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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3 13:14:07 조회 : 99         
피를 품은 논쟁 이름 : 송민선(IP:125.139.131.147)
오직 하나님께만 죄를 발산할 죄인이 어미 자궁 안에서 자라고 때가 되면 커다란 세상 자궁 안으로 배출되면서 죄 안에서 태어나고 죄 안에서 양육되는 죽음 안에 감금되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기에 내부에서 같은 류끼리 진정한 소통을 하며 가치와 보람을 누리고 선을 추구하는 삶을 지향하며 아무 문제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이 세상다웠기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불법의 세계에 죄인과 동등된 출산의 형태로 세상에 내어주셨을 때, 갇힌 자의 육안으로는 예수도 살아있고 나도 살아있으며, 예수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 된다. 그러나 기존의 구조에 속하지 않은 예수님 안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동질이 아니고 이질적이었고 우리는 의롭다는 것에 주변 모두가 ‘예’를 던지며 연대를 이루고자 안달인데 주님 혼자 당당하게 ‘아니오’를 외치며 의인이 되기에 조금 부족하다는 것도 아니고 지옥 심판을 면치 못할 악마의 자슥이라고 하시며 몸에 붙은 벌레 떼어 내듯 무리를 단호하게 떨어내셨다.

이런 다수의 ‘나’들이 하나로 뭉쳐 예수님을 향해 쏟아낸 결론은 그가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였다. 나를 모독하는 것은 내가 목숨 걸고 믿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과 같다는 신념을 지울 길이 없기에 예수님을 죽음으로 밀쳐낼 수 있었고, 그렇게 십자가를 이루기까지 예수님은 아버지의 지시대로 유일하게 살아있는 한 알의 씨앗으로 오셨고 죽음으로 들어가 그 썩음에서 살아난 생명이 되셨고 인간이 왜 율법을 지킬 수 없는지 완벽한 증거를 만들어내셨다.

태어나기 전부터 장착된 사람의 근원적 고통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둥지에서 버려지는 것이다. 몸이 기억하는 에덴동산 추방사건에서 비롯된 버려짐의 아픔은 죽음보다 더하기에 인간은 죽음의 마지노선을 긋고 경보기를 설치해서 그 선을 침범하려는 자극을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차단시킨다.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들 마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죽음이라는 막을 벗겨버리고 그 뒤에 있는 실체와 자신들을 분리하려는 것을 강하게 감지하자, 그들은 최후수단으로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리는 방법을 택했고 자신의 하나님께 버려지기 전에 예수님의 하나님을 버리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율법 안에 가두어 죄가 심히 죄 되게 하셨고 이로 인해 예수님이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이 그분께 남긴 모든 상처가 주님의 몸에 고스란히 증거로 남았기에 심판대에서 부활의 주를 뵐 때 누구도 자신의 죄를 부인할 수가 없게 되었다.

율법을 지킨다는 말이 성립되는 핵심요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기에 율법을 지킨다고 믿을 수 있었고 또한 율법을 어기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를 율법대로 두세 증인 그 이상의 증인들을 두고 신성모독의 죄인으로 처단할 수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을 홀로 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위해 증거 하시는 분이 하나님인 것을 그들은 끝까지 알지 못했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안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증거가 하나님을 제일 정확히 안다는 이스라엘에 유대인들을 통해 만들어졌고, 이로써 구원자가 유대인에게서 나게 하셨던 하나님의 뜻이 온 천하에 퍼지며 이제는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하나님을 아느냐 모르느냐, 교회를 다니냐 안 다니냐, 자신이 의인이냐 죄인이냐의 자체논쟁들을 종결시키는 끝지점에서 심판을 위한 심판만 남아있다는 피의 논쟁만 작렬할 수 있다.

첫째를 출산할 때 진통만 스무 시간 넘게 하면서 기력이 다 소진되어가는 상태로 본격적인 산모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분만실로 옮겨졌다. 옆에서 돕던 의사가 엄마가 힘을 못 주니 아기가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며 힘을 더 주라고 외쳤고 아기가 힘들어한다는 말에 없는 힘까지 쥐어짜고 있는데 허리로 힘주지 말고 아래로 밀 듯 배로 힘을 주란다.

출산 전에 미리 이론으로 모든 것을 숙지하고 왔건만 막상 실습상황에서는 써먹지를 못했고, 의사는 산모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재차 설명해주었다. ‘화장실에서 힘주는 것처럼 힘을 주세요’ 설명이 명쾌했고 이제 그 방식대로 힘만 주면 되는데 그런 다급한 와중에 되지도 않는 갈등이 올라왔다.

‘아가와 그것이 같이 나오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쩌지. 그냥 수술할 걸 괜히 참았나?’ 임신하기 전부터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태교를 하며 공들인 고귀한 생명이 출산 되는 마지막 길목에서 더러운 사태가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고 싶지 않다는 사소한 위생 취향 따위는 아랑곳없이 아기가 더 내려왔으니 빨리 힘을 주라는 의사의 목소리만 왕왕거렸다.

도대체 아기가 나오는 것인지 화장실 가고 싶은 것인지 분간할 정신도 없고 자기를 관리 단속하는 것이 불가한 채로, 소리가 지시하는 대로 울음소리가 들릴 때까지 영혼 이탈한 몸이 저절로 떠밀려가는 것 같았다. 아기는 아늑했던 자신의 공간이 무너지며 낯선 곳으로 휩쓸리는 공포에 맞서 최선을 다해 머무르려고 하고 어미는 어떻게든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서로 줄다리기를 한다. 출산의 고통이 통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순간 아기는 자신의 세계와 분리되는 고통을 겪으며 밖으로 나오고 있었고 나는 나와 분리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내 안에 본능적으로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불의를 배척하고 싶은 정보가 담긴 이 마음이라는 것이 엄마 뱃속부터 생성되고, 죄인이 태어나는 통로와 배설의 통로가 왜 이리 가깝게 붙어 있느냐, 어느 쪽이 더 더럽냐의 문제가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더러움의 속성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산부인과에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만드신 죄인 배양기가 문제가 아니고, 입으로 들어가 뒤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원래 하나님이 만드신 매뉴얼 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막는 변질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역겨운 음란이다. 더러운 마음을 깨끗하게 새로운 것으로 만들 능력을 사람에게 주신 적이 없으니 어차피 태어났고 에너지가 발산되고 뭔가를 할 수밖에 없어서 행하는 모든 것이 겉을 번지르르하게 칠하는 쪽으로 한걸음, 원래 하던 대로 그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갈 뿐이다. 내가 나의 유익과 의로움을 부인하는 쪽으로는 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불의를 배척했던 바리새인들조차 예수님께 악독만 가득하다는 욕을 들었다면 나는 더욱더 가능성이 없음을 눈치채고 포기하면 되는데 도대체 무엇이 속에서 작동하기에 끝까지 나의 최선과 나의 이름을 유지하고싶을까. 내 마음조차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서 내가 나라고 주장하는 모습이 도리어 이상하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행5:4)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감추셨던 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이 본래대로 있는데, 개가 영역 표시하듯 하나하나 인간 자신의 이름을 붙여 영유권을 주장하는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소로우실까. 내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내 것이 본래 주의 것임을 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통곡할 일이다. 처음부터 주의 이름 위에 내 이름표를 붙인 것이 내가 아니기에 내가 직접 뗄 수도 없다.

두 사람이 있으되 둘 다 모든 가진 것을 팔아 주께 드릴 수 있지만 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표가 이미 떼였기에 나타난 이름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결과적 몸짓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나의 이름표 그대로 나의 것을 주께 드리며 힘써 자기 의를 쌓는 행위를 한다.

얼마나 본질이 안 착했으면 착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그것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것도 모른 채 내가 의롭고 정직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복음의 난데없는 이단옆차기에 자아가 동강 나고 이제는 착하다는 말이나 칭찬이 제일 거북스러운 말이 되어버렸기에 본격적으로 착하다는 말을 기쁘고 감사하게 들을 수 있다. 이래도 저래도 쓰레기는 쓰레기니까.

‘내가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자입니까?’라는 나의 마음을 부인하게 만드시고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나이다’라는 주의 마음에 합류시키는 믿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눅 8:48)하신 믿음이고 사도바울이 주목하여 본 “구원받을 만한 믿음”(행 14:9)이 믿음이었다. 죄만 풀풀 풍기는 풍선 인형이 주께서 흔드시는 대로 흔들리며 이 세상에 구원은 없고 이곳에서 홀로 구출 받으신 예수님 자신의 구원만 있음을 증거 하도록 하루하루 성령의 바람을 채워 살리신다.

서로가 바람 채워진 풍선껍데기인 것을 알아채는 마주침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 53장의 주인공을 왜 궁금해하는지도 모르면서 간절히 알고싶어하는 무지함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다. 숨겨있는 분의 첫사랑을 가득 품은 타인과 연루되어 어느 순간 잊었던 첫사랑이 다시 작동하듯이 서로 한목소리로 신랑 이야기만 나누며 피를 품은 논쟁 속으로 함께 말려드는 것이 이 세상에서 잠시 맛보는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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