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HOME > 게시판 > 자유게시판
2020-06-01 18:27:58 조회 : 42         
강남-누가복음 2장 29절 (못난 자) 200519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2장 29절 (못난 자) 200519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2장 16절부터 20절까지 제가 한번 읽어 보겠어요.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 하니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간단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천사의 일이 예수님의 일로 확장됩니다. 예수님의 일로. 천사가 하는 일로 해서 물고를 트고 그것을 예수님께서 일, 예수님께서 이어가는 겁니다. 여기 지난주의 예수님은 어른 예수가 아니고 아기 예수님이겠죠.


그래서 흔히 말하기를 예수님이 서른 살 되어서 성년이 되어서 일한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천사의 일에 의하면 아기로 계신 것도 예수님의 일이에요. 아기로 계신 것도. 여러분들이 목사님이 두 살 때 주의 일을 하신 거에요. 두 살 한 살 때도 이미 일이 된 거에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완료된 일. 완료된 일이 예수님께 계속 완료된 일로 되는 겁니다. 완료된 일과 이어집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비해서 이것과 대비해서 인간의 일은 뭐냐? 인간의 일은 인간의 일로 계속 가는데 이건 뭐냐 하면 미완료에요. 미완료.


미완료기 때문에 인간은 뭐를 찾느냐 하면 대체물을 두리번거리면서 늘 대체물을 찾습니다. 초등학교 애들에게 너 커서 뭐할래? 이게 대체물이거든요. 커서 뭐할래? 대통령할래? 야구선수 할래? 축구선수 할래? 연예인 할래? 뭐 할래? 대체물을 계속 찾는 거에요. 왜냐하면 미완료물이기 때문에 결핍이거든요. 결핍되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의 일은 계속해서 대체물 찾고 찾아 가면서 미완료에서 뭐를 추구하느냐 하면은 자기 마음에 만족스러운 완료가 될 때까지 평생을 세상을 헤매게 됩니다.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에요. 결혼을 해도 아이 낳고 나는 행복 끝이라고 했는데 애 낳고 난 뒤에 보면 또 아니야 우리 애가 공부 잘해야 돼. 또 결핍을 느끼고 대체물을 찾고 있어요. 끊임없이 찾는 겁니다.


대조되죠. 대조가 돼요. 대비가 되는 겁니다. 천사의 일은 완료로 시작해서 예수로부터 그 완료에 대한 마무리가 지어지는 반면에 인간은 처음부터 완료가 아니고 미완료, 결핍된 존재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대체물을 찾고 찾고 계속해서 찾는데 결국은 뭐냐 하면은 자기만족에 이르지 못하지요. 자기만족에.


그래서 지금은 저한테 그런 이야기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만은 제가 옛날만 해도 노골적으로 저한테 이런 이야기한 사람 많아요. 목사님 저 뭐하면서 살까요?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요. 저 뭐하면서 살까요? 그냥 사세요. 이렇게 하지요. “그냥 사세요” 라고 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 인간의 일은 나갔기 때문에 일단 보류하고요 그럼 천사의 일이 주님의 일 할 때에는 어떻게 일이 되는가? 이게 오늘 강의의 핵심부분이 벌써 시작되었어요. 천사의 일이 예수님한테 일을 할 때는 뭐냐 하면은 point 이동이에요. ‘point 이동’.


point 이동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만약에 우리가 천사를 따라가게 되면 천사의 일이 군데 군데 마치 전쟁 때 미군이 폭격하듯이 다 폭격하는 것이 아니고 중요 거점에 무기생산 공장에 이라크 전쟁할 때 그쯤 그쯤 할 때 오늘은 여기에 폭탄 터트리고 내일은 저기 폭탄 터트릴 때 사람들이 볼 때 관점이 어떻게 됩니까? point가 발생되지요? point가 발생됩니다. 이동하는거에요.


동방박사가 별 뜰 때는 동방박사 있는 point였는데 그 point 따라 별 따라오는 것은 그 point가 이동하는 것이고 그래가지고 어딜 가느냐? 바로 베들레헴에 이르지 않고 예루살렘에 거하지요. 그럼 예루살렘에서 뭐냐 하면은 뭐와 뭐가 만나느냐 하면은 완료된 천사의 일과 미완료된 인간의 일이 하나의 거기에 주목받는 일이 거기에 있는 거에요. 주목받는 일들이.


자, 여러분 기억나는가 봅시다. 미완료된 일이라는 것은 뭐를 찾게 되어있다? 대체물이죠 대체물. 완벽에 완벽을 나름대로 기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요. 대체물을 찾지요. 그러면 천사가 예루살렘의 헤롯왕에게 왔을 때에 자기는 짐짓 동방박사를 대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뒤에서는 제거하라고 하지요.


왜냐하면 자기의 미완료를 완료로 하는데 전혀 방해가 된다고 하여서 동방박사를 제거해버리고 베들레헴의 두 살 애들도 다 제거해버리지요. 왜냐하면 자기의 희망하는 그걸 희구라고 ‘희구’, 희망 같은 뜻이에요. 자기가 희망하는 자기 자신의 만족한 대체물에 베들레헴 두 살 애들은 다 방해물이 되기 때문에 없애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님 태어났을 때에 그 일에 다른 북극이나 남극에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다른 나라 다른 지역 또는 한국에서는 그때 삼한시대입니까? 삼한시대나 고조시대 나름대로의 뭔가 있었겠죠. 고조시대에.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 어디를 point잡습니까? 고조선 싸움 그거 그런데 관심 두는게 아니고 point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point 두다가 그 다음에 베들레헴에 point를 두는 거에요.


이건 뭐냐 하면 이 세상이 미완료라고 폭로시키는 방식은 완료된 것과의 접선으로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접선으로만. 여러분들이 주일날 교회가고 월요일 되게 되면 여러분의 point는 어디로 바뀝니까? 직장으로 바뀌겠지요? 직장으로 바뀌면 이거 그대로 적용시키면 돼요. 직장에 가서 일한다는 말은 무엇을 갈구하는 거에요. 내가 결핍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갈구하는 거에요? 대체물을 갈구하는 거에요.


내가 두 달만 하고 때려치워버린다. 여기보다 월급 더 주는 데로 가야지. 이게 뭐냐 하면은 궁시렁 궁시렁 일하면서 대체물을 하는 거에요. 내가 과장 죽여버린다 이런 식으로. 나를 못살게 구는 과장 내가 손 본다. 마지막 사표내고 난 뒤에 너 한번 찾아간다 한다든지. 협박도 잘못하면 고발당하는 수가 있어요.


모든 일은 네가 뭔데 나한테 방해가 되느냐. 나의 이상적인 내 완벽한 내가 구상한 완벽한 직장생활에 네가 뭔데 네가 하느냐. 나에게 결핍을 하느냐.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 주일날 교회 가서 예수님 십자가 이야기 듣다가 그 point는 날라가버리고 다시 자기의 대체물을 찾는데 허겁지겁 거기에다가 모든걸 몰두하지요. 그래서 말씀이나 복음을 멀리해버리면요 안돼요. 왜냐하면 미완료는 점점점 미완료로 나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과 항상 대하도록 접하도록 이렇게 되어야 돼요.


자, 그러면 방금 이 이야기를 여러분 잘 들으셨으니까 이걸 말로 다시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point 이동인데 하나님께서 point 이동합니다. point 이동인데 그러면 이 세상에서 인간이 태어났습니다. 목자도 마찬가지죠. 목자가 태어날 때 이게 본인이 선택한 겁니까? 아니면 본래적입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다보니 그렇게 된 본래적이죠. 본래적은 선택이 아니에요. 그냥 주어진 거에요. 주어진 것. 인간이 뭘 선택하고 자시고 할 거 없어요. 그냥 본래적으로 원천적으로 주어진 거에요. 본래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본인이 새삼스럽게 선택이라는 것은 사실은 여기는 해당사항이 없어요. 본래적으로 주어진대로 어떤 최선을 한다 그 정도 밖에 안되거든요.


목자가 만약에 오늘 본문처럼 아기 예수를 안 만나버리면 point 이동, 예수님과 관계없다면 목자는 열심히 돈 벌어서 자기 가정을 이루겠다는 그러한 새로운 지금의 사정보다 더 나은 사정을 대체물로 바꾸겠지요. 목자가 천사를 안 만났다면 여러분들이 성령을 안 받았다면. 그냥 세상 사람들과 똑같아요.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지금 이 형편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겠지 라고 하는 거에요.


여기서 인간들이 평소에 하는 의식 그 사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겁니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거에요.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모르는가봐.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모르는가봐. 철들면 나의 대체물을 찾는데 수월하고 아직 철이 나지 아니하면 내가 세상에 고생을 더 해야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대조된 point 없는 이 세상에 기껏 최선을 다하는 거에요.


김호중 씨가 불렀던 고맙소 라는 노래의 가사거든요. ‘고맙소’. 그것까지 여러분들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만.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모르는가봐. 그러니까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모르는가봐 왜 썼느냐 하면 복음을 알면서도 지금 계속 미완료에 매여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제가 말씀드린 겁니다. 아 이 나이 먹도록 철이 없어. 다음에는 좀 완벽에 완벽을 기해야지. 그거는 완료가 아니에요. 여전히 미완료의 지하실에서 헤매고 있는 겁니다.


자, 그러면 여기에 예수님의 완료성을 좀 이렇게 좀 난해하지만 어렵기 때문에 미리 어려울 때는 결론을 미리 말씀 드리는게 좋거든요. 주님께서 이 완전한 일이 지상의 point 이동해서 지상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지상의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느냐 하면 대결장으로 초대하는 거에요 대결장으로. 이 세상과 이것과 완료와 미완료 대결장으로 초청하는 겁니다. 납득이 잘 안되지요. 대결장? 대결하는 것.


동방박사가 본인은 대결 안 하고싶어도 동방박사가 졸지에 본의 아니게 헤롯 권력과 대결장을 형성했지요. 그러니까 천사가 와서 동방박사를 딴 길로 빼돌려 살게 했잖아요. 대결장. 싸우는 장. 우리가 원하는게 아니에요. point 이동해서 완료가 오니까 여기서 한바탕 붙어가지고 누가 완료고 누구 미완료인지 그걸 하게하는 거에요.


목자로 하여금 여기 아기 예수에게 말하게 하니 이게 뭐냐 하면 대결장에다가 누굴 집어넣느냐 하면 목자를 집어넣는 거에요. 아기 예수의 출생 사건에 대해서 거기서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목자를 거기에다가 집어넣는데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면 네가 보는 것을 네가 천사에게 들은 것을 확인하라는 그런 업무가 주어진 거에요. 업무가.


업무가 주어지게 되면 후딱 이 동방박사는 그냥 보고 내빼야되지요. 할 수 없어요. 이거는 목자가 나쁜 짓을 했다는게 아니고 완료를 포기하고 난 뒤에 자기가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에요. 여기서 뭐가 나타나느냐하면 바로 윤리와 도덕은 여기에 낄 자리가 없습니다. 윤리, 도덕 빼고 주께서는 초대합니다.


윤리, 도덕 다 버리면 뭐냐 하면은 이거는 세상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되니까 윤리, 도덕 가미해가지고 미완료된 나를 현재 형편을 더 낫게 해보자는 그러한 시도는 이 세상에서 하거든요. 세상에 이 나이 먹도록 철도 없이 앞으로 바르게 살아야지. 이런 것은 완료가 아니고 미완료에요. 그건 노림수가 있다고. 이것보다 더 좋은 환경에 대체물로 내가 탈바꿈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희망을 갖는 거에요.


그러나 목자가 온 것은 뭐냐 하면 그 완료된 것이 그냥 침투하는 겁니다. 네가 아기 예수 바톤을 천사에서 아기 예수께 바톤을 아기 예수께 넘겨버리는 겁니다. 넘겨버리면 아까 이라크 폭격하듯이 군데군데 낯설기 짝이 없는 특이한 사건들이 팍팍 터지지요. 우리는 여기서 박수치고 싶은데 너 와. 초대해요. 우리는 가기 싫은데 네가 와서 목격자 해.


그러니까 우리의 삶 자체가 정리해 봅시다. 성도는 성도의 삶 자체가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나는 나 구원받기 위해서 주께서 찾아온 줄 아는데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어떤 대결장을 형성하는데 네가 거기 가담하라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거에요. 인도한 거에요. 본의 아니게.


그러니까 이게 상당히 난감하죠. 난감한데 기쁜 것은 바로 그러한 현상이 있거든 우리가 완료되었음을 구원의 완료되었음의 소속이다 하는 사실을 도리어 기뻐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잠시 스스로 예를 상상할 경우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어떤 기차를 타고 역에 내렸는데 아무리 봐도 기차역 내린 그곳이 생소하고 생전 처음 보는 도시, 마을에 내렸어요. 내려가지고 보니까 내가 타던 승용차 저기 있고 또 승용차 보니까 내가 보던 성경책 차 안에 들어있어요. 차 문은 마침 안 잠겨가지고 열고 승용차를 타고 그 다음에 기차역에 내리니까 어느 집에 가야해요? 우리 집에 가야죠. 우리 집에.


우리 집에 가야 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도시라서 우리 집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있어도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 여러분 어떤 식으로 해야겠어요. 이런 경우에. 전부다 낯설어요. 생전 처음이에요. 전혀 기억나지를 않아요. 이게 기억상실증 걸렸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간에 모든게 하나도 생소한 도시다.


그러면 거기에 네비게이션을 딱 트는 겁니다.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뜨는게 우리 집 뜨지요. 제가 왜 이런 예를 드느냐 하면은 우리 집을 하고 네비게이션 시키는대로 가보세요. 가보면 모든게 생소해요. 한번도 안 가본 길이에요. 왜 그럴까요? 이 땅이 나의 선택이 아니고 본래적이죠. ‘본래적’, 처음부터 있었던거죠.


그렇다면 예수님의 나라 이 천국이라는 것이 이게 또 역시 본래적이에요. 이 출신이어야 이 나라에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줄곧 태어나서 어디서 살았느냐 하면은 우리가 내가 다루었던 이 세상에 살다보니까 천국 가는 길이 전부다 생소합니다.


그래서 여기 뭐냐? 대결장으로 초대될 때 여기 조건이 있어요. 뭐냐? 현재 내가 변화된다는 조건하에 초대되는 거에요. 현재 내가 변화된다는 조건하에. 변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가 없는 겁니다. 변하지 않으면. 그래서 가보니까 다음 500m앞에서 오른쪽으로 가세요. 오른쪽 가봐도 모든 건물 처음 보는 건물이에요. 모든게 생소하고 처음이란 말이죠.


생소하고 처음이니까 뭐가 동원할 수 없습니까? 내 판단과 내 선택과 내 결정은 무용지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것이 바로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지금 우리가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유 목사님 요즘은 우리가 주께서 말씀하시면 알아서 갑니다 하는데 그거는 내가 변화되기 전에 그 의식으로 내가 천국 가는 방법을 고집하기 때문에 변화 안 되도 천국 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기존의 내 방식, 내 구원 방식 자체가 변화 돼야 돼요. 어제 알았던 구원방식이 오늘 되면 이게 취소가 되고 무용지물 돼요. 어제 알았던 거 가지고 오늘 내가 조심 있게 가겠습니다. 안돼요.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에요.


왜냐하면 완료는 포인트 이동은 천사와 주님이 알아서 하기 때문에 어제 알았던 것은 어제 것 알던 내 고장이고 내 마을이고 나 아는 사람이고 저 약국은 전에 내가 가봤고 저 목욕탕은 전에 12번도 더 가봤고 하는데 막상 딱 주께서 딱 조치를 하니까 없고 약국도 없고 내가 알던 것은 없어져요. 내가 알던 것.


그러면 어떤 상태가 되느냐 하면 지금의 나의 본래적이라는 이 자체가 이게 개선되야 되고 본래적은 주님만 아시는 거에요. 어디? 네비게이션 안에. 주님만 아시고 내가 알던 것은 전부다 내가 알아서 취소 시켜 버려야 돼요. 주여 이 동네가 내가 살아야 될 동네가 아니군요. 그저 시키는대로 300m 앞에서 좌회전하시고 그냥 이끌어만 주시옵소서. 이끌어만 주시옵소서. 가게 될 때 우리는 어디에 골인되는가? 


시편 23편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방금했던 이게 중요한데요 제가 왜 이런 예를 드느냐 하면은 오늘 새벽꿈이 이 꿈이었어요. 하 놀랍게도. 차는 빨간 차 내 차 맞는데 성경책을 안고 들어갔는데 보니까 그 동네가 우리 집이 어딘지를 모르겠어요. 그래서 꿈속에서 내가 치매 걸렸나? 벌써 치매 걸릴 나이인가?


그러면서 우리 집을 하니까 네비게이션이 인도하는 곳 마다 생소하고 생전 처음이에요. 하면서 생각나는게 시편 광야 생각나고 불과 구름기둥 생각나고 시편 23편 생각났어요. 23편 보게 되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렇게 되어있지요.


방금 이걸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한번 들어보세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있지요?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지요. 이게 인도한다는 말은 나의 선택을 완전히 묵살하는 거에요. ‘묵살’.


그리고 내가 선택했다면 절대로 4절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안갑니다. 안 가는데 주께서 가게하세요. 안 가는데 가게한다고요. 주여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생하려고 내가 예수 믿는거 아닙니다. 우리는 손사래 쳐도 소용없어요. 가야돼요. 이 땅이 생소해야 돼요. ‘생소’.


내가 살던 이 꽃피는 산골이고 뭐고 간에 복숭아 꽃 펴도 소용없어요. 내가 이 세상 삶을 살 때 익숙한 고향이지. 이 곳에 내 고향이 없어요. 그러면 어디로 가느냐? 그건 몰라요. 몰라야 돼요. 믿습니다 하지 마세요. 우리는 아예 믿습니다 하면 안 되고 몰라야 돼요. 믿습니다 하면 내가 자꾸 내가 요령을 부리고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알아서 가겠습니다 이렇게 된단 말이죠.


윤리, 도덕과 내가 아는 믿음과 경건 신학 교리 복음 다 동원해가지고 내가 나를 끌고가려고 하는 거에요. 이거는 시편 23편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내게 상을 베푸시고 그 다음에 뭐냐 하면은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마지막에 내가 어디에 거하리로다? 내가 어디에 골인해요?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집은 우리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 우리 힘으로 못 찾아갑니다.


지금 내가 좀 복음 아는데 알려만주시면 찾아서 가겠습니다. 안돼요. 지금 네 모습은 내가 안 받는다. 네 모습. 항상 같이 있던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들이라도 주께서 point 이동이 되게 되면 그 아들과 자식과 아내와 남편이 생소해야 돼요. 생소해야 돼요. 심지어 누구십니까 이럴 필요는 없지만.


“어제 알던 당신하고 오늘 보니 좀 다른거 같아.” “어떻게 다른데?” “어제 같으면 같이 천국 갈 거 같았는데 오늘 보니까 갈 길이 다른거 같애.” 라든지 “당신 변했구나.” “그래 변했어. 내가 변한게 아니고 이상하게 변했어.” “우리 애가 하는 생각이 전부다 마귀 생각 같애.”


이상하게 모든게 마땅히 당연히 내 사람이고 함께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때까지 나의 박힌 교리로 무장된 조작된 자아. 자아의 조작. 거기에서 너무 익숙해지려고 애쓰다보니까 있는 거지 막상 주님께서 성령으로 임할 때는 뭐냐 하면 날마다 이겁니다.


주께서 날마다 생소하라. 어차피 이곳에 네 집 아니거든. 이곳이 네 집 아니라면 이곳이 네 집 답지 않아야 되는게 정상 아니냐 이곳이. 그렇게 정들고 원한관계 또는 사랑관계 애증관계 있더라도 어차피 다 손 떼고 가야 된다 이 말이죠.


목자가 그냥 양 치는게 적합해요. 하지만 목자가 예수님을 알고 양치는 것과 모르고 양치는 사이에 세상도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지만 본인도 본인이 예상 못하게 다른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일까요?


아니에요. 계속해서 목자는 계속 달라질 거에요. 달라지게 되면 아까 이야기한 미완료 대체물 그게 얼마나 헛방이고 쓰잘데기 없는 쓸데없는 기대치를 내가 노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되고 싶은 나, 내 결핍을 마저 해소시키는 내가 되기 위해서 그동안 신학과 교리, 복음, 윤리, 도덕 가지고 얼마나 거기에다가 투자의 투자를 했습니까?


이 정도 하면 구원의 만족스러운 구원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는데 그거 다 과거지사입니다. 다 옛날 이야기에요. 아 옛날이여. 아 옛날이여. 어제만 해도 옛날이거든요. 다 옛날 일. 다 부질없는 이야기에요.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잠을 자도 주께서 은혜를 주시면 모든 것이 확달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감사거리도 아닌데 이런거 작은거 하나 전부다 고맙고 감사해요.


고맙소. 진짜 고맙고 감사해요. 김호중이라는 가수가 깡패 될 때는 자기 선생한테 고맙소 라는 소리 안했지요. 자기가 가수되고 난 뒤에는 찾아가가지고 고맙다고 안동예술 고등학교 가서 공연 한번 하고 고맙소 라고 이야기했지요. 자기가 성공하고 난 뒤에 뒤돌아보니까.


비로소 시편 24편이 이게 내가 달성하는 나의 대체물이 아니라 주님의 완료, 주님이 스스로 길을 만드는 주님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길을 만드는 작업에 우리가 휘말려들어간 거에요. 목자같이. 목자가 한 게 뭐 있다고 구경만 했지. 아기 예수 구경만 했지. 저 아기 예수와 나와 관련성 있다는 거에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인식의 변화입니까? 단군의 아들도 있고 이성계의 아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저 먼 나라 이스라엘 남의 나라 수천킬로 떨어진 남의 나라 하늘의 아들하고 그분 예수하고 나하고 무슨 관계있어요? 무슨 관계있어요? 아무 관계없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관계가 있는 거에요.


지금은 관계가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완료고 그 완료 노선에는 어느 집? 여호와의 집은 깜깜 무소식 우리는 몰라요 우리는 찾아갈 수가 없어요. 그냥 네비는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는데 매일같이 인도해. 네비 고장나면 큰일난다 이 말이죠.


여러분 일사각오라는 영화 혹시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일사각오. 제목 들어보신 적 있어요? 아주 뭐 비장하지요. 이게 1925~1944년 사이에 주기철 1944년 11월달인가 그때 죽었으니까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에요. 이 사람이 47살에 죽었거든요. 그때 13살 때 교회 다녀가지고 평양 산정현 교회에 다니고 제목도 아주 비장해요. 일사각오. 죽기로 각오했다.


들어보니까 어떻습니까? 뭔가 수상한 냄새 안나요? 자칫하면 일사각오 주기철 목사가 누구를 대체할 수 있어요? 예수님이 했던 인도하심을 자칫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은 눈에 안보이고 주기철 목사 역사적이니까 주기철 목사처럼 되겠다고 하는데 되겠다고 할 경우가 굉장히 큰 거에요. 왜? 신사참배를 하는데 본인이 나서서 신사참배를 거부했어요.


그 당시의 모든 목사들은 노회를 만들어서 합동해서 전부다 신사참배하기로 했는데 주기철 목사만큼은 신사참배를 안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신사참배 안한다고 해서 일제시대 때 다른 교회를 봐주는게 아니고 형사들이 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전에 먼저 덴노이까라는 일본 천왕 신에게 세 번 절을 하는 순서부터 묵도합시다 하는 그 시간에 세 번 절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목사가 본격적인 예배하도록 형사들이 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목사가 먼저 자 다같이 일어서서 천왕님이 계시는 동쪽을 향하여 절합시다라고 목사가 이야기하는지 안하는지를 형사가 같이 예배 참석해가지고 형사는 믿음 좋았을거야. 하도 예배 참석하니까. 형사가 그걸 조사를 해서 목사가 그대로 하는지 안하는지를 지켜보는 거에요.


그러면 만약에 지금 그 시대가 지금 이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 이 시대 그 시대지만 한다면 목사님 어떻게 대처하겠어요? 우선 천왕에게 절을 하면서 감사의 예를 드려야 돼요. 천왕한테. 우리가 얼마나 미완료인지를 이런 환경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우리가 충분하게 죄인인 것을 죽어 마땅한 것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 옆에 있는 형사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형사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거든요.


그러니까 감사하다는 말 들으니까 야 우리 편 아니냐 할거란 말이죠. 하여튼 주기철 목사는 요령이 없어. 복음을 이야기하지만 정치적이야 내가 보기에는. 자꾸 독립운동하고 예수하고 자꾸 결부를 시키는 거에요. 아 참 그 영화 보면서 나 얼마나 답답했다고요. 아 누가 옆에서 복음 이야기하는 사람 없나. 그렇게 훌륭한데 복음을 몰라. 복음을 몰라.


범사에 감사하라 했잖아요. 범사에. 일본이 아니고 공산당이 와도 괜찮아요. 감사하면 돼요 공산당이 오더라도. 주기철 목사의 가장 나쁜 점은 뭐냐 하면은 바로 본인이 선택했다는 거에요. 자기가 출애굽기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0장에. 그것을 근거로 해서 선택을 한거에요. 여호와 믿으면 우상이 아니고 일본천왕 덴노이까 그거 믿으면 우상이라고 본인이 선택했단 말이에요. 본인이 왜 선택합니까? 본인의 결핍 때문에. 결핍. 결핍 때문에.


이건 중요한 순간이야 이건 만약 우상숭배하게 되면 나는 지옥이다. 자기 여호와의 집을 본인이 찾아가는 거에요. 본인이 윤리와 도덕과 정결함과 단호한 일사각오의 신앙 가지고 들이미는 거에요. 멋있는 자기를 대체물로 앞장 세워서. 그거는 미완료입니다. 그래서 일사각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아 정말 이것이 최고의 한국의 모범적인 목사라고 한다면 정말 한국에 문제 있다. 뭘 모르느냐 하면은 십자가를 몰라요.


십자가 안에 결여의 자리를 만들어놓고 결여한 자리란 미흡함 빠져있는 구멍 이런 뜻이에요. 빵꾸난 것. 결여예요. 모자람의 자리를 만들어놓고 우리보고 여기에 들어가게 합니다. 못난 놈 있잖아요. 못난 놈. 못난 놈 누가 이야기했어요? 이순재. 예이~ 못난 놈. 세리, 창기 여기 다 집어넣거든요.


이 자리가 우리는 완벽에 완벽을 기하여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는 갖은 교리와 신학과 성경지식을 동원해서 내가 알아서 완벽을 채우려고 하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뭐냐 하면은 새로운 point 이동을 통해서 그 생소한 환경에서 지금껏 내가 익혔고 노하우라고 여겼던 모든 남들 이기는 그러한 신앙적인 노하우가 새로운 환경을 줌으로써 맹탕, 아무 짝도 소용없게 만들어요. 써먹을 데가 없어요. 써먹을 데가. 써먹을 데가 없게 만들어요.


그럼 졸지에 써먹을 데가 없으면 난 졸지에 뭡니까? 무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쓸데 없는 자 그래 그거 좋다. 그걸 집어넣어 빈자리에다가 이 구멍에다가 집어넣는 거에요. 빈자리에다가. 빈자리를 뭐로 포위한다? 십자가 피로 포위하는 거에요. 십자가 피로.


제가 주일날 설교했지만 이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는지를 몰라요. 인간은 신은 같은 신인 줄 알아요. 천주, 이슬람 신은 다 같은 신인 줄 아는데 주께서 딱 오실 때 그 신들은 하나의 신들이 아니고 사람마다 각자 각자의 신 다신의 세계인 것을 알려주는 거에요. 알려주고 거기에서 진짜 신은 뭐냐? 주일날 설교했잖아요.


나 간다. 단 하나의 원칙만 만들자. 피 준비해라. 피 발라라. 나 갈게. 우리 이래서 진짜 하나님의 원칙을 죄인을 통해서 우리가 수립하자. 그게 진짜 하나님입니다. 그게 역사적, 애굽의 맏이 다 죽었으니까. 애굽의 맏이 다 죽었지요. 그리고 point 이동해서 베들레헴 두 살 아들 다 죽였지요. 다 죽였지요.


여러분 한번 물어보겠어요. 사람이 죽인 인간이 많습니까? 하나님이 죽인 인간이 많습니까? 노아 홍수 보세요. 노아 홍수. 이거는 다 죽였어요. 하나님은 신종 코로나 병균처럼 만들었어요. 모든 인간. 아이고 김목사 오셨습니까? 네 이장로 오셨습니까? 실제로 뭐냐? 병균체 오셨습니까? 마스크 하세요. 지금은 신종코로나 때문에 전부다 마스크를 하세요. 무슨 뜻입니까?


“나는 당신을 병균을 옮기는 숙주로 간주하겠습니다 김장로. 이집사님.” 말은 이집사인데 안에 뭐가 있느냐? 당신은 나에게 병균을 옮겨가지고 나의 결핍을 조장할 수 있는 내 꿈을 당신은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는 그러한 이집사님 안녕하세요 이런 거에요. 누가 그렇게 했어요? 하나님은 인간을 병균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숙주로 만들어 버렸어요.


하나님이 죽인 자가 사람이 죽인 자보다 더 많아요. 그래도 좋다고 사랑의 하나님? 무슨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다 죽이는 하나님이에요. 조폭의 하나님 해도 모자라는데. 십자가는 여기에 결여, 일종의 참새 어미가 참새 알 품을 때 나무 위에 집을 만들잖아요. 그때 참새는 없고 계란은 자기 몸에 있지요. 계란 아니죠. 자기 알을 낳게 되면 그 집에 보금자리에 속에 담기잖아요. 그게 바로 그 자리에요.


없음의 자리에 어설프기 짝이 없는 자기 스스로 설 수 없는 갓난 새끼 새들을 여기에 딱 담아 버리는 겁니다. 이게 twelve 거든요. 12. 12제자 아닙니까. 12제가 딱 담아버려요. 그런데 뭘로 합니까? 하나의 원칙. 십자가 피와 살. 피와 살이 생명이에요.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 마지막 만찬 할 때 뭘 부탁했어요? 뭘 하라 했습니까? 없지요. 기껏 하라하면 이거에요. 먹으라. 먹으라. 하나밖에 없는 내 살과 내 피를 나누어먹어라. 나누어 먹게 되면 공통적인 요소가 결국 예수님께로 전부 회수가 되겠지요. 똑같은게 갔으니까.


너 잘났다 나 잘났다 할 수가 없어요. 똑같은걸 먹고 똑같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의 것, 이 어설픈 나의 것이 추가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한 예수님의 그 point 이동도 우리들 입장에서는 생소하기 짝이 없어요. 왜?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책임지기 때문에 이게 익숙한 거에요.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바보 등신 만들어가지고 죄인 만들어가지고 네 자리 여기 있다 하고 십자가에다가 여기 안전벨트하자. 안전벨트해놓고 못난 놈. 여기 못난 놈 다 집어넣는 거에요. 나는 잘난 놈 부르러온 것이 아니고 못난 놈 부르러온 거에요. 못난 놈. 병든 자를 부르러온 거에요. 병든 자. 죄인, 병든 자.


그러니까 십자가는 병든 자 해놓고 앞에서 십자가로 둘러치는 거에요. 마치 암탉이 새끼를 품은 것처럼. 이게 진짜 하나님이에요. 이 원칙 외에 다른 원칙 추가하게 되면 그게 뭐 예수고 하나님이고 전부 다 가짜입니다. 전부 다 가짜에요. 문제는 이거에요. 문제는 본인이 못난 놈 하면 되는데 평소의 우리의 삶이 잘난 체 맨날 잘남을 보거든요.


아까 유투브 첫 번째 강의 있잖아요. 거울 보면서 거울 볼 때 뭐냐 하면은 못난 거 확인할려고 거울 봅니까? 이만하면 잘 빠졌지. 잘난 거 확인하기 위해서 거울 보잖아요. 거울을 볼 때에는 첫 번째 할 때 뭐가 없다 했습니까? 타자가 없죠 ‘타자’. 남이 없지요. ‘남’. 남이 없이 혼자는 잘났어요. 그런데 계십니까 하고 누가 일가친척 특히 시어머니 나타나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못난 놈 되는 거에요. 빨리 저거 갔으면. 남이 등장하면 안돼요.


그래서 자꾸 현대인들은 홀로 있고 싶어 해요. 홀로 있고 싶은데 또 외로울 때 있잖아요. 외로울 때 보충하기 위해서 여기에 멋진 매개체 하나 들어갑니다. cat과 dog. 개와 고양이 들어갑니다. 개와 고양이 빈 데 있는, 들어가서 말 잘 듣거든요 그거는. 내 잘남에 훼손하지 않습니다. 내 잘남에. 남이 오면 후딱 보내버리고 심심했쬬~~얼른 개 끌어안고 합니다.


이런 말은 뭐냐. 나는 나로 완벽하고 싶어. 나는 나로 자족하고 싶어. 만족하고 싶어. 전혀 완전이 없고 결핍을 나름대로 해소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거에요. 그런데 이거는 노골적인 결여가 아니고 결여를 오히려 내부적으로 감추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꾸 미완료가 되어버려요.


자, 그렇다면 여기서 첫째 시간 마치기 전에 정리해보겠어요. 주님의 십자가로 다 완료되어 있지요. 자기 백성 건집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완료 우리가 알고 있는 십자가 완료만 생각하는데 제가 전에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예수님 십자가 달릴 때 십자가 하나였어요? 세 개였어요? 세 개였지요? 하나의 세트다 세트.


다시 말해서 이 결여의 자리 강도죠. 강도의 못난 놈 강도의 자리까지 세팅되서 완료가 되는 겁니다. 이 전체가 완료에요. 십자가도 완료고 옆에 죄인이 붙어있어야 완료가 되거든요. 그 완료를 베드로한테 보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보내주는 거에요. 우리에게도.


그러면 우리가 여기 있는데 우리는 미완료에서 완료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성령이 와버렸다. 성령이 와버리면 우리 안에 이 십자가와 세팅된 프레임이 액자, 틀. 틀이 그대로 우리에게 이미 도착을 해버리면 나는 내가 좀 더 나아지고 싶은데 이 성령으로 인하여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더 못난 놈이 되는 거에요.


왜 그러느냐 하면 내가 가만있으면 못난 놈 안 되는데 왜? 익숙해져있으니까. 나로 하여금 갑자기 너는 이제 저 세종시에 가가지고 취업해서 살아라. 그럼 세종시 그 동네는 내가 생소한 동네 아닙니까. 지금까지 여기서 경남에서 할머니들하고 친해가지고 인기 짱이었는데 거기가면 또 인기를 새로 모아야 돼. 모든 것을. 결혼도 마찬가지고 하는 모든 일이.


그래서 결혼하고 난 뒤에는 맨날 친정가고 이러잖아요. 친정가고. 요새 여자분들은 결혼하고 집 얻을 때 아빠, 엄마 아파트. 전에는요 빌라나 아파트 옆동을 샀대요. 요새는 그렇게 안한답니다. 아래층을 산데요. 아니 윗층을 산대요. 그래야 쿵쾅거려도 자기는 놀러다니고 엄마, 아빠가 돌보고 자기는 놀러다니고 이제. 옛날에는 그래도 양심 있어가지고 옆에 요새는 양심이고 뭐고 그것도 귀찮아. 바로 윗층에다 바로 한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놀던 가닥, 옛날에 나를 모든 착함을 동원해가지고 못난 놈이 아니고 갈수록 더 잘난 놈이고 싶어 하는데 여기 상황을 그런 딸을 주께서 어디로 보내느냐 갑자기 남편이 베트남이나 아니면 저기 라오스나 이런 쪽으로 보내서 아 도대체 이거는 밥 먹고사는 것도 힘들게 되었어요. 그럴 때 진짜 내가 못난 놈 맞구나.


상황이 point 이동이 상황이 바뀌면서 우리로 하여금 대결자, 어떤 대결자? 완전함과 미완료가 충돌된다. 이 세상에 충돌점을 갖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결장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겁니다. 자, 이럴 때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잖아요. 첫째 시간 마지막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에베소서 3장. 완료의 내용은 쉿 비밀이에요. 미리 알려줘버리면 내가 자꾸 대처하려고 해요. 그런데 에베소서 3장에 보면 이런 말씀 있어요. 3장 9절에 보면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함을 드러내게 하사”.

간단하게 믿음은 믿음의 내용은 쉿! 비밀이에요. “아이고 목사님 저 압니다. 믿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잖아요.” 하잖아요. 그 십자가를 보게 되면 내가 아는 내가 현재 이 상태에서 아는 십자가하고 내일되고 모레되고 주께서 친히 인도하는 십자가가 폭이 달라요. 내용이 달라요. 십자가 맞아요. 예수의 피로 구원받는거 맞습니다.


그러나 피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는 내일 되 봐야 내일치 또 준비되어 있어요. 여호와의 집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인도하니까. 오늘 십자가는 치킨과 더불어 먹을 수 있는 십자가인데 내일 되니까 교도소 가서 치킨 맛도 못 보는 십자가. 그런데도 십자가에요. 그 비밀을 어둡고 침침한 십자가와 밝은 십자가 그런데 십자가는 한결같거든요. 왜? 완료기 때문에.


완료인데 여기서도 완료고 저기서도 완료인데 우리는 어디에 익숙해졌느냐 하면은 내가 익숙한 십자가 감당할 수 있는 완료만 내가 완료라고 기분 째지면서 입 찢어지면서 기분 좋아했단 말이죠. 주께서는 그렇게 안해요. 이런 지경에서도 네가 완료함에 초청받은걸 네가 인정하느냐? 그걸 묻지요.


그러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간단해요. 비밀이에요. 비밀인데 바깥에 표현할 때는 십자가. 합치면 십자가 안에 담겨 있는 비밀. 어떤 비밀? 십자가를 스스로 풀어내시는 하나님의 프레임. 세팅된 것이 안에 들어와서 십자가를 높이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높이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못난 놈 되게 하시는 그 열심. 그 쉬지 않는 주님의 충실하심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은혜 받은 상태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내가 못난 놈 되거든 은혜 받으신 거에요. 돈이 몇 푼 날라가고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잘난 놈 되거든 그거는 마귀가 한 7마리 마귀가 찾아왔다고 보시면 돼요. 내가 잘난 사람 되면.


특히 전도해서 먹힐 때 우리가 얼마나 대견한지 몰라요. 전도를 하든 헌금을 하든 뭘 하든간에 결과적으로 아 내가 이 정도까지 대단하구나 하면 그건 마귀 들은 거고 내가 천하의 쓸데없는 인간이고 이 결여의 자리가 빈자리가 빵구난 자리가 내가 딱 적합한 자리, 딱 적합한 자리.


그저 도움만 필요한 도움만 쳐다봐야 될. 새집에 새끼 새가 아무 염치도 없이 그냥 엄마 부리만 바라보면서 입을 쭉쭉 벌리면서 지렁이 달라고 외치는 그 보금자리 있잖아요. 새 보금자리 그 안에 그 둥지에 들은 것. 둥지 하니까 노래 생각나네. 내 품에 이건 다른 이야기고. 둥지. 주님 안에 있는 둥지. 그 안에 있어서 못난 자가 되는 거에요.


못난 자가 되면 어떤 점이 좋으냐 하면 못할게 아무것도 없어요. 못난 놈이 뭘 해도 못난 놈인데 내가 이건 됩니다 이건 안 됩니다 아이고 뭐 그럴 필요 없어.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어떤 것도. “너 교회 그만둬.” “예.” “나가 죽어.” “네.” 못났는데. 모든 걸 다 할 수 있죠. 모든 걸.


엄마 또 나 수학 0점 됐어. 나 대학 안가고 노래할래. 아이고 잘했어 잘했어 내 아들. 물론 아직까지 그런 경지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자식은 내 잘남의 표상이기 때문에 내 못난 나의 부족분을 자식이 채워주기를 항상 노리고 있거든요. 보람이 그건데. 나는 못나도 너는 잘나야 된다. 그런데 엄마 나 방탄소년단 이러면 골치 아프거든요. 방탄소년단 그게 몇 명인데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얼마나 많은데 자기가 된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주께서는 환경을 새롭게 해서 우리에게 심적 변화가 일어나게 해가지고 지금껏 내가 잘도 했다는 것은 다 내가 잘나기 위해서 시험 들어가지고 내가 얼마나 멋있는가를 표내기 위해서 내가 자아를 조작했던 엉터리같은 그런 나였구나. 그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대조적으로 알려주는 겁니다. 십자가는 옆에 무슨 자리가 있다? 결여의 자리, 빠져있는 자리, 빈자리, 강도의 자리, 세리의 자리, 창기의 자리가 항상 마련 되서 이게 있을 때 다 이루신거에요.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2장 29절 (못난 자) 200519a-이근호 목사.hwp (157.0K), Down:5
게시물8,547건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읽음
9012   강남 모임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이명직 20-07-12 98
9011   서울의존강의20200709b 베드로전서4장 11절(끝장)-이 … 이하림 20-07-12 41
9010   서울의존강의20200709a 베드로전서4장 11절(끝장)-이 … 이하림 20-07-12 40
9009   광주강의20200626b 마가복음15장 16절(과거공유) 한윤범 20-07-11 38
9008   대전-122강 마태복음27장5절-10절(피밭)20200630-이 … 이하림 20-07-10 42
9007   대전-60강 사무엘상18장17-절(끝과 중심)20200630-이 … 이하림 20-07-10 43
9006   49강-호 13장 4-8절(실패의 기쁨)200708-이 근호 목사 오용익 20-07-09 57
9005   319강-YouTube강의(시공간 마태복음 26:64)20200707-… 이하림 20-07-08 59
9004   318강-YouTube강의(내기 욥기 1:9)20200707-이 근호 … 이하림 20-07-08 38
9003   서울 강의 안내 이미아 20-07-06 59
9002   20200703b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텅 빈 형상 한윤범 20-07-06 48
9001   20200703a 울산강의-레위기 26장 : 텅 빈 형상 한윤범 20-07-06 54
9000   안양모임 안내(7. 9.목) 공은주 20-07-06 46
8999   38강-욥기 11장 7~11절(다른 하나님)20200705 이근호 … 송민선 20-07-05 56
8997   20강-빌 3장 4-6절(율법의 관)200705-이 근호 목사 오용익 20-07-05 84
8996   주일학교 설교 / 베드로와 닭 / 200705 정인순 20-07-05 37
8995   강남 모임 안내 (7. 7. 화) 이명직 20-07-05 40
8994   강남-누가복음 2장 49절 (노선변경) 200616b-이근호 … 홍민희 20-07-04 37
8993   강남-누가복음 2장 49절 (노선변경) 200616a-이근호 … 홍민희 20-07-04 46
8992   대구 모임 안내 이근호 20-07-03 28
맨처음 이전 [1] [2] [34 [5] [6] [7] [8] [9] [10] 다음 맨끝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