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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11:41:54 조회 : 82         
12강-호 4장 1-3절(소멸될 세상)191023-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1.211.59.116)
12강-호 4장 1-3절(소멸될 세상)191023-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호세아 4장 1-3절입니다. 구약성경 1259페이지입니다.

호세아 4:1-3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성경을 바라볼 때 우리가 평소에 생각했던 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와 뭔가 틀리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이 세상 원리라 하는 것은, 인생 자체가 길어봐야 80이나 90이기 때문에 그냥 세상이라 하는 것은 옛적부터 있는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성경은 이 땅 원리를 전체를 다 봐요. 인생 80쯤 살면서 자기가 분석하고 자기가 연구하고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가지고, ‘아,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이렇게 단정 짓기 쉬운데 성경에 보면 우리가 생각한 땅의 원리하고 다릅니다.

성경에서의 땅의 원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보거든요. 여기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3절에,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그리고 심지어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운명과 관련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관련성도 모르면서 짧은 인생 80, 90 살아봐야 다 헛되고 헛된 인생 산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식이 뭐고 하나님의 뜻이 뭐냐는 거기에 대해서 이 땅에 적용되고 있는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확실한 그 지식에 대해서 확보하고 있어야 되겠지요.

성경에서는 그걸 일찍부터 언급을 해오고 있습니다. 창세기 8장 21, 22절에 보면 누가 들어도 아주 쉽게, 믿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간단하게 그 원리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생각하는 것이 악하기 때문에 마땅히 땅은 저주받아야 되고 땅의 모든 것은 소멸되어야 되는데 여기 인간과 더불어 등장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정결한 짐승의 제사입니다. 땅의 운명이라는 것이 인간들이 열성내고 인간이 관리를 잘한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방식, 다른 원칙에 의해서 유지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 언약이지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깨끗한 제사, 하나님이 실시하고 원하시는 깨끗한 제사가 있는 한 땅은 멸망하지 않는다. 그 조건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결한 짐승을 원하느냐? 그 이유가 창세기 8장 22절에 보면,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착하기 때문에, 선하기 때문에 땅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땅이 결부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정결한 제물의 죽음, 그 죽음과 땅의 운명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과연 그럴까, 하나님께서 그런 계획이 있을 뿐 실제로 역사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는 어떤 증거가 있느냐, 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 증거로 보여준 것이 구약에서 보면 ‘광야 지나서 약속의 땅 들어가기’입니다. 광야 지나서 약속의 땅 들어갈 때에 그 약속의 땅이라는 것이 어떤 땅인지 이미 그 전부터 하나님께서 줄기차게 언급을 하셨습니다.

신명기 4장 25, 26절에 보면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하면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땅 중에서도 땅, 특수한 땅을 따로 마련하시고 그 특수한 땅과 그 땅에 살 수 있는 유일한 민족으로 따로 특정민족을 만들어냈어요. 그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약속의 땅의 성질과 본질은 어떠냐? 그것은 그 땅에 들어가서 살 이스라엘의 성질과 본질이 어떠냐와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약속의 땅이라 하는 것은 신약에서 이야기하는 천국입니다. 쉽게 말해서 천국에 사는 사람들의 조건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이미 이스라엘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신명기 4장 이미 읽었던 본문에 보게 되면,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기게 되면 반드시 너는 거기서 망한다고 되어 있어요.

약속의 땅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면 다 들어가는 땅이 아니고 조건이 있다니까요. 인간이 생각하는 그 조건과 하나님이 약속의 땅, 천국을 생각하는 그 조건과 달라요. 서로 대치되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답지 못하면 약속의 땅에 살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망한다고 되어 있으니까.

약속의 땅에서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들어갔는데 거기서 오래 살지도 못하고 망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늘날 후대의 우리들에게 정말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겁니다. ‘아, 이스라엘이라는 그 혈통이라도, 그 혈통적 조건이라도 천국에서는 살 수 없구나. 인간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 수 있는 데가 천국이 아니구나.’ 하는 그 사실을 우리가 새삼스럽게 알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 되게 하는 그러한 조건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나오는 그런 조건을 대충 모아서 이스라엘 사람 되는 조건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어요. 이렇게 살아야 해, 이렇게 살아야 해, 계속 이렇게 살아야 돼, 이렇게 살아야만 돼, 라는 그것이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걸 무시해 버리면 비록 하나님께서 정했던 택한 이스라엘이라도 약속의 땅에서는 살 수 없고 추방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면 왜 기존의 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특수한 땅을 따로 설정했는가? 그것은 두 종류의 땅을 만들어놓고 한 종류의 땅이 제대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서 완성을 하게 되면 기존의 땅이라 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없애버립니다. 제거해버리는 겁니다.

제거할 때 그 방법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리는 제사에 보면 나와 있어요. 그걸 정화라고, 깨끗하게 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없애버리는 겁니다. 제거한다는 뜻이 강해요. 성경 율법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이 정화하는 방법, 거룩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불이고 또 하나는 물이었어요. 불과 물을 가지고 하는데 불과 물의 두 가지 특징이 뭐냐? 전부 다 심판을 하기 위해서 불과 물을 동원하는 겁니다. 정화라는 것이 그냥 있는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심판이지요. 물과 불로 심판하면서도 심판 속에서 뭔가 차후에 살아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 3의 요소가 개입되어서 살아남아요. 그것은 피에요.

아까 제가 창세기 8장 읽어드렸지요. 물로 망했던 세상이 뭔가 새롭게 꾸역꾸역 시작이 된다는 것은 조건이 있어요. 뭐냐 하면, 제사할 때 피를 내는 피의 제사를 조건으로 해서 새로운 땅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 원리를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보다 확실하게 굳히기에 들어가는 겁니다.

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사람들이 지었던 죄가 용서가 된다면 결국 이스라엘은 무엇을 늘 품고 다니느냐 하면, 심판이라는 것도 품어야 되고요, 그리고 심판이후에 ‘심판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살아있지?’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도 같이 품어줘야 돼요. 불과 그리고 피, 이 두 가지 요소를 늘 이스라엘이 갖고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사라짐과 더불어 새로운 출생, 또는 발생, 출현,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출현할 때, 우리는 죽었다가 살았다는 그걸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소중한 것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새롭게 시작하고 출현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는 고로 공중의 새고 뭐고 다 작살난다. 그 이야기는 역시 신명기에 보면 이미 이스라엘이 한바탕 망했기 때문에 망하고 난 뒤에, 홍해를 건너온 사람들 다 죽이고 난 뒤에 남은 백성들보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땅의 조건이라는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신명기 11장 13절-17절에 보게 되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를 살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을 주신 것은 ‘그 땅에서 네가 행복해라.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런 의도가 없고 도리어 하나님이 주신 그 원리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생각한 구원은 따로 있고 그 구원의 원리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있는 겁니다. 인간이 있고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원이 먼저 있고, 그 구원의 내용은 인간구원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구원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 다음에 거기에 맞춤 인간을 새로 만들고 거기에 붙여주는 겁니다.

방금 읽은 신명기 11장도 마찬가지고요. 조건이 있는 거예요. 네가 이렇게 하게 되면 내가 이른비와 늦은비를 줘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라는 거예요. 집에 부모가 자식 사랑하듯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들어줄게.” 그런 것은 없어요.

하나님이 주신 조건이 언약조건인데 그 언약조건은 창세기 8장을 보게 되면 어떤 정결한 제 3의 요소가 투입되어서 그 제 3의 요소가 거룩한 자기생명의 피를 흘리는 그 본질, 그 조건에 부합되는 조건하에, 그것은 소중한 것으로 품는다는 조건하에 비로소 그 사람은 약속의 땅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따라서 천국의 조건에서 가장 반대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 천국에 못 가느냐 하면, 내 구원을 생각하는 사람, 여기 있는 나를 구원하겠다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조건과 정반대가 되기에 절대로 천국에 못가는 겁니다. 내 구원을 위해서 교회 오는 사람 천국에 못가요. 땅 자체가 그런 땅이에요. 그 땅이 우리가 생각하는 원리하고 반대로 나갑니다.

우상의 특징이 뭐냐? 우상은 반드시 자기를 위해서, 인간들이 자기를 위해서 만드는 것이 우상이에요. 출애굽기 32장 8절에 보면 그것이 나옵니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송아지를 만든 이유가 앞에 붙어 있어요. 신을 섬길 때 섬기는 이유가 있다고요.

그것은 뭐냐? 신을 섬기는 나 자신이 잘되기 위해서 신을 섬기는 거예요. 나 잘되기 위해서 예수 믿는다. 그 예수는 우상이고, 나를 위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상이에요. 우리 집안 망하지 않기 위해서, 저주 안 받기 위해서 귀한 아들을 신학교 보내는 그것도 우상이라는 말이에요. 내 집안이 우선적이니까.

세상에 땅에 살면서 땅의 원리도 몰라요. 하나의 정결한 짐승 때문에 자연이 움직인다는 사실을요. 지금 물리학자, 생물학자, 화학자, 다 동원해요, 의사들과 자연과학자들이 이 앞에 앉아 있다고 해봅시다. 여러분이 아무리 물리학을 연구하고 화학을 연구하고 과학을 연구해도 하나님의 언약이 거기서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그래서 창조과학회가 이단인거예요.

하나님의 성경말씀 외에는 이런 내용이 없어요. 땅의 조건에 맞지 않으면 우리는 그 땅에서 멸망한다. 그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천국은 나 좋으라고 가는 천국이 아니에요. 오히려 나를 미워해야 돼요. 나 자신을 위한다는 내 인생 자체가 천국 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내 구원을 추구한다는 자체가 도리어 내 구원을 방해하고 있는 악마의 술책에 불과한 거예요.

이것은 성령 안 받으면 못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아야 ‘자기를 부인하고’가 성립되거든요. “나 말고요. 하나님이 일을 하시되 저 위주로 일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성령을 안 받고서는 어떻게 감히 나옵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게 나올 뿐이지요. “이만큼 해줬으니 이만큼 보답해주세요.” 그런 식이지요. 전부 자기위주라니까요? 교회 50년, 60년 다니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한국교회전체가 자기구원위주입니다. 그것 반대하는 신천지도 자기구원위주에요. 10월 25일에 대성회 한다고 난리도 아니에요. 거기 참석시킨다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어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지요. “예수 믿으면 지옥 갑니다.” 하니까 멍~ 해가지고는. 내가 예수 믿어서 내가 구원받겠다는 것이 지옥갈 일이에요. 자기밖에 모르니까. 땅의 원리를 모르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고, 약속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요.

누가 이야기했어요? 아무도 이야기 안 했어요. 해도 안 들어요. 성령을 안 받았기 때문에. 자기 잘되고 자기 행복한 것, 미래에 잘되는 것, 악마가 집어넣은 그것, 우상밖에 없어요. 신명기 11장 13에서 17절에 나오는 이야기가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이런 것이 있었나, 할 정도로 의아해 할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살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닌가? 오직 주님만 위해서 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겠지요. 신명기 28장 54절에서 57절에 보게 되면, 인간은 그럴 재주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만 인간이 갈 곳은 지옥밖에 없어요. 참 이야기 하려고 수십 년 동안 목회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이 갈 곳은 지옥밖에 없어요. 천국은 엄두도 내지 마세요. 천국 못갑니다. 그냥 조용하게 살다가 조용하게 지옥가면 돼요. 천국은 인간이 넘볼 세계가 아니에요. 그 근거가 신명기 28장 54절에서 57절에 있습니다.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남자라도” 너희 중에 어떤 남자가 있는데 착해도 너무 착해요. 남에게 죄지을 수도 없고 죄지을 마음도 없는 착하디착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형제와 그 품의 아내와 그 남은 자녀를 질시하여 자기의 먹는 그 자녀의 고기를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대적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케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연고일 것이며.”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에 집어넣을 때 약속의 땅에 집어넣는 순간 약속의 땅 자체가 ‘왜 우리는 이 약속의 땅에 살 수 없는 존재인가’를 들춰내는 기능이 본격적으로 약속의 땅에서 실시가 된다는 말입니다. ‘야, 약속의 땅에 왔구나. 우리는 여기가 천국인줄로 생각하고 여기서 살면 되겠지. 말씀도 잘 듣고.’라는 일이 도저히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어이 그 인간을 약속의 땅에서 추방할 수밖에 없는데 네가 아무리 성품이 곱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약속의 땅에서 벌어지는, 언약대로 벌어지는 그 일을 막상 맞닥뜨리게 되면 너는 아무리 착한 인간이라도, 심지어 아무리 가족을 사랑해도 자기 혼자 먹겠다고, 그 먹이를 먹겠다고, 자녀를 하나의 자식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봐서 그 자식새끼 고깃덩어리를 나 혼자 먹겠다고 덤벼드는 그런 상황을 필히 내가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어디서? 약속의 땅에서.

또 이야기합니다. 56절에. “또 너희 중에 유순하고 연약한 부녀 곧 유순하고 연약하여” 연약하고 유순하다는 말은, ‘착하고 착해서 남에게 해코지 할 낌새가 전혀 없고, 그럴 마음도, 그럴 능력도 없고, 연약하니까 그저 온순해서 남에게 그냥 희생만 할 것 같은 그런 여자라도 막상 약속의 땅에 와서 내가 환경을 밀어붙여버리면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자기 자식이라도 저 혼자 살겠다고 자기의 식량으로 사용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고야 말리라.’ 신명기 28장 54절에서 57절까지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30장 18절에서 19절에 보면, 아예 선언을 해요. 모세가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모세가 예언대로 선언을 해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어디서? 약속의 땅에서.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의 출처는 약속의 땅이 아니에요. 인간은 어느 누구도 약속의 땅을 출생지로 할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의 출생지가 어디냐 하면, 애굽이에요.

애굽에서 살던 인간이 광야 지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겁니다. 애굽에 살던 인간이 약속의 땅에서 그대로 살 수 있는가? 못산다는 것이 주의 뜻이에요. 확고한 의지입니다. “약속의 땅의 원리를 네가 모르는 모양인데 네가 한번 와봐.” 와 보니 다 나갔어요. 다 쫄딱 망하고 나갔어요. 왜? 인간 내부에는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이 있어야 된다는 ‘나를 위해서’를 어떤 인간도 자기 힘으로 빼낼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군산에서 54살 먹은 어떤 남자가 술 먹고 45살 먹은 자기 아내를 죽여서 10년 형을 받았는데요. 근래에 재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남자가 왜 아내를 칼로 열차레나 찔러서 죽였느냐 하면,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어디서 남자노릇을 하느냐?”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죽였거든요.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사랑, 사랑, 하지만 돈 없는데 사랑이 통합니까? 돈도 없는데요. 몰라요, 몇 년 동안은 돈 없어도 내가 벌어서 사랑해줄게 할 수 있어요. 계속 못 버는데요 뭐. 인간은 참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근본은 자기의 생존입니다. 생존이 있고 난 뒤에 사랑이 어떠니, 우아하고, 고상하고, 나라사랑도 되지 생물적으로 인간은 배고프면 못 참고, 추운 것은 못 참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애굽출신이에요. 애굽은 뭐냐? 하나님께 재앙 받은 나라에요. 창세기 8장에서 하나님께서 정결한 짐승 잡아서 땅을 멸하지 않겠다,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두 종류의 땅을 암시한 거예요. 정결한 짐승의 피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땅, 천국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나라 만들기, 그 만들기가 되려면 뭐부터 나와야 되느냐?

왜 인간은 이 땅에서 싹쓸이, 물과 또는 불로서 완전히 제거되어야 되고 소멸되어야 되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혀줘야 돼요. 왜? 멸망해도 이유가 있고 지옥가도 이유가 있거든요. 지옥 가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의 내부가 경쟁적으로 배타시하는 악마적 품성을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이 인간의 속성에 맞습니다.

교회 들락거리고 기도한다고 천당 가는 것 아니에요. 천국을 잊어야 돼요. 천국을 잊으면 어떻게 천국 갑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요. 천국을 잊으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존심이냐 나의 자존심이냐 할 때 내 자존심과 연결된 천국은 잊으시라는 말입니다. 내가 예수 믿어서 가는 천국은 아예 없어요. 그건 지옥에 갈 거예요. 내가 예수 믿어서 천당 간다면 ‘에라 지옥이나 가라.’ 그것이 합당합니다.

내가 있는 한 천국은 없고요,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우상을 넣어주는 그런 천국, 그런 성경내용이 없습니다. 나 자체가 나의 우상인데 어딜 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어요. 왜 호세아에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땅에 대해서, 인간뿐만 아니고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 물고기까지, 저수지의 잉어까지, 왜 전 세계의 하늘에 있는 독수리까지 죽여 버립니까?

그게 새로운 땅이 등장했다는 징후에요. 새로운 천국이 있기 때문에 나머지 땅은 다 사라지고 나머지는 지옥에 갈일만 남아 있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그런 것을 따지지 마세요. 지금 성경은요, 하나님이야기만 하지 우리 심정을 헤아리고 그런 것 없어요. 우리는 없어질 인간인데 없어질 인간을 헤아려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꾸 우리는 내가 없어지지 않고 여기 살아 있다고 여기니까 성경이 나에게 무슨 이익을 주고 어떤 행복을 주겠는가? 어떤 아름다운 미래를 보장해주겠는가? 출발점 자체가 이미 우상적이에요. 출발하는 그 자체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여호수아가 전쟁하지요. 전쟁 많이 했거든요. 이름 자체도 전쟁 아닙니까? 약속의 땅에 그냥 가는 것이 아니고 전쟁이에요. 전쟁할 때 여호수아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언약과 함께 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언약과 함께 있다는 것은 이 땅의 정복이 절대로 나 위주, 내 행복이나 내 미래 보장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명예와 자존심과 관련된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여호수아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자기를 빼고, 자기제거하고 말이지요. 갈렙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는 적과 동지를 좀 분간할 줄 알아야 돼요. 나 잘된다는 이것이 악마인데 악마는 우리의 동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악마출신이기 때문에 적을 동지로 여기고 도리어 악마에게 피해를 입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해버려요.

주님께서 성경말씀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직도 우리가 자기자신을 안 버리려고 하고, 버리라고 하면 바닥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안내려가고 자꾸 중간에 어떤 발판 같은 것을 동원시켜서 ‘이 정도는 내가 챙겨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아직도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고 괜찮은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발판 같은 것을 계속 동원시켜요.

‘그래 나 망해야 돼. 목사님 말씀대로 내가 지옥가야 됩니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가치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나는 쓸모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가 왜 자꾸 끼어들어갑니까? ‘그래도’가. 우상숭배의 본성 때문에 그런 거예요.

신명기 31장 27절과 2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너희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고 너희들은 패역하기 때문에 그 나라에 들어가기는 해도 반드시 도로 튕겨져 나온다. 왜? 약속의 땅의 원리는 너희 좋으라고 너희를 집어넣는 땅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천국은 우리 인간들 좋으라고 주신 땅이 결코 아니에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단정하건대 단 한명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31장 29절에 예언하기를 모세가 아주 단정을 해요.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모세가 죽고 난 후에 너희들은 스스로 부패해서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신명기 31장 29절.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 여러분 이것 빼지 맙시다. 이걸 기본으로 삼읍시다. 내가 구원받지 못한다. 어떤 노력과 어떤 시도를 해도 하나님은 천국에 넣어주지 않는다. 넣어주지 않는 이유가 당연하지요. 들어갈 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자신의 본성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그런데 우리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되면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제가 이렇게 하게 되면, “그러면 천국 텅텅 비겠네.” 아니꼽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면서 “천국 텅텅 비겠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들어갔고 이삭은 어떻게 들어갔나?” 이렇게 이야기하겠지요. 신명기 30장 4절에 보면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찌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쫓아내요. 그러면 그들은 주위로 다 쫓겨나겠지요. 그러면 그들은 포로 된 자가 돼요. 사람이 자진해서 포로 되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어요. 자진해서 고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자의성과 자율성이에요.

그러나 인간의 자의성과 자율성이 있는 인간은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라도 천국에서 용납이 안 되거든요. 인간의 자율성은 항상 목적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은 천국에, 약속의 땅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피뿌림, 피 흘린 예수님의 나라기 때문에 반드시 피를 흘리는 이유가 계속 유지되어야 돼요.

따라서 피 안 흘려도 되는 착한 사람은 못 들어와요. 피 없이도 올 수 있는 사람은 천국에 못가는 거예요. 자기의로 우기는 사람들, 그래도 남보다 낫지 않은가, 하면서 아직도 자기에게 어떤 의로운 것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깔끔하지 못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 살 수가 없어요. 중앙의 어린양의 피, 요한계시록 말씀대로 어린양이에요, 희생을 당하신 분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에 그 희생의 값어치를 훼손시킬 사람을 천국에 넣어줄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되느냐? 추방을 시킵니다. 추방을 시키면서, 천국에서, 다시 말해서 약속의 땅에서 쫓겨남으로서 비로소 쫓겨난 이유를 그들은 마음에 간직하게 돼요. 그게 아주 소중한 거예요. 내가 천국 못 간다는 그 이유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냐? 내가 지옥 갈 이유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요. 소중한 겁니다.

그렇기에 구약에서 약속의 땅과 신약의 천국이 차이가 나는 거예요. 약속의 땅은 그냥 모형이고 시범조기 때문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돼요. 그리고 천국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겁니다. 쫓겨난 채로 있으면서 비로소 쫓겨났다는 그것이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사람이에요.

똑같이 고생해도 그들은 이유를 몰라요. 왜 인간이 고생해야 되는지? 왜 세월에 목줄이 묶인 채 아무것도 모르면서 질질 끌고 가는지를, 이유를 몰라요. 그런데 호세아처럼 성신을 받은 사람은, 아, 우리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겨서 음녀가 되어야 될 이유를 비로소 기쁨으로 아는 거예요. 자기가 망해서 천국 못가는 이유를 주께 벌 받는 가운데서, 추방되면서 비로소 야, 죄를 아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없는 거예요. 제대로 안 거예요. 신약에서 십자가 앞에서 자기 죄를 근원적으로 아는 것처럼 근원적으로 자기 죄를 아는 겁니다.

영화의 사운드 편집에 이런 방법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주인공과 친구들이 파티를 열어서 왁자지껄 부어라 마셔라 떠들고 놀고 있는 장면을 찍어요. 그 다음에 카메라가 그 장면에서 점점 멀어져요.

멀어지면 그 왁자지껄 한 그 소리는 최대한 줄여나가고 암울한 배경음악을 좍 깔아놓고 파티가 열리는 2층 옥탑집은 작게 하면서 어두컴컴한 서울시내의 밤풍경을 점점 더 크게 보이게 하면 주인공과 친구들의 왁자지껄한 그 소리는 다 묻혀버리지요. 그리고 장엄하고 암울한 이 세상전체의 불길한 징조가 배경음으로 좍 깔리는 그런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호세아는 지금 카메라기법을 가지고 음향편집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지식이 없음으로 다 죽는다. 왕왕왕왕~, 다 죽는다~, ~왕왕왕~. 그런데 철딱서니 없이 그것도 모르고 저희끼리 인생사는 재미를 논하면서……, 물론 소리는 하나도 안 들려요.

다른 배경음에 다 묻혔으니까 그 소리는 안 들리는데 자기들끼리 깔깔대면서 한잔 붓고 하는 그 인간들의 사소한 일상적인 일들, 내일도 모르고, 자기처지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고, 언약도 모르고, 하나님 뜻도 모르고, 자기가 지옥 가는 것도 모르는 채로 파티를 열고 있는 거예요. 인생을 논하면서. “치어스!” 해가면서.

선지자는 위에서 봐요. 독수리 같은 높은 시선으로 위에서 보니까 세상 돌아가는 그 꼬락서니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것들이 재판하고, 구속적부심을 하고, 뭐가 어떻고, 국회의원이 국정감사를 하고……, 개뿔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것들은 다 묻혀버려요. 주의 계시 앞에 다 묻혀버려요.

세상뿐만 아니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회열고, 예배드리고, 깔깔거리고, 먹고 마시고……. 진짜 복음은, 십자가는 그게 아닌데. 마태복음 7장 24절에 여러분이 잘 아는 대목 나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반석위에 짓는 집이 있고 또 모래 위에 짓는 집이 있다. 이것은 뭐냐? 최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라. 그렇다면 이 세상은 구원될 사람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이 땅에 찾아오신 이유를 아시겠지요. 이 호세아의 말씀을 그대로 품에 안고, 호세아의 말씀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실효성 있게 품에 안고 이 말씀대로 오직 이스라엘, 그야말로 땅이 두 종류라면 이스라엘도 두 종류거든요.

신명기 30장 4절에서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가에 있을찌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약속의 땅에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그 약속을 품은 분이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을 알아봤던 사람들, 동방박사나 목자들 같은 사람들은 알아보고 세상에서 더는 부러울 것이 없이 가장 소중한 것을 만났다는 그 기쁨, 시므온 같은 선지자의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9) 하는 그런 고백, 이것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특별한 진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온 거예요.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들어와서 여호수아처럼 그 말씀의 승리함이 이미 여기에 들어와 버린 거예요.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수 1:5) 하나님의 약속이 여호수아에게 들어갔을 때 여호수아는 언약과 함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복음, 다 이루었다, 누가 너를 정죄하리오, 그런 소리가 쑥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이 땅이 지옥으로 간다는 그 자체를 우리는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을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자유요, 그 자유가 바로 감사로 이어지는 거예요. 고마움으로. 어떤 경우라도 고마움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망해라.” “주여, 망하게 하옵소서.” 오히려 망하는 즐거움. 이 세상에서 꺼지고 소멸되는 그 즐거움. 그럴수록 우리는 내가 생각되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주님의 약속만, 십자가의 약속만, 다 이루었다는, 다 용서했다는 것만 크게, 크게 될 때에 우리의 감사도 같이 커지는 겁니다.

호세아가 전한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제는 공포스럽게 받아들이지 말고, ‘안 된다. 나는 망한다.’ 이러지 말고 ‘이걸 기쁨과 감사로 받을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이 바로 말씀으로 이끌림 받아서 지금 천국가고 있는, 또는 천국에 이미 도달한 사람이다, 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인간들이 만든 종교가 다 우상숭배인 것을 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설치는 것이 곧 지옥 가는 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여, 저희들은 이 사실을 알게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롭게 건설되는 천국에 합세할 수 있도록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만 크게 느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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