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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19:50:28 조회 : 100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a-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21장 24절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라고 되어 있지요.


이 말을 굳이 여기에다가 달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말이죠. 제 이야기가. 지금 여기 24절 25절이 없다고 하게 되면 주님께서 어떤 점에서 누락이 되는지를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이 말씀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이 빠졌다고 칩시다. 그럼 뭐가 손해에요? 뭐가 아쉬운게 있습니까? 이 말씀 기록하지 아니하면.


줄곧 예수님이 이야기했잖아요. 여기 24절 25절은 예수님 이야기 아니고 사도 요한 자기 이야기죠. 빼도 될 것 같은데. 이것을 뺐을 때 복음을 이해하면서 무엇이 그렇게 손실이 주어지는지를 생각을 해봐야 돼요. 평소에 성경 보실 때 이런 방법으로 보면 됩니다.


자, 이 본문이 빠졌다고 치고 나에게 무엇이 유익이 아니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모르게 되는거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말을 어렵게 했는데 그럼 쉽게 가겠습니다. 제가 글을 쓸테니까요 이 둘 사이에 차이점을 한번 보세요. 참 이 차이점이 오늘 강의에 결정적입니다.


나는 편안히 살고 싶다. 이 문장하고 나는 편안히 살고 있다. 차이점이 뭡니까? 여러분 1번입니까? 2번입니까? 어느 쪽이에요? 2번 되려고 노력하지 마시고요 2번 이게 정답인데 이걸 세자로 뭐냐? ‘결과물’. 기존의 모든 신앙은 다 엉터리입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결과물로 보지를 않아요. ‘지금 내가 조심하고 행위에 조심하고 뭔가 지킬거 지키면 뭔가 얻겠지? 뭐를 얻는가? 나는 편안히 살겠지’ 하는 것은 이것은 엉터리입니다. 그것 때문에 요한복음 제일 마지막에 사도 요한이 들어가있는 거에요.


왜 우리는 한번도 결과물이라고 생각을 안 합니까? 지금껏 살아온 것이 내 노력으로 내 노력의 결과라면 여러분 앞으로 장담 못합니다. 치매 걸리면 어떻게 할 건데요? 치매 걸리면. 한 5년 믿다가 나 안 믿을래 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주님의 결과물이거든요.


사도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나보다 먼저 존재하는게 있다는 거에요. 그게 뭐냐? 주의 말씀을 그 다음에 증거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사람이 나부터가 출발점이 아니라 나로 나 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데 그 무엇은 인간이 수립하거나 정리할 수가 없다. 왜? 어떤 인간의 글도 나보다 먼저 있는 것을 다 담아낼 수가 없기 때문에. 다 담아낼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합시다. 다시 합니다. 자, 나는 평안히 살고 싶다. 모든 인간의 희망사항이죠. 제발 좀 건드리지 마라. 편안히 살고 싶다. 주님도 나를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나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이거하고 나는 지금 편안히 살고 있어. 이거하고. 정말 나는 편안히 살고 있다 이거 미친거 아니야? 이거는 배짱이 배짱도 이런 배짱이 어디 있어요. 이런 배짱이. 어디 봐서 편안히 살고 있어요? 사는 꼬라지하고는. 어디가 편해요?


하지만 성경은 뭐냐 하면 결과물 2번이 맞다는 거에요. 이게 성도라는 겁니다. 왜? 결과물이니까. 성도는 편안하냐가 아니라 편안한 그 자체가 누구누구의 결과물로 나는 존재한다는 겁니다. 누구누구의 결과물로. 그러면 사도 요한같이 나는 뭘 지켰다 뭘 믿었다가 아니라 내가 지키고 믿고 그것도 할 그럴 필요도 없고 나를 나되게 하는 어떤 다른 어떤 분이 많은걸 남겼는데 그 남겼다는 사실을 내가 증거하기 위해서 나는 이 지점에 와 있습니다 라고 하는 거에요.


오늘 요한복음 마지막 날이거든요. 요한복음 1장부터 다 할 거에요. 다 할 거에요. 지겨울텐데? 전혀 지겹지 않습니다. 중간에 인물 하나 들어가기 때문에 전혀 지겹지 않아요. 그러면 결과물로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해야되느냐 하면 그 다음에 요한복음에 사도들이 하는 것은 뭐냐? 삭제입니다. 삭제. 계속해서 내 믿음이 삭제당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내 믿음이 있어버리면 내 믿음에 준한 새로운 결과물을 내가 잡고 끄집어내는 버릇이 있어요.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사도란 사도 요한, 사도란 역사와 전통을 원천적으로 삭제하는 자. 사도는. 사도가 전한 것은 예수님의 복음이잖아요. 요한복음이잖아요. 복음은 뭐를 삭제한다? 역사와 전통. 나의 스토리.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를 나는 이렇게 행동합니다를 삭제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삭제 안하면 내가 나의 결과물이 되고 나는 뭔가 노려야 되죠. 편안하게 살고 싶다 되고 그게 없고 “나는 이미 편안해. 왜? 이게 내 솜씨가 아니고 주의 솜씨이기 때문에 그러해” 하려면 그걸 방해하는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 이렇게 수모를 당했다는 것. 처참하게 인간 망가졌다는 거에요. 그거 왜 당하느냐? 삭제하라고 당하는 거에요. 삭제하라고.


주님의 결과물을 자꾸 내가 고생한 덕분으로 여기는 그것을 아예 삭제를 시켜줘야 되는 겁니다. 그럼 역사와 전통이 삭제되려면 뭐부터 삭제되야 하느냐 하면은 내 믿음도 삭제. 내 믿음도 삭제한다는 말이 상당히 어려운 말이죠. 목사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물으시면 우리는 믿지 않아도 벌써 믿고 있는게 있어요. 우리가 놓치기 싫은게 있어요. 나는 꼭 이거 꼭 쥐고 살고 싶어 라는게 있어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믿는 것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부모를 믿죠. 그것도 믿는 거잖아요. 믿음 없는 순간은 한순간도 없어요. 전부 다 삭제 대상인데. 삭제 대상인데 우리는 그것 없으면 안 된다고 죽자 살자 내 행함 내가 살아온 것 꽉 쥐고 있어요. 내 결과물이 아닌데 내가 행동 똑바로 했기 때문에 이런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게 삭제될 건데 믿습니다 함으로서 어떤 새로운 괜찮은 결과물이 주어질 걸로 생각하는 그것, 그거 삭제 당해야죠. 그 삭제해야죠.


그럼 여러분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 머리 좋은 사람은 아실 거에요. 12제자가 예수님께 붙어있는 이유가 뭡니까? 처음부터 요한복음 처음부터 붙어있으니까 이유가 뭡니까? 그들은 뭐한다? 무슨 대상이다? 삭제 대상이다. 삭제 대상이에요. 삭제 대상. 제자는 있는데 뭐는 없다? 사도는 없는 거에요.


사도는 역사와 그걸 결과물로 됐을 때에 사도지요. 앞에는 사도가 아니고 뭡니까? 12제자지요. 그 제자 속에 누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가룟 유다. 하나가 잘못했는데 11명이 다 도망갔잖아요. 결국 이 말은 뭡니까? 11명이나 배신한 가룟 유다나 똑같은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튀어나오는 거에요. 도망가거라. 도망갈 수밖에 없어요. 도망갈 때 뭐도 도망가겠어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할 때 베드로에게 뭐가 있었습니까? 믿음이 있었던거에요. 믿음이 없어서 도망간게 아니고 잘 들으셔야돼요. 믿음이 있어서 도망간겁니다. 자, 이 믿음은 뭐냐? 내가 평소에 내가 나는 내 처신에 의해서 나는 살아야 되겠다는 믿음. 나는 내 행동에 의해서 더 버틸대로 버텨보겠다는 그 믿음. 이런 믿음이 베드로는 그냥 믿습니다!! 믿기 때문에 소나기 올 때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도망친 거죠.


그러면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가 만난 것은 뭐냐 하면 베드로의 상처가 되죠. 상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배신을 당하도록 하고 닭 울었잖아요. 닭 울고 배신당하게 해놓고 다시 찾아감으로 말미암아 네 마음에 남아있는 상처는 그거는 상처를 가져야 이게 치료가 돼요. 상처를 감춘다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상처를 덧나게 해야 돼요. 참 희한한 의사다 희한한 의사.


"아이고 고름 났어요?" "예." "짜드릴게요." 이게 아니고 "고름 났어요?" 내 고름 갖다가 붙여버립니다. "그것도 상처냐? 그것도 지금 상처라고 찔찔 짜느냐? 이게 나를 몰라도 너무 몰라. 그것도 고민거리냐? 그것도. 네가 왜 건방 떨어? 왜 고민하느냐? 네가. 네가 지금 뭐 될라고 너 도대체 뭐 될래?" "아 나 잘나고 싶습니다." 지옥에나 가라 거기 잘난 사람들 다 모여 있어요.


천국은 상처 받은 사람만 가는 거에요. 상처 받고 그 상처에 대해서 자기 상처 위에 누구의 상처가 덧입혀서? 예수님의 상처가 덧입은 사람이 천국 가는 겁니다. 아주 상처난 곳에 상처를 더 후벼 파버렸어. 상처가 나게 되면요 나는 조그마한데 상처 났어요 하잖아요. "주님 주여 해.주.세.요" 하면 아이구 그래요? 갑자기 주님께서 칼 들고 나와가지고 구멍이 요만한 구멍을 크게 도려내가지고 자! 네 속에서 전에는 내가 다른 건 멀쩡한데 요게 상처다라고 하는 그런 인간에게 자 너 중에서 상처 아닌 것 찾아봐라. 없지요?! 전부가 상처에요.


너 때문에 내가 그런 상처를 받았어. 나는 전부가 너로 인한 상처야. 너는 상처받은 나를 왜 네가 도망쳤느냐. 내 상처가 유일한 영생인데 베드로는 자기 배신이 부끄러워서 도망친거에요. 조그마한 상처 있다고 도망하면 그것이 무마되는줄 알았어요. 그게 아닌데.


상처난게 더 넓혀져야 되고 더 덧나야 되고 더 찢어져야 되고 그 구멍이 더 커져야 돼요. 아 그것만 아니면 괜찮은 인간인데. 그러지 마세요. 쫙쫙 더 찢어져야 돼. 그게 바로 너 증인 아니고 예수님의 우리는 상처난 예수님의 상처의 증인입니다.


오늘 제목을 나중에 잊어버리니까 여러분이 이야기해주세요. 제목을 뭐라고 한다고요? 상처의 증인. ‘상처의 증인’.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존재입니다. 주여." "그래 걱정하지마 내 상처가 네 상처보다 더 커. 네가 나만큼 수모 당한건 아니잖아. 나만큼은 아니잖아. 찡찡 대지마. 찡찡 대지마. 나만큼은 아니거든." 뭐 세월호에 아이 빠지고. 그러지마. 나만큼은 아니잖아.


이제 슬슬 요한복음 1장부터 21장까지 관통할 준비 되었지요? 벌써 해답은 나왔지요? 상처로부터 상처로 쭉 가버린거에요. 그런데 아직 멀었어요. 끝가지 가려면 멀었어요. 그 다음에 이런거 한번 생각해봅시다.


나의 가치가 중요하냐 말씀의 가치가 중요하냐. 항상 제가 비교로 이야기하는 것은 비교를 해봐야 그 사이의 차이점이 진리로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만 하면 믿습니다하고 덤벼 들어서 이게 말이 안돼요. 개코도 몰라도 좋아 보이면 믿습니다 하는데 차이를 두는 거에요.


차이를 두게 되면 그 차이를 네가 네 마음속에 그 차이성을 받아들이느냐 그거거든요. 나의 가치가 중요합니까 말씀의 가치가 중요합니까? 이건 뭐 여러분들에게 묻는 제가 나쁘지요. 당연히 이거는 말씀의 가치가 더 중요하죠.


그렇다면 이 비교를 제가 한 게 아니고 주님이 해요. 주님이 한 이유가 말씀의 가치는 나의 가치를 아까 삭제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 말씀의 가치입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가 여기 있어요.


제발 나 좀 지옥으로 좀.. 지워주면 안돼요? 이거에요. 내가 있음에 주님의 골치거리거든. 자꾸 주님에게 얼쩡거리기 때문에 조금만 아파도 아프다고 징징 거리고 말씀의 가치를 위해서 나의 가치를 좀 제거하면 안됩니까? 그게 뭐냐 하면 사실은 요한복음의 줄거리에요.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제거하기.


뭘 제거한다? 말씀의 가치를 위해서 나의 가치를 제거하는 거에요. 이 비슷한 내용을 제가 저 먼 남해 여수에 가서 강의했었습니다. 생전 처음 마술도 아닌 것을 마술을 했어요. 생전처음이에요. 나 두 번 다시 할 생각 없어요. 어설프기 짝이 없어요.


카드 패를 두개 해놓고 두장인 경우에 앞에 패가 없애 줄때 뒤 패가 나오는데 뒤에 주님이 안계시면 앞에 패가 날라가는 것을 극단적으로 달려듭니다. 왜 자꾸 우리 보고 죄인이라고 하느냐. 뒤가 없어. 아무것도 없어. 뒤가 없기 때문에 앞에 것만 붙들고 있어야 돼. 교회 몇년 나왔습니다. 권사입니다. 장로입니다. 목사입니다. 신학했습니다.


자꾸 앞을 붙드는 이유는 행여나 이거 지워버릴 때 뒤에 구명조끼가 없을까 싶어서. 그야말로 진짜 주님이 계시면 알아서 앞에 것이 지워지거든요. 그런데 뒤에 아무도 없으니까 붙들어도 이것만 붙들어야 돼요. 나는 기도도 오래하고 헌금도 얼마하고 교회 봉사하고 이것 붙들어요.


심지어 그렇게 붙든사람의 특징이 뭐냐하면 내가 기도해서 병이 낫고 기도해서 전도했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데 내가 기도해서 전도해서 내가 효과봤다는 것은 무엇이 빠져있느냐 하면 자기 부정이 빠져있어요. 십자가 빠져있어요. 십자가가.


아까 동영상 할 때 했지요. 자기 부인이 나오지 아니하면 자기 부정이 나오지 아니하면 그거는 안에 성령이 없는 사람이라고. 진짜 아닙니다. 결국 우회로 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기 인생은 자기 결과물이지 주님의 결과물이 아니에요.


다시 할게요. 우리는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결과물이라는 것은 너 어느 결과물? 나보다 먼저 말씀이 책에 기록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말씀에 의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살아가는데? 나는 편하게 살고 싶다가 아니라 결과물이니까 나는 이대로 편하게 살고 있어. 이대로. 주님 보시기에 최고에요! 최상이다. 가장 적합하게 살고 있어요.


그럴 때 나는 내 증인이 아니고 이거는 주님이 하셨잖아요. 제 솜씨 아니거든요 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죠. 그게 제자가 아니고 제자가 배신당하고 난 뒤에 생긴 누구라고요? 제자가 아니고 뭐다? 사도가 되는 겁니다. 제자는 목격자가 아니에요. 사도는 목격자입니다.


여기 나오거든요. 이 일들을 기록하고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있었으니 여기에 기록한 제자 증인이라는 뜻이 목격이라는 뜻 목격자라는 뜻이거든요. 이게 목격자, 증인이라는 것은 그 목격할 때 뭐를 목격했습니까?


내가 내 믿음 가지고 우기는 그것이 나로 하여금 주님 앞에 도망치게 했다는 그 사실도 내가 증거하는 것. 내 믿음이 나를 지옥 보낸다. 이 믿음 그대로 갖고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믿음 없어도 되는데 없어도 주님의 결과물이 되는데 믿음 없어야 내 믿음 가지고 내가 어떤 결과를 가져야 구원된다고 여겼던 이 미신, 그 악마 그게 뭐냐?


결국은 어떻게 핑계를 대고 주님 주님 영광 하지만 그건 누구의 가치입니까? 나의 가치입니다. 요한복음을 관통하는 핵심은 나의 가치를 지워버리는 거에요. 삭제해 버리는 겁니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자, 이제 요한복음 1장부터 총 정리할 마음 준비 되셨습니까? 아니요. 그래도 안돼요. 혼자 지가 했다 혼자 철회하고 그렇게 하는데 그 아까 상처의 증인. 상처의 증인. 베드로 같은 경우는 인간의 대표한 증거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요한복음 1장부터 죽 복습하면서 들어갑시다.


아니요.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적어드리겠어요. 안중근의 상처. 안중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죠? 1909년 10월 26일인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총으로 오른쪽 가슴에다가 3발 쐈어요. 3발 쏴서 3발 명중했는지 2발 명중했는지 1발 명중했는지 모르겠는데 죽였던 사람.


자, 안중근씨가 여기 앉아있다고 봅시다. 안중근씨가 앉아있다고 보면 10월 26일날 건사를 했는데 오늘 10월 23일인데 3일 남았는데 여기 앉아있다고 봅시다. 복음 듣는다고 칩시다. 천주교 신자니까. 안중근의 호가 뭐냐 하면은 토마스에요. 도마에요. 세례받은 것. 엄마가 천주교 신자거든요. 앉아있다고 칩시다.


그럼 그 앉아있는 안중근 그 사람한테 안중근의 상처에 대해 강의를 한다고 칩시다. 그럼 안중근 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역시 저 목사님 참 훌륭하다. 내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이런 상처가 있는 줄 알고 말씀으로 위로해 주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이제 착각을 할 게 아니겠어요.


제가 이야기하는 안중근의 상처 이거는 뭐냐 하면 저는 정신병. 정신병. 안중근이 정신병이라면 안중근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은 그 정신병 유사 정신병자 그 정신병에 동조하는 사람. 민족의 영웅 아닙니까. 안중근하고 같은 안중근이 기독교 신자인지 천주교 신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중근하고 같이 맹세를 했던 사람이 12명이에요. 꼭 12제자 같애.


12명이 손가락을 끊어버립니다. 손가락을 끊는 그 행위 단지. 피가 나오겠지요? 피로 쓴 그림과 글씨가 뭐냐? 태극기 그려놓고 거기에다가 대한독립. 그 피 묻은 손을 가지고 탁! 피 묻은 손가락으로 탁 찍고 거기에다가 쓴 글씨가 대 한국인. 그걸 복사해서 차 뒤에다가 자가용 뒤에다가 붙여놓은 거 안 보셨어요 여러분? 봤지요? 남자는 한번 태어났으면 이래야 돼. 그냥 한국인 아니고 대 한국인.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정신병자다. 그 이야기를 요한복음 이렇게 이야기하기 전에 왜 하느냐? 요한복음을 백날 강의하고 들어도 결국은 우리는 이미 뭐냐 하면 안중근 부류에 지나지 않아요. 안중근 부류. 정신병자의 같은 부류가 되는 거에요. 나부랭이다 안중근 나부랭이. 나부랭이 아니라고요? 그럼 안중근 욕해보지요? 욕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없지요?


자기 몸 하나 희생해서 나라 살리겠다는데 그게 뭐가 나쁘냐 이렇게 나오지요. 로마서 5장에 보면 악인을 위해서 죽는 의인도 있다 이런 얘기 있는데 희생해서 그 희생정신이 우리가 본받아야 될게 아니냐 그 사람이 불교신자도 아니고 천주교 신자라면 자기 엄마한테 편지하는데 우선 천주께 영광부터 시작해가지고 편지 쓰거든요. 그러면 정상 중의 정상이고 한데 그게 어떻게 정신병이냐 라고 하겠지요?


그러니까 안중근하는 것을 생각해서 문제점을 모른다는 그것이 그런 사람들에게 안중근 뿐만 아니고 안중근에 대해서 나쁘게 보지 않고 좋게 보는 그런 사람들에게 요한복음 관통이라고 관통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 이 말이죠. 그게. 또 하나의 소영지주의로 빠진단 말이죠. 나도 요한복음 안다 이런 식으로. 뻔한데요.


분명히 우리의 가치는 말씀의 가치보다 우선할 수가 없어요. 어느게 더 중요합니까? 말씀의 가치가 더 중요하거든요. 나 자신의 가치보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걸 가만둡니까? 그걸 지워버립니까? 지워버리겠다는데 이 안중근같은 자세가 뭐냐 하면 이 고귀함을 왜 지워? 이 귀한 것을 왜 지워? 이 의로움을 왜 지우냐 이 말이죠. 나도 이런 결심을 하는데 얼마나 힘든데 하거든요.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베드로가 위대합니까? 안중근이 위대 합니까? 베드로나 안중근이나 마찬가지죠. 거기서 거기 그런 같은 부류지요. 내가 주를 위해서 목숨 바치겠나이다. 나오잖아요. 요한복음 13장 끝부분에 나오잖아요.


그럼 여러분 아는 이야기해볼게요. 모세가 나라 독립하겠다고 애굽 사람 압제하는 애굽 사람을 쳐죽였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셨습니까? 안 그러면 쓸데없는 짓 했다. 어느 쪽이에요? 쓸데없는 짓 한거에요. 그게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다운 태도가 아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자기는 히브리인이기에 그때 반대 되는게 뭐냐?


히브리인과 애굽인, 애굽인과 히브리인 둘 중에 하나는 맞을게 아니냐 하는데 성경은 둘 다 안 맞다는 거에요. 둘 다. 둘 다 맞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이 없으니까. 그럼 목사님 이야기하고자 하는게 뭡니까? 그럼 제가 안중근 이야기 할 거에요. 이야기 하는게 뭐냐 하면 믿음은 없는데서 나옵니다. 믿음은.


믿음은 없는데서 나와요. 믿을 사람 있고 믿을 사람이 믿음이 없는데 주께서 믿음 주신다는 그런 이야기입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고 일부러 비비 꼬는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믿을 사람조차 내가 믿지를 못하는 거에요. 내가 나를 못 믿을 정도로 믿음이 생긴다니까요. 내가 미쳤지 미쳤지.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믿음이 있잖아요. 내가 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그 안중근 있잖아요. 작은 안중근. 우리는 안중근이거든요. 자랑스러운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안중근이란 말이죠 우리가. 토마스에요. 토마스 안중근이에요 우리는.


그런데 그런 나도 못 믿을 정도의 내가 되어 버릴 때 우리는 나를 결과물로 여길 수밖에 없어요. 왜? 내가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내가 이런 인간될지 미처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그러면 나는 내 믿음과 더불어 나는 자폭해야 돼요. 내 믿음이 없는 거에요. 없는데 없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새로이 나타난 겁니다.


그러면 뭐냐? 어떤 설명이 되느냐? 믿음이 있으면 믿을 사람도 새로 만든다 이렇게 되야지요. 베드로인데 그 베드로 말고 다른 베드로. 제자 말고 사도. 남들 보기에는 그 인간이 그 인간이고 똑같은 인간인데 제가 말고 사도.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이거 말고 주님 하신 일에 목격자 되겠습니다 하는 사도.


내가 타락 안했기 때문에 구원했다 말고 나의 모든 이야기가 삭제당한 그런 사도. 오직 주의 말씀이 말씀으로 된 결과일 뿐이지 거기에서 내가 한다리 걸쳐서 내가 한몫했다는 그것조차 내가 스스로 인정할 줄 모르는 이상한 나. 다시 말해서 쉽게 말하면 믿음 없는 나. 믿음 없는 나. 제가 글을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목이 ‘장부가’.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꼬. 동풍이 점점 차짐이여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분하다 한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 도적 이등이여 어찌 목숨을 즐겨 이을꼬. 어찌 이에 이르렀단 말이오 사세가 고연하도다.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세여 대한 동포로다.


이걸 장부가라고 하는데 누가 지었는가 하면 바로 안중근이 지었어요. 안중근 그 사람이 지었어요. 평안도 부잣집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나가지고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지요. 그 사람이 어릴때 자기가 세가지 제일 잘했는데 하나는 뭐냐하면 술먹는 거하고 춤추는 것 그다음에 활쏘기하는 것. 노래하는 것 달리기도 잘하고.


그런 식으로 자기가 살아왔는데 나라가 위태롭다는 소리를 듣고 1905년에 을사조약 맺고 내가 이제는 장부가 기껏 내 즐거움이나 노닥거리면 되겠느냐. 그럼 장부가 해야 될 것은 뭐냐? 이 쓰러져 없어져가는 국가를 위해서 내 한 몸 바치리라. 이게 미친 짓 아니에요? 미친 짓이거든요. 이미 그 사람 속에 뭐가 생겼어요? 상처가 생겼지요.


왜 일본을 위해서 몸 바치지 않고 왜 대한독립을 위해서 대한조선을 위해서 몸 바칠까요? 자기 어디 소속이기 때문에. 자기 대한민국 소속 그때는 대한민국 없었으니까 조선 소속이죠. 조선이 일본한테 나라가 팔아먹었다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럼 이미 조선의 상처는 누구 상처다? 곧 나의 상처가 되지요.


나라 없는 것이 내 상처가 되는 근거는 어디 있습니까? 근거는 없어요. 근거는 없어요. 그럼 뭐냐 하면 안중근에게 국가라고 하는 것은 상상의 자기 현실. 상상의 세계, 상상의 세계에요. 국가라는 것과 나의 운명을 일치화시킨다는 것은 안중근의 자기 존재의 범주를 일방적으로 넓힌 거에요. 일방적으로.


야구를 좋아한다? 동네야구 하란 말이죠. 그런데 갑자기 류현진 응원한다? 갑자기 뭡니까? 자기 범주를 넓힌거에요. 류현진 공 잘 던지라고. 축구하면 자기 동네에서 축구하란 말이죠. 그런데 손흥민이 두 골 넣었다 좋아한단 이 말이죠. 손흥민하고 같은 손씨 집안도 아닌데 왜 그리 좋아해요? 왜? 손흥민 이야기가 곧 누구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다.


손흥민이가 그동안 8게임을 못 넣었다. 그러면 손흥민의 상처가 누구 상처 되요? 내 상처가 되는 거에요. 방탄 소년단 애 하나가 교통사고가 났다. 전 세계의 16억 소녀가 울고 난리도 아닐 거에요. 안 다쳤으니까 천만다행인데. 왜? 그가 나고 내가 그니까. 이거 미친 거 아니에요? 왜 인간은 자기의 범주를 넓힙니까? 넓혀야 안심이 되거든요. 넓혀야 안심이 되거든.


그래서 여기서 제가 일방적으로 적었습니다만은 정신병의 3종 세트. 정신병의 3종 세트. 첫번째 상처, 두번째 불안, 세번째 복수. 치토스 먹고 말거야. 복수. 상처, 상처받았다. 왜 받는데? 상처 왜 받아요? 자신이 결과물이 아니라고 본거에요. 나는 내 인생이 따로 있다고 보는 겁니다.


참 악마가 교묘하지요. 악마가 인간을 이렇게 만든 겁니다. 악마가 이렇게 만든 거에요. 상처 생기니까 자기가 불안불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누구한테 탓을 돌립니까? 멀쩡한 가만히 있는 또 이렇게 말하면 또 좌파 우파인가 해서. 가만있는 일본 이토 히로부미 그거 모르는 사이에요.


안중근과 함께 당일에 있던 세 사람 있었는데 총 네 사람 갔어요.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이 세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가 어느 역에 내릴지 몰라 가지고 하얼빈 역 바로 앞에 채가구 역에 한 사람 가 있고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 가 있는데 아침 9시에 거기는 러시아 땅이기 때문에 러시아 군인들이 이제 지키고 있었어요. 경호하고 있었는데 안중근이 뭘 잘한다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 사람보다 총 잘 쏘는 사람 없다고 어릴 때부터 이미 소문났어요. 딱하면 딱이야. 다 맞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래서 총 쏘고 난 뒤에 외친게 있어요. '코레아 우라' 하여튼 대한독립 만세 대한 만세 외치고 스스로 잡혔습니다. 그전에 안중근이가 국채보상운동 을사 1905년 이전에 그 이전에 국채보상운동 해가지고 일본한테 빚진 거 갚아주자 해가지고 거기에 모든 하청민들 기생과 백정들까지 다 참석하고 금가락지 빼서 갚고 했는데 그게 실패로 끝났어요.


안중근도 그거 하다가 그 많은 최고의 부자가 평안도 재산 받아서 다 냈거든요. 다 낸 뒤에 의병항정 독립운동에 해외왕래했는데 블라디보스톡에 가가지고 의병투쟁하는데 의병투쟁하다가 그가 큰 실수를 했어요.


무슨 실수를 했느냐 하면 일본군을 체포해놓고 자기가 세계와 동일한 국가의 법을 스스로 정의로우니까 정의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포로를 죽이지 말고 풀어주라고 하는 만국의 어떤 법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그 일본군을 풀어줬더니만 그게 미치고 발광된 풀어준 그 사람이 꼰질러 가지고 다 죽여버렸어. 자기 빼놓고 다 죽였어.


참 순진하지요? 정의롭게 하는 수단이 정의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아주 순진하고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 거에요. 정신병자니까 뭘 못하겠어요. 그 의병 항쟁하면서 하는 결의서가 뭐냐 하면 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한번해서 안되면 두번하고 두번해서 안되면 세번하고 세번해서 안되면 열번하고 열번해서 안되면 백번하고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고 내년에 못하면 후년에 하고 기어이 독립을 이루고자 말리라. 알겠습니까! 선창하고 네! 이랬어요.


제가 이 이야기하면요 자꾸 듣는 사람들이 그게 뭐 정신병이고 그게 뭐 이상하냐? 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같은 정신병이에요. 본인이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본인이. 너나 잘하세요. 나라 걱정을 왜 하는 겁니까? 제가 묻고 싶어요. 자기 공이나 차란 말이죠. 손흥민 왜 그렇게 좋아하는데요. 좋은걸 어떡해. 왜 좋은데요? 몰라. 결국은 몰라. 결국은 몰라.


상처 안 받으려고 해요. 상처 안 받으려고. 상처를 무마하려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상처의 상처인지도 몰라 인간은. 모르는데 뭔가 국가 단위에서 찾아나설 때 내 국가가 일본이 독도 우리 땅이라고 할 때 괜히 내가 상처가 돼. 나 정신병자지.


그러면 목사님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보세요. 이토 히로부미 그쪽 생각을 해야 돼요. 그쪽에 아들이 있었어요. 아들이 아버지를 목숨을 잃은 거에요. 그래서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안중근 아들이 누구한테 사과했다고요? 아들한테 미국 가서 사과한 거에요. 우리 아버지가 철딱서니 없어가지고 당신 아버지 돌아가게 해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에 허무함이냐 하면 명분의 허무함. 명분의 허무함. 교회 다닌 사람들의 명분이 누굽니까? 뭘 위하여? 교회 다닌 사람은 주를 위하여. 이게 명분이에요. 주님 좋으라고 이러겠어요? 누구 좋으라고? 나의 범주를 확대시킨거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내 믿음을 주의 믿음이라고 간주해주세요 라고 하는 거에요. 믿음이 없으면 되는데 나는 상처받은 그냥 걸레라고 보면 되는데 자꾸 그 상처를 내 믿음 소망 사랑으로 말씀 성경 공부로 이걸 자꾸 그 틈을 메우려고 하는 거에요. 그 메워서 뭐 할건데요? 메우면 내가 멀쩡해지니까. 이게 나는 정신병이라고 보는 거에요 이게.


정상이 아니면서도 무슨 흉내낸다? 마치 정상인 사람처럼.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아무도 없지요. 아무도 없으니까 주님께서는 그들의 상처에 의해서 복수당하고 보복당하고 도망친 그 상처를 이제는 네 상처 말고 주님의 상처로 덮어버리면 그게 치료가 되는 거에요.


내가 가해자가 찔렀던 창은 그 창자국이 내가 한 행위를 용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용서는 같은 질로 통해야 용서가 되지 같은 질이 아니면 용서가 빗나가게 되어있어요. 용서가 빗나간다고 용서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사업이 파산 났다면서요." "그래.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사업 잘못해서 파산 났다." "아버지 사실은 파산한 거 내 잘못이에요." "왜?" "제가 저번에 수학 100점을 못 맞고 90점 맞았어요. 저 때문에 아버지 파산 났지요."


아버지가 "야야 네 죄와 이쪽 용서가 핀트가 안 맞다." 이거 안 맞잖아요. 주님의 십자가는요 우리의 원초적이에요 원초적. 내가 어느 정도로 기어이 이야기한다면 명분 찾기에요. 이 명분 찾기 때문에 죽었는데 우리는 주의 말씀 어겼다고 그것 때문에 저 때문에 돌아가셨죠 이러고 있다고요. 누가? 한국교회 전체가 다.


"네가 뭐라고 너 때문에 내가 죽어. 네가 뭐라고." "주님 이거는 잘했잖아요. 그런데 이거는 잘못했기 때문에 잘못한 부분 때문에 주께서 돌아가셨잖아요." 이러고 있다고요. 주님이 어디 구두수선공입니까? 다른 데는 멀쩡한데 이 뒤축 갈아주세요. 이러면 뒤축 갈아줍니까? 그 부분만? 그래요? 아니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나의 명분, 내가 잘되기 위한 안중근처럼. 나라 잘되면 누가 잘된다? 덩달아? 내가 잘되지요? 그런 명분으로 만들어진 그 상상 허상, 그 허상을 삭제하기 위해서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거에요. 우리가 상상하는 그 무엇, 그 무엇이 다 거짓된 거거든요. 그게 제자들이였고. 예수님 덕분에 내가 잘되자. 그게 제자들이 했던 짓 아닙니까. 결국 그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기들이 도망치게 만들었잖아요.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눈만 뜨면 상상해요. 명분을 만들어 낸다고. 그 명분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의 상처를 억지, 억지 부린다 하지요. 무조건 억지는 악령입니다. 억지 부려서 주여 뭐 이정도 착한일 했잖아요 자꾸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밀지 마세요. 주님 짜증냅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죽은게 아닌데. 자꾸 자기 공부 못하는 거하고 주님 십자가하고 자꾸 연결시키지 마세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제가 질문할께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은 본인의 의지입니가? 사탄의 의지입니까? 요한복음에서.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니고 분명히 나오지요? 누구 의지입니까? 사탄의 의지를 가룟 유다가 거부할 수 있어요? 없어요? 거부 못해요. 거부 못하는 줄 알고 주님께서 그렇게 한거에요.


너희 중에 하나는 사탄이다. 요한복음 6장 제일 마지막에 나오거든요. “너희 중에 하나는 사탄이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너희들 나머지도 다 내 결과물이 기어이 되고 말리라. 절대로 네 힘으로 되는 거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주지 아니하면 아무도 누구한테 올 수 없다? 내게 올 수 없다. 그럼 우리가 주님한테 왔으면 제가 온 게 아니고 떠밀려서 왔어요 그런 고백이 나와야지요. 떠밀렸어요.


지금 안중근은 그게 안된다니까요. 떠밀린 사람은 상처가 없어요. 상처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냥 사세요. 그냥. 그냥 사세요. 살고 싶다 하지 마시고 그냥 사는게 돼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지 그냥 그대로 그냥 이대로~라는 노래 있는데 그냥 사세요. 명분 찾지 말고. 잘 살았다는 명분을 굳이 그걸 만들어내지 마세요.


손흥민 두골 넣을 수도 있고 다음에 못 넣을 수도 있고 류현진이 7점 낼 수도 있고 어떤 날은 7회말에 한점도 안 줄 수도 있고 그건 주님 마음대로지. 류현진만 주님 마음대로고 손흥민만 주의 마음대로고 우리는 뭡니까? 우리는 누구 마음대로죠? 주님 마음대로잖아요. 이게 어려워요? 강의 그만하고 싶다. 이게 어렵습니까? 이게?


주님 마음대로 앉아있는 거에요 주님 마음대로. 이걸 제자들은 몰랐고요 사도가 될 때 비로소 안거에요. 마지막에. 야 참 우리는 목격자일 뿐이구나. 나는 참이 아니고 나는 거짓이고 참은 누구밖에 없다? 예수님밖에 없어요. 예수님만 그의 증거가 참인줄 아는 겁니다. 예수님을 증거하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증거했다는 고백을 하기 위해서 두 구절이 있는거에요.


우리가 사도가 사도 요한이 증거한 거 말고 주님이 먼저 “너는 이러해야 돼”라고 주님이 시범을 보여준 거에요. 사도는 이러해야 된다고. 주님은 아버지를 위하여 그냥 몸을 바친 거에요. 너희는 그 결과물이고. 너는 보탬 아무것도 안 받을게. 안 받는다. 너 착함도 안 받고 아무것도 안 받을게. 그냥 내가 너를 너 되게 사도되게 해줄게.


자,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공식을 써 봅시다. 사도는 인간이 아니다가 돼요. 사도는 인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일 뿐이기 때문에. 야 이거 정말 중요합니다. 인간은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를 쉽게 이야기하면 개는 인간이 못 된다 그런 뜻이에요. 개는 인간이 못되고 개는 그냥 개일 뿐이다. 바퀴벌레는 그냥 바퀴벌레다. 바퀴벌레는 컴배트만 있으면 되요.


바퀴벌레는 바퀴벌레다. 인간은 인간이다. 제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벗어나지 마세요. 그 노선에서 이탈하지 마세요. 이탈하면 추락입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도는 그럼 인간이 아니라면 뭡니까? 인간 + 사명입니다. 인간 + 사명. 무슨 사명입니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


그럼 사도는 뭘 받았지요? 성령 받았지요. 그럼 우리는 성령 안 받았습니까? 그리고 결국 성령 받은 사람 특징이 뭡니까? 나는 인간이다? 인간 아니다? 그냥 인간도 아니다라는 말도 맞고 나는 그냥 인간일 뿐이다라고 해도 그 뜻이거든요. "나 하나님 아닙니다. 나 신 아니에요. 바랄걸 바래야지 주님. 저한테 뭘 바랄게 있어요. 뭘." 맨날 눈 뜨면 대한국인 하는데 나라 걱정이나 하고 있지요. 나의 가치 들먹이고 그게 뭐 그게 신입니까? 주님 아니잖아요.


인간이라는 인간에 불과한 인간에게 주께서 자신의 성령을 통해서 사명을 주니까 그 인간은 뭐가 됐다? 사도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고 이게 참이다. 이게 곧 진리다. 그러면 사도에 있어서의 할 일이 뭐냐 하면 정확하고 명확하게 바르게 그렇죠? 칼이 목에 들어오든 목이 칼에 들어가든 관계 없어요.


정확하게 사람 중에 내 추종자가 몇명이냐 신경쓰지 말고 우리 교회 몇명이다 신경쓰지 말고 바르게 정확하게 뭐를 걸고? 까짓 것 목숨 걸고 목숨 던지면서 나는 나의 가치와 명분 찾지 말고 나는 이렇게 하면 어떤 이득이 올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이게 무엇이 옳은가 바르고 정확하게. 그거는 성령 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주께서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집어넣은 거에요.


"남들이 나보고 공부 못한다고 해요."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나보고 키가 너무 크다고 해요." 그런데 신경 쓰지마세요. 작으면 작고 그런데 신경 쓰지말라고요. 무엇이 정확하냐예요. 무엇이 정확한 참이냐.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가 중요하지 내가 어떤 존재냐는 것은 그거 하지 마.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국가를 통해서 자기 존재를 안녕을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그냥 안중근밖에 안돼요.


어떨 때 안중근보면 소설 쓰고싶어. 소설 이름 정했어. 안중근의 상처. 안중근의 상처. 안중근은 상처 입은 정신병자다. 글쎄 좁은길 출판사에서는 아무도 안내준다. 제가 소설이나 쓸 필요 없지요. 안중근 증거하려고 하는거 아니거든.


첫째시간 한 것 한번 정리하고 쉽시다. 자, 안중근 이야기 왜 끄집어냈을까요? 우리가 그냥 조용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도 안중근처럼 보다 넓은 명분하나 믿고 아~ 그래서 나는 저 명분이 괜찮기 때문에 나는 살만하다라고 안중근, 제2의 안중근, 제 3의 안중근 나름대로의 국가까지는 안 나가더라도 나는 조국을 퇴진할 때까지 삭발하겠다.


삭발하면 괜찮아요. 왜? 또 자라니까. 손해 보는 장사 아니에요. 삭발하겠다. 그러나 중요한건 마음의 상처거든요. 삭발한다고 마음의 상처 없어집니까? 안 없어지지요. 그럼 그게 복수에요. 삭발로 하는 소극적 복수에요. 왜? 불안하니까. 왜 불안하지요? 조국이 법무부장하는 거 상처받았으니까. 그럴 때 누구 입장 생각한다고 했습니까? 응용문제 들어갑시다.


누구 입장 생각한다? 조국 입장 생각하는 겁니다. 너 같으면 내놓겠느냐? 그래 그 말이 맞아. 너나 나나 똑같애. 내가 만약에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겠어요? 내 5촌 조카라면. 참 돈 있어야 5촌 조카하지 돈 없으면. 내놓겠어요?


항상 한국 같으면 일본 생각하고 우리는 가룟 유다 생각하고. 난 명분 없이는 못살겠다. 난 나 무가치한 것 못 견디겠다. 그게 가룟 유다잖아요. 그게 마귀 들렸잖아요. 그러니 요한복음 더 이상 우리는 우리 자랑 할 수도 없고 예수님만 증거하면 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a-이근호 목사.hwp (174.0K), Down: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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