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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2 15:43:42 조회 : 86         
수요 설교(마음을 찢으라) 요약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수요 설교(마음을 찢으라) 요약

강의 전에 어제 했던 수요설교를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어제 금식하고 마음 찢는 거하고 하나님이 그걸 같이 묶어놨어요. 우리가 묶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같이 묶어놨어요. 인간들의 금식이라 하는 것은 밥을 굶으면 돼요. 밥을 굶으면 되는데 그리 되면 금식은 된 것 같은데, 같이 묶어 있는 마음 찢음이 안돼요.

마음 찢음과 금식이 일치되려면 밥은 굶었는데 굶은 내가 마음 찢음으로 같이 연결이 되어야 됩니다. 밥을 굶은 내가 굶었다는 그 생각조차도 날아가 버려야 되거든요. 그래서 마태복음6장에 제가 언급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요. 6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금식할 때에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기름 발라라. 금식을 한 게 아예 안 들키도록 해라. 기름 발라가지고. 창백한 모습이 안 보이도록 해라. 그게 마음 찢음이에요.

오만상 다 그려가지고 금식을 티내는 것은 그건 금식함으로서 마음을 찢는 게 아니고 금식함으로서 마음이 더 돈독하게 된 겁니다. 찢기가 더 힘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금식의 의미는 밥을 그냥 굶는 것. 그건 가는 길이 방향이 잘못됐다는 거죠. 금식과 마음 찢음이 같이 되려면 밥을 굶는 거 해가지고 금식을 이루겠다는 것은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수요일날 방향 문제를 언급했지요. 사람은 자기의 힘을 키우려고 합니다. 힘을 키우게 되면 마음 찢기가 곤란해요. 힘을 더 모아놓으면 찢는데 두툼한 종이가 많이 모아지면 찢기가 더 힘들잖아요.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자기의 처음부터 자기가 아무 탈이 없기 위해서 그걸 제가 무탈 이라고 했는데 아무 탈이 없기 위해서 계속해서 힘을 기르는 쪽으로 나갑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요.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힘을 기르는 쪽으로 나가지요.

그렇게 했던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하나가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평소의 자기의 속성을 사람에게 사용했던 그 속성이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야곱을 밤중에 찾아갔어요. 그러니까 평소에 그 인간이 세상에서 살던 행세 있잖아요. 습관, 태도, 그 태도가 고스란히 하나님 앞에서도 살아있었어요. 겨루어서 상대를 꺾어보려고 이겨보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12장3~4절을 언급하면서 거기에 이상한 구절이 나와요.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겨놓고 울었다고 되어있어요. 이기면 좋아해야 되는데 울었다고 되어있어요. 자기 본성대로 다했는데 결과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울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파악이 된 겁니다.

그래서 울었다는 말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했던 행세를 하나님한테 그대로 하니까 하나님한테는 이게 제거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니는 복 없어. 니는 나와 원수야.” 이러한 관계로 완전히 티가 난 겁니다. 들통이 난 거죠. 그래서 울었다는 말은 복이 날아갔으니까 전에 야곱이 받았던 복은 무효가 됐어요. 날아가 버렸어요. 하나님을 상대로 격투기 벌였는데 복이 있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울면서 매달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복을 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복을 줄 대상자를 하나님 쪽에서 만들지요. 그게 뭐냐 야곱을 죽이고 그 다음에 죽은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만듭니다. 그 야곱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만든다는 그 과정은 설교 마지막에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갈 때 베드로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는 베드로부터 먼저 본인이 어떻게 주님한테 어떻게 낚였는가, 낚이는 절차가 뭔가를 그것을 체험했어야 하는 겁니다.

의과대학 학생이 수면 내시경 말고 그냥 내시경을 할 때 아픔을 의과대학에서 체험하듯이 남한테 치료하는 사람이 본인이 그걸 체험하듯이 그게 이제 주님이 베드로를 낚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느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께서 은근히 이용하는 생각이 싹 가시게 나 같은 인간이 주님한테 도움 얻는다는 자체가 이건 막말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 같은 욕심쟁이가 무슨 주의 일을 할 수 있느냐, 그 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거예요.

그게 바로 주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누구를 사용할 누구를 낚을 때 그 절차가 필수적인 거예요. 구원을 소유하겠다는 그 자체가 그게 죄가 된다는 그게 바로 내가 잘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한다는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그 절차가 필수적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에게 힘을 줘서 구원한다면 우리는 추가적인 하나의 힘이 필요하겠지만, 예수님의 그 존재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나온 능력이 예수님의 자기를 부인하는 능력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태가 되느냐 하면 구원 가치가 없는 상태로 그게 준비되어있어야 되는 겁니다. 구원될 가치도 없다는 것.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 떠나소서. 주님은 바로 그거야. 니가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그게 바로 베드로를 통해서 주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는 고 과정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걸 야곱에게 적용하면 야곱은 계속해서 내 힘을 키우는 쪽으로 나가요. 왜냐하면 내가 안 다치게 하는 겁니다. 내가 안 다치게.

내가 지금 야곱인데 괜찮은 야곱으로 미래의 괜찮은 야곱이 되고자 하는 야심과 야망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게 되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줄 거라 그 생각이 바로 구원의 대상이 안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어떤 특정 인간을 건지는 게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 자기에게 지시를 내려서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건지는 게 그게 원형입니다.

모든 인간은 배제가 되고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건져놓고 그 건진 하나님이 그 다음에 사람이 되셔야 돼요. 그래서 야곱이 되고 난 뒤에 이름이 이스라엘 됐잖아요. 그건 야곱 입장이고.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되시는 하나님이 야곱 되기 위해서 이기려는 게 아니고 져야 우리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는 쪽으로 열심 내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래서 죄인의 자리 안에 하나님의 의가 생겨나도록 생명이 있도록 그 방식을 사용한 겁니다. 그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인간은 자꾸 힘을 모으는 거예요. 그 힘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성경지식 신학이라는 것, 그리고 기도, 전도, 예배참석, 이런 것. 그게 자기한테 힘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뭔들 못하리. 뭐든지 하는 거예요. 열심내고 충성, 봉사하고 뭐든지 다해서 내게 유리하다면 뭐든지 하는 거예요. 그걸 저는 아주 강조했어요. 세자로 “불신자”라. 그게 바로 불신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불신자를 양성해요. 신자가 아니에요. 완전히 야곱이에요. 이스라엘이 아니고.

야곱에서 이스라엘 되려면 그야말로 죽어야 되는데, 죄인 되어야 되는데, 이게 야곱을 유지하면서 이 열심 내는 나를 건져주세요. 라는 식으로 나오니까 이건 뭐 그 안에 본인이 구원받겠다는 열의는 있는데 십자가 자리가 없는 거예요. 십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지요. 그냥 힘 달라 하는데 무슨 십자가를 주겠어요.

십자가는 우리가 죄인이 되어야 발생되는데요. 그래서 야곱은 뭔가 이기려 할 때는 근원적으로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요. 그래서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아담의 이름으로 해왔고 아담의 이름이라 하는 것은 이름은 이름 붙여준 자의 운명 속에서 인간이 갇혀 있다고 이야기했고요. 못 벗어납니다.

아담의 이름은 뭐냐, 흙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왜 인간은 흙이 되어야 되는가, 인간이 흙이 아니고 사람인데 할 때, 흙인데 사람이라고 우겼던 그 배후 세력이 있어요. 악마가 있어요. 그건 지옥가야 돼요. 그래서 이 세상은 지옥의 하수구입니다. 지옥에서 나온 온갖 더러운 것은 하수구에 다 빠지듯이 빠진 이 동네가 이 세상이에요.

그래서 어제 설교할 때 저는 마음을 찢으라, 했는데 아내가 다른 제목을 건의했어요. 지옥의 하수구. 그것도 시궁창 이러는데. 힘으로만 버티려고. 힘이 있으면 산다고 여기는 힘이 기쁨이라고 여기는 그 동네. 너무 생뚱맞아서 채택이 안됐습니다만.

야곱이 바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이유가 뭐냐 하면 아담 자체가 이미 악마와 한 통속이 되어서 그렇거든요. 그래서 제가 어제 설교 표현하면서 안 쓰는 단어를 하나 썼습니다. 오지게.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난 자체가 오지게 재수 없는 거예요. 정말 너무 너무 재수 없는 거예요. 태어난 바닥이 지옥의 하수구의 시궁창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 자체가 저주에요. 사는 자체가 저주입니다. 그 저주에서 벗어날 길도 없고.

그런데 무슨 특급사랑인지 주님께서 그 금식과 마음 찢음을 한꺼번에 예수님만 그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를 주님은 금식의 완성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식사하는데 그 식사가 무엇과 연결되느냐 마음 찢음과 관련된 식사가 금식의 성취입니다. 내 살과 내 피를 먹어라. 예수님께서 분명히 마지막 식사였거든요. 식사인데, 이 식사가 마음 찢음과 관련되어 있어요.

그 식사 마치고 난 뒤에 겟세마네 가가지고 중요한 것은 겟세마네에 갈 때에 제자들 3명 데려가잖아요. 기도하려 데려가는 거 같은데,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마음 찢음에 기도를 예수님은 하실 수 있지만, 제자들은 하지를 못해요. 자기 바빠서.

그렇게 해가지고 나중에 주님께서 겟세마네 기도로 연장되어서 그게 십자가로 실현됐지요. 그걸 성령이 오게 되면 바로 그 마음 찢음에 그 마음이 성령의 마음이 되어서 제자들에게 도달됩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마음을 찢은 상태기 때문에 이미 금식이 완성 상태에 들어왔기 때문에 살과 피를 먹었으니까 맛있게 뭐든지 잘 먹더라도 감사함으로 먹는 그것이 주께 영광이 돼요. 고린도전서6장에.

뭐든지 맛있게 먹는 것. 그게 마음 찢음 상태에서 음식이 들어오니까 금식의 완성의 반복이 되는 거예요. 식사시간마다. 동시에 완성이에요. 그렇게 되게 되면 그 마지막 날이 여호와의 날이거든요. 최후의 날이 왔을 때 여호와께서 친히 만들어낸 사람 빼놓고는 나머지는 다 오지게 재수 없는 티를 내시면서 완전히 전부 다 저주해 버리지요.

이미 주님께서는 여호와의 날, 최후의 날이 온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저주에서 못 벗어난다는 것을 이미 아시기 때문에 미리 성령을 통해서 자기 사람들을 생산해 내는 겁니다. 금식과 마음 찢음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어요. 바리새인처럼 금식해봐야 지 자랑, 금식한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 때문에 마음 찢음이 안돼요.

밥은 굶었는데 마음은 전혀 안 찢었고, 오히려 금식으로 인하여 마음이 더 돋아졌어요. 교만해졌어요. 주님만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그들만 특급사랑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겁니다. 그게 어제 수요일 이야기였습니다.
 첨부파일 : 수요 설교 요약.hwp (48.0K), Dow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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