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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4 05:22:20 조회 : 65         
서울의존강의20211111a 베드로후서1장 13절(망상처리)-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하림(IP:112.212.44.181)
서울의존강의20211111a 베드로후서1장 13절(망상처리)-이 근호 목사

베드로후서 1장 8절-9절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8절에서 9절까지, 베드로가 1장 1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 하면 ‘성도되기’입니다, 성도되기. ‘성도되기’와 반대되는 것이 뭐냐 하면 바로 ‘성도이다’입니다, 성도이다. ‘나는 성도이다’ 하고 ‘나는 성도되기’가 같은 말이 아니고 정반대말이에요.

사람들은 ‘나는 ~이다’로 그냥 이어집니다. 나는 ~이다. 내가 되기 위해서 안에 뭔가 내용물이 채워지고 그것이 ‘~이다’로 규정이 되고 확정되는 겁니다. 그러나 ‘성도되기’라 하는 것은 이 안에 있는 그 내용물과 내가 충돌되게 되어 있어요.

아주 더 쉽게 이야기할게요. ‘성도되기’란 뜻은 ‘나 안 되기’에요. ‘나처럼 안 되기’에요, 나처럼. 어쨌든 간에 내가 원하는 나는 기어이 온 혼신을 다하여 절대로 너는 너 같은 인간되면 안 돼. 이 말은 나는 ‘~이다’로 고집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내용들이 이 안에 다 꽉 차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것.

이건 예를 들면 알기 쉽죠. ‘나는 재벌이다’의 반대말은 ‘나는 재벌되기’, 쉽죠? ‘나는 재벌되기’니까 지금 자기는 과장이나 부장쯤 된 거예요. 안 그러면 신입사원이든가. 재벌이 안 되었기 때문에 목표가 재벌되기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재벌은 재벌되기가 아니에요. 나는 재벌인데 뭐. 이미 도착해버렸는데.

그러면 ‘나는 재벌이다’ 할 때 재벌이 되는 내용과 나는 일치가 되는 겁니다. 내가 곧 재벌이다. 일치가 되죠. ‘나는 재벌되기’는 아직 미완인 거예요, 미완. 도중의 존재, 가고 있는 존재에요. 그럼 이 안의 내용은 ‘나는 재벌이다’가 아니고 ‘나는 과장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내가 과장이지만 언젠간 재벌할 거야. 이사되가지고 재벌할 거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후서에서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이다’가 절대로 되면 안 되고 ‘나는 그리스도의 열매되기’에요, 열매되기. ‘나는 그리스도의 열매다’도 아니고 ‘열매되기’에요. 그러면 열매되기는 나는 그리스도의 열매되기에 방해하는 요소가 있을 거예요. 방해하는 요소가 뭐냐 하면 ‘나는 내가 되기’, 이게 방해하는 거예요. 나는 내가 되기가 방해하는 거예요.

초반부터 굉장히 중요한 거 해가지고, 다 오시지도 않았는데 중요한 거 해서 미안할 때는 다시 한 번 더 하는 거예요. 베드로후서 1장 8절-9절하고 있는데 여기서 베드로 사도가 부탁하는 것은 ‘나는 성도다’ 이거 용납 안한다 했죠. 이거 용납 안 됩니다. 인간에게 성도라는 건 없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그냥 인간답게 그냥 지옥가야 돼요.

무슨 뜻이냐 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은 성립 안 된다는 거예요. 다음과 같은 질문은 성립 안돼요. “나는 지옥가면 안돼요.” 이런 거. 또는 “내가 천국에서 탈락되면 어쩐대유?” 갑자기 충청도 방언이 튀어나와버렸네. 어쩐대유? 내가 천국에서 탈락되면 어쩐대유? 그러면 나 안 되는데요. 이런 질문. 나 지옥가면 안돼요. 나는 천국에서 탈락하면 어쩐대유? 이거 큰일나는대유? 제가 충청도말을 하는 이유는 다 백종원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죽어서 지옥가면 나 어쩐대유?” 이런 거. 이런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이런 질문 자체가.

왜냐하면 앞에 ‘나’ 붙잖아요, 나. 충청도로 하든 전라도로 하든 서울로 하든 ‘나’는 반드시 지옥가야 됩니다. 인간이 지옥을 안 가게 되면 천국은 없어요. 꼭 지옥 가는 쪽이 있어줘야 천국이 빛이 납니다. 만인 구원설이라 해서 모든 인간이 천국 가면 그럼 지옥은 누가 간대유? 천국은 지옥 가는 자가 있음을 전제로 해서 천국이 만들어집니다.

지옥은 마귀가 가게 되어있어요. 마귀가 가거든요. 마귀가 가기 때문에 마귀하고 한통속이 된 자들, 마귀하고 합세된 자들, 말이나 행동에서 거침없이 마귀가 집어넣은 그것이 계속해서 모든 행동과 삶을 통해서 끊임없이 나오는 자들, 그 사람 인생은 ‘나’라는 인생이 아니고 마귀가 만들어낸 인생이겠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성경적으로 봐서 이미 아담은 악마의 권세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여기서 권세라는 것, 권세 또는 권력. 권세와 권력은 같은 말인데 여기에 담긴 뜻은 간단해요. 갇혀있다는 거예요. ‘갇혀있다’ 달리 말하면 ‘닫혀있다’. 그 테두리를 권력, 권세라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갇혀있지 않고 탈출이 되어버리면 권세, 권력이 아무 의미 없어요. 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하는데 거기에 무슨 권세가 있겠어요? 권세가 있다, 권력이 있다는 것은 갇혀있다는 겁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그다음에 나오는 말이 뭡니까?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인데 세상을 주관하는 “세상 주관자들과” 그다음에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고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을 향하여 권세를 유감없이 신나게 발휘하고 있는 그 자에 대해서 지금 성도는 싸우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싸울까요? 아니요. 성도가 싸우는 거예요. 참, 이런 말이 어려워요. 내가 싸우는 게 아니고 성도되게 하신 그 됨, 성도됨은 인간이 아니고 인간을 인간되게 했던 그 배후의 주님에 의해서, 주님의 권세로 인하여 세상에 있는 악한 악마의 권세와 싸우게 되어있다 이 말이에요.

이것은 사람 대 사람, 너 어디가노? 지옥. 난 천국. 싸울까? 하는 인간 대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거 뭐 어벤져스도 아니에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에요. 영웅 같으면 본인이 영웅이잖아요. ‘영웅되기’이지 ‘영웅이다’라는 건 성립이 안 됩니다. 하여튼 인간에게서는 인간이 ‘~이다’할 때 그 내용물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른 데서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나는 나다’에요. 이거는 뭐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냐? 나는 나다. 그러니까 내가 나가 되는 그 내용물은 내 안에서 오는 겁니다. 나는 나다. 그런데 성도는 없죠. 나는 나인데 무슨 성도가 있어요? 성도는 ‘나는 성도되기’할 때 성도되기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에요. 성도의 내용물을 제공하신 어떤 분이에요. 그 분이 예수님이고 나는 예수님의 열매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열매. 파생된 것.

이거 뭐 어려운 거 아니에요. 요한복음 15장에 나오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죠. 그러니까 가지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에요. 지금 제가 난해한 이야기를 계속 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나는 나이고 싶은 거예요. 나를 규정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요한복음 15장 1절) 해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한복음 15장 4절)

이 말은 과실을 맺는 중간 매개체로서 우리를 사용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일이 없어요. 주의 일에 매개체가 되는 거예요, 주의 일에. 나는 뭐 주인공도 아니죠, 결국.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그냥 주의 일에 참여할 뿐이에요.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달란트, 다섯 달란트, 한 달란트 있죠. 그 한 달란트 있는 사람이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거기 보게 되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나는 나다’를 고집한 사람이에요. 다섯 달란트, 열 달란트는 ‘이건 주님 것입니다.’ 이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한 달란트는 주인이 멀리 타국에 가니까 ‘아, 나도 이제 숨 좀 쉬자. 나도 나답게 살고 싶다.’ 이래가지고 걸려든 거예요.

주인이 나한테 줬으면 달란트를 받은 나는 주인의 소유가 되는 겁니다. 여기 물컵을 드리면 보통 사람은 목사님이 나한테 뭐 줬다 하잖아요. 그게 아니고 받은 순간 당사자는 내 소유가 되는 거예요, 이걸 받게 되면. 인간이 주는 것과 주님이 주는 것의 차이점이 이거예요. 주님이 주게 되면 이건 주님의 열매가 되는 거예요.

주님의 열매가 없는 자는 지옥 갑니다. 잘린다고 되어 있으니까요, 요한복음 15장에. 그럼 주님의 열매가 있으면 내가 천국 가는 게 아니고 천국 가는데 거기에 일꾼으로 덩달아 합류해서 가게 되는 거예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라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요. 나라는 자체를 주께서는 인정을 안 해준다고요, 나라는 건.

이걸 오늘날 여러분의 생활에 한번 적용시켜봅시다. 그럼 여러분의 하는 일은 여러분 자신의 일입니까, 주의 일입니까? 지금 이 질문이 성립돼요. 내 일이 아니고 누구의 일이냐 하면 이게 주님의 일이죠. 심지어 직장에서 잘려도 주의 일이죠. 이게 주님의 일인 거예요.

그럴 때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어떻게 사람으로서 자기가 분명히 있는데...... 이건 내 인생이고 내가 가진 것부터 해서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 할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1절부터 너희는 어떤 보배로운 믿음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 건 아닌데 주님에게 있던 믿음이 확장되어서 내가 받은 거예요.

오늘 강의에서 아직 핵심 부분 나오지도 않았어요, 지금. 거기까지 안 가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미리 한번 가볼까요? 이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다 아는 이야기이고요. 다 아는 이야기? 다 아는 이야기이고 핵심 부분은 인간의 ‘되기’에서는 존재가 사라지고 오직 생성이에요. 되기는 무한 변신입니다. 무한 병신 아니고 무한 변신. 계속 바뀌는 거예요. 어제 나하고 오늘 내가 작업복이 바뀌어지는 겁니다.

주께서 오늘의 상황을 만들어놓고 오늘의 상황에 맞는 작업복, 유니폼을 또 입혀가지고 오늘 주의 일을 또 하게 하시는 거예요. 나는 나로 고정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계속해서 끊임없이 무한 변신되는데 이게 예상이 안돼요. 내가 어떻게 달라질지,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될지 예상 자체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게 한마디로 become, 되기에요, 되기.

내가 되는 게 아니고 ‘되기’가, 곧 현재의 내 모습이 무엇 무엇이 된 거예요. 나는 주부가 되고 싶어. 아니에요. 주부 되게 하신 거예요, 주부 되게 하신 것. 주부 되게 하신 거예요. 누가? 주님이 그렇게 하신 거예요. 주부로서 변장된 겁니다. 변신이 매일같이 되는데 본인도 어지러워요.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몰라가지고.

만약에 고정이 되어버리면 악마의 표적이 되어서 내가 나에게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주께서 그 현장에 있게 하신 것은 우상이 안돼요. 내가 그 자리를 탐낸다. 이러면 이게 우상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고정시키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면 처음에 아담이 선악과 따먹을 때 호기심으로 따먹었어요, 호기심.

그래서 ‘나는 나다’할 때 그 내용물을 인간들은 호기심으로 계속해서 내 욕망에 충족되도록 다른 걸로 바꾸는 거예요, 다른 걸로. 이 교회 갔다가 저 교회 갔다가 뭐 이 직업 하다가 다른 직업 하다가. 사업 때려치우고 뭐 딴 거하고. 계속해서 내가 되고 싶은 호기심이, 나의 욕망에서 나온 호기심이 계속 발휘되는 겁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보고 탐내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에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아담을 처음 만들 때 아담은 몰랐어요. 이게 ‘아담 되기’하신 거예요, 아담 되기. 그런데 아담은 악마가 와가지고 ‘내가 아담이다. 내가 인간이다.’ 이렇게 우긴 겁니다. 범죄하고 난 뒤에 나는 인간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주님께서는 ‘너는 인간이 아니고 너는 흙이야’라고 규정을 시켜버린 겁니다. 우상된 것을 소멸시키기 위해 흙이라는 무기물질, 하나의 물질이 되는 거예요. 나중에 흙 부스러기가 되게 만드는 거예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95세까지 살았다. 지금 송해가 95세거든요. 송해가 95세에 전국 노래자랑하면서 있다 이 말이죠. 만약에 송해가 앞으로 25분 뒤에 죽는다면 24분까지 나는 나다. 나다. 하다가 그다음에 뭐로 변합니까? 무기물, 흙으로 변하죠. ‘나는 나다’ 보다 무기물로 변하게 하는 주님이 더 세거든요. 어느 게 현실입니까? 나는 나라고 우기는 그게 현실입니까? 그건 환타지죠. 환상이죠. 인간은 내가 나라고 하는 순간 자기 자신은 환타지가 되어 있어요. 환타지가. 환상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꿈에 여러분이 나타날 때 여러분이 보통 몇 살 때로 나타나던가요? 그건 뭐 나이따라 다르겠죠. 일곱 살 먹은 아이가 40살 모습으로 등장하지는 않을 거고. 살아온 가운데서 한 테마를 그 상황에 맞도록 그 때 그 체험이 있었던 나이로 스톱이 돼서 그 나이로 온다 이 말이죠. 그게 바로 환상이죠, 환상. 망상입니다.

인간은 나를 생각하면 순간적으로 망상이 돼요. 흔히 자기가 꿈속에 놓여있는 거예요, 꿈속에. 제가 설교시간에 어떤 노래가사 얘기했잖아요. 꿈속에서만이라도 혼자 좀 쉬고 싶다. 그 쉬고 싶다는 게 뭐냐 하면 나는 영원하고 싶다. 나는 영원한 고정적인 그런 본질을 나는 즐기고 싶다. 나는 나이고 싶다. 그게 바로 범죄한 아담의 흔적입니다. 후유증이에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을 만든 적이 없어요. 인간이 인간을 자기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낸 겁니다. 환상을 통해서 망상을 통해서 만들어 낸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전부다 정신병자들이에요. 망상가에요, 망상가.

고흐라는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을 보세요. 작품마다 다 달라요. 그 때 그 기분을 본인이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음악가도 마찬가지고. 매 순간 본인이 다르니까 본인이 정신을 못 차려요. 어떤 때는 기분 좋았다가 어떤 때는 기분 나빴다가. 기분 좋을 때가 본인이에요, 기분 나쁠 때가 본인이에요? 몰라요. 그걸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에서는 이렇게 합니다. 미리 한번 볼게요. 1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다시 말해서 너희들의 출처, 너희들의 원형, 그것은 내가 있는 이상은 한자로 써서 무(無) 또는 영어로 하면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라는 것은 근거도 없고 원천도 없고 뿌리도 없고 바탕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망상이기 때문에 그래요. 망상이기 때문에. 나라는 것은 공중에 뭔가 푹 튀어나온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가운데 이런 거 있잖아요. 본인은~ 전두환 대통령이요. 본인은~. 이 “본인은~” 하고 이야기할 때하고 자기 부인하고 있을 때하고 완전히 말이 다르죠. “할렐루야” 이런 인간하고 자기들끼리 까불고 있을 때 인간하고는 달라요. 나의 내용을 일단 인간은 나는 이렇다고 해놓고 내 마음에 드는 것을 억지로 그냥 계속해서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억지로 내용물을 자꾸 채우는 거예요.

채우니까, 망상이 망상으로 끝나야 되는데 망상이 망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마치 실제로 내가 그것인 양 행세를 하니까 정신병이 더욱더 도지고 갈수록 깊어만 가네요, 정신병이. 마치 가을밤처럼. 깊고 푸른밤인지 제주도의 깊고 푸른 밤인지... 갈수록 점점 그 바닥을 모를 정도로 계속 내 것으로 내 것으로 채우는 거예요. 자기가 일기 써놓고 일기 쓴 걸 나중에 읽어보세요. 가관입니다, 가관. 뭔가 억지로 노력하는 게 보여요, 일기는. 나를 다른 멋있는 다른 나로 억지로... 이거 뭐 망상인데 억지로 바꾸어보려고 하는 거예요. 진정한 나는 찾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강의한 게 뭐냐 하면 성도의 반대말은 뭐라고 했습니까? 나라고 했죠. 성도는 실제인데 나는 환상입니다. 그러니까 적대적이에요. 서로 원수가 되는 거예요. 나는 물론 망상이니까 이건 마귀에 속한 거고요. 성도는 물론 부르심이 성도 안에 채워져 있고 그다음에 결정적인 것은 선택하심이 이 안에 있는 거예요, 선택하심이.

그러니까 나라는 육체 안에 주님이 계시고 주님이 아주 파이프를 박아놨어요. 박아놔서 주님이 이룬 공적과 실적을 여기서 흘려보내는 겁니다. 계속해서 흘려보내는 거예요. 그럼 흘려보내면 비누 방울 할 때 훅 불면 파이프 끝에 비누 방울 올라오는 것처럼 주님의 것이 볼록 올라오면 이게 바로 열매라는 거예요, 열매.

그 열매가 어떤 종류의 열매냐 하면 여기 5절에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이 모든 게 주님의 열매라는 겁니다, 주님의 열매. 그러니까 지식도 신의 성품이니까 주의 것이고 덕도 주의 것이고 지식도 주의 것이고 절제도 주의 것이고 인내도 주의 것이죠. 그건 이해되겠죠?

이게 주의 것이라는 말은 무엇과 싸운다는 말입니까? 내가 환상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내가 채운 나의 것과 싸우게 되는 거예요. 싸우는 거예요. 안 싸울 거 같으면 성경을 통해서 이런 지시를 안 내립니다. ‘너네 그냥 살아, 성도야.’ 이렇게 하지. 치열하게 싸워야 될 이유가 있어요. 끊임없이 내가 하는 나의 망상도 만만치 않습니다. 육이 있는 한 죽을 때까지 계속 ‘나는 예수는 모르겠고 평생 나는 나다우면 됐어.’ 이런 식으로 내 내부에서 굉장히 박차고 올라오는 거예요.

11절 봅시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되어 있죠. 그러니까 주님께서 성도에게는 다 주님의 계획이 있어요. 목표가 있다고요. 그 목표를 짧게 보는 것, 그러니까 순간 순간 세상 것을 목표로 보는 것을 가지고 여기 9절에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멀리 보지 못한다. 흔히 하는 말로 큰 그림을 볼 줄 모르고 코 앞에 있는 자기 자존감, 자기 위신, 명예, 남한테 안 꿀리고 싶은 그러한 자의식, 이 모든 것을 구성해서 나답게 되고 싶은 거예요.

자, 이런 이야기를 한마디로 하면 말이 어렵지만 이 한마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게 뭐냐 하면 ‘의식’이에요, 의식. 이제부터 의식 이야기합니다. 의식의 반대말은 의식이 없는 것, 무의식이 되겠죠. 지금 인간들은 나를 의식하고 있어요. 나를 의식하고 있다고요. 이게 사람 인생을 참 힘들게 합니다. 나를 의식하는 것.

누구한테 지시받으면 되는데 명령을 내가 내려요. 내리면서 꼭 갖다 붙는 게 있어요. 네가 이래야 너 다운거야. 그럼 나답다는 게 뭐냐. 나답다는 게 뭐냐. 어떤 사람이 일을 잘 하면 ‘참 너답게 했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그런 가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J1이라는 가수가 있다고 합시다. 이 가수가 공연을 잘 했어요. 그때 최고의 칭찬이 뭐냐. J1이 J1답게 했다. 이게 최고의 칭찬이에요. 그런 칭찬을 받아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네가 너답게 했다. 이 말은 남 흉내 내지 않고 네가 추구하는 가장 너다운 것으로 빛을 내었다. 그래, 바로 그거지. 그래야 내가 네 팬이 되는 거야. 너는 누구 닮았다든지 누구와 유사하다는 것보다도 너는 너다울 때 가장 빛이 나는 거야. 내가 지금 오랜만에 칭찬하는 거예요, 지금. 지금 모든 연예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그 이야기 아니에요?

아들이 공부를 갑자기 잘해서 오랜만에 100점 맞았다. 그래, 그래야 내 아들이지. 이런다고요. 바로 그거야. 엄마가 잔소리하는 게 바로 거기에 있는 거야. 이 이야기를 안 들어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혹시 들어봤습니까? 이 이야기를 안 들어본 사람 있어요? 다 들어요. 다 듣기 때문에 인간은 인생이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거예요.

남들이 나한테 요구조건이 너무 많아요. 심지어 어른 돼서 누가 잔소리 안 해도 어릴 때 들었던 그 모습 있잖아요. 누구의 딸답게 누구의 아들답게 처신하라는 게 누가 잔소리를 안 해도 이제는 타인의 지시가 내 안에 작동이 돼요. 자동적으로 작동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의식은 무의식의 지시, 명령대로 해가지고 반복하게 되어 있어요. 의식은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쉬운 거고 이제부터 어려운 거 하는데 어려운 거 할 때는 좀 주무셔도 괜찮아요,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제가 질문을 던지면 이게 왜 어려운가를 알 수 있죠. ‘성도가 도중에 열매가 사라지면 지옥 갑니까?’ 하는 이 질문.

9절 봅시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제대로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라고 했을 때 이 본문을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베드로 사도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묻고 싶어요.

지금껏 잘해왔는데 만약에 한 30, 40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리스도 알기를 게으르고요. 여기 8절에 봅시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렇게 되어 있죠.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그동안 많이 알았는데 도중에 힘이 들어가지고 어떤 일이 벌어져가지고 예수님 알기에 게으르고 열매 없는 자가 되었다 했을 때 지옥 갑니까, 베드로 사도님? 이라고 묻고 싶겠어요, 안 묻고 싶겠어요?

전에 저쪽 교회 있을 때 열심히 나왔다 이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안 나온다 할 때 그 사람 지옥 갑니까? 너무 질문다운 질문해서...... 어떻습니까? 이게 어려운 질문이에요, 쉬운 질문이에요? 누구나 그런 궁금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못했던 질문을 제가 대신 해드리는 겁니다.

같은 건데 그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게요. ‘무의식적으로 성도 맞는데 내가 의식을 못하면 지옥 갑니까?’ 하고 같은 질문이에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면에 성령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 8절, 9절의 말씀처럼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을렀다 이 말이죠. 게으르다 보니까 열매가 없어요. 열매 없는 자가 되고 또 원래는 소경이 아닌데 이제는 소경이 되어가지고 우리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어버릴 경우에 이 사람은 결국 탈락이냐, 아니면 합격이냐?

그 질문을 베드로후서 1장 11절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11절에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러면 ‘열매 있고 게으르지 않는 사람만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면 결국 사도 베드로의 이야기가 율법밖에 더 되냐? 율법이잖아. 분명히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났는데 또 율법 지켜야 됩니까, 목사님?’ 하고 질문할 때 여러분 어떻게 답변해야 됩니까? 이게 지금 하고 싶은데 못했던 질문을 제가 다 끄집어내고 있는 거예요. 집 청소 좀 하고 싶어요. 간만에 다락방 청소 좀 하고 싶습니다, 우리 의식 창고를.

자, 고린도전서 6장 한번 봅시다. 고린도전서 6장 9절-11절까지 보겠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절,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그다음에 12절 들어가지 말고 11-1절, 지어내는 거예요. 11-1절, 지어낸 겁니다. ‘이와 같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받아놓고 난 뒤에 음란과 우상 숭배와 간음과 탐색하고 남색하고 도적질, 탐람하고 술 취하고 후욕하고 토색하면 하늘나라 들어갑니까, 못 들어갑니까?’ 이게 질문이에요. 오늘 신이 났다, 신이 났어. 지금 이런 예상되는 질문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답변을 가지고 평소에 살아가셨습니까? 평소에 어떤 답변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또 한군데 더 찾아봅시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 성경 찾을 것도 없이 제일 마지막 찾으면 됩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15절에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그래놓고 17절 봅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그럼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로 값없이 생명수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는 질문도 성립이 되겠죠.

아까 질문하고 좀 비슷한 것 같지만 비슷하지는 않아요. 이미 성령으로 부르심 받아놓고 죄 지었을 때 구원 받느냐 하는 것은 아까 고린도전서 6장 이야기이고 요한계시록은 값을 치른 게 아니에요. 뭐 개과천선 한 게 아니고 값없이 그냥 받는데 그 받는 자격자가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생명수를 17절에 의해서 목마른 자가 오면 값없이 생명수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요. 만약에 생명수를 받으면 행음자, 살인자, 우상 숭배자 이런 사람들은 성 밖에 있는 게 아니고 생명수 받아가지고 이제는 천국 안에 들어오게 되겠죠.

자,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는데요. 여러분들이 듣기를 원하는 것은 그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하나하나 답변하지 말고 하나로 묶어서 깔끔하게 한방에 쭉 어떻게 처리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이미 구원받았다, 무의식적으로. 하지만 의식적으로 열매가 없고 게을렀다. 그리고 자기의 죄 씻음을 잊었다. 할 때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게 의식 이야기에요, 의식. 나와 결부된 나의 의식 이야기에요, 나의 의식.

그런데 아까 나는 뭐라고 했습니까? 환상이죠. 망상이에요. 나는 예수님의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나라는 것을 따로 떼어 낼 수가 없게 되어있다 이 말이죠.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나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진짜 가지가 아니고 그림이죠, 그림. 벽에다 그린 그림이죠. 붙어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주도권이 나한테 있습니까, 없습니까? 주도권이 없어요. 왜 붙어 있습니까? 주님이 주도권 쥐고 있기 때문에 붙어있는 거예요. 내가 주도권을 쥐어버리면 나는 이미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요.

그런데 육이 있는 한 끊임없이 나라는 망상이 계속 올라오는 거예요. 이게 망상이지만 의식할 때는 이게 망상이 아니고 이게 실제 ‘나’가 돼요. 의식에서는 나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내 의식이기 때문에 절대로 ‘나는 여기 있다’를 망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의식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feeling 있잖아요, feeling. feeling이 누구의 feeling이냐. 내 감정. 내 감정이 있는 이상 ‘나’가 분명히 느껴지는 거예요.

다시 베드로전서 1장 봅시다. 1장 2절,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그다음에 뭡니까?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 그냥 택한 게 아니고 너를 택했으니까 앞으로 똑바로 해라가 아니고 거기에 뭐가 가미됩니까? 피가 뿌려지는 거예요. 피가 뿌려지는 거예요.

이 가지에, 가지보다 파이프가 더 낫다, 파이프에 피가 흘러들어오게 되면 여기서 ‘나’라는 의식이 발생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구원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이렇게 되어버리면 여전히 이건 나로 모든 것이 끊어진 상태에요. 주님이 뭐 되게 하십니까? 이렇게 되어야 돼요. 주님이 나로 하여금 나라는 자체가 이게 망상에 불과하고 그 의식이 나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 뿌림의 효과, 실제적인 능력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망상이 튀어나오도록 그렇게 조치를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라는 의식이 안 나올 수 없는데 주님의 능력이 되면 나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이다, 일부이다, 접붙임 받았다, 주님의 가지다’ 이런 식으로 계속 되돌아오도록 내 의식보다 주님의 의식이 더 강렬한 거예요.

안 되돌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내 의식이 더 세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피 뿌림 받고 탈락된 자가 아니고 애초부터 그것은 피 뿌림 받았다는 것을 지식으로 나는 나답게 멀쩡하게 만들고 베드로후서, 전서를 몽땅 다 내 지식으로 끌어 모은 거예요, 그것은. 어디 가짜가 흉내를 내. 흉내 내기에요, 흉내 내기. 모방하기에요, 이것은. 성령이 없죠.

성령이 없으니까 신앙인 티는 내고 싶고 그럼 노력을 누가 해야 돼요?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가 노력해야 되는 거예요. 베드로전서, 후서보고 요한계시록까지 뭐 성경 전체 가지고 괜찮은 것 다 끌어 모아가지고 내가 성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의식에다가 집어넣는 거예요, 의식에다가. 그럼 묻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열매일까요? 자기 열매일까요? 누구의 열매입니까? 나의 열매죠. 그러니까 이것은 나 되기이고 나는 무엇이다가 되어버려요.

놀랍게도 이런 경우가 한국 교회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이에요. 분명히 성경대로 이야기하고 복음 다 이야기하고 구속사에다가 언약 이야기 다 하는데 그게 뭐냐 하면 불.신.자. 목사가 돼서 강단에서 복음만 이야기해. 그런데 들어보면 그 목사가 불신자에요. 옛날에 MBC 마에스트로, 아주 엄격한 지휘자가 나오는 드라마가 있거든요. 그 지휘자가 자기 단원들 보고 뭐라고 했는 줄 압니까? 똥.덩.어.리. 했다고요, 드라마 안에서. 똥덩어리. 이 바보 등신들아. 똥.덩.어.리. 저는 그걸 불.신.자. 비록 네 자하고 세 자하고 차이가 있지만 불신자에요. 강단에서 복음만 이야기해. 불신자. 그게 뭔 뜻이에요? 복음만 전해서 나를 뭐 되게 만든다? 나는 신자이고 싶은 거예요. 성도이고 싶은 거예요. 뭐 피 뿌림까지 이야기 다 해요. 뭐 웃기지도 않아, 하여튼.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까 에베소서 6장 12절. 우리의 싸움은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의 싸움이죠. 그럼 인간하고의 싸움은 아니죠. 혈과 육은 아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의식이 있기 때문에 항상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재료가 돼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뭘 요구하고 아빠가 뭘 요구하고 내 가족이 뭘 요구하는가. 내가 그거 다 들어줬어. 가족들, 주위 사람들로부터 내가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내가 성도가 아니고 그들이 성도라 해줄 때 나는 안심해가지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정말 성도라면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서 성도 아니라 해도 그냥 ‘아, 너희들 보기에 성도 아니구나. 그러면 가짜가 성도 아니라고 하니까 난 진짜네.’ 마음을 이렇게 태평하게 먹을 수가 있어요. 이게 시편에 나옵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편 3편 6절) 그러면 내가 성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천만인이 둘러싸가지고 전부다 ‘너는 성도 아니다 성도 아니다’ 할 수밖에 없죠.

미가야 선지자가 몇 대 몇이었습니까? 미가야 선지자는 그 때 같은 선지자가 몇 명이었습니까? 400명이었죠. 미가야는 한 명이었죠.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몇 명이었습니까? 850명이었죠. 그 때 엘리야는 본인 한 명이죠. 850대 1. 숫자가 이러니까 실감 안 나죠? 그림 한번 그려볼까요? 1명을 3중, 4중, 10중이 둘러싸고 있어요. 400명 한번 그려볼까요? 여기 미가야 1명 있고 주위에 400명 한번 그려볼까요? 여기 총회, 목사, 장로, 전도사해서 400명 한번 그려볼까요?

보통 사람 같으면 음메 기죽어. 하겠죠. 그런데 미가야는 음메 기살아. 했다고요. 왜? 자기는 천상회의를 봤거든요. 하나님의 신이 임했거든요. 신이 임하니까 악령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첫째 시간 결론 내립니다. 성도라면 악마의 통치방식에 민감해야 돼요.

이게 혈과 육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너는 지옥 가’ 하는 사람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배후에 있는 악마의 인간을 다스리는 통치방법에 대해서 눈이 열린 거예요. 그게 바로 소경이 아닌 거예요. 맹인이 아닌 겁니다. 이게 큰 그림 그린 거예요. 세상을 넓게 보는 거예요.

돈 몇 푼 벌고 안 벌고 어디 뭐 콩나물 깎았다. 뭐 돈 안내고 공짜로 들어갔다. 이런 시시한 이야기. 몇 푼 되지도 않는 이익, 이런 거 하는 게 아니고 큰 그림. 차기 대통령 누가 되나, 그런 시시한 이야기 말고 중국이든 중공이든 북한이든 한국이든 일본 관계없이 이 우주 전체를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 악마가 어떤 식으로 지금 일하고 있는지 그 전체를 파악하는 겁니다. 그것은 10분 쉬고 합시다.
 첨부파일 : 서울의존강의20211111a 베드로후서1장 13절(망상처리)-이 근호 목사.hwp (99.0K), Dow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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