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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7 14:52:18 조회 : 57         
402강-YouTube강의( 자연과 인간 )20220906-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21.158.138.184)
제 402강 제목은 자연과 인간,
사람들은 자연을 상대합니다. 자연에서 정형화된 또는 질서 있는 원칙과 진리를 찾아내려고 그렇게 해요. 찾아내서 그 자연의 변화를 알아내서 뭐 할 건데... 그 이유는 인간들에게는 자신이 자연 안에 살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부터 잘못된 거예요.

성경에는 우리가 주님 안에 살고 있는데 인간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연 안에 살고 있다. 태풍 불어도 난리고, 코로나 번져도 난리고 그렇죠. 그만큼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아니고 자연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대자연아, 제발 좀 요동치지 마라.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지 말고 북극에 있는 빙하, 에베레스트 빙하 좀 녹지 말고 바닷물 넘치지 말고 해안가에 있는 항구 사람들 이사 가게 하지 말고 제발 좀 지금껏 하던 대로 그냥 계속 그대로 있어 달라. 우리도 그대로 있을 테니까 자연도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원칙 지키고 질서 지키고 그렇게 하기를 마음속으로 자연한테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왕이라고 하잖아요. 거짓말입니다. 자연이 왕이에요. 자연이 조금만 비틀어버리면 인간은 못살겠다고 난리입니다. 사람이 음주운전해서 교통사고 내게 되면 그 사람한테 화를 내지만, 산사태 일어나서 부모님 돌아가시면 산보고 화 안 내죠. 이미 인간은 대 자연에 그냥 굴복 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떻게 했느냐 하면 대자연을 어른으로 섬겼어요. 어른, 그걸 어려운 말로 하게 되면 큰(great) 타인 큰 타자 그걸 한 자로 줄이면 신, 자연이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큰 타자, 나의 운명을 쥐고 있는 나 바깥의 어떤 분, 그렇게 생각했어요. 언제 그랬느냐 하면 기원전 시대 모든 나라가 다 그랬습니다. 우리나라 단군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가 자연자체를 신으로 신격화시켜서 섬겼던 겁니다. 지금도 남아있죠. 우리가 어디 가도 느티나무 오래 된 것에 빌고 해보고 빌고 달보고 빌고 하잖아요. 그게 그대로 아직도 남아있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진리를 어떻게 했느냐, 대 자연의 움직임을 그대로 모방해서 진리를 뽑아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게 서양에서는 15세기까지 그걸 르네상스시대라 하는데 15세기까지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그때 뉴턴부터 시작해서 수학이 발달되고 화학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인간의 언어로서 자연을 분류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 수학이 뭐냐, 수학은 자연의 질서를 잡는 그런 잣대 같은 거거든요. 기준이거든요. 기준이 인간 쪽에서 인간의 이성으로 기준을 잡아놓으니까 대자연의 움직임을 분류를 해서 배정을 해요. 이거는 화학, 이거는 물리, 이거는 수학, 이거는 의학, 이거는 생물, 분류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인간이 질서를 이렇게 수학적으로 규정을 하니까 인간이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자신감이 생겨서 마트에서 물건 뽑아내듯이 오늘은 물을 이용해서 수력발전을 해볼까 뽑아내는 거예요. 오늘은 저 개미한테 뭘 배울까, 개미라는 생물을 관찰의 대상으로 보는 겁니다.

세상이 수학과 과학이 발달되면서 인간이 어느 정도 똑똑하냐를 증명하기 위해서 자연이라는 것이 그냥 대기된 상태, 인간이 주인노릇 했다 이 말이거든요. 분류를 한 그 시대가 16~18세기까지 됩니다. 서양에서.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오면 비로소 처음으로 인간이란 말이 등장해요. 놀랍게도 오늘날도 그 표현은 다 인간인데 실제로 인간이란 말은 19세기 들어와서 1800년 들어와서 인간이란 말을 썼는데 그게 어떤 계기냐 하면 이제는 자연이라 하는 것, 수학이라 하는 것은 고정됐잖아요. 고정된 그 진리에다 모든 걸 꿰맞추다가 이제는 인간이 이 대자연을 변형을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와서 그걸 뭐라 하느냐 하면 역사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뭐냐 역사를 이끌기 위해서 대자연을 변형시키는 주체, 그걸 인간이라 하는 겁니다.

인간이 시간들 속에서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는 자신감으로 인간만을 위한 새로운 역사를 시작 하겠다 그 역사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19세기부터. 그래서 벌어진 게 뭐냐 하면 1차 대전, 2차 대전이 된 거예요.

그럼 그전까지는 누가 있었느냐, 왕이 있었잖아요. 그렇죠. 우리나라도 왕이 있었잖아요. 왕의 자리는 신이 주신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18세기 19세기 되고 나온 나폴레옹 나오고 난 뒤에 프랑스혁명 있고 난 뒤에 역사의 주체는 신이 내려준 왕이라는 작자가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시민들의 의식에 의해서 얼마든지 편리한대로 개조가 가능하다하는 시민정신이 생긴 겁니다.

그러면 그게 끝이냐, 끝이 아닙니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에서 인간이 20세기 처음 등장했다 했죠? 인간에서 더 나아가면 뭐하냐 하면 이제는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 속의 ’나‘가 그 유니크(unique)화 된다. ’나‘가 특별존재로 자기를 간주해요. 그러니까 21세기 들어와서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다 그것은 다 헛말이고요. 인간을 위해서란 게 없어요. 뭐로 바뀌느냐 나를 위해서입니다. 인간이라는 군중 속의 나, 나를 특별한 존재, 유니크한 존재, 특별한 존재로 보는 거예요. 그냥 이제는 막가는 거죠.

옛날에는 뭐냐 자연과 융화하면서 살았어요. 호두가 뭘 닮았는가, 인간의 두뇌를 닮았다. 그러니까 호두를 무시하지 마라. 우리 인간의 두뇌를 무시하지 않듯이 호두를 무시하지 마라. 호두 안에 생기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자연과 어떻게 하나가 돼서 자연의 심기를 안 건드리려고 애썼던 시절이 수천 년의 인간 역사였다면 수학이 발달하고 만유인력이 발달하고 난 뒤에 인간이 갑자기 수학적 이성적 합리 안에 자연도 이렇게 거기서 자리배정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겁니다.

그러고 난 뒤에 19세기,20세기 들어오게 되면 이제는 인간이 자연을 개혁, 변혁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너는 이 안에 있어.‘ 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 원하는 대로 자연을 한번 바꿔봐, 하는 시대라면 21세기 들어와서는 뭐냐 하면 더불어가 아니고 나 자신을 인간 속에서 특화시킨다. 특별한 존재로 간주합니다. 방금 이야기한 이것이 왜 중요한 이야기냐 하면 시편 74편 13절에 보면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시며 14절에 악어의 머리를 파쇄하시고 그것을 사막에 거하는 자에게 식물로 주셨으며 15절에 바위를 쪼개사 큰 물을 내시며 길이 흐르는 강물을 말리우셨나이다 16절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 이렇게 돼 있죠?

성경에서 말하는 이 자연이라 하는 것은 주님이라는 특화된 오직 홀로 계신 주님의 자기 활동 영역이고 그분께서 친히 만드신 거예요. 자연이. 자연을 이렇게 제켜보면 거기 만드신 분이 나온다 이 말이죠.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이 자연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함부로 죽이시기도 하고 부수실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이 성경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인간이 이성적인 발달, 과학의 발달, 아까 이야기한 걸 하게 되면 결국은 주님은 한 분이죠.

그러니 오늘날 우리 인간은 인간 뭐 우리 대중들, 하지만 다 핑계고 결국은 뭡니까? 나를 위한 대중이고 나를 위한 민주주의고 나를 위한 국가 이어야한다. 결국은 남는 게 나만 남는다 이 말이죠. 결국 1대 1이예요. 1대 1인데 결국 성경에서 예언하는 것은 뭐냐 하면 네가 주님이라는 한 분이 하는 일을 모독하는 식으로 최후의 날에 네가 등장할 것이다. 그게 바로 용입니다. 그게 바로 숨겨진 악마의 인간화입니다. 1대 1이예요. 최후는 1대 1로 나와요. 주님이야. 나야. 1대 1로 나와요. 주님께서 다 예상했죠.

모든 것은 주님 한 분이 했는데 인간이 연구하고 탐구하고 인간의 지혜가 발달하니까 인간이 본인이 신처럼 되리라 하는 그 자기 본색을 더는 감출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 더 정확하게 말해서 자연이냐, 아니면 나냐, 어느 것이 더 우선적이냐, 오늘날 인간의 마음은 자연보다 내가 우선적이죠.
 첨부파일 : 402강-YouTube강의( 자연과 인간 )20220906-이 근호 목사.hwp (32.0K), Dow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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