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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11:38:10 조회 : 193         
21강-호 5장 13-14절(독소요소)191225-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61.84.208.92)
21강-호 5장 13-14절(독소요소)19122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호세아 5장 13-14절입니다. 구약성경 1260페이지입니다.

호세아 5:13-14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나 곧 내가 움켜갈찌라 내가 탈취하여 갈찌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이스라엘의 역사는 특수한 역사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이 땅에 등장한 민족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등장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망할 때도 만들어주신 하나님에 의해서 이 땅에서 사라지고 소멸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이스라엘이 있었다가 망하고 없어지는 그 과정속에서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날 줄 알았는데 허사가 아니라 진짜 숨어 있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행하신 일로 인하여 충분하고 자기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다. 내가 세워놓고 내가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너는 인간편에 설래, 아니면 하나님편에 설래?”라고 우리한테 묻고 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나라 그 전체가 원래 하나의 나라지요. 제2의 이스라엘은 없습니다. 그냥 이스라엘나라 그 전체가 하나의 나라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에브라임이 나오고 그 다음에 유다족속이 나오지요.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이 둘로 나누어졌을 때 북쪽을 에브라임이라고 하고 남쪽을 유다라고 합니다. 에브라임이라는 것은 북쪽의 이스라엘 가운데 숫자도 제일 많고 영토도 제일 넓은 지파기 때문에 대표적인 지파가 되어서 에브라임이라고 불러주는 겁니다.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이 있지만 유다지파가 월등하고 영토가 넓고 역시 대표되는 지파가 유다지파라고 유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나라가 하나인데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누가 나뉘게 했는가? 주님이 나뉘게 하신 거예요. 왜 나뉘는가? 하나인데 하나가 둘로 쪼개지면서, 마치 호빵을 둘로 쪼개면 그 안의 새까만 앙꼬가 보이잖아요, 나라를 둘로 쪼갤 때 하나가 되어야 될 나라가 둘로 쪼개진 그 이유가 너희들 안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쪼개진 나라를 얼마 안가서 북쪽부터 먼저 치도록 하는데 여기 13절에 앗수르라는 나라가 나오지요. 이스라엘바깥의 나라입니다. 지금의 터키, 이란, 이라크, 이 세 나라의 연합체쯤 되는 큰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몽둥이라는 별명으로 칭해서, 하나님이 야구방망이를 만들어서 북쪽 이스라엘을 부수기 위해서 일부러 크게 장성시킨, 크게 키운 나라가 앗수르제국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땅에 나타난 것만 유념하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는 과정속에서 그동안 인간들이 몰랐던 여호와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겁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여기 있다, 부모가 나를 키워줬다, 할 때는 부모는 마땅히 자기를 키워주는 줄로 알고 있지 내가 누군지를 몰라요.

그러나 부모를 떠나서 뭔가 혼자서 나설 때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지요. 어린 애들이 엄마를 보고 뭐라고 하냐? ‘밥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연해 보이지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면 안돼요.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대변하는 겁니다. 세 살 먹은 애가 밥 달라고 할 때 자기가 취직을 했습니까, 야간근무를 했습니까, 대체 뭘 기여한 바 있다고, 그 가정수입에 얼마를 보탰다고 아주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요. “엄마! 밥 줘.”

왜 밥을 달라고 하지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그러한, 말은 못하지만 본성은 말을 하거든요. ‘세상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엄마 아빠의 사정은 모르겠고, 내가 지금 배고프다는 이 사정만 붙들고 있으면 되겠고, 무조건 내 눈에 띄는 분들은 나에게 밥을 줘야 되고, 밥을 주게 되면 부모든 아저씨든 관계없이 나는 기쁘겠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요소가 인간 속에 있는 거예요. 이게 인간으로서는 지극히 자기한테 당연해 보이지만 이것은 옳지 않은 태도에요. 어린애가 뭐 했다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립니까, 뭘 했다고? 안울었다고 선물을 줘요? 아기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겁니다. 새인종을 만드는 거예요. 새로운 인종을 발굴하시는 겁니다.

그 새로운 인종이라 함은 기존 인종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기예수에 잠재된 폭력성이에요. 미국이 핵폭탄을 가지고 북한을 공격할 때 북한 사람들이 “기쁘다. 구주 오셨다.” 그렇게 합니까? 그렇지 않지요. 박살내는 거지요.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그 과정을 통해서 본심을 드러내는데 “이스라엘은 내가 하나로 만들었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어서 하나가 둘이 되어야 했다. 둘인데 첫 번째 위에 있는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먼저 날라 가버리고, 없어져야 되고, 남쪽은 그 뒤로 한 백여 년 뒤에 바벨론 제국을 키워서 남쪽도 내가 없애버리겠다.”

그러면 제로가 되지요. 하나였는데 하나가 둘이 되고, 하나가 둘 될 때 문제가 있었고, 둘이 되었는데 그 둘이 하나씩 제거될 때, 이것도 없어지고 저것도 없어질 때 둘 다 다 문제 있는 거예요. 양쪽 다 문제가 있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가 뭐가 문제인지 몰라요. 아기 예수님이 와도 뭐가 문제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제가 그 문제있음을 언급했지요. 자기를 기쁘게 하는 그것이 문제였다.

인간이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자기가치를 지키겠다는 것이 문제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되어 있어요.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그 근처에 목자가 있었고 그 목자에게 천사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합니다.

그 계시를 한글 네 자로 하면 누가복음 2장 10절에, ‘기쁜 소식’이라고 되어 있어요. 기쁜 소식인데 목자들은 전혀 기쁘지 않아요. 무서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쪽의 생각이지요. 인간들 입장은 기뻐할 건더기가 없어요. 전혀 기쁘지가 않아요. 왜 기뻐해야 되느냐? 나중에 결과를 보면 알아요.

인간은 모든 것이 자기가 스스로 기쁘게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새로운 인종이 아닌 거예요. 인간이 기쁜 것이 아니라 기뻐하심을 입어야 되는 거예요. 인간은 평생을 살면서 자기가 자기를 기쁘게 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모든 인간의 생각과 모든 노력의 결국 마지막은 뭐냐?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고 시도에요. 그런 노력이라는 말이지요.

엄마한테 “밥 줘! 엄마가 나에게 밥주면 기쁘지?” 그런 것 없어요. 내가 기뻐요. 배고프면 내가 괴로우니까 밥을 달라는 겁니다. 이것은 나중에 커서도, 누굴 보면서라도 전부 다 말은 안하지만 속으로는 ‘주세요.’ 외에는 없어요. 마지막 늘 할 이야기는 ‘주세요.’에요. 교회 와서 설교 듣지만 설교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듣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달란 말입니다.” 결국 이렇게 나와요.

그러나 그런 인종은 하나님께서 뭉개버리고 없애버리는 인종이에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 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것은 왜 그 인간을 끌고 가지 않고 사라지게 하느냐? 그 안에 뭐가 담겨 있는 요소가 있어요. 그 담겨 있는 요소를 저는 독소라 하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어떤 독소 같은 것을 모든 인간이 갖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들어서, 그 대표자로 이스라엘을 호빵을 쪼개듯이,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아서 그 안에 인간의 어떤 독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겁니다.

하나에서 둘, 둘이 된 것을 나중에 위, 아래 하나씩 다 없애버립니다. 역대하 11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솔로몬 말년에 우상을 섬기도록 방치를 했어요. 부인들이 많은데 그 부인들이 자기나라의 우상을 다 수입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안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주변의 각 나라의 공주들을 자기 부인, 첩으로 두었습니다.

일종의 인질이죠. ‘만약 너희 나라가 우리를 공격하면 너희 딸은 작살난다’는 식으로 하기위해서 혼인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 딸들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까 그 딸들이 이스라엘 내에 자기들이 고향친정에서 섬기던 신들을 이스라엘에 와서도 섬기겠다고 요구한 겁니다. 국력은 세서 나라는 강건하지요. 여자들 몇 명 와서 여호와 말고 자기 고향의 신, 불교나 이슬람 믿으면서 얼굴에 두건 덮어 쓰겠다는데 나라 국력에 그다지 지장 없을 것이라고 솔로몬은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독소요소였어요. 왜냐하면 약속의 땅은 사람의 땅이지만 사람을 위한 땅은 아니에요. 우리가 천국 간다, 하는데 물론 천국이 성도가 영원히 사는 세상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성도를 위한 세상은 아니에요. 주님을 위한 세계지요. 그 미묘한 차이 같지만 이것이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뭔가 젖과 꿀이 흐르니까 마치 나를 기쁘게 하는 땅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하다가 솔로몬이 우상 섬기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결국 나라가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졌지요. 남쪽에는 성전이 있고, 다윗의 흔적이 있고, 북쪽은 남쪽과 차별화되기 위해서 여호와의 율법과 다른 방식으로 제단을 만들고 백성들이 남쪽으로 못넘어가도록 했습니다. 김일성이 같이 그런 식의 정책을 벌인 거예요.

그러니까 율법대로 레위인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하니까 역대하 11장 13절에, 당시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북쪽에 있던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남쪽으로 다 내려온 겁니다. 북쪽에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는 겁니다. 여호와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겁니다. 그래서 북쪽 나라가 먼저 망한 거예요. 남쪽은 좀 더 나중에 망하고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나라를 자기가 만들어놓고 그걸 망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진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특단의 조치가 되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를 위한 땅이라고 여기는데 적들, 앗수르가 쳐들어오니까 여러 가지 대책들을 세우고 앗수르 왕에게 아부도 하고 그런 식으로 합니다.

13절에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야렙왕은 앗수르의 왕인데 이 왕에게 좀 잘 봐달라고 아부하고 뇌물도 바쳤지만 전혀 어떤 상황이 좋아지지를 않아요. 그 이유가 뭐냐? 14절에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하나님 자신이 자기가 만든 나라를 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앗수르나 바벨론을 몽둥이로, 야구방망이로 사용했기 때문에 네가 ‘이 땅은 우리를 위한 땅이다. 내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더 살아야 되겠다.’ 하는 어떤 시도도 하나님의 조치 앞에서는 아무짝도 소용없는 거예요.

앗수르나 바벨론, 사람들이 흔히 무서워하는 강대국에 마지막 희망처럼 여기면서 달려들지만 그러나 앗수르나 바벨론 그 배후에 그 제국보다 더 센 하나님의 의지가 아예 자기나라를 멸망하겠다고 하시는데 그걸 누가 말립니까? 하나님이 자기나라를 자기가 부수겠다는데요. 토기장이가 자기 토기를 박살내겠다는데 누가 말립니까?

그러면 인간들 입장에서는 이러지요. 그렇게 망하게 할 것 같으면 자기민족을 사랑한다는 헛소리를 왜했습니까, 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망하는 가운데서 하나님 자신이 누군가를 드러내는 증거물들을 뽑아내는 거예요. 여러분이 볼펜을 보게 되면 여러 제품들이 화려하게 많이 나와 있지만 중요한 것은 볼펜심이 있어야 돼요. 속에 든 까만 심을 뽑아버리면 볼펜은 소용없잖아요.

내장, 인간들이 갖고 있는 정신적인 내장, 곱창이죠, 내장을 쑥 뽑는 거예요. 망하게 하면서 호빵을 둘로 쪼개듯이 안에 시꺼먼게 뭔가가 들어 있다는 것은 쪼개야 보이듯이, 망해야 그 볼펜심같은 것이 빠져나오는 거예요.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고 유다를 망하게 하는 독소요소가 빠져나오는 겁니다. 마치 석유 시추할 때 시추봉을 꽂아서 지질조사를 해요. 단층조사를 한다고요.

시추봉 꽂아서 흙들을 뽑아내보면 어떠한 암석층들이 축적되어 있는가가 보이는 겁니다. 1이 2가 되고 2가 제로가 되는 그 과정, 그 시간적배열을 눈으로 볼 수가 있어요. 그게 중요한 거예요. 이스라엘용도가 거기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시추봉에 들어 있는 그 흙봉, 암석의 봉, 옛날에는 그것이 이스라엘이고 오늘날 성도가 그래요.

성도는 허우대 멀쩡한 것은 아무 소용없어요. 주께서 이 땅에서 지옥체험을 하게 하는 겁니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자기를 기쁘게 해요. 그런데 아까 제가 누가복음 2장에 본 것처럼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인간은 천국에 못갑니다. 아기예수 보내셔서 기쁜 소식이 뭐냐?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을 데려가요. 내가 나를 기쁘게 하는 방식이 아니고 내가 어떻게 산다 할지라도, 내가 어떻게 힘든 인생을 산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심’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의 증거물로서 인생을 살아감을 아는 사람, 그 사람만 구원받는 겁니다. 그것은 새로운 인종입니다. 그러면 내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담의 족속이기 때문에 누구나 갖고 있거든요. 그것은 망해야 되지요. 당연히 망해야 되지요. 이 땅에서 마이웨이, 나를 기쁘게 하는 방식, “엄마, 밥 줘.” 이런 방식은 어릴 때나 커서나, 어릴 때는 모르겠지만 커서도 안돼요.

일단 내가 나를 기쁘게 한다는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반칙에 해당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독소조항에 해당되는 거예요. 사람이 자기의 단독주택 사면서 흙이 있는 마당을 같이 샀다 합시다. 거기다 아름답고 알록달록한 꽃들을 심었다 칩시다. 나를 기쁘게 하는 내 정원을 내가 가꾸었지요. 그런데 트랙터나 포크레인, 불도우자로 다 밀어내버린다면 얼마나 참담한 느낌이 들겠어요? 평생을 가꾸어놓은 내 꽃들인데.

개를 때려도 주인이 화를 내는 이유가 뭡니까? 정성을 다 했잖아요. 누가 자기 자식을 두고 뭐라고 하면 부모는 참지 못하잖아요. 주님께서 지금 이스라엘의 잘못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 약속의 땅에서 내 방식대로, 인간의 방식대로, 죄인의 방식대로 그냥 내 나라 만들겠다는 것이 북쪽 이스라엘, 남쪽 유다나라의 아담의 본성상이 여과 없이 드러난 거예요.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에요. 그 사람들 주장에 의하면. 그게 내가 찾고자 하는 것,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는 독소요소라고 해서 발췌해 내고 그 결과로 그냥 밀어붙이는 거예요. 다 부숴버리는 거예요. 없애버리는 겁니다. 유형지, 유배지로 떠나보내요. 이게 지옥의 시나리오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옥을 경험하지 않은 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시나리오대로 되는 거예요. 떠나고 난 뒤에 다시 오게 되는데요. 떠난 뒤에 다시 오게 되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제 2의 출애굽이라 해요. 이게 상당히 중요한데요. 출애굽되기 전과 후의 상태를 보라는 겁니다. 무슨 요건이 추가되었는가를 보라는 거예요.

출애굽되기 전에 애굽 살던 때는 언약이라는 것을 몰라요. 하나님의 약속, 언약, 하나님의 계획, 시나리오 전혀 몰랐어요. 그냥 애굽사람들 틈에서 “밥이라도 먹여주면 노예라도 좋아요. 그냥 밥이나 먹고 살기만 해도 감사합니다.” 이런식으로 그냥 눌러 살았습니다. 떠날 생각 없었어요. 모세와 아론이 와서 떠나자고 해도 오히려 모세와 아론을 욕했습니다.

이 땅이 우리가 사는 땅인데 여기서 떠나면 갈 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렇게 나온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거기다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라고 해서 아주 특이한 표식, ‘시그니쳐’라 하지요, 특이한 표식, 문설주와 문지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게 했습니다. 굉장히 특이해요. 인간들 입장에서는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피가 묻어 있는 그 집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심을 입는 표식이에요.

새로운 인종입니다. 천국가는 새로운 인종. 인간의 아이디어에서는 상상도 못했지요. 왜? 평소의 인간은 비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냥 빈 마음이 아니에요. ‘하나님 들어오세요.’이런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세요.’ 그런 것 아니에요. ‘나를 기쁘게 하는 조건에 맞춰서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세요.’ 나를 후원해달라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현재 내가 나를 기쁘게 하는 이 조건은 건드리지 마세요. 이걸 흔들어대지 마세요. 이걸 깨지 마세요. 이런 식이에요 인간의 본성은. 엄마에게 밥줘 하듯이 하나님이여 밥주세요. 똑같은 거예요. 나를 기쁘게 하는 이러한 형식에 주님 그걸 탓하지 마세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나를 기쁘게 하는 인간의 방법은 뭐냐? 자력갱생이지요.

절대로 자력갱생 그거 안됩니다. 내가치를 내가 지키겠다는 그거요. 자력갱생은 북한 김정은이가 하는 거예요. 절대로 안돼요. 인간의 자력갱생 그 자체가 독소요소였습니다. 악마의 요소에요. 그리고 자력갱생 왜 하느냐? 내 힘으로 내 가치를 버티고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그게 언약이 없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내가 나한테 노력한 것으로 나는 영원히 즐거워하고 기뻐하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일에 대해서 끝까지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거예요. 이게 악마가 시켜서 선악과일을 따먹은 그 병입니다. 저는 이것을 정신병자라고 보거든요.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것. 정말 말이 안되는 거예요. 햇빛과 공기가 어디서 오는 것도 모르고. 밤중에 자기 심장을 누가 뛰게 하는지도 모르고, 해와 달을 누가 만든지도 모르고, 전혀 모르고 그런 것을 다 무시하면서 큰소리치기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나님께서는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네가 노력한다고 운명이 바뀌는 것이 아니야. 최후를 봐라. 최후를 봐.” 운명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그 언약이 있으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이고 언약이 없으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이 아닙니다.

에스겔 9장 4절에 보면 선지자가 하는 이상한 짓이 있어요. 먹물로 사람의 이마에 표시를 한다고요.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3,4)

이마에 표시를 해요. 마치 출애굽 때 집 앞에 어린양의 피로 표시를 하듯이 에스겔 9장에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냐 아니냐를 이마에 먹물로 표시를 하는 거예요. ‘ת(타브)’라는 히브리 알파벳 제일 마지막 글자를 표시해요. 그게 십자가를 뜻한다고 하는데 하여간 표시를 한다고요.

여러분이 여고졸업반을 생각해 보세요. 여고졸업반은 20대에 동창생들 저희끼리 호호호호, 깔깔깔 대면서 신나게 놀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신나게 논다고요.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해서 신나게 놀다가 20대 후반에 들어가게 되면 같이 술집에 가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눈에 안보여요. 누구 시집갔대, 누구는 애 둘 낳았대…….

그럴 때 시집간 그 여고동창생은 시집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고 친구 만날 경황도 없어요. 시어머니에게 잘 보여야 사랑받으니까, 살림도 살아야 되고, 주택부금도 신경써야 되고, 거기에 정신이 다 빠졌어요. 그런데 뭐가 허전하냐 하면, 늘 날마다 전화해서 수다떨던 그 여고동창이 시집가버리고 자기만 혼자 남을 때 허전 하지요. 전화해도 바쁘다고 얼른 끊고, 또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어요.

만나 봤자 육아 이야기나 하고 자기는 시집도 안갔으니 육아 이야기 할 것도 없지요. 대화가 안돼요. 여러분 이것은 바로 스산한 분위기지요. 학년 끝에 가면 반편성하잖아요. 너는 2학년 1반, 너는 2학년 2반 이렇게 반편성을 새로 하면 1학년 때 그렇게 친했던 애도 강제로 다 흩어지게 되잖아요.

지금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느냐 하면, 반편성해요. 우측과 좌측, 좌편과 우편, 양과 염소, 언약으로 좌측과 우측으로 갈라버려요. 그런데 인간들은 이 하나님의 업무와 작업을 모르고 교회 와서 나를 기쁘게 해달라는 거예요. 맨 날 나를 기쁘게 해달래. 내가 불안전하지 않게 살게 해 달래요. 맨날 요구하는 것이요.

이마에 표도 없어요. 이마에 표도 없고 언약은 애초에 치워버리고. 왜 그러냐 하면, 나를 기쁘게 하는 그런 조건들만 몰두했고 정작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것이 어떤 언약적 조건을 갖춰야 하느냐는 그 언약의 내용도 모를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이것과 완전히 바뀌어야 된다는 사실을 몰라요. 내가 나를 기쁘게 하면 할수록 천국은 마치 나를 위한 천국인 것처럼 계속해서 착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나를 위한 세계에 내가 가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내가 나를 위한 세계에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나를 위한 이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불쾌함을 주는지 본인이 알아야 돼요. 나를 위한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는 이것이 얼마나 악마적인가를 본인이 알아야 되는데 인간은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자기도 그렇게 살면 되는줄로 알고 있지요.

그래서 태평스럽게 남쪽, 북쪽, 약속의 땅 토지 괜찮겠다, 국력은 좀 더 키우면 되겠다, 그래서 외국하고 교류하고 언약이고 뭐고 그것은 뒷전이고 무조건 나는 살아보자, 하다가 하나인 나라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유를 몰랐어요. 나중에 나라가 남쪽 북쪽 둘로 갈라졌지요. 나중에 보니까 솔로몬이 우상을 섬겼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요소를, 언약의 조건을 무시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북쪽도 언약조건을 무시해버리고 남쪽도 언약조건을 무시해서 날라 가버리고, 1에서 2가 되었다가 2에서 제로(0)가 되고, 1에서 2가 되고, 2에서 제로(0)가 되는 모든 과정속에서는 하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언약조건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기서 노출되는 겁니다. 건져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요. 왜냐하면 그들이 들어올 수 없는 약속의 땅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은혜로 들어왔고, 은혜로 들어왔는데 살다가 하나님에 의해서 작살나고, 박살나고, 깨져서 도로 출애굽을 완전히 무효화시키고 옛날 애굽처럼 노예생활로, 유형지로, 유배지로 끌려갔다는 그 과정자체가, 그 시간적인 배열자체가 시추봉 안에 들어 있는, 또는 볼펜심지안에 들어 있는 꼭 필요한, 인간은 이렇게 해서 달라져야 구원받는다는 그 언약적 내용이 바로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스라엘이 대표해서 우리에게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망함의 절차는 오늘날 성도 안에 들어 있는 볼펜의 심지와도 같다는 거예요. 지금 앗수르나 바벨론과의 이 모든 것은 쉽게 말해서 전쟁이거든요. 사람이 전쟁통에 있어야 인간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인간의 어떤 본색이 드러나느냐 하면, 평소에 인간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사람이 유들유들하고 인간성 좋고 다 좋지요.

그러나 막상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인간은 뭘 아느냐 하면, 내가 내 방식이라는 그 삶의 방식에서 내가 못빠져나오고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제가 얼마 전에 덕구온천에 갔다 왔어요. 그 남탕에 누가 들어왔느냐 하면,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들어왔어요. 옷을 입고 여기 왜 들어왔나 싶어서 가만 보니 옷을 입은 것이 아니고 목에서 발끝까지 전신에 문신을 다 해놨어요.

뜨거운 사우나실인데 거기에 들어와서 앉았어요. 문제는 그 사우나실이 1분, 2분은 견딜만 한데 5분지나면 견디기 힘들다는 거예요. 언약이 없는 곳이 지옥이잖아요. 언약바깥. 언약이 없는 애굽이 지옥이라는 말이지요. 언약이 있는 약속의 땅은 천국이고. 언약이 없는 지옥에서 문신을 하든, 힘깨나 쓰든, 거기서 좀 높은 사람이든, 돈이 좀 있든 어차피 그 사람은 그 뜨거운 사우나실에서 못나가면 그 신세는 처량한 겁니다.

언약이 없는 세계 자체가 바로 악마가 인간을 못빠져나가게 만드는 지옥의 체험실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감사해야 돼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지옥을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 마이웨이니까. 내 삶의 방식이 그거니까.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최종성이에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최종성이 아니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최종성이에요.

나를 기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순서 지우라고 하면,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1등이고, 영순위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나중문제에요. 밀리거든요. 그러니 누가 ‘나는 나를 안기쁘게 할래.’ 이런 인간은 없어요. 그런 인간은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아마 그런 인간이 태어났으면 이렇게 이야기했을 거예요. 두 살 때 또는 세 살 때 “엄마 내가 배가고프지만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하기 싫어.” 이렇게 이야기했을 거예요. 그런 두 살 세 살 애가 어디 있어요?

“나 지금 배고프지만 내가 밥을 먹기 위해서 엄마가 얼마나 부엌에서 미세먼지와 싸워야 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두 살배기 애가 없잖아요. 그냥 밥달라는 거예요. 자기권리라는 겁니다. 부모는 날 기쁘게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예요. 물론 크면 그것이 내면으로 숨어들어가지만 숨어들어간다고 그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세상 모든 만사가 나를 기쁘게 하는 그 영순위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그런 삶의 방식외에 다른 방식 생각해 본적도 없어요, 인간은!

따라서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악마에 의해서 만들어진 삶의 조건에서 자력으로 못빠져 나옵니다.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유다와 이스라엘은 빠져나오잖아요. 쓰레기지만. 주님에 의해서 독소처럼 빠져나오는 것이 남은자거든요. 남은자를 뽑아내서 그 남은자가 유형지, 바벨론이나 앗수르로 포로 잡혀가는데 그 남은자들이 뭘 아느냐?

하나님의 언약을 위반하게 되면 내가 인간이 아니고 쓰레기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남은자, 유일한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성도 아닙니까? 성도는 다른 사람하고의 차이점이 뭐냐? 자기가 쓰레기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나는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에요.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그리고 그 힘은 악마의 힘이고 지옥의 힘이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느냐가 아니라 그 인간을 그렇게 뽑아낼 때, 인간은 자기위주로 산다는 것이 죄인줄을 몰라요. 그런데 그게 죄인줄 알았다는 말은 그 옆에 누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으로 개입했다는 뜻이거든요. 하나님의 언약이 개입하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의 피 말고서는 천국가는 방법이 없음을 비로소 알 정도로 자기는 쓰레기에요.

왜? 쓰레기는 자기자신에 대해서 무의미하니까 자기를 기대하거나 자기를 책임질 필요가 없거든요. 자유 아닙니까? 쓰레기인 자만이 웃을 수 있어요. 쓰레기를 아는자만이 웃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잘난 인간은 항상 찡그리면서 살아요. 제가 어느 날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지요. 얼굴 안 밝은 사람하고 사귀지 말라고요. 아직도 자기인생 자기가 책임지고 그 책임졌다, 안졌다를 누가 판정하느냐?

나를 기쁘게 하면 괜찮은 인생 산 것이고 나를 슬프게 하면 그것은 인생 잘못 살았다고 본인이 결정해요. 거기서 누가 빠져나옵니까? 못빠져나오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서 이스라엘 그들을 망하게 만듭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보고 주세요, 할 권한이 없음을 안다는 것, 이게 하나님은 내 중심이 아니고 나한테 붙어 있는 언약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그리고 포로 잡혀갔을 때 거기에 누가 같이 가느냐? 우리 주의 이름이 같이 동행해서 고생을 같이해요. “너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고생할게.” 같이 고생함으로서 내 고생은 마땅하지만 주님의 고생은 고생하지 말아야 할 분이 고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기예수가 돌아가실 때까지 하신 일이 그 이야기를 한 겁니다.

네가 고생되더라도, 하나님의 기뻐하심, 네가 기뻐하는 것 말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있는 그것이 네 자로 복음이에요,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네 가슴팍에 피로서, 완성품으로서 이것이 찜하듯이 언약의 표시로서 되어 있다면 이제는 날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십자가를 기쁘게 하고 언약을 기쁘게 하는 인간이 되었다면 그것은 어떤 악마의 힘도, 지옥의 힘도 이 천국가는 것을 방해할 수가 없고 막아설 수도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하신 모든 일이 그게 얼마나 큰 사랑이고 얼마나 큰 은혜인데 우리는 철없이 내가 하는 일이 안된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남들처럼 살지 못한다고 얼마나 짜증을 냈습니다. 하나님이여, 유월절 어린양의 피, 그 피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약속인 것을, 하나님은 십자가만 찾는다는 것을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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