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HOME > 게시판 > 자유게시판
2022-04-30 17:19:34 조회 : 62         
안양20220414b슥11장13절(사라지는 매개자)-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75.212.135.128)
안양20220414b슥11장13절(사라지는 매개자)-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사라지는 매개자로 형성된다. 사라지는 매개자.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에요. 사라지는 매개자 이 말은 분명히 나타나서 깽판 쳤는데 없어져버렸어요. 없어졌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팥죽이 있는데 팥죽을 뒤엎어버리면 팥죽이 쏟아지겠지요. 그런데 젓가락가지고 막이 형성되어있는 팥죽이 있지요. 그걸 가지고 젓가락으로 구멍하나 딱 냈는데 떼고 난 뒤에 보니까 그 팥죽은 구멍이 다 메워지면 무슨 일이 있었어? 하고 아무 일이 없지요. 그게 바로 사라지는 매개자에요. 탁! 치고 빠지면 그 순간은 뭐냐 하면 공백, 빈자리가 마련되는데 이 빈자리가 인간의 권력과 욕망이 그냥 두지 않고 속히 그걸 메워버려요.

권력은 국가적으로 빈자리는 없어요. 메워져요. 인수위원회가 있어가지고 다시 메워지고. 개인적으로 인간의 욕망은 빈자리를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아, 심심한데 뭘 할까? 대번 심심하면 다른 걸로 안 심심하도록 새로운 심심풀이 일을 또 하게 되어있어요. 촌에 있는 사람이 농사짓는 이유는 할 일이 없어서 하는 거예요. 인간은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견딜 수 있는 게 없어요.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제일 답답한 것은 바로 이 빈 것을 달리 채울 게 없어서 그래요. 채울 게 없어서. 그래서 환자복 입고 거리에 나와서 담배 피우고 하잖아요. 아니면 화투 치고. 자기들끼리 화투 치고. 병원에서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러나 인간은 이 빈 공백을 괴로워하니까요.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다가 젓가락가지고 탁치고 들어가지요. 또는 칼가지고 잘라버리지요. 여기 7절에 보면,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막대기 둘을 취해서 은총과 연합인데. 그 은총과 연합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14절에 보면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어버리지요. 10절에 보면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어버리지요. 그걸 아예 칼가지고 쪼개버린다 말이지요.

은총이라는 말은 그동안 참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거예요. 일종의 우리말로 쉽게 하면 ‘귀염+둥이’ 귀염둥이인데. 귀염둥이라고 했던 분이 그 분이 귀염둥이를 두 조각 내어버리는 겁니다. 연락이라는 것은 연합이라는 뜻이 되는데 요건 다른 말로 하면 ‘단짝’이다. 단짝. 남쪽과 북쪽이 죽이 잘 맞았다. 단짝이다. 그 단짝을 하나님께서는 끊어버리는 겁니다. 이것을 10절에서는 모든 언약을 백성들과 세운 모든 언약을 폐기해버린다. 모든 언약을 없애버린다. 계약서를 찢어버리는 거예요. 계약 무효에요. 그러면 계약이 무효 되게 되면 계약 당사자가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어버려요. 하나님이 전에 우리 도와줬는데. 어? 그 분 어디 있지? 그 분 떠났어. 떠났어. 가버렸다는 거예요.

젓가락가지고 톡! 탄탄해 보이는 그 현실에 공백과 균열이 생기게 만들고 찢는 일이 벌어지지요. 그게 9절에 나옵니다.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자연사지요),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기근과 여러 가지 자연 재앙),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살을 먹는다는 것은 전쟁)대로 두리라 하고” 전쟁하는 것과 기근과 그리고 전염병 도는 것. 그리고 역병, 자연사. 이 모든 것이 일반나라가 아니고 이게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9절에 보면 내가 그동안 그것을 생기지 않도록 방지해 왔던 분이 바로 나다, 라는 거예요. 이게 바로 은총이고 연합이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계약서에 의해서 내가 너희에게 많이 봐줬다는 거예요. 이제는 그 계약서를 어떻게 한다? 찢어버리는 거예요. 이걸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거예요. 계약 없는 상태로 되돌아 가버린 겁니다.

그 전에 8절에 보면 세 목자를 없애버렸지요. 자, 그렇다면 방금 이야기했던 이러한 그 폭력과 자른 폐기, 이것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 하잖아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완전히 이 세상에서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고 말소되어버려요. 그런데 이스라엘 속에 이스라엘을 나의 택한 백성이라 그들을 반드시 건지겠다고 계약했던 그 계약 당사자가 이스라엘 속에 들어오게 된다면 하나님 아버지가 내리치시는 계약 폐기와 그 재앙을 친히 담당하시는 분으로 하나님 자신이 속에 들어와 버리는 거예요. 그게 불교하고 다른 점입니다. 불교는 지가 도 닦아야 돼요.

그러나 기독교는 복음은 기독교가 아니고 복음은 말을 조심히 해야 돼요. 기독교가 아니고. 복음은 하나님께서 죄 없는 분을 의도적으로 죄 삼으신 거예요. 인간이 미처 모르는 그 죄. 그 죄로 뭉쳐서 어떤 인물을 내세우는데 그 인물이 그 담당자가 누구냐, 하나님 본인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본인이 하나님 본인을 계약 폐기하고 내리치시는 그 작업에 친히 하나님 자신이 거기에 피해자로 가담하는 방법으로 언약의 영원성을 보증해주는 거예요. 이스라엘 속에 이스라엘. 망해야 될 이스라엘 속에 망하면서 거기서 안 망하는 이스라엘을 완성을 시키고 생산해 내는 이게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지난 부산강의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문제를 일으키는 그 쪽에서 문제해결책이 있는데, 그 문제해결책은 딴 게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죽는 것. 이게 유일한 문제해결책이에요. 내가 죽는 게 문제해결책이 아니고. 내가 고생해서 해결책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죽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뭐냐, 하나님의 그 죽으심에 참여함을 받는 게 하나님의 도우심이에요.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것은 “같이 죽자.” 이게 도우심입니다. “니 나와 함께 죽음에 참여하게 되면 나랑 같이 사는 거야.” 이게 도우심이에요. 이게 은혜에요. 여러분이 죽기 전에 포도주 마시고 전도서의 말씀처럼 신나게 노는 일만 남았지만. 크루즈여행 다니고. 그것도 일종의 죽는 방법이니까. 유럽여행 다니고 그것도 죽는 방법이에요.

다시 말씀드려서 사라지는 매개자, 하나님께서 사라지는 매개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구성합니다. 이게 사라지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따라 붙일 수가 없어요.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 버리면, “가라, 가버려. 가면 뭐 겁나나? 우리끼리 살면 되지.” 이게 속히 그 구멍을 기존에 했던 살아왔던 습관과 방식으로 속히 그걸 메워버립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자,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각오를 하셔야 돼요. 이게 어느 정도 어려운 이야기인지. 어렵기 때문에 미리 정답을 말씀드리겠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에 의해서 얻어맞고 죽는 내용이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은 목자입니다. 목자가 하나님에게 참된 목자가 주님 앞에 이런 수모를 하나님한테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게 언약이 폐기 되었다는 사실을 예수님 자신의 온 몸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너희들이 알던 하나님은 가짜고, 진짜 하나님은 너희들과 계약을 폐기한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당신은 어떻게 아느냐, 내가 바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들이잖아. 아들이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 쪽에서 너희 쪽으로 너희들 인간 쪽으로 그냥 던져 내어줘 버렸어요. 이게 로마서8장에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자기 아들을 내어줄 때 아끼지 않았어요.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이가 어찌 우리를 용서하지 않겠느냐, 아끼지 않고 내어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용서를 성취하신 분이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그 성의가 어떻게 또 다시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 이것도 스가랴 예언입니다. 반드시 예언대로 되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고 스가랴를 다시 보게 되면 스가랴가 해석이 돼요. ‘아,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구나!’

11, 12절 보게 되면,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인간들이지요. 예수님을 팔아먹은 인간들, 달리 이야기해서 인간들의 대표자 중에 대표자. 그걸 산헤드린 공회, 71명이 이 사람들이 의견일치 이스라엘 대표자들이 모여서 내린 결론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들은 그것이 예언인 줄은 모르고 그들은 올바른 자기들의 이성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죽이는 것. 하나님을 죽이는 것까지 이르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직도 우리 죄를 우리 자신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보면 돼요. 우리는 거기에 은연중에 수동적으로나 이미 합세하고 있고 그들의 결정에 우리는 그냥 외면하고 있을 뿐입니다. “뭐 내가 선악과 따먹었나?” 이런 식으로. “나는 주님의 십자가에 나는 가담 안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변명하는데 그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성경 좀 찾아봐야 돼요. 요한복음 19장 15절이요. 인간들의 본심이 나옵니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맞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이게 오늘날 유효하게 적용됩니다. 가이사외에는 우리 왕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실 외에는 우리가 믿을 만 한 게 없습니다. 같은 뜻이에요. 이 현실은 정치적 모습을 띄고 있고 그 정치적 모습에 대표자는 그 당시는 왕이고 지금은 대통령이에요. 이건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우리가 그냥 희미하게 믿는 것이 아니고 가장 확실한 것 중에 가장 확실한 것. 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냥 대통령이 있는 게 아니지요. 대통령이 있음은 저것이 우리의 필요한 진리입니다. 라는 것을 그 내용이 포함되어있는 그러한 이 세상의 구성된 모습이에요. 그 구성의 일원이 우리고. 그래서 이 성경 이야기, 예수님 이야기 이건 뒷전으로 나가는 거예요. 만약에 여기 우리 모임에 윤석열 당선자가 방문했다. 하면 이 성경이야기가 머리에 들어오겠어요? 당선자님 사진 한 번 찍어요. 이럴 거다 말이죠. 수업 중에 사진은 왜 찍습니까. 유일한 현실이. ‘현실을 내가 지금 대통령이 있다는 게 얼마나 나는 자부심과 영광스러운데.’ 이리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들 영광스럽고 대통령과 함께 사진 찍어서 영광스럽고 가문의 영광이고.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평생의 우리의 삶 자체가 그래요. 삶 자체가. 그래서 선지자들이 그렇게 환영을 받지를 못한 겁니다.

요한복음19장15절의 말씀처럼 우리에게는 이미 가이사외에는 왕이 없다는 말은 단단히 구성되어있어요. 권력으로. 권력으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들이 하나님, 하나님하지만 사실은 실제적으로 단단히 더욱 더 확고히 구성되어 있는 것은 정치적인 힘입니다. 실제적인 힘. 최종적인 힘. 인간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힘은 바로 정치적인 힘 외에는 다른 힘은 없습니다. 그게 우리에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출세는 환영을 받고, 성공이라고 대우를 받는 거예요. 그거 말고 우리가 믿을 게 뭐가 있나. 다른 것은 비현실로 간주되는 돼요. 그게 단짝이었고 그것이 그들이 서로 좋다고 귀염둥이처럼 서로 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어서 이 귀염둥이를 잘라버리고 단짝을 잘라버려요. 귀염둥이는 귀염/둥이로 잘라버리고, 단짝은 단과 짝으로 잘라버리고. 이걸 두 조각 내어서 서로가 서로가 아무 무의미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힘이 필요한 거예요. 나를 미워하는.

이 정치적 현실을 유일한 현실로 믿는 그들이 아버지의 일에 하나님의 일에 꼭 필요했던 겁니다. 나를 돈 주고 사라. 돈 주고 사는데 돈값이 나와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요. 얼마입니까?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나를 카운트, 나를 해가지고 얼마면 되겠어? 얼마면 되겠어? 하다가 내린 결론이 뭐냐 하면 은 삼십 개. 이 은 삼심개가 이게 어떤 값이냐를 우리가 봐야 돼요. 출애굽기21장32절에 나옵니다. 출애굽기21장32절에 은 삼십세겔이 어떤 식으로 하나님께서 그걸 집어넣었는지 출애굽기21장32절에 나오는데. 은 시세가 어제부로 은 시세가 한 돈에 한 세겔에 3,500원이에요. 그걸 30냥하니까 105,000원이에요. 반면에 금은 어제부로 시세가 311,000원이고, 여기 30냥 같으면 9,330,000원이고 그래요. 시세3,500원밖에 안돼요. 30냥이니까 합하면 105,000원. 그 값이 어떤 값이냐, 물론 시세가 물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32절에 보면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 이리 되어있어요.

소가 사람을 쳐 죽인 게 아닙니다. 사람을 쳐 죽인 게 아니고 사람을 다치게 한 게 아니고, 남종이나 여종을 다치게 했어요. 남자 노예와 여자 노예를 다치게 한 거예요. 소가. 그러면 이 노예는 사람이 아니무니이다. 이건 하나의 사물체에요. 사물체. 물건이고 주인집의 가재도구에요. 그래서 노예를 다치게 되면 물건 파손 죄에 해당되지, 상해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물건을 다친 거예요. 물건을. 따라서 노예는 있어도 이미 없는 존재에요. 다만 물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노예입니다.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노동하는 기계. 일하는 기계만 되지 사람으로는 아닙니다. 사람일 수는 없어요. 그냥 농민이 아니에요. 그냥 노예라니까요.

소가 물건과 사람이라는 형태를 가진 노예 물건과 충돌했을 때, 나오는 배상요금이 은 삼십세겔이에요. 그러면 이 노예와 보통 인간과 일반적인 인간과 노예를 이렇게 차이나는 것이 출애굽 당시 그 시대의 사회상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느 지점에다가 자기 몸을 거기다가 담느냐 하면 남자 노예 자리에다가 하나님을 자기 자리로 삼고 거기에 투입해요. 개입해버려요.

그게 은 삼십냥이에요. 105,000원이에요. 죽인들 팔아먹은들 105,000원짜리도 안 되는 거예요. 바로 하나님 자신이 사라지는 매개자가 참된 목자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그 폭력있잖아요. 그 폭력 상태에 하나님이 일으킨 그 폭력 상태의 피해자로서 스스로 한 자리, 그것도 하찮은 자리에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시 스가랴로 돌아가 봅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그렇게 한 그 삯을 그 다음에 어디한테 주라? 토기장이한테 주라 이리 되어있지요. 요건 한 번 찾아봐야 돼요. 요건 중요해요. 예레미야18장2절,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토기장이가 토기 만들겠지요. 19장1,2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이렇게 되어있지요.

18장6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19장2절에 보면 토기장이가 토기를 어떻게 합니까? 옹기를 사지요.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드시고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마음대로 재앙의 날에 그걸 깨뜨릴 수 있는 권한이 토기장이에게 있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토기장이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거예요. 그게 깨는 게 어디 있느냐, 19장11절에 나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이 말은 하나님 자신을 토기장이로 삼는 거예요. 역시 사라지는 매개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남자 노예가 되시지요. 또 하나님 스스로 토기장이가 되시지요.

그러면 하나님 스스로 피해자도 되고, 스스로 가해자가 되는데 이러한 현상에서 나타나는 것은 노예로 팔렸다. 또는 토기가 깨어졌다. 그러한 무대의 장소가 토기장이의 밭이 되는 거예요. 토기장이의 밭은 원래 자기 마음에 상품이 없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사정없이 깨고. 그 깨진 토기들이 많이 있을 게 아닙니까. 그 토기장이가 돈에 노예로 팔렸던 그 상해죄로 됐던 그 벌금이 어디를 구입하느냐 하면 토기장이의 밭을 구입하게 돼요. 그 다음에 스가랴에 봅시다. 스가랴11장13절.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거죠.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마태복음27장6~10절 봅시다. 5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유다가 예수님 팔아먹고 얼마를 받았습니까? 30냥 받았지요. 유다는 소속이 어디에요? 예수님 제자 소속이지요. 예수님 쪽에 속한 인물이지요. 예수님과 같이 다녔던 인물이지요. 그 예수님 쪽의 은 삼십냥이 들어왔습니다. 들어왔는데 유다가 은을 성소에 넣었지요. 성소에 던졌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그 성소에 던져 넣은 그 성전에 있는 그 삼십냥이 제사장들이 그 은 돈을 이것은 핏값이라 해서 성전에 넣는 것이 옳지 않다 해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 묘지로 삼았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팔아넘긴 돈의 이동경로를 조사를 해보자 말이지요. 이동경로를 조사를 하면서 거기서 몇 가지의 의미 있는 개념들이 거기에 달라붙습니다. 가룟유다, 가룟유다는 사탄이지요. 그 다음에 성전으로 갔다가 그 다음에 뭡니까? 토기장이. 토기장이는 토기를 깨는 것. 토기를 깨는 그것이 뭐냐 하면 나그네의 묘지가 되지요. 묘지는 뭐냐 하면 인간의 최후의 귀착점이에요. 귀착점은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열왕기하23장10절,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 장소가 뭐냐 하면 이게 그 예루살렘의 성의 옆에 골짜기가 있어요.

가봤습니다. 여기에 예루살렘성이 있는데 옆에 골짜기가 있어요. 기드론 골짜기고 흰놈의 골짜기에요. 흰놈의 골짜기인데 여기가 뭐냐 하면 사람들 공동묘지 되면서 여기서 우상을 섬기는데, 우상이 어떤 종류의 우상이냐 하면 사람을 임신공양하는 사람의 몸을 하늘의 신에게 바치는 그런 앗수르나 몰록 그 당시 주변의 이방나라들이 섬겼던 그 제단이 있었던 곳이 이 흰놈의 골짜기에요. 이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켜버립니다. 이 우상 섬김으로. 다른 신이지요. 다른 신.

그러니까 여기서 나그네의 묘지. 죽은 자의 최초로 귀착점 이건 결국은 뭐냐, 다른 신을 섬김. 이 가룟유다 성전에서 다시 토기장이로 토기가 옮겨지고 나그네의 묘지, 다른 신의 섬김. 이게 뭐냐 하면 예수님이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면서 그 여파로 이 땅에 발생된 여러 가지 새로운 현장들이에요. 주님은 이 땅에 왔다가 사라졌는데 남겨진 것은 은 삼십 개가 이동하면서 인간 세계의 본질과 속성을 콕콕 찔러주는 거예요. 은 삼십 냥이.

사탄이 배후에 관여했고, 이 성전 삼십 냥이나 토기장이의 우상 섬기는 자리, 이 자리 토기장이의 자리거든요. 이것이나 그게 성전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 곳이에요. 성전이 완전히 저주받은 장소다 이 말입니다. 성전이. 가룟유다가 돈을 던진 곳이 성소에다가 던졌거든요. 이것은 안 받습니다. 하고 던진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성전의 율법자들이 피값으로 한 것은 살인하고 받은 이 현상금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안 된다 해가지고 툭 던지니까, 톡 도로 토해놓은 거예요.

애들한테 뭐 먹일 때 맛있다고 먹이면 애들이 그냥 안 먹어요. 보고 톡 뱉어버리지요. 뱉건 어떻든 간에 이미 경유하고 지나갔으니까 전부 다 동질의 같은 성질의 것들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피로 인하여 이 세상이 사탄이 작렬하는 사탄의 힘의 권력이 작렬하는 이런 저주받을 우상에 그 죽음에 집단 공동묘지라는 것이 완전히 밝혀지는 거예요.

그 열왕기하 22장17절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바로 흰놈의 골짜기가 되는 겁니다. 아까 방금 22장17절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23장10절에 보면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이 흰놈이 바로 게헨나, 이걸 지옥이라고 하는 겁니다. 지옥을 표현할 때 이 단어를 함축하면 지옥이 돼요.

사람들이 지옥 가는 그 증거가 예수님께서 사라지는 매개자로 오시면서 사라지면서 이 세상은 지옥으로 정향돼 있다. 방향이 그쪽이다. 라는 것이 들통 나고만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분명히 사람에게 희생되면서도 사실은 폭력적이에요. 인간 전체를 완전히 포괄적으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을 하신 겁니다.

다시 스가랴로 돌아가 봅시다. 스가랴11장14절,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내가 또 연합, 연합 연락이라는 거예요. 단짝. 단짝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꺾는다는 것은 파쇠, 폭력 이런 요소들이 담겨있어요. 꺾는다. 꺾어버린다. 부셔버린다. 끊었으니 유다와 이스라엘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라. 이리 했어요. 이런 일들도 AD70년경에 왔던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의 점령군에 비참하게 이스라엘이 오히려 저들이 먼저 설쳐대가지고 그들이 그만큼 죽일 의사도 없었는데 자진해서 자결하듯이 다 죽어버린 거예요. 이 말씀대로. 그래서 다 죽는 마당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의리가 남아있을 수가 없어요. 다 죽어버렸으니까요. 이게 바로 11장10절에 하는 모든 언약을 폐기하는 겁니다. 모든 언약을 폐기하는 거예요.

다시 마태복음 27장8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잖아요. 묘지라 하는 것은 인간의 최후의 귀착점입니다. 최후의 귀착점이 뭐냐 하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은 그 돈으로 인간들의 묘지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왔다가 다녀감으로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죽였다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의도적으로 시도한 거죠.

9절에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으니, 그러니까 이게 선지자의 말씀을 아까 우리가 번거롭게 자꾸 찾은 이유가 있지요. 우리가 일부러 억지로 맞춘 게 아니라 지금 성령께서 예레미야의 그 말씀은 어쨌든 간에 필히 역사적 현장을 남겨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신기하고도 어마어마하게 어질 어질할 정도로 무서운 이야기에요.

주의 말씀은 실현되지 않고 그냥 취소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이 반드시 꼭 꼭 이렇게 역사라는 바탕을 만들어서라도 말씀을 거기다가 실현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은 거예요. 주님께서. 9절에 보면 선지자의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은 그 가격이 매겨진 자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은 삼십을 가졌고, 토기장이의 피값을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심같이 하였느니라. 그 토기장이의 밭은 토기를 깨는 밭. 토기장이가 토기를 깨어버리거든요. 그 토기장이의 역할은 하나님이 하시고 내 백성은 깨는 것. 언약이 폐기된 것. 그 폐기되어버리면 이 세상은 바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여 버린 그 죄를 그대로 떠안고 그 전체가 사탄의 세계, 저주의 지평이 되는 저주의 세계가 되는 그것을 주님께서 그렇게 목자로서 해 오신 겁니다. 결국은 주님은 빈손으로 계획 없이 일하지 않아요. 다 주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14절 보겠습니다.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연합이라 하는 것은 뭉쳐있다는 게 아니라 서로 친하게 찐하게 지냈다.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가 의리를 끊어버리지요. 자, 그러면 은총도 막대기도 끊어졌고, 연합이라는 막대기도 끊어져버리면 이스라엘은 어디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더는 없습니다. 17절 봅시다.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자, 그럼 오늘 강의를 정리해 봅시다. 그 목자시스템했지요. 목양시스템. 목자와 양을 같이 일으키는 그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가동될 때, 이스라엘에게 이 목자, 양 시스템을 여기다가 주었습니다. 주었을 때 이스라엘이 이걸 떠안게 되지요. 떠안게 되면서 여기서 결국 뭐가 발생되느냐 하면 17절의 말씀처럼 ‘화 있을진저 그 다음에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라는 개념이 여기서 만들어져요.

15절에 봐도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또 어리석은 목자의 기구들을 빼앗을지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목자시스템 안목으로 이것을 평가할 때 이스라엘 전체 지도자를 뭐로 보느냐, ‘못된 목자여’ 라고 이렇게 한 번에 생활기록부에다가 전체를 못된 목자여, 라고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말씀을 잘 들었으니까 목자가 없으면 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양이 없어요. 목자, 양은 같이 등장해요. 둘 다 없어요. 목자도 없고, 양도 없어요. 그럼 처음부터 목자가 없으면 이스라엘은 왜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하게 마련이지요.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있어 줘야 사라지는 매개자가 다녀갔음이 그 취지가 살아나는 거예요. 이 말은 우리에게 주님이 오시는 이유가 우리가 주님을 소유할 수가 없어요.

어제 수요설교 때 생명은 소유하는 게 아니에요. 생명은 걸치는 것이라고 했지요. 생명은 걸치는 것이지 내 소유하는 게 아닙니다. 그 주도권이 생명에 있고 나는 보조로 부. 주가 아니고 부. 부가 되는 겁니다. 보조가. 보조가 될 때 자세. 자세의 마음가짐이 뭐냐 하면 나는 바로 이스라엘처럼 진작에 망해도 상관없다는 그것이 보조자의 마음 자세고, 태도이어야 하는 겁니다.

마태복음10장을 한 번 보겠습니다. 조금만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이걸 빼놓으면 오늘 강의가 다 헛방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셔야 될 말씀인데. 마태복음10장 제가 읽어보고 여러분에게 설명을 한 번 질문형식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10장 5절부터 보면,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방으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도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오늘 강의에 의하면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음을 확인하는 거예요. 없음을 확인해요.

심지어 여기에 동원되는 그 제자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이 말은 어떤 인간도 하나님이 마땅히 나를 구원해주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생각 자체가 이런 것이 성립이 안 된다는 거예요. 양은 목자 마음 안에 들어있어요. 내가 양이니까 손들고 나온다고. 손 내려! 손 내려! 우리는 구원받을 그런 권한도 자격도 애초부터 없는 거예요. 잃어버린 양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다녀가야 비로소 내가 잃어버린 양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요.

“저, 잃어버린 양입니다. 나쁜 짓 많이 했어요.” 이거 잃어버린 양 아니에요. 주님이 다녀가야 돼요. 주님이 잃어버림에 같이 참여된 자만이 진짜 잃어버림을 아는 자에요. 주님이 다녀감으로서 다녀가야 ‘내가 바로 잃어버린 자였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제가 주일낮설교에서 했는데 이게 바로 ‘탕자’에요. 탕자. 큰 아들은 탕자가 아닙니다. 큰 아들은 늘 아버지하고 붙어있었어요. 얼마나 착실하고 얼마나 효자인지. 효자이면 뭐합니까. 지옥가는데. 왜? 잃어버린 경험이 없어요.

그리고 처녀가 잔치를 베푸는 이유는 잃어버린 동전을 되찾아서 그래요. 그리고 그 목자가 아흔아홉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들고, 한 마리 양은 아예 어깨에 들고 춤을 추며 오는 이유가 그 양은 잃어버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인간은 잃어버린 경험을 본인이 해낼 수가 없습니다. 죄는 죄대로 짓는데 잃어버렸다는 경험이 없어요. 그것은 주님이 오셔야 돼요. 주님이 오시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내가 잃어버린 게 이런 걸 잃어버렸구나! 언약의 폐기되는 이것을 가지고 잃어버렸다고 하는구나! 야~ 언약 폐기가 우리 집에 돈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나의 실제 현실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적이 있기 때문에, “잃어버렸느냐?” “예, 잃어버렸습니다.” “언약 폐기되었느냐?” “폐기 되었습니다.”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이제는 이미 주의 말씀대로 성취대로 찾아내었다는 뜻이에요. 스가랴 말씀대로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그 작업을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그 우리 안에서 그 일을 실시해주신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가랴11장으로 이게 또 자개농처럼 자개농에 11장이 떡하니 갖다 붙는 거예요. 우리 안에. 11장을 갖다 붙이는 거예요. 나는 잃어버린 양이었어. 어떤 친구가 있다가 “나는 잃어버린 적이 없어.” “그러니까 너는 저주받는 거야.” 잃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에. 왜? 주님은 누구한테 왔어요?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어요. 가지 마! 가지 마! 잃어버린 것. 따라서 복음을 친구한테 전할 때, “너, 잃어버렸어,” 그 쪽에서 화내면 개, 돼지지요. 그건 들을 가치도 없는데. “니, 잃어버린 거야.” “왜? 왜? 왜 그래?” “내가 왜 잃어버렸어.”

그 다음부터는 솔솔 설명을 해주시는 거예요. 탕자가 아니면 되찾는 기쁨, 주님께서 아들을 되찾는, 아버지가 예수님을 되찾는 그 기쁨의 동일한 기쁨이 우리에게 없으면 그건 구원이 아니야. 폭력적인 목자가 오셔서 이 땅에 양도 없고 목자도 없고 본인만 홀로 사라지는 매개자로 사라져버리지요. 이게 바로 구약이지요.

그럼 신약이 되면 이 스가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30냥에 팔려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스가랴 말씀대로 온 인간세계 자체가 바로 언약이 찢어진 깨져버린 저주 받은 땅인 것을 다 보여주시고 그냥 자기는 홀로 하늘로 승천해버리지요. 그 다음에 누가 오지요? 승천했기 때문에 누가 옵니까? 성령이 오셔서 말씀대로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빼내주시는 그 작업. 이것이 바로 말씀대로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자리 잡은 그 자리가 은 삼십 냥이라는 노예 값으로 자리를 잡으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상처 받은 채 돌아가시고 목숨 잃어버린 그걸로 통해서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주님의 다녀가심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존재라는 사실이 이제는 도리어 우리의 제대로 아는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여 주시고 이 잃어버림을 잃어버림 되게 알려주신 그것이 구원의 신호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안양20220414b슥11장13절(사라지는 매개자)-이 근호 목사.hwp (128.0K), Down:2
게시물9,794건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읽음
10170   서울의존강의20220616a 베드로후서 2장 9절(반박해보… 이하림 22-06-19 52
10169   원주 특강 안내 이성대 22-06-18 113
10168   대구 모임 안내 이근호 22-06-17 68
10167   23강-미가 7장 1-4절(파수꾼)220615-이 근호 목사 오용익 22-06-16 90
10166   20220613b 부산강의 : [시편]49(33:17)-상다리 한윤범 22-06-15 63
10165   20220613a 부산강의 : [시편]49(33:17)-상다리 한윤범 22-06-15 80
10164   서울 강의 안내 이미아 22-06-14 76
10163   안양모임 안내(6. 16. 목) 공은주 22-06-13 67
10162   14강-데살로니가후서 3장 3-5절(쌍둥이언약)220612 - … 오용익 22-06-12 101
10161   3강-예레미야 1장 8~10절(감당 못 할 일)220612 이근… 송민선 22-06-12 68
10160   주일학교 설교 / 예수님을 위한 창조 / 220612 정인순 22-06-12 66
10159   수요설교 보충(미가5장10~15장, 심판하시는 하나님) 공은주 22-06-11 62
10158   안양20220519b슥12장8절(보증자)-이 근호 목사 공은주 22-06-11 54
10157   안양20220519a슥12장8절(보증자)-이 근호 목사 공은주 22-06-11 48
10156   6월 부산 성경공부 안내 이창섭 22-06-11 50
10155   22강-미가 6장 9-16절(예언의 궤적)220608-이 근호 목… 오용익 22-06-09 106
10154   395강-YouTube강의(기회 시편 32:6)20220607-이 근호 … 이하림 22-06-08 81
10153   394강-YouTube강의(예수님의 피부조직 히브리서 1:1)2… 이하림 22-06-08 78
10152   20220603b 울산강의-역대기상(11강) 9장 2절 : 자리배… 한윤범 22-06-06 96
10151   20220603a 울산강의-역대기상(11강) 9장 2절 : 자리배… 한윤범 22-06-06 86
맨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10 다음 맨끝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