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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7 13:09:15 조회 : 65         
안양20210916B슥8장2절(덮는 사랑)-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안양20210916B슥8장2절(덮는 사랑)-이 근호 목사

스가랴8장9, 10절을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날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원수로 말미암아 평안히 출입하지 못하였으나 내가 모든 사람을 서로 풀어 주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뜻에 의해서 성전이 만들어 지는 것을 하나님이 개입하셔가지고 제대로 된 성전을 하지 못하게 그렇게 만들어버렸어요.

성전은 철저하게 누가 만드느냐 인간이 만들지를 못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자기 백성을 일방적으로 거기다가 집어넣는 거예요. 이게 성전입니다. 인간으로 지은 성전은 성전으로 쳐주지를 않아요. 인간의 힘으로 성전을 만들 수가 없어요. 멍석 깔았다고 주님께서 오시는 게 아니거든요. 인간이 깔아놓은 멍석에 주님은 안 오십니다.

큰 예배당에 물론 안 오지요. 그 원리가 뭐냐 하면 불기둥입니다. 불기둥.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무슨 기둥? 구름 기둥. 이 두 기둥의 특징은 뭐냐 하면 분리성, 떨어지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혜택을 입을 자와 입지 못할 자를 철저하게 격리시키는 기능을 하게 합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어디에 동원되느냐 하면 이것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상을 못했어요.

모세가 출애굽 할 때에 홍해까지 왔잖아요. 같이 따라온 히브리인들도 이게 전부 다 모세가 정치적 의도로 그렇게 우리를 영도하는 줄 알았습니다. 인간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나를 따르라! 이런 거 있잖아요. 나를 따르라! 내가 이 민족을 살리리라! 있잖아요. 김구 이런. 북한 같으면 김 일성. 나만 믿고 나만 따르면 너희들에게 행복한 장래가 보장된다. 이런 거. 모세가 나올 때 모세가 사적인 아이디어에 나온 모세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히브리인들이요, 그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었어요. 당신이 우리를 독립시켜준다는데 우리를 더욱 더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우리를 책임져라. 모세와 아론이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숨도 좀 쉬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와가지고 그 통치자 바로왕의 심기를 건드려버렸어요. 그러니까 바로 왕이 화가 나서 어떻게 했습니까. 요 히브리인들 아주 배가 불렀구나, 이래가지고 와서 구박을 심하게 했지요. 구박을 심하게 해가지고 옛날에는 짚을 주고 벽돌을 만들라고 했는데 이제는 벽돌에 필요한 짚까지 니가 동일한 노동시간 안에 다 니가 알아서 그 목표량은 니가 다 채워라, 이런 식으로 억압할 때 노동량이 배 이상 들었겠지요. 그 원망은 누구한테 쏟아졌습니까? 괜히 니가 와가지고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고.

이걸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주제일 수도 있는데 이게 뭐냐 하면 수모에요. 수모 당함. 서러움 당함. 성도라는 것은 불기둥과 구름기둥 안에서 무엇을 경험해야 하느냐 하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격리되지요. 누구하고 격리됩니까. 바로 나라하고 이스라엘하고 격리되었지요. 그러면 그들이 불기둥과 구름기둥 안에서 편안합니까? 행복합니까? 아무 탈 없습니까? 살기에 충족됩니까? 아니지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격리시켜 놓고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격리시켜 놓고 그 안에서 무엇을 집어넣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들어왔던 그 수모 있잖아요. 수모. 수모 아시지요. 억울한 것. 천하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게 뭐냐 하면 억울한 거예요. 나쁜 짓해서 벌 받는 거 억울하지 않아요. 좀 봐주면 안 됩니까. 이리 나오잖아요. 그러나 죄 지은 거 없는데 당해보세요. 어린애들도 길길이 뜁니다. 모든 건 참아도 수모 당하는 건 못 참아요. 억울한 건 못 참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잘해줄 수 있어요. 하나님 구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 헌금 바치겠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천국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교회에서 이렇게 훌륭한 목사님 설교 듣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되는데 목사나 장로나 중직이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니가 와서 교회 분위기 다 흐렸다. 어디 미꾸라지 들어와서 진흙탕 다 만들었다. 이렇게 할 때 나가! 이럴 때 대번 못 나가! 가 돼요. 왜냐 하면 혼자 덤벅이 쓰니까. 혼자 교회 문제에 니 때문이라고 덤벅이 쓸 때에, 1번 잠이 온다. 2번 잠이 안 온다. 어디에요?

잠이 옵니까, 안 옵니까? 그래도 잠 잘 자면 수면제 먹던지 무슨 일이 있어요. 잠이 안 오지요. 은혜 받은 거 다 날아갔지요. 벌써. 신자니 아니니 그게 없지요. 니 죽고, 내 죽자 이리 나오지요. 인간은 이 수모를 감당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기둥, 구름기둥 격리시켜 놓고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인간이 감당 못할 수모를 감당하게 하는 겁니다.

이게 주님이 당한 수모를 공히 같이 경험케 하는 것,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갔습니다. 성전은 불타 버리고요. 다 하나님의 계획이 다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쫓아낼 때에 다 계획이 있었다고요.

시편137편 수모에 대해서 제가 한 번 거기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무엇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거기에 나무가 하나 나오지요.)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우리가 바벨론 강가에서 울었다. 무엇을 생각하며 울었어요? 지 형편? 아니에요. 시온을 생각해서, 성전을 생각해서 울었도다. 이제 성전이 없고 보니까 성전이 그리워지는 거예요. 그 성전에서는 다윗에 역대상에 보면 성전 지을 때 레시피 다 집어넣었지요. 성전 짓고 난 뒤에 솔로몬보고 뭐하고까지 하느냐 하면 찬양까지 하라고 찬양대까지 다 만들어놨어요. 아버지 다윗이. 솔로몬 아이디어가 아니고 다 아버지 아이디어에요.

그리고 성전하고 난 뒤에 성전만 한 게 아니에요. 돌아가면서 성가대 조직해가지고 노래까지 불렀어요. 그런데 그 노래가 노래 부를 때 수금이 필요하지요. 악기가 필요하지요. 수금을 걸어 놨다 말이죠. 3절에, 이에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야~ 이게 중요한 거예요. 여기에 사로잡은 자가 나오지요. 사로잡았다는 말은 누구에게만 경험되느냐 하면 옛날에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사람만 이 세상의 권력 자체가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유일하게 체험하는 자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이방인들은요, 인생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돼요. 세금 내라 하면 세금 내면 되고 그냥 세월 가면 세월가는 대로 살면 되고요, 나를 부르러 오거든 아직까지 갈 마음 없다고 80되도 그냥 세상 흘러가는 대로 세상 뭐 있어! 이리 살면 세상이지 뭐. 뭐 별 게 있어. 그냥 사는 게 세상이지. 남한테 그렇게 싫은 소리 안 듣고, 싫은 짓 안 하고 그냥 내 자식 잘 키우고 밥 먹고 살면 이게 세상이지. 이런 생각이 세상 사람이에요.

누구한테 사로잡혔다는 이런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이 이스라엘은요, 옛날 하나님과 함께 살았잖아요.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 뭐라 했어요? 성전. 어떤 죄를 짓고 어떤 병이 나고 어떤 전쟁이 일어나도 어디를 기도하면 응답 받겠다?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응답하겠다. 열왕기상 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길게 이야기했어요. 성전의 효과에 대해서.

니가 어떤 죄를 지어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내가 성전에서 용서의 능력이 나간다. 이게 성전이에요. 그 성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북쪽 이스라엘은 성전을 무시해도 남쪽 유대인은 성전이 있었기에 성전을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남쪽 유다가 북쪽 이스라엘보다 더 오래 버텼어요. 한쪽은 BC722년에 망해버리고 남쪽은 BC586년에 망해버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는 북쪽 나라는 내 나라가 아니니까 치워버리고 유다와 베냐민 니가 성전 지어라 해서 성전 짓는 거예요. 에스라1장에 보면 다른 지파가 지으려하니까 가만히 있어. 너는 성전 못 져. 우리 바사나라 임금님이 우리 유다지파보고 성전 지으라고 했어.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스라엘이 무슨 나라 됩니까? 이스라엘이 아니고 무슨 나라? 유다나라가 되는 거예요. 유다지파가 되는 거예요. 그게 성전 때문에 그래요. 성전 때문에. 그런데 그 성전이 있는데 사로잡힌 자가 와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는데 무슨 노래를 청하느냐, 옛날 니가 하나님 믿고 잘 나갔을 때 그 때 불렀던 찬송가 불러 봐! 라고 조롱조로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겁니다.

4절에 보세요.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아~ 어떻게 고향의 노래를 불러요. 타향에서. 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이 7080노래 듣고 자주 운다는 거예요. 옛날에 20대에 젊을 때에 한국에서 잘나갔던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나가지고. 지금 미국에서 세탁소하고, 미국에서 생선가게, 채소가게 하면서 슈퍼마켓하면서 떡볶기 장사하면서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이구~ 이거 남의 땅에 와서 죽는 거 아닌가. 고향을 버리고 내가 왜 이런 팔자가 다 있냐, 라고 자기 신세 한탄하면서 서러워하면서 우는 겁니다. 그걸 두 자로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게 뭐라고요? 수모.

이게 예수님이 고향을 떠난 예수님의 수모입니다. 이게 예수님이 하늘나라 버리고 죄 많은, 죄 많은 게 아니고 죄 뿐인 이 세상에 와가지고 죄도 없으면서 온갖 수모 다 당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건 뭐냐 하면 의인이 억울하게 죄인 취급당하는 수모잖아요. 그렇지요. 그 수모를 이미 의인된 하나님의 백성이 공히 같이 경험해야 된다는 겁니다.

어디에 휩싸여서? 이방민족에 휩싸여서. 시편137편에 나온 노래를 가사로 한 팝송이 바로 <바벨론 강가에서> 하는 노래에요. 우리나라에 큰 히트 쳤어요. 1960년도에 나온 노래에요. 보니엠의 흑인밴드에요. 바벨론 강가에서 서러워 우는 거예요. 언제 고향에 돌아갈까.

자, 이 말은 뭐냐 하면 우리 힘으로는 돌아갈 역량이 있다, 없다? 없는 겁니다. 그러면 고향에 돌아가려면 바벨론 있잖아요. 이 바벨론 자체가 누구 손에서 움직여야 되느냐 하면 우리를 고향에서 쫓아낸, 약속의 땅에서 쫓아낸 그 하나님의 손에 이방민족의 모든 권세가 역시 같은 여호와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야 돼요.

세상에 북한이 어떻고 세상에 모든 아프가니스탄 어떤 전쟁이든 주의 뜻이 아니면 일어나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있어요. 긍정도 이런 긍정이 없지요. 우리 집에 빚 받으러 온 사람도 주께서 보낸 사람입니다. 그 수모를 내가 수모 당할 때 그럼 내가 수모 당했다. 당했다 하면 수모 당한 게 아니거든요. 수모 당한 그런 모습을 보여야 돼요.

그게 바로 스가랴8장18절, 19절에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그 다음이 뭐예요?)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이리 되어있어요. 금식 나오지요. 수모를 내면화 시킨 게 금식이에요. 수모를 내 안에 가져온 게 금식입니다. 금식이란 뭐냐 하면 ‘나 생존 안할래.’ 에요.

나 생존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곡기를 끊는다. 밥을 끊는다는 것은 나는 이런 형편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 말이에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신앙을 자랑질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 하나님 없이는 못산다.” 어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자기의 신앙을 자랑질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 없이는 못산다. 자, 여기에 대한 복음적인 정답은 뭐냐, 물어봐야 모르니까 일방적으로 합니다.

“그냥 죽어.” 그냥 죽어라. 하나님을 찾는 게 의도가 주님이 주시는 금식하고 금식의 취지 수모하고 달라요. 지금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요, 주님의 수모를 체험하는 게 아니고 자기 자존심 상한 것이 못 견뎌서 빨리 빨리 SOS 하나님이여, 빨리 와서 옛날 내 자존심을 유지시켜 달라는 그 뜻으로 하나님을 계속 붙잡는 거예요.

이걸 대구강의에서 자기 자존심 챙기는 걸 5자로 뭐라고 했습니까? 불멸의 위신. 위신. 불멸의 이순신처럼 불멸의 위신. 인간은 위신으로 살고 위신으로 죽어요. 사나 죽으나 위신뿐이에요. 먹든지 마시든지 위신뿐이에요. 자기체면과 위신과 명예와 그거 뿐이에요. 자기 이름 챙기는 거 그거뿐입니다.

인간이 육이에요. 본능이 이거뿐이에요. 그럼 여기다가 뭘 뿌리느냐, MSG를 친다. 예수, 하나님, 성령 백날 쳐봐야 밑에서는 끄떡도 안 해요. 밑에는 뭐가 있습니까? 나의 위신과 체면을 위해서 산다는 변화가 있어요? 없어요? 변화가 없지요.

아, 교회에서 믿음 좋은 사람, 말만 하면 예수 이야기, 복음 이야기, 기도할 때 얼마나 유창하게 오래 동안 한 사람들, 그 사람을 이렇게 가정 문제나 건드려보세요. 왈칵 일어납니다. “집사님 딸 요번에 참석했는데 인물이 별로대요.” 이 말 한 마디에 그 다음부터는 원수가 아니고 웬수가 되어버려요. 웬수가 되어버려요. 왜? 불멸의 위신을 건드렸어요. 안에 이게 들어있어요. 바깥에 무슨 교회 몇 년 다니고 직분 받고 아무짝도 소용없어요. 아무 소용없습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거예요.

그러면 주님의 수모가 들어올 때 뭘 건드리겠습니까? 바로 천하 하나님도 건드리지 말아야 된다는 진짜 나의 자존감, 자존심 정도가 아니고 자존감, 나의 자존감, 나의 의로움, 이걸 누가 건드립니까? 성령께서 주님이 건드려요. 이게 주님의 수모입니다.

수모를 한다고 해서 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선교 그런 짓하지 마세요. 자기를 학대한다고 수모 아닙니다. 잘 먹고 잘살고 돈 많이 벌고 골프치고, 골프는 될 수 있는 대로 치지 마세요. 요트 구입하고, 그렇게 해도 그게 자체가 주님의 수모일 수가 있어요. 괜히 흉내 내지 마세요. 고난의 흉내, 십자가의 흉내 내지 마세요. 뭐 집 팔아서 누구 도와주고 그런 헛짓하지 마세요. 그 도와준 사람 돈만 사랑하게 되어있어요. 괜히 도와줘서 상대방 돈만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구제의 피해입니다. 처음에 한두 번 고맙다 하지요. 나중에 돈 나올 때 됐는데 돈 안 보냅니까. 사람이 거지를 다 만들어놨어요. 거지를.

얻어먹는 근성이 작동하는 이유가 인간에게는 뭐가 있습니까? 자신의 가치가 있어요. 나만의 가치. 나만의 가치가 있으니까 내가 되는 자니까 돈 줬겠지. 라는 이 자기의 가치로 인하여 살고 싶은 이 욕망, 이거 죽을 때까지 안 없어져요. 도와줘놓고 욕 얻어먹는다니까요. 도와줘놓고.

제가 강의할 때 여러 번 했거든요. 제발 남자들 특히 술 먹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라는 이유가요, 제가 짧은 인생 살면서 느낀 건데요, 남자들이 나는 여자가 아니니까 몰라요. 남자들은 술과 담배를 피우게 되면 사람이 오버해요. 허황돼요. 분수에 허황돼 가지고 친구도 그런 친구를 만나요. 니 직장에서 얼마 받는데? 남자가 고것 받아 평생 우애 살아. 사업하자. 분명히 그 소리 나오고요, 사업하면 지 돈으로 사업합니까. 아버지 어머니 돈 다 땡겨서 사업하지. 허풍이지요. 허풍. 허세.

그거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요? 나는 돈 벌만큼 사업할 만큼 가치 있다고 자기를 부풀려요. 자기를 이렇게 환상을 줘가지고 성경에 먹는 거 입는 걸로 족한 줄 알라 했는데 잊어버리고 그저 승부욕에 환장해가지고 내가 니 보다는 안 진다는 이게 진짜 마귀심보에요. 그게 있어가지고 하는 거예요. 그게 나중에 교회 들어오면 뭔 줄 알아요? 니 어디 선교했노? 미국. 미국도 선교하나? 나같이 아프리카 가야지. 이건 선교의 고난의 강도, 고난의 더 낮아짐을 가지고 시합 배틀 한다니까요. 이게. 적어도 아마존은 가야 선교지. 어디 미국에 유학가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경쟁이고 자존심이고 어떤 한 순간도 자존심 버리고 일한 적 없어요. 어느 순간도. 기도를 하던, 헌금을 하던, 봉사를 하던, 저번 집사는 꽃꽂이 잘됐던데, 요번 집사는 도대체 누가 했노? 뭐 구도도 안 맞고, 이거 뭐 봉사 그만 하라 해라. 그 한 소리에 삐져가지고.

자, 수모라는 것은 죄 없는데 덤탱이로 모든 책임을 짐을 질 때 그게 수모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금식한 거예요. 자, 금식을 사월달 금식은 예레미야에 예루살렘이 점령되었을 때 슬프다고 한 금식이 전통이 되어서 사월달 금식이에요. 오월달 금식은 열왕기하25장8절인데요,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드디어 이방나라 총독이 약속의 땅에 침범해서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에 접수했던 그 날이 서러워서 금식한 날이 오월달 금식. 7월달 금식은 그달랴 대학살사건을 기억해서입니다. 그달랴는 이스라엘 멸망 이후의 총독입니다. 예레미야41장 1절에서 10절까지 내용입니다. 이것도 포로하고 난 뒤에 사건이에요.

시월달 금식은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 열왕기하25장1절, 예레미야52장4절, 그러니까 이건 뭐냐 빼앗겼을 때에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그 자긍심, 자존심 있잖아요. 자존심 묵사발된 거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더 이상 택한 백성이다, 아니다? 백성이 아닌 거예요.

저 개 같은 이방나라하고 똑같이 된 거예요. 자기가 갖고 있던 자기 의가 몽땅 빵구 난 겁니다. 이게 신약에서는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가지고 우리한테 수모를 집어넣어요. 십자가가지고 우리를 푹 쑤셔버려요. 니가 뭐라고? 목사라고? 니는 뱀이야. 푹 쑤셔버리는 겁니다. 이게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니가 왕이라고? 니는 왕이 아니고 간음자요, 살인자야. 하고 나단 선지자가 와서 푹 쑤셔버려요.

그 때 그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게 어디 선지자가 나한테 왕인 줄 모르고. 여봐라. 이 놈 하옥하라.” 이렇게 했습니까. 아니지요. “맞습니다. 내가 죽어 마땅합니다.” 이게 바로 상한심령. 이 상한심령이 어디에 필요하다? 예루살렘 성에 필요한 거예요. 그게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그 자격입니다.

시편51편 읽어보겠습니다. 18절에,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7절,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16절,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시고,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러니까 성전에서 제사하고 그게 필요한 게 아니고 성전에 들어갈 만한 사람은 내가 눈물, 죄로 먹물되었고 나는 부모로 태어날 때부터 나는 죄인이라는 원천을 비로소 발견한 거예요.

그러면 밧세바 남편 우리아는 왜 죽었느냐, 그것은 돌멩이로 다윗의 안에 있는 그 우물 같은데다가 돌을 던진 거예요. 돌을 던지니까 그 흙탕물이 어떻게 되느냐 출렁하겠지요. 그 출렁이 뭐가 출렁이겠어요? 죄가 가득 고여 있는 거기에 외부에서 돌이 날아오니까 출렁하고 튕기는 거예요. 그러면 다윗이 그럴 때마다 출렁, 출렁하겠지요. 풍선에 물 넣어놓은 것처럼 하겠지요. 다윗은 그걸 알은 거예요. 내 안에 뭐 있다? 내 안에 죄 있다. 이게 바로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내 안에 죄 있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 안에 들어있는 죄를 원하신다. 다윗이 자기가 한 행동을 감추기 위해서 죄에다가 또 죄를 지었잖아요. 그게 다 내부적인 죄의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렇게 나와 버린 거예요. 본능적으로.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다윗에게 밧세바 태어난 아들이 있잖아요. 죽여 버렸어요. 죽기 직전에 다윗의 행동은 뭐였습니까? 금식이지요.

자, 금식은 언제 한다? 아들이 죽었지요. 죽은 아들의 아버지가 누굽니까? 다윗의 아들이 죽었어요. 죽은 자의 아버지가 누굽니까? 다윗이지요. 금식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금식은 누구의 죽음이 마땅함입니까? 나의 죽음이 마땅함. 사는 것이 기이하다. 내가 왜 살지. 내가 왜 살아야 되지. 말도 안 돼. 지금 죽어도 할 말이 없는데 왜 살아야 되지. 내가 죽어 마땅함을 알 때 우리에게서 날아가는 게 있습니다. 우리한테 붙어 있다가 날아가는 게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악마입니다.

악마가 날아가요. 왜? 재미가 없어요. 사람이 살려고 할 때 부지런히 기도해서 살고, 요거 지켜주이소. 내 가정 지켜주시고, 내 재산 지켜 달라 할 때는 온갖 지나가는 마귀 다 달려듭니다. 기도할 때 그리 기도하지 말고 악바리로 기도해라. 지나가는 귀신이 한 마디하고 나면 그 다음 귀신은 기도할 때 성경 읽고 기도해야지. 그게 QT잖아. 그냥 하지 말고 돈 아끼지 말고 요번 교회 일하는데 헌금 듬뿍하고 기도해야지. 한 마디하고 또 지나가고. 온 귀신 다 날아와요.

내가 기도의 응답을 요구하니까. 그런데 진짜 금식 기도의 특징은요, 응답을 하는 게 아니고 이미 금식한다는 자체가 죄인 된 자체가 나의 기도에 도달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로 주신 응답 자체가 나는 죽어 마땅합니다. 라는 기도에요. 이미 답을 받았어요. 이미 답을 받았다고요. 답을 아는 상태에서 서울대학 못 갈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없지요. 이미 답을 알아버렸으니까.

주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왔습니까? 죄인을 부르러왔습니까? 이건 답변해 주셔야 돼요. 우리 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왔습니까?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까? 죄인을 부르러 왔지요. 그런데 왜 교회에서 의인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그러니 이게 정답이 다른 거예요. 정답이 틀린 거예요. 죄인 되면 귀신도 안 붙고 마귀도 안 붙고 시험도 안 들고 얼마나 좋아요. 일거삼득이다.

자기가 죽어 마땅하면 뭐까지 좋은 줄 알아요? 범사에 감사에요. 숨 쉬는 것도 감사에요. 물론 코로나로 숨 안 쉴 수 있는데 안 쉬어도 감사지만. 모든 게 감사에요. 감사 안 할 게 없어요. 전부 다. 게다가 보너스로 천국까지 가지요. 오늘 죽으면 어디 갑니까? 지금 천국에 도달하지요. 세상에 이런 혜택 종합선물 이런 혜택을 받았는데 감사 안 할 수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금식할 때 굶지 말고 뷔페에 가서 음식 먹으면서 금식하라 했어요. 제가. 음식 먹으면서. 너무 먹어서 또 살 뺀다고 필라댄스 한다고 너무 애 쓰지 마시고요. 음식 먹어가면서 매일같이 감사해야 돼요. 매일같이 금식해야 돼요. 금식에는 뭐다? 나는 죽어 마땅합니다. 라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뭐든지 감사함으로 하면 그게 바로 살아있는 금식입니다. 뭐 또 굶어가지고 굶은 건지, 살 뺀 건지 분간도 안 되게 마시고요.

자, 그렇다면 이제 제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뭐냐 하면 자, 금식했지요. 18절에. 그 다음에 8장 끝까지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거에요. ‘사랑의 옷’입니다. 사랑의 옷. 이거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지금 금식했잖아요. 잘 들어보세요. 금식했지요. 금식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죄인인 줄 알잖아요. 다윗처럼. 하나님의 성은 뭐로 채워진다? 만들어진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다. 은혜를 다른 말로 하면 이게 선물이에요. 하늘에서 온 택배에요.

아까 잉태치 않는다 할 때에 약속이 온다 했지요. 약속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선물로 구원받는 거예요. 금식하기 때문에 금식은 죄인이잖아요. 자기가 뭘 해도 죄인 되지요. 그러면 여기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사랑이에요. 사랑. 아까 질투에서 뭐가 나온다고 했습니까? 위쪽에서는 사랑, 한쪽에서는 저주, 사랑은 천국 만들고, 저주는 지옥 만들지요.

아무것도 못하는데 사랑이 덮어요. 이게 뭐냐 하면 사랑의 옷입니다. 사랑의 옷인데 사랑의 천. 천으로 덮잖아요. 덮을 때 주께서 천을 이렇게 덮어주시고 천을 이렇게 벗겨주시면서 우리가 죄인인 것을 확인해 주시고, 천이 올 때 어떻게 오느냐, 부사로 스르르. 스르르 옮기는 거예요.

제가 지금 이걸 왜 얇은 천으로 설명하느냐 하면 금식하는 본인이 손 댈 게 없어요. 사랑의 천이 덮이면 돼요. 사랑의 천이. 은혜의 천이 덮이는 거예요. 이건 성경을 찾아봐야 돼요. 룻기3장7절 봅시다. 제가 지금 사랑을 설명하는 겁니다.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뭐를 들고? 이불을 들고 가지요. 이불은 혼자 덮은 게 아니지요. 사랑의 대상이 있으면 한 이불을 덮는다 하지요. 이불 같이 덮지요.)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자, 룻이 있고 룻에게 무엇이 덮였습니까? 이불이 덮였지요.

그 이불은 누구 겁니까? 보아스 거예요. 보아스 남자 거예요. 룻은 여자입니다. 여자가 적극적으로 남자가 누워있는데 여자가 발끝을 이렇게 가가지고 남자 누워있는데 이불을 들추고 그 발부터 시작해서 여자가 남자 이불 밑으로 스윽 들어온 겁니다. 그 때 동작하는 부사가 뭐라고 했어요? 스르르 들어온 거예요.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지금 사랑을 설명하는 겁니다.

사랑은 홀로가 아니에요. 사랑은 질투한다는 것이 대상이 있다는 뜻인 것처럼 사랑은 홀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은 반드시 대상을 만들게 마련이에요. 사랑에 대상이 있습니다. 지금 구원을 설명하는데 제가 뭘 동원합니까? 사랑을 설명하는 거예요. 사랑을 설명하면서 사랑을 설명하기 전에 뭘 설명했습니까? 금식했지요.

금식은 뭐라 했습니까? 수모 당함이지요.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스라엘을 수모 당하게 했지요. 수모 당하게 해가지고 수모 당한 이스라엘을 이제는 주님 외에는 하나님 외에는 마음 둘 곳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이불을 만들고 주님과 같이 수모 당한 이스라엘을 수모 당했잖아요. 쫓겨났잖아요. 약속의 땅에서.

그것을 어디로 기어오게 합니까? 주께서 이미 마련된 성전, 하나님의 이불, 사랑의 이불에다가 룻처럼 들어오는 거예요. 그 다음에 7절 봅시다. 그의 발치에 누웠습니다. 밤중에 그가 놀라(화들짝 놀라서 보니까)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절이 이제 핵심이에요. 9절에 액센트 치고 해야 돼요.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그 다음에 여종을 어떻게 하라? 여종을 덮으소서. 오늘 제목을 하고 싶다. 덮으소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나는 무능하오니 나는 죄밖에 지을 게 없으니 주님의 사랑의 십자가에 피 흘린 그 사랑이 어떻게? 흠뻑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덮으소서. 이게 바로 주님이 우리의 남편이고, 우리 성도는 주님의 어디입니까? 신부잖아요. 신부.

이사야에 보면 이스라엘을 자기 신부라 했어요. 하나님이 스스로 내가 남편이 되어줄게. 남편이 됐는데 남편이 빈자리가 있어요. 빈자리. 남편이 됐는데 남편이 빈자리가 있어요. 빈자리. 남편만 있는데 지금 아내가 빈자리 되었잖아요.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거예요. 뭐로? 십자가로 채우는 거예요. 그냥 들어와! 들어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와! 들어와! 그냥 들어와! 구원 참 쉽지요잉.

이불만 들치고 들어가면 돼요.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금식하는 것. 내가 죄인인 걸 알아야 돼요. 그럴 때 덮으소서. 이는 당신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라. 금식을 하는 이유가 사랑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그래요. 나의 생존보다 더욱 귀한 게 나를 덮은 사랑, 천국의 은혜가 더 귀하기 때문에 밥을 먹는 금식을 하는 거예요. 옷을 입는 금식을 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금식을 하는 거예요.

뭘 해도 나한테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사랑에 이불 짝에 있는 하나의 자수요, 무늬라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성도라면 입에서 뭐가 튀어나오겠습니까? 오직 무슨 이야기? 사랑이야기만 나와요. 사랑이야기. 이 못난 나를 주께서 이렇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만 나와야 돼요. 지금 내 형편이 어떤 형편에 있던지 그 형편조차도 주님의 사랑에 이불보에요. 이불보. 이불보 또는 식탁보. 스르륵. 스르륵.

그래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보다도 시적으로 잘 표현된 게 있어가지고 영어로 한 번 써볼게요. 영어를 써서 문법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걸 해석하면서 오늘 방금 이야기한 것을 제가 해보겠습니다. Olivia Newton John(올리비아 뉴튼 존)의 노래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나에게 그걸 알려주세요, 하는 노래에요. 이게 뭐냐 하면 성령의 역사에요. 성령.

성령이 오게 되면 나는 육이고. 나는 하갈이란 육을 갖고 있고, 성령이 오게 되면 이미 내가 육이라는 것을 아는 자체가 너는 이미 잉태치 못한 니 어머니가 하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어디 있다 했어요? 하늘에 있지요. 하늘에 있는 우리 어머니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임한 거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저로 당신의 사랑을 알게 해주세요. 그 다음에 가사가, ‘If you don't then let me go’ 만약에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나를 그냥 떠나보내 주세요. 떠나서 뭐할 건데? 떠나서 그 다음 가사가 재미있어요. 떠나면 바이 바이 한다는 뜻이 아니고 떠나면 그러면 That keep me loving you. 떠난 상태에서 당신을 사랑할게요.

당신이 나를 밀어내면 잘 먹고 잘 살아라. 이게 아니고 멀찍이 보면서 나는 끝까지 당신을 계속 사랑할래요. 중간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길어도 써야겠어요. “Before too long I buit my world around you”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당신 주변에 내 세계를 만들어왔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주님 곁에 안 떠나기 위해서 주님 근처를 어슬렁거렸습니다. 라는 뜻이에요.

당신 주변에 당신 세계를, 전에는 내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당신 중심으로 바뀌어서 늘 어디에 계시더라도 동쪽, 서쪽 어디에 있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는 식으로 나는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기도를 해요. “And I prayed you'd love enough of me to say” 이건 뭐냐 하면 그리고 나는 당신이 내 곁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도록 간절히 나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보고 나가라! 떠나라! 내 곁에 있지 마! 라고 하지는 말아주세요. 그것이 기도의 제목입니다. 주님이여! 주님이 늘 보이는 곳에 있게 하옵소서. 이게 바로 주님과 이렇게 있는 이것을 가지고 두자로 성전이에요. 그게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이게 예루살렘이에요. 이게 성전이에요. 이게 성도의 삶입니다.

성도는 나를 위해 살지 않아요. 내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의 천이 어떻게 왔다고요? 스르륵. 아주 다칠까 싶어서 아주 부드럽게. 부드럽게 일방적으로 그냥 덮어버려요. 부드럽게 사랑이 와서 덮어버립니다.

그래놓고 이제는 나 혼자 사는 삶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미 성도는 이미 죽기 전부터 누구하고 살아요? 죽기 전부터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있어요. 주님과 함께 있어서 내게 있는 모든 재산과 집에 있는 어떤 것도 이 모든 것도 누구의 것입니까? 주께서 그냥 주신 거예요. 심지어 딸, 자식, 아들, 모든 것이 주님의 구미에 맞추어서 주님 중심으로 준 거예요.

내게 좋아라고 자식, 자손을 주신 게 아니고 주님이 주인공이니까 주님 적절하게 주님이 필요해서 주신 것들로 채워지는 겁니다. 그 때 주님과 우리 사이는 무슨 사이 밖에 없습니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은 질투하니까 우리는 어떤 관계입니까. 오직 사랑의 관계 이외에는 입에서 나올 게 없어요. 이게 바로 스가랴8장에 예언되어있고요, 이 예언에 의해서 바로 신약에 성전이, 성령이 오게 되면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겁니다.

자, 스가랴8장20절, 21절에 보게 되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만군의 여호와 있지요. 이 여호와가 신약에 오면 주라고 이야기하고, 이 주가 사도행전2장에 보면 오순절 성령이 있고 난 뒤에 여호와가 누구냐, 주님이 여호와에요. 예수님이 여호와에요. 주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 부르자, 하잖아요. 그것이 신약에 오면 예수님 이름 부르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줬다면 성도라면 나도, 나도, 이렇게 해서 그 사랑의 이불 밑으로 다 들어오는 겁니다. 남편도 하나요, 신부를 다수라 하지 말고, 신부도 합치면 결국 하나에요. 하나의 신부. 하나의 남편. 전부 다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 사랑의 관계 때문에 행함을 따지겠어요? 안 따지겠어요? 안 따지지요. 검열하겠어요? 검열 안 합니다. 책망하지 않습니다. 왜? 뭘 해도 죄니까. 뭘 해도 착하니까가 아니고 뭘 해도 죄니까. 거기에 대해서 묻지 않아요.

성경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했잖아요. 뭘 해도 죄이기 때문에 항상 죄인을 불러서 예수님의 자기의 사랑으로 죄를 덮어버립니다. 시편103편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동에서 서에서 먼 것같이 니 죄를 어떻게 하겠다? 아예 안 보이는 곳으로 아예 옮겨버린 거예요. 내가 했습니까? 교회 목사가 했습니까? 오직 주님이 하시지요. 기도는 엄마가 한 게 아니고 주님만 하신 거예요.

그 주님의 사랑은 밥 좀 못 먹고, 물 좀 못 마셔도 상관없어요. 충분하게 능가합니다. 그게 바로 죽었다가 살아나고 삼일의 틈을 두고 죽은 것도 살아나고 없는 곳에 있게 하시는 능력은 그것이 바로 사랑의 능력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전에서 자녀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잉태하고 예수님이 생산한 백성으로서 오직 사랑만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안양20210916B슥8장2절(덮는 사랑)-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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