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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6 07:44:40 조회 : 63         
20220603a 울산강의-역대기상(11강) 9장 2절 : 자리배정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96)
20220603a 울산강의-역대기상(11강) 9장 2절 : 자리배정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상 9장하겠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유다의 아들 베레스 자손 중에 우대니“ 이렇게 돼 있지요.

어떤 분이 우리교회에 중요한 질문을 한 거예요. 여기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보계, 계보. 그냥 족보로 보면 돼요. 질문이 뭐냐 하면 왜 이스라엘에 족보가 많습니까? 그냥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되지 거기에 왜 족보가 끼어듭니까, 족보를 따져야 구원이 되는 이유가 뭡니까? 구원 되는 사람이 굳이 족보를 알아야 될 이유가 뭡니까? 같은 질문이겠지요.

족보란 자리배정이에요. 모심기 할 때 이양기로 콕콕 집어 심잖아요. 자리가 떨어져있어야 되지 같이 둘 셋이 섞이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 지정된 자리에 쏙쏙 집어넣는 거예요. 지정된 자리배정입니다. 그게 구원이에요. 여기 바탕, 이걸 신약으로 하면 처소가 예비 되면 또는 처소가 마련되면, 처소는 다른 말로 하면 지정좌석. 지정좌석이 마련되게 되면 내가 다시 와서 성령을 줘서 너로 하여금 지정좌석에 앉히게 하리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굳히란 뜻인데 뭐냐 하면 네가 이 세상 자리에 있다가 하늘나라의 지정된 좌석에 자리에 앉히게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지정좌석에 갈 때 이 세상에 ‘나’가 있어요. 이 세상의 나는 족보와는 상관없이 그걸 각자성, 다른 말로 하면 개별성, 또는 더 쉬운 말로 하면 개인주의 이게 이 세상의 특징입니다. 개별성, 각자성 자기밖에 모른다는 거죠. 그게 나에요.

이 나가 천국에 가서 지정된 처소에 있는 나는 이 세상의 나와 전혀 다른 나에요. 내가 달라요. 구원 받은 나를 지금 내가 몰라요. 구원 받은 나를 지금 이 세상에 있는 내가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내가 주님의 지정된 자리의 나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생뚱맞지요. 내가 이런 인간이었어요?

그걸 빨간 걸로 하면, 나 아닌 것의 만남이 됨으로써 진짜 나는 하늘나라의 좌석에 앉히는 그것이 예수님이 생각했던 진짜 나고, 지금 이 좌석에 있는 나를 전혀 모르고 나의 각자성, 개별성, 개인주의 여기에 빠져있는 나는 뭐가 돼 있느냐 하면, 이것은 가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짜부터 만들고 그 가짜를 복제해서 진짜 인간을 만드는데 그 복제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족보에요.

모는 벼가 아니에요. 벼의 모종이지 작지요. 그런데 천국 가는 나는 벼 모종이 벼가 되는 그 정도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게 아니고 전혀 다릅니다. 어느 정도로 다르냐 하면 진짜 나는 예수 안에서의 내가 진짜 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봤습니까, 못 알아봤습니까? 아무도 못 알아봤습니다. 제자들도 못 알아봤어요. 그러니까 구원 받은 나와 나 사이는 뭐가 있느냐 하면, 크게 쓰겠습니다.

결렬, 또 결렬. 보통 회담할 중간에 누가 삐지면 결렬했다 하잖아요. 그래 잘났다, 하고 헤어지는 걸 결렬이라 하잖아요. 우린 늘 매일같이 주님을 대해도 주님은 내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주님, 당신은 내가 아니야. 내가 나야, 라고 세상에 있는 내가 나라고 우기면서 늘 주님과 결렬해요. 결렬하는 방법은 뭐냐 하면 주님의, 파란 걸로, 선지자의 예언과 주님의 예언과 주의 말씀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결렬이 일어납니다.

주님이 내 인생에 대해서 아는 것 있어요? 모르면서 나한테 아는 척하지 마세요, 이런 식이에요. 이런 식으로 결렬하는 거예요.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나로 사는 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다움’이라고 해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다움으로 살아가는데 성경의 예언과 말씀들에 대해서 우리는 강력한 반응을 하고 거부를 하는 거예요. “성경이 뭘 안다고 나한테 잔소리질이야. 잔소리하지 마.”

내가 나다움을 유지하는데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이제껏 이런 식으로 나는 나를 위해서 지사충성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성경으로 나한테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렇게 되지요. 성경말씀은, 내가 나다움 되는데 보태기 위함이 아니고 성경말씀, 예언의 말씀들은 내가 가짜라는 거예요. 진짜 나는 예수님이 따로 만들어놨어요.

결렬이란 말을 제가 하는 이유가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예언을 내 쪽에서 밀어내치기 때문에 이거는 결렬될 수밖에 없어요. 아주 쉬운 예를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신명기에도 나오는 말씀이고 마태복음 4장에도 나오는 말씀이거든요. 말씀으로 산다고 하니까 우리 내부에서 하나님 자기가 뭐 안다고 나한테 말씀을 하느냐? 말씀이 돈이 되나 떡이 되나 말씀이 출세를 시켜주나. 말씀 그것 아무짝도 소용없는 걸 왜 자꾸 나한테 강요하느냐, 라는 반발심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왜 저절로 일어나야 하느냐 하면 그게 가짜인 걸 티를 내기 때문에 저절로 일어나야 돼요. 우리는 가짜가 가짜인 걸 모르고 이걸 사수하려고 해요. 이걸 목숨을 다하여 지키려고 합니다. 나를. 한 예로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떠날 때 숯불 쬐면서 그날 밤에 잡혔을 때에 사람들 보는 앞에서 베드로가 공개적으로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나, 저 사람과 상관없습니다. 나, 저 사람 제자 아닙니다. 내 입으로 저 사람 제자 아닌 걸 티를 내봐요? 나, 저 사람이 저주받기를 원합니다.” 제 말 어때요, 하고 베드로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했어요.

여러분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사람입니다. 베드로 장모가 병에서 나은 사람이에요. 베드로가 귀신을 쫓아내고 베드로가 말씀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오병이어를 경험했던 사람이에요. 풍랑이 잔잔해진 걸 눈으로 목격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나 이 가짜 나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주님의 그 기적과 예언이 아무짝도 소용없었어요.

왜? 인간의 근원적으로 품고 있는 공포심은 아무리 자기 내부에서 말씀을 지키려고 해도 내 내부의 공포심을 사라지지 않습니다. 교회 오십 년, 육십 년 다니고 목사님 성경말씀대로 지킨다고 해서 내 안의 깊숙이 잠겨있는 이 무서움과 두려움 내 안에서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자, 떠나지 않을 때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같이 폭파되면 돼요. 내 공포와 함께 폭파되면 되는 겁니다.

그 폭파되는 방식을 알려드려요? 궁금하지도 않지요. 내 공포와 함께 폭파되는 방법 알려드리겠습니다. 알려달라는 소리 안 해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게 요셉이 경험했던 건데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주의 말씀이죠. 주의 말씀과 예언을 뭐로 보느냐 하면 창세기 37장 5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꿈으로 집어넣으면 돼요. 꿈이 밤을 대신해주니까요. 꿈이 밤을 대신해줘요. 이게 뭐냐 하면 아무리 밤이 길어도 꿈을 꾼 자한테는 그 밤은 죽은 자가 아니고 그 꿈이 살아 있는 한 그 사람은 깜깜한 밤 속에서도 살아 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았고 그 요셉의 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하나님은 실습을 시키는 데 어디에 보내느냐 하면 그 당시 최고의 권력이 있는 나라, 요새는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그 막강한 권력을 집중시키는 그 나라에 그 애굽의 바로 왕까지 나서도 비록 요셉은 아무것도 아니라도 요셉을 꿈꾸게 만드는 그 꿈은 애굽의 바로 왕보다 위대했습니다.

이 꿈이 이 세상을 주님이 주신 말씀과 예언이 꿈으로 들어와 버리면 이 밤을 무엇을 뜻하느냐? 이 밤은 이 세상 자체다. 요한복음에선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어두움이라고 해요. 이 세상 자체가 어두운 거예요. 이거는 서울대학 가고 안 가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한 달 수입이 이천만 원이고 삼천이고 그게 문제가 아니고 누가 대선에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 남자나 여자나 모든 사람을 다 덮는 게 뭐냐 하면 밤이에요, 밤.

밤에는 모든 소가 어둡다고, 헤겔이란 철학자가 이야기했어요. 이게 뭐냐 하면 모든 것이 밤이 되고 태양이 잠을 자고 어둠이 내리면 그 어떤 고관대작이나 건강한 사람, 아픈 사람,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얼굴 늘어진 사람, 주저앉은 사람, 얼굴 당긴 사람 그것 관계없이 모조리 다 어두움을 형성하는 재료가 돼요. 원료가 된다고요. 인간들이 모여서 어두움이 되는 거예요.

어두움인데 그 어두움을 성경에선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것을 제일 어려운 건데요. 어두움을 뭐라고 하느냐? 이걸 죽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 죽음은 뭐냐 하면 천국에서 자기 자리를 배정 못 받은 걸 죽음이라 해요. 천국에 자기 자리가 없는 것, 지정좌석이 없는 것, E열에 5번, 영화관에 가면 있잖아요. C열에 8번.

극장뿐만 아니고 기차 타도 8호차 13C 자리 없으면 복도에 서서 가야돼요. 자기 자리가 없는 거예요. 그 자리, 그 바탕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어두움의 반대 빛이라 하고, 그걸 죽음의 반대 생명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이야기 들을 때 성경 전체를 다 아신 게 돼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가짜를 만들어서 진짜를 보여주는 게 주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가짜에요. 그리고 그 가짜의 재료 형성하는 것이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얼마를 벌든지 키가 몇 센티인지 남자냐 여자냐 얘가 몇 명인지 어느 대학 나왔는지 전부 다 모조리 가짜입니다. 왜? 주님께선 그 조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리나 창기라도 강도라도 진짜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거든요. 이 세상은 본인들이 어둠 속에 속해서 그 자체가 죄인 걸 모르고 죄가 따로 있다고 봤습니다. 죄가 따로 있고 의가 따로 있다고 본 거예요. 그러나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나오지요. “의인은 없나니” 의인, 착한 사람, 겸손한 자, 대단한 사람, 경건한 사람? 성경의 답변은 간단해요. 없다. 너희들끼리 비교할 때는 착해 보이지만 율법 앞에서 하나님의 예언과 말씀 앞에서 누가 의인 나와 보라고 그래. 누가 의인인데? 율법 앞에서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골라요. 나보다 더 착한 사람, 나보다 더 악한 사람을 고른다고요. 가짜가 가짜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왜 그렇게 의인을 고르고 나쁜 사람을 고르느냐? 본인을 나의 나됨을 진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조작질을 하는 거예요. 어느 강의에서 그걸 뭐라고 했느냐 하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연기한다. 배우가 연기하듯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연기하다가 볼일 다 봐요. 위선자로 살면서 볼일 다 봅니다.

그 위선자의 중심은 뭐냐 하면 나만큼은 진짜 착하고 훌륭한 사람임을 내가 대외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인간의 모든 욕망은 내가 이렇게 존재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는 욕망입니다. 그걸 성경에 로마서 10장에서 자기 의라 해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확인하는 거예요.

그 자기 의를 계발하고 기술을 익히고 자기 의를 자랑질하고 그것을 배틀, 그걸 경쟁하는 자리가 뭐냐? 교회가 되고 말았어요. 그게. 교회가 아니고 가짜지요. 가짜들이 가짜 아님을 감추고 진짜로 거짓 행세하는 동네가 교회가 되고 말았어요. 누가누가 착하나, 누가누가 경건하나, 누가누가 하나님에 영광 돌리는가? 시합 붙이는 거예요. 누가 헌금 많이 하고, 누가 전도 많이 하고, 누가 봉사 많이 하는지 시합 붙이는 데에요.

밤에는 모든 것이 어두워야 마땅한데 그래도 그 가운데 최선의 노력하는 자와 최악의 존재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란 말을 집어넣어도 어떤 나와 남과의 차이를 자꾸 부추기는 그러한 세상이고 그 세상에서 늘어진 게 교회니까 교회란 게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몰라요. 이제부터 중요하니까 잘 들어보세요.

이 꿈이 어떻게 오느냐? 꿈은 나로 시작하지 않는 경험으로 오는 거예요. 더 노골적으로 말씀드릴게요. 내가 결정하지 않은 결정을 내가 차분히 뭘 해서 어떤 결과를 내는 그런 식이 아니라 내가 원인이 되어서 성과를 얻는 결정이 아니라 이미 결정지어진 그 결정, 벌써부터 결정 난 그 결정이 꿈으로 우리에게 쑥 들어온 거예요. SUK 이것 어떻게 읽습니까? 이거 뭐 에스 하나 더 붙이지, SSUK. 쑥. 제가 어떤 선전 보니까 이런 게 있어서. 골프를 어떻게 칩니까? SUG 친다는 광고를 봤어요. 패러디 해봤습니다.

다시 말할게요. 내가 시작하지 않는 내가 거기서 기대하지도 않고 예상하지도 않는 다른 결정하고 쓱 하고 이미 침투해버린 거예요. 요셉에게 요셉이 이해 못할 이상한 꿈의 내용이 요셉을 장악했듯이 그런 식으로 나를 장악해버린 거죠. 그렇게 여기에 쓱 들어오게 되면 여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당황스럽다. 요셉이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심지어 아버지도 당황했고 형제들도 당황했습니다.

하필 너만 그 꿈을 꾸고 우리한텐 그 꿈이 없느냐? 그걸 요셉에게 닦달 낼 수 없어요. 왜? 요셉도 지가 꿈꾸려고 노력한 적이 없어요. 이런 요셉의 꿈꾸게 해달라고 철야 기도한 적이 없어요. 하나님께 충성봉사한 적 없습니다. 그냥 하늘의 독수리가 갓난아이를 덮치듯이 그냥 아무것도 모른 얘에게 덮쳐버린 거예요. 참 이게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어린아이의 특징은 뭐냐 하면 언어가 없어요. 언어가 없어서 이게 어떠냐 하면 이게 자연스러워요. 자연스럽기 때문에 이거는 생명의 흔적을 많이 품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같은 또래의 어린아이가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 충격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왜 자연스러운가? 어린아이는 언어를 익히지 못했어요.

언어를 익히지 못한 사람들은 자연에 가까워요. 이 세상 자연은 언어가 없기 때문에 자연이 훨씬 자연스럽고 억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겐 뭐가 있습니까? 말이 있지요. 그 말은 어디로 돌아오느냐? 나의 나됨, 나의 각자성, 개별성, 나의 이기성으로 이 언어가 되돌아와요. 그 언어에 뭐가 실리는가? 이성과 합리성이 실리거든요. 쉽게 말해서 변명이 실리는 거예요.

그래서 뭐든지 남을 만나서 입을 뗐다고 말을 하면 하는 족족 나 잘났다, 내 자랑이 계속해서 나로 귀환되는 순환구조를 형성합니다. 인간의 말은. 그래서 말을 하면 시끄러워요. 말 하면 짜증이 나요. 그래 결론이 뭐야, 결론이? 나 잘났다 이거지 뭐. 부부 싸움할 때 말 없어 보세요.

인간이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나한테 친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나의 나됨과 현재 있는 나와 아마 같을 걸, 이러고 싶은 거예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아는 나를 안 만나게 해줍니다. 내가 나를 우리가 품지 못하게 말리십니다. 그 말리는 게 뭐냐 하면 바로 죽음이에요.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너, 빠이빠이다, 이제.

그래서 인간은 공포스럽지요. 왜 공포스러우냐 하면 내가 나를 떠나는 것이 나한테 가장 걱정거리고 공포스럽기 때문에 그게 평소에 두려운 겁니다. 인간이 죽음은 무섭지 않아요. 그러나 죽기 직전이 무섭지요. 죽고 난 다음엔 무서운지 몰라요. 죽기 직전이 제일 무서워요. 왜냐하면 그렇게 정들었고 공들였던 나를 이제는 놔줘야 되니까.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내가 그렇게 애지중지한 나를 이제는 놔줘야 되니까요. 섭섭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동안 인생 뭐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인생 내가 왜 살았지? 이렇게 떠나보낼 것, 도대체 나에게는 나 외에 다른 목적이 없었어? 정말 그런 거야? 평생을 모든 공부를 하고 돈을 벌었지만 그 목적이 나를 붙잡는 그것 외에 다른 목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사는 겁니까? 지한테 매료된 거지요. 마약처럼 지한테 빠져있는 거지요.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제대로 살지 않는 거죠. 그래서 이런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기어이 주님의 예언과 주의 말씀과 주님의 모든 복음을 극구 밀어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그것도 듣기 싫습니다. 죄인이 받을 것은 저주밖에 없다. 그것도 듣기 싫어요.

그런데 꿈은 내 의식이 밤에 잠을 잘 때는 내가 자율신경, 다시 말해서 교감과 부교감, 인간의 내장을 관장하는 신경계 외에는 전부 다 스톱이 돼요. 자면서 옆 사람 패면 이거는 병원에 가야 돼요. 몽유병 환자라서. 인간의 두뇌에 근육을 움직이는 그 신경이 밤에는 스톱이 된다고요. 감각이 근육신경을 바꾸는 그게 스톱이 되고, 밤이 되면 꿈이 작용하거든요.

꿈이 작용하게 되면 이젠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꿈이 일방적으로 나한테 쳐들어와서 나의 세계를 휘젓고 다니지요. 여러분 꿈도 그렇지요. 가짜 꿈도 그런데 진짜 주의 말씀과 주의 복음이 에스유케이 쑥 하고 우리한테 침투해버리면 우리는 당황스럽습니다. 우리를 수갑 채우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꿈에서 내 의지대로 못하듯이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주님께서는 내 뜻대로 의도대로 안 되는 상황을 급작스럽게 우리에게 닥치게 해서 주님이 움직여서 우리로 하여금 나의 참된 내 모습을 만나게 하는데 그 참된 내 모습이 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지정된 자석 위에 바탕 위에 내가 꽂아 앉아있는 우리의 모습을 만나게 해주는 겁니다. 가짜 내가 진짜 나를 만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돼요.

이게 신약에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이야기가 오늘 우리는 역대상 9장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바로 보계, 또는 계보, 족보 온 이스라엘이 그 족보대로 계수하여, 라는 역대상 9장 1절의 말씀, 이 업무를 누가 하는가? 이 업무를 제사장이 합니다. 레위 지파가 해요. 그게 바로 2절입니다. 어디서 하느냐? 그게 3절에 예루살렘.

역대상에 나오는 계보, 두 번째 레위 지파, 세 번째 예루살렘 이게 한 조를 이뤄요. 구성요소가 돼요. 하나님의 좌석배정하기에 필요한 조건들이 된다 이 말이에요. 공장에서 제품 마지막에 키트로 검사하잖아요. 진단하지요.

며칠 전에 제가 집에서 콧물이 약간 나고 감기기운이 있으니까 갑자기 아내의 모습이, 나 감기약 먹고 누워있을래, 하고 누워있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아내 모습이 달라졌어요. 집에서는 아내가 마스크를 쓰질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얼굴 아래쪽이 하얗게 천으로 가려져있었어요. 마스크를 쓰고, 그리고 오른쪽엔 진단키트를 가지고 왔어요. 코로나 진단키트.

아하, 본인만 살려하는구나. 해서 콧구멍 쑤시는 솜 봉으로 하라는 거예요. 두 줄이면 코로나, 한 줄이면 코로나 아니다. 당장 했지요. 자기는 마스크 쓰고 대비를 하고 안전장치는 다했어요. 하니까 한 줄 나왔어요. 한 줄 나왔는데 30분 지나야 확정된다는 거예요. 아직 마스크 안 벗었어요. 30분 뒤에 보자고. 나도 배짱이다 하고 30분 있었습니다.

코로나 진단키트, 이걸 구원 진단키트로 바꿔봅시다. 한 줄이면 지옥이요, 두 줄이면 천국. 한 줄이면 괜찮고 두 줄이면 임신, 이런 거요. 구원 진단키트를 작동을 시키면 세 가지가 있어야 돼요. 하나는 족보, 하는 레위 지파, 또 하나는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라는 반도체 판 있잖아요.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사인한 판 있잖아요. 판 그 자체가 예루살렘이라 보자 말이죠.

예루살렘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 가로세로 좌석들이 끼어있어요. 거기다가 모심기하듯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 좌석배정을 누가 하느냐? 레위 지파가 하거든요. 레위 지파는 지가 뭔데 남의 좌석배정을 하느냐? 지금 구약이야기입니다. 역대상이야기에요. 신약에 오게 되면 진단키트를 오직 예수님의 피를 자랑하는 걸로 끝나요.

예수님의 피가 입에서 나오면 그런 낯선 언어가 나오면 구원 받았고 예수님의 피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게 안 나오면 십자가로 자랑하는 게 없으면 지옥 가고 그런 거예요.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편지를 압축시키면 십자가를 자랑하느냐, 니 자랑하느냐 둘로 나눠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구약입니다.

구약에서 레위 지파가 지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자리배정을 그렇게 하느냐? 레위 지파가 하는 일은, 레위 지파 피를 다루기 때문에 벌겋지요. 레위 지파가 하는 일은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을 뽑아내는 일을 해요. 그러면 앞에 있는 이스라엘은 백 프로 가짜겠지요. 가짜에서 주사기로 뽑듯이 가짜에서 진짜 이스라엘을 뽑아내는 일을 하는 거예요. 레위 지파는 어디까지 갔느냐? 신약 때까지 계속 이어져요.

그걸 뭐라고 돼 있느냐? 이렇게 돼 있어요. 1절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그 보계대로 계수되고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열왕기란 왕들의 기록물, 우리나라의 조선실록이에요. 왕들 시대에 이스라엘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한 책에 있다는 말은 그 책은 이미 역사가 완료된 채 그 책이 만들어졌다는 뜻이에요. 무슨 일이 다 끝나고 난 뒤에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역사책을 쓰듯이.

그다음에, “유다가 범죄 함을 인하여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1절에 그렇게 돼 있지요. 유다가 범죄 했으니까 유다가 뭐냐 하면 이스라엘을 대변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그 지역을 유다 지파가 있었고 이스라엘이 뜯기고, 뜯기고, 뜯기고 다 뜯겨나갔거든요. 이스라엘 전체가 한꺼번에 다 앗수르, 바벨론에 잡힌 게 아니고 유다 나라 빼놓고 나머지는 앗수르라는 이방나라에 뜯겨나갔고, 그다음에는 바벨론 나라에 마지막 다 뜯겨나간 거예요.

그런데 뜯겨나갔다는 말은 맞는데 뜯겨나갔고 하지 말고 유다 나라에서 엑기스, 이스라엘에서 뽑은 이 엑기스가 어디로 가느냐 하면 천오백 킬로미터 떨어진 바벨론 수도에 그 당시 서울에 그 이방민족 안에 이 엑기스가 들어가 있어요. 이것을 뭐냐 하면 여호와를 이긴 마르둑 신, 이방 신을 축하하고 그걸 찬양하는 그 지점에 여호와의 새로운 이스라엘이 여기에 암적 요소처럼 드디어 박히게 된 겁니다.

제는 이걸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티눈. 티눈은 잘 안 빠집니다. 티눈에는 약이 있습니다. 그걸 몇 날 며칠 발라야 그게 쏙 빠지거든요. 티눈처럼 박인 거예요. 이 말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거룩은 어디 있느냐? 가장 더러움이 승리한 온통 더러움 밖에 없을 때 그 안에 이렇게 잠복돼 있어요.

울진의 어느 집에 남편이 아내 몰래 자기 노후 대비한다고 금괴 열 개를 자기 집에다 숨겨놨는데 아내는 그 사실도 몰랐지요. 나중에 내가 늙을 때 서프라이즈 해서 알려준다고 했는데 서프라이즈 하기 전에 늙어 죽어버렸어. 산에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태우니까 그제야 금괴상자도 타버리고 금괴 열 개가 나왔다는 것을 제가 소설로 만들어봤습니다. 실제로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가짜 나를 태우는 거예요. 산불 나서. 나를 철저하게 죄인이라고 알려주는 그것이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에요. 이제 너의 가짜에 그만 놀아가라. 이건 남들은 속아 넘어가지만 주님은 속아 넘어간 적이 없는 그 가짜 나, 남 앞에 으스대는 나, 개뿔도 없으면서 기 안 죽으려는 나, 평생을 없는 게 자존심 하나 살아서 까부는 나 그것 주께서 철저하게 주의 예언과 주의 말씀으로 거덜 내게 하시는 거예요.

신앙도 없으면 신앙 있는 척, 교회는 참 우습지요. 진단키트 하면 전부 다 한 줄밖에 안 나와 지옥 갈 사람들이 전부 다 두 줄 나온 척하고 있는 그런 동네가 교회거든요. 그래서 이것은 예수님도 그런 이야기했어요. [네가 죽어야 네가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좀 적으세요. 여러분은 안 적어도 돼, 다 외우니까. 외우기 싫어요? 내가 죽을 때 비로소 진짜 나가 등장하는 겁니다.

진짜 나가 뭐냐? 진짜 나는 내가 공들이지 않은 나, 다른 데서 내가 공들이지 않고 다른 분이 나의 기초가 되셔서 그 열매로서 따로 챙겨놓은 금괴 같은 귀한 보물 같은 나는 그동안 내가 나한테 신경 쓰다 보니까 그게 막혀버린 거예요. 그게 나한테 먹이질 않았던 거예요. 평생을 통해서 나한테 공들인 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죽기 싫어서 공포심을 부여잡고 밀어내는 데 급급했습니다.

저 손자 내가 키웠고 저 아들 내가 다 키웠고 이 아파트는 자갈치 시장에 반티이(이남박, 함지박) 장사해가면서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헤매고 다니면서 고생했었는데 내가 번 돈이다. 청약저축해서 이십 년 만에 산. 모든 것들이 나를 붙들고 안 놔준 거예요. 자기의 공로, 자기의 피와 땀방울 그게 아까워서 어떻게 놓습니까? 못 놓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그렇게 말이 많아요. 어린애가 아니고 그렇게 말이 많아요.

오랜만에 친구가 새집에 와서 도자기 있으니까, “아, 이 도자기. 내가 이태리 갔잖아. 거기서 벼룩시장에서 샀잖아.” 말이 많아. 진도 좀 나가자 하니까, “이 이야기 들어야 돼. 유래가 있어. 루이 14세 때....” 계속 이야기하는 거예요. 소설을 써도 열 권 이상 하나하나 다 해요. “이 사진 누군데?” “이게 바로 내 손자.” 이 손자가 어떻게 태어났고 병원에 갔는데 내가 뭐 어떻게.... 그다음에 진도 나가자 하면, “진도 나가기 전에 이 이야기마저 들어야 돼.” 끝도 없어요, 끝도.

내가 가짜가 살아 있으니까 나오는 말들이 전부 다 내 말이에요. 나에게 돌아오는 내 말만 나오는 거예요. 여기에 진단키트로 마스크 쓰고 한 번 진단해볼까요? 여기서 십자가만 자랑하는지. 안 나오지요. 안 나옵니다. 또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말을 집어넣는데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말을 집어넣어요. 신앙도 없는 게 들은 풍월은 있어서 십자가 집어넣으면 그게 자기 말 됩니까? 그건 십자가 믿는 게 아니고 십자가 믿는 나를 믿는 거지요. 그런 가짜는 또 진단키트 동원하면 지옥 선만 나와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느냐? 나의 동일성이 먹히지 않는 내용, 이게 주님의 복음입니다. 나의 동일성이 중간에 절단돼야 돼요. 끊어져야 돼요. 전까지는 나다움 나를 위해서 살다가 중간에 주님 주신 말씀이 꿈처럼 들이닥쳐 버리면 내가 죄인이다, 라는 게 아니라 잘 들으셔야 돼요. 우리가 무슨 잘못했다고 죄인입니까?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울산 전체가 다 죄인이에요. 한국, 지구 전체가 죄인이고 인류역사 전체가 그게 음란하고 악한 세대에요.

그러니까 복음 알고 자책하지 마세요. 나만 쓰레기인가, 그 명언 있잖아요. 그것 적용시키기 바랍니다. 쓰레기 아닌 자가 없어요. 괜히 기죽지 마세요. 실수하고 실수 안 하고 그것 주의 뜻입니다. 실수 안 하고 싶어도 실수하고요 실수하려해도 실수 안 하도록 주께서 인도하십니다.

세상의 잘, 잘못은 내 탓 아니에요. 이런 좋은 소리할 때는 감격하세요. 내 인생에 내가 책임지지 마세요. 그때 실수만 안 했어도 그런 잘못 안 했어도, 지나간 나에 대해 발목 잡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새로 죽고 날마다 새로 사는데 지난날이 어디 있어요. 어제도 다 꿈이었고 오늘도 꿈인데.

주께서 우리 자신을 지정된 좌석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하는 사건과 사건의 연발, 연발이었어요. 지나온 모든 세월이. 집사님은 왜 남자에요? 본인이 남자된 걸 본인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책임 못 지지요. 정자, 난자 오십만 대 일, 그런 이야기할 필요 없어요. 놀라운 기적이다. 백만 대 일은 왜 안 되고? 오십만 대 일에서 이십오만 대 일로 바뀐 것이 쌍둥이입니다. 그것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 없지요.

왜 남자이십니까? 답변하시겠어요? 답변 못하지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게 어린아이 마음이에요.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지 되지 아니하면 천국 못 간다 하잖아요. 방금 이러한 제 질문은 당황스러워요. 왜냐하면 평소에는 나 잘남을 위해서 말들을 사용하다보니까 배운 지식들을 동원하다보니까 당황스럽기 짝이 없지요. 왜 어린아이처럼 못 삽니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라고 왜 말을 못해요. 저분은 내 구세주라고 왜 말을 못해. 저 사람은 내 사람이다, 내 여자다 왜 말을 못해.

영화에 그런 대사 있듯이 저분이 나를 창조했고 저분이 내 천국 자리를 배정했다, 왜 말을 못해요? 워낙 우리가 남들한테 안 지려는 그런 되지 않는 체면 같은 것, 자기 의로움, 나의 나다움 이런 것들의 평소에 주님의 예언을 짓밟았고 주님의 성경말씀을 극구 그만해라 많이 먹었다, 이런 식으로 밀어내고 있었던 겁니다. 성경에서 천국 간다하니까 하와이 니가 가라하는 식으로 밀어내는데 더 이상 여러분 딴 건 다 밀어내도 우리에게 강제로 들어오는 꿈은 우리 힘으로 밀어내거나 추방할 수가 없습니다. 그걸 기뻐하셔야 돼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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