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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1 07:41:27 조회 : 51         
20220708a 울산강의-역대기상(12강) 10장 13절 : 빈자리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96)
20220708a 울산강의-역대기상(12강) 10장 13절 : 빈자리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상 10장하겠습니다. 10장 1절에,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산에서 죽임을 받고 엎드러지니라 블레셋 사람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그렇게 돼 있지요.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싸운다. 성경에서는 무엇과 무엇이 싸우는지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 이것 아닙니다. 성경에서 인간과 인간의 싸움은 인정하지 않아요. 인간 대 하나님의 싸움, 이것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악마 대 주님의 싸움, 이게 정답입니다. 인간은 들러리에 불과합니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나와 남과의 싸움으로 드러납니다. 나와 남의 싸움은 누가 이기든 간에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악마 대 주님의 싸움이 악마도 보이지 않고 구약은 주님을 ‘하나님의 이름’이라 해요. 같은 걸로 ‘여호와’라 하는데, 악마 대 하나님의 싸움은 여기서 대리전쟁이 일어나요. 주님에 속한 나와 악마에 속한 나, 이 싸움만 있어요. 구약에서 이 싸움밖에 없어요. 대리전쟁입니다.

주님에 속한 나와 주님께 속하지 않은 나 아닌 남과의 싸움,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 싸움밖에 없어요.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누가 이기든, 누가 지든 상관없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인간 승리 같은 이런 건 없습니다. 나의 승리가 없어요. 왜? 대리전쟁이기 때문에 주님의 승리지 나의 승리라는 게 아예 없습니다. 인간 승리 없습니다.

또 뭐가 없느냐 하면 인간 실패도 없어요. 인간 승리 없으면 인간 실패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악마의 실패를 언급하는 겁니다. 쓸데없이 인간 승리를 외친다든지 인간 실패를 외친다든지 이거는 성경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런데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대리전쟁이라는.

구약에서 성경에서 나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대리자로서의 전쟁, 이걸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여기 남에 해당되는 오늘 역대상 10장에서는 이게 어떤 나라냐 하면 블레셋이란 나라가 대리전쟁으로 붙게 돼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특징은 뭐가 있느냐 하면 언약이 있어요. 언약궤, 또는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블레셋은 뭐가 없느냐 하면 언약이 없어요, 율법이 없어요. 그걸 오늘 본문에서 4절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할례 없는 자. 할례라 하는 것은 율법에 속한 겁니다. 율법에 속한 자. 율법이 없는, 할례 없는 다른 말로 언약이 없는 자가 나를 찌르게 되면 그다음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그다음에 사울 왕이 실수를 하고 있어요.

누구를 모독하느냐 하면, 나를 욕되게 한다. 지금 사울 왕이 어디서 잘못이냐 하면 지금 이스라엘 왕은 대리전쟁이에요. 자기 전쟁이 아닙니다. 인간 승리 아닙니다. 자기 전쟁 아니에요. 오늘 강에서 여러분들이 핵심적으로 먼저 알아야 될 것은 주님과 대리자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할 때 필수적으로 뭘 남겨주어야 하느냐 하면 여기에 빈자리,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빈자리가 반드시 형성돼야 돼요.

이 빈자리에 이스라엘이 건방지게 들어가면 안 돼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스라엘이 전쟁할 때에 이스라엘은 무엇의 대리전쟁이냐? 빈자리를 대신해야 되는 전쟁을 해야 돼요. 빈자리니까 이거는 아무것도 없음이 되겠지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전쟁을 해야 돼요. 주님과 인간 사이에 빈자리가 있다, 이걸 증거하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잘못은 뭐냐? 이 빈자리에 들어가선 안 될 자리에 사울 왕 본인이 들어간 거예요. 본인 들어가 버리면 말로는 주님을 위한 전쟁이지만 사실은 자기를 위한 전쟁이 돼버립니다. 빈자리에 나의 명예와 나의 자존심으로 꽉 차있으니까요. 꽉 들어있어요. 어떻습니까? 오늘날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똑같지요.

교회 나와서 철야기도하고 열심히 충성하고 또는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사는 것, 오늘도 열심히 사셨잖아요. 피곤에 쩔어서 열심히 사셨잖아요. 누굴 위해서? 정답은 빈자리를 위해서. 내가 들어가선 안 될 자리, 내가 거기서 비켜서 쳐다볼 자리, 내가 거기 발을 들여놓으면 절대로 안 되는 자리, 그럴 때 내가 누구의 대리자라는 게 성립이 돼요.

만약에 나에게 뒷배에 뒤 배경에 빈자리가 없으면 나의 전쟁이 됩니다. 김 씨 같으면 김의 전쟁, 박 씨 같으면 박의 전쟁, 최 씨는 최의 전쟁, 그렇게 돼요. 항상 빈자리를 남겨둬야 돼요. 그 빈자리를 비어내게 비어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결사적인 싸움을 해야 돼요. 그 빈자리에 어떤 인간의 가능성도 섞이면 안 된다는 그 빈자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 인생은 싸움터로 부름 받은 거예요. 성도 같은 경우에.

그러면 사람들은 왜 그 빈자리를 자기가 채우려고 하느냐? 이게 왜 빈자리여야 하느냐 하면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게 있었어요. 그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지 말라고 한 거예요. 알게 하는 나무, 따먹지 마라. 선악에 대한 지식, 네가 거기에 발 들여놓으면 안 돼. 네가 저주받아, 그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 했는데 인간이 따먹었단 말이죠. 따먹었으니까 인간이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게워낼 수가 없어요. 토해낼 수가 없어요. 너무 아니까, 너무 똑똑하니까. 선악, 선악 정도는 이거는 내가 어릴 때부터 완전히 도통했다고 각자들 자부하거든요.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그 정도는 알아야 내가 인간 대우 받지, 이런 식을 살아간다 이 말이죠.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인간이 알면 안 돼요. 그런데 알게 나고부터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하면 선악 가운데서 자꾸 선을 선택하고 악을 배제하는 뭔가 선택을 해요. 선택을 할 때는 결정을 해요. 마음의 결정을. 선택 결정할 때 그 전제가 되는 게 뭐냐? 자기 의지가 동해서 자기 의지가 발작을 일으켜서 선택을 하는데 선택할 때는 선을 선택하고 악을 버리는 식으로 배제하는 식으로 선택을 해버립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똑똑하니까 제 말 들으면 뭔 뜻인지 아시겠지요. 어떤 말을 제가 하고 싶냐 하면 인간이 선택한 그 선은 내가 선악과 따먹었다는 것이 악하다는 것을 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문장 어렵지요. 내가 선택하는 나는 선택하겠어, 악은 버리겠어, 라고 선을 선택하는 선택 안에 나는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선악과 따먹은 이거는 악하다는 그 자체를 자기가 선택하겠어요, 선택하지 않겠어요?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왕 따먹고 이왕 아는 것 바르게 살면 되지, 이런 식이에요.

아무리 선택하고 아무리 결정해도 원래 하나님이 원했던 인간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런 서글픈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은 자기가 선과 악 중에서 악을 택하는 게 아니고 늘 선을 택하는 착한 것, 옳은 것만 택하는 이것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죽었다 깨나도 부정하지 못해요. 이게 비극이에요.

지금 사울 왕, 역대상 10장이 뭐냐 하면 다들 집에서 읽어봤지요. 역대상 10장의 이야기는 뭐냐? 사울의 죽음이에요. 하나님께선 사울의 죽음을 부각하고 있는데 사울이 왜 죽는가? 자기가 옳은 쪽을 옳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해서 죽었어요. 특화된 죽음이죠. 항상 바른 선택, 항상 옳은 결정 그것이 자기를 점점 더 저주의 나락으로 저주받는 쪽으로 추락, 또 추락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의 올바른 선택이. 바보등신처럼 살면 되는데 그게 안 돼요. 인간은 바보등신 같이 되질 않아요. 항상 유리한 쪽으로 나한테 이익이 되는 쪽으로 선택하게 돼 있어요. 내가 손해가 되는 쪽으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다가도 없고 죽은 데서 살았구나, 그 이야기를 보고 하나님 저는 없는데 주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 저는 마땅히 죽어야 되는데 주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과 일치되는 선택을 하려고 하는데 요한복음 12장 25절에 보면 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그게 아니에요. 나는 없는 데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고백을 요구하는 게 아니에요. 죽었지만 주의 영으로 삽니다, 그 고백을 주께서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요한복음 12장 25절에서 주께서 요구하는 건 단 하나에요. 너를 미워하라, 에요. 나는 없는 데서 만들어졌어. 부모가 날 낳았어. 그걸 고백하는 데 굳이 자길 미워할 필요 없지요. 나는 죽어야 돼. 하지만 주께서 날 살렸다, 이것 고백하는 게 굳이 나를 미워할 필욘 없겠지요. 그러나 요한복음 12장 25절에서 뭐냐? 누구든지 자기를 미워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느니라. 자기를 미워하지 아니하면.

왜 하나님께서 이것, 이것 알아라. 저것, 저것 알아라. 성경 몇 독해라. 몇 명 전도하고 헌금은 얼마씩 해야 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영생과 관련되어서 자기를 미워하라는 꼭 집어서 미워하라와 영생을 왜 결부시키느냐? 그 이유가 인간이 아무리 해도 해내지 못하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인간은 맨날 자기 유리한 쪽으로 선택해서 결국 저주받아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인간의 진 모습, 진짜 자기 모습을 사울 왕이 아니면 누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줍니까?

사울 왕의 본문 이야기는 사울 왕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이 아니고 모든 인간들은 사울 왕처럼 사울 왕의 인생을 반복하는 인생이라는 그 이야기하려고 역대상 10장 사울 왕 이야기한 거예요. 모든 인간은 완전히 사울 왕 빼박이다. 뭐 교회에서 말썽부리다 졸지에 죽은 그런 사람들, 사울 왕이다, 하지 마세요. 모든 인간은 사울 왕입니다. 그리고 사울 왕은 항상 자기가 모독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요. 왜 모욕 받고 모독 받는 걸 싫어하느냐? 나는 평소의 나를 미워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삼장법사 두 번째 제자 이름이 뭐지요? 돼지? 저팔계. 그 돼지 노래에 이런 게 있어요. 왜 나를 미워하나. 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나. 싫어하느냐고 반문하는 자체가 그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사울 왕이다. “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지요? 기분 나빠요.” 기분 나빠하는 네 모습 보고 내가 기분 나쁘다. 인간은 싫어함을 받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그게 우리들 인생입니다. 사울 왕 인생=우리들 인생. 간단하지요. 토정비결 같은 것 보지 마세요. 타로 점보지 마세요. 이미 결정 났어요. 사울 왕으로.

주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데 나 자신만 거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미움 놈 더 밉상 받게 돼 있어요. 하나님한테. 안 그래도 미운데 미운 받을 짓 사서 해. 세상 모두가 나를 미워해도 나는 내 자아는 나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전 이걸 장애자라 합니다. 여러분들 문제 있는 사람들, 장애자들 범주를 더 깊이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은 경제공동체에요. 경제공동체에서 모든 인간은 장애자입니다. 이미 사는 이유, 목표가 돈과 결부됐기 때문에 그 자체가 장애자에요. 의미도 없고 사는 이유도 없어요. 그냥 돈에 끌려갈 뿐입니다. 머리 좋고 능력 있어서 돈을 번다. 이게 능력 있고 기술 있고 머리 좋아서 돈을 번다. 그렇다면 머리 나쁘고 기술도 변변치 않고 성격도 안 좋은 사람이 돈을 못 번다. 둘 다 장애자에요. 경제공동체 자체가 인간을 이렇게 장애자로 만든 거예요.

팔다리 없고 귀머거리에 절뚝발이 그 사람들이 난 주님으로서 감사해요, 이러면 되는데 그 사람들이 뭘 요구하느냐 하면 왜 우리를 보호하지 않느냐, 이렇게 나오거든요.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기준에서 그러느냐 하면 왜 멀쩡한 사람은 돈 버는데 우린 돈 못 벌어 가난하냐. 경제공동체 기준에 준해서 자기 자신을 다시 평가하는 것, 그 정신머리 자체가 장애자에요.

돈이 사람이 기준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경제공동체에서는 돈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라고 하면 이 공동체에서 추방되어서 너는 정신적으로 문제 있다는 정신적 장애인으로 규정을 해버려요. 대세니까 돈 위주로 살아가는 게 이 세상의 대세입니다. 사람의 품위와 인격,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만 측량이 돼요. 저울에 인간 놓고 그쪽에 돈 놓아서 월급 얼마 받느냐로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된다니까.

여러분 우크라이나가 돈이 많습니까, 러시아가 돈이 많습니까? 러시아가 돈 많잖아요. 돈 많은 쪽이 돈 없는 쪽을 공격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거예요. 국가 대 국가 전쟁만 그런 게 아닙니다. 커피점 내는 것, 할머니 슈퍼마켓 앞에 대형마트 들어서 보세요. 장사 문 닫아야 돼요. 같은 치킨 집해도 대기업 브랜드로 인테리어 멋있게 한 치킨 집이나 커피 전문집과 나이 칠십 넘어서 바리스타 자격증 따서 그 앞에 가게 내봐야 장사 될 리가 있습니까? 안 되지요.

그럼 사람들은 장애인이 아니라면 장사 안 되면 손해 보면 장사 안 하면 되지, 이러면 장애자 아니에요. 경제공동체의 공통 의식에 빠져나오면 괜찮은데 어느 인간치고 그 경제공동체에서 빠져나올 위인이 어디 있습니까? 없지요. 선과 악에서 선이라는 것은 돈으로 측량될 때 돈 많은 것이 선이고 돈 없는 가난한 것은 악이 되는 겁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고 쉽게 생각해서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자기 좋게 하는 일을 해요. 이걸 진리라고 여기고 이걸 선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성경 안 보지요. 성경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지요. 이미 뉴스 굳어졌어요. 사람들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게 진리라고 이미 본인이 확정 먹고 들어가니까 성경 들을 것 뭐가 있어요. 이게 선악체계인데요.

선악체계는 뭐냐 하면 따먹지 말라 하는 것은 비어있어야 돼요. 비어있을 자리에 시건방지게 지가 발을 들여놓은 거예요. 아담이 누구한테 사주 받고? 악마한테 사주 받고. 그래서 이미 악마한테 사주 받은 입장에서 나의 전쟁은 없습니다.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는 전쟁은 내가 경제공동체에서 돈 많이 벌게 하고 몸 건강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악마와 우리 사이에 관계를 관여됨을 끊어버리는 전쟁, 끊어버리 게 해주시는 것 이게 바로 사랑이에요.

“네가 어지간히도 농락당했잖아. 너도 지겹지 않냐. 악마한테 그렇게 당해놓고. 그러니까 이제는 악마와 그만 사귀어라. 많이 사귀었잖아. 이제 악마와 관계 끊어라.” 악마는 인간에게 지식 줬고 지혜를 줬어요. 네가 알고 있는 정보량과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해서 너의 바른 선택이 너의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이 되게 한다. 이게 바로 악마가 우리에게 계속해서 농락하면서 가르쳤던 교훈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생명책에 주님은, “내가 너한테 인생이란 걸 선물해줄게. 네가 하지도 않았는데 홀로 내가 다 한 것을 너한테 배급해줄게. 그걸로 살아.” 그 배급한 것이 뭐냐 하면 오늘 본문 10장 4절에 그 중에 하나가 할례에요.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언약을 우리한테 집어넣어주죠. 마치 죽어가는 사람 링거 맞게 하는 것처럼. “자 누우세요. 팔 걷고 두 시간 동안 빼면 안 됩니다.” 간호사가 이야기할 때 거기서 누우면 영양제 쑥쑥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되는데 우리가 영양제 주사를 내 품에다 품고 이렇게 오지랖 떨면 안 된다 말이죠. 영양제 주사는 선물이기 때문에 내가 손대면 안 돼요. 영양제 주사에 주스 넣고 물 넣고 이러면 안 돼요. 일반 환자들이 영양제 주사에 어떤 게 들어가는지 알 수 있습니까? 함량이 어떻고 공장에서 만들어야지 우리가 거기서 물 좀 더 넣고 우리가 바리스타도 아니고 커피 타듯이 이러면 안 돼요.

무엇이 섞였든지 우린 모르지만 사울도 몰랐어요. 이스라엘도 몰라요. 무엇이 섞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영양제 주사 링거 안에 들어있는 것이 우릴 살린다, 이게 바로 이스라엘이 표출해야 될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구약에서는 그 링거 액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요. 그러나 신약에 오면 그게 드러나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에게 영생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자기희생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잘못은 백성들의 더러운 것을 자기가 그걸 닮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기가 희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더러운 것을 자기가 스스로 담았어요. 그게 뭐냐 하면 율법을 요구해놓고 율법을 넘어섰습니다. 왜냐? 율법에 보면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뭔 뜻이냐 하면 율법을 네가 손대면 더러워지고 율법을 제공하신 율법 만드신 제정하신 하나님이 율법을 건드리면 그 율법이 정답이 돼요.

그러니까 율법은 우리가 지키라고 준 게 아니고 손대지 말라고 준 거예요. 모든 법은. 그러면 윤리도덕은 뭡니까? 이거는 마귀가 준 거죠. 선악체제에 의해서. 착하게 살면 네가 복을 받고, 이게 뭐냐? 윤리도덕이거든요.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자, 복에 어떤 게 들어가겠어요? 복 안에 가난이 들어가겠습니까,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안 들어가지요. 그러니까 이게 사기인 거예요. 복 안에 내 몸 아픈 게 들어가겠습니까? 안 들어가지요. 그러니까 이게 사기인 거예요. 이게 잘못인 거예요. 윤리도덕 배후에 악마가 있는 거예요.

우리는 악마가 준 양심이란 것 가지고 마치 신자도 아닌데 제대로 된 훌륭하고 착한 신자처럼 행세했습니다. 그래놓고 기도를 하던 헌금을 하던 이건 누구의 전쟁이겠습니까? 만약에 김 씨라면 누구의 전쟁이겠어요? 김의 전쟁이에요. 옛날 재일교포가 싸웠던 영화에 <김의 전쟁>이라고 있었어요. 아베에 총 쏜 사람이 김 씨 아닌지 몰라.

인간은 나의 전쟁이에요. 세상이 욕하고 하나님이 나를 욕한다 할지라도 나는 절대로 나를 욕하지 않으리라. 그 일념으로 평생토록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단 내렸고 결정하고 그런 식으로 자기의 행동에 나선 거예요. 배운 가락이 그것밖에 없잖아요. 아는 게 이것밖에 없고 할 줄 아는 게 나 지키는 것밖에 없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그러니까 대리전쟁을 하라 이 말입니다. 너의 전쟁 하지 말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자질과 능력을 믿어서 준 게 아니고 얼마나 무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신 거예요. 오늘날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은 우리가 인간 같지도 않기 때문에 동행하시는 겁니다. 제대로 해내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세리와 창기와 강도와 못난 자들의 주님이 되는 겁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주님이 되는 겁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공통점은 그들 곁에 뭐가 있느냐? 빈자리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빈자리 뭡니까? 또 그 빈자리에 강아지로 채우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 강아지로 고양이로 채우지 마시고요 여러분의 빈자리는 비워두세요. 어떤 아주머니는, “나의 빈자리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어요.” 남편은 빈자리 값을 못해요. 남편은 지 생각하기 바빠서. 아내 이용하기 바쁘지 뭐가 빈자리 값을 합니까.

우리 곁에 주님이 계셔서 철딱서니 없는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우리는 늘 죄만 짓거든요. 죄 지은 그 더러운 죄를 주께서 빈자리를 마련해놔야 그 죄가 빈자리에 계속 이게 넘어와요. 이렇게 보면 돼요. 사울이 죽은 것은 사울의 그릇이 죄가 흘러넘쳤기 때문에 죽은 거예요. 특수한 죽음입니다. 일반인이 죽는 보편적 죽음이 아니에요, 지금.

사울 왕은 왕의 자리에요. 왕의 자리는 하나님의 빈자리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자리에요. 사무엘상 11장을 제가 요약해보겠습니다. 사울이 왕 되기 전이었습니다. 왕 후보감인데 단독 후보지요.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만 백성들은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여기서 길르앗 야베스라는 동네가 있어요. 이게 요단강 동쪽 지역입니다. 지금은 요르단 쪽이지요. 요단강 서쪽은 지중해 쪽이고요. 지금의 이스라엘이고요. 요단강 동쪽에 있는 길르앗 야베스에요.

그 사람들이 있는데 그 밑에 있는 암몬 사람들이 침범을 했어요. 침범하니까 야베스 대표자가 나서서 아부를 했지요. 좋게, 좋게 갑시다. 우리 힘없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 해드릴게요. 이렇게 하니까 암몬 사람들이 시건방져서 내가 너희의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야베스 장로들이 우리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가 없느냐, 하고 사울을 찾아왔어요.

사울을 찾아오니까 그 소리를 듣고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힘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 시시하고 어쭙잖고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그런데 암몬 저쪽은 큰소리치고 잘나고 무력이 세니까 그들은 절망에 빠져서 울고 있을 때에 사울이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이게 중요해요. 요새 같으면 성령이 임한 거죠.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소 두 마리를 들고 와서 확 찢으면서 내가 앞장설 테니까 만약에 내가 앞장서지 않으면 소를 찢어버리듯이 내가 찢어버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한 지파마다 삼만 명씩 군대 내서 총 유다 지파는 삼 명, 다른 지파 합쳐서 삼십삼만 명이 군대를 조직해서 사울 왕을 따르니까 그제야 암몬 사람들이 혼 줄이 나서 11절에 보면,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그리고 난 뒤에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사울이 왕 값을 못한다는 게 누구야? 우리가 알아서 죽이겠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영웅을 누가 함부로 폄하하고 무시했습니까? 이렇게 분위기가 역전된 거예요.

그래서 15절에, “모든 백성이 (언약궤가 있는)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신이 임했어요. 그러니까 사울 옆에 빈자리가 있었던 거예요.

선악체계는 내가 아는 걸 총동원해서 내가 익혀 공부한 것, 경험한 것, 체험한 것, 내가 알고 있는 기억 속에 있는 걸 다 모아서 힘으로 나를 지키는 무기로 만들기 위해서 힘을 응축해서 그것으로 자기에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이 선악체계라면 배후에 악마가 그렇게 조종했다면 생명체계는 승리가 불가능하다고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할 수 있는 일이고 하나님의 신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성도라면, 실례되는 말인데 불쑥 튀어나왔어요. 여러분이 성도인 줄 알지만 성도라면 매일을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이게 나와야 합니다. 더 쉽게 이야기해서 자기가 희생했다는데 나만 모르고 희생했다는 남들의 평가가 있는 그런 상황, 나는 희생한다고 생각 안 하는데 남들이 희생했다고 여겨주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네가 하는 일은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사람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지? 너 지금 하나님과 함께 계시지,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할 사람 없지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 나와야 돼요.

그게 아까 뭐라고, 그걸 뭐냐? 실컷 살면서 주부로서 또는 가장으로서 또는 직장에서 하면서 항상 저녁 늦게 노을이 질 때 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오늘 하루 종일 일했던 나를 미워하는 고백, 이것 성령 없는 사람은 이게 안 됩니다. 나를 미워하는 이런 일, 있을 수 없어요. 성령 없는 사람은. 추석이나 명절 때 일가친척 모였을 때 평소 나한테 감정이 안 좋던 아랫동서가 형님은 어머님 그렇게 모십니까, 이렇게 되바라지게 나이 어린 동서가 그렇게 할 때 여러분들의 큰 며느리로서 어떻게 답변하면 됩니까?

“그래 내가 미워.” 너는 뭐 해줬노. 이게 한두 번 와서 봉투에 십 만원 넣고 끝내놓고. 난 옆에서 병원 다 돌봤다, 이렇게 하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이 다 미워. 한 달에 용돈 백만 원밖에 못 주는 것도 밉고, 요양병원 가면서 업어서 가는 것도 밉고, 요양병원에서 전화 왔다 하면 새벽 두 시에도 달려가는 내가 미워. 어머니 아프다고 옆에서 비싼 전복죽 끓이면서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원망했다고. 그래 동서 잘 지적했어. 나는 미운 형님이야.” 이러면 동서가 뭐라고 하겠어요? 나는 어머니 한다고 했는데 백만 원이 돈이 가, 이러면서. “세상에 형님은 인간도 아닙니다.” 그렇지 인간도 아니지. 사람으로선 그럴 수 없지요.

이게 인간으로선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처럼 죽으세요. 저주받고. 딱이에요. 딱 우리 인생이 사울 왕 인생이에요. 자기의 명예와 자기 체면을 위해서 계속해서 거기에 합당한 선택만 골라서 하는 존재, 사울입니다. 내 자리는 나로 채워졌어. 나의 잘남으로 채워지고 나의 의로움으로 채워지고 나의 훌륭함으로 내 자리를 응축해서 함축해서 꽉꽉 채워놓은 이 사울 왕, 이게 바로 오늘날 우리 모습 아니고 누굴 말합니까? 이게 남의 이야기에요? 우리 이야기지요.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겁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고요.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해요.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면 마음속으로 한 판 붙을까? 이게 나의 전쟁이에요. 한 판 붙을까? 아니고 우리 아들이 이번에 승진해서 뭐 어떻고. 무심코 니 아들은 뭐하노, 이것과 똑같은 거거든요. 우리 아들은 이번에 손자 봤다. 너 손자 없잖아. 이것 하나 있어. 끄집어내서 계발해서 너는 손자 없지. 돈은 없어도 손자는 있잖아. 이렇게 이게 평소에 우리는 본능적이에요. 윤종신의 <본능적으로>라는 노래.

본능적으로 툭 튀어나는 게 뭐냐? 안 지려는 거예요. 나의 전쟁이에요. 그러나 그 결과는 결국 죽음이에요. 그것도 결국은 자기의 명예를 못 찾고 찾아 먹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거예요. 이걸 뭐냐? 동영상을 앞으로 빨리 돌려보세요. …했습니다, …했습니다, …했습니다, 하지만 빨리 돌려보면 마지막에 뭡니까? 죽었다. 아이고, 아이고. 나는 죽어 있는데 우리 아들들은 부좃돈 받고. 외삼촌 와서 술 먹고 나자빠지고.

내 죽은 줄 알았지. 눈 뜨고 다 볼 거야. 보게 되면 나만 죽었지 남들은 전부 다 자기 좋은 일, 편한 일만 하고 있어. 그러니까 죽기 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 반갑다 친구야, 백날 만나봤자 각자 자기 좋은 일만 챙기면서 그렇고 그런 관계에요. 가족도 마찬가지고요 부부도 마찬가지고요 다들 마찬가지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일대기만 알지 말고 사울 왕의 일대기를 충분히 조사해봐야 됩니다.

그러면 왜 이 사울 왕의 죽음이 특수하게 하나에 예시된 어떤 조교처럼 시범조로 죽음을 언급해야 되는가?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법의 존재는 위반해봐야 안다. 위반할 때 드러난다. 법이란 게 거미줄 같은 거예요. 비 오고 난 뒤에 운동할 때 앞에 뭐가 있지요. 돌아보면 거미줄이 비가 오면 초롱초롱 물방울 맺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나이 들어 노안 오면 그냥 거미줄이란 거미줄은 다 헤치고 갑니다. 거미줄 잘 안 보입니다.

이 세상은 경제공동체기 때문에 앞에 누가 오든 내 뒤로 누가 가든 어떤 일을 하던 악수를 하던 그 사람 재산은 얼마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신수가 훤하네. 차에 보니까 뒤에 골프채 있네. 좀 사는 모양이다, 이런 것, 사업하는 사람들의 돈 얼마 벌지도 않으면서 아우디를 타요, 아우디. 동그라미 네 개 있는 아우디 타고 완도 가서 죽잖아요. 일가족이. 왜 이런 짓합니까? 허세와 허풍이잖아요. 왜 합니까? 경제공동체기 때문에. 남한테 보일 때 좀 신용도가 높아 보여야 단골이 될 수 있다는 그런 경제적 이득 전략 때문에 이런 짓하거든요.

경제선만 보이지 법은, 하나님의 법이란 것은 하늘에서 온 거예요. 모세가 하늘에서 받은 거예요. 하늘의 그물망, 오늘 제목으로 적절한 것 같은데. 하나님이 이 땅에 걸쳐놓은 그물망은 눈에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데 언제 보이느냐? 위반할 때 이게 드러나요. 개인은 자기 일을 해요. 자기 일을 하기 때문에 법은 뭐냐? 이건 주님의 일이거든요. 주님의 일을 우리가 언제 느끼느냐? 내가 나의 일만 정신 팔렸다가 그것이 감전되듯이 주의 일과 충돌을 일으킬 때 아아 이 세상은 주의 일이 촘촘하게 완전히 깔려있구나. 깔려있는 거예요.

영화 <미션 임파서블 1> 보면 주인공 톰 크루즈가 비밀 반도체 같은 중요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그것이 악한에게 넘어갔을 때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자외선이 깔려있는 그 공간에 벌건 줄이 깔려있을 때는 그 틈사이로 빠져나간다 이 말이죠. 이거는 경제공동체에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저 사람은 부도 맞을 것 같아, 저 사람은 믿지 못해, 저 사람은 믿을 만 해.”

막 쇼를 부르듯이 하지만 이 하나님의 법은 그냥 은혜로 주시는 햇빛, 은혜로 주시는 공기, 그리고 밤에도 뛰고 있는 우리의 심장 주신 하나님의 은혜, 호흡(우리의 생명은 호흡에 있다 했어요) 이런 것은 진짜 숨이 막히고 병원에 입원해봐야 이 두 다리 관절이 내 다리 아니구나, 걷지도 못하고 부목 집어봐야 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구나. 위반해봐야 그 동안 하나님 주신 은혜를 얼마나 개 무시했는지를 병원에 입원해봐서 아는 거예요.

제발 퇴원만 하게 하신다면 빨리 속병 낫고 관절 나으면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하겠습니다. 병원 7층 병상 704호실에선 잘 이야기하지 밑에 내려다보면서 저 인간은 나보다 못한 인간인데, 하고 멀쩡한 것에 대해서 분노 느끼지요. 막상 퇴원해서 병원 문 나서서 아스팔트 걸어보세요. 다 잊어버립니다. “병원비 너무 나온 것 아닌가. 의료보험과에 전화해봐라. 보험금 맞아? 보험회사 전화하고. 남는 게 없네.” 경제공동체로 다시 돌아선다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 왕을 보내서 왜 사울 왕을 보내느냐? 사울은 왕이거든요. 그 점을 설명해볼게요. 자, 사울 왕이 특수한 죽음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왕이 된 겁니다. 자 여기서 어려운 것은 두 가지입니다. 사울 왕이, ①왕입니까? ②사울 왕은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어느 게 맞습니까?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거예요. 사울 왕은 왕의 자리를 차지하면 안 돼요.

죄인은 성도의 자리를 본인 소유화시키면 안 돼요. 성도의 자리, 성도 되게 하는 성령이 임한 자리는 바로 자리 곁에 빈자리로 주의 성령이니까 주님의 자리로 따로 빈자리로 남겨져야 돼요. 사울이 암몬을 이길 때는 무엇으로 이겼다 했어요? 칼로 이겼어요, 뭐로 이겼어요? 하나님의 무엇이 임해서 삼십만 대군을 끌어 모았습니까? 하나님의 신이 임했지요.

오늘날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 성도 되게 신자 되게 하는 힘이 그 성령에서부터 계속해서 주입돼야 됩니다. 어떻게 주입되고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는가, 그건 10분 쉬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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