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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3 11:41:25 조회 : 73         
22겨울수련회(여호수아1-9강) 다시올림, 다운됨 이름 : 구득영(IP:183.102.224.162)
지난 번에 올린 아래에 있는 첨가파일이, 제목이 영어가 아니라서 다운이 안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됩니다. 1강에서 9강 전부다 입니다. 그리고 1강은 일부 수정된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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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여호수아 1강) 없는 땅 - 갈렙과 레위지파

강의 이근호, 정리 한윤범

먼저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호수아서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 안에서 주께서 어떤 일을 하셨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성도임을,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저희들이 모르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땅 뺏기와 땅 분배, 그리고 창조능력 !!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보게 되면, '땅 분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땅 분배 이전에 땅 뺏기가 먼저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땅이 있고, 여기에서 땅 분배가 되려면, 여기에 무엇이 개입되는고 하면, 창조 능력이 있어야 이게 분배가 된다는 말이죠. 이 능력은 창세기 1장 능력의 연속인데, 즉 없는 것에서 있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없는 것에서 있게 하기 위해서, 현재의 있음을 없애버린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있어? - 없습니다. - 없지? - 예, 없습니다 - 그러면 내가 있게 해줄게" 라는 것인데, 이것은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게 아니고, 먼저 있는 것을 없애버리고, 그 없는 것을 있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럴 때 여기에 창조능력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냥 능력이 주어지는 게 아니고, 이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이죠.

그렇게 하나님이 결합해서 있게 되면, 그 이전에는 "내가 있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자기가 있는 게 아니고, 있음에 대한 그 주인공의 표현이 "주님이 계신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계신 땅은 어떤 땅이냐 하면, 그것이 주의 땅이 되고, 그렇게 주의 땅이 될 때만 천국이 된다는 말이죠.

여기 칠판에 이렇게 이스라엘의 지도가 있는데, 이게 지상의 땅이라는 겁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거주하고 있는 땅이란 말이죠. 이 땅에 인간들이 살고 있는데, 그런데 인간들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있으면, 그게 천국이 될 수 없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있는 인간들을 무엇으로 만든다고 했습니까? 있는 것들을 없게 하시는데, 그렇게 없게 하시면서, 그 이동경로를 따라서 이 땅이 무엇이 되게 하시는고 하면, 이것이 주의 땅, 즉 천국이 된다는 겁니다. 땅의 인간들을 없게 만들고, 그 없는 곳에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그 땅은 하나님이 계신 땅이 되면서 천국이 되는데, 이것이 창조의 능력이라는 말이죠.

* 언약궤의 이동경로 !!

이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 알기 쉬운 표현은, 하나님의 언약궤, 즉 하나님의 이름이 함께 있는 장소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궤가 어떻게 꼬불꼬불 이동을 합니까? 언약궤가 이동함에 따라서 "이 땅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땅이 된다" 라고 표시를 해준다는 말이죠.

그래서 알기 쉬운 표시는, 첫째로 '언약궤의 이동경로'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언약궤의 이동경로를 보면, 그게 민수기 14장 39절에서 45절, 또한 신명기 1장 41절에서 46절인데, 즉 "이 땅은 너희들이 살기 이전에 언약궤가 거기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민 14:39)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고하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민 14:40)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 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민 14:41) 모세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민 14:42)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민 14:43)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민 14:44)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민 14:45) 아말렉인과 산지에 거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쳐서 파하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 하나님의 이름과 언약궤 !!

'언약궤' 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움직인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나무로 만든 상자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궤 위에서만 만나주시는데, 다른 곳에서는 결코 만나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 아무리 이스라엘이라도 안 되는데, 그 언약궤가 있는 곳이 바로 성막이라는 말이죠. 나중에 이 성막이 있는 곳이 무엇이 됩니까? 성전이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 성전이 불타버린다고 하는 것은, "나는 너희들과 더 이상 같이 있기 싫다는" 라는 뜻이라는 겁니다. "언약궤가 있다" 라고, 같은 의미로서 "성전이 있다" 라고 하다가, 그 성전이 없어진다는 것은, 이 땅에서 주께서 잠시 있다가, "나는 이 땅에 너희와 같이 안 살아. 다른 땅에 갈 거야" 라고, 그렇게 떠나는 표시라는 말이죠.

이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데, 그런데 이게 나중에는 상자로 이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몸, 즉 인간의 죄 있는 모습으로 언약완성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와서 잠시 33년을 살다가, "나는 너희와 안 논다" 라고 해서 가버리니, 베드로가 "어어,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하는데, 그러자 "기다려봐. 다시 올게" 라고 해서, 가시고 난 다음에 성령이 오게 되면,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 것을 신약적으로 곧 바로 설명하게 되면 너무 급작스러우니까, 구약 때에는 땅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매우 친절한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2차대전 영화를 보면, 독일군들이 날카로운 제복을 입고 작전 모형판에 작대기로 탱크를 밀고 잠수함도 말고 하는데, 그렇게 해도 결국은 연합군이 이기지만 말이죠.

바로 그러한 모형판이 이 구약인데, 즉 구약은 모형이라는 겁니다. 그런 모형판에서 언약궤를 들이미는데, 그렇게 들이밀 때 아직까지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게 되는데, 그 하나님의 이름이 상자와 관련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 나무상자, 그러나?

그런데 나무상자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물체인데, 그렇지요? 그러면 이 물체라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평소에 다루는 물건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나무상자를 자기가 다룰 수 있다고 여기고, 겁대가리도 없이 누가 설칩니까? 웃사가 함부로 덤벼들다가 어떻게 됩니까? 이 인간이 그만 하나님의 진노로 죽어버린다는 말이죠.

(삼하 6:6)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삼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이것은 마치 무엇과도 같은고 하니,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창조자인데, 그런데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도 같다는 겁니다. 이 상자의 크기가 그렇게 크지가 않는데, 가로 1.5규빗(67.5센티), 세로 2규빗(112.5센티), 높이 1.5규빗(67.5센티)의 언약궤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말이죠. 그러면 저쪽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칼이 있고 활이 있고 말이 있다는 겁니다.

* 십자가란, '이미 이겼다' !!

반면에 이쪽에는 칼과 활과 말이 아니고, 나무상자인 언약궤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것은 "붙어서 싸워라" 라는 것인데, 하지만 이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신약에서는 "십자가로 이겨라" 라는 말은 없고, 다만 "십자가로 이겼음을 확인하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십자가는 무기가 아닌데, 그런데 그 십자가에 졌다고 하는 것은, 이제 모든 인간은 어떤 무기를 제공할 시점을 이미 넘어섰다고 하는 의미라는 말이죠. 즉 "무기를 줘봐야 안 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이미 다 이기고 난 다음에, "너희들이 무엇으로 이겼지?" 라고 하면, '십', '자', '가'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공포영화를 보면, 이 십자가를 가지고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해서 애꿎은 아이의 모가지가 뒤로 돌아가고 하는데, 그렇지요? 그러면 진짜 복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귀신이 들려서 모가지가 팍팍 돌아가고 할 때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 현장에서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하면서 고함을 지를 필요가 없고, "인간아, 그냥 살다가 죽어라"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승리라는 말이죠. "귀신이 들렸어? 그러면 살다가 그냥 죽어라" 라고 하면 되는데, 그러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공포의 귀신영화가 흥행이 안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데, 그래서 거기에 퇴마사 신부가 등장해서, 그것도 라틴어로 '상투스' 라고 글을 쓰고 하는데, 아니 무슨 귀신이 라틴어에 기가 죽고 합니까? 라틴어는 하나의 언어인데, 귀신은 헬라어나 히브리어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데, 교인들이나 기가 죽지 말이죠(ㅋㅋ).

* 언어자체에는 진리가 없어 !!

그것은 옛날의 언어인데, 언어학은 백날 해봐야 진리가 나오지 않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히브리어, 헬라어를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는데, 왜냐하면 언어학은 기호학에 포위가 되어있다는 말이죠. 기호학은 몸짓과 손짓도 포함이 되어있는데, 몸짓과 손짓을 통해서 표시되는 기호, 그런 기호 이상의 의미를 기호를 통해서 드러내는 겁니다. 그게 기호학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어떤 문자 에이(A), 비(B), 씨(C), 혹은 기억(ㄱ), 니은(ㄴ), 디귿(ㄷ), 이것은 그냥 나타나는 표상이고, 그 뒤에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기호학에서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언어학에는 없지만 기호학에서는 이것을 '이중분절' 이라고 하는데, 즉 "표현하는 것과 실체가 다르다" 라는 것이죠. 표현과 내용이 완전히 딴 세상인데, 그러니 원어에 속아넘어가지 말라는 것이죠.

* 언약궤는 하나의 표상 !!

여기서 언약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호인데, 즉 하나의 사물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타나는 표상이 없이는 내용이 나타나지 않으니 말이죠. 하나님이 그냥 하나님이 되면 인간들이 상상해서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른 민족들과는 달리 언약궤를 주셨다는 겁니다. 언약궤, 즉 표상을 주셨다는 말이죠.

하지만 인간들은 하나님의 이런 숨어있는 의미를 전혀 모르게 때문에, 이 언약궤를 인간들이 기존에 자기들이 알고 있던 기호로 여기고 넙죽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것이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죠. 그래서 거기에 그만 빠지게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들이 자기가 고대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 이 기호를 사용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까 했는데, 있는 것, 즉 인간들은 자기에게 의미를 얻기 위해서 기호를 사용하지만, 그런데 있는 것을 주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있는 것을 없게 하신다는 말이죠.

* 네가 먼저 죽어라 !!

그래서 언약궤를 주어도 인간들은 언약궤의 의미를 모르는데, 왜냐하면 "아는 네가 제거되어야 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주어도 인간들은 그 의미를 전혀 모르는데, 십자가를 믿는 자기가 제거되어야 하기 때문에 말이죠. 그러니 십자가를 가지고 "야, 마귀가 물러갔다" 라고 퇴마사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냥 죽어도 좋아. 괜찮아" 라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제대로 의미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죽는 욕망 외에 다른 욕망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죠. 즉 "내가 이제는 여기에서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 지금 떠나도 상관없어" 라고 하는, 이것이 바로 십자가가 주는 기쁨이라는 겁니다. 초반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기쁘지 않다는 분위기인데(ㅋㅋ), 그래도 기쁜 사람이 있으면 민수기 14장 44절을 읽어보세요.

(민 14:44)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항상 언약궤인데,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진영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 다음에는 신명기 1장을 보겠는데, 41절에서 46절입니다.

(신 1:41)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병기를 띠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신 1: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신 1:43) 내가 너희에게 고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가매
(신 1:44) 그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를 마주 나와서 벌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미친지라
(신 1:45) 너희가 돌아와서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신 1:46)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날 동안 거하였었나니 곧 너희가 그 곳에 거하던 날 수대로니라

* 올라가도 소용이 없어 !!

이게 무슨 내용인고 하면, 언약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되는데, 그런데 정탐꾼들이 정탐을 한 결과물이 "우리는 상대가 되지 않아서 올라가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진노를 하시는데, 그러자 백성들이 다시 가려고 했다는 말이죠. 그러나 모세는 말렸는데, 왜냐하면 백성들이 언약궤의 올라가는 취지를 모르기 때문인데, 그러면 가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도 그들은 "땅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들어가야 한다" 라고 해서 갔다가, 완전히 패배를 당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기 45절에 보면 통곡을 하는데, 그러자 모세가 "너희들이 통곡해봐야 하나님이 듣지 않는다" 라고 하는데, 달리 말하면, "주인공이 올라가야지, 주인공이 아닌 너희들이 올라가서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 라는 겁니다.

"땅이 없어? 땅을 줄게" 라고 하는 것은 화천대유나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하는 짓이고, 물론 폭리를 취하면서 말이죠. 그들이 지금 광야에 있으면서, 자기들이 살아갈 땅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는 것이 아닌데, 왜냐하면 거기는 반드시 하나님이 거주할만한 땅이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 갈렙의 이동경로 !!

이 언약궤의 취지를 잘 드러내는 방법이 있고, 그 알기 쉬운 방법을 '언약궤의 이동경로' 라고 했는데 말이죠. 그러면 이번에는 알기 어려운 방법을 해보자는 것이죠. 그 알기 어려운 방법은, 갈렙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겁니다. 여기서 민수기 26장 65절을 보겠습니다.

(민 26:65)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에 "갈렙과 여호수아를 빼놓고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말이죠. 갈렙과 여호수아를 빼놓고 나머지는 줄줄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갈렙과 여호수아가 무엇과 비교되느냐 하면, 이것은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약속의 땅에 대한 지분을 가지게 된다" 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지분이 없는데, 홍해에서 건너온 사람들 중에서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민수기 26장 62절을 보면, 이것도 중요해서 우리가 찾아봐야 하는데, 방금 민수기 26장 65절을 이야기했는데, 그 앞에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민 26:62) 레위인의 일 개월 이상으로 계수함을 입은 모든 남자가 이만 삼천 명이었더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준 기업이 없음이었더라

*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 !!

갈렙과 레위 지파인데, 여기서 레위 지파가 빠지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빠져나옴으로서 이스라엘이 열 두 지파가 된다는 겁니다. 이 레위 지파의 특징은 땅을 분배받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런데 이 레위 지파를 숫자로 했을 때, 그게 태어난 지가 몇 개월이라고 했습니까? 1개월이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면 이 레위 지파 1개월 속에는 무엇이 없느냐 하면, "홍해를 건너왔다" 라고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이미 1개월이 된 사람은 땅을 분배받지 못하는데, 그러면 여기서 땅을 분배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 밖에 없습니까? 결국 갈렙과 여호수아 밖에 없다는 겁니다.

* 여호수아가 아닌, 갈렙을 따라 우르르 !!

그렇다면 왜 여호수아는 갈렙의 이동경로에 포함이 안 되느냐 하면, 여호수아는 모세의 약속을 대변하기 때문에, 이 여호수아의 땅은 '집단적 단위'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벌써 점점 더 어려워지려고 하는데 말이죠. 아무튼 여호수아의 경우에는 그게 '집단적' 이라는 겁니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집단적 단위를 표시하는 반면에, 갈렙은 개인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집단은 잠시 멈추고, "갈렙이라는 개인이 어떻게 땅을 차지하는가?" 라고 하는, 그 기적적인 모습을 살펴보자는 겁니다. 그런 기적적인 모습을 보게 되면, 그 나머지는 우르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그러면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땅을 분배받을 자격은 없지만 여호수아가 책임을 지고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주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하게 되면, 그들은 갈렙처럼 땅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자격이 없어도 말이죠. 상당히 복잡하지요?

그리고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못하는데, 왜 땅을 분배받지 못합니까? 그러면서도 땅을 분배받지 못하는 레위 지파와 갈렙을 동격으로 취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한 쪽은 땅이 있고 다른 쪽은 땅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레위 지파와 갈렙과 동일하냐 하면, 하나님의 땅을 차지하게 되면, 그러면 이 땅 자체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다는 말이죠. 아직은 기억이 나죠?

* 아하, 상어가 먹었구나 !!

예를 들어서, 사자, 상어, 기린, 이 3마리의 짐승 앞에 어떤 먹을거리가, 즉 먹이 띠가 있다는 겁니다. 우선 상어에게 먹으라고 하면, 그러면 상어가 먹을 것 가운데는 채소도 있고 과일도 있는데, 그리고 여기에 살아있는 물고기도 있을 게 아닙니까? 그러면 상어가 왔다가 가면 무슨 띠만 비어있을까요? 물고기가 있는 것만 빠질 것이란 말이죠. 그렇지요?

왜냐하면 상어에게 먹으라고 하면, 상어는 채소나 과일은 먹지 않고, 물고기만 먹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빠진다는 말이죠. 그렇게 빠진 것을 다른 사람들 보면, 이것은 사자가 먹은 것이 아니고, 기린이 먹은 것이 아니고, 그 빠진 것을 봐서 "이것은 상어가 먹었다" 라고 판정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선 스펙트럼' 이라고 하는데, 물리학에서 수소가 빠지면 광자가 나오고 그 빈자리가 생기게 되는데, 그렇게 선 스펙트럼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빠진 부분을 살펴봄으로서, 그 원소가 무슨 원소인지 파악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 빠진 부분을 기억하라 !!

이 빠진 부분을 땅에서 누가 들어가느냐 하면, 레위 지파가 들어간다는 말이죠. 이 레위 지파는 48개 성읍을 마치 지점처럼 해서, 모든 지파에 그렇게 빠진 부분을 넣는다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이 빠진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면, 너희는 이 땅에 살 자격이 없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레위 지파가 땅을 가질 수가 없다고 했는데, 즉 그들은 자기 고유의 땅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각 지파마다 누가 뜯어먹은 것처럼 이런 띠를 집어넣게 되면, "우리는 땅이 없는 것이 너무나 마땅한데, 그런데 레위 지파의 은혜로 우리는 땅을 얻게 되었다" 라고, 그렇게 빠진 부분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레위 지파는 자기 땅이 없는데, 즉 기업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기업이 없는데 준다는 말이죠. 그러면 없음에서 있음이 되면서, 그 원천은 "이 땅을 너희가 차지할 수 없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레위 지파로 인한 땅 가짐으로 표현을 해준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레위 지파가 동급이 되는 갈렙은 어떻습니까? 그가 여호수아와 같이 정탐할 때 "그들이 막강한 군대를 갖고 있더라도 우리에게는 상자가 있다. 이 언약궤가 자기 자리를 찾는데 있어서, 그것은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라고 나왔다는 말이죠. 즉 "이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거주하실 땅이기 때문에 우리는 능히 들어간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믿은 사람은 갈렙과 여호수아 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뭐냐 하면, "현재에 있는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죠. 오히려 구원을 이상하게 여겨야 하는데, "어떻게 내가 천국을 가지? 말도 안 돼" 라고 해야한다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의 사는 모습을 보세요. 그게 과연 천국에 갈 사람의 모습이냐는 것이죠(ㅋㅋ).

* 이스라엘은 이빨이 빠진 채로 !!

그래서 이 띠가 이렇게 되는데, 이들 레위 지파는 토지가 없기 때문에 십일조를 줘야 하는데,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 주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들의 먹거리를 챙기기에 바빠서 말이죠. 그렇게 주지 않으니 어떻게 됩니까? 이 레위 지파가 머물러 살지 못하고, 그만 떠돌아다니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가사의 섞은 고기를 찾아서 산등성이를 헤매는 하이에나와도 같다는 말이죠. 배가 고프니까 성읍에서 빠지게 되는데, 그렇게 빠지니 불연속성이 되어야 할 띠가 어떻게 됩니까? 그만 연속성이 되는데, 그렇게 되니 그들은 자신들을 통합된 나라처럼 여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통합된 이스라엘, 하지만 그것은 가짜 이스라엘이라는 말이죠. 통합된 교회, 통합된 이스라엘은 가짜라는 겁니다. 이빨이 숭숭 다 빠져야 한다는 말이죠. 그것은 십자가 마을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빨이 숭숭 빠진 사람들이 모여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멘!)

그렇게 이빨이 다 빠져서 "예수님이 참 좋아요. 주님의 나라가 좋아요" 라고 하다가, 갑자기 "십자가 마을이 좋아요. 우리교회가 좋아요" 라고 하게 되면, 그것은 과거 이스라엘이 범죄했던 것과 동일한 차원이라는 겁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 다시 하면 !!

다시 처음부터 하면, '땅 뺏기' 라고 하는 것은, 천지창조의 능력이 제공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힘이 있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서 쫓아내고 뺏고 하는, 그런 것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 옆에 있는 이 땅을 우리가 차지하자" 라는 식으로 여리고 성 함락작전을 펼치고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죠.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천대유인데, 즉 예배당이라는 부동산을 계산해서 확장시키는 짓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교육관을 짓고 주차장을 넓히고 해서 구원된 교회는 단 한 군데도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공을 들이면, 거기에 정신을 다 빼앗기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아무튼 선 스펙트럼의 그 빠진 부분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 그게 나중에 레위 지파가 빠져버렸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고 이방나라의 룻과 같은 여자를 보내서, 다시금 메운다는 말이죠. 그때는 땅을 파먹는 것이 아니고 토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토한다는 것은, "진정한 이스라엘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빼거나 토하면서, 여기에 생소한 것들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 룻과 같은 이방여인이 토해진다는 겁니다. 모압 여인은 이방 여인이기에 이스라엘 땅을 차지하지 못하는데, 그런데 그 룻을 통해서 누가 나오느냐 하면, 이 룻이 바로 다윗의 증조모라는 말이죠.

하나님께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시는데, 그러면 그 왕은 땅을 차지한 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없음에서 왕이 나온다는 말이죠.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분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땅에 존재하는 왕은 그 행태가 과연 어떠하겠느냐는 말이죠.

* 빌라도의 꼬라지 !!

지난주에 설교를 했지만, 본디오 빌라도 말하는 폼새를 보라는 겁니다. "나는 너를 풀어줄 수도 있고 잡아맬 수도 있다" 라고 하는데, 자기에게 권세가 있다고 나온다는 말이죠. 여기서 주님은 그 있음에 주목하는데, "나에게 권세가 있는데, 너를 풀어주거나 죽일 수도 있다" 라고 하면서, 빌라도가 있음을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그럴 때 주님은 바로 그 있음을 공격하는데, 즉 "내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면 너는 권세가 없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즉 "너희들은 자신이 소유한 있음으로 살지만, 나는 이 땅에 없는 그 없음으로 지금 여기에 등장한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라는 것인데, 즉 없음이 있음을 이긴다는 겁니다.

* 갈렙의 중요성 !!

갈렙을 계속해서 따라가 보겠습니다. 갈렙이 홍해를 나올 때 나이가 40살이었는데, 여호수아서에 등장할 때는 85세였다는 말이죠. 그때에 가장 정복하기 힘든 아낙 자손의 땅을 달라고 정식으로 여호수아에게 요청을 한다는 겁니다. 그게 모세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약속을 이루려고 한다는 말이죠.

이 갈렙이 가진 땅의 중요성은, 여호수아서가 끝나고 사사기에서, 갈렙의 이 땅이 이스라엘을 이어지게 하는 중추적 핵을 장식한다는 겁니다. 갈렙의 가족이 첫 사사가 되는데, 사사기 1장 20절을 보면, "무리가 모세의 명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말이죠.

(삿 1:20) 무리가 모세의 명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그리고 첫 번째 사사가 옷니엘인데, 1장 12절에 보면,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라고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악사를 알지요? 악사 운전자보험만 압니까? (ㅋㅋ) 이 악사가 갈렙의 딸이고, 드빌 거민을 쳐부수고 이 갈렙의 딸과 결혼한 사람이 옷니엘이라는 말이죠

(삿 1:12)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그러니 갈렙이 정통성을 가지게 되는데, 즉 이스라엘 내부의 연속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은 다른 지파들이 사사에게 의존적이 되는 시대에 돌입했음을 보여주는데, 물론 겉으로는 "우리 서로 내 땅과 네 땅을 간섭하지 말자" 라고 해놓고는, 실제로 일이 터지면 사사에게 부탁을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사사가 없으면 자기 지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 사사가 등장하는 방식이 바로 "기업, 혹은 지분이 없는 레위 지파가 실제로 이스라엘을 지켜준다" 라고 하는, 언약적인 내용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란 것이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 레위 지파도 자기들의 본연의 모습을 그만 상실해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 언약궤와 갈렙, 그리고 시간과 공간 !!

이제부터 조금만 더 어렵게 해보겠습니다. 방금 제가 '공간의 이동' 이라고 했는데, 아닌가요? (ㅋㅋ) 언약궤의 공간이동으로, 즉 하나님의 이름이 언약궤와 함께 있음으로서 하나님이 함께 있음을, 그렇게 언약궤가 드러나는 방법도 있고, 그 다음에는 갈렙을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모세의 자리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이 여호수아는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호수아는 전체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이 여호수아로부터 각 지파들은 지분을 부여받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확연하게 윤곽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언약궤와 갈렙인데, 여기에서 언약궤는 하나님이 되고 갈렙은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동행했을 때, 그때 비로소 무엇이 생기느냐 하면, 여기서 '공간' 이라는 것이 주어진다는 말이죠.

방금 공간을 이야기했는데, 그러면 시간은 어떻게 흘러갑니까? 쉽게 "언제 이 땅은 모두 이스라엘의 차지가 됩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땐 시간이 없고, 그러면 시간은 언제 생기느냐 하면, 속도가 공간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 시간이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높은 차원에 있다는 말이죠. 예를 들면, 여기에 어떤 면적이 있다면, 이것을 1차원이라고 합시다. 다른 차원을 2차원이라고 하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짚었다면, 그러면 여기에 있는 1차원에 사는 사람은 손가락과 접점 표시만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 하나님에게 시간은 없고, 다만 경험할 뿐 !!

그러면 이게 한 사람의 손이라는 것은 어느 차원에 가야 합니까? 더 높은 차원에 가야 알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더 높은 차원에 있지 않은 사람은, 여기에 있는 이 손가락에서 가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 이 사람은 시간이 걸릴 게 없는데, 왜냐하면 한 사람이라는 말이죠. 자기가 눌렀는데 무슨 시간이 걸리고 하느냐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시간은 없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동행을 하다보니까, 하나님도 시간의 저촉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원래 하나님은 알파이고 오메가이기 때문에, 그 안에 시작과 끝을 모두 다 갖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인간에게 필요해서 시간을 하나님도 경험하신다는 말이죠.

이것을 신약성경인 골로새서 3장에서 "이미 너는 죽었고, 네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있다" 라고 하는데, 또한 "이 땅에서는 이미 죽었고 하늘에서는 우리가 살았다" 라고 했을 때, 그것은 시간적으로 "앞으로 몇 년을 더 살까?" 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땅에 있으나 하늘에 있으나, 항상 예수 안의 차원에서는 시간의 흐름은 없다" 라는 겁니다.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그러니 시간은 땅이라는 공간 때문에 느끼게 되고 겪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나이가 얼마나 되십니까? 팔십이십니까? 아이고, 오래 살았네요"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오래 산 것과 영생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태어나자마자 죽어도 영생이라는 말이죠.

인간의 땅에서 그리스도 몸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영생이 된다는 겁니다. "천사님, 올해로 몇 살이 되었습니까? 생신이 언제입니까?" 라고 한다면,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천사에게는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것이 아닌데, 천사는 시간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시간이 있는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임시적인 연극무대라고 보시면 된다는 겁니다. 연극이 끝난 후에는, 한 때의 꿈과 같은 것이란 말이죠. 연극이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 주님께서 우리를 교체하려고, 주님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을 주기 위해서 다시 우리를 이 땅에서 살게 하셨구나"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 성도에게도 시간은 없어 !!

그래서 방금 이야기한 차원이 뭐냐 하면, 이것을 '성도' 라고 한다는 말이죠. 성도는 시간이 없는데, 그것을 '성령 안'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십자가 안, 예수 안, 성령 안이 되면, 위에서 보면 다 십자가인데, 그런데 성도가 아니고 인간일 경우에는 "십자가는 지나갔고, 이제부터는 부활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죠. 전부가 다 십자가인데 말이죠.

그 어디에도 모두가 다 십자가인데, 그런데 십자가를 건너뛰고 십자가를 지나오고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십자가가 무슨 구경거리입니까?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엇으로 여겼느냐 하면, 구경거리로, 흥밋거리로 보았다는 겁니다. "어디 좀 보자. 어떤 인간인지 보자" 라고 말이죠.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을 구경거리로 여긴다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니고, 오히려 자기 자신이 예수님에게 구경거리가 된다는 겁니다. "오늘도 내가 얼마나 개판 같이 사는지 보자. 얼마나 시간 스케줄에 쫓기고 있는지 보자" 라는 것인데, 하지만 스케줄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의미가 없다는 말이죠.

* 에잇, 귤을 맞고 죽어라 !!

이것은 마치 '장고' 라는 영화에 나오는 공동묘지와도 같다는 겁니다. 거기서 장고가 기관총을 들고 쏘는데, 무법자들을 향하여 말이죠. 이것을 아는 사람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스데반 집사라는 겁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이려고 돌을 들고 오니까, 그것이 스데반 집사에게는 돌이 아니라 귤로 보인다는 말이죠. 그들은 "에잇, 귤을 맞고 죽어라" 라고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이미 죽은 인간이 이미 산 인간 보고 죽으라고 돌을 던지는 것인데, 그래서 스데반 집사님이 예수님에게 고자질을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 저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떻게 좀 용서해주세요" 라고 말이죠. 인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옴으로서 이 세상 차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 어떤 인물로 변환되어 들어가는가?

이렇게 될 때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의미가 없으면 공간도 의미가 없고, 분배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죠. 땅을 가져가 봐야 나중에 모두 다 빼앗긴다는 겁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시간도 공간도 아니고, 인간이 성도가 되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땅 분배는 "어떤 인물로 변환되어 들어가는가?" 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즉 천국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지금의 모습이 아닌 다른 인간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죠. 다른 인간으로 말이죠.

그 다른 인간이 바로 언약궤의 취지를 아는 인간, 다른 말로 하면 레위 지파가 존재하는 이유를 아는 인간인데, 즉 대신해서 죽음을 다루는 지파가 땅도 가지지 못하고 맨날 제사만 드리는 일을 해야하는 그 중요함, 그 취지를 이해하고, 그것이 하나의 엔진인데, 날마다 생명이 나오는 그 엔진부위가 바로 레위 지파라는 겁니다.

이런 레위 지파의 취지를 아는 사람이 성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아는 경우에만 그 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유지할 수가 없는데, 신명기 8장에 보면 그것이 나온다는 겁니다. 여호수아가 들어가지 않고, 계속해서 주변을 돌아보는 이유가 다 있다는 말이죠.

여기서 신명기 8장을 보겠는데, 17절부터 20절입니다.

(신 8: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신 8:20)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 땅이 중요한가? 언약이 중요한가?

사람들은 땅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면, 그것이 언약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땅을 얻고 난 뒤에 땅을 버리겠습니까? 언약을 버리겠습니까? 자기들이 노린 것이 땅이고, 그리고 자기들의 생계와 생존에 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광야를 통해서 알았다는 말이죠. 광야를 통해서 땅의 중요성을 알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땅이 자기의 생존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안 되고,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언약이 나보다 더 세고 나보다 더 중요하다"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언약 안에는 누가 들어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시는 약속, 즉 "언약성취가 내 꿈의 성취보다도 더 우선이다" 라는 것을, 그것도 광야에서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들은 고생을 했고 그리고 쫓겨났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냥 고생만 했다는 말이죠. 세상적인 철학 계통에서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고생해도 낙이 오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겁니다. 그 책임을 누가 집니까? 죽도록 고생을 해도 마지막에 낙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 말이죠.

저기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 가서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고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서 한국에서 돈을 끌어다가 학교를 세워주고, 병원을 세워주고, 그리고 고아원을 세워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힘들게 사서 고생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백날 해봤자 "고생한 나는 제거가 되어야 한다" 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고생을 하면 할수록 고생한 자기가 더욱 소중해져 버린다는 말이죠.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덜 소중할 텐데, 그렇게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자기를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 고생도, 집단적 고생 !!

그런데 약속의 땅에 가면서, 아까 여호수아가 '집단의 단위' 라고 했는데, 여기서 감사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고생을 해도 혼자서 다 하지 않고 무엇으로 고생을 한다는 겁니까? 하나님께서는 집단적으로 고생을 하게 하신다는 말이죠. 그렇게 집단적으로 고생하게 되면서, "어느 누가 고생을 더 했다" 라는 이야기가 안 나오도록 조치를 해버린다는 겁니다.

요단 강을 건너갈 때도 제사장을 앞장세우는데, 제사장은 무엇을 들고 있습니까? 언약궤를 앞장세운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언약궤 앞에서는 모든 인간은 동일하게 취급을 당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왕자표' 라고 하고 싶은데, 그 뒤에 뭐가 나옵니까? '왕자표 크레파스' 라는 말이죠(ㅋㅋ). 크레파스가 아무리 다양해도, 키가 작은 사람, 키가 큰 사람, 날씬한 사람, 뚱뚱한 사람, 그렇게 있더라도 전부가 한 통에 담겨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통에 들어있지 않은 밑바닥에는 누가 있느냐 하면, 그게 바로 제사장들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레위 지파가 받쳐줘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일뿐이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 레위 지파를 통해서 언약이 계속해서 발생되면, "그 조건 하에서만 너희들은 살아있다" 라고 하게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유지하는 조건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조건은 무엇과 대비가 되느냐 하면, 자기가 생존할 조건과 대비가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먹고 살아가면 됩니까?" 라고, 자기 생존을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의 이름이 이 땅에 계속 살아있다고 하는 조건은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죠.

* 주인공은 '모세언약' !!

그렇게 왕자표 크레파스이기 때문에, 이것을 인도하는 자는 이제 여호수아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무엇과 중첩이 되어있습니까? 모세언약에 중첩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여호수아는 하나의 기호인데, 즉 하나의 표현에 지나지 않고, 진짜 실제내용은 모세언약이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모세는 비록 죽었지만, 언약은 모세를 죽임으로서 "언약은 인간에게 구애를 받지 않는다" 라는 것을 모세를 통해서 확연히 드러냈다는 말이죠. 그래서 "모세가 중요하냐? 언약이 중요하냐?" 라고 했을 때, "언약이 더 중요합니다" 라는 취지를 크레파스 통에 들어있는 자들은 다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 땅은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서 들어오고자 하신 땅인데, 그런데 신명기 9장을 보면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벌써 여호수아서 본문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이죠. 여기 9장 5절에서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신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 목이 곧은 백성 !!

그러니까 이 크레파스에 들어있는 내용물, 즉 "크레파스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우냐? 얼마나 싱싱하고 정상적이냐?" 라는 것을 묻는 게 아니란 말이죠. 하나님은 "너희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다" 라고 하시는데, 한 곳에 모아놓고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겁니다.

(출 3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렇다면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것을 왜 집어넣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나 여기 약속의 땅에 있는 이들 민족이나 동일하게 목이 곧은 백성이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이들 이방 민족들에게는 무엇이 없습니까? 그들에게는 레위 지파의 레일이 없다는 말이죠.

그들은 레위 지파의 언약이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 지파의 언약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차이점뿐이라는 말이죠.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라고 하는데, 그게 뭐냐 하면, "여호와께서 이 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라고 하는, 바로 그 이유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에서 무엇이 나온다는 말입니까?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을 다 쫓아낼 수 있는, 악함과 죄성이 여기서 뿜어져 나온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냥 노시는 분이 아니고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우리의 일함은 항상 경쟁을 한다는 겁니다.

* 언약으로 인해서 드러나는 죄 !!

우리는 자꾸 의로워지려고 하는데, 그렇게 의로워져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생계보장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고 여긴다는 말이죠. 즉 "이만큼 복음을 알고 착한데, 나를 죽일 겁니까?" 라고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그래, 죽인다. 왜?"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할 말이 없어지는데, "아, 죽는구나. 복음을 안다고 사는 게 아니구나"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우리를 천국에 보내려고 복음이 있는 것이 아닌데, 그래서 언약이 언약대로 드러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설마 지옥에 보내려고?"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이 있기 때문에 드러난 죄라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신다는 말이죠.

이제 10분만 쉬겠습니다.


2022,6,15 재정리함 - 녹취 구
2022,7,5 재재정리함 - 녹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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