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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3 16:47:44 조회 : 107         
27강-빌 3장 20절(십자가와 천국)200823-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61.84.208.92)
27강-빌 3장 20절(십자가와 천국)200823-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빌립보서 3장 20절입니다. 신약성경 320페이지입니다.

빌립보서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성경은 교훈집이 아닙니다. 땅에서 어떻게 바르게 사는가, 그런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이 작동하고 운영하는 그 원리에 대해서, 총괄적인 그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할 때에 하늘에 있는 시민권이 당연히 우리의 생각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간생각에는 없는데 하나님 생각에는 있는 것, 자기백성을 하늘에 두고 살아가는 그러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시민권, 천국이 인간이 생각한 것이라면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인간에 의해서 설명이 가능해요. 인간은 무엇을 할 때도 무엇을 위해서 하느냐, 두 번째 무엇을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느냐, 세 번째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얻어낼 수 있는가? 항상 이렇게 어떤 일을 해도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모든 일을 추진하게 되어 있어요.

부모가 애들이 뭘 하게 되면 애들보고 “너 왜 그 일을 했어? 무엇을 가지고, 무슨 돈이 있어서 그 일을 했어? 그 하는 목적이 뭐야?” 이렇게 묻잖아요. 그러면 교인보고 “교회 왜 가는데?” 그러면 천국을 간다는 거예요. 인간이. “천국은 왜 가야 되는데?” 인간은 설명이 가능해요. 내가 꿈꾸는 세계가 천국입니다. 그 꿈꾸는 세계가 천국이기 때문에 내가 설명이 가능하지요.

그 다음에 그 천국을 그리고, 구상하고 싶고, 그리고 그 구상된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겁니다. 인간이 설명이 가능한 천국, 그것은 왜 그런 생각이 드느냐 하면, 인간은 애초부터 천국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본인이 몰라서 그래요. 인간은 땅에서 와서 땅으로 그냥 귀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천국이라 하는 것은, 하늘나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은 생뚱맞은 이야기에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놀리는 것과 마찬가지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에요. 땅에서 태어나서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에요.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면 그만인 겁니다. 더는 욕심내지 맙시다.

괜히 사는 것이 힘드니까, 혹시 교회 가면 천국 보내줄까 싶어서, 천국이라 하니까 천국을 어떻게 구상하느냐? 인간에서 괜찮은 것 다 끌어 모아요. 자연을 통해서 가장 괜찮다고 하는 것을 다 끌어 모아서 그 아름다운 세계, 멋진 세계, 그게 세계경전에 다 나와 있으니까. 거기에 극락도 나와 있고, 이슬람에도 천국이 나와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겁니다.

만들어내서 ‘나 죽어서 거기 갈래.’ 그것은 사람에 의해서 해명이 가능하고 설명이 가능한 동네입니다. 그런 동네는 망상이에요. 그런 동네는 없어요. 본인이 누군지를 제대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천국가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 땅에서 흙으로 만들어져서 죽으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다른 어떤 사실적인 현실을 따로 구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걸로 끝이에요.

그러면 성경에,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이 뭐냐? 이것은 우리 스케줄이 아니고 하나님의 스케줄이에요. 하나님의 스케줄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말에 해당되려면 하나님의 스케줄이 우리 속에 개입해야 되고 찾아와야 됩니다. 찾아와야 되는데 찾아올 때 어떻게 찾아오느냐 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이 세상의 생각을 뭉개버립니다. 아예 없던 것으로. 아예 없던 걸로.

비행기 타고 제주도나 어디 갈 때 난기류를 만나든지 하면 비행기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수가 있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요. 그때 귀가 먹먹하지요. 기압차에 의해서 먹먹해요. 성령이 오게 되면 그래요. 먹먹해요. 내가 그동안 천국가려고 준비해놓은 모든 나의 생각과 내 방식, 내가 알고 온 방법들, 모조리 다 뭉개집니다. 먹먹해 집니다. 다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

왜 진짜 성령이 오게 되면 먹먹해지느냐 하면, 성령의 스케줄에 의하면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 무덤에 죽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성령이 오시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성령이 오시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말은, 어느 누구도 이 무덤에서 바깥으로 나올 위인은 없다는 것을 손수 먼저 보여준 거예요.

성령이 와서 우리를 눌러버리는 무게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무덤의 덮개가 누르는 무게에요. 죽은 놈이 무슨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죽었는데, 관안에서 돌아가는 생각인데.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해도 관 뚜껑을 열고 뛰쳐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인간입니다.

자꾸 인간은 본인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흉내를 내요. 인간이 인간을 흉내를 낸다고요. 진짜 인간은, 진리가 육신을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만나서 들어올 때 그게 참 인간이거든요. 그 나머지 인간은 인간이 아니고 곧 죽을 흙이 될 존재에요. 흙이 되려면 흙다워야지요.

흙이라 하는 것은 죽음으로, 자기가 아무리 꿈꾸던 천국도, 지옥을 무서워하든 천국을 무서워하든 인간은 그냥 인간 그대로 죽는 것이 자기의 역할의 다입니다. 역할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제가 영화를 최근에 봤어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 영화를 보고 났는데 왜 제목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왜 그 제목이어야 하는지 계속 생각했어요.

계속 생각하다가 그걸 이제야 찾아냈습니다. 어떤 영화평에도 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였는지가 없어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감독만은 알거예요.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는 그냥 다 알려줘요.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뭐냐 하면, 황 정민하고 이 정재가 차 안에서 수류탄을 투척해서 같이 자폭하는 거예요. 상호폭파에요. 상호폭파.

보통 영화라면 주인공인 황 정민은 살고 악한 이 정재는 죽어야 되는데 같이 죽어버립니다. 같이 상호 폭파하는 이유가, 이정재가 맡은 캐릭터는 나쁜 역할인데 그 캐릭터가 영화 중에 대사가 나와요. “당신은 인간백정으로서 사람을 왜 그렇게 죽이는가? 부모자식도 없이 왜 그렇게까지 죽이는가? 꼭 그럴 필요까지 있는가?”라고 물어요.

이정재가 의자가 앉아서 하는 말이 “그게 내 캐릭터야.” 인간이 벗어나려는 악이라는 것은 이유도 없이 맹목적으로 그냥 악이에요. 나중에 이 정재가 하는 말이, 내가 왜 사람을 죽이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이게 인간에게 붙어 있는 절대적 악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을 감동감화 시켜서, 제발 내 딸만큼은 봐달라고……, 그 딸이 또 얼마나 예쁜지 진짜 누구 닮았어요. 우리 외손녀 닮았나. 얼마나 예쁜지.

제발 내 하나밖에 없는 딸 봐달라고 해도 안 봐줍니다. 본인도, 이 악의 캐릭터 본인도 내가 왜 악을 행하는지 본인도 몰라요. 거기에 눌려 있는 주인공 황정민은, 악에서 구하는 방법은 내가 악을 쳐부수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같이 폭파해야 내 딸이 산다는, 그래서 제목이 “악에서 구하옵소서.”에요. 내가 죽어야 내 딸이 산다는 거예요.

이 악과 더불어 내가 폭파당해야 비로소 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제목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 제목이에요. 실제로 저도 지난 목요일에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없어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 경험하고 난 뒤에 제가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몰라요. 내가 복음을 위해서 산다고 했는데 왜 주님께서 그렇게 날 힘들게 하는지.

401번 타고 오다가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지갑에 신분증과 카드가 다 있지요. 현금도 좀 있고. 난 아직 젊기 때문에 주머니에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젊은 게 아니었었어요. 내려서 보니 감각이 좀 허전한 느낌이라서 보니 지갑이 없는데 차는 가버리고 어쩔 줄 모르겠어요. 그 때 아내에게 배운 대로 ‘정신 차리자’ 정신 바짝 차려서 전화부터 했어요.

버스 회사 전화번호 찾아서 전화하니 그 회사가 또 아니라네요. 그 노선에 두어 개 버스회가 들어와 있는데 신진버스라고 해서 전화 다시 하니 문자 보내놨다고 알려줘요. 그 다음날 10시에 경찰 입회하에 본인 확인해서 돌려준다는 거예요. 주소까지 알려줘서 아침 10시에 갔지요. 가니까 세상에 그렇게도 정들었던 내 갈색 지갑이 책상위에 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그 위에 여자 지갑도 두 개가 있었어요. 속으로 ‘아이고, 아줌마들 칠칠맞게 지갑을 왜 잃어버리고 다니나.’ 하는데 그게 내 이야기에요. 내가 칠칠맞게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그 지갑을 볼 때 너무 반가웠어요. 그 지갑이 불쌍해 죽겠어요. 불쌍해 죽겠는데 구치소에 자식 면회 간 느낌이 들지요. 어미 왔다, 이런 마음이 들어요.

거기 사무 보는 나이 한 50가까이 된 경리사원이 내 지갑 열어서 신분증을 딱 꺼내는 겁니다. 확인해야 주니까요. “사진 잘 생겼네요.” 속으로 ‘20년 전 사진인데.’ 어쨌든 간에 지갑을 받아들 때 그 지갑이 숨을 쉬는 것 같아요. 그 지갑이 성령 받은 것 같아요. 파닥파닥, 그 지갑이 숨을 쉬는 것 같아요. 돈도 그대로 있고 다 도로 찾았어요.

잃어버렸다는 사실, 잃어버렸다는 이것,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주님의 스케줄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왜 십자가의 자리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 십자가의 자리가 없으면 우리는 내가 천국가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다 부려요. 교회도 나와 주고, 시키는 대로 다 해주고, 혹시 천국 갈까 싶어서. 본인이 천국갈수 없다는 것을 몰라요.

주님께서 율법을 준 것은 모든 인간으로 구원에 탈락시키기 위해서 율법을 준거거든요. 어떤 사람도 천국을 갈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3장 22-24절에 분명히 생명나무 있는 곳에 못 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배후에서 자꾸 장난질치는 괴물들이 있어요. 율법은 어떤 인간도 구원에 탈락시키기 위해서 율법을 준 겁니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보면 3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는 신을 섬기고 있다는 뜻이에요.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안식일 지켜봤자 너는 안식일 말고 그 다음날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빨리 장사할 것만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것도 부모를 진정으로 마음 다해서 공경할 위인이 없다는 뜻이에요. 13절에 “살인하지 말찌니라.” 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든지 ‘저 인간 죽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미운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에요.

14절에 “간음하지 말찌니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모든 것은 지금 거기에 네가 현재진행중이라 하는 거예요. 이 율법의 위반상태가 현재진행중이에요.

그런데 율법을 주면 우리 안에 어떤 괴물이 살아 있느냐 하면, 율법을 내가 위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꾸 그걸 조장하고 위장하는, 그래서 나는 누가 뭐래도 천국갈 수 있는 자격이 점점 더 구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내가 나를 만들어내는 괴물들이 있어요.

그 괴물이 바로 나에요. 내가 바로, 율법을 위반해놓고 안 위반했다고 우기는 괴물이 바로 나에요. 요즘 같은 경우에 그걸 아주 절실하게 잘 느껴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 그거 걸리면 죽을 때 어떻게 죽느냐? 폐렴으로 죽는다 하거든요. 천식 폐렴. 천식 폐렴은 시간이 그만큼 더디 가는 것을 모를 거예요. 기침할 때마다 온 가슴이 뜯겨나가는 아픔을 겪으면서 기침하고 좀 쉴만하면 또 다시 기침이 터져 나오고 가슴 쥐어뜯기고.

그런 식으로 밤새도록 기침해 보세요. 차라리 죽여주옵소서, 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요. 그 폐렴, 지옥의 고통으로 죽는 것이 코로나 19입니다. 뭐 치사율이 낮다 하는데 완치가 되더라도 후유증이 굉장히 심하답니다. 당뇨 오지요. 모발 움켜쥐면 다 뜯겨나가지요. 속은 쓰리지요. 가슴은 통증 있지요. 피부는 보라색으로 변하지요. 기억력은 감퇴하지요. 밤에 잠도 못자요. 불면증이 걸리지요.

기계적으로는 완치인데 이 후유증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신종코로나 19. “진짜 이래도 마스크 안 찾을 거예요, 정말? 이래도 교회 나올 거예요?”라고 이 세상이 우리한테 다그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대비는 뭐냐? 자기의 본색이 나옵니다. 뭐냐 하면, 내 관리는 마지막에 내가 관리한다는 겁니다. 이 신종코로나 대비하기 위해서 내가 마스크 하고, 사람 모이는데 가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나 3단계로 격상되면 아예 교회 나오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말은 뭐냐? 내 안에 십자가 없다는 뜻이에요. 내 안에 주님의 스케줄이 아예 없었다는 겁니다.

천국은 가고 싶고, 내 안에 신종코로나를 내가 관리하겠다는 이 생각마저 완전히 뭉개버리고 완전히 먹먹하게 만드는 그 힘, “너는 이미 죽었어.”라고 하는 그 힘이 나에게 온 적이 없어요. 꼼지락꼼지락 자꾸 움직여요. ‘어떻게든 내가 궁극적으로 나를 관리안하면 누가 관리해? 아무도 관리해줄 사람 없어.’ 마지막은 십자가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은 내가 있어요.

이 자아가 주체를 관리한다고 해요. 어렵게 말해서 자아가 주체를 관리하는 거예요. 왜 내 자리는 주께서 천국에 안 넣어줍니까? 왜 주님께서는 하늘나라 시민권이 되지 못하게 합니까? 내 자리라 하는 것은 타인에게 보여 지는 자리입니다. 이게 첫 번째에요. 타인에게 보여 지는 자리. 수많은 시선이 보는 거예요.

중세 때 그림 보면 대기원근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기원근법이라 하는 것은 진짜 원근법이 나오기 전에 구름의 색깔을 엷게 하고 다른 구름의 색을 짙게 해서 그림 내에 거리감을 줘서 뒤쪽과 앞쪽을 구분하는 화가의 기법이 대기원근법이라 합니다.

이 대기원근법이 어디에 적용되느냐 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대로 우리 자신과 주변에 적용됩니다. 나라는 것은 공기의 압력으로 나와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것처럼 타인의 시선이 나에게 가까이 오게 되면 입체적으로 시선이 많이 보이는 쪽에 우리는 신경을 더 쓰게 되어 있어요. 시선원근법이에요. 나에게 관심을 많이 두게 되면 갑자기 여기서 농밀, 밀도의 감을 느끼는 겁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목을 할까? 나는 행동에 조심을 해야 돼.’ 타인의 평가의 원근법에 완전히 우리가 주눅 들고 있어요. 살아가는 것이 코로나 때문에 숨 막히는 것이 아니에요. 평소에도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그 시선에 숨 막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실이요? 있는 대로 이야기하라고요? 신종코로나 그게 현실이라고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더 강한 현실이 있어요. 타인의 나에 대한 평가에요. 타인의 시선입니다. 나라는 것은 거기에 항상 신경 써가면서 살아가요. 민주주의 제도가 좋은 점은 딱 하나있습니다. 자살해도 남이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 왜? 내가 절대 궁극적인 존재기 때문에. 절대적 존재기 때문에.

그 전에는 우리가 나에게 속한 것이 나가 아니에요. 시선원근법에 의해서 우리 집안의 나에요. 우리 집안 속의 나라고요. 결혼식을 해도 저 여자 남자가 서로 좋다고 결혼하면 안돼요. 집안끼리의 결혼이지요. 그렇지요? 집안의 결혼입니다. 그렇게 집안이라는 것이 옛날에 강렬했어요. 내가 살기 싫다고 헤어지고 그거 안돼요. 집안의 허락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용납이 돼요. 이제는 결혼식 때 주례도 없애버렸어요. 내 맘 대로다. 우리 맘 대로에요. 그게 민주주의를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이제 내 관리하다가 내 관리가 잘 안되면 내가 자살해도 그럴 수 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아무도 날 비난하지 않기를 바라는 겁니다. 내 자리가 왜 천국에 못 가느냐 하면, 이미 나는 땅의 시선에 의해서 완전히 땅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런데 내가 천국을 가요?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가 어딨어요? 내가 땅에서 와서 땅에서 나에게 강요하는 그 땅의 원리에 완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는 존재인데. 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규칙과 원리를 강요받았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타인이 시선을 의식해서 ‘나 착해요. 나 그다지 나쁜 짓 안했습니다. 저 사람하고 내가 달라요. 나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바르게 살고 있어요. 저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바르게 살고 있어요. 이만하면 천국 가겠지요? 그지요?’ 자꾸 시선을 의식하는 거예요.

두 번째가 뭐냐? 타인에게 보여주는 자리. 첫 번째는 남들이 나를 지켜보는 자리가 내 자리며 두 번째, 거기에 호응해서 내가 이제 남에게 검사받는 자리, ‘나 어때요? 이만하면 나는 사람대우 받을 자격 있지요?’ 세 번째는 뭐냐? 내가 나를 지켜보는 자리. 끝까지 나를 조사하고, 닦달내고, 나를 질책하고, 나를 꿇어앉히고, 나에게 벌칙 내리는 자리.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살이지요. 죽음이지요. 끝까지 내 평생은 내가 보기에, 정말 윤 동주의 시처럼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 새에 이는 세미한 바람에도 나는 떨었노라. 혹시 죄지을까 싶어서. 혹시 내가 남에게 피해줄까 싶어서. 남에게 불편 끼칠까 싶어서. 나는 내가 나에게 몸서리 쳤노라.

우리는 이런 줄 몰랐지요. 신종코로나 올 때 까지는 몰랐습니다. 딱 오고 나니까 모든 인간은 마지막 궁극적 자리, 최후의 자리에 십자가 같은 소리하고 있네, 십자가 없었어요. 주님 없었어요. 내가 있어요. 내 자리에 내가 있어요. 그래놓고 천당 간다고 교회오고 있어요. ‘주님 이만하면 괜찮잖아요. 이만하면 천국 합격점이지요?’ 이런 식으로.

내가 나를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요. 우리는 내가 착실하면 다만 악에서 구하는 줄 알았어요. 주님은 가룟 유다, 베드로보고 이렇게 합니다. “네 자리로 돌아 갓! 따라오지 마. 나 따라오지 마. 네 자리로 돌아가. 가룟유다는 사탄의 자리로 갓! 베드로는 나를 배신하는 자리로 갓!” 그거예요.

예수님 그 이야기하기 위해 오신 거예요. “어딜 넘봐? 천국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딜 봐서 네가? 왜 가야 되지? 한번 물어보자. 네가 왜 천국가야 되지? 천국가야 될 이유 백가지 대봐라. 있나?” 없어요. 우린 없다니까요 천국 갈 어떤 조건도 우리한테 없어요. 우리는 율법에 의하면 죽어서 지옥가야 됩니다. 율법의 규칙에 의하면 율법 하나라도 어기면 우리는 저주받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3장 19절. 거기에 분명히 나와 있잖아요. 주제파악 하라고 성경준거예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이 결론 나오기 전에 먼저 스케줄이 남아 있어요.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이게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해놓고 또 재림이라는 스케줄을 남겨뒀는가? 남겨뒀다면 미진한 것이니 다 이룬 것이 아닌데 왜 다 이루었다 해놓고 재림이 또 있어야 되고, 스케줄이 또 있어야 되는가?

사도행전 1장 10, 11절에 보면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하늘로 올라갔거든요. 올라갔는데 제자들이, 하늘로 올라가니까 예수님이 간 곳을 보고 싶어서 또 알고 싶어서 쳐다봤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옆에서 천사가 쑥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왜 쳐다보느냐?” 쳐다봐도 문제에요. “왜 쳐다보느냐? 주께서는 본 그대로 여기 온다.”는 겁니다. 여기 온다는 거예요.

여기 올 것 같으면 왜 올라가시느냐, 그 말입니다. 제자들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거예요. 가실 것 같으면 약 올리지 마시지, 그냥 여기 같이 계시지 혼자 올라가놓고 제자들은 왜 올라갔는지 모르는데 천사가 와서 말하기를, 주님이 다시 온다는 겁니다. 왜 다시 오셔야 되는가?

예수님이 재림을 왜 하셔야 되는데요? 꼴 보기 싫은 이 땅에 왜 오셔야 되는가? 떠나가시면 떠나가시는 것이지. 그게 이유가 뭐냐 하면, 내 자리를 주님께서 뭘 로 바꾸는가 하면, 십자가 자리로 바꿔놓고, 이게 주님의 스케줄입니다, 십자가자리로 바꿔놓고 바뀐 그 자리를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거예요. 주님의 내 자리니까 내가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걸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는데 주께서 우리 아담의 형상을 죽이고 그 죽이는 힘의 자리가 예수님의 형상으로 교체가 된 자리거든요. 그 자리가 예수님의 스케줄에 포함이 되어버려요. 스케줄에 합류가 되면 그 스케줄 따라서 그 다음 스케줄에 같이 연합이 되게 되어 있다고요. 그걸 성령의 세례, 성령의 연합이라 하는데 합류가 되어버려요.

지갑 이야기 다시 할게요. 신진버스회사의 사무실에 가니까 책상위에 그 반가운 내 손때 묻은 지갑이 제일 밑에 있었어요. 그날 그 버스에서 잃어버린 지갑이 딱 세 개가 있었으니까 그 회사 사무실책상에 있었다는 말이지요. 나는 지갑 못 찾을 줄 알았어요. 잃어버렸다는 말이지요. 잃어버리고 제가 다시 찾아왔잖아요.

그렇게 찾으면 이 죽은 지갑이 내 안에서 비로소 내 지갑이 되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그동안 우리 안에 괴물이 있어가지고 율법을 주니까 율법을, 내가 최종관리자가 되어서 내가 율법을 지켜서, 이만큼 지켰으면 천국 넣어주겠지, 하고 내가 나를 구원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율법으로 하여금 바로 너 자신이, 주께서는 네 자리가 아담의 자리기 때문에 받아주지를 않습니다. 안 받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주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늘에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그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일, 예수님의 완전하게 다 이룬 일,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던 그 일,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이 오게 되어 있는데 오순절 날 성령이 와버리면 주님께서 내 자리를 십자가의 자리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면 나는 죽고 내 동료가 되셔서 나 혼자 있는 자리가 아니라 주님께서 같이 있는 자리 그것을 가지고 나가 아니고 우리, 그렇게 해서 합류가 되어버리면 나는 죽고 같이 합류된 동료가 부활했다는 그 스케줄 따라서 내가 같이 딸려서 부활해서 하늘나라 시민권이 되는 거예요. 천국 가는 거예요. 성령이 왔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겁니다.

그러면 재림은 뭐냐? 재림은, 성령께서 아직도 납치해서 데려갈 자기 동료들이 남아 있을 때는 아직 재림하지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정해준 숫자, 생명책에 기록된 그 숫자만큼이 다 되게 되면 그 때는 그 판을 엎어버려요. 재림의 의미가 뭐냐? “내가 다시는 안 온다.”입니다. 내가 다시는 안 온다는 거예요. 다시 온다는 의미가 다시 안 온다는 의미의 강조에요. “내가 다시 오는가 봐라.” 완전히 불로서 뒤엎어버려요. 이제 건질 것 다 건졌으니까 공장폐쇄입니다. 공장 끝났어요.

설교 다시 하겠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에는 없어요. 왜냐? 우리가 그리는 천국이라는 것은 설명이 돼요. 내가 가고 싶어 하니까, 내가 죽어서 좋은 나라 가고 싶어 하니까. 이 땅에서 고생 많이 했지만 죽어서 천당 가고 싶어 하니까 내가 설명이 되는 천국은 이것은 전부 다 망상입니다.

왜냐? 거기에는 살아 있는 내가 포함되어 있거든요. 이것은 무슨 일환이냐 하면, 끝까지 내가 운명이 마지막까지 내가 관리자로 나서겠다는 그런 의미를 나타냅니다. 천국가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지? 뭐가 필요하지? 짐을 싸거든요. 내일 밤에 여수 특강이 있는데 벌써 우리 집사람은 짐을 챙깁니다. 칫솔도 싸고 다 챙겨요. 안 그러면, 그 때가면 다 잊어버리니까 미리 챙긴다고요.

우리는 내가 최종결정자가 되어서 내가 나를 천국보내기 위해서 필요한 생각을 내가 갖고 그걸 끌어 모아요. 율법은 율법대로 지키고, 십자가도 지키고, 말씀도 지키고, 남들 보기에 신앙인이라는 티도 내고, 성령 받으라 하면 꼬박꼬박 받고 다 받아요. 그게 성령 받은 게 아닌데.

성령 받았으면 챙기는 것이 아니고 먹먹해지는 거예요. 내가 챙겼던 것이 아무짝도 소용없다는 것, 내가 남들 앞에 ‘너는 신앙인 맞아.’ 욕 안 얻어먹기 위해서 애썼던 것들이 전부 다 뭉개져야 된다니까요 다. 완전히 죽처럼 뭉개져야 돼요. 그게 아무 필요 없는 겁니다. 십년 예수 믿고 오십년 예수 믿어도 다 소용없는 거예요.

주님께서 마태복음 26장에서 주님 하신 기도가 여러분 새삼스럽게 느껴져야 돼요.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이게 성령 받은 사람의 공통적인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이것이 내 뜻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내 뜻이 뭐냐? 내가 나를 관리해서 나를 천국까지 올려 보내는 것이 내 뜻이었습니다. 그 내 뜻으로서 절대 악을 이길 수 없음을 왜 진즉에 내가 몰랐는가? 그 절대 악, 이유도 없이 나를 지옥 보내는 그 마귀의 힘을 무슨 수로 이깁니까? 못 이깁니다. 우리는 이길 수가 없어요.

마귀는 자꾸 거짓말 합니다. 이길 수 있다고. 말씀 지키면 되고 교회 나오면 된다고. 헌금하고 기도하면 된다고. 그러면 네가 원하는 천국갈 수 있다고. 코로나도 이기고 다 이길 수 있다고. 바른 교회 될 수 있다고. 그거 다 개소리입니다 수요일부터 왜, 개소리라는 이 말이 왜 많이 나오는지. 그거 다 개소리거든요.

먹먹해져야 돼요. 먹먹해져야 돼요. 남들이 보기에 나 어때, 남들이 이야기하는 거 그거 우리 아닙니다. 진짜 우리는 예수님이, 성령이 우리에요. 다른 사람은 우리의 자격이 안 됩니다. 거기 끼어들면 안돼요. 나를 잃어버린 줄로 분명히 보여주는 이웃이 최고의 이웃이에요. “너는 안 돼.”라고 이야기해주는 이웃, 십자가지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이웃이에요.

다른 것은 우리의 이웃이 아닙니다. 그렇고 그런 인간들인데 뭘 믿을 것이 있어요? 그동안 여러분 한평생 동안 누구한테 농락당했습니까? “나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농락당했다. 그러면 그런 너는 누구에게 농락당했느냐?” “이제는 자유다.” 자유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네가 너한테 농락당해요. 네가 너한테.

여러분, 죽음 앞에서는 내 가치가 빛을 잃습니다. 천국가게 되면요, 스타일, 몸무게, 하루 몇 끼 먹었나, 그런 것 안 따집니다. 네가 남자냐, 여자냐, 키는 몇 센티냐, 무게는 몇 킬로 나가고, 옷 입은 꼬라지하고는, 이런 것 안 물어요. 천국은 죽음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네가 어느 학교 나오고, 몇 살 먹었고, 교회 몇 년 다녔고, 그런 것이 없어요. 그냥 죽은 존재에요.

그게 십자가 다 이룸을 성령께서 회수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신부, 주님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천국에,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가 있을 때 우리는 ‘땅의 일에서 참 쓰잘때기 없는 짓거리 많이 했다. 다 망상인 것을…….’ 제가 아까 예배 시작하는 기도에서 했지요. “네 몸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걸 번역해 볼까요? 코로나를 무서워하지 말고.

코로나는 육신을 폐렴으로 죽게 하고 후유증 생기게 하지만 코로나 걸려 죽는 것은 마땅히 우리의 받을 저주에요. 코로나 다음에 뭐가 들어올지를 몰라요. 아무리 날 지키기 위해서 발악을 해도 그렇게 지키다가 나중에는 지키는 자기 힘에 빠져서 죽어버립니다. 결국은 죽음이에요.

내가 잘생겼다, 부자라 돈이 많다, 아파트가 세 채다, 강남에도 집이 있고……, 그런 것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내가 그동안 버티면서 이만큼이나 버텨왔다는 그것, 그 모든 원리와 인생의 공식들이 먹먹해져야 돼요. 그냥 멍해야 돼요. 타인도 소용없고, 가족도 소용없고, 나도 나에게 소용없고.

내가 나에게 아무 보탬이 안 된다는 사실. 나의 착실함이. 그게 바로 뭐냐? 주님이 스케줄 따라서 내가 죽으니까, 이제 주님의 스케줄이 오니까, 그 주님의 스케줄에 재림이 남아 있으니까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거예요. 다른 노림수가 없습니다. 그냥 주님의 스케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자, 이러한 것이 과연 율법적으로 주님께서 이미 그 전에 꾸준하게 이야기해 왔었습니다. 사사기 14장 14절에 보면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자, 여러분이 성경 앞뒤 모르고 제가 단박 퀴즈 냈다. 이게 삼손이 낸 퀴즈인데요, 제가 삼손대신 이야기합니다.

자,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습니다. 정답은?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먹먹할 겁니다. ‘이게 뭐야?’ 이게 바로 하늘의 요소입니다. 아무리 해도 땅에서는 설명이 안 되는, 과학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하늘의 요소가 수수께끼라는 비밀로 온 거예요.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삼손 외에는 아무도 푸는 자가 없었어요. “뭐야 그거. 뭔데?” “이거 풀지 못하면 심판받아 마땅하다.”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스케줄이 뭐냐? 재림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불로서 이 세상을 다 패는 거거든요. 물로서 심판했듯이 불로서 다 팬다, 때린다, 이 말이거든요. 모든 것을 박살내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재림의 스케줄이 어디 안에 있느냐 하면, 십자가 안에 이미 포함이 되어 있어요. 십자가 안에만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승천할 때도 포함이 되어 있고, 그것뿐만 아니고 성령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모든 것을 박살낸다는 그러한 취지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거예요.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한 모든 공식을 박살내는 것, 마치 재림 때 불 심판 받듯이, 포도주 틀로서 포도를 박살내듯이 성령이 온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한 꾀죄죄한 모든 공식들, 어떤 교훈집에 나오는 것들 있잖아요, 처세술, 네가 인간답게 구성하기 위해서 모아놓았던 명언집들, 그거 재림 때 불 심판 하듯이 성령 안에 이미 그것이 포함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십자가 이야기를 듣고 하는 말이 뭐라고 하느냐? “어찌할꼬”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겁니다. 사도행전 2장 36-39절에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나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만의 스케줄에 합류된 자만이 비로소 십자가 안에 재림의 불심판도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성령 안에 불심판도 함께 들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성령을 받게 되면 내 것이 깨지는 것이 짜증난다, 하겠지만 진짜 성령을 받아버리면 감격의 눈물이 눈코 다 튀어나와요. ‘세상에 이걸 몰랐다니, 이걸 내가 모르고 살았다니. 그동안 내가 내 식대로 살아보려고 했던 그 무거운 방정식들, 공식들, 이 가시덤불 같은 이것을 내가 찔리면서 왜 갖고 있었던가? 그냥 놓으면 되는데.’

먹는 것에서 먹는 것이 나온다는 말은, 이것은 바로 삼손이 강한 사자를 때려죽이고 죽었다고 치고 다시 얼마나 지나서 다시 보니 그 죽은 사자의 시체에서 꿀이 나오는 것을 알고 이 수수께끼를 제시한 겁니다. 이건 뭐냐 하면, 절대적인 힘의 감금당한 상태인 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강한 자에게서 강한 것이 나왔다는 말은 절대적으로 아무도 탈출할 수 없는 감금당한 상태에서 그 사자에 다 소화되지 못하고 튀어나온 자들이 있다. 강한 것에서 그 강함보다 더 강한 힘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삼킨다는 거예요. 삼킬 수밖에 없는 것에서 먹는 것, 다 소화되지 못하고 남은 것이 나온다는 뜻이고, 강한 것에서 진짜 절대적인 힘에서 생명이 나온다. 단 것,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결실을 맺는 그 단 것이 나오는 거예요.

그게 누구냐? 그게 구약 때는 삼손이고 신약 때는 바로 성도입니다. 이 스케줄을 주님께서는 약속으로서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에 힘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다 아시지요. 그 머리카락 인간이거든요. 그 머리카락 이전에 삼손은 아버지한테 천사가 찾아오는데 천사 이름이 기묘자에요. 인간의 이름으로는 나를 평가할 수 없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 땅의 인간들은 남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남들이 평가하고 있고, 나는 그 평가에 맞추어서 ‘나 어때요?’라고 평가받기 위해서 내세우고, 나중에 이도 저도 아니면 결국 마지막에는 그것이 습관화되어서 내가 나를 날마다 평가하는, 기묘자가 아닌, 뻔히 평가받는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면, 이 천사의 이름은 기묘자라, 땅의 어떤 원리와 원칙에도 벗어나 있어요.

평가될 수 없는 그 기묘한 일이 뭐냐? 바로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온다는 그 사실이고, 그 힘을 가진 삼손의 머리카락의 취지는 민수기 6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그 머리카락이 잘릴 때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삼손이 삼손 아닐 때, 삼손이 삼손으로서 죽을 때 비로소 주님의 그 머리카락 힘이 현실화되어서 쏟아진 거예요.

머리카락가지고 여자나 챙기려고 할 때는 전혀 머리카락의 취지가 나타나지 않다가 힘이 있는 삼손이 진짜 힘에 의해서 내가 죽을 수 있는 힘, 내가 없어질 수 있는 힘, 그 힘이 발휘될 때 거기에 기묘자의 힘이 발휘되어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한 뜻이 그 뜻이에요.

예수님이 살고자 하면 절대로 구원의 힘이 안 나옵니다. 인간은 죽음의 힘에 잠겨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시민권이 있으면서도 이 땅에서 죽어버립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면서. 수류탄을 투척해서 그 차가 폭발해서 그 지독한 맹목적인 악한 놈 이 정재와 주인공 되는 황 정민 둘 다 죽어버려요. 그걸로 영화 끝나버립니다.

이제 영화 보지 마세요. 재미 하나도 없어요. 콱 죽어버려요. 자기를 잃어버린다고요. 자기를 잃어버릴 때 자기를 안 잃어버리려고 애썼던 그 부질없는 짓을 한꺼번에 다 손 놓았을 때 그 감격, 그 성령 받음에서 오는 감격, 그 가벼움, 어떻게 말로 표현 못합니다. 기묘합니다. 내가 봐도 내가 기묘할 정도로 기묘해요.

주님께서 구치소에 있는 자기 아들한테 찾아와서 숨을 쉬게 하듯이 비로소 우리는 생명의 숨을 이제야 쉽니다. 성령 받으면.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끝.” 코로나 19 지나고 코로나 뭐가 오더라도 상관없어요. 뭐가 와도 상관없어요. 우리는 이미 내 인생은 죽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있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질없이 자기 윤리나 찾고, 도덕이나 찾고, 그래서 내가 나를 관리하고 지키고 ‘주여, 이만하면 천국갈만 합니까?’라고 묻고, 얼마나 괴물한테 시달렸던 인생이었습니까? 제발 이제 그만 이런 악에서 건져냄을 당해서 오직 주님만 찬양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7강-빌 3장 20절(십자가와 천국)200823-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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