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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5 10:14:13 조회 : 57         
20191101b 울산강의-레위기 24장 : 끈 떨어진 자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71)
20191101b 울산강의-레위기 24장 : 끈 떨어진 자
(강의:이근호 목사)


요한계시록Revelations 9장에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서 인공지능 만들어놨는데, 두 번째에 악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악마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이것부터 알아야 돼요. 악마가 십자가를 압니까, 모릅니까? 알아요. 그게 근거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말씀으로 시험했어요. 그 말씀이 시편 91편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91편 말씀을 통해서, 이걸 어려운 말로 말씀을 하나님이 주셨잖아요. 이 세상이 있단 말이죠. 말씀을 주게 되면 세상이 세속으로 바뀌어요. 세상이라면 가치중립적, 가치기 있을까, 없을까 하는데 세속이 돼버리면 완전히 이거는 뭐냐? 더러운 동네에요. 말씀이 주어짐으로써 세상에 대해서 어떤 희망과 어떤 기대를 완전히 좌절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누가 접수를 했어요? 악마가 접수를 했단 말이죠. 악마는 인간들로 하여금 이 세상, 주님 보시기에는 세속이죠. 더러운 곳이죠. 세상을 인간은 더러운 곳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이 세상없으면 자기가 못 사니까 생계의 터전이 되니까. 땅이 얼마나 좋아요. 부동산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까 악마는 인간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에서 잘될 생각을 하라 이 말이죠.

그럼 잘될 방법은 뭐냐? 선악으로 하는 거예요. 선악 지식을 동원해서 악은 멀리하고 선을 하게 되면 네가 복을 받아서 세상에서 잘 될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겁니다. 온 천지 교회가 그렇게 가르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다녀갔단 말이죠. 예수님이 다녀가신 땅이 두 종류가 돼버렸어요. 세속이 된 땅이 있는 반면에 주님이 있는 시공간에 주님 따라 같이 만들어진 시공간이 있어요. 이것은 뭐냐?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겁니다. 그럼 여기는 새 백성이 만들어지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세속에 있는 더러운 땅에 사는 자기 백성을 데리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겁니다. 이건 누가 발목을 잡겠어요? 이 세상의 악마가 발목을 잡겠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데려갈 때 어떤 절차를 보여주느냐 하면, 하늘에 살던 악마가 땅에 떨어진 그 절차를 그대로 돼 보여주는 거예요. 그들이 알기는 알았지만 그들은 거기에 전혀 순복하거나 따를 의사가 없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악마는 십자가를 알기 때문에 악마를 더욱 더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기를 쓰고 못 듣게 하는 거예요. 교회를 앞장세워서.

교회라는 것이 뭐냐 하면, 돈이 있어야 되고 부동산, 토지 있어야 되잖아요. 대한예수교 간판 내야 되고. 이게 전부 다 뭡니까? 눈에 보이는 걸 조립한 거죠. 눈에 보이는 의자 있고 마이크, 피아노 다 있잖아요. 조립한 거라고요. 그럼 이런 의자, 피아노가 우릴 구원합니까? 인간 대 인간의 모임이고 단체지요. 모임, 단체 그냥 모이면 안 되잖아요. 예배는 몇 시에 드리고 집사 뽑을 때 전체 인원의 삼분의 이가 어떻게 만들겠지요. 그럼 그게 인간을 구원합니까? 못하잖아요.

인간은 악마 안에서는 어떤 방법을 써도 구원이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못한 것을 누가 한다? 인간이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걸 믿는 걸 믿음이라 하는 거예요. 내가 안 되는 일을 주께서 되게 하신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내 일이 아니고 구원 자체가 누구 일이다? 주님의 일이라고 믿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일에 우리가 걱정할 게 없어요. 내 일이 아닌데 왜 걱정합니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서 성도 만들어놓으니까 여기에 닥터피시처럼 달려드는 거예요. 각질 뜯어먹는 고기처럼 막 달려드는 거예요. 마구 달려들어서 그것 하지 말고 선악적인 네 자질과 능력 있으니까 지식 있으니까 스스로 구원받는 방도를 모색해보라는 거예요. 자꾸 매일같이 우리한테 그걸 주는데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temptation 우리말로 하면 시험이에요.

마태복음 6장에 보면 뭐라고 돼있습니까? 시험 들게 마옵시고. 그 시험의 전형적인 모델이 예수님 광야에서 이미 받았던 거예요.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공격을 받은 거예요. 말씀을 실제화 시켜보라는 거예요.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쳐준다는 겁니다. 시편 91편에. 한 번 뛰어내려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마귀 시키는 대로 안 했을까요? 마귀가 시켰기 때문에. 마귀가 시키게 되면 나는 내 행함으로 구원을 성사됐다는 그 사실이 남아요. 뿌듯한 자부심이 남는다고. 자부심은 사적인 개인적인 자부심입니까, 아니면 남한테 줄 수 있는 자부심이에요? 오롯이 누구한테 모이는 자부심이에요? 나만의 자부심이죠. 나만의 자부심이니까 스스로 날이 가면 갈수록 그걸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너무 귀해서.

죄인 같은 소리하고 있네. 죄인 아니야. 점점 더 괜찮은 사람 되고 말았어요. 마귀가 노리는 건 그거였습니다. 거봐. 네가 하니 되잖아. 기도하니 되잖아요. 니가 약 안 먹고 기도하니까 병 낫잖아. 암 낫잖아요. 앞으로 기도해. 그래서 자식들 어릴 때부터 기도원에서 기도시키니 사춘기 있을 리 있어요? 내가 하면 된다고 믿는 믿음을 그게 믿음이라고 한국교회는 다 가르친 거예요. 네가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걸 네가 믿어라.

그러면 그 구원은 누구 소원이 되느냐 하면 나의 소원이 돼요. 나의 소원이 되는 구원은 어딜 가느냐? 지옥을 가십니다. 지옥밖에 갈 데가 없어요. 왜냐하면 변화된 게 없으니까. 태어날 때부터 나는 내 힘으로 산다는 그것이 계속 꾸준히 유지되게 되면 그대로 그것은 악마와 더불어 있던 악마의 습성이기 때문에 그대로 지옥으로 가지요. 악마가 가는 곳에 합세해서 가게 되는 겁니다.

뭔가 도중에 달라져야 돼요.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소경된 것은 주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그런 고백 같은 게 있어야 돼요. 사람들은 소경된 것이 죄가 지었다 하거든요. 죄가 지었다는 게 아니고 주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되는 존재로 사는 거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왜? 우리는 해골이니까.

공식 들어갑니다. 기계+언약=천국 백성. 우리는 해골, 기계거든요. 거기에다 언약이 오게 되면 언약 사람들이 천국에 갑니다. 언약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이죠. 기계+주님의 긍휼과 사랑이 오게 되면 사랑의 나라에 갑니다. 이 공식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뭐가 돼야 돼요? 해골 돼야 돼요. 그다지 아무 가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악마는 여기다 뭘 붙이느냐 하면, 기계에다 언약에 반대하는 반-언약을 입혔어요. 반-언약이 뭐냐 하면, 선과 악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것을 인간에게 뒤집어씌웠어요. 악마가. 선과 악이란 바이러스를 집어넣었어요. 하나님은 거기에 대해선 용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파괴하는 것도 누구 권한입니까? 하나님 권한이죠. 만드신 분이기에 부셔버릴 수도 있는 거예요. 부셔버릴 거야. 만드셨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실효성 있게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런 분이에요.

천국을 만드신 분이기에 어떤 특정인을 천국 보내주고 지옥을 만드신 분이기에 어떤 특정인을 지옥 보내는 권한은 누구한테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한테 있는 거예요. 그 모든 일을 언약으로 일하는 겁니다. 선과 악이 아니고 십자가 피에 끈이 연결돼있는지, 피에 담겨있는지 피에 담겨있지 않는지, 그걸로 결정한다니까요.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네가 연결된 끈,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게 바로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이 외쳤던 복음 아닙니까.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했어요. 당신은 복음을 주장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복음이 다가 아니잖아. 나는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내가 구상하는 내가 원하고 있는 인생에 조금이나마 목적이라는 게 있지 않느냐,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걸 제가 도표로 그리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태어나서 사는데 이게 죽습니다. 도중에 뭐가 있느냐 하면, 눈을 과거로 보지 말고 미래로 봐서 가만 되는데 인간은 과거를 보거든요. 인간의 기억 속에는 과거뭉치입니다.

복음을 이야기하니까 이쪽을 보고 복음을 이야기하는데 자기는 복음을 안 보니까 제자리걸음을 하는 거예요. 안 가는 거예요. 만약에 빌딩을 하나 샀다면, 빌딩 산 걸로 스톱이 된 거예요. 이게 다인 거예요. 왜냐하면 과거에 집 없던 설음이 자기 빌딩으로 마감됐기 때문에 지금은 그 자체로 과거에 비해서 뿌듯한 거예요. 본인이. 프랭크 시내트라가 불렀던 한 평생 나는 떳떳하게 후회 없이 살아왔다. 마지막 커튼이 쳐질 때 나는 자랑한다. 나는 다 이해한다. 한 평생 후회 없이 살았노라.

인간은 자기가 마감을 지어버려요. 본인 서있는 자리에서 마감이 돼버렸어요. 누가 이런 짓했어요? 마귀가 그런 짓하지요. 무슨 뜻이냐 하면, 악마가 왜 하나님께 대드느냐 하는 하나님께선 성도를 통해서 그걸 밝혀주는 거예요. 악마가 하늘에 살지 않고 땅에 왜 떨어졌느냐 말이죠. 그것은 뭐냐 하면, 천사면서도 지음을 받았으면서도 지음 받은 자의 행세를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견주려고 한 거예요. 이게 이사야에 나와요. 하나님과 동등 되게 하기 위함이에요.

그게 계속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거예요. 나도 알만큼 안다 이 말이죠. 천사니까 모를 리가 있어요. 십자가도 알고 선악과 따먹으면 안 되는 걸 알지요. 인간보다 월등하잖아요. 천사가 인간보다 더 뛰어나단 말이죠. 뱀처럼 지혜롭다 했잖아요. 인간의 지혜보다 훨씬 능가해서 인간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뱀에서 못 벗어나요. 악마의 수완이 더 높기 때문에.

그럼 악마가 왜 하느냐? 악마는 알고도 항상 뭐가 우선이냐 하면, 자기 절대성이 우선이기 때문에 장차오실 주가 되실 예수님한테 굴복하기 싫었던 거예요. 그게 욥기에도 나와요. 욥기 다음 주일 오후에 설교할 거예요. 하나님 하신 일에 자꾸 티를 내고자 하는 겁니다.

보통 성도님들이 저한테 질문 가운데 제일 많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히브리서 6장에 나오는데 이참에 정리하고 가실게요. 히브리서 6장 4절.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여기 타락했다는 것은 곧 인간으로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원형은 누굽니까? 하나님이 하늘나라에 살면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누리면서 살았던 그 천사가 이미 타락했다 했지요. 그럼 다시 회개할 수 있다, 없다? 없지요. 악마가 십자가를 알아요. 십자가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만 거기서 끈 떨어지게 만들어버린 겁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알면 뭐합니까? 끈은 떨어졌는데. 그래서 교회 나와서 복음 들으면 무슨 소용 있어요. 끈 떨어졌는데.

십자가 지식 안다고 그걸로 구원되는 게 아니에요. 구원을 주님이 직접 손을 대야 되지 내가 성경 지식을 알고 내가 관리한다고 해서 그걸로 내가 변화되고 그런 것 없어요.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아무리 큰 능력을 봤지만 결국 십자가를 현저히 욕을 보였단 말은, 이 말씀이 굉장히 어렵게 하면 어렵지만 쉽게 하면 쉬운 거예요.

여러분, 십자가 진 것이 영광스러워요, 욕 받은 사건입니까? 욕 받은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자기 아들을 악마가 하는 태도와 정반대로 가져가게 하신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시키신 일은 뭐냐? 어쨌든 간에 악마가 하는 일을 정반대로 가져가버려라. 처음부터 악마는 영광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대적했다면 예수님 너는 어떻게 해야 된다? 차라리 그들에게 심한 욕을 얻어먹는 거예요. 그리고 비자립적이에요. 스스로 할 수 없어요. 스스로 살려고 하지도 않아요.

주기도문에 보면 기도하라 했잖아요. 이건 예수님이 아버지에 하는 기도가 다 들어있어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마태복음에 보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할 때 아버지 뜻 이전에 무슨 뜻을 먼저 언급해요? 내 뜻을 언급하지요. 이 말은 뭐냐 하면, 내 뜻이 이런데 내 뜻이라 하는 그것 찢어버리세요. 내 뜻이 있는데 주여, 그것 개 무시해버리세요. 아버지 뜻이 내 뜻을 아예 짓밟아버리세요.

그때 제자들은 뭐 했지요? 남남이었지요. 자고 있었다니까요. 주님이 오셔서 하는 말이, 마음은 원이로되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해서 안 되지요. 그럼 안 된 거죠. 주님의 기도에 동참 못한 겁니다. 언제 동참합니까? 예수님의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의 겟세마네를 그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통해서 다 전달해버려요. 그러면 제자들은 뭡니까? 내가 원치 않는 길을 가죠. 베드로에게 했잖아요. 네가 띠 띠고 원치 않는 길로 가는 거예요.

노골적으로 말해서 예수 믿고 난 뒤에 여러분 원하는 대로 되던가요? 저는 아예 원할까봐 겁나요. 원하면 그건 뭐로 바뀝니까? 실망으로 바뀌고 좌절로 바뀌게 돼있어요. 참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 받은 사람이에요. 날이 가면 갈수록 나의 가치가 내가 지킬 가치가 점점 쪼그라들고 나중에는 푸석푸석해져요. 가을의 낙엽처럼 밟으면 밟히고 손에 쥐면 다 부셔지고. 어차피 우리의 육신은 낙엽 따라 가버린 육체니까.

결국은 다 우리 고모 살았데. 그런데 얼마 전에 죽었데. 다 사라져버려요. <풍문으로 들었소> 함중아, 오늘 죽었잖아요. 나보다 한 살 많은데. 폐암으로 죽었답니다. 옛날에 67세면 살만큼 살았다 하는데 요새 67세면 대번에 묻는 게, 무슨 병에 걸렸습니까? 같이 살아있을 때는 함중아 가수가 어떻게 하지만 죽고 난 뒤에는 10년 뒤에 보세요. 누구 말이야? 다 잊어버려요. 낙엽과 똑같아요. 잠시 있었어요, 잠시. 너나 나나 잠시 있다가 할 역할 다하고 손 털고 없어지게 돼있어요. 왜? 창조주가 쓸 만큼 쓰고 이제는 파괴하시는 일만 우리에게 작용하시면 되는 겁니다.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뭘 아느냐? 왜 악마가 지옥 가는지 아울러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들은 모든 알았지만 역시 자기 절대성 때문에 그 지식이 악마도 구원하지 못했다. 왜? 악마는 악마다워야 되니까. 그렇다면 악마 붙잡힌 우리 인간도 온갖 지식을 다 얻어 챙기고 하지만 결국은 우리는 우리 힘으로 악마와 똑같은 성질과 성격과 사고방식과 본질을 지녔기에 문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동행하고 성령이 동행하게 되면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네 안에 성령이 임하면 죽을 너희 몸도 살리라. 그때 조건이 뭐냐? 우리 몸을 아예 뭐로 규정합니까? 죽을 몸이죠. 죽을 몸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면서 뭐만 보여주면 됩니까, 우리가? 이래서 내가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는, 죽어도 합당한 조치라는 모습만 계속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자식들 걱정 너무 하지 마세요. 하루치만 삽시다. 내일은 내일치만 살면 되니까 미리 당겨도 자식 걱정한다든지 과거에 내가 잘나갔는데, 과거에 잘나가지 않은 사람 어디 있습니까? 다 잘나갔어요. 과거는 이제 잊읍시다. 정말 과거 잊읍시다. 내일 염려는 내일 하라 했잖아요. 왜 걱정이 되고 벌벌 떱니까? 미리 당겨서 걱정하니까 벌벌 떠는 거예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했잖아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그것은 나한테 맡기고. 이만큼 살아도 우리가 살만큼 살았어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 내 자리가 마감이 아니라는 거예요. 근데 이 이야기 듣고 돌아서면 또 내 자리가 마감이 돼버려요. 모든 걸 나한테 소환시키고 모든 의미를 다 나한테 바구니에 담듯이 다 담아버려요.

이 땅이 악마의 천지가 됐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뜻은 이거에요. 악마의 잔재를 남겨라. 하나님에게 망령되이 일컫는 일을 돌로 쳐 죽일 때에 그 현장에 돌로 쳤다는 죽음 사건이 있지요. 그게 뭡니까? 이스라엘 속에 뭐가 있었다? 악마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는 새로운 정보가 있어서 그 다음 하루하루가 이스라엘이 새롭게 진행되는 겁니다. 악마는 이렇게 당해도 싸다는 것.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와 상대한다? 이미 악마에 세상 신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에 우리와 상대해봐야 우린 탈출 못합니다. 악마를 꽁꽁 묶어놓고 가재도구를 데려가듯이 악마를 누가 이겼다? 악마를 우리 주님의 말씀으로 십자가 피로 이겼다는 그 소식이 우리에게 적용이 되게 되면 우리는 이미 모든 걸 다 아는 사람 돼버렸어요. 십자가 피로 이겼구나. 내가 할 것은 남아있는 게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아니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악마의 잔재를 남기는데 그런 사람이 성경에 나와 있어요. 시편 볼까요. 시편 3편 1절,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자,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배운 것 복습해봅시다. 다윗은 ‘기계+언약’이죠. 이해되십니까? 성도는 새 언약을 받았어요. 기계+새 언약, 해골+피.

그래서 성도가 갈 때는 안에 해골이 들어있지만 바깥에는 피의 사랑을 보여줘요. 언약이 사랑이니까. 주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으로서 움직이는 사랑으로써 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해요. 요한일서 4장에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사랑은 심판을 이겼느니라. 심판을 이긴 자로서 우린 이 세상에 계속 남겨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게 편합니까? 시편 3편 1절에 아니지요.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자, 대적이라 했어요. 이 대적은 바로 하나님의 대적입니다. 갑자기 닥터피시처럼 어떤 사람이 성도니까 마귀가 떼쓰려 보내는 거예요. 흔들기 위해서. 우리가 귀한 게 아니고 우리 속에 이질적인 요소, 아담에게 나올 수 없는, 이것은 예수님에게만 있었고 인간에게는 없던 것이 성령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달된 것, 우리에게 심어진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용서고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이죠.

이게 있으니까 악마가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악마가 도사라. 슬슬 몰려드는 거예요. 닥터피시에 발을 한번 담가봐야 되는데. 그냥 발만 담갔는데 어디서 알고 수백 마리가 달려들 듯이 성도가 있는 곳에 그 다음부터 남편이란 이름으로 아내란 이름으로 자식이란 이름으로 목사란 이름으로 교회 장로란 이름으로 온갖 마귀의 종자들이 다 달려들어요.

엄마, 그래 살면 안 돼. 엄마, 광신도 같아. 아버지는 자식이 훌륭하게 되는 것 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교회만 가고 내가 원하고 같이 안 놀아줘. 이러죠. 아까 배운 것 복습하게 되면, 아들은 어디에 멈춰 있습니까?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그것이 미래에 꿈이 완성되기를 기대하면 자기는 자연으로 마감되겠지요.

주변에 식구들은 누굴 위해 존재해야 된다? 다 나를 위해 존재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아들 자리에 딸로 바꿔도 마찬가지에요. 식구 다섯 명이면 전부 다 자기밖에 몰라. 심지어 사춘기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까지 마찬가지에요. 심지어 집에 강아지도 그런가? 강아지는 안 그렇겠다. 강아지는 성령 안 받았으니까 그건 모르겠고. 몰라. 강아지도 마귀 들 수 있겠네요. 뱀한테 마귀가 들었으니까. 강아지도 복음 이야기하면 물려고 달려들지 몰라.

그럴 때 우리는 시편 3편 1절이 나한테 아까 심판 사건이 이스라엘에 잠입된 것처럼 시편 3편 1절이 그냥 이론상 지식상 말씀이 아니라 내 삶을 통해서 구체화되는 그런 현상을 우린 살아가면서 닥터피시에 물리는 것처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세상에 나가서 영업을 한다든지 친구, 동창생을 만나든지 일가친척을 만나든지 시장에서 콩나물 장사하는 아줌마를 만나도 어떤 경우든 내 모든 상태에서 우리는 우글거리는 하나님의 대적들을 만나는 거예요.

성도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원래는 조용한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몰랐는데 성도 하나 들어가니까 미꾸라지 정체가 드러나서 발작을 일으키죠. 너희는 이 땅에 소금이다. 이건 연관되는 게 아니고 내가 지어낸 거지만. 소금처럼 거하는 거죠. 너희는 이 땅에 빛이라. 어두움을 밝힌다. 이 말은 그들로 하여금 악마의 정체를 밝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대적들의 구체화된 것이 시편 2편에 나옵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의 허사를 경영하는고” 여기 열방, 민족들이 붙습니다. 이게 누가 쓴 거예요? 다윗이 쓴 거죠. 다윗이 왕으로 있는 이스라엘, 2절에 뭐라 돼있습니까?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그러니까 악마는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없는 거예요. 악마는 날 없다고 여기고 살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인간들은 악마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마는 언제 드러나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드러난다든지 언약에 있는 사람이 등장할 때 악마가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게 돼있어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세상의 열방들이 분노하며, 지금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의도가 다 하나님의 계획된 바다 이 말입니다.

그 이스라엘 속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가 있거든요. 그 기름 부은 자가 뭐나 하면, 7절을 제가 읽어볼게요.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다음에 뭡니까? “너는 내 아들이라” 그러니까 악마가 진짜 귀신같이 알아요. 악마가 악마같이 안다고요. 악마의 라이벌은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악마는 죽지 않는 하나님을 전파하지요. 교회가.

교회에서 예수님 이야기 잘 안하지요. 무슨 이야기합니까? 하나님이 이야기하지요. 잘해주는 하나님, 열심히 기도하면 응답하는 하나님, 착하게 살면 가만있지 않고 30배, 60배, 100배로 보상해주는 하나님이죠. 거기에 죽는 하나님 모습 없지요. 그게 악마가 심어놓은 인간 속에 태생부터 심어놓은 유치원 아이들도 기도하라면 기도 잘해요. 심어놓은 하나님이 뭐냐 하면, 날 사랑하는 하나님이에요.

적어보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뭐가 있지요? 내가 들어있지요. 이게 제로가 돼야 될 텐데 제로가 아니고 1이 돼있어요. 하나님은 뭐냐 하면, 주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에요. 누굴 배제하고? 나를 완전히 파괴시키고 나를 배제하고. 나를 죽이고 죽인 나를 집어넣을 때 이게 바로 십자가의 영이 하시는 일이에요. 나는 죽고 내 안에 누가 산다? 그리스도가 산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하시느냐? 그래야 우리 주변에 악마의 잔재를 남기기 위해서 뽑을 것 뽑아내고 나머지는 그대로 지옥 불에 들어가면 되고 심판 불에 들어가면 되거든요. 이게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부터 보면, 천하에 꾀던 자가 하늘에서 쫓겨나서 9절에 보면,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에 떨어졌어요. 땅은 누구 세상입니까? 악마가 통치하는 세상이에요. 그 통치하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보냈다 했지요.

언약을 보내게 되면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도를 통해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요.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구원됐으니까. 하나님을 참소하는 자, 그 복음을 받으니까 가만두지 못하고 이제 발악을 하는 거예요.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나고” 참소라는 게 선악으로 동원시키는 거예요.

얼레리 꼴레리 천당 가는 저 사람 20살 때 사기 쳤다. 27살 때 바람피웠다. 53 때 횡령했다. 어떻게 나쁜 짓했다. 매일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우리 양심에다 계속해서 선악을 쏘아대는 거예요. 악을 지적하고 악을 제거하려면 기도를 두 번 더해야 되고 헌금 더하고 새벽기도 나와야 되고. 너 그러면 나중에 벌 받아서 암 걸린다. 너 요새 나쁜 짓해서 간 아픈 거야. 모든 행동 하나에 너 그 짓했으니까 이번 주 자살할 줄 알아라. 두려움과 공포를 계속 줘요.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는데 매일같이 참소합니다.

그럴 때 성도의 대처방법은 간단해요.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쉽게 말해서 어린 양의 피로 이겼으니 피로 다 된 마당이기 때문에 이젠 까짓것 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게 되면 마귀가 시비 걸 거리가 없다니까요.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고 유혹할 거리가 없다니까요. 죽겠다는데, 뭐. 피가 고마워서 지금 더 살고 싶지도 않다는데 뭘 어떻게 유혹을 해요.

사람이 살려고, 살려고 제자리걸음하면서 나 이만큼 사는데 얼마나 애썼는데 이러니까 시험이 왔고, 내가 저놈의 자식 키우려고 시장바닥에서 새벽 장사하면서 키운 내 자식을 두고 내가 그냥 못 죽지. 이러니까 그 자체가 시험거리 되는 거예요. 저 자식 장가가는 것 보고 가야 된다. 내 딸 시집보내고 눈을 감아야 원한이 없다. 이게 전부 다 마귀에 시험든 거예요.

내일 토요일에 만약에 결혼식 한다 하면 부모님이 저절로 새벽기도에 내일 결혼식 하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날씨 괜찮아야 되고, 그리고 부좃돈 두둑이 받게 하고, 제발 결혼해서 안 다투고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고 순풍순풍 아들 낳고 딸 낳든지 딸 낳고 아들 낳든지 하여튼 둘 이상 낳고, 그리고 무탈하게 아무 병도 없게 해주시고 그저 나라에서 필요한 인재 되게 하시고 교회의 큰 일군 돼서 주의 영광을 많이 돌려 예수 믿는 사람은 저래 잘 되는구나, 하고 무릎을 치면서 너도 나도 교회 나올 수 있도록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주여, 기도하는 이 뜻대로 마옵시고 이 뜻대로 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다음날 비가 와서 부조 들고 온 사람들 차사고 나서 부조도 못 내고 전부 다 돌아가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위가 가족력이 있어서 젊을 때부터 당뇨고. 내 자식만은 남의 자식과는 달리 별나게 잘 돼야 된다는 그 자체가 그게 바로 악마에요. 그게 악마의 자세라니까요. 그것도 모르고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돈 갖다 바치고 속아 넘어간 거예요. 아이고, 그 돈 아까워라. 내가 안 냈지만. 내가 생각해도 아까워. 보이스피싱에 걸려서.

왜 그런 현상이 있느냐 하면, 자꾸 과거에 미흡한 걸 지금 예수 믿고 만회하려는 생각을 해요. 만회했다고 칩시다. 자, 모든 영광은 누구 영광이겠어요? 거봐. 나 괜찮잖아. 괜찮은 존재 맞잖아.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날 무시하지 마. 날 무시하면 죽여 버린다.

그러니까 악마가 하나님 앞에 대들었던 이유가, 예수님과 상대적으로 자기가 무시당한 것을 견디질 못해서 악마는 이를 갈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일에 대해서 집중 공격합니다. 이게 시편에 뭐냐 하면, 기름 부은 자, 하나님은 안 건드려요. 하나님이 보낸 자, 아들을 집중 공격해서 나는 아들은 안 믿지만 하나님은 믿는다고 소리를 악마가 온 천지에 교회란 이름으로 다 퍼져나간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동안 하나님 없이 살았지만 하나님이 여러분 만드시고 기억하세요. 여러분을 천국까지 인도할 것입니다. 전부 하나님, 뭔가 빠졌어. 십자가 복음도 빠져버리고. 결국 하나님 등쳐먹고 나 잘되는 것. 그게 제2, 제3의 악마의 새끼들이에요. 뱀의 자식들이에요. 뱀의 자식이 목사 돼있고, 뱀의 자식이 장로 돼있고.

그놈의 뱀의 자식, 악마의 자식이 장로 되니까 목사 쫓아내고 마귀의 자식을 또 세우고. 그저 이 교회나 키워라, 이 말이죠. 교회운영 되도록 운영비 나오도록 하고 빈자리 다 채워달라는 거예요. 그것만 요구하는 거죠. 교회를 그렇게 절대화시키는 거나 우리 가정 집구석 절대화하는 거나 다를 것 뭐 있어요. 똑같지요.

우리의 마감이 주님이어야 되지 내가 마감이 되면 안 됩니다. 나는 구멍 뚫려야 돼요. 막아서다가 폭탄 맞아야 돼요. 뭔가 미사일이 확 뚫고 지나가야 돼요. 네가 아니야, 비켜. 주님이야. 왜 네가 그 앞에서 얼쩡거려. 네가 골키퍼야. 저주 사건을 주께서는 하나님을 망령되게 했던 그 사람에게 했다면 지금 그 돌을 우리가 맞아야 돼요.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사건 터질 때 이미 우리는 망령된 자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음이 확인되었어요. 우리가 남에게 돌을 던질 쨉이 못 됩니다. 우리가 누구한테 돌을 던져요. 죄 없는 사람이 돌 던지라 했는데 우리가 죄 있는데 돌을 못 던지지요. 주님께서는 소스, 콘센트를 피에다 꽂아버렸어요. 지지직 전기가 막 통해. 피의 전기가 통해요.

끈 떨어진 자가 아니라 끈이 이어져 있어요. 예수님과 한 몸이 되고 말았어요. 주님의 사랑이 계속 주입됩니다. 우리는 죄만 짓고. 그 죄를 의 되게 하는 주님의 언약의 다 이루심이 계속 오니까 우리에게 나타나는 그 에너지 장은 다 이루심, 다 이루심, 매일같이 다 이루심뿐이에요. 자꾸 과거를 생각하게 되면 지금 자기가 못 마땅해요. 이 모양 이 꼴로 살려고 그렇게 애썼나.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고요.

미래를 생각하게 되면 역시 불만이라. 다음에는 잘 되겠지. 또 계획한다고요. 미래 잘라내 버리고요. 아까도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미래란 게 없어요. 주님 자체가 미래고 우리 운명은 없습니다. 주님 자체가 이미 확정된 운명인데 운명 앞에 ‘나’자를 붙이고 미래 앞에 나를 왜 붙입니까? 내일 죽을지 살지 모르는데. 악마는 십자가를 알기 때문에 십자가로 자꾸 우리에게 들이댑니다. 십자가 알면 복 받아야지, 이런 식으로 들이댑니다. 그게 십자가와 복 받는 게 앞뒤가 안 맞게 돼있어요.

한 가지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왜 이 설명하느냐 하면, 아까 시편 3편 1절에 악마가 있다는 사실이 눈에 안 보이는데 악마는 없는 존재에요. 다윗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작용해버리면 갑자기 다윗의 적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온 천지가 다윗을 공격하고 달려듭니다. 이게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부러 유발한 일이에요.

그처럼 갈라디아서 5장을 보게 되면, 오늘날도 성도가 있는 곳에 온 주변에 성령을 받으면 성도가 뭐가 보이느냐 하면 갈라디아서 5장 18절이 보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성령 받은 자로 간주합니다. 기계+사랑이에요. 기계+언약.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끈이 떨어졌거든. 끈이 떨어져버렸으니까 이게 뭐냐 하면, 악마가 천국에서 끈 떨어졌잖아요. 악마와 똑같아요. 천국과 끈 떨어졌으니까 사랑에서 끈 떨어졌거든요. 언약에서 끈 떨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홀로 살아야 돼요. 복음 모르는 여러분 가족들 보세요. 다 홀로 살잖아요. 멀리 찾지 마세요. 그들이 주장하는 게 뭡니까? 분내는 것과 당파 짓는 것과 싸우는 것과 지 마음대로 사는 것, 자기 육신이 터져 나오는 대로 사는 이게 끈 떨어진 거예요. 자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거예요. 모든 일은 자기 좋으라고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는 겁니다.

묻지요. 너 왜 그렇게 사는지 물으면 그쪽에서 뭐라 하냐면, 몰라. 내 돈 벌어서 내가 쓰는데 니가 왜? 이러거든요. 너 왜 그렇게 사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생긴 게 이 모양인데. 악마가 없어요. 다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그게 전부인 거예요. 나는 이상하게 내 위주로 살고 싶어. 왜 그런지 몰라. 그 이유를 묻는 니가 이상해. 남들 다 그렇게 살지 않나? 하필 나만 붙들고 그런 소리하는 데. 그걸 묻는 니가 이상한데.

성도는 성령으로 보기 때문에 육체의 일, 육체의 일이 뭐냐 하면, 육신이 있기 때문에 벌어진 육신만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을 보게 되는 겁니다. 그 육신은 악마와 더불어 있는 육신이죠. 그것은 뭐냐?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결국 다윗에게 대들었던 대적들은 뭡니까? 다윗은 1과 2가 있는데 제3의 요소를 다윗은 공유하고 있는데 다윗을 공격하는 사람은 제3의 요소가 없으니까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으면 이미 죽은 자란 것을 모르니까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사는 거예요. 나는 내 기쁨대로 내 행복대로 사는데 너는 왜 십자가 지신 주님 위해서 살아. 이상하네, 라고 오히려 저쪽에서 의아해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그런 현상을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할 때는 그게 보여요. 평소에는 돈 보고 산다고 그것도 안 보이고 자기 육신만 챙기다가 퍼뜩 갑자기 정신 차려 보면, 내가 말씀을 대하고 십자가 대하는 경우가 생겨버리면 내가 이렇게 행복하구나. 괜히 어제 보상하려고 오늘 애쓸 필요 없고 내일까지 미리 당겨서 하지 말고 오늘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오늘도 살게 하신 것에 감사하면서 오늘치만 생각하자. 그렇게 사셔야 돼요.

주기도문에 나오지요. 주여 일용할 양식만 주시고 악마의 시험에 들지 마시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 그게 바로 성도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다 집어넣은 겁니다. 모든 인간이 다 끈 떨어진 것 맞아요. 이젠 그걸 볼 줄 알아야 돼요. 그렇다면 남들이 끈 떨어졌다면 나는, 여러분 자신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용서가 여러분 내부에 유입되면서 살아가는 자체가 범사에 모든 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몸이 아프고 힘들고 또는 육체가 피곤하고 돈이 없더라도 그것마저도 생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귀한 사랑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멀리 했던 말씀을 다시 대해봅니다. 우리 자신이 누군지를 다시 한 번 파악해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살아왔는지 이제 실감납니다. 그리고 오늘도 옛날 이스라엘 사람 못지않게 늘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남들에게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오히려 강건하여서 나보다 주님의 십자가 피가 더 귀한 것인 것을 귀한 생명인 것을 날마다 증거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191101b 울산강의.hwp (38.0K), Dow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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