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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7 00:14:31 조회 : 32         
강남-누가복음 4장 19절 (충돌지점) 201103b-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4장 19절 (충돌지점) 201103b-이근호 목사



세 번째 강의 어렵게 하지 않겠습니다. 세 번째 강의가 뭐냐 하면은 바로 마음이 상한 자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앞에 것과 연결되어 있어요. 약속의 땅에서 가난하게 되게 되면 마음이 상한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돈이 없는 거에요. 왜 하나님은 함께 계시다는데 저 사람은 잘 사는데 나는 왜 못 사느냐? 그 당시의 약속의 땅, 약속의 땅의 있는 이스라엘을 대상할 때에 고아와 과부들이 누구한테 하소연하겠어요?


하늘을 향하여 하소연을 하게 되면 출애굽기 22장에서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가진 자의 것을 뺏어가지고 너희에게 줄게. 그게 뭐냐? 50년이에요. 4x4+1 희년. 누구야? 내 것 가지고 행세하는 인간 누구야? 이삭 줍는 룻에게 주는 것처럼 네가 자식이 없어? 걱정하지 마. 너 가족의 시동생이 있잖아. 어? 시동생이 다 죽었다.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 너한테 유력한 친척 보아스 데려다가 대를 잇게 해주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이게 뭐냐 하면은 보편성입니다. ‘보편성’.


보편성은 특수성을 드러내야 보편성이에요. 누구만 드러냅니까? 기름부은 자만 드러내기 위한 그분의 공로로만 형성되는 나라. 그게 천국. 명칭도 이름이 무슨 나라냐? 아들의 나라. ‘아들의 나라’.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기름부음이 되셔서 보편성을 이루는 거에요. 보편성은 본인들이 특수성이 아닌 본인들이 특수성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를 증거하든지 자기를 남한테 내세울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보편성 중에 일부이기 때문에.


그걸 대구강의에서는 이걸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이걸 이렇게 했지요. 1/n. 우리는 다 주님의 1/n 이에요. 눈이 눈보고 발이 발보고 쓸데없다 소리 못한다고 했지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그 표현 자체가 기존 교회에서 쓸 때 못마땅한 거에요 저는. 그리스도의 몸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서 그냥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하자는 말이죠. 왜냐하면 몸이 그리스도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해도 상관없는 거에요.


그러나 그리스도 몸이라고 할 때는 그리스도라고 할 때는 특수적인 그리스도를 말하는 게 아니고 보편적 그리스도를 가지고 그리스도라고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보편적인 것. 1/n. 그러니까 교인 수 이런 거는 신경 쓸 필요 있다? 없다? 별로 없지요. 전부 다 그리스도라면 그리스도 하나, 둘 이럴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몸이 왔구나 이러면 되지. 그리스도의 1/n x 1,2,3 이 왔구나 이러지 말란 말이죠. 그냥 그리스도가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마음이 상했다는 말은 앞에 가난한 자를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돈이 없다면 그 다음에 빚이 있겠지요. 빚이 있다면 어디 잡혀가겠습니까? 포로 잡히겠지요. 노예로 팔리겠지요. 노예로 팔리는 거에요. 노예로 팔리면 이게 뭐냐? 포로된 자에요. 그리고 갇힌 자.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어디서 풀려납니까? 희년에서. 희년에서 풀려나오는 거에요. 자, 다시 봅시다. 여기 누가복음 4장 봅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여기 눈 먼 자까지 있는데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여기 무슨 때입니까? “주의 은혜의 때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시면서 그 은혜의 때가 500년 후입니까? 2000년 후에요? 언제라고 합니까? 바로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이걸 가지고 21절에 보면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게 하였느니라.


지금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여기. 지금은 시간의 완료, 여기는 공간의 완료. 여기. 지금. 예수님이 이야기했거든요. 아까 첫째시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어떻게 된다? 비현실이죠. 우리는 비현실이라는 단어에 즐거워해야 됩니다. 너는 들어나 봤나? 너희들은 현실에 속했고 우리는 비현실에 속했다. 어디 현실이 깝죽대고 비현실에 들어올라고 노력을 해. 뭐가 와야 돼요? 완료가 와야 돼요. 하나님의 성신도 안되고 성령을 받아야 돼요.


완료가 되게 되면 현실에서 어디로 옮긴다? 비현실로 옮기는 거에요. 비현실은 누가 기대하고 있습니까? 1/n 이니까 누가 기대하겠어요? 1 되시는 분, 주님이 기대하고 있는 거에요.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일 턱이 있어요. 비현실인데. 안 보이죠.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이런 말씀 있어요. “네가 보지 않고 믿으니 복이 있도다” 했잖아요.


이 말은 보는 것 믿는 인간은 쪼다다. 나 그거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겠다 이 말이에요. 예배당 큰 거 교인 수 많이 모이는 것 부흥됐다는 것 헌금 많이 나오는 것 이걸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이요 은혜라고 여기는 사람한테는 너랑 안 논다 이 말입니다. 왜? 그거는 현실이니까 우리의 추억이니까요. 우리의 기억 속에 있으니까.


살아온 신앙의 년조, 교회라는 연륜 속에 이미 체험을 했잖아요. 교회 다니면서 여러분 어떤 체험했어요? 한 40년 50년 다녀보세요. 온갖 체험 다합니다. 저도 어릴 때 젊을 때 20대 때 교회 다녔는데 거기에 대구에서 다녔거든요. 거기에 서울에서 오는 예쁘장한 아가씨가 하나 왔는데 온 동네 은혜 받아서 그때 대구에서 서울말 쓰면 먹히거든요. 서울말 써가지고 했어요? 이렇게 해가지고 나중에 돈 다 빌려가지고 서울로 튀어버렸어. 돈 빌려가지고.


그게 바로 현실이에요. 그게 바로 현실이에요 현실. 그게 현실이라고요. 그 교회 당회장 사모님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 뒤에 유력한 권사, 권사도 그냥 권사 아니지요. 항상 예쁜 권사. 항상 예쁜 권사 만나서 그 목사하고 결혼해가지고 아파트 다 빼먹고 완전 나중에 목사 아프니까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고 말았어요. 그런 현실. 그런 현실.


그런데 뭐 새롭게 됐다고요? 참 나. 옛사람하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요 옛사람하고 새사람 싸운다 하잖아요. 그건 거짓말이에요. 옛사람과 옛사람의 대결이에요. 옛사람과 옛사람의 대결. 새로움이라는 판 자체가 이거는 생소해서 악마가 준 언어로 설명이 안돼야 돼요. 모든 것은 언어 안에 담겨 있기 때문에 언어로 설명이 된다면 설득이 된다면 이건 문제 있는 거에요. 설명이 안돼요. 이건 인간의 해석으로 설명이 안돼요.


주님의 십자가로만 설명될 수밖에 없는 것. 그거는 뭐냐 하면은 가난하냐? 예 가난합니다. 죽어라. 십자가 믿고 죽어라. 이게 은혜의 때에요. 이게 설명이 됩니까? 네가 옥에 갇혀서 갇혔다가 복음 믿고 나 있는 비현실로 와. 이게 자유에요. 이게 자유라고요. 네가 장님이야? 눈감고 예수님 영접해. 그러면 너는 더 이상 아픔 없는 세계에 도달해 있을거야 죽으면. 이게 복음이에요 이게. 이게 은혜의 때에요.


구약에서의 은혜의 때라고 하는 것은 구약은 미완료이기 때문에 그 토대가 항상 인간들이 알고 있는 시공간이에요. 따라서 49년 다음에 50년. 그것만 생각하는 거에요. 베드로가 예수님한테 이야기했잖아요. 몇 번 용서하면 됩니까? 7번 용서하면 됩니까? 카운트 1,2,3,4,5,6,7. 카운트를 해요. 카운트되는 것, 아까 여러분들이 첫째시간 공부했으니까 한번 봅시다.


1,2,3,4,5,6. 1번용서, 2번용서, 3번용서, 4번용서, 5번용서, 6번용서, 7번용서 했습니다. 여기서 뭐가 흘러갔습니다. 뭐가 흘러갔죠? 시간판. 이 자체가 베드로의 해석의 한계입니다. 7번할 때를 자기가 고대하고 있는 거에요. 카운트하는 거에요. 두번만 용서하면 되겠지. 주님께서 약을 올려버렸어요. 7번의 7번. 아마 악바리 같은 베드로가 7번의 70번, 490번을 하게 되면 주님 다 했습니다 하면 뭐라고 하겠어요? 7번의 700번.


판 자체를 엎어버려요. 판 자체를. 판 자체를 엎어버리면 판 자체를 엎을 때에 뭐로 사용했느냐 하면은 이 현실판, 순두부 현실판에서 가장 저주 받았다고 약속의 그 땅에서 소문난 자들이 있었어요. 그들이 누구냐? 세리와 창기와 강도였지요.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판을 엎어버린 거에요.


자, 한번 봅시다. 이게 예수님이 해석을 하실 때 그러한 역설을 개입하셨는데요. 제가 대구강의에서도 했어요. 없다고 할 때에 우리 이 세상에서는 0을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주님께서 없다고 할 때는 제일 있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있음 중에서 있으나마나 제일 허접한 것을 없다로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하는 거에요. 전부 다 높은 곳을 추구하지요. 전부 다 높은 곳을 추구한다고요. 높은 곳을 추구하는 것은 다 어른들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 대구강의에서 했잖아요. 제자들끼리 누가 높으냐 했지요. 주님께서는 이걸 지적하면서 제일 낮은 쪽을 선택해요. 그게 누구냐 하면은 너희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이 비슷한 이야기가 저번에 수련회할 때도 이야기했는데 없는 데서 하나님께서 배불리 먹여주는 것은 만나가 농사지은 겁니까? 답변해보세요. 만나가 농사지은 겁니까? 아니지요.


그럼 만나 어디서 왔어요? 만나서 어디서 왔습니까? 없음에서 왔지요. 없음에서 만나가 내리는 것은 장차 올 선지자가 오시면 모세처럼 없는데서 만나를 내린다고 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없음을 뭐라고 표현했느냐 하면은 어린아이 도시락으로 표현한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락이 있네 라고 표현한다면 주님의 해석을 전혀 이해 못하는 거에요. 도시락이 있는게 아니고 도시락은 없는 거에요. 도시락은 없는 거에요.


물리적으로 말해서 이게 바늘이라면 얼마나 조용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바늘을 딱 떨어트려 보면 그러면 바늘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하다가 돼요. 그냥 조용~~~하다 이것보다도 바늘을 떨어트렸는데 불구하고 바늘 소리가 들릴 거 같으면 조용하다가 제대로 해석이 되겠지요.


주께서는 못난 놈, 가장 찌질이. 아이고 저거는 죽으면 지옥 갈 것이라고 했던 거지. 문둥병자. 문둥병자는 저주 받은 사람이니까. 이런 사람들 그런 사람 통해서 소위 가진 자, 잘난 자, 율법 해석자를 엎어버립니다. 그래서 이 낮은 자, 가난한 자의 극단이 뭐냐 하면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공개적으로 나를 죽여라 하는 사건을 크게 이벤트를 만들어버려요.


주목을 받을 만큼 주목을 받기 위해서 함부로 죽지 않아요. 높은데서 떠밀려고 해도 아~ 가만있어. 아직 때가 안됐어. 피해가 버려요. 동생들이 와서 지금쯤 예수님 드러내야 한다. 아니야 때가 안됐어. 초막절날 요한복음 7장에 나갈려고 할 때 아냐 아직 때가 안됐어 이러면서 또 이야기한다고요. 그래서 자꾸 욕조의 홀같은 거에요.


모든 물이 한 구멍으로 빠지듯이 이 세상에 일어난 모든 것에는 어떤 원인이 되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는 거에요. 하나의 문제. 그 문제점을 쪄서 나오는 해석이 온 현실을 부정하는 그러한 해석이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그 욕조구멍을 빠져나오시고 그리고 성령이 올 때도 그 욕조구멍을 통해서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령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 두 개의 안목을 가지도록 하는 겁니다. 하나는 옛사람의 안목, 하나는 새사람 안목. 그런데 남들 보기에는 그들하고 사는 것과 전혀 다를 것 없는 밥 먹고 살고 평범하기 짝이 없고 그런 겁니다.


자, 그다음에 59+1 희년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자, 그 다음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게 남았어요. 아주 중요한 게 남았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지금 누가복음에 보면은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게 되면 이렇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보게 한다고 했지요. 눈 먼 자의 눈을 보게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자, 그렇게 되게 되면 그러면 묻기를 우리는 구원받았습니까? 하고 자기 개인 생각한다고요. 구원받았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의 특징은 뭐냐? 이사야 61장 있지요. 61장과 방금 완성된 게 누가복음 몇장 입니까? 누가복음 4장 17절에서 19절이죠. 17절에서 19절을 몽땅 바로 우리 안에 말씀으로서 집어넣는 거에요.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이 말씀이 통째로 우리 안에 들어온다니까요.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니까. 보편적 그리스도니까.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걸어다니는 말씀이 되게 하신다니까 이것이. 그러면 우리는 이사야에 나오는 현실과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비현실 두 개다 이사야에 나오는 옛사람,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새사람, 이 둘 다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인생을 살면서 이건 정말 귀한 충고라고 생각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하나도 버리지 마세요.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모으되 그걸 사적가치 나의 개인적 가치, 사적 가치 용도로 모으지 마시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이 말씀 성경말씀 집어넣기 위해서 우리 안에 모든 걸 집어넣었다고 생각하시고 버리지 마세요.


제가 아까 껌이 하나 있길래 제가 씹어버렸습니다. 오래된 껌인데. 껌을 하나 씹은 것도 껌이 하나 발견되서 껌 씹은 것도 버리지 마세요. 우리 안에 새사람, 옛사람, 현실과 비현실이 그것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인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당부했건만 그렇지 않고 아~ 이 일은 생각하기 싫어. 그때는 너무 수치스러웠어. 어찌 내가 인간이 돼서 그런 일을 하다니. 따로 버리지 마세요. 따로 버리게 되어 버리면 본인이 자기 의가 되어버려요. 자기 우상화된다고요.


그러면 그 자체가 옛사람 되어버려요. 악마의 해석이 되는 겁니다. 안돼 이거는 잊어야 돼. 잊어라 잊어라. 제가 주일날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크게 써야 돼요. 기억나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 웃는 사람은 이 노래 알고 안 웃는 사람은 이 노래 모르고. 기억나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아요 슬픔 뒤 밀려드는 그리움. 어느 권사님이 부른 노래인데 그때는 권사 아니지만 지금은 권사 됐어요.


아무리 잊을려고 해도 우리는 이미 발생된 일은 절대로 순두부 현실 속에 있습니다. 그 현실을 아니야 이걸 알면 나는 인간 조지는거야. 내 가치는 뭉개지는 거야. 저리가 저리가 하지 마시고 그대로 다 받아들이세요. 그대로 다 받아들여야 내가 우상 안돼요. 내가 우상시 안돼요. 모든 일어난 일은 곱게 곱게 모아놨다가 사적 가치용도로 쓰지 마시고 내가 잘났다 변명 쪽으로 하지 마시고 주님의 몸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했던 일인 것을 그래야 내가 1/n이 되니까. 다 모아놓으세요.


범사에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것밖에. 그래서 이렇게 보게 되면 세상에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요. 겁나지 않고. 한 30년 만에 그때 초등학교 때 나를 그렇게 왕따했던 애를 만나도 무섭지 않아요. “아이고 이 코 찌질이 요새는 뭐해? 요새도 뭐 비리비리 살지?”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것도 다 주의 일이니라.” 무슨 말인지 모르지 뭐. “다 그리스도 몸이 되기 위해서 주께서 일어난 일이야. 너무 귀해 안 버렸어 그 일. 네가 날 괴롭힌 거 절대 버리지 않아.”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야 하는 이 말은 바로 약속의 땅에 살지 못할 대상자에게는 성령이 안 옵니다. 이사야 61장에 보면 오직 성신은 약속의 땅에서 일어난 일을 겨냥해서 예언된 일이거든요. 약속의 땅, 약속의 땅이 어디입니까? 천국이지요. 천국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절대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없어요. 예수님의 충돌지점이 될 수가 없지요.


주님께서 우리 해석 내놓으라고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주님의 해석 내놓으라고 이야기하지. 주님의 해석. 다 이루었다가 어디서 다 이루었다 했습니까? 십자가 내놓으란 말이에요. 십자가. 이제 죽어도 살았고 그거 내놓으면 돼요. 죽어도 살았고. 죄사함 받았다는 것. 영벌에서 어디로 옮긴다? 영벌에서 영생으로 옮겼다는 것은 죄사함이 나오게 되면 죄사함은 주님의 해석이에요.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일치되지 않아요.


아무리 바르게 살고 싶어도 또 숙제가 주어지는데 그 숙제를 이루지 못합니다. 죄사함은 한꺼번에 다 죄사하는 거에요. 이미 끝난 사항이에요. 끝난 사항을 우리가 뒤에 손가락 가지고 찝쩍댈 필요 없어요. 죄사함을 그대로 유지하세요. 자꾸 흠집내지 마시고. 같은 자식들에게 뭔가 엄마가 뭘 줘도 어떤 애는요 일주일째라도 그대로 있는 애가 있고 어떤 애는 다음날 되면 다 부서져 있는 애도 있어요. 너무 손을 함부로 놀려가지고.


주님께서 물론 성령께서 우리를 흠집 내도록 가만히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시 여기서 결론내려 봅시다. 방금 이 말씀입니다. 성령의 일은 뭐냐? 성령의 일은 주님의 완료를 흠집내게 방치하지 않는다. 흠집 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주의 일은. 그럼 흠집 낼라 치면 여기서 뭐가 주어지느냐? 징계가 주어지지요. 징계가. 주님의 성령의 징계라고 하는 것은 나를 징계 하는게 아니고 주님의 것이 온전함이 온전함으로 지켜주기 위해서 지켜주는 성령이에요.


그러니까 네가 안 해도 온전해 라는 사실을 지키기 위해서 징계를 주시는 겁니다. 왜 똑바로 안살아 그걸 하기 위해서 징계 하는게 아니에요. 그건 마귀가 하는 거에요. 네가 집안에 우환이 있는 것은 나쁜 짓해서 그렇잖아. 앞으로 하지 마. 이것은 변증법이에요 변증법. 그거는 진짜 언제까지 마귀한테 그렇게 속아 넘어갈라고 하는 겁니까?


다시 이야기합니다. 모든 일어난 일은 버리지 마시고 내 가치를 높이는 용도가 아니고 주님이 완성했다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할 일이란 말이죠. 그러면 그걸 그 모든 가치를 일을 벌이지 않을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버리지 말라고 해가지고 온 기억력 나쁜데 다 주워 넣어야 됩니까?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할 때 미리 걱정하지 말고 그 현장에서 주님의 지시에 따르세요. 미리 걱정하지 말고. 벌벌벌 떨지 말고. 주님의 지시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건 성령 안 받아서 그렇지. 그건 자기가 혼자 지시내리면 그건 자기 양심의 소리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그 현장에 주님의 지시대로 하면 되는 거에요. 너무 모호하면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수인데 너무 잘 나가요. 운동도 잘하고 예능도 잘하고 인기가 좋아요. 인기가 좋은데 군에 갈 때가 되었네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가겠습니다 해가지고 우리 아버지한테 인사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했어요. 나는 군대를 반드시 갑니다. 거짓말 아니고 반드시 갑니다. 그런데 마지막 작별인사만 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미국 건너가서 아버지한테 가서 시민권 얻어가지고 군대에 안 갔어요. 누가? 유승준이가.


전 국민에게 사기를 쳐버렸어요. 군에 가겠다고 인사만 하고 오겠다고 하고 왔는데 사기를 친거에요. 자, 그러면 그럴 일 없겠지만 그것도 장담 못하지만 유승준이 성령 받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유승준은 어느 대목에서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됩니까? 군에 가는 것이 주의 뜻이냐 아니냐를 자기는 장담하더라도 자기가 미국 가서 아버지한테 인사 드릴거냐 말거냐 부터 시작해서 주님의 지시를 받았느냐 이 말입니다.


미국 갔다 칩시다. 아버지 만났을 때 아버지 말대로 얘 너 인기라면 군에 안가도 몇 년 뒤에 가도 그대로 인기 있어 라는 아버지의 말대로 군에 안 갈거냐 갈거냐에 대해서 주님의 지시를 받았습니까? 아니지요. 주님의 지시가 없으면 만약의 성도라는 조건하에 성도라면 뭘 받겠습니까? 징계를 받겠지요. 그러면 유승준이 하는 모든 일이 누구 뜻대로 안됐어요?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얼마나 성도라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얼마나 감사해요.


자꾸 고소해서 한국에 뭐 있다고 자꾸 한국에 들어올라고. 어떤 경우라도 주님의 지시를 받는데 잘 들으세요. 주님의 지시라는 것을 어찌 아느냐? 우리가 차후에 알아요. 차후. 차후에 안다는 말은 우리는 항상 결과물이 된다는 거에요. 결과물. 결과물로써 감사만 하면 돼요. 주여 내 뜻대로 안 해주신 것 너무나 감사합니다. 내가 주님의 지시를 오해해가지고 지시도 아닌걸 지시라고 여겼던 것을 뒤늦게라도 알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면 네가 그 지시를 모르는 게 나의 지시였었어 이렇게 되는 거에요. 복잡하지요. 결과물. 그런데 악마는 뭐냐? 네가 원인이라는 거에요. 네가 원인이 되야 된다는 거에요. 네가 지시를 따라야 되고 네가 순종만 하면 네 뜻대로 된다는 거에요. 주님의 지시를 그러면 성령이 왜 필요합니까? 성령이 왜 필요해요?


성령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고발하는 기능이기 때문에 고발할 때 기준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이 다 해놓은 작품에 네가 티내지 말라 흠집 내지 말라고 고발하는 거에요. 주님의 심판이 심판이고 주님의 의가 의고 주님이 죄라면 죄인거야.


네가 아무리 착해도 관계없어. 주님의 의, 주님의 심판, 주님의 그 정죄 자체를 믿지 않는 게 죄가 돼요 그게. 그게 심판이 되고. 그게 바로 십자가에 오게 되게 되면 십자가 오게 되면 “다 이루었다” 그 한마디로 다 끝나버렸어요. 다 끝난 거에요. 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이미 종결된 결과를 우리가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자, 그러면 지금까지 한걸 정리하게 되면 나를 위한 성경해석은 없다. 이거는 악마죠. 다 뭐다? 주님을 위한 성경해석이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는 뭐냐 하면은 바로 우리의 옛사람에 비하면 현실이다? 현실 아니다? 비현실입니다.


여러분 이걸 감당해야 돼요. 우리는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것을 감당해야 돼요.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것을 감당을 해야 된다고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해놓고 돌아서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게 전부에요. 현실이 전부고. 나만 손해냐 이런 식으로 그렇게 된다고요.


이런 말이 있는데 이런 말 여러분 누가 한번 해석해보세요. 암세포는 암세포 때문에 죽는다. 이 말이 돼요? 우리 몸에 암이 들어왔는데 암이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암이 죽었어요. 죽어서 건강하게 되었어요. 이유가 뭐냐? 암세포가 암에 걸려서 죽었어요. 이게 말이 돼요? 안돼요? 이게 말이 안되지요. 이게 뭐냐?


나의 해석이 나를 구원하는 것이 말이 안돼요. 나를 위한 해석이 나를 구원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나를 위한 해석 외에는 다른 해석을 해석이 없어요. 전부 다 나를 위한 해석이에요. 나를 지키기 위한 해석입니다. 나를 지키는 해석이라는 말은 현실을 지키기 위한 해석이라는 말이고 현실 지키는 해석이라는 말은 이 현실에서 이 눈에 보이는 땅에서 발 빼기 싫다는 해석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는 것은 뭐에요? 뭘 믿는 거에요? 떠난 주님 믿습니까? 살아계신 주님 믿습니까? 떠난 채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지요. 그럼 예수님 믿는다는 말은 떠났다는 거잖아요. 십자가는 뭡니까? 떠났잖아요. 십자가 부활이 빠이빠이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뭘 믿어야 돼요? 빠이빠이를 믿어야지. 빠이빠이를.


자꾸 출근하는 아빠보고 아빠 힘내세요. 뽀뽀해. 이걸 왜 하느냐 하면은 저녁 되면 아빠 돌아오신다 이렇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날로 아빠가 딴살림 차린다면. 예가 좀 지저분하다. 그날로 아이 떼어놓고 딴 살림하면 아빠 힘내세요 해도 돌아오지 않아요. 주님은 딴 살림 차렸다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돼요? 따라가야지요. 따라가지야. 발 빼야지요.


그러면 엄마가 너는 가서는 안돼. 나 아빠 따라 갈래. 엄마 손 놔. 차버려야지요. 해석이 이 해석. 이 땅을 차는 죽어도 좋아 상관없어 해석이 나와야 된다니까 해석이. 목사님이 성경을 설명할 때 해석이 여러분 이제 죽어도 좋지요? 이 내용하고 여러분 목숨하고 바꾼 겁니다. 바꿔도 괜찮지요? 그 해석이 그 설교가 나와야 된다고요. 그 설교.


설교 듣고 난 뒤에 더 살자, 단결하자, 우리 교회 부흥시키자 이런 해석이 나오면 안된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죽는 게 얼마나 좋은데 이건 너무 큰 행운이에요. 죽는다는 게. 너무 큰 행운입니다. 왜 우리가 자살해서는 안 되느냐 하면은 아직까지라도 주의 말씀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옛사람, 새사람, 구약과 신약이 필요하기 때문에 완성해야 될 내용과 완성 됐던 내용 둘 다가 필요하기 때문에 안 죽는데 주님 봐서라도 안 데려가고 있는 거에요. 다 이거 다 끝나면 데려가실 거에요.


햇빛 알레르기 있다고 자기 엄마하고 같이 죽고. 엄마는 왜 죽는지 모르겠어. 엄마는 왜. 엄마는 햇빛 알레르기 없는 거 같은데. 박지선 말입니다. 내가 얼마나 좋아했다고. 뉴스에 코로나 이야기 나오지 말고 민주당 선거 서울시 후보 안낸다고 해놓고 투표하는 그런 뉴스 말고 박지선이 떠야 돼요. 박지선 자살. 그거 떠야 된다고요.


바로 그렇게 주께서 주변에 그런 현상 일어난 것 아까 우리가 배웠습니다. 어느 일어난 일도 모두 다 버리지 말고 다 해야 돼요. 하지만 이걸 나의 가치 나의 구원용도로는 절대 써먹지 마세요. 우리가 햇빛 알레르기 없는 것도 내가 착해서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1/n 의 역할이 또 다른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은 우리는 죽습니다. 죽음은 현실이에요. 죽는다는 것은 비현실이 아니고 진짜 죽음입니다. 문제는 현실에서 죽잖아요. 그 다음?! 그 다음이 없어요. 그 다음이. 예수님이 길을 닦아놨는데 예수를 안 믿거든요. 예수는 비현실이라 안 보이기 때문에 예수님 다음에 뭡니까? 부활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은 부활을 인정을 하지 않아요. 과학적으로 부활이 말이 안 되니까.


예수 믿는다고 주어지는 게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시 사는 게 부활이 아니고 부활은 무엇의 부활이냐 하면은 말씀의 부활이에요. 말씀의 부활. 말씀의 영원함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이 없으면 부활도 없어요. 죄사함도 없고 우리는 하나의 용도, 용기. 그릇이에요 그릇.


그릇 안에 말씀이 들어가야 돼요. 성령을 통해서. 그냥 말씀이 아니고 완성된 말씀. 죄사함이 다 된 말씀.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고 단번에 끝난 말씀. 단번에 끝냈다는 내용이 우리 안에 있어줘야 된다 말이죠. 그래야 부활이 돼요. 왜? 예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기 때문에. 나의 부활이 아니고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과 동일한 속성과 성질을 가진 그 자에게 해당되는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이고 그 다음에 그 다음 부활되고 그 다음 부활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 희년이라는 것은 예수님 자체가 희년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구약 사람들은 카운트 한다고. 오늘 48년? 그럼 내년, 내년 다음에 희년. 이렇게 계산한다고요. 예수님 십자가 죽을 때 유월절 그 다음에 죽었다고요. 그 당시 유대인들은 유월절 지켰다고. 이미 왔는데. 어린양이 왔잖아요. 요한복음 1장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왔잖아요.


어린양이 왔는데 그 사람들은 카운트하고 있다고요. 어디서 양이 오나? 오늘은 어디서 양을 잡는가?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양고기 있죠 양고기. 양고기를 어디다 집어넣습니까? 그 양의 고기와 양의 피를 어디에다 집어넣었어요? 예수님한테 집어넣고 집어넣을 때 이것은 내 살이요 내 피라 했잖아요. 집어넣고 자기를 경유해서 토해내버린 거에요. 그게 예수님의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에게 영생이 없다는 말씀이에요.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게 무슨 쇼를 하고 있나. 지금 교회 성만찬해도 쇼에요. 쇼. 성만찬할 때 살과 피가 중요한 게 아니고 사찰집사는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게 더 중요한 문제에요. 이건 목사만 해야 됩니까? 목사라도 부목사도 안 되고 당회장만 해야 됩니까? 당회장이라도 흠이 없는 사람만 해야 됩니까? 뭐 이러고 있단 말이죠.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영생이 없다는 그 말씀이 지키는 말씀이 아니고 내 안에 들어온 말씀이에요. 드루와. 드루와 하잖아요. 내 안에 들어온 말씀이여야 성령을 통해서 다 이루었다 들어온 말씀이라니까요. 들어온 말씀. 나를 위한 해석과 주님의 해석, 현실과 비현실이 우리 안에서 계속 충돌을 일으키는 일들을 우리 주변에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어난 일을 하나도 버리지 마세요. 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그걸 나를 위한 말씀으로 사적가치로 모아버리게 되면 내가 부끄러운 일은 버리게 되고 아~~나는 안 볼란다~ 버리게 되고 괜찮고 착한 일만 끌어모아서 그것으로서 천국 갈려고 부자청년처럼 들이밀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악마의 일입니다. 부끄럽다 안 부끄럽다 내가 측정하지 마세요. 다 완성된 말씀이에요.


좀 뻔뻔 넘어 뻔뻔. 인간이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나? 본인이 놀래야 돼요. 본인도 놀래요.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뻔뻔스러워야 됩니다. 배 째라. 그래 배 째라 이렇게 돼야 돼요. 여러분 그거 감당 못하면 사회 나가서 조그만 일하게 되면 그게 아파가지고 잠도 못 자게 돼요. 세상을 떠날 사람이 세상 일 때문에 잠도 못 잔다는 것은 이거는 볼모로 잡힌 거에요 그거는.


포로된 거에요. 포로된 자 해방한다는데 해방 안됐어. 포로잡힌 거에요. 포로잡힌 거. 자꾸 양심의 소리가 나를 포로잡는 거에요. 양심 그게 무슨 소용 있어요? 피로써 죄사함이라는 말은 네 피가 아니고 예수님 피입니다. 무슨 형이에요? 죄송하지만 무슨 형이에요? AB형. AB형이라는 것은 과학자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건 성격과 아무 상관없어요.


다시 말해서 우리 성격과 천당가는 것과 아무 상관없어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습니다. 어린양의 피죠. 어린양의 피가 말씀이 되어서 우리 안에 완성으로 들어오는 거에요. 옛날에 못살 때 미개인들이 축구공이 없으니까 돼지 오줌통으로 축구했다 하고 또 징기스탄 몽골군사들은 전쟁할 때 보급이 중요하거든요.


보급하기 위해서 말에다가 돼지 오줌통에다가 말고기랑 양고기 이런 것을 썰어가지고 말려가지고 돼지 오줌보를 들고 있다가 강물에 어디 가가지고 불에다가 오줌보에 있는 고기를 집어넣으면 그게 바로 샤브샤브의 원조지요. 그게 샤브샤브가 몽골에서 나온거에요. 샤브샤브는 원해 말고기, 양고기로 하는거지 소고기 아니에요. 그렇게 된 거에요. 무슨 이야기하다가?


우리 안에 완성된 것을 오줌보로 생각하고 완성된 것을 담아내는 거에요. 완성된 것을. 그러면 완성됐는지 안됐는지 완성된 것이 들었는지 안 그러면 내 욕심이 들었는지 어떻게 구분합니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주님과의 충돌지점이다. 그럼 어떤 사람이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냐? 광야에서 예수님과 악마의 해석차이, 말씀을 두고 말씀 안 믿고가 아니라 말씀을 두고 말씀을 다 같이 인정하는데 해석의 차이를 보는 거에요.


한쪽은 무슨 해석이다? 미완료다. 한쪽은 무슨 해석입니까? 완료적 해석이 나오게 되면 성도고 미완료 해석이 나오면 그건 불신자고 그래요. 그냥 성화를 한다고 갈 때까지 가보자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 그거는 변증법이라니까요. 그런데 성령 받지 않은 사람한테는 완성을 이야기 해버리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요. 악마가 있으니까.


그래서 교인들 잡을려면 할 수없이 뭐라고 합니까? 완성보다는 성화 쪽으로 가야되는 거에요. 착하면 복 받는다. 현실적으로 그런 간증집회. 맨날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 주님 십자가 이야기 안하고 누가 기도해서 복 받았다 감사헌금해서 복 받았다 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겁니다. 자꾸 보는 것으로 믿을려고 시도하는 거에요.


자, 그 다음에 그 다음 좀 봅시다. 19절 한번 봅시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함이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사야에서 은혜의 해가 50번째 돌아오는 해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시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보게 되면 7x7=49+1은 뭐가 됩니까? 50이 되지요. 이게 뭐냐 하면은 진행방향이 뭡니까? 50년을 향해서 가잖아요. 그러면 50년이 오줌보라면 그 다음부터는 뭡니까?


이런 역사의 흐름이 필요 없이 그냥 함박눈이 내리듯이 완성이 눈 내리는 거에요. 누구한테? 이스라엘, 약속된 이스라엘. 눈 내려버리면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발자국이 어느 위에 내는 발자국이냐 하면은 다 이루심의 나의 더러운 발자국을 남기겠지요. 그러면 발자국을 남긴다는 이걸 더럽다고 하지 말고 상대적으로 무엇이라고 봐야 돼요?


다 이루심의 흰 것을 부각하기 위해서 밟아 보는 겁니다. 우리 인생은 죽을 때까지. 그래서 우리는 안 죽이는 거에요. 살아가면서 더러운 죄인의 괴수가 세상에 죽기 전에 이렇게 완성을 보다니. 희년을 보다니. 다 용서, 죄사함을 보다니. 기름부은 자의 나라, 메시아의 나라의 메시아만 가야될 그 나라. 희년의 공로자만 가야 될 그 나라가 그 기름부은 자가 혜택을 입혀줘가지고 우리는 주님이 누려야 될 그 모든 영광을 이 더러운 우리가 같이 누릴 수 있게 될 수 있다니 이것을 확인하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제가 주일날 설교 때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우리의 결정적인 타이밍은 없고 결정된 것을 확인하는 타이밍만 있다고요 우리는. 매순간. 우리에게는 의가 안 나와요.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치기 때문에 의는 안 나옵니다. 자꾸 의를 골라잡지 마세요. 일어난 모든 일은 주님께서 의롭다는 것을 확인해주러 온 거에요. 온갖 지저분한 게 있을 거에요. 그게 지저분한 일이 놀랍게도 네가 의인이다를 증명하기 위한 지저분한 일이라니까요.


이거 참 어느 교인이 알아듣겠어요. 어느 교인이 알아듣겠습니까? 목사님 잘됐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사기 치겠습니다. 사기를 치지 말고 현장에서 치세요. 주님이 치셨다. 현장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사기인데 뭘 또 사기를 쳐요. 산다는 것 자체가 사기인데. 우리는 변합니다. 사기 치겠다는 것도 나중에 보면 사기 못 쳐요. 우리는 내 맘대로 안돼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누구나 장담 못하는 겁니다.


흔히 남자들이 여자한테 꼬실려고 하는 말이 사랑한다는데 그걸 믿는 여자가 바보고 남자는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몰라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고정되었을 때 가능한 거에요. 그러면 사랑은 누구한테만 해당돼요? 아가서에 아가에 나오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에게만 사랑이 성립이 되는 겁니다. 이미 다윗 언약의 완성이잖아요.


옷을 보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런데 오빠는 자기 누이동생을 아주 무시하지요. 그러나 솔로몬 왕이 이쁘다는데 왜 다른 제 삼자의 이야기 들을 필요 없어요. 내가 이쁘다잖아 내가. 내가 너를 구원했다 이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악마가 어떤 점에서는 고마워요. 악마의 해석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은 착해야 선악체계에 의해서 착해야 복 받고 착해야 구원받는다는 것이 이미 장착이 된 상태에서 난데없는 생소한 해석이 들어와버린 거에요.


내가 네 죄를 처리했다는 생소한 해석이 와버렸으니까 그 무슨 죄를 처리했습니까? 살아보면 너는 알 거야. 어떤 게 죄인지. 너의 옛사람, 눈에 보이는 현실이 현실이라고 여기는 그게 바로 죄야. 모든 게. 모든 게 나 유리하게 하고 나 잘난 체 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게 다 죄가 된다는 것. 이왕 눈 온 거 좀 발자국 밟아도 괜찮아요. 막 밟아도 괜찮단 말이죠. 강아지 하나 데리고. 눈이 이만큼 쌓였는데.


그런데 불신자들은 눈이 안보여. 경쟁자만 보여. 교회 가도 경쟁자만 보여요. 누가 기도 오래하고 누가 성경 많이 보고. 모든 세상이 교회나 세상이나 경쟁. 지기는 싫다. 그런 좀비들만 모인다고요. 좀비들만. 심지어 가족도. 형제간에 부모 자식 간에. 전부 다. 부모 자식도요 돈 없으면 원수죠. 돈 있어야 자식이고 돈 있어야 부모지 돈 없는 부모가 부모입니까?


뭐 1/n 이라도 남겨줄게 있어야 부모지. 그것도 없이 그냥 생까고 돌아가시면. 그것보다 더 미운 것은 맏이에게 다 줘버리고 둘째는 나 몰라라 하는 것. 원수죠 원수. 돈이 사람 원수 만든다고요. 그 말은 뭡니까? 나는 부모를 부모로 보지 않고 돈 주는 사람으로 봤다는 뜻 아닙니까. 돈 없다고 부모를 원수로 보는 것은 나는 부모를 부모로 보지 않고 돈으로 자기를 표시하는 대상으로 본거죠. 그래도 우리가 죄인 아니에요?


나만 고정적인 인간이 될려고 시도하는 것. 그게 오늘날 우리 모습인데 그런데 여기 보면 은혜의 해, 자유케하는 은혜의 해. 은혜가 뭡니까? 선물이에요. 선물로 주는 해석. 선물로서의 구원. 그냥 주신 이 비현실. 여러분 성령께서는 여러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에요.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여러분을 절대로 택한 백성, 성령께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여러분들을 탈락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해석만 알았습니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았고 선뜻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 납득이 가는 해석이 십자가 사건을 유발했고 주님을 죽게 했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해석, 십자가만이 다 이루었다는 그런 해석의 장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4장 19절 (충돌지점) 201103b-이근호 목사.hwp (167.0K), Dow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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