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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2 16:01:47 조회 : 45         
20201009a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율법의 저주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96)
20201009a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율법의 저주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 강의는 레위기 26장 27절부터 보겠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 배나 더 징책 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내가 너희의 산당을 헐며 너희의 태양 주상을 찍어 넘기며 너희 시체를 파상한 우상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내가 너희 성읍으로 황폐케 하고 너희 성소들로 황량케 할 것이요 너희의 향기로운 향을 흠향치 아니하고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거기 거하는 너희 대적들이 그것을 인하여 놀랄 것이며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레위기 26장 이야기는 율법을 준행치 아니할 경우에 나오는 하나님의 벌칙에 대해서 쭉 나열하고 중이었습니다. 예를 들게 되면, 16절에 폐병 나오고 열병 나오지요.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고, 그리고 파종이 안 돼요. 헛되게 되고 농사 지어봐야 적들이 와서 그 농산물을 다 먹을 것이고, 17절에 보면 전쟁해봐야 패할 것이고,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자가 우리를 지배할 것이고, 쫓는 자가 없어도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치기 바쁘고.

그래도 그들은 청종치 아니할 것이니까 20절에 보면 너희 수고가 헛되고 땅은 소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징벌을 받아요. 그리고 21절에 들짐승을 보내서 재앙을 더하고, 너희 자녀를 들짐승이 와서 죽여 버리고 가축도 죽여 버리고 가축 숫자가 감소될 것이고, 늘 잘 닦았던 도로가 황폐해지고. 그래도 너희들은 나를 대항할 것이다.

그 다음에 25절에 보게 되면 악한 원수가, 너희 중에 염병, 전염병이 퍼지고 적들에 사로잡히고 양식이 끊어지고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떡을 먼저 굽겠다고 난리도 아니지요. 그리고 먹어봐야 배부르지도 않지요. 그 다음에 오늘 27절에 오게 되면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게 될 것이고 딸의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사람이 먹을 게 없어서 자식의 살점을 구워서 먹게 될 것이란 거예요.

여기 나오는 율법의 벌칙들은 인간들이 거부하고 싶은 인간들이 그런 일은 안 닥쳤으면 하는 그러한 조항들은 다 나와 있는 것 같아요. 놀부도 이런 징벌을 안 받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은, 징벌이란 것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벌도 받고 복도 받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율법이 갖고 있는 심판성, 율법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성을 품고 있어요. 율법을 줬다는 것은 이제부터 너희에게 심판을 내리겠다는 뜻입니다. 뭐 받을까 말까라는 그런 결정권도 없고 선택사항이 아니란 거죠. 왜 그러냐 하면 이스라엘 자체가 그 자체로선 왜 이스라엘이 있는 줄 몰라요. 근데 율법이 옴으로써 율법이란 심판성이니까 동일한 심판성의 요소를 이스라엘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겁니다.

율법을 줬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성이 이스라엘 안에 들어온다는 뜻이에요. 그래야 율법과 이스라엘이 뭐가 되느냐 하면 동질이 됩니다. 같은 질이 돼요. 하나님의 심판이 들어온다는 것을 누가 원하겠어요? 아무도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운명이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운명 자체가, 하나님의 법(율법)은 대단히 무섭다, 그 무서움이 말로 무섭다는 게 아니라 그 무서움이 이스라엘 내부, 안까지 들어오겠다는 거예요.

엄청나게 무서운 것, 그 무서움이 이스라엘 안 쪽까지 들어와서 이스라엘 되게 한 핵심 조건으로 심판성이 자리 잡겠다는 겁니다. 율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율법이 있는 이스라엘은 필히 멸망하게 돼있어요. 율법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법이 있는 민족은. 이스라엘은 수동적 입장이에요. 주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사람들의 생각하기를 이스라엘이 말씀을 지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데 그걸 만약에 지켰다고 하면 못 지키면 사례를 발생시키지요. 발생시켜서 율법 정도는 우리 속에 안 들어와도 우리가 알아서 그만큼 착하니까 굳이 율법이 언급하는 율법을 안 지켰을 때는 이런 벌칙이 있다는 것이 굳이 이스라엘 속에 들어올 필요 없도록 사전에 착하게 살면 되지 않겠느냐, 라는 것을 하나님께선 용납하지 않습니다. 허락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심판성이 없으면 그 자체가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게 아닙니다. 율법이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창조한 거예요. 왜? 율법이 이 정도로 무섭다는 것, 하나님이 이 정도로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만든 겁니다. 본인이 골라잡아 이건 집어넣고 저건 안 하고 그러한 위치에 있지 않아요. 이스라엘이 그런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이방민족이야 율법이 있으나마나 자기 인생 살면 그만이지만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율법과의 만남, 율법이 무엇인지 증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든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벌칙이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우리의 죽음보다 더 무거워요.

우리가 죽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 밟으란다, 이런 것 없어요. 우리 죽음보다 더 나가요. 네가 죽는다고 해서 율법의 처벌을 이제는 그걸로 종결된 줄로 아느냐 어림도 없지. 죽어서 본격적으로 내가 손볼 거야. 죽음도 주님의 저주를 회피 수단이 될 수 없어요. 나의 죽음이. 목숨보다 하나님의 거룩이 더 무거우니까, 엄중하니까.

사람들의 이러려고 교회 왔나, 하는데 싫으면 교회 나오지 말든지. 이러려고 교회 왔나, 하면 교회 오는 것을 누가 선택했다? 본인이 선택했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되거든요. 본인이 선택한 사람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선택하면 그 본인 안에는 본인이 선택한 것만 모여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를 해코지 할 것은 들어온다, 안 들어온다? 들어올 리가 없지요. 사전에 검열해서 다 내쫓아버리지요. 이스라엘은 그게 반대라니까요.

그러면 우린 생각하기를 아이고, 이스라엘 불쌍하다, 이러잖아요. 이스라엘 안에 누가 들어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있어요. 하나님의 이름이 동행하고 있다고요. 하나님의 이름은 쉽게 말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냥 하나님이거든요. 보이지 않는 것 빼버리면 그냥 하나님이에요. 그러면 율법의 저주와 징벌은 누가 받아요? 하나님 본인이 받아요.

이게 인간이 상상도 못할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한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과 동행하면서 율법의 저주를 자처하시는 하나님, 모든 저주를 하나님이 하나님께 때리시는 그 하나님. 인간은 다 쳐버리지요. 인간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나를 안 다치게 하는 하나님을 교회 와서 믿잖아요. 교회가 그걸 상품으로 제시했고 교회 오시면 복 받습니다, 했잖아요.

아니에요. 이스라엘은 그런 가짜 교회가 아니에요. 이스라엘은 되고 싶어서 이스라엘 된 게 아니고 친히 선택해서 됐어요. 하나님의 이름이 선택했어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으로써 너희는 무엇을 목격해야 되느냐 하면 모든 저주는, 하나님이 내린 저주는 하나님 내가 받는다는 사실을 너는 목격하고 증거하라고 이스라엘을 만든 거예요.

이것은 우리의 안일함을 깨우는 거예요.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오늘도 복 받을 거야. 장난하느냐? 그건 장난이에요. 그건 절이나 다를 바 없지요. 장난치고 있는 거예요. 어느 누가 율법에 죽 나열한 이 율법의 저주를 누가 자처해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걸 자처해서 감당하신 분이 계셨으니 예수님입니다. 너, 감당할 수 있겠어? 안 되지? 내가 감당할게.

이스라엘에 처음부터 율법을 준 게 아니고 시내 산에서 모세와 만나고 난 뒤에 그 다음부터 처벌이 따르는 법조항이 주어집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이런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안 가르쳐줬습니까, 하는데 처음부터 가르쳐줬어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이 없었으면 이스라엘이 발생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디서 시작하느냐? 유월절부터 시작해요.

히브리인들이 생각하는 유월절에서 주목되는 것이 두 부류인데 첫 번째는 히브리인들, 혈통으로는 아브라함 자손들이죠. 애굽에 있는 히브리인들이 유월절에 주목을 받는 중심 되는 위치에 있느냐, 아니면 중심 되는 위치가 히브리인들의 아니고 바로 어린양이 주목을 받느냐, 하는 겁니다.

여러분, 유월절 다 아시지요. 하나님의 심판의 천사가 드론처럼 날아와서 집집마다 빠짐없이 도망쳐도 소용없어요. 빠짐없이 그 집안의 제일 맏이는 본때 보이듯이 잘라버려요. 장남을 죽인다는 것은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혈통을 유지해야 될 책임자가 맏이입니다. 장녀는 시집가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맏이를 아버지 기력의 스타트, 시작이다. 장남이 살아 있으면 아버지는 죽어도 자기의 요소가 계속 살아 있기 때문에 인간은 죽어도 혈통 안에서 영원하다는 그러한 인간들의 의식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유교에서 조상제사를 그렇게 강조하는 겁니다. 모든 민족이 조상제사가 있는 이유가 자식이 나의 분신이라는 거죠. 나는 늙어죽어도 나를 대리해서 자식이 계속해서 또 자식을 낳으면 나는 계속 영원하잖아요.

현대 분자생물학의 이론에 의하면 dna가 그거잖아요. 50%, 50% 받고 그 다음에 손자 대에는 내 dna가 16%인가 있을 걸요. 나중에 희미해지겠지만 어쨌든 간에 나는 자식 안에 살아 있잖아. 그런 자부심을 갖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내가 영원불멸하고 싶어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은 누굴 닮았겠어요? 나를 쏙 닮았겠지요.

그러면 그 자식을 죽인다는 것은 내 목숨보다 더 무거운 것을 죽이는 거예요. 내가 한평생 살면서도 언젠가 죽는 것이 그다지 서럽지 않는 이유는 나의 분신이 내 대신 계속 살아 있으면 나는 그 안에 살아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맏이를 죽인다는 것은 네 혈통은 하나님의 개입에 의해서 막혀버렸다는 겁니다. 너의 영원불멸을 하나님 쪽에서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거예요.

그래서 유월절에 죽음의 사자가 집집마다 방문해서 맏이 다 죽여 버립니다. 그런데 히브리인 집에 가니까 어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어린양의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발라놨잖아요. 유월절 뜻이 뭐냐 하면 쉽게 말해서 천사가, “야, 이 집 그냥 건너뛰자.” 여러분, 건너뛰게 되면 천사가 그냥 건너뛰는 거예요. 건너뛴 그 자리에 뭔가 건너뛸 수밖에 없게 만든 그것이 유난히 눈에 부각이 되겠지요. 눈에 띄겠지요. 그게 뭐냐? 어린양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히브리인이란 인간들이냐, 아니면 어린양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냐? 어느 것이 주도권을 갖고 있습니까? 어느 것이 핵심요소가 되어서 얼마 안 있어 생겨나는 민족, 이스라엘 민족의 핵심요소가 되겠어요? 히브리인들이겠어요, 안 그러면 어린양이겠어요? 어린양이죠. 어린양이 부각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에서.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약속이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유지시켜주는 거예요. 어린양의 취지가 계속 살아나야 된단 말이죠. 어린양의 취지가, 어린양이 어떤 인물이라고 봅시다. 그 당시 어린양이 양이 아니고 인격적 소지를 갖고 있다고 봅시다. 그러면 어린양이 그 문 앞에 무엇을 봤겠습니까? 죽음의 천사가 맹렬하게 죽여 버리고 심판을 행사하는 것을 어린양이 다 목격했겠지요.

인격적인 인간적이 속성이 그대로 지니고 있다면 눈이 있다면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선 봐주지 않고 다 죽여 버린다는 그 정도로 하나님께선 죄에 대해서 일체 양보가 없고, 죄라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허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목격했겠지요. 살아 있는 어린양이 목격했느냐는 겁니다. 그게 어린양의 피를 발랐지요.

그러면 하나님도 주목하고 천사도 주목하고 바깥에 정면으로 죽음의 천사를 맞이해야 될 어린양의 요소, 피가 어린양에서 나왔으니까 피의 한 요소, 어린양의 부분도 그걸 목격했다면, 어린양이 피 흘렸으니까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이 말이에요. 이건 좀 어렵지만 여러분 이해할 거예요.

어린양의 죽음 자체를 계속 살려내는 식으로 이스라엘이 유지돼야 되는 거예요. 어린양의 죽음 자체를, 어린양이 죽었다는 것 자체를 손실시키면 안 돼요. 이걸 없애버리면 안 돼요. 피라 하는 것은 이 땅에 죄의 자국을 남기는 게 피에요. 이 땅에 피를 흘렸다는 말은 이미 너는 애초부터 죽은 자이기 때문에 그 죽은 자가 어떤 것이 하나님이 만든 깨끗한 세상을 더럽혔다, 라고 할 수 있는 표식 같은 것이 하나님께서 피를 사용한 겁니다.

이 땅을 더럽게 하는 액체가 더러운 인간에서 땅을 더럽힐 수 있는 요소로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 뭐냐? 피가 적시는 것을 죄가 땅을 적시는 것으로 보시는 거예요.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고 창세기 4장에 보면 그게 아벨이란 사람이 피를 흘리지요. 그 피를 흘리는 사건에 악함이 개입된 사건입니다.

멀쩡하게 아벨이 짱돌로 자기 머리 쳐서 피 흘린 것 아니잖아요. 외부에서 누가 가해했잖아요. 죄악 된 폭력을 행사했잖아요. 누구지요? 가인이지요. 가인의 죄가 아벨을 통해서 죄의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벨의 죽음으로 땅을 적신 거예요. 액체로써. 적시니까 창세기 4장에서 뭐라 하느냐 하면, 땅이 땅에 죄 묻었다고 누구한테 호소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땅이 호소를 하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땅은 하나님과 잘 통하는 사이였어요. 땅에서 일어난 일을 그때그때마다 즉시로 하나님께 다 보고가 되는 겁니다. cctv가 없는 시대에서도. 피를 흘린 거예요. 피를 흘렸다는 말은 악한 사건, 용서받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죄가 이 땅에 자국을 남긴 그 사건에 전부 다 몰입해야 돼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주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 35절에서 36절 보면 이런 말씀 나와요.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 괜한 사람 죽였다, 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 있는 사건들을 배열시켰어요. 그 대표적인 것이 아벨에서 사가랴, 그리고 마지막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피.

그러면 이스라엘의 기능이 뭐냐? 어떤 귀한 사건을 모시고 가마 태우듯이 계속 모시고 유지해야 될 기능이 이스라엘 기능이에요. 그 귀한 사건이 무슨 사건입니까? 그냥 어린양이 아니고 어린양의 죽음 사건이에요. 어린양 피 발라서 우리가 구원받았다. 그 개념이 아니에요. 그건 자기 구원받기 위해서 아주 환장한 것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우릴 구원했다, 피 줬다가 아니에요. 그럴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실 이유도 없고 율법을 줘도 지킬 만한 것만 지키고 복 받을 것만 지키지 저주받을 조항을 아예 제시 안했겠지요. 이스라엘 구원하는 데 얼마나 용을 썼는데 또 망치게 하겠어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망치느냐, 안 망치느냐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자체는 이스라엘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 된 게 아니란 말이죠. 뭔가 다른 귀한 핵심적인 본질적인 요소를 위해서 이스라엘 된 거예요. 어떤 사건을.

어린양, 그것도 흠 없는 어린양이 죽어서 피 흘렸다. 피 바르면 구원된다는 뜻이 아니고 이 피에 대해서 너희도 주목하고 하나님 나도 주목할게. 왜? 그 저주를 유월절은 어린양이지만 그 실체는 하나님 본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본인이 하나님 심판을 다 담당했어요. 다 감당했어요.

그걸 모셔야 되고 그걸 운반해야 될 임무가 누구냐? 바로 성도지요. 구약에선 이스라엘. 거기다가 자기 구원을 왜 쓸데없이 끼어들어요. 자기 구원을 빼버리세요. 날 구원하려고 하나님께서 오신 게 아닙니다. 내 행복 주시려고 오신 게 아니에요.

인간의 죄라는 것은, 땅을 뭐로 보느냐 하면 땅을 이렇게 봐요. 땅은 나를 기념하는 곳, 이렇게 본다고요. 기념 오래 하려면 내가 생존해야 되니까 내가 여기 이 지점에 터를 잡고 살란다. 왜? 살면 살수록 나는 그 동네에 이십 년 살았다고 자기를 기념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어느 교회 다닌다. 왜? 그 교회 다녀서 구원받았다는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하면 그 의미가 자기한테 도로 소환돼요. 그런 성경말씀, 그런 하나님은 없어요. 나 구원받고 천당 보내는 하나님은 애초에 없단 말이죠.

우리가 사건을 모셔야 돼요. 하나님께선 우리 자신을 죄로 규정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 쏟고 있습니다.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해서 죄인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 있는 거예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마저 이 땅에 와서 죄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입니다. 피 흘린 거예요.

땅은 인간을 기념하는 곳이 아니고 신명기 12장에 보면 약속의 땅이란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이에요. 구약에는 그냥 이름뿐이지요. 여기 몸이 붙어 있으면 신약의 예수님 돼요. 그래서 예수님은 주의 이름으로 오신 거예요. 구약의 주의 이름은 약속대로만 하나님이 창세전에 생각한대로만 일을 하시는 분의 이름이에요. 그걸 언약이나 약속이라 하는데 이미 창세전에 결정된 그 원리원칙만 고수하면서 줄곧 오셨고 그 주의 이름과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온 마리아의 몸과 결합이 되면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은 죄가 무엇이냐, 그 죄라는 것은 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 본인이 직접 죄가 되신 거예요. 죄인이 되신 거예요. 모든 율법의 저주를 다 받아서 하나님 자신이 죄인 되려면 율법이 주어져야 돼요. 율법의 조항이 주어졌고 그 율법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온 것 맞는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뭐냐? 주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에요. 죄인이란 이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는 그 사실이 객관적 사실이에요. 이 땅에서.

인간들은 겁나서 다 내빼고만 거예요. 율법은 이스라엘 속에서 동질의 미지의 인물을 찾고 있어요. 율법의 정신과 동일한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찾아내는 거예요. 율법과 율법을 완성시킬 분의 만남. 율법의 저주가 율법의 완성을 뜻하거든요. 율법대로 저주받는다는 것이 뭔 뜻입니까?

율법은 생생하게 현실이란 뜻이에요. 율법은 장난이 아니라는 겁니다. 농담이 아니란 뜻이에요. 하나님의 뜻이 농담이 아니고 헛소리가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다 하는 농담 삼아 던진 말이 아니에요. 실효성 없는 말이 아니라고요. 율법은 정말 하나님의 법대로 뜻이 담겨서 이게 농담이 아니고 실효성 있다. 정말 세상은 율법대로 움직인다, 라는 어떤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되죠.

그 증거가 뭐냐? 갈라디아서 3장에서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대로 죽으셨는데 그게 십자가죠. 그게 십자가라고요. 무슨 십자가 믿어서 천당 간다는 그런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옵니까? 안 나오지요. “살아 있는 나 예수님 십자가 믿고 천국 갈래요.” 그럼 십자가는 우리에게 뭐라고 하느냐? “죽어 인간아. 너 죽었어.”

하나님은 어떻게 살릴 것인가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누가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표현하느냐, 온전히 증거하느냐. 그 사람만 하나님의 관계고 다른 사람은 관계 지어지지 않아요. 죽은 자에요. 예수님만이 온전히 그 율법을 완성시켜서 죽었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생명이 되셨잖아요. 예수님 빼고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

우리의 생애는 나를 기념하는 생애가 아닙니다. 율법의 본질과 동일한 본질을 내놓으라고 지금 우리가 율법의 상대역이 되었어요. 율법의 상대자가 된 거예요.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의 법 앞에 피하지 말고 내빼지 말고. 하나님의 법 이야기하면, “많이 먹었다. 그만해라.” 말씀을 기피한다는 것은 나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말씀을 안 듣겠다는 것은 뭐냐 하면, “나는 나 건사한 걸로 그냥 보람 있게 살래. 나 건강하고 행복하고 이걸로 족해.” 이런 뜻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를 기념하는 용도로 이 세상을 살고 있어요. 자기 잘남을 증거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 안에서 심판이 계속 살아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심판이 살아 있을 때 십자가가 계속 살아 있게 되고 우린 십자가의 증인이 되는 거예요.

출애굽기 12장 15절에 보게 되면 유교병을 먹는 자는, 적어 볼게요. 누가 읽어볼까요. “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유교병을 먹는 자는 그 다음에 뭐에서 끊쳐지리라? 이스라엘에서 끊쳐지지요.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한 이스라엘 아니지요. 이스라엘 위한 이스라엘 같으면 끊어진다는 그러한 조항은 애초부터 이거는 안 줘야 되잖아요, 이스라엘에게. 끊어진다는 말은 이스라엘보다 더 우선되고 중요한 게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있단 말이에요. 이스라엘보다 더 중요한 것.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최종 목적이 아니란 뜻이에요.

이스라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담길 때만 그런 조건 하에서만 이스라엘 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끊어지리라. 이스라엘에서 제외되리라. 뭘 먹는 자는? 유교병을 먹는 자는. 유교병이 뭐예요? 누룩이 있는 병이니까, 떡, 전병할 때 그거거든요. 누룩이 있는 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누룩, 이스트, 폭신폭신하게 달콤하게 만드는 이스트. 인간이 먹기 좋은 빵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물론 매일 그러면 안 되고 조건이 있어요. 1월 14일. 1월 14일은 봄 절기라 하는데 봄 절기는 유월절, 초실절, 오순절. 오순절은 50일, 49가 마감됐다는 49를 기념하기 위해서 +1이 추가되는데 이 1일이 오순절, 5 곱하기 10이니까 순은 10이거든요. 오순절이 되는 겁니다. 유월절은 하루고, 그 다음에 15일부터 21일까지 바로 무교절이라고 누룩이 없는 떡을 먹어야지 누룩이 들어간 떡을 먹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누룩이 뭐냐? 고난이거든요. 그걸 누룩의 떡, 다른 성경에 보면 고난의 떡. 고난, 그러니까 딱딱하다 이 말이죠. 인간이 자기가 식성 좋으라고 먹는 그런 용도가 빠져있는 떡, 내가 먹는 즐거움을 채우고자 하는 나의 즐거움조차 박탈당했다는 걸 시그널처럼 알려주는 떡, 그게 바로 무교병이에요. 너는 하나님이 당한 고난에 참여해야 될 백성이라는 걸 알려주는 떡, 이게 무교병이에요.

따라서 무교병 절기에서는 나의 고난보다 우선되는 고난이 있었으니 그것이 뭐냐?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저주했다는 사건. 하나님이 자기를 어린양으로 상대해서 죽여 버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죽이는 그것을 두 자로 ‘약속’이라 해요. 그 약속을 본질로 담는 그 민족을 이스라엘이라 하고 오늘날 성도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죽이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하는 것은 다 빼세요. 하나님이 날 천국 보내주고 날 지옥 안 보내주고. 그것 다 빼세요. 그건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관심사가 나에게 없어요. 있어선 안 됩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이 땅에 살아가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그건 이스라엘이 아니지요. 성도 아니지요. 지 잘난 맛에 사는 거죠. 그건 본인이 본인을 선택하는 거죠.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이 무서운 벌칙이 있는 율법을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집어넣은 거예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분통 터질 일이에요. 내 쪽에서 하나님에 다가서면 안 되겠습니까, 라는 그러한 제안이 절로 나오지요. 가만있는데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데 하나님이 갑자기 율법 주면서 안 지키면 저주, 도대체 이런 일방적으로 당한 처지가 됐다는 것이 인간의 입장으로 봐서는 얼마나 자기 신세가 처량하고 가련하겠습니까.

누가 그런 신세를 좋다고 선택하겠어요. 내빼지. 그런데 문제는 주님의 선택이 이스라엘 선택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에요. 내뺄 수가 없어요. “이놈, 와.” 하고 집어넣었단 말이죠. 왜냐하면 이스라엘 나라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미 확정되었어요. 어린양의 약속의 내용을 담아내는 조건 하에서만 이스라엘이다.

그 예가 뭡니까?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무교병,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절기에 누룩이 있는 떡을 먹는 자에게는 어디서 끊어지리라?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이스라엘 조건은 이스라엘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네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야. 일방적으로 내가 결정하는 거야. 네가 천국백성이냐, 아니냐는 것은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란 거예요. 네가 천국 가고 싶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어떤 천국의 조건이 내 안에 들어와야 되는데 천국의 조건이 뭐냐 하면, 고난 받는 주님을 내 안에 품는 겁니다. 저주받는 주님, 하나님을 내 안에 품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주받았다면 우리는 마땅히 저주받는 거죠. 마땅히 저주받음을 인정한다면 자기 가치에 대해서 자기를 자꾸 살피겠습니까? 살필 권리가 없지요. 하나님이 나를 지목하지 않는데 왜 내가 나를 지목합니까. 그거는 하나님의 원리에 위배되지요.

내가 날 볼 가치보다 주님의 가치가 월등해요. 주님의 가치가 월등하다는 말은 이제부터 우리는 나 안 보기, 이렇게 나와야 돼요. 이제부터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나 안 쳐다보기, 이렇게 나와야 된다고요. 그게 바로 나로부터 자유입니다. 사람의 모든 고민과 걱정이 누가 짐이 되어 생기는 겁니까? 내가 짐이 되잖아요, 내가.

물론 밥 많이 먹어 짐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땐 살 빼면 되지만 살 빼도 안 되는 게 내가 태어난 자체가 헉헉거리면서 끌고 가야 된다는 이게 얼마나 힘들어요. 주님은 이야기합니다. 그 힘든 것 왜 쳐다보냔 말이죠. 힘든 알면서 왜 쳐다보냐? 그러면 우린 뭐라 합니까? 나 안 바라보면 누가 보는데? 이렇게 하면 너보다 월등하게 가치 있는 분을 보면 되잖아. 그분을 업고 살아라.

둥개둥개 그분을 업고 살아야 돼요. 그게 이스라엘입니다. 그게 주의 이름으로 함께 사는 거예요. 율법은 날 벌주려고 주신 게 아니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 율법의 저주를 다 받아냄으로 말미암아 율법은 실효성 있는 객관적인 현실 그 자체인 것을 하나님의 뜻 그 자체인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율법이 오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율법과 동일한 뜻으로 있는 그분을 말씀으로 안에서 우리를 깨워요. 너 말고 네 안에 계시는 분을 깨운다고요. 그 관계를 선택이라 하는 겁니다. 이미 선택했기 때문에 율법을 의미 있게 우리에게 제공해서, 나 율법 지키지, 나대지 마세요. 너 비켜, 율법은 너 말고 너를 저주케 하신 분이 네 안에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네가 살았다고 우기는데 그 우기는 네가 실은 죽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그분이 너와 함께 있느냐를 묻는 거예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죽었으니까 더 이상 나의 행동거지나 또는 나의 선택이나 나의 생각에 대해서 우리가 기대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할 이유가 없어요. 해봤자 걱정근심인데 무거운 짐인데. 우리가 우리 쳐다보라고 우릴 만든 게 아니에요.

사가랴, 아벨, 예수님 이 땅에서 억울한 피를 남긴 사람들 특징이 뭡니까? 자기 자신 다독거리다 순교했습니까? 아니에요. 아벨이 내 재산은 하나님이 받을 거야. 형보다 낫다. 그런 생각 아벨이 했겠어요? 안 했어요. 아벨은 그냥 자기 직업대로 제사 드렸거든요. 그런데 받고 안 받는 결정은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했어요.

결정이란 말을 했지만 다른 말로 합시다. 선택. 하나님이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배제하는 것은 하나님 일방적이에요.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으로 인하여 선택했음, 그게 하나님의 뜻임, 그것이 이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진짜 하나님 뜻이었다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아벨의 피 흘림으로 나타나지요. 하나님께 응답 받아놓고 하나님의 벌은, 인간의 벌은 누가 받고? 가인이 받는 게 아니고 아벨이 받아버렸어요.

그게 어린양의 피의 의미 아닙니까. 아니 내가 죽어야 되는데 왜 어린양이 죽었지? 아아 더 이상 나에게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구나. 나는 나를 목적으로 살 존재가 아니었음을 알게 하고 내 안에 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분을 드러내가 위해서 우리가 선택적으로 이 땅에 태어난 겁니다. 선택에 의해서.

베드로가 예수님 떠난다고 하니까 제 목숨 드릴 테니까 주님 가신 데 따라간다 할 때에 주님께서 “어이고. 목숨이나 내 났어? 그 귀한 목숨을?” 이렇게 반길 줄 알았지요. 네 목숨이 얼마치나 한다고 내놔. 네 목숨 원래부터 죽은 건데 죽은 목숨 어데 쓸데 있다고 내놔? 순교하지 마. 죽은 목숨이야. 하늘나라 통하지도 않는 목숨.

우리 목숨은 율법에 의해서 율법의 구현자가 아니기 때문에 율법의 완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목숨은 하늘나라에 쓸모가 없습니다. 쓸모없어요. 따라 오늘 밤에 죽더라도 너무 자기한테 애도하지 마세요. 쓸데없는 것 주께서 쓰레기로 치웠을 뿐이에요. 우린 가치 없는 걸 왜 자꾸 지키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조금만 아프면 링거 맞고 난리도 아니야.

하늘나라 통하지도 않는 화폐, 부도수표, 주께서 안 받겠다는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 목숨 안 받습니다. 왜냐? 우리 목숨엔 율법의 완성이 안 들어있기 때문에 받질 않아요. 약속의 완성이 안 들어있기 때문에 안 받습니다. 거룩하지도 않고 의롭지도 않아요. 우리 목숨은. 내 목숨 안 받으면 내 자식 목숨도 안 받지요. 그 아비에 똑같은 그 자식인데, 뭐.

그래서 강의 처음에 처벌의 조항을 봤지요. 율법대로 안 살면 어떻게 합니까? 데쳐먹고 볶아먹고 비벼먹고. 하여튼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해서 인간이 싫어하는 모든 조항을 구색 따라서 다하잖아요. 어떤 때는 굶게 하고, 어떤 때는 적들에게 쫓기게 만들고, 어떤 때는 들짐승 보내서 자식을 죽게 하고, 어떤 때는 과수농사 지었는데 태풍 불어서 다 망하게 만들고, 어떤 때는 염병 만들고 전염병, 코로나 퍼지게 만들고.

이게 무슨 신호에요? 지킬 가치가 없다는 시그널이에요. 네가 지금 힘들게 지키는 네 목숨, 하늘나라에선 안 받아줘. 왜? 율법의 완성이 안 들어있으니까. 어디 교회 와서 기도 같지도 않은 기돌 해. 내 자식 시험 치는데, 어쩌고. 시험 치면 쳤지 뭐 어쩌라고? 떨어졌어요. 떨어진 목숨도 가치 없고 합격해도 가치 없는데. 내년에는 우리 아들 장가갑니다. 어쨌다고? 부조나 받아라. 장가간다고 새로운 피조물 됩니까? 인간 되는 진 모르겠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것은, 율법의 저주는 저한테 와야 합당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에요. 율법이 퍼붓는 모든 저주는 딱 저한테로 와야 됩니다, 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왜? 자기 안의 모든 저주를 받아버린 하나님과 함께 합숙하고 있기 때문에, 원룸에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만이 하나님의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에.

율법의 완성을 한 자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의’ 그게 의인 거예요. 십자가 의인 줄 알겠지요. 십자가가 날마다 내 가치와 내 의미와 목숨을 개무시 해주기 때문에. 그게 더 이상 내가 내 걱정, 날 쳐다보지 않게 만드는 그 안식, 그 평화 도대체 돈 주고 이걸 살 수 있겠어요? 못 사면 10분 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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