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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 04:57:12 조회 : 58         
서울의존강의20201112a 베드로전서4장 17절(가짜 교회)-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하림(IP:124.254.211.180)
서울의존강의20201112a 베드로전서4장 17절(가짜 교회)-이 근호 목사

베드로전서 4장 17절-18절

17절,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절,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베드로전서 시작부터가 이질적인 외부의 요소, 피 뿌림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자체적으로 해결책이 없다는 거예요, 이 세상 자체적으로. 이 세상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된 세계에요. 하나님께서 인간보고 나가라고 한 겁니다. 내쫓은 거예요. 한번 적어볼게요.

‘내쫓았다’는 말은 ‘두 번 다시 들어오지 마라’에요. 들어오지 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무엇을 배경으로 하느냐 하면 ‘공간적 차이성’을 염두에 두고 오는 겁니다. 공간적 차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 둘로 나누는 겁니다. 인간들 자기들끼리 많이 모여도 소용없어요. 하나님이 계신 곳과 아니 계신 곳으로 구분지어서 심판을 하겠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심판의 기준은 정해졌죠. 공간적 차이성이다. 그러면 분명히 ‘내(어) 쫓았다’의 취지를 살리려면 인간이 알아서 기어들어온 것은 하나님이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안 받죠. 자기가 알아서 하나님에게 “죄송합니다” 하고 기어들어오면 무엇이 묵살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이 묵살되겠죠. 내어 쫓음은 끝까지 유지가 되어야 돼요, 내어 쫓았다는 것은. 내어 쫓았다는 취지를 살려내야 한다고요.

그러면 공간의 차이가 구원의 기준인데 이 구원받는 공간의 특징은 무슨 취지가 계속 살아 있어요? ‘내어 쫓았다’가 계속해서 살아있는 공간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공간입니다. 참 쉽죠? 굉장히 쉽죠. ‘하나님께서는 내어 쫓을 만해서 내어 쫓았고 내어 쫓은 하나님의 조치는 항상 정당합니다. 옳았습니다.’ 그것을 계속해서 살려내는 공간.

그러면 좀 더 나가봅시다. “하나님이 내어 쫓았는데 너는 어떻게 기어들어왔어?” 이렇게 되겠죠, 천국 가게 되면. 분명히 나는 내쫓았는데 네가 왜 거기 있느냐고 이야기하겠죠. 그럴 때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 “피 뿌렸잖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내어 쫓음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두어 주는 것, 그 두 개의 취지가 같이, 함께 있는 방식은 뭐냐? 하나님께서 끄집어낸 아이디어는 뭔가? 내어 쫓은 것을 살리기 위해서 다 버리는 거예요, 전부다. 다 버리고 그 다음에 내어 쫓지 말아야 될 분을 내어 쫓아야 될 공간에다가 보내가지고 내어 쫓지 말아야 될,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아주실 분을 그 내어 쫓은 공간에서 다시 소환시키는 방법을 쓰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이 왔다가 예수님만 달랑 갈 수 있지 않느냐. 하는데 예수님께서 소환될 때 예수님이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내어 쫓을 필요 없이 다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가 원조가 되고 ‘예수님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여기 여기 모여라’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만이 아버지께서 도로 받으신다는 뜻을 이야기했고, 그 뜻을 성령을 통해서 그 예수님의 마음을 분배받은 사람 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취지가 그대로 살아 있겠죠, 그 성령 안에는. 그렇죠? 그 마음 안에는. 그러면 아버지가 예수님을 받아준다면 예수님과 동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내칠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지죠.

여기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보면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즐거워하라” 주님께서 피 흘리는, 죽으시는 고난을 받으실 때 그 고난을 예수님 혼자 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과 동일한 마음을 가진 자가 여기에 예수님과 더불어 참여하게 돼요.

그럴 때 성령을 받은 사람, 주님의 고난에 참여한 참 성도는 무엇을 즐거워하느냐 하면 “내쳐도 되는데 내친 사람 가운데서 예수님만 아버지께서 찾아내는 그 마음을 공히 우리에게 주신 것을, 그 기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죠. 안 즐거워 할 수가 없어요.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땡 잡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한 걸 가지고 ‘땡 잡았다’라고 하는 거예요. 고난을 그냥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새로운 이질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 이질적인 사고방식이 오늘 본문을 전개할 때 이렇게 돼요. 이건 진짜 어렵지 않습니다. 진짜 쉬운 거예요. 한번 적어볼게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 하면 이렇게 살아요. “너희는 하나님께서 내어 쫓았다.” 이런 마음가짐, 이런 정신 가지고 살면 그리스도와 고난 받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내어 쫓았다. 나보고 따지지 마라. 쫓아내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보고 따지지 마라. 난 쫓아냈다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러면 너는 왜 영원히 안 쫓겨나고 지옥 불에 안 가느냐? 주께서 주님의 마음을 우리한테 줘서 내어 쫓지 않고 유일하게 받아들이는 그 마음을 주님과 더불어 공유했기 때문에 우리는 받아들인다.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받아들이는 하나의 공간이 생기고 내어 쫓김을 받은 공간은 그대로 있겠죠. 그래서 두 개의 공간으로 결과적으로 나뉘지만 사실은 이렇게 보면 돼요. 원래 하나의 공간밖에 없는데(◯) 예수님께서 다녀가잖아요, 예수님께서 다녀가시죠. 다녀가시면서 여기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빠지고 나면, 이만큼(⌔) 빠졌다고 봅시다. 이 정도 면적을 빠졌다고 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지옥행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일 쉽게 하셔요. 빼낼 사람 빼내 버리고 그 나머지는 가만히 있으면 가요, 가만히 있으면. 예수님의 마음을 받지 못하고, 예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하고, 성령이라는 것은 아까 말씀 드렸죠, 그리스도의 고난의 영, 예수님의 고난의 영을 받지 못하면,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이 세상 모든 호강 다 하다가 그냥 지옥 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공간은 뭐가 빠져 나간 공간입니까? 예수님께서 오셨다가 빠져 나간 공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안 계신 공간이에요.

아까 심판의 기준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있으면 천국이고 함께 없으면 지옥이죠. 하나님이 빠져버린 공간은 인간들의 공간이죠, 인간들의 공간입니다. 자, 이제 남은 문제는 뭐냐 하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공간이 인간들만의 공간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함께 있는 공간이냐’ 그걸 우리가 파악하는 일이 남아있겠죠. 그걸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공간인지 아닌지를.

두 군데를 같이 봅시다. 첫째는 사도행전 4장 19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되어있죠. 여기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의 반대 자리에다가 뭐를 딱 놔뒀습니까? 하나님 말씀 듣는 것하고 정반대가 뭡니까, 여기 오늘 본문 4장 19절에서? 하나님 말 듣는 것과 반대위치에 뭐가 있어요? 너희 말 듣는 거죠. 사람 말 듣는 거라 이 말이죠.

벌써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을 적용시켜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있는 쪽과 하나님이 빠지고 인간들만 있는 쪽을 구분시키는 겁니다. 인간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결속력 때문에 자기 말 듣지 않으면 협박, 공갈하겠죠. 권세, 권력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베드로와 요한이 간파하고 있는 거예요. 딱 찌르고 들어오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너희하고 나의 차이점이 뭔 줄 알아? 너희들은 사람말만 듣는다고. 너보다 더 힘세고 너에게 좋은 것을 줄 것 같은 그런 인간들의 말에 훅 빠져버리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좋은 걸 주고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제공하는, 오늘날 대표적인 단체가 무슨 단체입니까? 이 앞에 계신 분, 그 대표적인 단체가 무슨 단체죠? 사람들이 원하는 걸 주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걸 제공하는 곳. (교회요.) 네, 교회죠.

그 당시에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과 대비시켰어요? 하나님의 말씀의 반대편에 기존의 종교단체를 대비시켰죠. 종교단체는 모든 사고방식을 하나로 결집하는 곳이기 때문에. 인간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포시킨 거예요.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차갑게, 냉정하게 거절할 리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교회죠.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서부터 시작돼요? 교회서부터 시작돼요, 교회서부터. 교회는 인간의 아이디어에요.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만들어낸 겁니다. 그 뿌리가 뭐냐? 그 뿌리가 유대교잖아요. 하나님은 보릿자루처럼 꿔다놓고 하나님 거론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은 그냥 들러리고, 구색이고 나머지 모든 교회 종교단체 운영은 누구 의견을 조합합니까, 규합합니까? 인간들이 가장 원하는 것, 그러니까 다수 의견을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서 투표로 해서 운영되는 겁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북이스라엘이 왜 망했습니까?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 듣지 않고 우상을 섬겼다. 이렇게 되어있죠. 북이스라엘에서 우상 섬긴 사람이 한 두세 명 됩니까, 아니면 거의 절대다수입니까? 거의 절대다수지요. 그러니까 선지자가 욕 얻어먹은 거예요. 북이스라엘에서 다음 대선 사전여론조사로 대권 누가 되느냐 한번 해보자 이 말이죠. 다음 대권 도전할 때. 윤석열 몇%, 이재명 몇%, 이낙연 몇%, 엘리야 몇%. 자, 엘리야 몇 % 나오겠어요? 엘리야 몇% 나오겠습니까? 이런 거예요, 이런 거. 엘리야는 850대 1로 붙었어요. 대선 후보감 안 됩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세상을 알아야 돼요. 인간의 마음은 진공상태가 아닙니다. 뭔가 노림수가 있어요, 노림수. 하나님 덕 보자는 거예요. 하나님 덕 보자.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아니하면 절대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게 인간입니다. 왜냐하면 많이 가진 것이 선이기 때문에 그래요. 없는 것은 악이 돼요. 이게 선악구조에요. 자기가 많이 가지고 남 앞에 내세울 힘이 있으면 그건 선이고, 개뿔도 아무것도 없으면 믿음이고 자시고 그건 제껴 놓고 뭐 아무것도 없으면 그건 누가 봐도 저주받은 거예요, 누가 봐도.

왜 이스라엘이 우상을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주변 나라 다 잘 살았거든요. 못 사는 나라, 힘없는 나라의 신을 섬길 이유가 없어요. 그러면 왜 이스라엘 빼놓고 나머지 주변 나라는 왜 그렇게 강대국이냐? 하나님이 그렇게 부추긴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 언약은 실패 가운데에서 갱신되게 되어 있어요. 곱게 발전하는 법은 없습니다. 실패 가운데 갱신이 돼요. 갱신 알죠? 운전면허 갱신 이런 거 있잖아요. 다시 바꾸어진다고요. 실패 가운데서.

열왕기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으로 움직이는지, 구약 때에. 북이스라엘도 마찬가지고. 열왕기상 22장 38절,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자, 제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움직이는 것은 뭐냐? 여호와의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무시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했느냐? 언어를 표현하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죠. 첫 번째는 재현하는 게 있고 다른 하나는 진실된 것이 있어요. 진실된 것은 재현된 것을 무너뜨리면서 등장하는 게 진실된 거예요. 진실은 처음부터 진실이 아니고 모든 것은 재현밖에 없습니다.

재현한다는 것은 presentation, 그러니까 그 내용대로 인간이 한번 해보는 거예요. 영업할 때 한번 시연해보잖아요. 우리 회사 상품 이렇습니다. 시연해볼 때 한번 해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번 해보는 거예요. 이거는 적용이 아니고 재현이잖아요, 재현. 재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무엇이 가미되느냐 하면 인간의 행함, 인간의 의도가 플러스되게 되면 나타나는 게 재현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해보는 거예요.

십일조해서 복 받는가, 안 받는가 한번 해보는 것, 그건 재현이죠. 십일조를 만약에 10만원 했다면 하나님께서 창고에 차고 넘치도록, 그럼 창고에 차고 넘치려면 도대체 5만원 짜리로 얼마나 채워야 되겠습니까, 뭐 한 30배 잡고, 10만원 했는데 300만원 나오면 그것은 재현=진리가 되겠죠. 그런데 10만원 했는데 차사고 나서 차 박아서 한 50만원 나갔다 합시다. 그리고 한달 내내 기다렸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요. 십일조 10만원만 날렸네. 아무 보충되는 게 없다 이 말이죠. 우환만 더하고. 그게 바로 십일조거든요.

십일조는 너희들이 십일조 하는 그 자체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십일조라는 그 법이 다른 민족에게는 없고 너희에게 있는 것만 해도 네가 감사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특별대우를 해 준거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십일조하고 정작 얻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의식이 돌아와야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내 돈 십분의 일을 낸 게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의식이 들 때, 십일조 내는 나 자체가 바로 십일조에 해당되는 그러한 진실인 것을 아는 겁니다.

그래서 신약에 오면 예수님이 십일조에요. 그래서 신약에는 십일조 하는 게 없습니다. 예수님이 의와 신이거든요. 예수님이 의와 신과 진실이잖아요. 그래서 예수님 자신을 믿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십일조가 됩니다. 율법의 완성이 돼요. 그래서 우리의 창고, 천국의 창고는 지금 가득할걸요. 지금 우리가 안 죽어서 그렇지, 곧 죽어보세요. 이제 2시간 뒤에 죽어보세요. 진짜 천국의 창고가 가득 차있죠. 우리가 십일조내서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십일조 된 효과를 천국 가서 마음껏 누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집의 창고는 왜 안 차 있느냐. 너네 집의 창고는요,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는 창고이기 때문에 강의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그곳은 지옥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으면 지옥이에요. 다시 잊어버릴까 싶어서 내가 상기시켜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있는 공간이어야 돼요. 하나님이 빠져 있는 곳에 돈만 많으면 그것은 지옥입니다.

실내 기온이 만약에 45도다. 굉장히 덥다. 그런데 아내가 에어컨 틀 줄 아는데 출타했고 나는 에어컨도 틀 줄 모르고 선풍기도 가져가버리고 해서 집에 돈은 한 15억 있는데 실내기온 45도다. 대책이 뭡니까. 대책 없죠, 아무 소용없죠, 그게.

하나님이 계신 것보다 더 기쁨 주는 것은 없는 공간, 그게 천국의 진수입니다. 천국의 본질은 그거에요. 주님이 함께 있다는 그걸로 끝이에요. 어린애한테 젤리 하나 주는 것을 기뻐할까요, 5만원 짜리 다발 주는 걸 기뻐할까요? 젤리 하나죠. 아이스크림 하나가 더 맛있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또 묻습니다. 옆 집 아줌마가 주는 게 좋을까요, 자기 엄마가 주는 게 좋을까요? 자기 엄마가 주는 게 좋죠. 엄마의 사랑으로 충분합니다, 어린애한테는.

그래서 어린애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갑니다. 어른들은 자기 행한 것,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기쁨과 행복을 얻으려 해요. 애들은 그게 없어요. 자기 행한 것도 없어요. 어른이 되면 될수록 인간은 자기 잘난 것과 함께 있으려고 하지, 자꾸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 해요.

자, 약속대로 아합은 그렇게 죽습니다. 그러면 다시 물어봅니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섬겼는가. 그것은 망해야, 이 이스라엘이 스스로 징계를 받아야, 처벌을 받아야 말씀의 재현에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 말씀의 재현이 아무짝도 쓸모없다고 깨어져서 그 다음에 진실로 가는 겁니다.

이스라엘 땅이 율법의 나라죠. 율법의 장소죠, 공간이죠.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그 율법에 의하면 젖과 꿀이 흐른다 이 말이죠. 그런데 젖과 꿀이 흘러야 되는 여기에 갑자기 흉년이 들어버린 거예요. 흉년이 드니까 나오미의 엘리멜렉 가정이 이 경계선을 넘어 버리잖아요. 율법이 밥 먹여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율법이. 율법이 밥 먹여주지 않았다고 하는 이 가정은 뭐냐. 결국 나는 밥이 있어야 되지, 율법이, 하나님이 있는 것은 난 시큰둥하다는 거예요.

밥 먹여주는 하나님은 좋지만 그냥 하나님은 별로라는 겁니다. 갔잖아요. 갔을 때 한번 살아보겠다고 소위 이민 간 겁니다. 미국에 이민 간 거예요. 아빠하고 엄마하고 아들 둘하고 이민을 갔는데 남자는 족족 다 죽었어요. 아빠도 죽고 아들 둘 다 죽었어요. 아들 둘도 지가 벌은 게 없으면 결혼하지 말아야 되는데 지가 또 벌은 것도 없으면서 결혼은 또 조기에 했어요, 조기에. 뭐 사고 쳤나. 둘다 결혼했다 이 말이죠. 덜렁 아들 죽고 나니까 남는 것은 과부 3종 세트에요. 늙은 과부, 젊은 과부. 과부 셋 있단 말이죠.

살아볼 수 있다는 여지를 없애버린 거예요. ‘율법을 위반해버리면 결국 인간은 살 수 없다’를 알 때, 이게 바로 재현에 머물던 율법이 무엇에 가깝습니까? 진실에 가깝죠. 진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 내어 쫓는다는 그 취지를 주님께서는 양보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한결같다는 겁니다.

인간은 마땅히 내어 쫓는 거예요, 마땅히. 이유 있어서 내어 쫓는 게 아니고. “인간이냐? 나가!”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노래가 생각나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당신을 만나, 이선희 노래 말고. 인간이라는 이유로. ‘남자라는 이유로’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묻어버린 세월이 너무 길어서. 인간이라는 이유로 쫓아내버려요.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냥 지옥 가는 거예요. 그냥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그 이유 때문에 그냥 지옥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낮에 안양강의에서도 그런 이야기했는데, 인생살이를 세 자로 이야기한 사람이 있다고 했죠. 인생살이를 세 자로 이야기하면 ‘아프다’에요. 아파요. 왜 이리 아프냐, 테스형. 그냥 아파요, 그냥. 산다는 게 아파요. 어릴 때는 모르죠. 부모가 먹을 거, 입을 거 다 해줬기 때문에. 그런데 걔가 유치원 때부터 드디어 선행학습해가지고 숙제하고 영어 배워야 되고 한번 슬슬 해보죠. 잠 오는데 숙제 다 끝내야 잘 수 있고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경쟁해보세요. 아프죠.

TV 잘 안 보는데 TV 보니까 어떤 프로에 보면 무명가수들이 이름 알리려고 시합을 하는데 용을 써요. 심사위원들이 앉아있고 노래 부르면 거기서 요새는 대면 못하니까 전부다 유튜브로 해서 쭉 보는데 어떤 사람은 ‘잘했다’가 72%, 한 쪽은 73%, 한 쪽은 80%. 이러니까 땡 떨어졌어요, 72%. 아주 노래 부르려고 용을 써. 아파요. 모든 인생이 움직일 때마다 다 아파요. 몸 피곤한 거는 기본이고 마음까지 아파요. 기쁨? 기쁨 없습니다. 행복? 꿈이에요.

왜 아프냐? 쫓겨났으니까 아프지. 쫓겨났으니까 아픈 거예요. 아프라고 쫓겨난 거예요. 쫓아냈는데 히히덕 거린다. 그건 미친 거예요. 저주받으라고 쫓아낸 거예요. 그 하나님의 취지가 살아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에서 그 취지가 날라간 게 아니에요, 그대로 살아있어요. 그런데 그 아픈 세상에 누가 들어왔느냐. 하나님의 아들마저 들어왔어요. 예수님께서 편안했겠습니까, 고난이겠습니까? 고난이죠. 그러니까 고난의 영이잖아요. 그게 성령 아닙니까.

예수님이 당했던 수모를 너도 받으라고 주신 영이 뭐냐. 성령이에요. 성령 받고 좋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성령 받고 난 뒤에는 그리스도가 갔던, 당해야 했던 그러한 애매한 억울함과 수모와 조롱거리, 핍박, 무시당함, 거기에 대해서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기뻐해라. 땡 잡았다.

기차가 대전에서 호남선으로 가고 또 한 선은 경부선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호남선 가는 것을 지옥이라고 합시다. 전라도 사람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예를 들어서. 자, 지옥에 가는 호남선에 있는 사람이 처음 출발할 때는 각도가 좁았다가 갈수록 경부선하고 점점 멀어져요. 호남선에 있는 기차 탄 사람이 한 30분 자고 일어나 보니까 어느새 경부선에 타고 있어요.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됩니까? 그 때를 땡 잡았다고 하는 거예요. 땡 잡은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전서에서는 그렇게 된 것은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그 경부선, 천국 가는 선에 아무도 올 수가 없다는 거죠. 분명히 자기는 지옥으로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기는 이미 천국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가는 길은 이미 먼저 앞서간 분이 딱 정해놨어요. 그게 고난의 영입니다. 고난의 영과 함께 하게 되면 우리는 다른 옆길로 샐 수가 없어요. 오로지, only 그리스도가 가는 그 십자가의 길 외에는 아무데도 갈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십자가에 올라가는 길이 있거든요. 예수님이 열다섯 번 넘어졌다고 하던가,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인가 있어요. 애탄의 길, 통탄의 길이라고 있는데 그거 십자가 메고 한번 올라갔다고 해서 십자가의 길 가는 거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세상이 나를 조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조롱해서 그래요. 내가 나를. 나 자신이 나 자신을 되게 실망시키고 나를 우습게 봐요. 구원받기 전의 내가 구원받은 나를 시시하게 보고 모욕감을 줘요. 내가 나를 같잖게 본다. 다른 말로 하면 한심스럽게 본다, 내가 나를.

가장 큰 시험은 나에요. 내가 가장 큰 시험이라고요. 복음 한 10년 듣다가 힘 다 빠져가지고 “나 안 들을래.” 하는 경우에 뭐냐 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아직도 복음을 믿겠다고 시도하는 본인이 같잖고 한심스러워서 ‘아이고, 하던 대로 살자, 고만. 무슨 하늘의 별을 따겠느냐’ 하고 스스로 자기를 포기해버려요.

디모데전서 1장 20절, 여기 유명한 인사 두 사람 나와요. 성경에서 꽤 유명한 인사인데 안 좋은 걸로 유명하죠.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그 사람을 어디에 내었다? “사단에게 내어주었다.” 이 말이 굉장히 심오합니다. 왜냐하면 사단에게 내어주는 것도 주님이 내어주게 되면 사탄에게 내어줄 수가 있어요. “너 사탄에게 가.” 이러면 사탄에게 가야돼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처럼 아예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버리면 이미 죽었기 때문에 내어줄 게 없는데 이게 어쭙잖게 십자가 아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 사람이. 십자가 믿는 시늉을 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성경에서 표준인 십자가는 나를 죽은 자로 확정짓는 십자가인데 이 후메내오, 알렉산더 같은 경우에는 안 죽으면서도 죽는 시늉을 낸단 말이죠. 그러니까 죽으라 하니까 죽는 척하면서 한쪽 눈은 실눈을 뜨는 거예요.

이걸 제가 수요일 설교할 때는 뭐라고 했느냐면 어떤 사람은 진짜 자기 옛사람이 하나님에 의해서 망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옆에서 뭐하고 있느냐 하면 (크게 써야지) ‘구경’하고 있는 겁니다. 남 구원받는 거 구경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고, 안됐다, 세상에. 뭐 잘못 믿어가지고 저렇게 벌 받은 거 아닌가.” 이런 식으로. “아이고, 난 괜찮지? 난 다친 데 없지?” 이런 거. 사람은 자꾸 관찰하고 구경함으로써 흉내 내려고 해요.

음주운전 하는 운전사와 옆에, 조수석에 탄 친구의 차이점은? 한 인간은 술 먹고 지금 미쳐가지고 운전대 잡고 가고 있고 그 옆에 있는 친구는 저 미친 인간이 운전하면 몇 사람 죽이는가 그게 지금 궁금해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거예요, 말리지도 않고.

주님께서 직접 다뤄버리면 자기가 주님의 성령을 이길 수가 없어요.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성령은 무슨 영이냐, 오늘 베드로전서 4장 13절의 말씀에 의하면 고난의 영이에요. 고난이라 해서 이 땅에서 돈 없이 고생한다, 아프다, 그 고난만이 아니고 하나님 없이 살아도 되잖아요. 주님 없이 살아도 되는데 이 고난의 영을 받은 사람은 강제조치에 의해가지고 주님이 목자가 되셔가지고 주님 가신 그 길로 강제로 이끌림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누가 반대한다고 했습니까? 본인이 반대하는 거예요, 본인이. ‘주님이여, 제발 남들처럼 그렇게 살면 안 되겠습니까? 그냥 보통 삶을 살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왜? Why me? 왜 하필이면 접니까?’ 이런 식으로. ‘복음 없어도 되는데. 복음 듣는다고 해서 소득세 면제해주고 그런 것도 없는데 왜 저는 이렇게 복음을 알아가지고, 여기에 빠져가지고 이렇게 가야 됩니까?’ 하고 있고 옆에 성령 안 받은 사람은 ‘저 인간이 어째 되나?’ 이렇게 구경하고 있고. 좋은 구경났다고 구경하고 있고.

사무엘하 15장 4절 보겠습니다. 15장에 보면 거기 인물 하나 등장하죠. 이름은 압살롬. ‘압살롬’하면 영화제목 같기도 해요. 압살롬하면 인상이 딱 떠오르는 가수가 있어요, 신성우. 머리카락 멋있어, 남잔데. 머리카락 막 휘날리면서 사자 머리카락이에요. 그 머리카락 때문에 죽었지만. 이 압살롬이 4절에 보면 사람들을 회유해요. 재판할 게 있거든 제가 여러분 섭섭지 않게 여러분의 소원대로 해드리겠습니다. 권력이 나한테 있으니까. 권력자가 뭐 폼으로 권력 있는 게 아니니까. 저한테 오는 사람에 국한해서 여러분이 재판에 승소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이렇게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뭐냐 하면 교회는 누가 세운다? 마귀가 교회를 세우는 거예요.

교회에 두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마귀가 못 이기는 교회가 있어요. 이것은 어느 길로 갈 때 그렇습니까? 십자가의 길로 가는 그 성도들 같으면 마귀가 못 이기겠죠. 왜냐하면 이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겼잖아요, 음부의 권세. 그러면 성령이 오기 전까지 이 성도는 누구 손에 있었습니까, 성령이 오기 전까지는? 음부의 권세한테 눌려 살았죠. 음부의 권세, 마귀의 권세가 뭐냐 하면 바로 돈과 건강과 인기와 권세. 이것에 눌려 산 거예요. 이야기 끝까지 잘 들으셔야 돼요.

따라서 여기에 마귀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 돈, 건강, 인기와 세상 권력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게 뭐고? 시시한 건데, 뭐. 악마가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 할 때 얼마나 건강 챙겨줬습니까? 링티 먹으라하고. 사탕도 사주고. 하여튼 얼마나 챙겼어요. 뭘 먹어야 주의 일을 하지. 이런 식이라 이 말이죠. 지금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만,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죽어도 산 거예요. 그러나 건강한 몸으로 살아있는 것은 산 게 아니고 그것은 심판 속에 있는 거예요. 이미 심판 속에, 처절한 죽음 속에, 저주의 죽음 속에 그냥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이러한 구분을 어디서 하겠습니까? 교회에서 해요? 교회에 사람들이 왜 오는데요. 음부의 권세에 놀아나던 인간들이 그대로 교회 문 열고 그대로 온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 밖이나 교회 안이나 둘 다 어느 권세가 장악하고 있습니까? 음부의, 악마의 권세가 장악하고 있는 거예요. 교회의 승자는 사람 숫자와 헌금 아닙니까. 그거거든요. 사람 숫자와 헌금 많으면 승리가 되는 교회가 된다 이 말이죠.

교회 이름도 한번 보세요. 행복한 교회. 이거 뭐에요? 행복한 교회. 뭐 어쩌라고. 행복해서 뭐 어쩔 건데. 지 혼자 행복해서 뭐 어쩔 건데요. 주님이 행복했습니까? 주님 가신 길이 되~게 행복한 길이었어요? 고난도 없이? 주님 가신 길에 꽃을 막 뿌렸습니까? 장미꽃 이런 거 해가지고, 끝까지? 가시는 길이 그저 꽃길이 되소서. 이런 식으로 했습니까? 십자가 같은 건 근처도 안 보이고, 십자가는 나쁜 강도나 하고 예수님께선 십자가에서 막 빼줘가지고 이런 좋은 하나님이 오셨는데 우리가 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하고 프라자호텔이나 아주 고급호텔에다가 모셨습니까, 예수님을?

아무리 좋은 다윗 가문이라도 셋째 아들 압살롬이 중간에 빼돌리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재현은 실패를 겪어야 비로소 진실이 재현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재현은 일종의 크래커같이 톡 부러져야 돼요. 베드로에게 반석을 세웠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해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반석인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만큼 많아야 되는데 아브라함 부인이 애기를 못 낳네. 애기를 못 낳아요. 애기를 못 놓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뭡니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많을 것이다.

이거 뭐 앞뒤가, 체인이 연결되고 싶어도 뭐 어느 대목에 연결이 될 수가 없어요. 이것은, 기존에 내어쫓김을 당한 인간 세계야, 너희들의 판 자체가 찢어지고 깨어져버려라. 그 안에서 솟구쳐 올라올 것이다, 진실은, 진리는. 진리를 찾을 생각하지 마세요. 진리는 없어요. 내 판이 깨어져야 그제야 진리가 얼굴을 내미는 겁니다. 내 인생, 사고방식이라든지 모든 것이 깨어져야 돼요.

깨어진다 해가지고 또 이런 걱정하지 마세요. 아까 건강, 돈. 이런 걱정하지 마세요. 깨어진다는 말은 내가 내 인생을 꾸역꾸역 꾸려나가다가 난데없이, 나 지금 어디 가고 있어? 갑자기 천국 가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둘러봐도 천국 갈 건덕지도 없고 이유가 없고 그만한 선행을 한 적도 없고 거기에 관심조차도 없었던 나를 천국으로 이끄시고 십자가의 길로 가게 하시는 것은 이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얼마 전 강의한 제목이 <깔때기 은혜>라는 게 있었거든요. 부산 강의. ‘깔때기 은혜’라는 제목을 한 이유가 그 내용을 들어보게 되면 중앙정보부에서 시행했던 물고문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입 벌리고 깔때기 꽂아 가지고 강제로 은혜를 줘버리는 거예요. 강제에요, 강제로. 달라고 한 게 아니고 강제로 은혜가 와버렸으니까 이게 깔때기 은혜인겁니다.

사실은 원래 제목을 <깔때기 은혜>라 안했고 <엿 같은 인생>으로 하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욕으로 전파될까 싶어서, 좋은 의도가 나쁘게 될까 싶어서 깜짝 놀라서 후딱 바꿨죠. ‘엿 같은 인생’이라 하는 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고 어린애가 집에 있는 귀중품을 어린애기 때문에 뭣도 모르고 엿쟁이가 엿 주니까 달콤하잖아요, 다 팔아먹는 거예요. 팔아먹을 때 생전 집에서 맛 못 보던 짜릿한 맛을 주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귀중품을 가져가고 대신 천국의 짜릿한 맛을 주신다. 이런 의미에서 엿 같은 인생입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달라 하는 것은 안주고 천국의 맛을 보면서, 맛나죠, 아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이런 행복도 있구나. 그걸 깨닫게 하는 겁니다. 그 행복은, 가만 있어라. 천국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내가 다 줄게. 필요한 모든 장비라든지 모든 은사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그 은사 세 가지를 정리하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를 주는 거예요. 믿음, 소망, 사랑. 이 특징은 뭐냐 하면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거예요.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기쁨으로. 되어지는 내 일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믿을 수 있도록, 그걸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 그게 사랑의 은사.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인간적인 소망과 인간들의 믿음은 나중에 맥 빠져서 없어질지라도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계속 일방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깔때기 은혜, 물고문, 주어지기 때문에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가장 원천적인 것은 사랑입니다. 모든 믿음, 소망은 주님의 일방적인 사랑에서 나왔다. 그 사랑은 추상적인 게 아니고 실제적으로 이 땅에서 베드로전서 1장에서는 예수님의 피, 피 뿌림이에요, 피 뿌림.

여러분, 세탁소 가면 세탁할 때 어떻게 합니까? 물 넣어서 칙칙 뿌리죠. 거기에 물 들어있다고 하지 말고 피 들어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온 전신에다가 칙칙 뿌리는 거예요. 이게 부산가는 경부선에 탄 사람들은 수시로 이렇게 되는 거예요, 수시로.

그래서 첫째 시간의 결론은 뭐냐 하면, 둘째 시간 시작할 때도 이렇게 이야기하겠지만, 인간은 사람하고 상대하지 마세요. 말씀하고 상대하세요. 사람은 단발성입니다. 일회성으로 끝나고 말씀은 영원합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서울의존강의20201112a 베드로전서4장 17절(가짜 교회)-이 근호 목사.hwp (64.0K), Down: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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