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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11:40:09 조회 : 61         
20201012a 부산강의 : [시편]32(20편)-존재에서 관계로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96)
20201012a 부산강의 : [시편]32(20편)-존재에서 관계로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20편에,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라고 돼있지요.

처음부터 언약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언약의 기본은 인간을 전적으로 배제하지요. 언약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게 구체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언약상대자로 본인이 지정을 하셔요. 이 지정을 선택한다고 하지요. 인간은 빠집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언약에 대해서 인간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언약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인간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빠지는 이유는 여기에 악마의 권세 층이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여기의 감시망을 피해서 권세를 피해서 빠져나오지 못해요. 그러면 악마의 권세 층에는 여러분이 눈치 챘듯이 여기는 언약이 없어요. 인간은 언약이란 게 없어요. 언약이 없다는 말은 언약 없는 신, 언약 없는 하나님, 그리고 언약 없는 나가 여기 등장합니다. 언약 없는 나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개체성이다. 또는 다른 말로 하면 개별성이다. 쉬운 말로 하면 그냥 각자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개별성, 개체성의 특징이 뭐냐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것이 주어져도 항상 자기가 마감이 돼요. 여기 나가 있는데 나로부터 시작한 모든 것이 나에게로 와요. 이게 끝이에요. 내 뒤에는 없어요. 언약 없는 이 점을 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에스겔 28장 2절을 보면 평소에 세상에 나가서 여러분들이 듣고 있던 이야기가 많이 들려올 겁니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두로는 해변에 있는 도시기 때문에 무역을 해서 최고로 잘 살던, 그러니까 뉴욕의 맨해튼 지역으로 보시면 돼요. 그 당시엔 제일 잘 살았던 지역이에요.

비교해보니까 자기보다 잘 사는 게 없거든요. 자기가 최고가 되는 겁니다. 해운대 고층아파트 펜트하우스에 사는 그런 기분이라 할까요. 자기가 중앙이거든요. 왜? 다른 쪽은 자기를 쳐다보고 있으니까 중앙이 되는 겁니다. 부럽지, 부럽지? 나처럼 못 돼서 약 오르지, 약 오르지, 하는 그 중앙, 이 두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교만하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이 두로에 대해서 10절에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평가를 내리느냐 하면, 이게 오늘 강의에서 초반부터 중요한 게 탁 튀어나왔어요. 그게 뭐냐 하면 10절에 보면, “네가 외인의 손에서 죽기를”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오지요?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라” 갑자기 할례가 등장하지요.

나는 신이다, 내가 최고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라고 할 때 하나님의 평가가 뭐냐 하면 너 할례 안 받았잖아, 너 할례 없잖아, 라고 이야기해요. 네가 나중에 죽는다, 망할 것이다, 네가 까불다가 엎어진다, 그런 말씀하는 게 아니고 할례가 없잖아, 할례가, 라고 하는 거예요. 할례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율법이고 그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았던 율법이 할례입니다.

율법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죠. 너는 약속이 없잖아. 하나님의 할례약속이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다윗과 골리앗이 싸울 때 다윗이 골리앗을 보는 관점이 그거에요. 골리앗이 키 크고 힘세다고 기죽지 말자. 저 민족은 뭐가 없느냐 하면, 할례 받지 못한 민족이다. 참, 이런 생각이요,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도가 됐으면 악마 층 바깥에 언약이 있고, 언약은 할례라 했습니다. 율법,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았고 모세가 하나님께 받았던 그 할례. 그런데 악마 층에 있는 인간들, 악마 층도 우리 눈에 안 보이니까 인간들과 인간들만 눈에 보이니까 우리가 이 사회에 살고 있지요.

그럴 때 여기서 두로가 뭐라고 고백하느냐 하면, 나는 신이다, 나는 최고다, 라고 이야기했을 때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지적하겠는가를 제가 묻고 싶어요. 저 사람한테, “너 건방지구나. 돈 언제까지 있는지 보자.” 이런 식으로 시기, 질투로 하는데 시기, 질투 있을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여기는 뭐가 없다 했습니까? 언약이 없고, 언약 없는 나에요. 바로 두로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가 교회 가도 마찬가지에요. 그 교회 하나님은 뭐가 없습니까? 언약이 없어요. 언약이 없으니까 이 교회운영방침은 성공하고 싶은 사람, 하나님의 도움 받고 싶은 사람 다 오세요. 이렇게 해서 운영이 되는 겁니다. 복 받고 싶은 사람, 나중에 천국 가고 싶은 사람 우리 교회 오세요, 이렇게 된단 말이죠. 언약이 없는 거예요.

가짜 교회 특징이 뭐냐 하면, 앞에 ‘나’가 붙어요. 이 나가 두로로 대표적으로 이야기하면, 여러분 믿지 마세요. 나는 뭐다? 나는 신이다. 신이란 말은, 나는 중심이다. 세상에 중심이라 한 거예요. 이런 의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걸 개선의 여지가 없으면서 그 사람들이 교회 다닌다. 그럼 교회가 고객만족을 위해서 무슨 이야기해줘야 됩니까?

역시 당신은 하나님 복 받아서 잘 될 겁니다. 당신은 신이 되고 싶어 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고 중심이 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당신이 소원이 이뤄지도록 내가 기도해드리겠습니다. 복 내리게 하겠습니다, 할 때 이게 뭐가 빠졌단 말입니까? 언약이 빠진 교회가 되는 거예요. 왜? 사람들의 부러워하니까.

특히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기 나는 할 때 나는 어디 있다? 언약이 빠져버리면 뭐라 했습니까? 각자 또는 다른 말로 하면 개별성 또는 다른 말로 하면 개체성. 개별성, 개체성의 특징은그 마감이 어디로 된다? 모든 의미가 나로부터 나와서 나로 스톱이 돼요. 자폐증이죠. 자기 안에 갇혀있는 사람.

그런데 처음에 제가 강의할 때 언약을 해놓고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언약의 상대자를 지정하고 그 다음에 선택했지요. 그러면 언약이 되려면 하나가 되면 안 되고 여기 관계가 성립돼야 돼요. 그래서 오늘 강의주제를 미리 말씀드리면, 존재에서 어디로? 관계로. 존재에서 관계로 바뀌는 거예요.

자, 언약이 없는 세계, 신과 인간은 전부 다 관계일까요, 존재일까요? 전부 다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최종적인 의미의 마감이 중심은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듯이 마지막은 나만 달랑 남아야 되기 때문에. 모든 관계는 나보다 떼어내야 나만 남아야 되기 때문에 내가 신이란 것을 인간의 본성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나한테 무슨 이익이냐, 나한테 무슨 손해냐 그것만 따지면서 교회 다닌 거예요.

그러면 나는 신이다, 나는 중심이다 이걸 또 다른 말로 하면 내 안에 뭐가 들어있다? 나 안에 자존심이 있다. 나 안에 자긍심이 있다. 지금 이야기 들어보니까 언약의 관계는 우리에게 낯설고 어느 것이 상식적입니까? 어느 것이 우리가 매일같이 만나는 거예요? 티비나 이웃사람 만날 때 각자를 만나지요. 개별성을 만나고 개체성을 만나는데 그 개별성, 개체성 안에 무엇이 실려 나갑니까? 내가 최종적으로 나는 신이다, 중심이라는 그 자존심을 운반하는 운반체를 매일같이 만나는 거예요.

가족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가족은 좋은 관계라고 하지만 언약이 없으면 가족이라도 각자에요. 가족이라도 개체성입니다. 부모가 나이가 많을 때 요양병원 갔을 때 자식이 찾아갑니다. 부모가 세상을 살다보니까 꼼수가 늘어났어. “너 나한테 온다고 힘들지? 안 와도 된다. 나 혼자 잘 있다. 힘들지. 내가 빨리 죽어야 되는데 안 죽어서 미안하다.”

그런 이야기를 진심어린 이야기를 들을 자식은 아무도 없어요. 그 말이 뭐로 들리느냐 하면, “좀 자주 오너라. 나 외롭다. 나 너 키우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는 나 아플 때 나 몰라라 하고 있지? 지켜볼 거야, 두고 볼 거야.” 이런 식으로. 나한테 잘해줬던 엄마, 아빠도 연세 드니까 뭐로 끝났어요? 개별성, 개체성, 두로, 나는 신이다, 내가 중심이다. 그걸로 전부 다 마감되는 거예요.

말로는 들은풍월이 있어서 무슨 관계라 하지만 이 관계는 다 헛수고에요. 진짜 존재에서 관계는 존재가 아무리 친하고 정 줘도 소용없어요. 여기 뭐가 있어야 됩니까? 언약이 있어야 돼요. 그 언약을 아까 에스겔 28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뭐로 지적해요? 할례 없잖아. 할례라는 것은 잘라내는 것, 끊어내는 것. 잘라낸다, 끊어낸다. 그렇다면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해봅시다.

언약이란 인간에게 뭘 한다? 잘라내고 끊어지는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언약이다. 언약이 없다면 잘라진 게 없고 끊어진 게 없고 요 내 자리, 신의 자리, 중심 자리가 안 잘라지고 그대로 있고 언약이 있으면 뭘 잘라냈다? 나는 나의 최종 자리가 주님에 의해서 언약의 칼에 의해서 잘라낸 거예요.

그것을 여러분들이 목 없는 미녀. 몸매는 괜찮아 보이는데 위가 없으니까 미인인지 알 수 없지요. 교회가 뭐냐? 목 없는 몸체만 있는 걸 교회라 해요. 왜? 위는 누굽니까, 교회 머리가 누구시죠? 주님이죠. 주님은 안 보이니까 뭐만 있어요? 목 없는 채 몸체만 있는 게 교회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듯하니까 제가 기쁜데요. 여러분 잘 아시겠지요. 결국 이 이야기를 보게 되면 언약이 없는 데서는 마지막에 나가 있지요. 그 다음에 언약이 있는 관계는 나가 아니고 뭐로 바뀌느냐 하면, 관계니까 ‘나’가 ‘우리’로 바뀝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하늘에 계신, 그 다음에 ‘우리 하나님’ 나가 없어요. 우리는 영원히 가는 거예요. 혼자서 천당 갈 생각마세요. 그런 천국은 안 받아줍니다. 나에서 우리로 변하지 아니하면 천국 없습니다.

이 말은 나의 존재는 작살나고 나를 작살낸 관계에 엮여서 나는 없어지고 우리가 되지 않는 한 천국에 갈 수 없다 이 말입니다. 하여튼 성경은, 보통 교회 가면 성경 많이 외우지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한 구절 외워서 천국 간다고 자부하는데 주 예수를 믿으라, 할 때 누가요? 우리가 믿는 거예요, 내가 믿는 거예요? 내가 믿으면 그건 소용없고 우리가 믿어야 되는 거예요.

그럼 우리 안에 전에 나를 대신했던 분이 계셔서 거기서 파생된 것, 나가 확장된 것, 확산 된 것, 그 확산돼서 생긴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핵심 되는 그 나는 누구겠어요? 그게 시편 20편이 시작되는 거예요. “환란 날에 여호와께서” 그 다음에 뭐라 돼있습니까? “내게 응답”하지요. 응답이 가능한 것은 언약을 보냈고 언약을 받을 만해서 받았다는 거예요.

기도응답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것은 언약만 보내고 받을 것은 언약만 받아요. 왜? 그게 언약의 하나님이니까. 그런데 몇 번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세상은 악마 층이 있어서 인간에겐 언약이 없지요. 그 다음에 여기 뭡니까? 언약이 없는 신, 언약이 없는 나, 언약이 없는 거예요. 언약이 없으니까 나가 그대로 있단 말이죠. 나가 있다는 건 나의 자존심 그대로 있단 말이에요.

그럼 언약이 오게 되면 뭐가 잘라간다? 언약이 오면 목 없는 미녀처럼 목까지 위에가 다 날아가요. 하필 목사님은 목 위로 이야기합니까, 하고 할 수 있는데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 만날 때 무엇과 무엇을 분리했느냐 하면, 등 쪽과 얼굴을 하나님 쪽에서 분리했어요. 너는 내 등은 봤지만 뭐는 못 봤다? 얼굴은 못 봤다.

시편에 보면, 하나님이여 주의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소서, 라고 돼있지요. 주의 얼굴이란 주의 표정, 뜻, 주님의 대표적인 형상, 이걸 이야기합니다. 주님의 뜻을 대변해주고 있는 그것의 주의 얼굴이에요. 시편에 주의 얼굴이었는데 신약에 와서 주의 얼굴을 대표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하는 모든 모습에서 아버지의 뜻을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시편에 보면 주의 얼굴을 우리 쪽으로 향하소서. 주의 얼굴을 우리 쪽으로 향하면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돼있어요.

형상은 하나님의 등은 형상이 아닌 걸 알 수 있지요. 모세와의 만남에서.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의 등과 얼굴을 분리했다는 말은 등을 보여주면서 형상을 봤다고 할 수 없어요. 그 대목에 나와요. 얼굴 보게 되면 형상 본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죠.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 얼굴이다, 하나님의 표정이다.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지 등어리 표정 안 나타나죠. 얼굴의 표정을 대변해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안 드러낸 게 아니고 드러내셨어요. 기분 좋은지 나쁜지 표정을 다 드러냈단 말이죠. 표정을 드러냈는데 사람들이 언약이 없으니까 악마의 권력층에 갇혀있으니까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지요. 그렇게 보시고 다시 에스겔 32장을 봅시다. 32장 다들 찾아보세요. 그걸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에스겔 32장 18절,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애곡하고 그와 유명한 나라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지옥 간다는 뜻이에요. 19절부터 유념해야 돼요.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누구보다 지나가는고 너는 내려가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 다 같이, “할례 받지 않은 자와 함께 뉘울찌어다” 그 다음에 21절, “용사 중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음부 가운데서 그에게 말함이여” 그 다음에 다 같이 시작, “할례 받지 않은 자 곧 칼에 살륙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나옵니다. 24절에도 나오지요. 그들은 다 할례 받지 못하여 살육 당하게 돼있지요. 25절에, “그 여러 무덤은 사면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그 다음에 26절에, “그 여러 무덤은 사면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28절, “오직 너는 할례 받지 못한 자와 일반으로 패망할 것임이여” 지금 애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애굽 나라의 파멸에 대해서. 29절에도 있어요? 할례 받지 못하고, 라고 돼있지요. 그 뒤에도 끝까지 돼있어요. 32절에, “이제는 그가 그 모든 무리로 더불어 할례 받지 못한 자” 이렇게 돼있지요.

성경을 보면서 한꺼번에 할례 받지 못한 걸 한 구덩이에 다 집어놨어요. 이 정도로 강조하고, 강조하고, 강조하는 겁니다. 자, 할례는 뭐냐? 언약이다. 언약 있느냐, 없느냐로 뭘 평가한다? 악마 층에 갇혀있는 세상을 평가하는 눈을 가져라. 언약적인 눈을 가져라, 에요. 그렇다면 할례는 뭐하는 것이다? 잘라내고 끊어내는 거예요.

뭘? 손가락 정도? 아니. 발가락 정도? 아니에요. 내 자존심과 자긍심, 나는 신이라는 그 자리를 할례가 언약이 와서 잘라내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을 십자가지요. 그럼 십자가가 어딜 공격하겠습니까? 나의 나다움, 그 자리를 폭격내리겠지요. 그걸 아까 용어 하나로 했습니다. 각자에 내린다고 해도 되고 개체성 또는 개별성, 그 말이 어려우면 그냥 쉽게 각자 또는 제각기. 할례의 공격이 제각기라는 의식을 공격한다.

이제 저와 여러분에게 이걸 그대로 응용하고 적용시켜 보세요. 하루 생활하면서 뭐하고 사십니까? 어떻게 사십니까? 성경과 달라도 너무 다르지요, 우리의 생활이. 응용문제 들어가 볼까요? 나는 어젯밤에 잠을 못 잤다. 자, 뭐가 문제지요? 앞에 뭐가 붙어있습니까? ‘나’가 붙어 있잖아요.

그게 죄라면 죄 아닌 게 뭐냐? 우리는 어젯밤에 잠을 못 잤다. 이게 언약이에요. 나는 분명히 거울 봐도 나 혼자 있는 줄 아는데 언약은 내가 잠자는 그 현장에 나 혼자 있는 게 아니었음을, 그때 잠잘 때 그 현장에 나만 있지 않았음을 주님이 거기 계셨음을 뭐하려고? 나에게 때로는 잠을 주고 때로는 잠을 못 자게 만들고.

주체가 내가 아니고 누구로 바뀝니까? 주님으로 바뀌면서 주님은 주님 자체의 개별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우리를 포용하니까 나는 우리가 되면서 나의 자리를, 나를 끌어냈던 할례언약의 자리를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느냐 하면, 주님이 쥐고 있지요. 나는 누구의 똘마니냐 하면 그전에는 나의 똘마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되면 나는 나 자체로는 의미가 없어졌고, 누굴 위하여? 나를 나 되게 했던 주님을 위하여 잠을 자던 잠을 깨던 밥을 먹던 뭘 하던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 그 관계가 우리가 되는 겁니다. 성경 참 쉽지요. 이해하면 무지무지 쉬운 거예요. 나는 아파요, 란 자체가 뭐가 된다고 했어요? 죄가 되지요. 네가 왜 아픈데? 우리가 아프다는 말을 왜 못해요?

어제도 했지만 십자가의 강도 예수님과 달릴 때 구원받은 강도는 천국을 나의 자리로 여기지 않고 무슨 자리로 여기느냐 하면, 우리의 자리로 여겼어요. 예수님, 주의 나라 임할 때 저를 생각해 달라. 세상에 살인강도, 그렇게 나쁜 짓 많이 했지만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할례를 베풀었는지 어떻게 그 천국이 주제넘게 지 하는 행세를 보세요. 어딜 감히 넘봅니까.

내 자존심과 자긍심을 유지하고서는 주님의 나라에 합세할 생각을 못하지요. 겸손 아닌 겸손을 떨면서 저 같은 것이 어떻게 천국을 갑니까? 저도 지옥 가도 마땅하다 하지만 그 강도는 뻔뻔스럽기 이를 데 없어요. 주의 나라 임할 때 저를 생각해 달라. 우리 하나잖아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되잖아요, 라고 하는 것 이 강도는 강도란 직업을 넘었어요. 내 하는 일을 이겨낸다고요. 인간이 하는 일은 전부 다 자존심과 자긍심이 관련됐는데 그걸 이겨낸단 말이죠.

자, 그러면 언약에 있어서 잘라내고 끊어지는 게 할례지요. 그렇다면 신약에 와서 이 할례는 무슨 할례라고 하느냐 하면, 마음의 할례, 이게 바로 십자가의 효과입니다. 마음의 할례,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내 마음에다 십자가를 꽂아서 아예 빵꾸를 내버리는, 싱크홀이라 하지요. 길에 구멍난 것, 나라는 거기다 구멍을 내버려요. 구멍을 내면 텅 비어있지요. 그 텅 빈 자리를 운반하는 운반체가 성도입니다. 전에 나의 있던 자리가 빵꾸나서 완전히 박살났음을 기쁘게 수용하는 자가 성도에요. 내가 안 아파요. 우리가 아프지요. 내가 안 기쁘고 우리가 기쁘지요.

그러면 이 시편 20편 내용은 뭐냐? 너는 그냥 빈자리를 만들고, 이건 신약의 마음의 할례가 왔을 때 그렇고요, 그리고 그 빈자리에 채워지는 게 뭐냐? 나를 대신하는 누군가 있어요. 강의 다시 하겠습니다. 따져보면 어렵지 않아요. 존재에서 뭐로 바뀐다 했습니까? 관계로 바뀌지요.

그러면 존재의 자리는 누가 차지하느냐 하면 언약의 상대자, 하나님의 언약의 상대자가 누구냐 하면 지정하고 선택한다 했지요. 그분이 오늘 시편 20편에서는 너라고 하는 거예요. 너라고 하는 분이 내 존재를 대신해버려요. 그럼 우리 성도는 주님과의 관계성 속에 합류되게 돼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시편을 어떻게 지키려는 생각은 하지마세요. 빠지세요.

빠지고 내가 여기 있다면 전에는 나의 존재를 쳐다봤지만 이젠 존재가 빵꾸났으니까 뭘 보냐? 관계를 보는 거예요.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누구세요, 나를 이렇게 만드신 분이 누구세요? 그럼 하나님께서 좋다는 말이야, 나쁘다는 말이야? 좋다는 말이지요. 누가 나를 나 위주로 내가 최종 마감되는 의미로 살지 않게 하셨습니까? 누가 나만 위해 살지 않도록 하셨습니까? 기쁨으로 그렇게 고백하지요.

“어제 잠을 못 잤는데 전에는 내가 못 잤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고 주께서 못 자게 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주신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렇게 돼요. 나가 아니고 우리니까요. 안에 들어갑니다. 들어가면 시편 20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가 하지 못한 것 내가 다 이룬 거예요. 우리가 왜 못할까요?

우리는 악마 층에 갇혀서 애초부터 뭐가 없다? 언약이 없는 거예요. 언약이 없다는 말은 쉽게 생명나무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 영생의 나무가 하나님 쪽에서 끊었어요. 우리는 그걸 원했는데 오지 말라 하니까 문제에요. 네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경우라고 생명이 없다는 요소로 움직이고 있다. 어떤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도 생명 없기는 마찬가지에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백날해도 그 안에 뭐가 없어요? 생명이 없는 거예요. 선악에서 움직이는 거예요. 무슨 소용 있어요, 그게. 선악과 따먹은 자체가 이미 죽은 자인데. 그래서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죽은 자에요. 왜? 생명이 없이는 마찬가지거든요. 생명이 없으면 죽은 자, 죽은 자로 살다가 백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 그거 뭐가 이상해요? 그거는 당연한 거지요. 안 죽는 게 이상하지.

생명 없으면 죽는다. 그걸로 끝입니까? 나중에 죽음보다 더 센 저주가 기다리는데요. 이건 이방민족은 모르고 이스라엘에게만 알 수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도 믿어야 알 수 있지만 어쨌든 간에.

그래서 오늘 시편 20편 봅니다. 보기 전에 하나 더 봅시다. 이사야 14장 12~14절은 참 유명한 구절이죠.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이건 바벨론 제국에 대해서 한 겁니다. 바벨론 제국이란 하나만 외우면 돼요. 모든 민족의 통합체, 통합기구, 중앙기구.

우리 개인적으로 내가 중앙에 있다 했지요. 아까 두로 있지요. 나는 신이다, 나는 중심이라고 했지요. 그 중심의 중심, 그건 국가형태로 등장하지요. 마지막 최후에는. 요한계시록에도 나오지만. 그 나라가 무슨 나라에요? 바벨론. 지금의 모든 나라는 바벨론의 아류들, 바벨론의 후예들. 바벨론은 금신상처럼 영원토록 계속 가요. 천국 올 때까지 계속 가는 게 바벨론이에요.

그 바벨론이 뭐냐? 계명성아, 그 바벨론이 찍혔다. 제가 읽고자 하는 것은 13절입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하나님을 라이벌로 여기지요. 하나님, 그 정도였어? 나는 당신보다 더 높게 하나님처럼, 당신만 하나님이야? 나도 하나님이야, 라고 여기 뭇별, 보좌에 올라 북극 집회, 집회니까 집결체, 집단체, 통합체, 좌정하리라. 그 통합체 중에서 중심의 중심이 바벨론.

모든 민족과 나라는 어디로 질주하고 어디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백날 해봐야 하나님 뜻에서 전부 다 바벨론에 모이게 돼있어요. 모이면 하나님이 바벨론만 쳐버리면 모든 민족 다 쳐버린 거예요. 바벨론만 심판하면 모든 민족은 깔끔하게 다 심판한 거예요. 그래서 15절에 보면,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지옥이죠. “곧 (지옥)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하나님이 언약을 주신 이유는 결국 천국은 천국대로 만들고, 그 다음에 지옥은 기어이 지옥답게 만드는 그 작업을 하나님께선 멈추질 않습니다.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해요.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천국대로 만들고 지옥은 지옥대로 만들고. 지옥 만들기도 하나님이 게으르지 않는다는 사실.

이쯤 알았으니까 여러분한테 물어봐도 되겠지요. 지옥은 뭐가 없는 곳이다? 언약이 없는 곳이에요. 언약이 있으면 뭐하냐? 모가지를 칠 수 있거든요. 언약이 있으면 모가지를 치는데 언약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믿던 예수님을 믿던 삼위일체를 믿던 전부 다 최종 의미 가치는 어디로 쏠립니까? 내가 멀쩡하니까 나에게 쏠리는 거예요.

다 나 잘되기 위해서 교회 다녔고 나 높이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자존심 남한테 밀리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전도했고 헌금했고 교회 다녔고 성경 공부했고. 망나니 와서 칼로 쳐야 되는데 쳐줄 사람이 없네. 언약이 없는 것처럼 실패한 인생이 없어요. 불쌍한 인생이 없다고요. 누가 목을 쳐줘야 되는데 이 목이 그대로 있어요.

목이 그대로 있으니까 아까 목적은 내가 최고 되는 거죠. 두로 이야기 잊지 말라 했지요. 내가 신이라고 했지요. 그러면 성경 공부 참석하는 것이 신이 신답게 되는데 도움 될까, 도움 되지 않을까? 계산하겠지요. 바치는 게 아깝다. 성경 공부하는데 시간을 바치는 게 아깝다. 그 시간에 돈 벌면 안 되겠느냐? 자, 돈 벌었을 때 돈 버는 것이 나를 치게 만듭니까, 아니면 나를 더 신답게 높이게 만들어요? 높이게 만들지요. 간단하지요, 논리가. 사람 사는 논리가 간단해요.

결국 마지막엔 뭐냐? 우리라는 게 나타나지 않고 뭐로 나타나요? 끝까지 나. 티비 프로그램에 <나야나> 있어요. 남진 노래에 있어요. 나야나야 나. 제목 보세요. 멋지지 않습니까. 나=나, 다른 건 끼어들지 말란 말이죠. 내가 곧 나다. 나 이것 양보 못한다. 지금까지는 무척 쉬운 거예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어렵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다시 봅시다.

하나님의 언약이 오게 되면 존재를 뭐로 바꾼다? 존재를 관계로 바꾼다. 관계의 시작은 나가 아니고 나는 날아갔으니까 제로가 됐으니까, 관계의 시작은 다른 미지의 존재에서 파생된다, 이게 확장된다고 보면 돼요. 미지의 나가 시편 20편 보시면 됩니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응답되는 것은 언약의 경우만 응답되고 하나님 언약이 아닌 것은 절대로 응답해주지 않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딱 나오네요. 야곱에게 뭘 줬습니까? 언약을 줬잖아요. 이제 이해가 팍 되지요. 하나님께선 일방적으로 무조건 시작도 언약이고 끝도 언약이구나.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창세전에 이미 계약한 것을 그 언약을 어디다 심는다? 이 악마 층 안에 있는 이 지상에다 심으려고 하시는구나. 그 언약만이 응답되고 언약을 심기 위해서 이 땅에 구약 때 오신 하나님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아니고 그분을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이라 했으니까 몸통은 있고 얼굴은 안 보이겠지요. 몸통이 뭐냐? 몸통이 아브라함이고 몸통이 이삭이고 몸통이 야곱이고 몸통이 이스라엘이고. 얼굴은 머리는 누굽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차지하지요. 하나님의 이름이 주의 이름인데 주의 이름이 몸체가 되는 것은 구약이 아니고 언제에요? 신약 때 말씀이 육신 될 때 그때 나타나는 거예요. 그걸 저는 예수님의 긴 그림자라고 해요.

어느 강의에서 서울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지요. 예수님만이 그림자를 가져요. 우리는 그림자를 가집니까, 안 가집니까? 우리는 그림자가 없어요. 왜? 우리는 허상이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어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지요. 안개가 무슨 그림자가 있어요. 나한테 그림자가 없다는 말은 내 영향력을 펼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남과의 관계를 요구할 권한이 없다 이 말입니다. 네가 나한테 그렇게 나오면 돼? 이런 소릴 하지 말란 말이죠. 걔는 개별자야, 너도 개별자인 것처럼. 어딜 감히 타인을 사육하고 타인의 영혼을 네 소유화시키려 하느냐.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너는 나야. 개별자에요.

애들 키울 때 보세요. 우리 아들은 아빠, 엄마 말 들어요. 아니에요. 밥 먹을 때요 발을 올려놓는다고. 이것 아버지, 엄마가 그렇게 한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는 다리 올리고 봐요. 저한테 사진 보내왔어요. 폭군의 식사시간. 왜? 나야나야 나. 나는 나거든. 여러분 인간을 살펴보세요. 이게 전부에요. 나야 나에요. 너 나한테 뭐 줄 건데?

그런데 그걸 사육하고 내 사람 만들려고, 그건 북한 김정은이나 하는 거예요. 김정은 부하들의 김정은 뭐 좋아하겠어요. 김정은 얼굴 홍잠언처럼 생겨서 뭐 하겠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에게 알랑방귀 끼고 출세하려고 나이 많아도 안 자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자면 총살이니까. 전부 다 나야 나에요. 오늘 제목을 <나야 나>라 할까? 관계없음, 나는 나로 마감됨, 모든 의미는 나 좋으면 끝.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야곱에게 찾아왔단 말이죠. 그러면 야곱은 어떤 과정으로 보느냐 하면 야곱이 하나님께 훌륭했다, 이러면 안 돼요. 야곱은 철저하게 야곱이에요. 나는 나밖에 몰라요. 남을 속이더라도 이익을 위해서 양보 없음, 이게 야곱입니다. 야곱이 뭐로 바뀝니까?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이스라엘은 관계개념이에요. 야곱이 스스로 자기 환도뼈 쳐서 쩔둑쩔둑 걸었습니까? 아니지요. 누가 때렸잖아요. 때렸으면 삐져야 되는데 맞는 것이 복음이에요. 어제 오후에 그런 이야기했지만 하나님께 얻어맞는 것이 복음이에요. 하나님에 의해서 내 존재가 박살나는 게 복음이에요.

목사는 목회하다가 교회 완전히 폭파돼버리는 게 복음이고 기쁜 소식이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부도나는 것이 기쁜 소식이고. 술 먹고 벤츠 차 몰다가 사람 치고, 해운대만 오면 생각나. 그게 본인에겐 복음이고 기쁜 소식이에요. 좋은 기회 준 거예요, 지금. 주제 파악하라고.

이 세상은 언약의 세계지 네가 중심된 세계가 아니다. 중심은 따로 있다. 그게 뭐냐 하면 관계의 세계, 한쪽은 천국 보내고 한쪽은 지옥 보내는 그 작업장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 일을 지금도 쉬지 않습니다. 그래 가라. 벤츠 타로 지옥 가라. 보내버렸어. 하나는 지옥 가고 하나는 천국 가고. 이 분리작업은 멈추질 않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부활한 게 아니잖아요. 활동하려고 부활했지 놀려고 부활하시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잠자는 것, 식사하는 것, 모든 것이 부활하신 하나님이 우리라는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서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혼자 나가 아니고 우리입니다. 어떻게 나가 우리로 바뀌는지 보자 이 말이죠.

존재가 이스라엘로 바뀌지요. 바뀔 때 야곱은 죄를 드러내게 돼있습니다. 왜? 누구와 싸웠습니까? 하나님과 싸웠지요. 그때 그 관계를 무슨 관계냐 하면 우리와 하나님 관계는, 서울강의에서 대립관계 다른 말로 하면 경쟁관계,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대립관계, 경쟁관계에요. 자, 아까 여러분 안 잊었으면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두꺼운 악마 층에 갇혀있는 교회 다니는 신을 믿을 때 그 신과 나 사이는 대립관계, 경쟁관계입니까, 아니면 좋은 관계입니까? 좋은 관계지요. 얼마나 기특합니까. 다른 사람은 교회 안 나오는데 나는 교회 나와서 하나님 믿으니까. 얼마나 좋은 관계에요. 뭐가 없을 때? 이 교회는 언약이 없으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좋은 관계에요. 좋게, 좋게 지내는 관계에요. 대립관계, 경쟁관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교회에다 갑자기 언약, 십자가를 꽂아버려요. 십자가로 하게 되면 십자가를 증거하지요. 십자가는 걸림돌이죠. 자빠지는 거예요. 자빠질 때 무릎만 깨지는 게 아닙니다. 내 자존심도 깨지는 거예요. 신을 믿었던 신에게 충성하고 평생을 신에게 직분자로 다 바친 그 자체가 이것이 가짜였음을 드러내는 십자가, 그 십자가입니다.

그럼 기존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사용하되 어디 꽂아놨는가? 주일 낮 설교했지만 나 자존심 박살내도록 꽂아야 되는데 어디 꽂았느냐 하면 주변에 변두리에 꽂아요. 그냥 구색 맞추기 위해서. 우리 교회는 십자가도 압니다, 엉뚱한 데 했어요. 당회장 목사한테 꽂아야 되는데 다른 사람에 꽂아놨어요.

사람이 나가 있으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뭐냐? 망했는가, 잘 됐는가를 고민하게 돼요. 판정하고 측정하게 돼있습니다. 그러면 나가 없으면 내가 망했다는 것이 성립됩니까, 성립 안 됩니까? 내가 없는데 무슨 망할 주체가 없는데 무슨 망함이 있고 성공 주체가 없는데 성공했다가 됩니까? 없지요.

그러니까 세리나 강도 같은 사람은 주님께 감사 안 할 수가 없어요. 남들은 버젓하게 인간답게 사는데 자기는 강도 아닙니까. 강도가 망해서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었지요. 그게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 비로소 내 인생은 내가 꾸려나가는 게 아니란 것을 딱 보니 알게 된 거예요. 내 존재가 믿은 거예요. 아니면 관계였습니까? 관계가 믿음이었던 겁니다. 나를 박살내도 상관없게 만든 그걸 만들어내신 어떤 분, 그분과의 관계, 언약관계가 바로 믿음이란 겁니다. 여기서 죄가 나오는 데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럴 때 여기 2절 봅시다. 성소에서, 성소는 죄를 씻어주는 기능, 장치가 있는 곳이에요.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그 다음에 3절,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자, 여기 너란 누구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상대자 결국 신약에 가면 누구십니까? 나 아니고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내 존재를 대체하시는 존재, 그런 관계에서 신약에 로마서에서 뭐냐? 대신.

대신 그 다음에 나오는 단어들 많지요. 대신 죽으심, 대신 기도하심, 대신 전도하심, 많잖아요. 대신한다는 것, 대체한다는 것, 대체하는 분이 시편 20편에서 아버지의 상대자로서 너라고 한 거예요. 마치 하나님에게 야곱을 상대하듯이, 아브라함을 상대하듯이, 이삭을 상대하듯이 너라고 이야기하신 겁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뭐가 어렵냐 하면 소제와 번제에요. 소제와 번제할 때 사람들은 레위기 나오는 말씀처럼 또는 출애굽기나 민수기나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처럼 자기의 소산물을 갖다 바치면 불에 태우면 번제, 식물 빻아서 드리는 건 소제거든요. 이렇게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데 이 소제와 번제 안에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하면 이게 있어야 돼요. 박해받음이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소제와 번제의 특징은 무엇의 흔적? 상처받은 흔적을 지녀야 한다. 그 원형이 바로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산 제물 되죠. 히브리서에 나오지요. 그런데 악마 층에 있는 언약 없는 인간들은 박해 좋아합니까, 안 좋아합니까? 안 좋아하지요. 사람이 자존심이 있고 없고를 뭐로 아느냐 하면 억울함을 느끼면 자존심 있는 거고 억울함 못 느끼면 자존심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치고 자존심 없는 사람 없고 따라서 인간치고 억울함을 못 느끼는 사람 없지요. 물론 특수한 경우가 있어요. 아이큐가 30된다든지 이런 사람들은 남이 조소하는지 욕하는지 전혀 분간 못할 때는 그 사람에게 뭐가 안 생깁니까? 억울함이 없지요. 억울함 생기면 온 몸이 다 뭘 하느냐 하면 강력하게 저항을 해요. 거기서 네 자로 스트레스가 생겨요.

인간이 사는데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은 행여나 나를 해코지할까 싶어서 자체적인 방어체제가 긴장을 더하니까 내 면역체계가 나를 때리는 거예요. 내 면역체계가 나를 해코지하는 상황에 대해서 내 자존심이나 자긍심을 건드릴 상황을 예상해서 강력하게 더욱 더 이렇게 바짝 자기 수위 강도를 더하는 거예요. 그럼 누구 폭발해요? 결국 내가 폭발하면 남는 것은 자살이에요. 폭발하다, 폭발하다 완전히 폭발되면 자살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돌아가실 때 억울하게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이야기하십니까? 내가 억울한 게 아니고 우리라고 하지요. 예수님이 십자가 질 때 우리라고 집어넣은 테두리 안에 들어가신 분이 누구죠? 하나님 아버지가 되지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이것마저 누구 뜻이다? 아버지 뜻입니다. 이게 관계잖아요. 이게 나를 벗어난 관계, 이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우리가 형성된 거예요.

나중엔 성령까지 오게 되면 성령까지 합쳐서 우리가 돼요. 우리의 처소를 같이 하리라. 베드로야 너 처소 없지만 우리가 처소 갖추면 같이 넣어줄게. 이렇게 된다고. 나 아니에요. 우리에요. 구원은. 우리가 구원돼요. 우리 안에 함께 모여 살면 그게 구원이에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걸 누가 대신하는 겁니까? 예수님이 대신하셔서 번제가 되고 소제가 되신 겁니다.

10분 쉬고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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