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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2 20:34:36 조회 : 122         
1강-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6인조밴드)210822 이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125.136.180.11)
1강-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6인조밴드)210822 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사도바울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두번째 여행을 할 때의 삼총사입니다. 세 명이 같이 뭉쳐서 다녔어요. 예수님은 하나인데 그 하나가 이제는 세 명이 한 조가 되어서 함께 있는 겁니다. 우리 보기에는 분명히 세 명 나와 있는데 여기에 더 있습니다.

이 세 명이 주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어요. 그러면 몇 명 되느냐 하면, 네 명 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버지 안에 있고 성령 안에 있어요. 그러면 총 여섯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움직인 겁니다. 이들이 움직여서 생겨난 것이 뭐냐 하면, 데살로가인의 교회, 바로 교회라는 것이 여기서 생겨난 겁니다. 6인이 한 조가 되어서 생겨난 것이 있는데 그게 교회라는 겁니다. 그 원천은 하늘에 있고요. 땅에 교회가 생겨버린 겁니다.

이것은 처음에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있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일하실 때에 분명히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그것도 약속을 했는데요. 그 약속 말고 또 약속을 한 게 있어요. “내가 교회를 세우리니 이게 지옥이 무너뜨릴 수 없는 그런 단체를 만들겠다.”는 약속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지옥이 무너뜨릴 수 없는 단체를 만들겠다는 이게 무슨 뜻이냐? 사람들은 지옥이 있다는 것, 악마가 있다는 것을 인정을 안 해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람들은 지옥이 있니, 악마가 있니, 악령 귀신이 있니, 하는 그것을 인정을 안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걸 인정을 하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거지요. 보이지 않는 악마, 악귀와 성령이 있음을 내가 뭐로 들춰내 보이느냐 하면, 바로 교회를 통해서 “거 봐. 악마가 있잖아.”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은 악마가 통치자가 되는 것 맞잖아. 이 세상이 지옥인 것 맞잖아.”라는 것을 교회를 통해서 증명해내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분리가 일어나지요. 악마가 지배하는, 그냥 그대로 있는 이 현실 자체가 지옥이 되고 마귀가 왕이 되는 거지요. 그러면 그 세계가 있음을 들추어내게 되는 다른 세계가 있는 데 그게 바로 6인조, 6인조라고 하니 밴드 이름 같은데요, 6인조 밴드, 주님의 세계, 천국이, 교회가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그때야 ‘아하, 이 세상이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이구나.’라는 것, 그것을 들추어내는데 하나님께서는 주안점을 두고 일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은 생존이잖아요. 그러나 주와 함께 있는 6인조 그룹의 일은 다르지요. 생존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이미 마귀 수중에 넘어간 거예요. 살고자 해서 언제 지옥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살고자, 살고자 하니 그냥 이 땅에서 계속 살고자 하는 것 밖에 안돼요. 이 세상을 벗어난 사람은 그 벗어난 그 동네의 그 원칙, 주님의 세계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데 자꾸 살고자 살고자 하는 거예요.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탈레반 손에 넘어갔어요. 탈레반이 악마라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면 그 국민들은 악마 아닙니까? 탈레반이 오기 전에 그들은 무슨 의미로, 뭘 목적으로 살아왔어요? 그들은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까? 탈레반이 들어오기 전부터, 탈레반 지배받기 전부터 이미 탈레반과 똑같은 사고방식 속에 살아온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담에 속한 목숨은 이미 폐기 처분한 목숨이에요. 그 폐기 처분한 목숨을 왜 자꾸 살리려고 합니까? 마스크 써가면서. 마스크 쓰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마스크 쓴 사람 괜히 미안해지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백신 맞아가면서요. 저 두 번 맞았어요. 맞을 것 다 맞았어요.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의 목숨은 폐기처분 했기 때문에 목숨 살리려고 그런 것 신경 쓰지 말라는 거지요. 그러면 뭐냐? 새로운 생명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두 번째 아담, 마지막 아담, 사실은 새로운 아담, 원형 아담, 처음 아담이에요.

인간이 몰랐던 아담에게 어떤 생명이 있는데 그 생명을 6인조 밴드에 해당되는 사람에게는, 영생주기로 작정한 사람,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대로입니다, 영생주기로 작정한 분이 계시고 영생주기로 작정한 분에 의해서 영생 받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이미 여기서 선택되고 작정 되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등장이 뭐냐? 교회라는 거예요, 교회!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가 할 말이 굉장히 많지요. 듣기는 기분 좋지만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 어떤 준비보다도 먼저 알아야 될 것이 뭐냐 하면, 왜 이 세상에서 그 복음이라는 것을 안 좋아하는지, 도대체 내가 왜 복음을 안 좋아하는지 그 이유가 뭔지를 알아야 돼요.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나라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복음 한 30년 듣고 교회 50년 다닌 사람에게 이스라엘 특징이 뭐지요, 딱 물으면 답이 바로 안 나와요. ‘이스라엘? 정답 뭐였지?’ 이것은 거짓말 안 하고 수천 번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특징은, 거기에 언약이 있고 이방 나라에는, 단군의 후손들은 언약이 없다는 그 차이점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특징은 율법이 주어져 있고 다른 나라에는 율법이 없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율법이 목숨줄이고 생명줄이에요. 하나님의 언약이니까요. 모세가 직접 살아계신 하나님과 단독면담해서 가져온 거예요. 십계명을.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자기 안에 문신을 가졌습니다. 문신의 위치는 남자의 생식기인데 그렇게 문신을 새겼어요. 할례 언약을 행했기 때문에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게 자기는 택한 백성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제시하는 그 조건을 상당히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율법적으로 살면 복을 받고 율법대로 살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 이것은 나라는 몸의 태어남 이 전에 먼저 율법이 만들어졌음을 수긍하고 인정하는 단체가 이스라엘입니다. 나보다 말씀이 우선이에요.

이방인 되는 우리 단군의 자손들한테는 이게 이상한 이야기에요. ‘하나님 믿는 것도 나 좋으라고 믿어야지 나 싫은데 하나님 왜 믿어야 돼? 안 믿어야지.’ 이런 식으로 생각이 돌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낯설게 여겨지는 겁니다.

방금 그 이야기한 것을 시편에서 보면,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율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이렇게 죽 나오면서 2절에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율법을 우선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고 그다음에 5, 6절에 보게 되면, 악인은 율법이 주는 저주를 견디지 못할 것이며 감당하지 못할 것이며 의인만이 감당이 되어서 의인만 주께서 받아들이고 악인은 망하도록 율법이 그러한 조치를 취한다는 거예요. 5, 6절에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러면 이 교회라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라면 교회 내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거예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동네가 교회에요. 교회 안에 들어섰으면 그다음부터는 걱정하고 염려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무슨 일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만 주고받아요. 그게 교회 안입니다. 6인조 밴드, 그게 교회 안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요? 완성이 되었는데.”

신약에 와서 율법의 완성,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된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상황과 똑같아요. 율법의 정신이 어떻게 너희에게 혜택을 주고 적용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어디에 집어넣는가 하면, 이방 나라가 득실거리는 거기에 집어넣어 버려요. 거기서 이방 나라의 의식과 이스라엘의 의식은 어떤 차이점을 드러내야 된다는 겁니다.

이방 나라는 굉장히 바빠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거기에 완전히 혼쭐이 나서 완전히 거기에 매료되고 빠져서 몰입되어 있습니다. 오직 사는 이유가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그것뿐이에요. 그런데 시편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악인인 줄도 몰라요. 하나님의 의가 중요한 것도 몰라요.

시편 다시 보면 1편 5, 6절에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고 이방 사람들에게는 전혀 해당이 안 되지요.

그걸 전제로 해서 시편 2편에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여기에 나온 단어 “어찌하여 열방이”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이스라엘에 대해서, 그 차이점에 대해서 분노하며 “민족들이……” 그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허사” 허사, 허무, 무의미, 허사를 경영한다, 이방 나라 전체가 무의미한 모든 짓을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날 현대인들이 각각 자기의 나라에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생활을 하는 그 모습이 허무에 쫓기는 모습이에요. 하나의 국가에서 살아가지만 뭔가 일이 터지면 나라 걱정하고 선거철에는 요란스럽지만 그러나 선거 지나가고 나면 하루하루 생활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슨 일 안 터지나, 짜릿한 사건 없나, 그렇게 살아요.

손에 리모컨 들고 1초에 채널 두 번씩 바꿉니다. 죽 돌려서 훑고 또 훑고, 어떤 연예인 이혼 안 했나, 하면서. 세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해서 사는 그 사람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고요. 아무 의미 없는, 그저 남의 일, 윤석렬은 무슨 이상한 말 했는지 찾아보고, 이재명은 또……, 아무 의미가 없어요. 늘 허무에 쫓기는 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의하면요, 세상은 뭐로 만드느냐? 세상은 율법으로 만들어요. 세상은 율법으로 만드는데 사람들은 이걸 왜 거부하느냐? 이방 나라거든요. 이방 나라를 가지고 쉽게 하면 그냥 국가입니다. 다니엘에 의하면 국가 안에 짐승이 꿈틀거리고 있고요, 악마가 꿈틀거리고 있고요.

그러나 사람들은 국가 안에 악마가 꿈틀거리는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제대로 된 교회를 모르니까. 세상은 원래 그런 줄 알고 세상은 원래 이렇게 태어나서 죽는 것으로 압니다. 그 국가라는 것 안에 짐승이 살고 있는, 다니엘이 예언한 그 국가, 그 국가가 무슨 짓을 했는가?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국가가 메시아 죽이는데 다 힘을 보탰습니다. 국가가 하나님을 죽였어요.

하나님만 죽인 게 아닙니다. 1914부터 1918년까지 있었던 세계 1차 대전 때 국가가 자기 자존심 챙긴다고 죽인 사람이 군인 6백만 명, 민간인 1천 2백만 명 총 1천 8백만 명이 죽었어요. 부상자 빼고 죽은 사람만 1천 8백만이 죽었습니다. 누가 그 짓 했습니까? 국가가 그 짓 했어요, 국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미군만 죽은 것이 아니고 탈레반 그분들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미군보다 더 죽었어요. 베트남전쟁 때 미군 죽은 것만 생각하는데 베트남의 베트콩 죽은 것 생각해 보세요. 열 배도 넘어요. 누가 죽인 거예요?

예루살렘 포위했다고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 한꺼번에 죽였어요. 하나님의 천사가. 왜요? “건드릴 것을 건드려야지. 어딜 언약을 건드려.” 언약 건드렸다고, 율법의 약속된 예루살렘 건드렸다고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단 하루에 다 몰살시켰습니다. 다 죽였어요. 왜? 이미 폐기되었으니까.

국가라는 것을 탈탈 털어내면요, 남는 것은 율법의 노끈만 남아요. 율법의 매듭, 영어로 ‘knot’라 하는데 그 끈의 혹 같은 것, 마디 같은 것이 있어요. 율법의 망이 있는데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방 나라 숫자를 걷어내요. ‘이 먼지 같은 것이 왜 여기에 끼어있지?’ 하고 걷어내면 안에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지어다’ 하는 율법의 노끈 본연의 속성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 맨날 뉴스에 나오는 것 보면 행정부처가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있고, 국민들이 있고, 스포츠맨도 있고, 취미 생활 하는 사람들, 온갖 회사들, 삼성도 있고 현대도 있고, 이것들이 모여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국가가 있는 것처럼 되지만 그래서 부동산값 오르는지 그것만 신경 쓰지만 그것을 한번 탈탈 털어보자 그 말이지요.

그러면 뼈대만 남아요. 뼈대가 뭐냐? 율법이 전기노선처럼 배선으로 깔려 있는 겁니다. 전기매트 오래 쓰다 보면, 요 들추고 보면 배선 자체는 안 보이지만 그 열선 때문에 색깔이 변해서 그 자국이 보인다고요. 일종의 뼈대 같은 거지요. 밑에 깔려서 잠복 되어 있는 것, 원리원칙.

이스라엘은 그 율법을 미리 받은 거예요. 그래서 율법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받는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 다음 차례는 이방 나라, 국가체험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국가 행정체제 이것이 나라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우기는 이유가 뭐냐? 그들은 국가가 해야 될 본연의 일이 있었던 겁니다.

쉽게 하겠습니다. 이 세상은 너와 내가 만나서 만드는 것이 이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와 내가 만나면 가정이 되겠지요. 거기서 자식을 낳겠지요. 그러면 너와 나들이 많아지겠지요. 그 숫자가 많아지면 국가가 되는 겁니다. 너와 나. 인간 대 인간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 국가다, 사회고 가정이고 국가다, 기업이고 교회고 학교다. 교회도 거기에 집어넣어 버려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다.

그런데 거기서 인간을 다 털어내면 뭐가 남을까요? 교회는 인간을 털어내는 곳이에요. 아담에 속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털어내는 넙니다. 요한계시록 2, 3장에 일곱 교회 나오거든요. ‘아, 교회 있구나. 아,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교회가 여기 있네.’ 이렇게 좋아하면 안 돼요.

그 교회가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원칙, 말씀의 원칙에 위반하게 되면 계약 파기한다는 뜻이에요. 프렌차이즈 계약 파기하는 것 아시지요.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더 이상 파리바케트 간판 걸지 말라는 뜻입니다. 전혀 나와 관계없는 단체로 전락시키겠다. 그게 일곱 교회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계시록 2장 4절이지요. 그리고 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러니까 “내가 떠날 게 내가! 너희는 그냥 교회에서 예배드려. 내가 빠질 게” 이거거든요.

교회는 결국 이별하는 곳이에요. 교회는 뭐냐 하면, 한번 교회는 영원한 교회라고 우길 것이 아니고 이별하는 곳입니다. “우리 교회 언제까지입니까?” 주께서 이별하게 할 때까지만 교회지요. 주께서 이별하게 하실 때까지. 빠이빠이, 할 때까지.

그런데 이별이 꼭 필요해요. 왜냐하면 헤어질 때를 알아야 시작할 때를 압니다. 헤어질 때 ‘아, 서로 갈 길이 원래부터 달랐구나. 이게 같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이 세상에 국가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제일 속아 넘어가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들이 아니고 그냥 폐기물인데 그걸 사람으로 간주하는 데서 속아 넘어간다는 거예요.

이걸 화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동위원소’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동위원소 우라늄 원자수가 92거든요. 양성자 수가 92개고 중성자하고 합해서 258, 256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라늄의 중성자 238은 안정되어 있는데 235가 불안정해요. 불안정한 그것을 7퍼센트로 농축하게 되면 저농축우라늄이 되어서 원자력 발전소에 쓰이고 90퍼센트로 농축하면 이게 고농축우라늄이 되어서 원자폭탄에 쓰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 우라늄의 양성자의 수가 92개로 같기 때문에 다 같이 우라늄으로 보는 거예요. 이걸 동위원소라 해요. 다 같은 인간인데 인간이 아닌 거예요. 진짜 인간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여기에다 화학적 처리를 해버립니다. 처리해버리면 거기에서 다른 요소가 나오는 거예요.

옥시크린에 감자하고 당근하고 섞어버리면 거기서 산소가 발생 됩니다. 과산화수소에다 이산화망간을 집어넣게 되면 촉매로 해서 산소가 발생 되거든요. 보글보글 올라온다고요. 이것은 뭐냐 하면, 인간을 주께서는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네 속에서 생명이 보글보글 올라오는지 그걸 봐서 주님께서는 분류작업에 나서시는 거예요.

예수님의 요소, 복음적 요소가 담긴 사람은 뭐가 나오느냐 하면, 같은 국가에 살면서도 이 세상은 지옥이고 이 세상은 우리가 살 곳이 못 된다는 사실이 보글보글 나온다 그 말이지요. 제가 보글보글, 이라고 했지만 그걸 달리 이야기하면 방울토마토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이야기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마태복음 7장에 17, 18절에 나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율법을 통해서 율법의 열매가 나오는데 하나는 선한 열매가 나오고 또 악한 열매가 나와요. 그래서 먹을 수 있는 방울토마토 나오고 못 먹는 썩은 방울토마토가 나오는 거예요. 그게 어디서 나오는가? 밑에 있는 노선, 율법이 스스로 사람을 만들어요. 율법이 스스로 사람을 만든다고요. 그런데 천국 가지 못하는 사람, 지옥 갈 사람은 국가를 국가로 봐요. 국가의 할 일, 거기에 몰입합니다.

왜냐하면 인간 대 인간의 모임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 모임에 나라는 인간이 있으니까 내가 국가의 덕을 봐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국가의 할 일이 뭐냐? 국가는 수도, 전기 에너지를 수급, 공급하는 일을 하고 항만, 도로, 터널 관리 보수하고 자연재해 대비해야 되고요. 그다음에 치안과 국방에 전문인력을 집어 넣어야 되고요. 거기에 돈이 필요하니까 세관업무를 해야 돼요.

옛날에는 국가가 그 정도 했어요.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서 국가는 기본적인 생존보장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에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일도 국가가 담당하는 거예요. 거기서 나온 것이 뭐냐? 복지정책까지 들어가는 겁니다. 국가가 하는 일은 이겁니다. 근대국가의 특징은 딱 한마디로 뭐냐 하면, 내 생명과 사유재산을 보호해 달라. 딱 그거예요.

모든 법들은 내 목숨과 내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국가가 필요한 거예요. 지금 카불 공항을 통해서 빠져나가려고 난리도 아니지요. 자기 목숨과 자기 사유재산이에요. 그것이 보장되는 국가로 가려고 하는 겁니다. 카불공항에서 탈출하려는 여자를 인터뷰했어요. “당신은 왜 이 나라를 탈출하려고 합니까?” 하니까 “이 나라가 내 목숨과 재산을 보호할 수가 없어서 다른 나라로 가렵니다.” “다른 나라 어디로 말입니까?” 그 사람 말이, 영국, 미국, 캐나다 간다는 거예요.

참, 기가 차서. 모가디슈는 왜 안 가려 합니까? 소말리아로는 왜 안 가려 합니까? 이게 자기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거예요. 탈레반만 악마가 되는 나라가 아니고 그 국민들도 같이 그 나라가 악마 되는 나라에 협조하고 관여했어요. 그저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같은 좋은 나라 잘 사는 나라, 어디서 듣기는 들었어요. 거기에 한국까지.

보통 생각이 ‘내 한 몸, 내 가족과 내 재산만 보호한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나는 천국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니까 아마 그 사람 파키스탄에 가면 거기에 탈레반이 또 쳐들어와요. 갈 곳이 없습니다. 자기라는 인간하고 헤어져야 돼요. 나하고 이별해야 됩니다. 나하고 이별해야 돼요. 나하고 이별하지 않으면 아무 희망 없습니다.

국가가 하는 것이 노동문제까지 관여해서 노동생산성을 올려야 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노동자 당신이 지금껏 써먹었던 그 노동력은 이미 생산성에 도움이 안 되는 한물간 노동기술이에요. 그러면 회사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고 그 기술을 20년 30년 동안 써먹어서 이제 아무 쓸모 짝이 없다는 그 말이지요.

그런데 그 기술을 그 회사에서는 이제는 안 써먹어요. 이제는 로봇시스템으로 만들어요. 그러면 그것이 사회의 불만요소가 돼요. 그러면 또 달래야 됩니다. 국가가 이제는 그런 일까지 해야 돼요. 사회에 불만요소가 있을 때 데모하는 것을 억지하는 비용이 또 들어가거든요.

제가 하는 말은, 국가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 말이에요. 인간의 욕망이 높아지는 이상 아무 대책이 없어요. 미국이나 캐나다 가고 싶어 하는 그런 국민들 모아놓은 아프가니스탄 아무 대책이 없어요. 인간이 나한테 내가 대책이 없어요. 왜냐하면 대책을 세우지 말았어야 해요. 내가 나한테 대책 세우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한 세계가 아니고 율법을 위한 세계고 주의 언약을 위한 세계기 때문에 나를 위한 대책은 소용없어요. 이미 폐기처분 된 목숨이 무슨 대책이 필요합니까? 고린도전서 7장에 보게 되면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의 특징이 뭐냐? 대책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29-31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이 세상 흔적은 다 소실됩니다. 증발되고 날아가거든요.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날 줄 알아야 됩니다. 본인이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시간이, 세월이 우리 자신을 떠나게 만들어요. 여자의 아름다움은 50까지는 얼추 버틸 수 있어요. 그런데 50대에 찾아오는 갱년기가 여자의 미모를 완전히 망가뜨립니다. 차라리 이슬람처럼 부르카 쓰고 다니는 게 낫지. 여지없이 망가뜨려요.

오늘 아침에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제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자기가 온 동네 미장원에 다 다녔다는 거예요. 그런데 미장원이 자기를 마루타로 본다는 겁니다. 실험대상으로. 자기 솜씨 발휘하는 실험대상.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마는 우리를 마루타로 봐요. 우리 안에서 어떻게 하면 목숨 하나, 목숨 제대로 부지할 수 있는가, 그것만 계속 나오니까 악마가 갖고 놀기 좋은 겁니다. 염려하고 걱정하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알고 난 뒤에는요. 교회 안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이미 완료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미 고지를 접수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지 않아요. 다만 몸은 느끼지요. 많이 피곤해지니까 갈수록. 몸은 어차피 빼고 가실 게요. 몸, 이것은 버려야 될 몸이기 때문에, 화장터에서 불태워야 할 몸이기 때문에 몸은 원래 그런 거예요. 버려야 되지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기존의 이방 국가들 속에 집어 넣어진 이유는 이방 국가가 하는 행정체제, 국민들의 목숨과 사유재산을 지키려고 하는, 그래야 지도자 값을 한다고 인정받는 그런 일에 집중하는 이방 민족 과의 차이점을 이스라엘 너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에요.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이게 문제에요. 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찾아가는 게 문제거든요. 무조건 공항 빠져나가면 천국입니까? 그게 아니거든요. 주보를 봅시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1 제목: 교회의 형편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머물면서 전도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폭동으로 인해(행 17:5-6) 베뢰아로 피신했으나 그곳까지 쫓아온 유대인들로 인해 아덴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실라는 베뢰아에 각각 남겨 두었고, 그 뒤 베뢰아에서 합류한 실라와 디모데는 아덴으로 와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박해와 시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직접 데살로니가로 가기를 원했지만 결국은 디모데를 그것에 보내었습니다. 얼마 후 고린도로 온 사도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을 잘 견뎌내며 그 가운데서도 기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그들을 격려하고 또 그들이 가진 잘못된 종말관을 시정하고자 편지를 쓰게 된 겁니다.】라고 되어 있지요.

기자들이 기사 쓸 때 이런 식으로 쓰는 겁니다. 이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나오거든요. 사도바울이 2차전도 때. 성경은 기록한 기자가 실제 있었던 일을 쓰면서 사도바울 이 6인조 밴드가 어떻게 이 세상과 접촉을 하면서도 붕 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이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죄용서 받고 의인이 된 너희들아, 이 국가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적용시켜야 되는가를 사도행전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희는 이렇게 적용해야 된다. 그 적용을 제가 주보에 죽 써놓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요.

데살로니가가 어느 동네인지도 모르겠지요. 데살로니가가 지금의 그리스거든요. 사도바울이 터키 전도하러 가려고 하는데 예수님의 영이 터키로 가지 말고 그리스로 가라, 해서 명령 따라 그리스로 갔거든요. 주의 명령대로 갔기 때문에 이제 편안하게 사역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환란이 기다렸어요. 주의 성령 따라 갔는데 이 6인조가 환란에 된 통으로 걸린 거예요. 데살로니가 이곳을 일단 서울로 봅시다. 서울에 3주간 있다가 거기서 유대인이 폭동을 일으키니까 베뢰아로 갔는데 거리상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의 거리는 서울에서 지금의 안산 혹은 경기도 화성쯤입니다. 방향이나 거리가 그쯤이에요. 한 40킬로미터쯤이니까.

그다음에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남겨 둡니다. 이를테면 파리바케트 지점장으로 두고요, 실라는 베뢰아에 또 지점 세워서 거기 두고 그다음에 베뢰아 즉 경기화성에서 합류한 실라와 디모데가 아덴 지금의 아테네로 가게 됩니다. 아테네가 서울에서 거리상 대구에요. 대구에 와서 소식을 전한 겁니다. 화성에 있던 파리바케트 점장과 서울에 있던 점장이 합류해서 대구에 온 겁니다.

대구에 사도바울이 있으니까 거기 와서 보고를 한 거예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대구에 있는 사도바울이 서울에 가서 한번 보려고 했지만 대신 디모데를 서울로 보내고 사도바울은 고린도로 가게 됩니다. 고린도는 광주로 보면 됩니다.

광주, 대구, 서울 찍고 화성, 안산, 이 동네가 무슨 동네가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율법완성, 하나님께서 영생주기로 작정한 사람, 예수님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진 사람, 그 작정하심에 의해서, 그 선택하심에 의해서 보글보글 산소가 발생 된 지역인 거예요.

그래서 신기해 죽는 거지요. 사도바울은! 이게 당연한 것이 아니고 ‘야, 율법이, 주님의 말씀이 살아 있구나.’ 이게 신기한 거예요. 지금 환란이고 핍박이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너무너무 신기한 거예요 이게. 하나의 국가에서 국민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그 국가와 이별합니까? 어떻게 자기 몸으로 태어나서 자기와 헤어지는 사람이 발생 될 수 있습니까?

이게 교회인데, 이게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인데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자기 한 몸 돌보지 않고 찾아가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율법 가지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율법에 보게 되면 원래 처음부터 율법부터 있었어요. 인간이라 하는 것은 쓰레기처럼 다 털어내면 율법만 남습니다. 그러면 인간 털어냈다는 말은 아담의 자손을 털어냈다는 말이고요, 아담의 자손을 털어내 버리면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아무도 없지요.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진짜 생명을 받은 사람은 남자의 후손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전부 다 남자의 세계에요. 남자가 요구하는 대로 움직여 줘야 그게 당연한 현실이라고 우기는 남자의 세계에서 어떤 누구도 그 남자의 권세를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자 본인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그걸 숙명이라 여기고 그게 관습이고 관행이니까요, 못 벗어나요.

그래서 주님은 어떻게 하느냐? 율법 스스로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요. 너와 나를. 그게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거기에 어떤 율법사가 찾아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영생문제를 이야기할 때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지키라고 하거든요.

율법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27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살아라, 하니까 문제는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29절) 하는 거예요. 이웃이 누구입니까.

여기서 율법이 율법대로 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을 털어낸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모든 인간을 저주받게 하고 다 죽여버린다. 그러니 율법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어요. 그래야 그게 율법다워요. 율법을 주신 것은 저주를 주기 위해서, 다 죽이기 위해서 율법을 준 거예요. 전기매트 배선 위에 놓인 사람은 다 화상 입으라고 깔아놓았다고 생각하면 돼요.

우리 피부에 암 생기는 것은 죽으라고 한 것이고요.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간 죽으라고 온 거예요. 코로나 바이러스 피한다고 그 사람이 천 년 만 년 삽니까? 아니거든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한가지 소리를 냅니다. “좀 죽어 도! 좀 죽으라고, 인간들아!” 죽으려고 태어난 거예요, 죽으려고! 참, 이거 알아서 감격스러운데 여러분은……, 세상 자체가 죽으라고 된 겁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이웃을 설명하는데 여기서 새로운 생명이 나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나오거든요. 죽은 사람, 여기에 ‘거반’ 죽었다고, 거의 다 죽었어요. 거의 다 죽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는 살았잖아, 하고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남이야 죽든 말든 살아 있는 나는 그냥 살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어요. 그 사마리아 사람이 누구냐 하면, 이웃으로 나타난 사람, 율법에 의해서 이웃으로 온 사람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웃이에요. 구원받는 내가 먼저가 아니고 율법이 먼저고요. 그다음에 율법대로 사신 분이 먼저고요. 그 율법대로 사시면 거기서 만들어진 개념이 뭐냐? 이웃입니다.

이웃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뭐가 따라오느냐? 이웃 사랑도 같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고요. 그 이웃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이웃으로서 생명을 얻게 되는 겁니다. 이게 뭐냐 하면, 내가 살고 싶어서 교회 와서 뭘 하는 게 아니고 말씀이 스스로 이웃이라는 생명을 만들어내서 그래서 영생 얻는 겁니다.

그 사실이 있는 사람만 보글보글, 말씀이라는 게, 복음이라는 게 보글보글 산소처럼 올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 안에서. 세상 이방 나라는 어떻게 먹고사느냐, 생존이냐 죽음이냐, 이게 중요하거든요. 이방 나라 즉 국가에서는. 이스라엘에서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가 중요해요. 무엇이 율법대로냐, 아니면 무엇이 율법에서 탈락이냐, 그게 옳은 거예요. 그게 중요한 겁니다.

주님께서 율법대로 오셔서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십니다. 그러면 SiO₂(이산화규소)라고 해서 반도체의 공정에 규소를 이산화규소로 만드는 과정이 들어 있는데요. 그 순도를 따질 때 9자가 열한 개가 들어가요. 99.999999999. 반도체나 태양전지 재료의 순도를 유지해야 돼요.

왜 그래야 되느냐? 거기에 불순물이 섞이는 양에 따라서 전기가 잘 흐르느냐가 결정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거의 백 퍼센트 순도가 되어야 죄가 죄로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다음에 이 세상적인 우리의 육신을 거기에 붙여버려요.

그러면 거기에서 뭐가 흐르냐? 하나님의 말씀이 십자가에 의해서 왜 우리가 죄가 되느냐, 그 죄를 그대로 노출 시키는 반도체가 하는 그 기능으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래야 나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말씀이 말씀대로 지금 실제로 일하고 있음을 구원받은 성도를 통해서 그대로 고스란히 다 이걸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교회에요.

디모데전서 5장 16절에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 어떤 사람이 남편이 죽고 나서 여자 혼자 살았는데 교회가 사랑한답시고 그 불행한 집에 먹을 것 입을 것 주면서 구제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사도행전에 나오는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1:45) 이런 말씀과 다르게 보이지요. 교회가 사람 생존케 하는 것이 교회 일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앉은뱅이가 걸었습니다. 그런데 병자들 낫게 하는 것이 교회 일이 아니에요. 앉은뱅이가 원하는 것은 돈이었습니다. 그대로 인간의 생존과 사유재산 보호하는 그 본능 그대로 들춰냅니다.

사도가 아주 섭섭하고 차가운 말을 합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돈이냐?” “돈입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돈이기 때문에 돈 못 준다.” 이게 얼마나 섭섭해요? “나에게 금과 은은 없다. 내가 너에게 줄 곳은 오직 예수 이름밖에 없다.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 즉 네가 걷지 말고 예수 이름이 네 안에 활동케 하라, 그거거든요. 너는 주님의 살아 있는 반도체가 되어라, 그런 식이지요.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나는 이렇게 죄인이었다, 그 죄가 살아나는 사람이 영생 얻은 사람이고 다시는 지옥이 그 사람을 공격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아프가니스탄 그 나라 국민들이 그 땅에 사는 것이 죄인 줄 알았더라면 벌써 탈레반이 점령하기 전에 한 달 전에 공항 탈출했습니다. 그때는 비행기에 좌석이 많아 남아 있을 때니까.

그 땅덩어리 그놈의 이슬람 교리, 그 이슬람 교리가 뭡니까? 말씀대로 알라신 뜻대로 살면 네 목숨과 재산 가족은 보호된다 그거잖아요. 그 이슬람 교리나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들이 이야기하는 그 교리나 똑같은 거예요. “살고 싶으냐? 잘 왔습니다” 그런 거요.

교회는 살려주는 게 아니고요. 왜 아직도 안 죽고 여기 기어왔나, 그거 이야기하는 데에요. 교회가! 죽으면 죽으리라. 왜? 그래야 생명의 위력이 나타나잖아요. 생명의 위세가. 이미 우리의 목숨은 빼돌렸다는 말이지요.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빼돌렸잖아요. 빼돌린 값을 좀 하세요. 그냥 살려고 애쓰지 마시고. 그저 모든 게 기존의 인간들 그 인간이에요.

그러나 성도는 주님 앞에서 주님이 만들어낸 새로운 나예요. 주님은 우리에게 너가 되고 너, 주님이 만든 나가 주님에 의해서 너라고 불러주는 나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뭐냐? 주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들의 집합이 되겠지요. 그들 사이에 뭐가 형성되는가? 그들 사이에 이웃이 형성되는 겁니다.

아무 일 없지요. 아무 일 없어요. 댁도 나도 아무 일 없어요. 교회 안에서는 아무 일 없어요. 왜냐하면 죽을 것만 남아 있으니까. 아파 죽든 굶어 죽든 죽을 것만 남아 있으니까. 죽음 외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평온하지요. 동감을 안 하는 눈빛들을 보여주고들 계신데요.

선한 열매 의의 열매는 열매 그것으로 그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욕심내지 마시고, 주님 앞에 의인 되었다, 죄사함 받았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직도 데려가지 않고 이 국가 속에 있게 하시는가? 거기에 하나님의 의를 적용시켜 버리면 이 세상에 우리가 이 몸, 옛날에 이 몸으로 버티고 먹고 살려고 했던 그 예수님을 배신하고 예수님에게 대들었던 그 악마의 세계를 옴팍 다 우리 몸에 의도적으로 젖게 만드는 겁니다.

네가 그렇게 살았던 그 세계는, 그들은 율법이라는 노선 위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구는 얼마나 잘사나, 누구는 수입 얼마냐, 그런 껍데기, 스티로폼 같은 그런 것들로 가득 차서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있어요. 나는 왜 남들처럼 행복하지 못하냐, 맨날 이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왜 지긋지긋하게 싸우느냐? 원래 아담 몸이 그래요. 연애할 때는요, 서로 칭찬 못 해서 난리 아니에요. 서로 칭찬 못 해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서로 비난 못 해서 난리 아니라니까요. 원래 그래요, 원래 우리 몸이. 이 폐기처분 해야 될 아담의 몸을 인수인계 받아서 원래 그래요.

이 세상 가운데서도 깔려있던 전기매트 노선을 따라가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사이렌 소리입니다. 앰블런스는 죽음의 의미를 담고 그냥 신속하게 달립니다. 거리의 신호등도 무시하고 그냥 달려버리지요. 죽음이라는 것이 그만큼 우리 밑층의 토대에 깔려있는 겁니다. 인간은 죽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걸 성도는 율법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미리 경험한 거예요.

끝으로 이 말씀 하고 마치겠습니다. 히브리서 10장 9절에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첫 것은 율법입니다. 율법이 완성되고 난 뒤에 두 번째 것이 세워졌어요. 두 번째 것은 어떻게 세워지는가?

10절에 보니까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우리가 의로움을 받았어요. 우리는 생명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받았으면 생명 값을 좀 하세요. 더 이상 이 세상 변화에 대해서 휘둘리지 마시고, 주눅 들지 마시고, 가족이, 세상이, 어떻게 나한테 무슨 소리, 어떤 협박 공갈을 치더라도 쫄지 마시고……, 쫄지 말라고 아직도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 말라고 한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그것은! 지난 수요일에 동구청에서 조사 나왔거든요. 얼마나 쫄았는지요. 갑자기 안 하던 짓, 뒤에서 뭐 막 기재하고요. 마스크 쓰고 띄어 앉기 막 하고요. 마침 그 직원이 7시 반 예배인데 7시 예배인 줄 알고 와보니 달랑 두 명 딱 나와 있거든요.

카메라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서 ‘아하, 비대면 예배 드리는 모양이다.’ 달랑 둘이. “아무 소리 안 하고 찾아온 이유는 감염 대비해서 위생용품 주려고 왔습니다.” 하고 휙 가버렸어요. ‘아, 이제 교회 문 닫는 것 아닌가.’ 얼마나 주님은 우리를 마루타로 흔들기를 하는지요.

복음을 알아? 개뿔! 이라 해라. 뭘 알아. 이론만 알지요. 실습하게 되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뭐 30년 복음 전했는데 무슨 소용 있어요. 바로 6인조 밴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와 함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온갖 고초를 다 겪었습니다. 자기 뜻은 자기 뜻대로 완전히 무시당하고 원치 않는 길로, 예상 못한 길로 사도들을 죽음으로,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비로소 십자가를 알게 되었고, 이미 생명이 하늘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하늘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경우를 저희들이 당함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1강-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6인조밴드)210822 이근호 목사.hwp (97.5K), Dow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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