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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1 18:28:32 조회 : 50         
강남-누가복음 2장 29절 (못난 자) 200519b-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2장 29절 (못난 자) 200519b-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처음 한 것 여러분 기억이 안 나시겠지만 제가 말하면 기억날 거에요. 누가복음 처음하면서 이 세상은 공동묘지라고 했어요. 공동묘지에 잔디밭이 있지요.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오~ 텔레토비에 나오는 사총사. 그들이 잔디밭을 뛰어놀아요. 그런데 전부 그 안에 죽음 공동묘지 위에 뛰어노는 거죠. 공동묘지 위에.


누가복음은 뭐냐 하면은 성령 받은 자가 이 세상을 공동묘지로 보고 맘껏 뛰어노는데 그게 주님께서 만들어놓은 새로운 질서죠. 질서체계. 질서라고 하는 것은 규모가 있다. 짜임새가 있다는 뜻이에요.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 모든 얘기가 예수님께서 만들어나가는 질서체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질서를 잡아가는데 그 조건이 아까 조건이 뭐냐 하면은 공동묘지. 공동묘지에서 보라돌이 뚜비 여러분 외울 필요없습니다만은 시험에 안 나옵니다. 나나, 뽀. 이들이 어디서 나왔는가? 바로 공동묘지에서 나왔던 자거든요. 나왔을 때 여기 누가복음 1장부터 나온 겁니다.


구약은 반드시 성신인데 누가복음은 시작부터 뭐냐? 성신이 아니고 성령이에요. 성령 받은 자는 어떤 안목을 갖고 어떤 눈을 가진다? 세상 전체가 파란 잔디로 덮여있는 공동묘지로 덮여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보라돌이, 뚜비, 나나 얘들이 텔레토비 사총사 특징이 뭐냐 하면은 거칠게 없어요. 본인이 선택한게 아닙니다.


주께서 맘 놓고 밟으라고 모든걸 나의 질서, 주님의 천국질서를 위해 필요해서 내가 너를 성령 줬기 때문에 네가 거리낌 없이 어딜 가도 네가 마음 놓고 뛰어놀아도 괜찮다. 밟아도 괜찮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본인이 그렇게 할 용기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렇게 할 용기 없어요. 왜냐하면 사는 동네가 세상에서 사는 동네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한다고 해서 마음 놓고 할게 못되지요.


예를 들어 이제 마리아. 마리아가 꼭 내가 메시아를 임신하고 싶다 뭐 그런 생각 없지요? 그런데 마리아한테 허락을 안 받았어요. 일방적이에요.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데 이거 진짜 너무나 터무니없이 마리아가 임신을 해버렸잖아요.


마리아만 임신했는가? 갈라디아서에 보면 마리아만 임신한게 아니에요. 우리도 임신했어요. 모든 성도가 다 예수 그리스도 임신했어요. 모든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임신했는데 그것은 뭐 때문에 그러느냐 하면 네가 네 힘으로 잉태치 못하기 때문에 하늘나라 질서에 딱 적합하다는 거에요. 잉태치 못하기 때문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영이 안 나와요. 안 나오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해요. 왜? 이거는 내 능력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최적화된 존재들이거든요. 최적화된 존재들. 뭐 어떤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있는게 아니고 성령이 임하게 되면 바로 내가 누군지를 알려줍니다. 내 힘으로서는 못 빠져나왔다는 것.


이렇게 마음 놓고 뛰어다닐 그런 용기나 자신감이나 도대체 없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임신해서 애 낳다고 해서 막 뛰어노는게 아니죠. 누가복음에 3장에 보면 오히려 3장입니까? 2장 끝에 보면 부부가 마리아하고 그 남편 요셉이 아기 예수님 보고 소년 예수님 보고 막 나무래잖아요.


아버지한테 말도 안하고 너 어디 돌아다니느냐. 내가 사흘 동안 찾느라고 얼마나 애쓴지 아느냐. 오히려 나무래요. 나무랄 때 오히려 예수님께서 도리어 아빠 엄마에 대해서 가족들에 대해서 생소하게 없는 다른 이야기를 해버려요. 내가 아버지 집, 아까 했지요 우리 집.


내가 아버지 집에 먼저 가야되는데 쉽게 말해서 엄마 아빠는 우리 집 알아요? 이 말하고 똑같은 말이거든요. 우리 집도 모르면서 지금 우리 집에 가자고 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이 있는걸 몰랐습니까? 아빠 엄마가 들으면 이게 천재인지 돌았는지 그 말을 들으면. 아빠 엄마로서 키워준 사람으로서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어떤 13살 먹은 아이가 트롯트 노래 불러서 성공을 했어요.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다 누구 덕입니까? 하면 아빠 엄마는 아빠는 돌아가셨지만은 아빠 안 돌아가셨구나 생사람 잡겠다. 있어 가지고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이렇게 도와주고 이렇게 나와야 될건데 아빠 엄마 살아 있는데 우리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를 키웠다.


노골적으로 정동원이가 아주 노골적으로 이야기해버려요 노골적으로. 방송을 통해서 나는 아빠 엄마 없이 할아버지가 날 키웠다. 색소폰하고 전부 다 노래 가르쳤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럼 엄마 아빠 막 쥐어박고 싶지요. 그게 용기입니까? 자신감입니까? 아니면 본인이 본인의 솔직함입니까? 솔직함이죠. 솔직함이죠.


지금 여기에 성령께서 뛰어놀게 되면 내가 잘나서 이렇게 내 믿음 좋아서 그런 소리 안하겠지요. 그래서 누가복음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누가복음의 point 이동을 쭉 보게 되게 되면 난처하기 짝이 없는 쪽으로 성령께서 자기 백성을 계속해서 군데군데 퍽퍽퍽 일을 만들어요 자꾸.


제발 안 찾아왔으면 좋겠는데 찾아와버려요. 그 생소함, 믿음의 그 비밀, 숨겨진 그 비밀을 내가 있는 장소가 포인트가 있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주께서 만들어내는 내용이 누가복음 전체의 내용이에요. 간단하지요.


마치 그 들판에 불이 튀면 불꽃이 여기 튀고 저기 튀는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툭툭 불꽃이 튀는데 튀는 곳마다 거기서 완전과 불완전이 계속 뚜렷하게 경계가 나누어지는 일이 벌어지는 거에요. 그러면 누가복음이 오늘날 성령을 통해서 그대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이거는 뭐냐 하면 바로 우리 이야기되는 겁니다.


매일같이 우리는 생소함을 접하는데 그 생소함을 접했다 안접했다는 어떻게 아느냐 하면은 내가 역시 잘난 체하지만 역시 나는 못난 사람 맞습니다를 되새기기 위해서 주어진 내 인생과 내 상황이 그 남들 보기에는 어렵고 힘들지라도 나는 그 일에 대해서 짜증내거나 개의치 않고 이것도 과분합니다하고 후딱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요. 감사와 기쁨으로.


에이 이거는 더러운거 안 해 이게 아니라 아이고 또 주께서 일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맘으로 받아 주는 거에요. 그 중의 한 예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천사가 고관대작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니고 천사가 훌륭한 성직자를 찾아 가는 것이 아니고 천사가 누굴 찾아갑니까? 목자를 찾아가죠. 아주 비천한 직업의 목자를 찾아가는 겁니다.


목자를 찾아가고 아기 예수가 궁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목자가 바로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면서 아 주께서 일 시작했네. 일 시작했어. 보라돌이 일 시작했어. 목자가 보라돌이 되는거에요 이제. 마리아도 보라돌이. 뚜비 되고 뽀 되고 본인도 보기에 본인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나와 관련성이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는요 옆에 강도가 누가복음 거기만 나와 있어요.


오늘밤의 네 영혼 오늘밤에 너와 낙원에 가리라 누가복음에만 나와 있거든요. 그것도 하나의 point 이동입니다. 그 말대로 하면 강도는 필히 뭐가 돼야 돼요? 강도 안되고 싶어도 강도 돼야 돼요. 강도 어릴 때 공부 잘해가지고 천재가 되가지고 UN에서 활동 하던지 안 그러면 외교관 국회에서 하더라도 결국 강도 돼야 돼요. 코스가.


결국은 강도는 강도 돼서 못난 놈 돼야 돼요. 그리고 자기한테 절망해야 돼요. 나 자신의 어떤 가능성에 절망해버립니다. 이게 본인이 보기에도 일부러 절망하고 싶어서 절망하는데 일부러 절망케하는 이것이 자기한테 생소하고 자기한테 생소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그 세계가 나의 고향이 아니었었음을 다시 한번 그 순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자, 왜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공동묘지 이야기 텔레토비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여기 그 이야기가 불꽃처럼 툭툭 튀어나왔기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게 튀거든요. 21절에 보면 천사가 왔던 것을 예수님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바톤을 이어받으면 예수님한테는 완전 완료형이 돼요. 완료형이 되면서 23절에 주의 율법이 이제 빨리 나갑니다. 주의 율법이 어디로 모이느냐 하면은 예수님한테 율법과 아기 예수가 만나요.


이거 설명해야겠죠. 율법과 아기예수의 만남. 율법의 화살표가 있다면 그 화살표는 어디를 간다? 예수님을 겨냥해서 율법이 주어지는 겁니다. 예수님을 겨냥해서 율법이 주어진다. 예수님에 의해서 율법이 주어지게 되면 인간들이 말하는 선과 죄는 다 엉터리, 정답이 아니에요.


쉽게 말해서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 말도 맞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없다가 돼요. 죄를 알아야 죄를 짓지요. 죄를 알아야 죄를 짓지. 내가 지은 것이 죄라는 것을 이걸 죄라고 규정한 것은 그건 엉터리 개념이에요. 인간은 죄를 모르기 때문에 정작 죄 아니라고 하는 것도 죄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몰라요.


세상에 어느 인간이 물 마시는걸 죄라고 하겠어요. 방금 목말랐습니다. 이게 죄가 돼요. 왜냐하면 자향성, 의도. 천사가 와서 하는 말이 너 그 물 왜 마시느냐? 목말라서 마셨습니다. 대답하지요. 왜 목 안 말라야 되는데? 살고 싶어서요. 그게 바로 죄잖아요. 네 목숨을 사랑했잖아. 그러니까 이게 책잡힐라하면 책 안 잡힐게 없어요.


모든 것이 나한테로 모든 일이 나한테로 집약해놓고 율법 보면서 나한테로 초점이 맞는 모든 일, 이걸 잘한 일로 율법아 그렇게 옆에서 오냐오냐 동조를 해달라는 거에요. 그런데 제가 모든 율법은 어디로 갑니까? 나한테 가요? 어디로 갑니까? 예수님이라고 해도 되고 나 아닌 분. 나 아닌 분. 아 이거 성질나거든요.


세상만사가 비가 왔다. 왜 비 왔습니까? 예 예수님을 위하여. 정답이지만 그걸 좀 더 정답하려면 나 조질려고. 나하고는 상대 안할려고 비가 온다는 거에요. 오직 주님하고 상대한다는 말은 나는 나하고 상대 안하는 거에요. 나하고 상대 안해요. 상대 안해놓고 왜? 비왔으면 좋겠어? 세상이 구름이 너하고 상대했으면 좋겠어? 예! 이렇게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바로 네가 그런 마음 자세 가지고 물을 마셔도 그게 뭐가 되겠어요? 죄가 되겠지요. 정리합시다. 죄란 모든 율법이 예수님께 쏠림으로서 예수님이 규정해야 죄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죄 지어 놓고도 죄인줄 모르는 채 자기 정당성을 옹호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공동묘지죠 그냥. 죽은 거에요.


그러고 난 뒤에 뭐하느냐 여기 율법을 이렇게 삽입합니다. 비둘기 몇 마리지?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제사해가지고 드리죠. 그때 25절에 시므온이라는 드디어 이제 천사, 아기 예수하고 난 뒤에 첫 번째 등장한 불꽃. 보통 촛불집회 하면 촛불 가지고 옆에 사람 촛불 없으면 옆에 사람 불꽃 이렇게 전달해주죠. 그러면 갈수록 점점 더 파급되면서 그 천지가 환하게 되지요.


첫 번째 성령께서 이렇게 전달하는 첫 번째 사람이 시므온이에요. 시므온. 26절에 보면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그다음에 무슨 지시입니까? 성령의 지시죠. 성령의 지시죠. 제가 이렇게 26절 이렇게 시므온과 성령 나온 것을 설명하면서 행여나 여러분이 역시 시므온은 훌륭해 이러시면 안 됩니다.


결여의 자리, 결여. 빠진 자리를 염두해두시기 바랍니다. 세팅된 그 십자가와 결여의 자리를 지금 어디에다가 집어넣는다? 시므온 자리에다가 성령을 통해서 집어넣는 거에요. 시므온 훌륭하다 믿음 좋다 시므온처럼 살자 이러지 마세요. 그러면 안돼요.


성령이 오니까 그 다음에 27절에 초반에 보면 무엇의 감동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왜 자꾸 시므온이 뭔가 자기 빨래할 줄 알고 신발 갈아신을 줄 알고 옷 갈아입을 줄 알고 양치하면 치카치카하는데 왜 자꾸 성령이 등장합니까?


성령이 등장해야 양치질을 하게 되면 아 이건 진짜 해야 돼. 양치질하는게 왜 죄가 되야 되느냐 하면은 양치질이 왜 죄 되느냐 하면은 양치질을 몇 초간 최소한 몇 분 해야 하느냐 하면은 3분하도록 되있어요. 치과에서. 맞습니까? 최소한 3분하게 되어 있어요. 물론 치과에서도 이렇게 하는 치과 의사 없어요. 없는데 자기는 안하면서 다 가르쳐요.


내과의사가 술, 담배 하지마라 하면서 자기는 술, 담배 다 하거든. 양치질 3분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2분 59초 하게 되면 이건 뭐가 돼요? 죄가 되지요. 3분 5초 하게 되면 뭐가 됩니까? 죄가 되지요. 그러면 양치질하면서 뭐를 봐야 되느냐? 시계를 봐야 되겠지요. 가난해서 시계 없다면 이거는 죄 짓는 겁니다. 양치질할 때만 죄 짓는 거에요.


사람이 양치질이 죄라는 것은 인간이 행함 하나 벌리면 와락 어디서 날파리들이 법의 날파리, 선악의 날파리들이 공격용 드론처럼 웽~ 하고 달라붙어가지고 내가 본인을 그걸 조정해요. 지금 나는 2분 59초 드디어 3분이다. 신종 코로나 할 때는 손을 씻을 때 몇 초하라고 했습니까? 이거 모르는구나. 30초 흐르는 물에 씻으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생일 축하합니다 두 번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그럼 어떻게 하느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분명히 생일 축하합니다 두 번 했는데 끝나고 보면 8초 내지 15초. 후딱 해치워버려요. 왜?


모든 행동에 뭐가 달라들기때문에? 이 양심, 내가 그동안 걸쳤던 율법이라는 그 모든 법이 먼데 있다가 뭔가 행동할려고 하면 이것 할려고 하면 다 달려들어요. 이거 흘리지말고 다 마셔야 돼. 이거 다 마실거야? 1/5 마실거야? 되도 않는 고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5분의 1남기든 4분의 1 남기든. 하지만 1/4 하면 찝찝하고 1/5 하면 이게 익숙해졌던 거에요.


지금껏 내가 나름 나의 완벽을 추구했던 그 습관과 습성이 법이 되가지고 나를 잘난 것을 남한테 타인에게 증명해줄 법의 보조적인 법들로 둘러쌓인 나의 자아. 나의 자아가 법들도 둘러 쌓였어요. 마치 그것 하나면 징크스처럼 뭔가 벌 받을 것처럼 뭔가 하늘에 벼락 떨어질 것처럼 그렇게 하는거에요.


내가 이런 짓을 했으니 벼락 맞아도 싸다. 벼락은 여러분 나쁜 짓했다고 오는게 아닙니다. 그럼 세상사람 다 죽어야 돼요. 벼락은 왜 치느냐? 모든 중심은 누굽니까? 예수님께서 예수님 알리기 위해서 벼락치는 거에요. 우리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벼락 안 맞아도 이미 죽은 자에요.


벼락 안 맞고 지옥 갈 사람이 한두명이 아닙니다. 벼락 안 맞고 지옥 갈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고 공부 잘 하고 지옥 갈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에요. 집안 행복하고 하하 웃으면서 지옥 갈 사람이 죽을 때 까지 지옥 가면서도 웃고 있어요. 삐에로처럼 웃고 죽을 때까지 웃고 있으면서 지옥가요.


그러면 웃는게 죄입니까? 라고 물으면 안돼요. 지옥가고 천당가는건 누구 소관이냐 하면은 텔레토비 사총사를 공동묘지에서 끄집어내는 누구의 것이다? 성령이 주님의 영이 주체가 된다. 그래서 27절에 봅시다. 무엇의 감동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보세요. 네비게이션 아닙니까? 몰라요. 지금 시므온이 지금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싶지만 어느 쪽으로 어느 것이 우리집인지 아무도 몰라요.


다만 여기에 네비게이션에 우리집으로 되어있을 뿐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성령이 와서 찾아 오는 거에요. 시므온 착한 사람이다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성령이 찾아온 사람이지 착한 사람 아니에요. 찾아온 사람이에요. 그럼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 말하기를 목사님 안 찾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성령이 시므온은 찾아갔는데 나한테 안 찾아오면 어떻습니까? 라고 묻는데 그 해답이 또 누가복음 4장에 나와 있네요. 누가복음 4장에 4장 25절, 26절 제가 읽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죠. 많은 과부.


그것도 수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그 다음에 엘리야가 그 한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엘리야는 성신 받았지요. 시키는대로 하는 겁니다.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여기 시돈 땅에 있는 텔레토비. 보라돌이 같은거. 그에게만 갔다는 거에요. 가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은 완료성은 이 땅에서 나타날 때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면은 예외적으로 나타나죠. 예외적으로. 왜? 아무도 보이지 않고 그 사렙다 과부에게 왔기 때문에. 그러면 예외적이니까 이건 예외적인 것은 인간에서는 이것은 예견 못한거죠. 예견될 수 없는 거죠. 그게 바로 이 세상에 대한 고발의 방식이에요.


이 세상 보고만 한다고 하지 말고 오늘날 우리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에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예견을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예상 못하는 방식으로. 그건 왜 그러느냐 하면은 만약에 예상을 하게 되면 여기서 걱정 근심이 와요. 걱정, 근심. 대구강의를 좀 해보면 대구강의에서 했던 것.


예상이 되면 걱정, 근심이 되는 이유가 예상을 해버리면 선악구조 때문에 뭐냐 하면은 잘 될 때 망할 때를 필히 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본인이 걱정하고 있다고요. 그럼 잘 될 때는 뭐하느냐? 잘 될 때는 받쳐주기 위해서 여기 윤리와 도덕과 착함과 교리와 성실함과 착실함을 여기에다가 잘 될 때를 총동원해요.


동원하면 동원할수록 이것은 무엇이 점점 더 두렵다는 거에요? 이것 다 때려붙여도 망하면 나 어떡해? 가 점점 더 강렬해지는 거에요. 청군이 와~하면 백군도 같이 와~하는 거에요. 한쪽이 기 죽는게 아니고 절대로 이 망함에 기 안 죽어요. 실패에 대한 예감이 하여튼 슬픈 예감은 피해간 적이 없어요. 반드시 강렬하게 떠올라요. 내가 더 고집을 부릴수록.


그러니까 대구강의에서 이게 뭐냐 하면은 이게 지옥생활이라고 했어요. 지옥생활. 천국생활해도 시원찮은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 시간이 지옥으로 가득 차는 거에요. 안되면 어떡해 자꾸 걱정하는. 예상을 한다? 안한다? 예상을 못하게 만들어요. 예상을 못하게 만든다.


신종코로나 누가 예상했습니까? 예상 없습니다. 그럼 예상 없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예상하게 되면 피해간다. 예상하게 되면 피해간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게 뭐냐? 이게 뭐냐 하면은 아까 이야기한 대결장에 초청하는 거에요. 대결장. 완료와 미완료를 대결하게 하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피해감으로서 내가 나한테 손댄다고 예상한 결과 안 나온다는 사실을 미리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 받은 사람한테는 어떤게 좋으냐 하면은 거봐 나한테 성령 왔잖아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본인 입에서 그 말이 안 나오지요. 오히려 반문하지요. 저 사람들 안 왔는데 왜 하필 나를 찍었습니까? 이렇게 되지요.


그러면 나의 선택은 날라가버리고 주님의 선택이 강렬하게 작용해 버립니다. 그러면 그동안 내가 찍기 전에 내가 예상한 모든 나는 낯선 나, 그런 나하고 선택되고 난 뒤에 매일 어떤 상황 속에 point 이동된 상황으로 올 때 어제의 나는 이거는 갖다 폐기처분해야 될 나예요.


날마다 나를 폐기처분하는 거에요. 하루치 써먹었으니까. 일회용이거든요. 써먹었으니까 폐기처분하고 쓰고 또 그날 폐기처분하고 그냥 처분이 아니고 폐기처분. 에이 꺼져버려라. 폐기처분하는 거에요. 없애버리는 거에요. 그냥 놔두면 자꾸 예상을 해서 걱정, 근심을 일곱 마귀가 자꾸 들어와서 안돼. 매일같이 선택되고 매일같이 간택되는 겁니다. 매일같이.


그럼 주님께서 나를 선택 안해주면 어떻게 됩니까라는 선택이라는 말을 할 때는요.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는 예상은 나의 선택의 기준에서 주님의 선택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 선택은 구라입니다. 거짓말입니다. 낯설게 예상 못했을 때 선택이 되야만 선택이 돼요. 그러면 우리는 아낌없이 어제 했던 모든 얘기는 다 실없는 짓이었구나를 감사함으로 오지요.


따라서 감사 나오면 성령의 일. 억지가 나오면 악령의 일. 뭐 이런 논리가 다 있어. 이건 예상 못했잖아요. 이건 성령의 일. 성령의 일. 내가 만약 길을 가는데 어떤 주머니가 있더라. 있어 가지고 무슨 사람이 신문지를 버려놨어. 딱 보니까 오만원짜리 100장 500만원 들었어요.


그때 우리 어떤 마음 듭니까? 아 이런 은혜를. 이렇게 하겠지요. 그런데 만약에 오늘이 아니고 어제 뭐라고 예상했느냐 하면 만약에 나한테 500만원 있다면 나는 파출소에 갖다 준다. 이게 어제 예상이에요. 어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은 오늘이 안 되어봐서 몰랐어요. 오늘 딱 현장감에 집어넣으니까 파출소 같은 소리하고 있네. 주여 이걸 막 간증을 할 거에요.


하필 더도 말고 딱 500만원이 필요한데 주께서 500만원 주셨다. 주여 할렐루야 하면서 갖다 드리면서 주께서 살아계신 것 증언하고 싶다. 갑자기 이런 소리 나와요. 파출소 이야기 쏙 들어갔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지요. 와가지고 혹시 돈 못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결여. 주께서 뭐라고 합니까? 주께서 못난 놈~~~.


주께서 못난 놈 들추기 위해서 일렬의 적합한 시퀀스, 그러한 무대장치와 시나리오를 짠 거에요. 결국 돌고 돌아 못난 놈 되어버리는건 마찬가지. 27절 봅시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감에. 성전에 들어가게 하신 거에요. 전에 성전에 들어갔을까요? 안 들어갔을까요? 들어 갔지요. 그때 감정이 달라요.


딱 들어갔을 때 마침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자, 여기서 아까 다시 해봅시다. 목자가 누굴 만났습니까?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만났지요. 아기 예수 만났지요.


목자가 올 때 아기 예수가 응애 응애 하면서 손 싹 내밀었어요? 안 내밀었어요? 안 내밀었지요. 그때 아기 예수가 그냥 누워있는 그 시점의 그 역할은 목자가 보는 역할이에요. 그 다음에 목자 자리에 시므온이 들어갑니다. 아기 예수가 좀 컸어요? 안 컸어요? 컸지요. 아기예수가 요만할 때 목자가 아니고 시므온이 들어가는 거에요. 완료형에.


그래서 우리가 미리 완료형을 예상 못해요. 오늘 기도빨 될 때 주님 오셨으면 좋겠다. 아니에요. 이건 우리가 예상한 완료형이고 교도소 갈 때 완료형일지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우리가 병이 나서 누워있을 때 완료형일지 그거는 예상 못해요. 다만 소급해 볼 때 이런 환경 예수.


그러나 공통점은 뭐냐? 예수님 만나기 위해서 주께서 무슨 일도 다 벌리신다. 모든 일을 거기에 맞추어서 우리 하나 예수님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과 우리가 관련성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온 우주와 천사와 모든 권세를 다 동원해서라도 자기 백성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시므온이 가로되 주여 이제 말씀하신 대로 종을 어떻게 놓아줍니까? 납작하게 놓아준다. 신나게 놓아준다. 어떻게 놓아줍니까? 평안하게 놓아준다. 이게 오늘 제목을 이걸로 정합시다. 이게 뭐냐? ‘결연’. 빈자리 만드는 거에요.


십자가 자리 옆에 우리 자리 있지요. 우리한테 올 때는 누구 자리? 아기 예수의 자리 주님의 자리가 뻥하고 구멍이 뚫리도록 하시는 거에요. 누가? 성령께서. 성령께서 우리가 스스로 노력으로 윤리와 도덕과 착함으로 이게 마저 메워지도록 하지 않고 항상 여기에 틈이 생기게 만드는 겁니다. 주님은 다 계획이 있었어요.


예수님이 와야 딱 맞는 십자가만 와야 딱 맞는 그런 계획이 있는 겁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 안 왔지요? 그럼 3년 6개월 동안 비 안 왔는데 그 많은 과부가 있는데 사렙다 과부한테는 자의로 자기 능력으로 온 능력으로 해도 메꿔지지 않는 빈 결여의 자리가 빈자리가 있어요.


그 빈자리에 누가 와서 채워졌습니까? 엘리야. 엘리야가 와서 채워줬잖아요. 엘리야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요. 아마 그렇게 못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밥이 먹히더라도 마지막 자살하기 직전에 먹는 마지막 만찬을 뺏어가버리잖아요. 독약으로 먹으려면 독약까지 뺏어가버리고 내가 먹을련다 이런 식으로. 죽는 것도 못 죽게 만들었죠.


그러니까 그 사렙다 과부가 그 미팅, 엘리야 미팅 만나는 순간은 어떤 지경까지 내려가야 되게 되느냐 하면은 절망의 절망, 끝의 끝. 더 이상 내 힘으로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끝났습니다. 남은 것은 얘야 끌어안고 자살하자 죽자. 이제 끝났어. 가뭄 들고 우리 살만큼 살았다 하고.


이러면 안돼요. 살만큼 살았지만 이런 생각 갖는데 혹시 한번 봐라. 혹시 뒤에 택배 천사가 왔는지 이거 없어요. 뒤에 혹시 봐라 없어요. 그냥 생각을 마음을 닫아 버려요. 한계에 이르게 인간의 한계. 그것도 또 이 이야기 듣고 한계라 치고 옆에 또 뭐 왔나? 한계라고 치고 천사가 뭐 줬나 확인하지 마세요. 그런 꼼수는 안 통합니다.


왜냐? 우리가 예상한 것은 주께서 예상을 빗나가기 때문에. 예상한 것은 예상을 빗나가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항상 기도하니까 바깥에 택배가 와서 나와 있더라. 예를 들면 주기철 목사 영화라고 하면 목사가 목사 잘리고 난 뒤에는 먹을게 없거든요.


그러니까 교인들이 가면서 담벼락으로 막 던져요. 그러니까 그 부인되는 오정미 사모님은 맨날 가가지고 아침에 만나 줍듯이 주워오는 거에요. 그럼 그 다음날 아침에 뭘 기대하겠어요? 기대할거 아닙니까? 그게 예상이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주기철 목사 인생이 그런데 만약에 예상을 해가지고 아침에 밥을 주는게 아니고 그날 밤 새벽 2시 20분에 갑자기 금덩어리가 이만큼 생겼다고 해보세요.


주기는 주되 예상 밖에 주지요. 이처럼 십자가는 예상 밖에 와야 십자가가 진짜 십자가에요. 신학 공부해가지고 십자가 예수님 피로 연구하고 막 성직자 이런 십자가는 이거는 내가 예상하는 십자가라서 엉터리 십자가에요. 그건 몰라도 된다는 말은 아니고 알아도 오히려 방해가 될 경우 있지요.


나로 하여금 사업 망하는게 아니라 사업 잘 되도 마찬가지죠. 사업이 망하고 자식 잘 되더라도 내 자신을 볼 때 아무래도 이렇게 사는 것은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이 주께서 세팅하기 위해서 일부러 만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환경을 같이 매치가 되도록 딱 조성을 해놓고 그 다음에 성령께서 다 작업을 해놓고 십자가를 집어넣게 되면 정말 기쁨이 폭발해버립니다.


그야말로 나 지금 죽어도 좋아요. 그리고 나는 진짜 나쁜 짓해서가 아니라 그냥 죄인되었음이 오는 그 황홀함, 내가 의인되었음의 황홀함이 아니고 신학에서 루터가 이야기한 거고 진짜 복음은 뭐냐? 내가 의인되어서 기쁜게 아니고 그건 황공스럽고 죄인 되어서 기쁜 거에요.


뭐든지 할 거 같애 이제는. 남이 나한테 돌 던져도 좋을 거 같애. 돌 던져도 기쁨으로 막 웃으면서 맞을 거 같애. 그 정도로 자기가 그냥 아무것도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인되었다. 이걸 시편 50편에서 날 때부터 나는 모친의 죄에서 내가 태어났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다윗이 얼마나 기뻤겠어요. 진짜 이루 말 할 수없이 기쁘지요.


그렇게 연구해도 몰랐던 나 자신을 성령이 오니까 알았잖아요. 나는 죄인이라고. 그게 바로 성도라고. 주께서 원하는 것은 헌금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뭘 원한다? 심령도 그냥 심령이 아니고 앞에 붙지요? ‘상한 심령’.


만약 여러분들이 만약에 우리 집사님께서 트롯트 대회 나갔다. 아 결승에 올라가야 될텐데 초장에 박자 놓쳐가지고 초장에 탈락했을 때. 탈락과 더불어서 너는 죄인이라고 하는 합격 일등한 것보다 기쁘지요. 돈 1억 타는 것보다 더 기쁠거에요.


그게 그거해봐야 그것뿐이지 다음날 되면 또 개조되야지요. 그게 숨겨진 비밀, 창세전부터 예정된 비밀이에요. 결여의 자리. 여호와의 집에 가려면 개조되지 않으면 못가고 변화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 몸 가지고 안갑니다. 광야에서는 광야 변화가 아니라 내 변화하라고 광야가 있는 거거든요.


세상은 내 변화와 달라져야 돼요. 의인 추구에서 뭐 추구? 죄인임을 아는 그것으로 달라져야 돼요. 그러니까 지금 시므온은 안에 뻥하고 구멍이 뚫리면서 그 구멍을 누가 메꿨어요? 예수님이 메꾸니까 그 구멍, 성령께서 구멍나게 하고 주님이 메꿨으니까 더 이상 자기가 더 보탤게 있어요? 없어요? 아무것도 보탤게 없지요.


보탤게 없으니까 종은 어떻게 돼요? 그냥 영어로 peace 평화죠. 평안한 거에요. 내가 보탤게 없으니까. 내가 더 할게 없으니까. 주일날 설교한 것처럼. 불가능이 이미 쳐들어왔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가능으로 더 추가, 뭐 도와드릴까요? 할 필요 없어요. 그 예수님 박힌 채로 살아가면 되니까요. 나는 물론 죄인으로 십자가 자체가 죄인으로 바뀌겠지만.


그런데 시므온이 목자와 달리 뭐를 더 고백하느냐 하면은 이스라엘 역사가 바로 지금 이 때를 위함이다라는 거에요. 목자는 그냥 아기 예수 쳐다보고 아기 예수 태어났다고 그냥 그 역할이고 시므온 역할은 뭔가 이야기를 해야 돼. 이게 이스라엘에 나오는 그대로 구약의 예언을 시므온이 성경을 아니까 그것에 해서 그 십자가의 비밀이 보다 넓혀졌겠어요? 목자보다는 더 풍성해졌겠지요. 목자보다는 더 풍성해진 거에요. 목자보다는.


참 이거 드라마를 연기하는 연기자는 연출자들이 연기를 너무너무 잘해서 욕을 많이 얻어먹는 경우가 많아요. 연기를 너무 잘해서. 국민밉상 박태준. 부부의 세계. 자기가 나쁜 짓 해놓고 탓을 아내 탓하고 있는 그 드라마 이야기에 그 박태준이라는 이 사람이 전에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성스러운 스님 역할로 나왔거든요.


정말 너무나 성스러운 천사가 있다면 저 사람이다 할 정도인데 그 천사가 이 드라마에서는 국민밉상 되어버렸어요. 국민밉상. 아이고 얍삽한 인간. 모든 탓을 남 탓으로 돌리는. 시므온 역할은 뭐냐 하면은 그가 알았던 그 이스라엘 역사, 시므온이 학자니까 시므온이 알고 있던 그것이 전에는 그냥 안다는데 주님이 오심으로서 그걸 뭘로 바꿨습니까?


십자가를 증거하는 용도로 바꾸는 역할을 목자는 아니니까 목자는 목자 역할하고 시므온은 시므온 역할한 거에요. 그렇다면 오늘 모든 교인들이 하는 일이 다 달라요.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왜 그렇게 다양하느냐 하면은 각각 맞춤 역할이 있어요. ‘맞춤 역할’.


이 말은 남의 신앙을 흉내내지 마세요. 남의 신앙을. 그 사람은 그 사람 역할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본받아라. 일사각오? 그 주기철 목사 그런거 흉내내지 마세요. 만약에 일제 강점기 때 나보고 신사참배하라고 하면 나는 미국 밀양 간다. 미국 배타고 하와이로 가버려. 하와이 사탕수수 공장 갈 거에요. 쓸데없이 왜 싸우는데? 싸움되지도 않는데. 총들고 나간다고 순사를 이깁니까? 아니죠.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 일본군인이 50만명 들어왔어요. 50만명. 우리나라 인구가 2000만명이거든요. 2000만이 50만 못이기는 거에요. 나라를 팔아먹어가지고. 어떤 건물 지어도 2000만명 있어도 100만명 있어도 10층 짜리 건물을 못 지어요. 왜? 기술자가 일본기술자 나카무라거든요. 일본기술자 들어와가지고 건물 하나 못지어요. 숫자 많다고 나라되는거 아니거든요.


기술 없으면 마땅히 굴복해야지요. 직장상사가 기술도 개코도 없으면서 하는 것은 그거는 욕 얻어먹지만 전문가면 욕하고 싶어도 욕 못해요. 그 전문가이기 때문에. 뭐 존경까지는 할 필요 없지만 뭔가 자꾸 배워야 내가 그 직장에 버틸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한수라도 뭘 아부해가지고 뭘 하든지 빌든지 빼내야 되잖아요. 빼내야 된다고요.


여러분들이 다른 성도들 만나고 다른 사람 이야기할 때 남 가르칠 생각하지 말고 본인부터 실력부터 키우세요. 나는 이렇게 하면서 이렇게 깨졌고 이렇게 절망했다. 이렇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 나는 된 줄 알았는데 주님께서는 전혀 그런 인간 안 받더라 하는 그것을 그것 이야기 하라고 계속 여러분 자리에서 계속 살게 하는 겁니다. 실패하라고. 성공한 예가 없도록.


뭘 해도 나는 항상 못난 놈이고 제목을 이상하게 바꾸고 싶네. 뭘 해도 못난 놈이고 뭘 해도 불평하고 걱정부터 먼저하고 근심부터 망할까봐 벌벌 떨고 지 주제파악도 못하면서 이걸 놓치지 말고 하나하나 담아가지고 남한테 그렇게 이야기하라 그 말이죠. 예수님 알고 나는 비로소 내가 실패해도 마땅함을 알았습니다 이게 바로 결여에요 ‘결여’. 빠져있는 거에요. 시므온이 하는 거에요.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뭐했어요? 33절에 그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뭐했어요? 기아하게 여기더라. 또 기이해. 하나님이 하신 일은 맨날 기이해. 예상을 벗어나요. 맨날 기이하데. 기이하다는 말을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거리가 또 생겼다. 감사거리가.


이거는 감사할거 아니지. 아니 감사. 똑바로 물을 마시는게 이게 무슨 감사야? 나중에 제가 중풍 걸려가지고 이거 보세요 물 다 튀고. 평소에 그때 2020년 5월달에 이렇게 얼마나 감사한지. 내가 항상 물 이렇게 똑바로 먹는다는 보장 어디 있어요.


벌벌벌 떨면서 물 다 쏟고 옆에서 아빠 진짜 미쳤는가 보다 해가지고 그런 날이 오더라도 그건 뭐 못난 놈 마땅히 그래야지요. 그러니까 이거는 우리의 바닥을 몰라요. 우리가 어디까지 바닥인지 모르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바닥이 없을 정도로 못난 놈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주님의 비밀, 나는 아직도 그걸 인정 못하지만 주님은 벌써 인정하고 모든 일을 그런 쪽으로 몰아간다는 거에요.


그럼 우리는 구원받는데 뭐 할 거 없잖아. 그 역할이 구원받는데 할 거 없는 그 역할이 하고 있는 거에요. 그 역할을. 주께서 point 이동시켜가지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 고백하게 하는거에요. 나는 아무것도 할게 없습니다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게 다른 사람 보기에 뭐로 보겠습니까?


아 참 너 이상하다. 사람 바뀌었네. 맨날 네 자랑하더니만. 너한테 기이한 이야기가 나오느냐. 며느리가 시어머니 오시면 전에는 주고받고 칭찬하고 하는데 내 죄를 알고 난 뒤에는 그냥 해드렸지만 부모가 얘 너 눈빛이 다르다. 전에는 억지, 뭐 빨리 안 죽나 이런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네 눈빛 보니까 네가 이상하게 눈빛이 어질어보인다.


그거는 뭐 엄마가 잘못 착각해서 그런 모양인데 그것은 바로 의식하면서 남을 의식해서 잘하면 잘해주고 내가 못하면 망하겠지 자꾸 계산하지 않고 그냥 이 주어진 환경이 감사해버리니까 평을 다른 사람들이 평을 그렇게 해주는 거에요. 기이히 여기는 겁니다. 그 다음에 봅시다.


그 다음 34절. 자, 목자가 한 것을 시므온도 했어요. 그다음에 아까 목자가 한 것을 시므온이 했고 그중에 부모, 예수님의 부모가 기이히 여기는 그 부모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시므온이 누구를 가르쳐요? 아이를 낳았던 부모한테 뭐를 가르칩니까?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것하고 마치겠습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뭐하게 한다? 드러내려 함이니라.


인간의 생각은 주체가 되어있고 신체가 되어있고 자아가 되어있고 타자가 되어있고 이렇게 되어있어요. 어렵죠. 주체가 큰 원이라면 이 원 안에서 신체가 포함되어있고 자아가 포함되어있어요. 그리고 타자, 타자가 남이 나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바깥에 나와있으면서도 그 타자를 응시, 그 타자가 보는 것을 내가 응시하는 거에요.


따라서 이 주체는 어떤 주체냐 하면은 불완전한 주체에요. 불완전한 주체거든요. 불완전한 주체이기 때문에 그 타자가 요구하는 것을 내가 만약에 탈선한다면 더 이상 타자가 걸친 타자가 아니고 나는 타자의 것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온전한 주체가 되겠지요. 온전한 주체가 되겠지요.


그러니까 불완전함을 결핍을 느껴서 불완전하니까 완전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 생각이 인간의 생각이 있음을 누가 들추어낸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 엉터리 그래서 어설프게 완전을 추구하는 이것을 완전히 폭로시켜버리는 거에요.


왜냐하면 이 주체자 신체는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 멸망할 이 세상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을 뺑뺑 돌면서 갇혀있는 이상 이 세상 안에서만 돌게 되어있어요. 이 세상 안에서만. 제가 대구강의 할 때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사우나 예 한 거 기억나십니까?


사우나 이렇게 들어가면 처음에는 어~ 좋다 하면서도 2분지나면 5분 지나면 나오고싶지요. 제가 그런 지옥을 설명하면서 사우나는 들어갔다가 자기가 문 열고 나오면 되는데 성경에 보면 닫으면 무슨 자가 없다? 열 자가 없어요. 이게 미치는 거에요 이거는.


왜 태어났는가 싶어. 태어나보니까 지옥이야. 문제는 바깥에서 열어줘야 천국 시원한 바람부는 천국으로 빠지는데 이게 잠그니까 열 사람만 열거든요. 사렙다 과부에게만 열어주거든요. 예외적인 사람. 그걸 닫아주니까 할 수없이 이 사람들은 이 안에서 자체적으로 뭘 추구해야 돼요? 이래도 날 구원 안해줘? 자체적으로 완전을 추구하는 일을 하겠지요.


그 완전을 추구하는데 조사를 해봤지요. 정신분석학에서 철학에서 조사를 해보니까 여기까지는 주체, 신체, 자아 / 타자 이 네가지로 구성이 되어있어요. 주체는 전체니까. 음성듣는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요. 그림을 봐야 돼.


주체가 뭐냐 하면은 우선 신체가 먼저입니다. 신체가 응애응애 애가 먼저 태어났지요. 애 태어나면서 애하고 애는 엄마하고 동일시하는 거에요. 엄마하고 자기를 동일시하는 거에요. 아이에 있어서 자아라고 하는 것은 엄마가 울면 자기도 울어요. 왜? 엄마와 자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런데 좀 크다보면 뭐냐 하면은 엄마 따로 나 따로 돼요. 신체 따로 주체가 따로 자아가 생기죠. 하나가 되었다가 분리된 줄 모르고 그냥 한 몸인 줄 알다가 자아가 생겨요. 자아가 생겨가지고 내 신체가 나다. 거울 보면서 저 신체가 나다 라고 여겼는데 여기서 옆에서 타자, 아빠 엄마가 잔소리를 해대죠.


잔소리를 해대니까 아빠 엄마가 요구하는 것은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네가 함부로 오줌싸고 똥싸느냐고 나무라니까 아빠 엄마는 뭘 원하느냐? 똥싸고 오줌싸고 함부로 하지 않고 알아서 네가 알아서 화장실에 가서 네가 용변을 보는 그런 사람이 되어라 하는 이게 주체에요.


그럼 주체는 뭐가 섞이느냐? 자아가 걸치고 들어온다고 자아가. 여러분 이해하기 쉽지요? 자아 속에 뭐가 있습니까? 그동안 내가 성장, 가정 환경이 들어 있어요. 가정 환경이. 사회에서는 가정 환경 나쁘면 인간 안 된다고. 가정 환경이 그만큼 잔소리가 들어온 거에요.


이게 뭐냐? 응시에요. 두고 볼거야. 네가 나이 30, 40, 50되면 어떻게 사는지 두고 볼거야. 이분 누구야? 너 모르겠어? 저 안동 고씨의 사돈팔촌이다. 줄곧 내가 너 어떻게 사는지 지켜 볼거야. 큰집에 가니까 못 보던 하얀 영감들이 등장하는 거에요.


누구냐 하니까 나하고 만난 기억이 없는데 지켜보고 있는 거에요. 응시. 네가 안동 고씨 집안에 네가 우리집에서 판사된 건 처음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네가 출세해가지고 대통령 비슷한거 해라 이런 식으로 계속 기대를 나한테 기대를 하는 거에요. 기대를.


이 주체는 남녀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자. 주체는 그들 주체는 뭐냐? 우리끼리 좋아하면 그만이다. 사랑은 국경 없다해서 갔는데 가보니까 여기에 시누이가 있고 시동생이 있어. 시누이, 시동생이 있다고요. 누구십니까? 시누이야. 시누이인데 시댁 아빠 엄마가 모든 돈을 우리 남편한테 안주고 시누이한테 여동생한테 다 줘버렸다.


그러니까 우리 남편하고 나하고 달려들어서 제사 드리고 있는데 줘패가지고 징역 1년 살았지요. 재산을 오빠한테 안주니까 오빠 아내가 큰 며느리가 와가지고 80먹은 노모를 패버린거에요. 재산 안준다고. 그런데 걸려가지고 한사람은 집행유예 아들은 징역1년 6개월 받았어요. 어제 나왔어요.


이게 뭐냐? 주체 때문에 그래요 주체. 계속해서 내가 원하는 주체, 네가 성공하기를 원하고 부자되기를 원하는 그 주체가 나를 힘드는 거에요. 주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이 뭘 바꾸느냐 하면은 타자를 바꿔. 타자를 바꿔가지고 나는 너하고 말고 다른 남자하고 새로 살래.


타자를 바꾸면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충족하는 거에요. 이게 뭐냐? 이것이 바로 미완성된 인간의 현재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어떻습니까? 시므온한테 이런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전체가 뭐났어요? 죄로 규정받고 빵꾸나버렸어요. 빵꾸났다는 것은 없어지지 않고 주여 저는 이정도 밖에 안됩니다 하는 못난 놈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 이걸 누가했다? 시므온이 착해서 했어요? 누가 했어요? 성령께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왜 성령이 와야 되고 왜 우리 착함과 선함으로 백성 되지 못하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성령 받은 사람을 통해서 선배들을 통해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2장 29절 (못난 자) 200519b-이근호 목사.hwp (163.5K), Dow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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