아있고 이 대책을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러면 그 12제자 사랑한다고 한 말은 빈말이 되고 그 다음에 그들이 사도 바울부터 해가지고 12제자의 물론 가룟 유다는 빼놓고 12제자의 구원은 어떤 조치가 되느냐? 그 과연 12제자가 나중에 마지막 때 그 전에 다 휴거됐지만 마지막 때까지 어떤 성도가 있다면 휴거가 된다 안 된다를 결정짓는 근거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생각 안 할 수가 없지요. 우리의 실존문제이기 때문에. 그 문제는 이렇게 돼요.


우선 실존이란 말해도 되고 이 세상에 존재하시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어요. 예수님 밖에 없는데 왜 그러느냐 하면은 여기 인간이 있고 악마에 예속된 인간, 인간이 있고 예수님이 있다면 인간이 인간을 통해서 두 개로 나눠요. 삶과 그리고 죽음. 인간에 의해서 삶과 죽음이 있겠지요. 인간이라는 말을 여러분이 좀 모호하면 좀 바꾸겠습니다. ‘육’. 육적으로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사는 것과 죽음이 있다 이 말이죠.


이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가지고 이걸 같이 보지 않고 이중으로 보게 하는 거에요. 이중으로 보게 해요. 여기서 첫째 사망, 둘째 사망. 첫째 부활, 둘째 부활이라는 공식이 여기서 나옵니다. 인간은 육이기 때문에 살아있으나 죽어있으나 인간은 결국 사는 것이 결국 죽음이다 이 말입니다. 결국 죽기 때문에 살아 있어도 이게 뭐냐 하면은 그 살아 있는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죽음이 들어있어요. 이게 육의 힘이거든요.


인간은 결국 뭐냐 하면은 죽은 자에요. 죽은 자이기 때문에 휴거 안 되고 남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 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아이고 부끄럽다 이것도 성립이 안돼요. 아이고 걱정이다. 이것도 안돼요. 아이고 내 자식 누가 키우지? 이것도 안돼요. 왜냐하면 죽은 자한테는 고민거리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이것이 뭐냐 하면은 첫 사망입니다. 둘째 사망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둘째 사망이란 말이죠. 그런데 인간에게는 뭐냐? 첫 사망이 있으니까 인간에게는 참 낯설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그냥 살다 죽는 그냥 사망이에요. 사망되면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아담은 뭐가 돼요? 흙이 되지요. 흙은 소멸이죠. 소멸이죠. 언어 속에 있던 인간이 악마한테 빠져나오는 방법은 인간이 죽음으로써 뭐가 되느냐 하면은 흙이 됨으로써 악마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있는 겁니다.


여기서 만약에 흙이 아니고 흙이 됐으니까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만약에 살아있다고 여긴다면 어떤 노력을 살아있는 인간의 어떤 행위도 이 사람은 악마한테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가는 코스를 정하신 거에요. 나 봐라. 나 지금 죽으러 간다. 죽으러 간다. 없어지러 간다. 제자들은 죽으시면 안 됩니다. 아니야. 내가 죽는 그것이 악마의 권세로부터 벗어난 거에요.


오늘 동영상 오전 기억하시죠? 속죄. 속죄하는 방법은 우리가 지옥을 가면 돼요. 참 쉽죠 잉? 지금 속죄가 안 되는 문제가 지옥을 어떻게 하면 안 갈려고 하기 때문에 속죄가 안 되는 거에요. 지옥에 들어가면 돼요. 왜? 들어갈 만하기 때문에 들어가는 거에요. 지금 우리는 아담은 지옥에 마땅히 가야됩니다. 그래서 마땅히 가야되기 때문에 휴거 안 되고 남겨지면 어떠냐. 그런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지옥가면 돼요.


가는데 주님께서 대신 지옥 간걸로 해버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냐? 이미 지옥을 다녀온 사람이 돼요. 지옥을 다녀온 사람이기 때문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서 이미 죄 값을 치룬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죄를 묻지를 않습니다. 정말 쉬워요. 얼마나 맛있게요 이게. 온 정신을 내가 실존, 살아있는 나. 실존이라는 말이 어려우면 살아 있는 나.


살아있는 나를 지옥 갈 나를 방향 틀어서 천국 가도록 혼신의 노력을 할려고 하다 보니까 마귀의 테스트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이것도 지켜야 되고 저것도 지켜야 되고 예수도 믿어야 되고 십자가도 믿어야 되고 온갖 진짜로 모든 노력을 다 해보는데 하면 할수록 일이 점점 더 진흙 판에서 꼬이는 겁니다. 그걸 꼬이도록 누가 앞장서서 해주느냐 하면은 교회 목사들이 그렇게 해주지요. 일이 꼬이도록.


왜? 본인도 지옥가고 있으니까. 본인이 아무것도 몰라요. 교회 키우는 것만 생각하지. 내 교회 커지는 것만 생각하지 아무것도 몰라요. 자존심이니까. 왜? 내 실존이 살아 있으니까. 이왕 사는 거 복 받고 살고 싶다는 거에요. 그게 본인이 마귀인줄 모르고. 목사님 마귀는 어디 있습니까? 내가 죽을 때 비로소 눈에 보여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모든 인간들이 그리고 모든 인간 속에 마귀는 언어로 살아있어요. 언어로. 그리고 실제 죽을 때 그때 마귀가 보이고.


마귀가 우리하고 상대해서 마귀가 자기가 보인다 안 보인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똘마니이기 때문에 우리 상대 안해요. 마귀가 주님하고 상대했던 그 원칙을 악마는 고집합니다. 마귀가 어떤 식으로도 인간이 아무리 시도해도 마귀는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 해도 꿈쩍도 안하지요. 마귀가 싱긋이 웃습니다. 더 심하게 하면 마귀가 막 뭐라고 해요. 언어를 바꾼다고 해가지고 마귀를 체포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는 전에는 부처를 믿습니다 하다가 말을 바꾸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마귀가 놀라고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첫째 사망, 주님께서 이 전체를 인간의 삶과 죽음을 첫째 사망으로 만들어 버리죠. 그럼 이렇게 되어 버리면 인간에게는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에 마귀 어디 있느냐 하는 그런 걱정할 필요도 없지요. 뭐 죽은 자가 죽은 자로 이미 종결되었는데 더 이상 내가 나한테 기여할 것은 완전히 끝났어요. 내가 나 구원하는데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다면 그 다음에 보세요.


자, 제일 쉬운 게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휴거했잖아요. 구름타고 위로 올라갔지요. 이끌려서. 그러면 여기 12제자 남아 있잖아요. 그럼 이 사람들 휴거 안 되고 남아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주님의 그 다음의 주님께서 다 계획이 있었던 거에요. 뭐냐 하면은 이들이 지금 12제자가 악마층을 못 벗어나고 있지요. 악마층을. 악마를 못 벗어나고 율법을 못 벗어나고 사람을 못 벗어나고 죄를 못 벗어나고 있잖아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사 하나님 우편에 계셔가지고 이들에게 뭘 보내느냐 하면은 10일 뒤에 성령을 보내버려요. 성령을. 성령을 보낸다는 말은 작살을 보내는 겁니다. 작살이라는 뜻은 그냥 꽂히고 쏘고 쏜 쪽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못 벗어나도록 쏜 쪽으로 이끌려오는 그런 관계. 이게 작살 아닙니까. 고래에 딱 꽂히면 고래가 그 배로 어쩔 수 없이 끌려오듯이 어쩔 수가 없어요. 성령이 릴을 막 돌려버리니까.


돌려버리면 고래가 원래 어디서 삽니까? 육지에 삽니까? 배 위에 삽니까? 아니면 바다에 살아요? 살던 풍습이 뭐냐? 바다에 적응되어 있다고요. 그런데 잡아당기니까 아프긴 아프고 바다를 떠나거든요. 바다를 떠나니까 고래가 아주 발작을 일으키는 겁니다. 아 나는 저 선원들 먹는 밥 못 먹는데 이런 식으로. 잡아당기니까. 강제로 끌어당겨요 강제로.


내 돈 주고 내가 맛있는 것 사먹는 것은 애굽에서 충분했잖아요. 애굽에서. 그런데 주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어디로 보냅니까? 만나를 보낸다고요. 만나는 주께서 배급 끊어지면 죽어요. 다시 말해서 내가 알아서 내가 살 수 있는 그러한 방식은 광야에서는 전혀 먹히지를 않는 삶의 방식이에요. 내가 내 인생 알아서 살겠다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가 광야 세계거든요.


성령을 보내니까 성령을 보냈다는 말은 성령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일대기가 다 들어 있어요. 예수님의 믿음과 소망 사랑이 다 들어있다고요. 다 들어있으니까 예수님이 이 악마를 예수님이 이 율법을 예수님이 죄를 예수님이 이 저주를 예수님이 심판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그 능력이 성령을 통해서 꽂혀버립니다. 꽂혀버린다고요. 그 능력이. 그 능력을 무슨 능력이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걸 가지고 ‘사랑의 능력’. 사랑의 능력입니다.


예전에 설교 시간에 오후 설교시간에도 이야기 했지만 아가에 보면 오른손으로 능력의 손으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안아버려요. 그래서 제가 그걸 뭐라고 했던가요. 표현하기를. 비닐로 랩 싸는 거 있잖아요. 숨도 못 쉬게 안아버려요. 빠져나갈려고 해도 못 빠져나가죠. 강력한 손으로 안아 버리니까. 일방적인 사랑이죠.


그 오빠들은 그 술람미 여인이 거무튀튀하고 과수원에서 일해가지고 피부도 안 좋고 민낯이고 기초화장도 안하고 가슴도 작고 해가지고 누가 너를 색시로 받아주겠냐 하는데 신랑은 이 세상에 너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꼭 조여오는 거에요. 조여오는 거에요. 갈수록 점점 더. 숨도 못 쉬겠어 아주. 진짜 숨 못 쉬게. 절대로 내가 너를 놔주지 않으리라. 이게 사랑의 힘이에요. 이걸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피로 이야기하지만.


주님께서 이 땅에 왔을 때 십자가란 그 강가에서 건너올 수 없었는데 주님께서 말씀으로 순종하니까 아버지가 준비한건 사랑이거든요. 사랑으로 훌쩍 뛰어서 사흘만에 뭐로 했습니까? 부활한 거에요.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 ‘첫 열매’.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뭐가 있었느냐 하면은 요단강에서 비둘기처럼 뭘 받았습니까? 성령 받았지요 ‘성령’. 그 성령이 예수님이 아버지 자리에서 마치 아들이 있는 자리인 것처럼 줘버리는 거에요. 주는 거에요.


내 이름을 주의 이름 안에 내 이름을 무슨 이름으로? 죽은 자 이름으로 바꿔버려요. 죽은 자 이름. 죽은 자 이름으로 바꿔놓고 아까 죽은 자 이름, 같은 말로 죽은 자 또는 이미 죽어버린 자. 이걸 오늘 제목으로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유골단지. 좀 섬뜩하지만 어차피 오늘 악마 이야기니까 ‘유골단지’. 내 몸이 나의 유골단지에요.


나의 안에는 신장, 심장 뭐 이런게 있지만 사실은 먼지가 들어있어요. 먼지. 먼지가 들어있어요. 나는 유골단지. 애도해도 내가 나보고 애도하는 거에요. 아이고 인간아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는데 내가 나보고 애도하는데 애도할 필요 없어요. 기뻐해야 돼요. 첫째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죽으실 때에 히브리서 보면 성령으로 죽었거든요. 그러면 성령이 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는 코스 있잖아요. 코스. 그 코스를 그대로 밟게 하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접시를 들고 뷔페에 가가지고 제일 먼저 김밥부터 먹고 김밥 안 먹는 사람 있지만 김밥 두개하고 그 다음에 탕수육도 좀 하고 한다면 이게 성령이 역사한다면 그 뒤에 가는 12제자부터 해가지고 전부 다 김밥 두 개 덜고 자기 먹고 싶은 거 못 먹어요. 해야 되고 성령의 작살 꽂혀가지고 그 가는 코스대로 갈 수밖에 없는 거에요. 성령 오게 되면.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의 그 코스를 필히 밟아야 한다면 바로 그 아버지의 오른편에 있던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말이죠. 주님께서 양보한 거죠. 모든 걸 이루셨으니까.


언약의 주가 되셔가지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줘버리면 이제부터는 주님이 주의 자존심을 걸고 오른팔, 내가 십자가에서 악마를 통과한 것이 이게 사실이었다. 사실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놓치지 않아요. 그래서 주의 백성 특징은 뭐냐 하면은 내가 믿음 좋다가 아니라 아 주께서 이 코스로 가셨구나. 주께서 이 코스로. 주께서 이 길로 가셨구나. 우리야 뭐 죄 있어서 죽는게 마땅한데 주님께서는 죄도 없으면서 죽는 코스로 방향을 틀었구나.


악마는 죽일려고 했지만 악마가 죽일려고 하는 그것이 악마가 실수하고 있는 거에요. 악마는 예수님을 안 죽였어야 되는데 악마조차도 주님의 종이 되가지고 너희들이 나를 죽이는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 죽는다. 악마야 나를 죽여라. 가룟 유다야 너 할 일 해야지. 날 팔아먹어야지. 지금까지는 악마한테 권세가 있었는데 이제는 악마의 권세마저 예수님의 권세가 악마의 권세를 조정하면서 기어이 악마를 통해서 자기가 죽게 만들어버려요. 그래야 통과가 되니까. 탈출이 되니까요. 그래야 구멍이 생기니까. 세상에 악마마저 통과한 사람이 여기 있다가 되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에요. 옆에 있는 사람이 당신 구원받았어요? 라고 하게 되면 성도의 이야기는 나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악마의 권세를 이겼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이 주님 말고 너 말이야 너. 너. 나는 이미 죽은 몸이고. 나는 이미 죽었고 움직이는 유골단지고 주께서 이겼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이 답답해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어! 이렇게 하거든요. 예수 십자가를 믿어야지.


그거 믿을려면 내가 또 상정되야 돼요. 내가 또 설정되야 돼요. 죽은 놈이 뭘 믿습니까. 이미 죽었는데. 죽은 놈 건드려봤자 움직이지도 않는데 뭘 믿어요. 내가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라고 할 때 그 이야기가 죽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 안에 살아계신 성령의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주님의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은 예수님 하신 일만 이야기해요. 하신 일만. 예수님 빼놓고 모두 다 죄인입니다.


따라서 그 죄인 중에 내가 괴수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야기했잖아요.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말도 본인이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성령을 통해서 나온 말이에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 내가 사도된 것도 내 행함이 아니고 주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어떤 조건하에? 내가 이미 죽었다는 조건하에서 자꾸 뭔가 말이 나오죠. 그때는 말이 아니고 그게 뭐냐 하면은 이미 악마의 말의 세계에서 벗어난 말씀이 우리를 통해서 난데없이 기적적으로 말이 나와야 될 그 현장에 말씀 완성이 나와버리는 거에요. 말씀 완성이. ‘다 이루었다’가 나와버려요.


예를 들면 악마가 여러분들한테 와가지고 너 믿음 있나? 네가 믿음 있으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여든 시편 91편 11절 있잖아. 그거 한번 해봐라.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어요? 12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건 말이 아니고 말씀입니다. 말씀은 주님만이 할 수 있어요. 아버지만 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다시 말해서 네가 시험치는 것은 나는 더 이상 해당사항이 없다. 네가 어떤 문제를 내던지간에 내가 네 시험에 응할 어떤 권한도 책임도 필요도 필요치 않다. 이미 끝난 사항이다. 이미 합격했는데 무슨 시험쳐요. 합격했는데.


우리보고 시험치라고 하면 0점 내면 돼요. 믿음 있습니까? 없습니다. 소망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옥 갑니까? 예. 어떤 거라도 마음 편안하게. 편하게. 헌금했습니까? 한 번도 안했습니다. 교회 나온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성경 몇 번 봤습니까? 한 번도 안 봤습니다. 그 뭐 아무 말 잔치죠. 아무 말하면 돼요. 아무 말이나. 애 교육 잘 시킵니까? 자기 맘대로 삽니다. 만화책 보고 있고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엄마의 도리. 저 엄마 아닙니다. 죽은 자입니다. 한 때 엄마였는데 이미 죽었어요.


오늘 이걸 통해서 오늘 누가복음 4장을 통해서 어떤 인간도 지금 악마가 언어를 통해서 말을 통해서 시험문제를 냈을 때 악마가 있는 줄 몰랐는데 악마의 말은 적혀 있잖아요. 그러니까 악마가 있긴 있어요. 악마가 말을 했기 때문에. 이 악마가 한 말에 대해서 예수님 빼놓고 이걸 지킬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악마도 얍삽하게요 시편 한번 봅시다.


시편 91편 12절에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 뒤에도 13절 내가 사자와 독사를 밟아도. 이 이야기는 왜 안 해?! 악마가. 그런데 악마가 여기까지는 이야기할 거에요.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악마가 이걸 말해도 악마고 뭘 해도 악마 아니고. 그러니까 악마가 한 말에 11절 이야기해도 12절 13절 다 악마가 다 포함해서 하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네가 성전 위에서 뛰어내리면 성경에 보면 지켜준다고 했잖아. 한번 보자. 지켜주는지 안 지켜주는지 말만 하지 말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일단은 뛰어내려봐. 일단 한번 보자. 뛰어내리고 진짜 천사가 와서 딱 지켜주는지 한번 보자. 확실한 게 좀 낫지 아니하냐. 과학적으로 확실한 것. 하여튼 그놈의 과학이 문제라.


그럴 땐 이렇게 해야 돼요. 내가 하는 체험은 모든 체험은 내가 죽은 자라는 것을 손가락질 하는 체험밖에 없어. 악마야 네가 하는 것은 너는 살아야한다는 체험이지만 주님의 말씀이 주는 체험은 너는 이미 죽었어. 죽었기 때문에 네 주장과 네 의도는 아무 소용없어. 아무 짝도 실효성 없어. 그쪽으로 결과를 알려주는 그러한 체험. 그게 무슨 체험입니까? 그게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체험이에요. 부인하는 체험이거든요. 부인한다고 울고불고 절에 가서 중들 하는 것처럼 고생하고 자학하고 이게 아니라 그냥 할 것 다 하면서 일상 속에서 매일같이 우리는 자아부인이 되게 하는 거에요. 성령께서 그렇게 하게 하시는 거에요.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 것을 내가 또 체험할려고 하지 마세요. 죽은 놈이 무슨 체험을 해요. 성령께서 왔다가셨는지 올라가시다가 삐져서 안 갔는지 성령 다녀가셨는지 안 다녀가셨는지 내가 체험하고 싶다. 그 체험을 해버리면 결국 우리에게는 뭐가 남느냐 하면은 결국 우리는 기억으로 살아가요. 기억으로. 쓸데없는 기억이에요.


사람은 기억은 사람으로 하여금 혼란케 합니다. 왜 기억이 혼란케 하느냐 하면은 기억은 뭐가 있느냐 하면은 기억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은 역사에서 기억이 나와요. 기억을 한다는 것은 지난날 지난 역사를 못 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죽은 자는 역사를 벗어나거든요. 그런데 기억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내 역사를 쥐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쥐고 있으면 이 기억이 나를 괴롭히고 나로 하여금 주님의 성령의 일을 훼방하는 육적인 일이 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4장 10절 (유골단지) 201020a-이근호 목사.hwp (158.5K), Down: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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