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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18:53:19 조회 : 64         
강남-누가복음 12장 10절 (미래의 영) 220621b-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12장 10절 (미래의 영) 220621b-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12장 4절 봅시다. 2절 3절은 제가 말씀 드렸지요. 결국은 다 먼 환경의 압박에 의해서 결국은 드러나게 된다. 주변 환경, 가까운 환경이죠. 인간이 있다면 가까운 환경의 특징은 이게 탐욕의 대상이에요. 탐욕의 대상이고 바리새인들도 신을 믿고 천국을 기다리고 메시아를 기다리잖아요.


그건 먼 환경, 먼 환경은 그들에게 뭐냐 하면은 환상입니다. 환상. 종교가 되겠지요. 가까운 환경은 탐욕의 대상이 되고 먼 환경은 환상의 대상이 돼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꿈쩍도 안하지요. 자신의 위선과 외식과 기만이 이렇게 뽑혀져 나와야 되는데 자기 위선과 교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탐욕의 대상과 환상의 대상 둘 다를 자기가 소지할 수 있다고 모순 없이 소지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겁니다.


돈벌이는 돈벌이대로 하고 신앙생활 잘하면 되잖아. 이게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게 환상이거든요. 그럼 환상이 아닌 것은 뭐냐? 뭐가 환상이 아니냐? 이 세계가 바로 바리새인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유대 나라. 바리새인의 사상에 있는 공동체. 주님께서는 여기 오셨지요.


예수님께서 이 공동체에서 죽음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나 이 공동체랑 같이 안 논다. 빠져나가 버렸어요. 예수님은 빠져나오는데 성공했고 베드로부터해서 12제자 어떤 누구도 이 공동체에서 못 빠져나갔어요. 주님만 확 빠져나갔어요.


그러면 이 공동체 말고 종교도 있으니까 환상, 종교도 있으니까 초월적인 종교도 있고 실제적인 일상의 생활도 다 구비되어 있는 이런 세계 말고 또 다른 공동체가 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런 세계 있어? 가까운 주변 환경에서는 탐욕의 대상인데 현재 권력을 누가 쥐고 있습니까? 권력자가 누굽니까? 본디오 빌라도죠.


빌라도가 예수님한테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내가 너희를 풀어줄 권한도 있고 다시 묶어 둘 권한도 있으니까 나한테 잘 보여라.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에 주님께서는 내가 붙잡힌 것도 진리에 관한 일이다. 그러니까 빌라도가 진리가 뭐냐? 진리가 뭐꼬?


방금 내가 붙잡힌 내가 인간들에 수모당한 것이 이게 진리다. 분명히 진리 언급을 했거든요. 내가 위선자 너희들한테 못 박히고 죽임을 당하는 게 이게 진리야. 내가 죽는 게 진리야. 빌라도가 하는 말이 진리가 뭔데? 오늘날 우리들이 주님에게 질문하는 것 하고 똑같은 레벨이 거기서 거기 똑같애 우리하고. “주여! 주의 뜻을 알려주옵소서.” 주님께서 “이 본디오 빌라도야 내가 이 공동체에서 내가 죽었잖아.” “그거는 제가 믿습니다. 믿는데 주의 뜻이 뭡니까?” “내가 죽었다니까!”


나 자신을 믿는 그 공동체에서 주님이 빠져나갔어요. 이 말은 너 자신을 믿지 말라는 거에요. 너 자신을. 너 자신이 목 긋고 자살하라는 말이 아니고 그냥 냅둬. 그냥 돈 벌고 뭘 하든 살림하든지 뭘 해. 그러나 일체 믿지를 말라. 너 자신에 대해서.


그 목표를 goal 이라고 하고 목적을 aim 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이야기인데 목적과 목표를 같은 이야기인데 예민하게 구분하는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밥을 먹는 것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에요. 그거는 목적이 되고 목표는 뭐냐? 먹는 것 그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그게 목표가 되는 거에요.


따라서 밥 먹는 대신 링거 맞으면 목적은 이루어졌어요. 왜? 영양제가 들어갔으니까. 뭐를 잃어 버렸습니까? 어그적 어그적 닭 뒷다리 치킨 뜯는 그 맛, 그 맛은 이룰 수 없는 거에요. 인간들에게는 이처럼 둘 다가 만족스럽지를 못해요. 목적과 목표가.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인간은 내가 믿거든요. 내가 믿어야 되는데 내가 나를 믿는데 문제는 이 환경이 먼 환경이 나 믿는데 전혀 동조를 안해요. 우짜면 좋지요? 나는 나를 믿고 싶어요. 뜻을 세우고 스케줄 짜고 뭐 잘하고 싶어요. 그런데 대자연의 모든 사건이나 사태가 내 뜻에 협조가 안돼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4절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니까 몸은 죽일 수 있으되 영혼까지 못 죽이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예수님께서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럼 이 대책을 줄여보면 그들이 너희를 죽이려 할 때에 아무 소리하지 말고 그냥 죽어라. 이게 왜냐하면 주님의 복음의 세계가 이 인간들의 주변 환경을 압축해 들어오고 있음을 네가 그걸 반기면 되잖아. 내가 죽는 그날이 내가 사는 날이 되기 때문에 그걸 기뻐하라 이 말이거든요.


왜냐하면 내 육신이 내 구원을 방해했기 때문에 그래요. 내 육신이. 내가 살고자 하는 육신이 끊임없이 나의 진짜 주님 섬김을 방해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나는 주님을 섬기고 싶지만 내 육신의 죄가 나만 섬기라고 하기 때문에 이건 내가 나를 자살한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니고요.


5절에 봅시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예수님이 지금 대책이 그거에요. 이런 위선과 외식으로 가득 찬 이 인간 세계에서 너희들 주님의 복음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건데.


왜? 그들이 너희를 죽이려할 때는 그들이 죽이는 게 아니고 복음의 세계가 너희를 죽여야 비로소 네 몸보다 네 영혼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살리는 그 방식을 벌써 먼 데서부터 서서히 해오고 있으니까 죽이려할 때 그냥 곱게 죽어라. 지금 그 이야기를 주님이 대책이라고 내놓은 거에요. 대책이라고.


그리고 이 대책이 맞는 이유가 내 몸이 죽어버리면 그 죽는 순간 나의 스케줄 나의 계획 기대, 고도를 기다리고 뭐고 행복 추구고 그런 힘든 기다림이 더는 안 해도 되잖아요. 별로 기뻐하는 얼굴들 아닌데. 지금 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여기 성경에 누가복음 12장 4절 5절에 나오는 그 말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얼굴색이 안 좋아서 얼굴 피시라고 예수님 말씀과 같은 뜻이지만 달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같은 뜻인데 4절 5절 너무 살벌하고요. 미래의 영을 미리 받으면 됩니다. 이게 정답이에요. 미래의 영이 누구죠? 미래의 영? 성령입니다. 왜냐 하면은 과거와 현재 그 다음에 인간의 미래는 환상이에요.


따라서 이 미래는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서 현재는 현재 다음에 뭐가 되느냐 하면은 현재가 되고 현재 다음에 뭐가 되느냐? 현재가 되고 현재 다음에 현재가 되고 이래서 인간이 종말로 끝납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환경은. 주님께서 인간 환경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인간의 시간은 과거 현재 이어진 미래에 불과해요.


이것과 끊어진 다른 외부의 시간은 인간 세계에서는 없습니다. 왜냐 하면은 시간의 중심 되는 주님이 인간 공동체에서 홀로 빠져나왔기 때문에. 종말 이후에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 홀로 빠져나왔단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빠져나와서 성령을 줘버리면 인간 세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그 세계 그 이후의 되어진 원리 원칙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집어넣는 거에요. 그럼 이건 뭐냐 하면은 이미 살았어요. 이미 살았으니 이 땅에 와서 죽어도 상관없이 되는 겁니다. 이미 살았기 때문에. 이제 얼굴 좀 피셨습니까?


우리의 일은 우리 인간의 일이 끝나 버리면 인간의 일이 끝나버리면 더 이상 인간의 일은 없고 그 사적인 일도 없어요. 그런데 성령이 미리 와버리면 내 일이라고 내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고 주님의 자신의 일로 전환시켜버리기 때문에 내가 먹고 마시고 무엇을 하던지 다 주의 일이 되는 거에요. 주의 일이.


놀러를 가든 크루즈 여행을 가든 주의 일이 되는 겁니다. 주의 일은 완료된 거에요. 종말을 건너뛰거든요. 종말과 인간의 현재라는 것과 주님이 생각하는 시간 사이에서 주님이 일방적으로 부활하셔서 인간의 공동체에서 따로 떨어져나갔거든요. 베드로가 따라갈려고 했어요. 베드로가 따라올 수가 없어요.


왜? 베드로의 시간대는 인간의 육의 시간대이기 때문에 미래의 주님의 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처소가 예비 되지 않아서 갈 수가 없어요. 갈 수 있으면 오라고 했겠지요. 갈 수가 없어요. 다른 자리가 있어요. 다른 자리. 주님께서 십자가 이루시고 다 이루시고 난 뒤에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 그 자체가 주님의 자리가 돼요. 주님의 자리. 주님의 자리 아시지요.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이 계신 곳이 성령을 통해서 와버리면 우리 자신을 이렇게 함몰하듯이 우리를 집어넣습니다. 집어넣으면 우리는 죽어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고 우리의 주민등록은 하늘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은 뭐냐 하면은 하나의 출장이죠 그냥. 본사에서 파견 근무한 거에요. 본사에서. 일 끝나고 먼저 가신 분도 있고. 사모님은 지금 남아있고. 야속하지만. 그러니까 지금 4절 5절에 의해서 지금 제자들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야무지게 자살할까? 순교하면 구원받는다는데. 순교하면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순교해서 구원받겠다는 것은 인간의 시간대에서 생각하는 인간의 미래에요. 순교해도 지옥가요. 구원받는 게 아니고. 구원은 오직 주님의 자리가 덮쳐야 이게 구원이 되는 겁니다. 성령이 와야 그리스도 사람이 돼요. 그렇게 왔다고 치고 온 사람 같으면 왔다 안 왔다를 어떻게 아느냐. 4절 5절 이 말씀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환경이 4절 5절을 보여주기 위한 환경으로 주께서 지금 우리를 끌고가고 있는 거에요.


이걸 쉽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터널이 있는데 주님께서 이 터널에 성령을 줘버리면 이 터널에 무슨 그림들이 있느냐 하면은 성경 전체 그림들이 다 있어요. 바리새인부터 애굽에서부터 광야에서 못 들어가서 만나 먹고 그 모든 그림을 성도들로 하여금 지나가게 하는 거에요. 이 세계는 뭐냐 하면은 말씀의 세계입니다. 복음의 세계고. 이걸 보는 거에요. 보면서 빠져나오면 되지요.


말씀에는 새로운 환경이 완성된 환경이 주어지는 거에요. 전에는 뭡니까? 주변 환경은 탐욕의 대상이고 먼 환경은 그냥 환상이에요. 그냥 허황되게 기다리는 거에요.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그 영화를 제가 유투브로 본 적이 있는데.


형사가 친구한테 부탁받아가지고 친구 아내를 좀 감시해달라고 부탁 받았는데 나중에 그 여자를 사랑하면서 보니까 이게 그 여자가 이미 죽었어요. 자살해서 죽었는데 주디라는 사람이 그걸 흉내내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니까 없는 사람인데 전에 죽었던 진짜 애인을 흉내 내는 그 사람, 그 사람을 주디가 아니라 옛날에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라고 일부러 그렇게 스스로 자기를 조작해요.


조작하는데 결국은 그 형사가 높은데 가가지고 그 여자를 밀쳐 죽여버립니다. 그럴 때 그 형사가 뭐가 나았느냐? 고소공포증이 치료가 되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그 형사가 옛날 자기 애인을 죽였을 때 나 때문에 죽었다는 상처가 있어가지고 높은데 올라가지 못하는데 실제로 그 일을 한 번 더 해보니까 이제는 가짜니까 가짜를 죽였으니까 자기가 진짜 죽였다는 그 죄책감에서 풀어 헤쳐 나오는 거에요.


주님께서 이것을 경험하면서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그 죄책감을 실제로 남은 여생을 가지고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벌써 경험한 사람, 제대한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경험할 게 남아 있으면 계속 해보는 거에요. 해보면 내가 주님 앞에 몹쓸 짓을 했다 죄책을 갖고 있다 라는 이것이 가벼워야 되고 즐거워야 돼요.


그럴 때 우리는 새로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일체의 모든 내 구원에 대한 시도가 안 해도 됩니다. 할 필요 없어요. 그러한 무거운 무게를 안 가져도 돼요. 이미 완료한 것을 아담의 후손은 반드시 죄를 지어야 되고 죄가 지어져야 그 죄책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아주 희한한 법칙이에요. 죄를 지음으로써 더욱 더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방식을 주께서 제시한 겁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배신했습니까 배신 안 했습니까? 배신했지요. 배신해가지고 그 다음에 성령 받아서 복음 전파할 때 나는 부족해 벌벌 떨면서 얼마나 내가 몇 명을 전도해야 내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베드로가 그렇게 전도했습니까? 아니지요.


자기는 예수님 저주해놓고는 복음 전파하는데 아주 신바람이 났어. 신바람이. 이박사야. 인간이 죄 짓는 게 당연하다는 거에요. 그리고 뭐도 당연하냐? 인간이 죽는 것이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거에요. 아나니야 삽비라 베드로 앞에 헌금 거짓으로 바쳤다가 죽었어요. 둘 다 사이좋게 한날 같이 죽었어요.


그때 베드로가 누가복음 12장 6절을 본다고 봅시다. 그때 성령 받은 베드로는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이걸 제자들이 행하라는 말이에요? 아니면 이런 말씀의 환경이 제자들을 덮친다는 말입니까? 덮친다는 말이에요 이게. 전에는 내가 살기 위해서 말씀을 지켰던 것이 나였는데 이제는 말씀이 나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지적하면서 말씀의 완성도를 우리를 통해서 한껏 보이는 그러한 새로운 현실로 이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요 4절, 5절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4절 5절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일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있다. 그때는 여러분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됩니까? 강의 중에 보통 답변을 제가 빨리 하는데 오늘 약간 뜸을 들이네요. 여러분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됩니까? 1번 죽여라! 나는 이미 성령 받아서 구원 받았다. 죽여! 죽여! 2번 아이 무서워라! 몇 번입니까?


2번이죠. 어차피 장난인데 뭐. 왜냐하면 나를 죽이는 것이 4절, 5절 이루기 위해서 주께서 보낸 주의 일꾼이잖아요. 그때는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돼요? 4절 5절 역할을 해야지요. 아이 무서워라. 웃으면서. 아이 겁나라. 살려주세요. 이런 거. 이런 게 자유라는 거에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나를 안 믿는 가벼움, 존재의 가벼움. 여기에 해당되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 존재의 가벼움. 내가 믿어도 세상 내 뜻대로 안되거든요. 그럴 거 같으면 우리는 아예 안 믿으면 돼요. 어차피 믿고 안 믿고 상관없이 주의 말씀대로 되는데 굳이 내 고집을 억지로 억지로 부릴 필요 뭐 있습니까.


나를 안 믿는데서 오는 이 가벼움, 이 자유함. 이거는 돈 주고도 못 삽니다. 억만금을 줘도 온 천하를 줘도 못 삽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주께서 연장해서 살려주는 거에요. 말씀을 더욱더 많이 증거하라고 복음의 세계 증거하라고 살려주시는 거에요.


복음의 세계에서 우리의 입장은 뭐냐? 어느 것 하나 나를 믿고 내가 살려고 할 경우에는 어느 말씀을 들어도 못 지킨다는 것을 증거하면 돼요. 내 개인주의 구원을 위해서는 어떤 말씀도 지켜봤자 기껏 바리새인의 위선에 합류될 수밖에 없는 이런 육신, 바리새인 육신이나 내 육신이나 똑같은 아담의 육신이라는 사실을 이제 와서 눈이 밝혀 보면서 그걸 내가 이것밖에 안 됨을 확인하는 그 즐거움이 있어야 돼요.


그거는 성령이 아니면 이런 새로운 주님의 공동체 안에 참여하지 못하면 기껏 해봐야 그런 것은 내 탐욕의 대상 또는 환상에서 못 벗어납니다. 자꾸 우리가 살려고 하지 말고 살려주셔서 복음이 전파되는 그 신기함을 친히 맛봐야 돼요.


그 다음에 7절 봅시다. 같은 이야기 계속 해요.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벌써 허옇게 있어요. 우리는 셀 수가 없어요. 하나 둘 하나 둘 하다가 짜증나서 못 셉니다. 머리 빗으면 우르르 떨어져요. 그래도 검은머리 있을 때는 좀 나았는데 흰머리 막 떨어지면.


우리는 내 것 하나 잃어버리면 이렇게 두려워합니다. 내 머리카락 하나 잃으면.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 말씀에 설명이 약간 필요할거 같아요. 인간의 육은 자기를 구성합니다. 주변 환경을 통해서. 자기가 아는 정보와 지식과 학식 성경구절 이런 거 가지고 자기를 뭘 보느냐? 핵으로 구성하지요.


핵으로 구성해서 자기 육을 가지고 자기가 갖고 있는 탐욕의 대상에 탐욕을 발휘해서 자기 세계를 구성해서 먼 환경 뭐라고 했습니까? 환상, 천국에 들어갈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이게 바리새인이고 인간의 육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주님께서는 뭐냐 하면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했어요. 인간은.


그러면 이 말은 뭐냐? 육에서 일단은 참새 수준이라도 들어가야 돼요. 참새 수준. 참새 수준의 특징은 참새는 누가 기르신다와 결합된 것이 참새에요. 누구가 지키신다 기르신다. 그러면 일단 성도를 참새 수준까지 올립니다.


그런데 여기 보게 되면 참새보다 귀하다고 했지요. 그러면 이미 육에서 참새가 되게 되면 주께서 기르시는 대상이 되지요. 그러면 기르시는 대상은 여기서 귀한 존재가 삭제됩니다. 기르시는 분의 요소가 들어와야 돼요. 그게 뭐냐 하면은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가 너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지켜준다는 거에요. “그 나라와 의”.


그런데 참새는 그 나라와 의와 관계없습니다. 왜? 참새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건 아니기 때문에. 참새가 죄인입니까? 아니잖아요. 주께서는 죄인을 위해 죽어서 죄인을 구원하러 왔잖아요. 참새는 해당이 안돼요. 들풀은 해당이 안돼요.


그 나라와 의, 그 나라와 의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 알기 위해서는 그 시작된 너희를 참새보다 더 귀하게 지켜줘야 되는 거에요. 우리를 귀한 게 아니고 우리를 재료로 사용해서 시작된 그 나라와 그 의가 귀하기 때문에 우리를 죄인인 우리를 주께서는 지켜주는 겁니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맞아죽을 때까지. 굶어죽을 때까지.


그래서 주님의 관심사는 이미 인간들로서는 이미 바리새인의 외식과 누룩 그 죄, 거기에 대해서 어떤 누구도 벗어날 수 못한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에요. 따라서 예수님의 관심사는 예수님, 이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뒤에 8절 나옵니다. 성도가 왜 귀하냐?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그러니까 성도가 귀한 게 아니고 성도가 바라보는 그 분이 귀한 거에요. 그 나라와 의가 귀한 거에요. 그것 때문에 참새 기르듯이 주님께서는 자신의 의를 위해서 그 나라와 의를 위해서 참새 기르듯이 성도를 기르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제가 우리의 수명은 주님에 의해서 계속 연장되고 있다는 겁니다. 언제까지 연장될지 우리 소관이 아니지요. 주의 뜻으로 연장되고 있는 겁니다. 8절 9절 보게 되면 아까 이야기했던 그 내용이 거기서 나옵니다. 첫 번째 나 개인주의. 개인주의는 단독자죠. ‘단독자’.


그런데 주님의 복음의 세계에서는 개인주의는 없습니다. 개인 구원, 내 구원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다 했지요. 주님과 함께. 주님과 함께 있으면 내가 귀합니까? 주님이 귀합니까? 주님이 귀하지요. 그런데 1번의 경우에 아담의 육신의 본능은 뭡니까? 개인주의에요. 개인주의.


이 개인주의를 하나님께서는 이걸 인정하지 않고 이걸 위선자로 봐가지고 죄로 죽이고 주와 함께 우리의 육을 이렇게 함께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참새처럼 기르시면서 누굴 증거 하는 거에요? 누구 증거하기 위해서? 함께 있는 나를 증거하는 게 아니고 함께 계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주님 앞에 인도함을 받습니다.


여기 8절에 보면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자, 묻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는 제자들은 이걸 믿었습니까? 안 믿었습니까? 지금 제자들 앞에서 하고 있는데 그 당시 제자들 믿었습니까? 안 믿었습니까?


안 믿는 게 아니고 못 믿어요. 그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에서 진짜 핵심적인 키는 뭐냐? 그들이 왜 고도, 신이거든요. 왜 신을 기다려야 되는 이유를 몰라요. 그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이 등장인물로 나오는데 왜 우리가 누구를 마냥 기다려야만 해. 너 이유 알아? 몰라요. 그냥 모르는 거에요. 현대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는데 왜 기다려야 되는지를 몰라요.


주식이 2400 이상 돼야 되는지 이유를 모른다니까. 2400 되면 2500 되길 기다리는 이유를 몰라요. 2500 되면 3000을 기다려야 되는 이유를 몰라요. 화물연대 경유 값 휘발유보다 더 비싸잖아요. 왜 경유 값이 해야 되는지를 이유를 몰라요. 밥 먹고 살기 위해서 했다. 왜 내가 밥 먹고 살아야 될 이유를 모른다니까요. 이게 바로 고도를 기다리는 그 연극의 핵심이에요.


너 왜 사느냐? 내가 왜 사는지를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모르면서 무조건 살아야 된다는 거에요. 왜? 모르지요.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얼마나 인간의 현대의 삶을 예리하게 봤습니까. 노벨문학상 받을 만하지요. 상 받는 사람의 특징이 있어요. 해답이 없다는 것. 문학상 치고 해답 있는 문학상 없어요.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답답증이에요. 답답증.


그냥 모르겠다는 거에요. 모든 철학자들의 끝은 뭔 줄 알아요? 모르겠다는 겁니다. 헤겔이고 라캉이고 쇼펜하우고 뭐 모르겠다는 겁니다. 니체도. 칸트도 마찬가지고 모르겠다는 거에요. 참 모르겠다가 주류가 되고 안다고 예수 믿으라고 하면 욕 얻어먹고 참 세상 희한한 세상이다.


정답이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내가 모르겠다는 겁니다. 모르겠다면 겸손해 보이지만 뭐를 안 지웠어요? 내가 있지요. 이게 단독자입니다. 개인주의입니다. 뭘 해도 개인주의에요. 이게 교회 오면 뭡니까? 내가 구원받아야 되겠다. 이 앞에 내가 있잖아요. 이 사람은 구원이라는 게 뭔지 몰라요.


바리새인의 잘못은 뭐냐 하면은 그들이 우상 섬기는 대신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 이게 문제가 되는 거에요. 내가 메시아를 기다린다. 이게 나와 메시아가 매치가 안 된다는 사실을 바리새인들은 몰랐습니다. 바리새인 모르면 제자들도 몰랐던 거에요.


그냥 예수님 이용할라고 제자들은 따라 다닌 거에요. 내가 저 분 예수님 믿고 나중에 하늘나라 가면 누가 높은 자리 앉겠는가 자기들끼리 싸움했다고요. 뭐가 지워지지 않았어요? 여전히 개인주의 내가 앞장서있어요. 내가. 주님을 시인하기 위해서 내가 시인되는 게 아니고 그냥 나를 시인하기 위해서 예수가 필요한 거에요.


10절에 보면 드디어 제가 아까 쉽게 말씀드린다는 미래에 오는 영. 오늘 제목을 미래에 오는 영으로 정하고 싶어요. ‘미래에서 오는 영’. 미래에서 오는 코난 말고. 여기 미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먼 환경, 환상과 가까운 환경 우리의 육신이지요. 탐욕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은 밥 먹고 산다 이 뜻이에요.


내가 밥 먹고 살아야겠다. 먼 환경은 먼 환경 천국 오게 되면 내가 구원 받아야 되겠다 이 합친 것이 뭐냐 하면은 인간의 공동체죠. 그 공동체에서 누가 빠져나갔습니까? 예수님이 빠져나갔지요. 그럼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제자들 다 통틀어서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요. 왜? 모든 인간의 기존의 공동체 환경에 적용을 받기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그 환경이에요. 깨어나도.


군대 간 남자들의 꿈에는 항상 고향집이 있어요. 그러나 잠 깨면 빰빠라빰빠빠 군대입니다. 그리고 군대 제대한 남자들의 특징은 항상 군대 꿈꿔요. 그런데 깨어나면 집이에요. 그러나 집이나 군대나 같은 지평선의 같은 거기서 거기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도통 인간의 아이디어에 포함되지 않는 진짜 베드로도 알 수 없었던 자기만의 세계로 가버렸어요.


그게 성령의 세계입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대화가 안돼요. 성령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과 대화 될 리가 없습니다. 사도가 외칠 때 대화가 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영생 주기로 작정한 자만 믿어요. 내 백성만 믿어요. 고린도교회. 내 백성만 믿고 영생 주기로 작정한 자만 믿기 때문에 사도도 그게 참 신기해요. 왜? 사람 같으면 믿을 수 없는 말을 지금 내뱉었는데 그게 믿는 겁니다.


사도행전에서 놀라운 일 중에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뭐냐 하면은 빌립 집사, 빌립 집사가 난데없이 사막에 가고 있는데 거기서 난데없이 누구를 만나는가?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요. 내시를 만나서 놀라운 사실은 내시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이사야 53장을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 이거 누구 작품이냐? 성령의 작품입니다.


주의 성령의 세계, 모든 인간 세계에서 종말이 되고 난 뒤에 인간의 공동체가 다 끝장났을 때 의 그 이후의 세계는 오직 주도권은 주님에게만 주도권이 있는 세계만 펼쳐질 뿐이지 인간의 개인에게 주도권을 주는 그런 세계는 천국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령 아는 사람만 압니다. 아는 자만 알지요.


10절에 보면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보충하기 위해서 요한복음 15장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18절에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조금 설명하게 되면 이 세상이라는 성질이 본질이 어떠냐 하는 것은 이 세상 인간들끼리 붙어서는 몰라요. 이 세상 공동체에서 떠난 분을 세상은 미워해서 떠났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이 세상에서 죽음을 당했던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세상은 배운 사람 안 배운 사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딱 똘똘 단결이 돼요.


단결이 되가지고 그 예수님 이야기하는 순간 세상은 자기의 본질을 못 감추고 그대로 드러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는 거에요. 이 말을 거꾸로 적용하게 되면 세상이 예수님의 복음 때문에 십자가 복음 때문에 너희를 미워한다면 그게 너희가 성령 받은 증거라는 거에요.


기뻐해야 될 것인지 싫어해야 될 것인지. 예수님이 왜 세상에서 미움을 받느냐 하면은 인간의 본성은 어떤 경우라도 아무리 죄를 지어도 남이 나를 미워하게 되면 우리는 복수심이 발동하게 되어있어요. 자기가 나쁜 건 있더라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어떤 경우라도 나를 미워하게 되면 우리는 참지 못하는 그런 근성을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았어요.


삼장법사 제자 가운데서 돼지가 미움 받잖아요. 이름 뭐지요? 저팔계. “왜 나를 미워하나~” 하잖아요. 저팔계가 미움을 받는 이유는 사람같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 거에요. 왜 주의 성령 받은 사람을 왜 미워하느냐. 세상이 우리 보고 미워하는 게 아니에요.


성령이 외부 환경을 성령이 여기 와서 이 세상 환경이 예수님을 죽인 환경이라고 고발하기 때문에 세상은 거기에 대해서 반발한다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게 되어있어요. 중간에 애꿎은 누가 끼었습니까? 우리들만 끼었어요. 우리는 뭐 별로 나쁜 일 한 적도 없는데 저팔계도 아니고 주님께서는 일부러 그런 사항을 내가 아주 야무지게 그런 사항을 유발하겠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미리 이야기하지요. 내가 간 뒤에 너희들 굉장히 미워할거야. 제자들 “싫어요~싫어요!” “싫어도 할 수 없어. 그래야 돼. 그래야 나만 증거 돼. 너는 싫다 좋다 할 그런 권한이 없어.”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9절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철저하게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미움 받아서 세상과 결별하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면서 바로 그걸 증거하라는 거에요.


이렇게 하면 세상은 그 어떤 신앙과 종교로도 구원될 수 없음을 기쁜 소식으로 전하라. 이 세상에 어떤 신앙, 내가 하는 어떤 신앙과 내가 하는 어떤 종교도 구원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기쁜 소식을 아주 기쁘게 전하라. 그러면 너희들은 된통 욕을 얻어먹을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 욕을 얻어먹을 것이다. 된통으로. 그때 기뻐하라. 성령이 너희와 함께 있다. 성령이.


10절 “누구든 인자를 거역하면”. 인자는 반드시 거역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거역하면 이라는 말을 한 겁니다. 모든 인간이냐. 그러면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왜? 아담에 속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아담에 속한자의 미움을 받는 식으로 활동하시기 때문에 인자를 거역 안 하는 사람이 없어요. 거역하는 정도가 아니고 인자를 거역 안 할 사람이 없어요. 제자들뿐만 아니고 가룟 유다 뿐만 아니고 다 해요.


그러나 그 뒤에 보세요.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자, 그럼 기준이 어떻게 돼요? 기준이. 용서의 기준이 뭐가 됩니까? 인자 시대에요? 성령 시대에요? 그 사함의 기준이 예수님 죽기 전의 사함의 기준이냐? 십자가 이후가 사함의 기준이냐 이 말입니다. 십자가 죽고 난 뒤에 사함의 기준, 용서될까 안 될까가 결정되는 거에요. 예수님 십자가 죽어야.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해석을 뭐냐 하면은 결국은 모든 해석은 인간들은 어떤 인간들도 믿는 자 없고 결국 인간들이 누굴 죽였다? 하나님을 죽였다는 그 기준을 제시해줘야 그 기준에 대해서 인정하는 쪽과 인정하지 않는 쪽이 확연하게 나눠질 게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교회에서 설교할 때 여러분 십일조 헌금해도 죄입니다. 라는 설교를 해야 돼요. 그걸 왜 해야 되느냐 하면은 그걸 해야 성령 받은 사람 외에는 이게 전부 다 화를 내게 되어있어요. 오늘 교회 청소한 사람 손 들어보세요. 죄 지었습니다. 할렐루야.


여기 사하심이라고 했지요. 성령의 사하심을 받지요.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어느 인간치고 용서함을 안 받아도 되는 일을 한 인간은 없다는 뜻이에요. 모든 인간은 ‘사하심’이냐 ‘안 사하심’이냐 그걸로 결정되지 나름대로의 자기가 선한 행위 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인자라고 하는 것은 십자가 지기까지 인자라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성령을 주시는 분이죠. 주님이 되지요.


그러니까 지금 보세요. 1절 빼놓고 2절부터 해가지고 지금 10절까지 오게 되면서 지금 예수님은 누구하고 이야기합니까? 처음에는 바리새인하고 이야기했지요. 그 다음에 누구하고 이야기합니까? 제자들에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요. 수만 명이 왔다 하니까 엄청난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요.


해놓고 마치 그들보고 행해라 행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하시죠. 이렇게 해라 두려워 하지 말라 참새가 허락 없이 팔리지 않는 것처럼 너희도 그렇다. 전부 다 사람보고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마지막에 누가 등장합니까? 사람 말고 예수님 말고 누가 등장합니까? 성령 등장하지요. 결정적인 것은 뭡니까? 성령이죠.


그래서 12절에 봅시다. “마땅히 할 말을”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성령이 곧 그때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는 인간 대 인간이에요. 인간 대 인간. 자, 오늘 공부한 것 해봅시다. 인간에게는 어떤 것이 있다? 가까운 환경 주변 환경, 주변 가까운 환경. 먼 환경은 뭡니까? 먼 환경은 환상이라고 했지요. 하늘나라 초월적인 그것. 좀 배불러야 늘 찾는 것. 배고프면 돈 벌이 해야 되는 주변 환경.


이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주변 환경 있고 환상적인 종교를 믿는다면 하나님 믿는다면 예수님 믿는다면 되겠지요. 인간 대 인간. 그래서 사람들은 뭐냐? 설교자를 믿어요. 목사를 믿습니다. 왜? 눈에 보이니까.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합니까? 이 인간 믿지 말고 무슨 요소를 집어넣어라? 성령이 그때 가르치시리라. 성령이 오는 거에요.


인간 같으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하라, 하지 말라”가 되요. 인간 같으면.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인간이 네가 뭘 안하고 뭘 하고를 일체 묻지를 않는 겁니다. 이게 기쁜 소식 아닙니까. 내 행위에 대해서 일체 묻지를 않아요. 네가 누가복음 12장 5절 왜 안 지켰어? 네가 죽을 때 살려달라고 왜 했어? 두려워 말라고 했는데 왜 두려워했어? 이걸 묻지를 않는다고요.


자, 우리를 죽이러 온다. 사람이죠. 내가 사람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관계든 이것에 대해서는 나를 찔르는 자나 찔림 받는 나나 일체 여기서 문제 삼지 않아요. 어차피 둘 다 똑같으니까. 어차피 둘 다 똑같은 인간이에요. 오후 2시에 은혜 받아놓고 다 까먹는데. 이거는 한 시간 전에 나와 한 시간 후의 나와 비교 대상이 안 된다니까요. 이게.


내가 누굴 만나든 어떤 목사를 만나든 복음 전하는 사람을 만나든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주선을 하게 되면 바로 누가복음 12장이 살아나고 누가복음 12장이 살아나게 되면 우리가 구원받고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알게 해서 그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을 받는 그 사실입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주변 환경에 대해서 탐을 냈고 먼 환경 신앙생활 외식하는 기만하면서 자기는 자기 것 챙기면서 여기에다가 추가해서 예수까지 잘 믿어줄까 이런 식으로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게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라는 것을 집사님끼리 장로 목사끼리 이야기되면 이게 바로 새로운 공동체 아닙니까. 새로운 공동체.


11절 보고 마치겠습니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예수님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당했지요. 예수님이 당했지요. 인간에게 무엇이 현실이라고 했습니까? 바리새인이 현실입니까? 본디오 빌라도가 더 현실입니까? 권력이 더 찐찐 현실이죠. 권력이. 돈과 권력이 찐찐 현실이죠. 그 앞에 데려가는 거에요.


그 때 어떻게 이 사태를 모면하느냐? 걱정하지마라. 그 말을 성령이 그때 너희에게 가르치리라. 실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매 어디 가는데 마다 준비된 권력자들이 있어가지고 꼭 예수님이 당했던 것을 되풀이하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도행전도 아닌데 우리는 어떻게 권력자에게 당합니까?


마스크 써! 이런 것. 투표 누구 찍어! 알아서 둘 중 하나를 찍어. 허경영 찍으라는 말은 안하거든 나라에서. 공중부양하는 사람 찍지 말고 찍어. 매 순간 숙제해! 너 숙제 안하면 성적 내려가. 매 순간 우리는 가까운 환경에 알아서 기고 알아서 고개 숙이고요 먼 환경 교회 권력이라든지 그런 초월적 권력에 대해서 우리는 알아서 신앙있는 척을 하고 있는 천하의 바리새인이에요. 그게 바로 우리인 것을 ㅎㅎㅎ 웃으면서 마음껏 자유롭게 고백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의 세계가 이렇게 성령을 통해서 다시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예수님 시대가 끝난 줄 알았는데 본격적으로 성령을 통해서 종말 이후의 삶으로 허락해주셔서 이제는 자유롭고 마음 놓고 구애받지 않고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증인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12장 10절 (미래의 영) 220621b-이근호 목사.hwp (161.0K), Dow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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