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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9 12:13:11 조회 : 55         
20200306a 울산강의-레위기 25장 : 시간의 심판성 이름 : 한윤범(IP:14.39.134.102)
20200306a 울산강의-레위기 25장 : 시간의 심판성
(강의:이근호 목사)


레위기 25장 8절부터 12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 지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오늘 우리가 해야 될 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레위기 25장 24절에 보면,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라고 돼있지요. 같은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용을 위해서 중요한 것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안식일을 어디에다 집어넣느냐 하면, 모든 이스라엘의 절기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이 내용이 되고, 절기는 겉포장이 되는 겁니다. 포장지지요. 안의 내용은 안식일이 들어있어요. 그렇게 돼있습니다.

모든 절기에 안식일을 집어넣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하면, 두 번째, 기업이 나와요. 기업이란 말은 요즘 잘 안 쓰는데 기업이란 회사를 말하는 게 아니고 상속, 또는 상속물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상속이란 요즘엔 전부 다 돈으로 상속하잖아요. 구약성경에 이스라엘 상속은 뭘 뜻하느냐 하면, 바로 백성 그 자체를 말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 부모가 있어서 자식을 낳는 건 자연스러운데 하나님은 그게 자연스럽지 않고 마치 모든 시간에 안식일을 집어넣듯이 하나님이 만든 백성 안에 안식일의 취지를 집어넣은 인간 만들기, 안식일의 취지가 담겨있는 인간 만들기. 안식일이 들어있는 인간들, 이걸 달리 표현한다면, 언약이 들어있는 인간들로 보시면 되는 겁니다.

만약에 미래에 인공지능이 너무 발달해서 이제는 자식 낳는 것도 귀찮다. 회사원 뽑는 것도 귀찮다. 그러면 겉모습은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안에는 인공지능을 다 심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공장에서 인공지능을 장착한 휴먼로이드, 인간 같은 로봇을 생산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인간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어떤 공통점이 있느냐 하면, 개인적인 개성 같은 것, 특징 같은 것은 일체 없습니다. 인공지능에 준하는 지시와 명령에만 따르게 돼있어요. 기계지요.

언약이 들어있는 인간들, 앞에 뭘 집어넣을까요? 새 언약이 들어있는 인간들. 새 언약은 무엇을 새 언약이라 하느냐 하면, 언약하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완성이 될 때 그걸 새 언약이라 하는 겁니다. 구 언약은 날아가 버리니까 새 언약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을 히브리서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십자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했거든요. 요한복음 19장에서 다 이루었지요.

이 그림을 보겠습니다. 빨리 진도 나간다고 좋은 게 아니니까. 인간이 여기 있는데 십자가의 능력이 들어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설명해드리면 예수님께서 죄인으로 죽었다가 의인으로 사흘 만에 살아난 사건이 십자가 사건 맞지요. 혹시 강의 중에 아니면 아니라고 하세요. 그냥 죽은 게 아니고, 그냥 죽을 리가 있어요? 죄 때문에 죽고 의로 사는 겁니다. 그게 로마서 4장 끝에 보면 나와요. 이삭이야기 그 다음에 나오는 게 죄 인하여 죽고 의로 인하여 산다고 돼있거든요.

그러면 십자가 능력이 죄로 인하여 죽고 의로 인하여 산다는 이런 기능이 인간에게 찾아오게 되면 인간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기존의 인간의 육은 아담에 속했기 때문에 이거는 죄가 되겠지요. 아니면 아니라고 하세요. 인간은 아담에 속해서 아담의 죄가 되겠지요. 따라서 이 몸은 죽어야 돼요, 살아야 돼요? 이건 소실, 소멸돼야 되지요. 없어져야 되지요. 없어지는 동시에 여기에 새로운 몸이 생기겠지요.

죄로 죽이는 능력이 의로 새 사람 만드는 능력과 동일한 능력, 죄로 죽이는 능력이 그 사람을 의로 만드는 새 사람 만드는 능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예수님의 성령에서 나와요. 십자가의 효과로써 나오는 겁니다.

여기 옛 사람을 신천지 교회라 합시다. 신천지 교인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구원받을 수 있어요, 없어요? 없는 이유가 옛 사람을 계속 붙잡고 있는 거예요. 이 몸이 죽어 마땅한데 이 몸을 자꾸 구원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이 몸이 사그라지고 이 몸이 없어지는 걸 좋아해야 되는데 이 몸에서 나오는 어떤 행함, 이런 것으로 구원받으려고 시도하다보니까 십자가 능력 없이 다른 아이디어로 자기를 구원하려고 시도하는 거예요.

제 말이 신천지 이야기했지만 사실 신천지만 그렇겠어요. 모든 한국교회가 마찬가지지요. 나 잘났다 하고 싶은 거예요. 죽으라고 이야기했는데 안 죽는 거예요. 죽으라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보냈는데 안 죽는 거예요. 원래 신종 코로나는 감기 바이러스에요. 모든 인간은 평소에 코로나가 다 있어요. 함께 살고 있는 겁니다. 이번엔 좀 유별나서 그렇지 다 있어요.

인간에게 병균, 바이러스가 있고 결국 인간은 암이든 치매든 뭐로 죽는다는 말은, 이게 무슨 역할이냐 하면, 모든 일은 십자가 지신 새 언약을 지신 주님이 홀로 주관한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주인으로 여깁니다. 주께서 제대로 일을 지금 잘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반기면 된다 이 말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로마서 14장에 나오는 말씀대로 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죽이는 것도 주님이 죽이는 것이고 나를 죽이신 그분이 나를 살리신 분이라는 그 약속이 믿어지게 되면 알게 되면 그게 바로 복이란 말입니다.

이게 어려운 말이 아니고 굉장히 쉬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걸 안 들으려고 해요. 기존에 자기 몸에 대해서 너무 애착이 심해요. 병적이에요. 그것을 저는 환자라고 이야기하는데 주님도 나는 환자를 부르러 왔지 멀쩡한 사람 부르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가 환자인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새 언약은 신약이고 오늘은 구약을 하니까 레위기 25장을 하니 ‘새’는 빼버리고 언약이 들어있는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생산해내는 겁니다. 이게 뭐라고요? 이게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의 생산물, 상속물, 기업이라는 거예요. 이걸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시겠지요. 하나님의 백성이란 인간들이 설친다고 백성 되는 게 아니고 그 안에 무엇이 장착돼야 되고 무엇이 들어와야 됩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들어오는 거예요.

언약이 들어오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안식일이란 내용, 안식일의 취지가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겁니다. 일 번과 이 번 이해되시지요. 일 번은 모든 창조의 안식일이 절기 속에 들어온다. 절기는 레위기 23장에 쭉 나와요. 여러 가지 절기의 특징이 뭐냐? 절기 때마다 항상 안식일 지키는 것처럼 지켜요. 절기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고 속에는 안식일의 취지가 담겨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안식일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내가 쉰다, 또는 내가 논다.” 이게 맞을까요? “안식일은 나를 심판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a, 안식일은 내가 쉬는 날이다. b, 안식일은 나를 심판하는 날이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a일까요, b일까요? 방송 보는 사람들 답변해보세요.

이걸 어떻게 하느냐 하면, 언약의 내용이 안식일이라 했지요. 그러면 신약에서 안식일 내용의 완성이 십자가라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십자가 능력은 우리의 몸을 예수님의 몸으로 교체하는 거죠. 바꿔치기하는 거죠. 그러면 안식일에 내가 쉰다면 내가 교체되는 게 없잖아요. 그냥 쉬는 거잖아요. 6일 일하고 하루 쉰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안식일이 나를 심판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교체가 되는 겁니다. 이 교체가 노동의 교체에요. 네가 일해서 네가 살아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일해서 살아가는 몸이 교체된 몸이라는 거예요. 우리 몸이 안식일의 완성에 의해서 영원히 천국에 살 때 우리가 천국에 온 원인과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 내가 노동해서 들어온 게 아니고 누가 노동한 거예요? 예수님이 노동해서 들어온 몸이라는 것을 신약에 오기 전에 구약 때 안식일을 통해서 계속해서 반복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안식일은 이렇게 지키는 것이라고 해서 안식일은 주인님이 오셔서 구원할 자기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진정 안식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38년 된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에서 살리는 것도 그날이 안식일이었어요.

마태복음 12장 7절에 보면, 나는 제사를 원치 아니하고 자비를 원한다고 돼있거든요. 안식일에 제사하게 돼있단 말이죠. 구약에는. 그런데 마태복음은 구약이 아니고 신약입니다.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죠. 새 언약이니까 완성이잖아요. 완성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자비가 되는 거죠. 그런데 안식일을 완성시키는 주인공은 예수님이란 말이죠. 그 다음에 9절에 보면, 손 마른 사람이 있어서 병을 고쳤고, 또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져있으면 그걸 끄집어내는 것이 안식일 취지에 맞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안식일이란 뭐냐 하면, 주인공 되시는 분이 자비를 베풀어서 현재 죄(십자가는 죄 때문에 돌아가셨으니까)에 자기 백성을 건져내는, 빠져있는 인간이 노력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자기 약속대로 자기가 던져놓은 안식일 취지대로 하나님이 하나님 말씀을 지킴으로 그 효과로써 자기 백성을 건져내는 것 그게 안식일의 취지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안식일에 건져낼 때 과정이 뭐냐? 십자가의 과정을 밟겠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십자가는 죄를 지은 몸은 포기하라는 게 되죠. 그게 뭐냐 하면, 예수님마저 심판 받았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심판 받는 그것이 뭐다? 심판한다는 말씀이 곧 구원 시작이란 뜻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죄인으로 지적해서 심판한다는 게 구원에 돌입된 거예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너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이 자기 노릇한다고 해봤자 거기서 뭐가 나오겠습니까? 이미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이 설쳐봤자 이미 죄 이외는 아무것도 안 나와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잖아요. 하나도 없는 죄인 주제에 기도하고 예배하고 성경공부하고 뭘 해도 그게 뭐가 된단 말입니까? 죄가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거예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기침하면 계속 침이 튈 때마다 바이러스가 계속 나오듯이 날 때부터 죄인 된 자가 뭘 설쳐봐야 죄의 범주만 넓혀질 뿐입니다.

그게 123456일이에요. 인간은 6일 동안 노동을 해야지요. 죄를 지어야지요. 죄를 짓고 안식일에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는 어떤 일? 제사는 죽음을 표현하는 거죠. 제사할 때 맹숭맹숭 제사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린양을 잡을 때 그냥 붙들고 있으면 됩니까? 칼로 제사장이 목을 따지요. 기어이 거기서 뭘 끄집어내요? 양을 바치는 게 아니에요. 뭘 바칩니까? 양의 생명을 바치기 위해서 피를 내는 겁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십자가의 피라는 말은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주께서는 자기 백성을 모집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자기 피, 다른 말로 예수님의 자기 생명을 걸고 자기 백성을 모집하는 거예요. 기업이란 것은 예수님의 언약의 정보를 인공지능을 로봇에 장착, 넣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를 집어넣어서 언약의 백성들을 생산하면 그게 바로 기업이란 말입니다. 그게 상속물이란 말이죠. 우리의 상속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상속으로 그게 이스라엘 백성이란 겁니다.

그 안의 내용은 뭐다? 안식일이에요. 그래서 안식일은 뭘 하는 행위다? 나를 이 세상을 심판하는 거예요. 구원이란 것은 심판의 대상이 없으면 구원 자체가 안 돼요. 먼저 심판 받을 만한 대상이 만들어져야 그 죄 속에서만 의가 나오는 거예요. 죄가 없이 의가 안 나오게 돼있습니다. 중립에서 의가 안 나와요. 죄가 있는 데서 의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은 자꾸 자기 행위로 선한 일을 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생명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 생명을 모독하는 건데, 자기가 갖고 있는 선악적인 사고방식으로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가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인생을 살 때 자기 우수함을 지키는 재미로 사는 거예요. 선한 것들을 축적하는 재미로 사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신천지고 한국교회 아닙니까. 지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겁니다.

이렇게 할 때 일 번, 이 번, 삼 번 알겠지요. 사 번 들어갑니다. 첫 번째는 안식일, 언약. 두 번째는 상속, 기업. 세 번째는 안식일이란 심판하는 것. 왜냐하면 심판 자체가 구원의 개시, 구원이 발동 걸린 거예요. 구원이 출발한 겁니다. 네 번째가 뭐냐 하면, 이렇게 죄이라는 것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안식이 없이 왜 스스로 구원이 안 되는 이유를 알아야 돼요.

현실적으로 인간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인간이 신이고 싶다. 하나님이고 싶다. 이건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창세기 3장에서 누가 제안한 겁니까? “너는 신과 같이 될 것이다.” 악마, 뱀이 제안하지요. 너는 신이고 싶어 해야 돼. 그러니까 사람이 사는 목적은 뭐냐? 내가 절대자가 되는 게 사는 목적이고 이 세상사는 보람이라는 거예요. 최고가 되는 것 있잖아요. 만약에 자녀가 있는데 “너, 커서 뭐할래?” “머슴살이할래.” 이러면 부모가 쥐어박아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나, 대통령될래.” “오오 대통령돼야지.” 머슴살이와 대통령 중 어느 것이 최고냐 하면, 대통령이 더 최고지요.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굶으시면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 현장에 누가 나타났습니까? 악마가 나타났지요. 여기서 마태복음 4장에서 악마가 나타난 걸 우리가 아는데 악마가 나타났다는 걸 지우세요. 악마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옆에 다정한 이웃, 아주 인정 넘치는 사랑이 넘치는 이웃이 와서 예수님에게 위로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첫째는 지금 예수님이 굶고 있잖아요. 이웃에서 와서 하는 말이, “아이고, 기도도 좋지만 밥 잡숫고 하세요.” 그 말이 인간미가 넘치는 말이지 누가 그 말을 악마가 했다고 하겠습니까. 그러고 있는데 또 어떤 아저씨가 와서, “하나님 아들 맞지요. 하나님 아들이라면 인간이 행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행할 텐데. 성경말씀에 보니까 메시아가 오게 되면 천사가 와서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신체를 보호한다는데 그것 한 번 보여줘요. 저 성전 꼭대기가 높은데 일단 올라갑시다.”

그래서 예수님 데리고 성전 꼭대기 올라가서, “여기서 뛰어내려 보세요. 그러면 당신은 진짜 메시아, 엄지 척.” 지금 마귀란 말 안 했어요. 어떤 팬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사람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 정도 솜씨 부리면 당신 추종 세력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기적을 베풀면 당신은 큰 목회할 것이고 사람들이 아마 십사만 사천 이상으로 모일 것입니다.”라고 했고.

그래 놓고 예수님이 하는 말이, “너는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측정하지 말라. 시험하지 말라.” 네가 측정해서 믿는 하나님 같으면 그건 하나님이 아니다. 손에 딱 쥐어주는 하나님은 하나님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죠. 아담에 속한 우리의 모든 걸 심판하시는 분이지 의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앞에 죄라는 것이 있지요. 죄라는 것은 우리의 의논 대상이 아니에요. 죄가 있는 곳에 뭐가 있습니까? 심판이 있지요. 심판 대상이 우리와 협의대상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거예요. 인간들은 뭐 되고 싶다? 신이 되고 싶은 거예요. 이게 인간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상이 아니고 문제 있다는 말씀을 지금 제가 드리는 겁니다.

문제 있다는 걸 말씀드려도 우리 마음은 항상 저 최고를 지향해요. 최고를 향하지 바닥은 싫어요. 우리는 뭐라고 더 남보다 뛰어나고 최고 인물이 되고 싶어요. 영웅 있지요. 히어로, 영웅이 되고 싶은 거예요. 인간은 신이 되고 싶다. 이것 죄입니다. 없애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돼요. 없애란 말이 아닙니다. 죄가 있는 곳에만 하나님의 의가 만들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두 번째가 뭐냐 하면, 과학적으로 관찰해 볼 때 인간은 흙이 됩니다. 종교적으로 인간은 신이 되고 싶어요. 인간은 종교를 통해서 기독교나 이슬람, 힌두교를 통해서 인간은 절대자가 되고 싶어요. 모든 종교는 인간을 절대화시키는 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독교, 천주교 다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와 악마는 한 패 먹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신천지만 그런 게 아니고 다들 그래요. 교회 안 다녀도 종교가 없어도 신이 되고 싶은 거예요. 남한테 간섭받기 싫은 겁니다. 잔소리 듣기 싫은 거예요.

어떤 사람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선배가 물었어요. “네가 결혼하고 난 뒤에 어떤 점이 달라졌나?”라고 물으니까 새로 결혼한 남자가 딱 한 마디 했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하면 모든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하니까 이게 싫었다는 거예요. 뭐냐 하면, 아내의 잔소리. 이거는 결혼하기 전에는 생각도 못했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잔소리가 듣기 싫은 이유가 뭐냐 하면, 인간은 누구로부터 간섭과 지시를 받기 싫어합니다.

두 번째. 인간은 흙이다, 라는 것은 과학입니다. 과학에서 관찰해보니까. 눈으로 관찰한 거예요. 과학은 눈으로 관찰한 것이 진리기 때문에 인간은 흙이다. 그러면 과학은 흙 다음에 뭐다. 이런 건 없어요. 흙 다음에 뭐가 돼요? 몰라요.

세 번째, 성경에선 뭐라고 합니까? 인간은 죄인이다. 죄인이면 그냥 죄인입니까? 받아야 될 게 있지요. 죄인이 받을 것은 저주지요. 저주와 심판. 인간이 악마한테 매인 것도 저주에요.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저주고 심판. 그리고 흙 다음에 뭐가 나오느냐? 지옥이죠. 그러나 과학에선 지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흙으로 멈춰버립니다. 살다가 죽고. 죽는데 죽는 수명을 좀 늘여볼까, 이런 식으로 연구할 뿐이지 죽고 난 뒤는 모르지요.

죽고 난 뒤의 사실을 모르면서 죽기 전에 안다는 것은, 이거는 논리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왜냐하면 죽고 난 뒤를 모르면 죽기 전에 안다는 것도 모르는 것에 지배를 받아야 돼요. 죽고 난 뒤를 모르면 죽기 전에 알았던 것도 죽고 난 뒤의 사실로 인하여 전부 다 오류가 된다는 생각을 그들은 가져야 됩니다. 내가 죽어보니까 인생 잘못 살았다는 그런 것을 각오를 해야 돼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지요. 거지와 부자가 있었는데 눈에 보이는 과학적으로는 부자가 영웅이지요. 부자가 좋고 거지는 싫은 거예요. 모든 인간이 싫어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1번에 의해서 거지가 인간의 소원이 된 사람이 있어요? 없잖아요. 몸 아픈 것이 소원입니까? 어느 인간이 자기 몸 아프기를 소원합니까? 없지요. 왜 예수님께서 비유를 하시면서 건강하고 잘 사는 부자와 가난한 정도가 아니고 몸이 아파요. 몸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왜 이렇게 대비했을까요?

그 대비는 천국과 지옥이 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역전된 의미로 나타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몸 아프고 거지 되면 천당 간다는 말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몸 덜 아프고, 아예 안 아프고 돈도 너무나 많은 것을 인간이 추구할 때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믿음과 구원과 천국은 인간에게 밉상을 받는 그러한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죠.

성경에서의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은 구원이 안 되고 구원이 없어요.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은 구원이 아니고 반대로 저주가 주어져야 하나님 원칙에 맞는 겁니다. 인간이 구원되고자 하는 것은 1번 때문에,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 하는 거지만 사실은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에 해당이 없어요. 그럼 구원은 어디 있느냐? 구원은 언약 안에 담겨 있어요.

아까 제가 이야기한 것을 다시 기억해보세요. 인공지능이 있지만 그걸 인간의 모습으로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놓게 되면 인공지능이 장착된 휴먼로이드, 로봇이 계속 생산된다고 이야기했지요. 그걸 제가 2번에서 하나님의 상속, 상속자, 또는 하나님의 백성, 더 포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 다른 말로 하면 이스라엘로 보면 됩니다.

그 안에 장착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만들어내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언약의 주인공이니까 안식일의 주인이니까 그래서 자비를 베풀 게 되면 예수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서 죄를 죄 되게 하고 그 죄 속에서 의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예수님 혼자서 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이 거든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구원은 언약 안에 있다. 이걸 신약에서 십자가 안에 있다. 그래서 구원의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십자가에 있는 거예요. 제가 아까 이야기한 걸 다시 이야기하게 되면, 십자가 안에 있다는 것은 안식일에 바치는 어린양 몸체 안에 들어있는 피.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피는 곧 생명이니까. 유월절에 피를 바름으로써 이 집안은 이미 죽은 걸로 간주해서 심판의 천사들이, 심판의 천사들은 무서워요. 융통성이 하나도 없으니까. 우리의 착함이고 의로움, 이런 것 안 봅니다. 우리의 착함, 성실함 보지 않고 그냥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요.

요한복음 1장에서 세례요한이 하나님께 계시를 받고 예수님을 볼 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죄가 있어줘야 무슨 개념이이 구성되느냐 하면, 어린양이 구성이 돼요. 죄가 없으면 어린양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앞에 뭐가 붙어요. 어린양이 어떤 어린양이냐 하면, “일찍 죽으신 어린양”, 일찍 죽으신 어린양이 성전이 천국에 있습니다. 기념물로. 일찍 죽었다는 말은 이미 이 세상은 기대할 게 전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한 걸 결론내면, 안식일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는 시간, 하나님의 시간 이걸 저는 천상의 시간. 하늘에서 주어졌으니까. 천상의 시간의 용도는 하나님의 심판이죠. 하나님의 심판이 되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대단히 쉽습니다. 이제부터 상당히 어려워요. 여기까지는 쉬우니까 단단히 기억해주시고요.

자, 이 세상의 시간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서 미래로 나아간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걸 단선형(선이 하나밖에 없지요) 시간관이 되는 겁니다.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나아가는데 과거라는 것을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기억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가니까 사람들은 이걸 뭐라고 비유하느냐 하면, 흘러가는 강에 비유한 거예요. 시간은 마치 유수와 같다. 또는 흘러가는 강이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정한 안식일 또는 하나님의 시간은 흘러가는 강 또는 달리는 열차,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달려가는 시간에 하나님의 안식일은 거기에 올라타 버려요. 올라타서 갉아먹습니다. 왜 갉아먹느냐 하면, 이게 심판이니까요. 따라가면서 심판해버려요. 인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하루 또는 한 달 또는 일 년이 되잖아요. 단순 과거, 현재, 미래로 가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생각이 이거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다른 민족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르지요. 유일하게 하나님의 언약이 장착된 민족은 언약을 받은 민족은 이스라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시간은 뭐냐 하면, 아까 레위기 25장 8절의 말씀처럼 7x7+1 이게 희년이 되는 겁니다. 기쁘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7년은 123456, 7이거든요. 그 다음에 곱하기 7이라는 것은 반복이에요. 7의 반복, 다른 말로 하면, 7의 주기성이에요. 주기란 말은 공전한다. 뭔가 중심점이 있고, 중심점에서 시간이 나오고 그 풀려나오는 시간이 다시 중심점으로 회수되는 식으로 공전, 반복이 된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강이 흘러갔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얼어붙은 강이에요.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에서는 나이 몇 살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네가 안식일에 나무 안 한 것이 중요한 겁니다. 네가 나이 몇이냐, 생일이 언제냐, 이게 아니라 다가오는 안식일에 네가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가 중요해요.

아까 이야기 다시 해보겠습니다. 안식일은 뭐하는 무슨 날이라 했습니까? 안식일은 심판이죠. 심판은 교체지요. 교체의 진짜 원형은 십자가라 했습니다. 죄로 인하여 죽고 죄로 죽은 죄 안에서 의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하나님의 상속되는 천국 가는 백성을 거기서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뭐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데 이거는 우리 몸속의 의식이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꾸 과거를 포기 못해요. 그리고 그 과거의 끄트머리가 현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치 핵탄두에서 탄두 있잖아요. 시간을 계속 생산하는데 과거가 계속해서 밀고가면 과거의 뾰족한 총알 끝, 탄두 끝이 현재에요. 현재의 내용은 실은 전부 다 과거입니다. 현재는 그냥 점에 불과하고 뒤돌아보면 전부 다 내 과거에요. 자기의 과거입니다.

그렇다면 미래가 있다는 데 미래는 상상이죠. 현재가 시간의 끝이기 때문에 미래는 없는 거죠. 미래를 구상하는 것은 어디를 근거로 상상하는 거냐 하면, 인간은 과거 밖에 기억 밖에 모르기 때문에 기억을 기억해서 상상하니까 이게 미래가 되고 이게 꿈이 돼버리죠. 헛꿈이죠. 다른 말로 개꿈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혜를 통해서 과거에 한 것을 미래에 되풀이하려고 애쓰게 돼요. 반복을 하려고 애씁니다. 예를 들면 내가 앞자리에서 기도하니까 응답이 되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뒤에 앉지 않고 앞자리에 앉게 되면 지난 날 은혜 받은 것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렇게 돼버리면 아까 안식일에서의 되풀이, 하나님 뜻의 되풀이는 뭐냐 하면, 심판의 되풀이 또는 다른 말로 하면, 현재 내게 있는 기억을 갉아먹는 행위의 되풀이에요. 내 모든 기억을 부정해버리고 죄로 규정하는 되풀이인데, 세상적인 되풀이는 뭐냐 하면, 나 잘난 기억을 미래에 또다시 뽐내려고 하는 되풀이에요. 이 기억의 덩어리를 자아, 또는 자아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자아라고 하니까 어렵습니까? 그러면 인간의 나.

인간의 나라는 것을 뜯어보면 기억이 들어있고 그 기억은 어떤 기억이냐 하면, 나 잘났다는 기억이에요. 잘났다는 기억이 아까 지워버렸지만 1번이 뭐였습니까? 나는 신처럼 된다. 인간은 어떤 것을 기억하느냐 하면, 본인이 남한테 내세울 때에 꿀리지 않는 것들만 기억이 되고, 그 다음에 어떤 것은 기억하되 감추는 기억이 되느냐 하면, 잘난 척하다가 개 피 본 것 있잖아요. 실패한 것, 잘난 척하다 창피당한 것은 감추는 용도로 기억 돼요. 못난 것은 감추고 잘난 것은 내세우고.

이게 죄인이 아니라 나는 계속 잘난 존재로 가고 싶은 거예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이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잘났느냐 하는 그 이야기에요.

그래서 그걸 제가 알기 때문에 아까 안식일이란 심판한다. 하나님의 시간은 다 갉아먹는 거예요. 그걸 다 부정해버리는 거예요. 죄로.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죄를 언급해줘야 돼요. 죄가 있어줘야 의가 나오니까요. 죄가 없는데 의가 안 나오거든요. 죽음 속에서 생명이 나오는 거예요. 십자가에 예수님이 죽어야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오지 죽지도 않았는데 구원의 능력 없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 대해서 계속 한 것이 뭐냐 하면, 죽지 않고 메시아 하라는 거예요. 뭐로? 힘으로. 돌이 떡 되게 하고, 뛰어내렸는데 희한한 재주를 부리고, 그리고 세 번째가 세상 부귀영화를 다 가진 모든 걸 갖고 싶어 하죠. 그게 유혹이니까. 그래서 죽음이란 걸 입 밖에 내지 말고 잘 된다, 잘 된다. 긍정적 사고방식, 적극적 마인드. 네 몸으로 잘 된다. 네 몸 교체하지 마. 그냥 네 몸으로 건전하게 경건하게 거룩하고 보존하면 천국 가, 라는 식으로 자꾸 악마는 우리에게 심어준 본성을 격려하고 독려하고 칭찬하는 쪽으로 계속 나가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무슨 종이 아니라 했습니까?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죠. 이걸 달리 이야기하면,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나는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을 나한테 기대하지 마라. 너희들의 듣고자 하는 말은 나한테는 기대하지 마라. 왜?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니까.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지 사람의 종이 아니다. 그리고 심지어 나라 할지라도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안식일이란 마지막 때 창조의 완성으로 준 거예요. 그래서 안식일을 집어넣었다는 것은 창조의 취지를 하나님께서 그것을 만회하시고 완성시키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안식일을 집어넣습니다.

우리 성경 한 번 찾아볼까요. 민수기 14장 33절부터 제가 읽어볼게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라고 돼있지요.

지상에서는 며칠입니까? 40일. 40일 맞지요. 그런데 천상에서는 40일입니까, 40년입니까?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 됐지요. 그렇게 환산시키고 바꾸는 취지가 뭡니까? 뭐하기 위해서? 심판하기 위해서지요. 심판한다는 말은 인간의 시간에 대해서 하나님의 시간적 차원에서 심판하는 거예요. 인간의 시간 자체가 심판 받을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개념이. 왜 그러냐 하면 아까 시간은 뭘 하나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하늘에선 그렇게 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10분 쉬고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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