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HOME > 게시판 > 자유게시판
2007-09-16 22:28:48 조회 : 3888         
20070907a 울산강의-창세기 19장 녹취 이름 : 한윤범(IP:59.6.189.195)
 

20070907b 울산강의-창세기 19장


(강의:이근호 목사)






제가 지난 아까 시간에 ‘교체’라는 말을 했지요. 이 소돔과 고모라는 어떤 특징이 있느냐 하면, 이 세상 자체가, 소돔과 고모라가 뭐로 벌 받습니까? 유황불로 벌 받지요. 그죠? 그러면 베드로후서 3장에 마지막에 전 지구는 뭐로 벌 받습니까? 전에는 물로 심판 받았지만 마지막 때는 유황불로 받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는 앞으로 올 세대에 대한 이게 본이 된다고 이야기 나와 있지요. 제가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성경에 그리 돼있지요. 본이 된다.




그러면 소돔과 고모라가 나쁘다, 나쁜 세계다.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나쁜 건 원래 아니까. 어떤 식으로 여기서 구출이 되느냐 하는 그게 하나의 구원의 능력이 임했을 때 이 소돔과 고모라 안에서 내부적으로 어떤 현상의 갈림이 서로 다른 반응들이 나타나는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시면 됩니다.




이번 시간에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롯은 천사의 약속 때문에 두 딸을 포기해요. 이 두 딸을 포기한다는 것은 딸을 포기하는 게 아니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보면 그 불량배들이 왔을 때 뭐를 보여주고 약속을 전하는 천사, 천산줄 알아요. 나중에 롯이 알거든요. 천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대가로 누굴 내놓느냐 하면, 두 딸을 내놓습니다. 우리 딸 조져도 괜찮은데 이 사람들은 겁탈하지 마라. 하고 숨기니까 발끈하고 불량배들 난리 났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참, 이런 게 어려운데. 베드로후서 같은 경우에 베드로후서 2장이나 이런 경우 나오죠. 3장도 마찬가지고 2장도 나오지만. 뭐냐 하면, 성경에 이런 게 어려운데, 왜 하필이면 천사가 롯까지 들어가느냐 이 말이죠. 지금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할 때 제일 먼저 우리가 십자가의 길, 구원의 길 가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아까 예레미야 이야기했죠. 왜 하필이면 남의 나라 아저씨, 예수를 믿게 하십니까? 라는 그러한 아픔이 있어야 돼요. 아픔 또는 분통함, 또는 약간의 억울함 같은 게 느껴져야 돼요.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나에게 쳐들어와서 왜 내 안에 들어오십니까?




그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쉬운 예를 들게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하나님만 알던 시대에 교회생활은 어땠습니까? 참 행복했었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모르고, 십자가 모르고, 복음 모르고 하나님만 알던 시대에 교회생활은 너무 행복해요. 왜냐하면 교회 오면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헌금한 액수대로 칭찬 받고, 봉사하면 봉사한 대로 칭찬 받고. 그러니까 교회 오는 시간이 즐거워요. 나를 칭찬해 주니까.




죽고 난 뒤에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고, 살아있을 동안엔 내 힘대로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하고. 정말 행복했던 시절이에요. 행복했었지. 복음을 모를 때는. 죽어서 하나님 구원해준다 하니 고맙고, 살아 있어서 남들이 칭찬해주니까 일거양득, 양쪽 다 챙기는 게 되니까 교회 나오지 말라도 교회 나오고 싶어요. 그때는. 복음을 모를 때는.




이해가 안 되십니까? 지금 그렇게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알 때는 그랬다 이 말이죠. 하나님 믿을 때는 그랬었어요. 하나님은 잘된 사람에게 복 더해주시고, 그리고 복 잘됐다 이 말은 하나님 축복 받았다는 증거로 보기 때문에 세상에서 약간의 자랑거리나 장점만 있으면 쭉 들고 와서 하나님의 복입니다. 라고 떠버리면 교회에서 칭찬, 칭찬이 늘어지더란 말이죠. 그때 그런 교회생활 할 때가 좋았다 이 말입니다.




청소해도 목사님 칭찬해주지, 집사님 칭찬해주지 장로님 칭찬해주지 얼마나 좋았어요. 주일날 같으면 경우에는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열한 시에 퇴근해요. 칭찬이니까. 그걸 근거로 또 자기가 장가도 가고 취직도 되고 잘 되면 얼마나 좋아요. 잘 되면 복 받았다고 잘 됐다고 주위에서 한 소리 할 거니까.




그리고 기도의 응답대로 된다고 여기서 북치고 격려해주니까 기도할 맛이 나고. 뭐든지 너의 기도는 하늘에 상달돼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은 다 이루었다. 믿어라 하니까 내 아들 서울대학 들어가게 해 주시고 그것도 될 거고, 어디 출세 해 달라. 그것도 될 거고, 참 우리 아들 좋은데 취직 되고 장가가고 시집가게 해 달라. 그것도 될 거고 뭐든 희망이 있으니까 그것처럼 예수 믿기 좋은 게 어디 있어요. 칭찬 받지, 희망 있지, 하나님 믿고 살 때 그때 행복했었어.




죽고 난 뒤에는 하나님 계시는 천국 간다 하니까 그것도 좋았고, 살아있을 때는 자기 능력으로 잘되게 하면 복이라고 간주해 주니까 그것도 좋았고. 아무 교회생활에 거리끼는 게 없이 그렇게 편하게 다녔던 그때였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십자가에서 내 죄 때문에 고통이 당한다는 소릴 들을 때 그 순간부터 이렇게 착하고 칭찬받는 나를 위해서 왜 당신은 쓸데없는 짓을 왜 했습니까? 시키기만 하면 뭐든지 잘하는 난데 헌금, 십일조 뭐든지 잘하는 난데 내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피를 흘리면서 찢기면서 죽으신다는 왜 그렇게 오바하십니까? 왜 오바적인 과도적인 행위를 하셨습니까? 그걸 아는 순간부터 칭찬은 나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요. 




그때부터 성경을 다시 보게 되며 성경에 뭐가 보이느냐 하면, 예수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기 위해서 예수 믿음이 자랐다는 빌립보서 1장이 그게 눈에 들어오고, 이미 너는 죽어나니 더 이상 내가 사는 건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게 들어오고, 환란 가운데 기뻐하라는 말이 들어오고, 너는 전도할 때 아무도 가르치지 말란 말이 들어오고, 웃는 자여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말이 들어오고, 좁은 길로 가라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고.




문제는 성경은 이해되는데 내가 그 동안 관습으로 쫙 살아온 교회생활, 칭찬 받기 위해서 교회 다녔던 이 습관, 이러한 나의 노림수, 교회 올 때 어떤 노리는 게 있잖아요. 은근히 나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 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말아야 된다는 좌절감, 또는 실망감, 어떤 짜증도 좀 나기도 하고.




그때 우린 뭐라 해야 합니까? 주님이여, 그냥 하나님 저쪽에 계시고 나는 여기 있고 하나님 믿어 줄게요. 이럴 때가 좋았지, 예수님께서 왜 내 안에 들어오시고 나는 왜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 되는 겁니까? 왜 그것까지 무리하게 요구하셨고, 왜 그걸 이렇게 실행에 옮기셨습니까? 사나 죽으나 이제 주의 것으로써 왜 살게 했습니까?




주님 저기 가 계시면 헌금도 드리고, 봉사도 하면 되지, 왜 같이 한 덩어리 되서 같이 이렇게 고난의 길을 가야 되느냐 이 말이죠. 날 좀 놔 둬서 죽을 때나 되서 주님 여기 계시면 만나고 하지, 왜 같이 지금 한 덩어리가 되서 구르느냐 말이죠. 그동안 칭찬 받고 그때가 좋았지 그런 보람이 좋았지 그런 것도 없이 난 죄인입니다. 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아십니까? 라는 이런 말이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앞에 제가 열거한 거 있잖아요. 그때 하나님만 알 때가 좋았다. 하는 것 있잖아요. 그거 이단입니다. 불신자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99.99%가 다 그렇게 다녀요. 하나님 믿고 죽어서 좋은데 갈 거고. 그분을 믿으니까. 살아생전에 지 잘한 거 가져오면 교회에서 칭찬이 늘어지고 축복이 늘어지는 그 재미, 그 칭찬 받는 재미 그걸로 교회 다닙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까 목사님하고 식사 가운데 이야기하면서 어떤 목사가 돈이나 여자 문제로 비리가 생길 대 그 비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도 그 사람이 강제 사면 당해서 쫓겨나가도 그 문제성 있는 목사를 쭈르륵 다 따라 나와서 그 기존 교회보다 따라 나온 사람이 더 많다는 거를 목사님이 하셨지요. 누가 했어요? 했잖아요. 정판옥 목사님이 하셨는가? 했지요.




그거 왜 그런지 알아요? 목사의 칭찬 받기 위해서 교회 다닌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목사가 그게 드러나면 그게 미운 게 아니고, 참 안 됐다 하고 동정하고 싶어서 따라다녀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따라다니게 마련이에요. 그러니까 뭐, 목사 비리 있어도 소용없어요. 자주 심방가고, 목사님들 잘 들어놓으세요. 자주 심방가고 자주 축복해주고 자주 사랑하면 형제지간보다 더 안 떨어집니다. 영원한 팬이 돼요. 팬 관리하면 되고요. 결국 사람들은 자기 이익으로 돌아가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자기 이익 되는 쪽으로 움직이게 돼있어요. 




소돔과 고모라가 어떤 점이 중요하느냐 하면, 베드로후서 2장 말씀처럼 롯이 천사 때문에 고난 받는다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심판은 진행됩니다. 라고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대목이 소돔과 고모라 대목입니다.




앞으로 심판 날에는 그냥 심판받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복음 때문에 난데없이 고난을 받는 그러한 와중 속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 라는 것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갖고 심판하실 때 어떤 식으로 되는가를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




여기 보면 19장 5절에,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하자 6절에, “롯이 문 밖에서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이 이런 악을 행치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라고 롯이 이야기했잖아요.




왜 롯이 자기 두 딸보다도 왜 이 두 천사를 왜 더 중요시 여깁니까? 누가 이야기해보세요. 그냥 손님을 뿐인데 객인데. 한 집에 자기 품에서 나온 자식새끼보다도 자기 새끼를 내줄지언정 이 사람은 못 내놓겠다. 도대체 무슨 사고방식 가지고 무모한 무리한 흥정을 그 불량배들과 합니까? 제가 좀 어렵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이거 쉽게 이야기하지 않고 어렵게 하겠습니다.




이것은 롯의 판단문제가 아니에요. 롯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 얼굴 표정을 보니까 제 이야기를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냥 심판이 아니고, 장차 불 심판 받는 전 인류의 불 심판 받는 것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예고편입니다. 맞지요? 그렇다면 그 말 맞지요. 이건 하나의 본이 된다 했으니까 제 말이 아니고 본이 된다 했으니까 맞잖아요. 소돔과 고모라에 일어났던 이런 경우, 심판의 경우가 장차 여기는 보편적으로 일어난다. 그 말도 맞지요. 왜? 본이니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그 불량배들이 불량배들이니까 악인들이에요. 심판 받아야 될 악인들. 불량배들이 하나님께서 불량배들은 이렇게 몰아서 어디에 몰아세우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갖다 붙이도록 하게 하심으로 잘 들어보세요.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 많은 집들 가운데서 하필이면 약속을 몰고 온 그 사람들과 악인들 붙이게 함으로 말미암아 제3자 위치에 있는 롯으로 하여금 참된 믿음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가 없어야 참된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냐 하는 것을 마지막 때에 우리보고 결정시키게 해요. 이게 인력으로 되겠습니까? 안 되지요.   




다시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악한 놈들이 약속이 하나님의 심판의 약속을 몰고 온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붙여요. 어이 돈 내놔. 돈 줄게. 가라. 지금 불량배들이 노리는 게 그게 아니에요. 롯도 의외였고 불량배들은 의외 아니지만 그 사람들은 하나님 시키는 대로 움직이니까. 불량배와 약속과 딱 갖다 붙이게 만들어서 그걸 보면서 구원될 우리들에게 결단을 선택을 분명히 하게 만들어요. 니가 알고 있는 믿음은 이 둘 중에 어느 거고? 단독직입으로 묻습니다. 여기에 누가 다 떨어지는가? 가짜들 다 떨어져요. 가짜 믿음 있는 사람들 다 떨어져버립니다.




두 딸을 참 신기한 게 지금 제가 봐도 신기한데, 두 딸을 겁탈해서 아직도 신삥이다. 아직 결혼도 안 했다. 처녀다. 처녀 두 딸을 상대하고 이 사람은 놔 줘라. 할 때 불량배들이 그래 그 정도하면 되겠다. 하고 물러간 그런 경우라면, 롯이 갖고 있는 그 신앙의 본체가 덜 드러나죠.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정도냐 하면, 두 딸을 싫다. 그 두 사람을 내놓으라고 할 때 그때 롯의 태도, 요게 신앙입니다. 롯이 천사를 내놨어요, 안 내놨습니까? 안 내놨지요. 이거는 뭐냐? 사람의 천하보다 귀한 게 하나님의 약속이란 것을 롯이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롯의 인간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두 딸을 자기의 새끼까지 제물로 바칠 정도로, 안 돼요. 어떻게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제물로 묶어서 모리아 산에서 죽이려고 하겠어요. 이것은 인력으로 안 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느냐? 믿음이 니가 믿는 줄 이제 알겠노라.




흔히 말하기를 인간이 마지막 때 믿음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없는 믿음이에요.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롯이 두 딸을 제물로 바치고, 천사를 이렇게 붙잡아 맨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아브라함의 마음, 그 마음이 뭡니까? 악인과 의인은 결코 함께 망하지 않는 그 점을 생각해서 기어이 롯을 건지기 위해서 롯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자기 두 딸을 내놓는 자기 약속을 지키는 그런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 생활하는 것은 우리 힘이 아닙니다. 지금도 대속해서 우릴 위해서 간구하고 계시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우리 주님께서 기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말도 안 되는 신앙생활하고 있는 거예요. 모든 걸 포기해도 예수님 포기 못하는 그 모든 공로는 지금도 우릴 위해서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히브리서 7장에 나오는 그 주님께서 기도하심으로써 사탄이 더 이상 우리가 이미 택한 자를 누가 송사하리요.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킴 받는 겁니다. 그것을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더 알고자 기도해야 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권면하는 기돕니다.




야, 도대체 내가 구원된다는 건 있을 수 없어. 이건 주님의 공로야. 라는 것을 그 사랑을 더욱더 알도록 기도하기를 원하는 거죠. 그 사랑을. 그러면 그 기도대로 되지요. 어떻게? 우리의 예상과 예측이 어긋나면서 주님의 사랑을 기대하는 모습으로써 자꾸만 인도하지요.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의 이 일은 뭐냐? 장차 오실 그런 심판 앞에서 약속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의인과 악인이 함께 멸망되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다 감수하면서도 기어이 롯을 지켜내신다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의 해석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목사님, 그 해석의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19장 29절.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롯이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뭡니까?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보내셨더라” 아브라함을 생각했다는 말은 아브라함의 뭘 생각했습니까? 의인과 악인이 함께 멸하면 말도 안 되잖아요. 라고 했을 때 알아서 할게 해서 기어이 롯과 두 딸만 건진 거니다. 알아서 할 게 되서.




의인은 악인과 함께 멸망하지 않습니다. 이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물으면, 압니다. 하거든요. 내가 의인이니까 구원받았지. 그게 아니라 우리를 구원될 사람으로 확인시키는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데, 남들 보기에는 아이고, 최 집사님. 뭐 복음 듣는다고 교회 다음에 가면 되지, 친구가 좀 만나자. 그 날 못 만난다. 교회는 다음에 가라. 테이프 들으면 되지, 이런 식으로. 뭔가 이렇게 올 때 이상하게 느낌에 교회를 가야 된다는 느낌이 오는 거. 그건 여러분 인력으로 안 돼요. 니, 친구 의리 다 버리나? 버리는 게 아니고, 주께서 버리게 하시네. 뭐 이럴 수도 있고.




세상이 우리가 우리 힘으로 선택하기 곤란한 일을 자꾸 만들어요. 자꾸 만드는데 우리가 어느 쪽으로 선택했든 간에 그 선택한 것은 결국은 주님의 사랑이 나의 결단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쪽으로 우리를 자꾸 인도해 가요. 주님의 사랑이 긍휼하심이 내가 선택한 것보다 더 위대한 걸 보여주는 쪽으로 자꾸 이끄신다 이 말이죠. 한번 택한 백성은 버리지 않거든요. 그게 얼마나 사랑이 끈질긴지 우리로 하여금 난처한 일을 자꾸 만들어요.




아마 롯이 집에 두 딸이 없었으면 집에 두 딸이 없고 강아지 있으면 대신 강아지를 내놨을 거예요. 그런데 강아지를 내놓으면 뭐라 하겠습니까? 롯이 두 강아지를 내놔서 보냈다 하면, 사람들이 뭐라 하면, 나도 그런 강아지 내놓겠다. 하거든요. 나도 못 내는 그렇게 못 하는 두 딸을 내놓아야 한다니까요.




아브라함이 멧돼지를 잡았더라. 에이씨, 멧돼지는 나도 잡겠다. 아브라함이 멧돼지를 잡은 게 아니고, 누굴 잡았습니까? 자기 아들 잡았거든요. 이거 못하잖아요. 사라가 이삭을 낳았더라. 나도 임신하면 애 낳는다. 그게 아니고,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못하는 방식인데 구원되더라.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말이죠.




지금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우리 힘으로 안 되는 일을 주께서 하시는 겁니다. 우리 오빠가. 우리 신랑이 너무 대단해서 우리가 안 되는 일만 족족하셔요. 우리 안 되는 일만. 우리가 되게 하는 일은 일부러 다 피해서 안 되는 일만 해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전돕니다. 하나님의 선교고.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천사인 줄 알았어요. 알아서 발을 씻기고, 2절에 봅시다. “발을 씻겨  내 주여”라고 했거든요. 발을 씻기고 그리고 주무시고 가라 했어요. 주무시고 안 가라 했으면 그 불량배들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두 천사는 그 집에 하루를 묵게 됩니다. 묵으니까 타이밍 맞춰서 불량배들이 왔고 불량배들이 이상하게 롯을 상관하게 하는 게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 상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마귀를 불러내서 불러오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복음대로 사시면 고맙게도 마귀가 찾아오십니다. 마귀는 예수님 십자가 믿는 거, 제일 싫어해요. 협박과 공갈과 때로는 회유로. 여러분들이 복음 믿는 거, 제일 싫어해요. 여러분들이 죄 짓는 거 그거 안 무서워합니다. 여러분들이 죄 짓든 안 짓든 간에 복음 믿는 거 마귀가 제일 싫어해요. 죄야 맨 날 짓는 게 죄니까. 죄 지었으니까 니 지옥 간~다. 이래 놀립니다. 그때는 원래 내 주특기가 죄 짓는 거 밖에 안 돼. 이래 나와야 돼요.




내 글에 내 책에 이런 게 있어요. 요번에 새로 나온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쭉 봤는데 거기 보니까 이런 게 있어요. [죄를 생각하는 순간 죄가 된다.] 했어요. 주님 생각하면 죄가 안 되는데 내가 죄 지었나? 이래 생각하면 그 자체가 마귀에 시험 드는 하나의 첫 발자국이 되는 거예요.




깨닫게 하실 것도 스스로 깨닫게 하지 마시고, 주께서 깨닫게 하실 겁니다. 깨닫게 하시면 아, 내가 주님 생각 안 했구나. 그때 깨달아야지 지가 스스로 반성한다고 회개 금식하면 주님께선 술 먹으러 가자합니다. 스스로 반성하고 일기장 쓰고 그러지 마세요. 가만있어도 아, 내가 주님 별로 안 좋아했네. 깨닫게 하시는 그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 이미 하셨기 때문에 하신 이후의 결과가 그런 겁니다. 그게 지금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고 있어요. 롯처럼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그걸 보고 우린 가슴 아파 알아 갑니다.




이거 한번 정리해 보면, 악이라는 것은 결국 뭐냐? 약속을 거부하는 거죠. 제가 욥기 강의하면서 그런 이야기했는데, 사람이 악하다는 것을 뭘 보고 아느냐? 심판이 오면 악하고, 심판 안 오면 악한 게 아니죠. 그죠? 그렇다면 소돔과 고모라에 그 불량배 청년들이 왜 악하냐? 유황불 떨어지고 보니까 악하잖아요. 예수 안 믿는데 착한 판사가 있다. 그 사람 악합니다. 왜 악합니까? 나중에 뭡니까? 유황불 떨어지거든요. 유황불 떨어지면 무조건 악한 사람이에요. 얼마나 착한 줄 몰라. 사람 참 인간성 좋아. 좋은 건 아는데 유황불 떨어지니까 악한 거예요.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뭘 받을지어다? 저주를 받으니까 악한 거예요. 예수라 하는 것은 남의 나라, 먼 나라 아저씨 아닙니까? 먼 나라 아저씨 사랑하지 않았다고 저주 받는 거예요. 이게 대한민국이란 소돔과 고모라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먼 나라 서른세 살 먹은 아저씨 사랑하지 않았다고 저주받는 거예요. 대한민국이란 소돔과 고모라에선 말이 안 되는데 실제로 이 땅에 유황불 떨어지면 그게 말이 돼요.




지나간 세대에서는 예수 안 믿는 것을 하나님께서 묵인했으나 마지막 때는 예수를 보내사 죽은 자마다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지 않는 자는 멸망 받게 하리라. 이게 한 날을 정했다 이 말이죠. 사도행전 19장.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하는 게 신앙이란 있어서 감정 가지고 이렇게 얽으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객관적인 어떤 흘러가는 사실이에요. 내일 되면 며칠이죠? 내일 되면 9월 7일이죠. 내가 지금 운다고 9월 8일 되고, 웃는다고 9월 10일 되는 거 아니잖아요. 내일 되면 9월 7일 돼요.




마찬가지로 내가 운다고 주님 안 오시는 것도 아니고, 안 운다고 오시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올게. 올 뿐이에요. 그게 약속이에요. 이미 십자가에서 문제 해결했습니다. 이미 약속입니다. 울고불고 사방팔방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거기에 마음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교통사고 나서 목이 좀 뻣뻣해도 아무 상관없고, 아무 상관없어요.   




이 대목 보고 어떤 사람 걱정하는 사람 있어요. 목사님, 그러면 천사 왔는데 혹시 진짜 우리 집에 두 딸이 있는데 혹시 불량배 와서 우리 두 딸 내놔라 하면 내놔야 돼요, 말아야 돼요? 우야면 좋아요? 그 마음대로 하세요. 왜 그러냐 하면, 이때는 두 딸을 내야 되지만 지금의 불량배들은 두 딸 내라 소리 안 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좋게 이야기해요. 니, 나하고 친구 아이가? 옛날 교회 다닐 때 예수 모르고 하나님만 알 때 있잖아. 우리 하나님만 알 때 그때로 돌아가자. 하나님 알고 칭찬 받고 그때 참 안 좋았냐? 무슨 십자가, 피 왜 알았느냐? 이렇게 조용히 이야기 오죠. 우린 조용하게 거부하면 되죠. 그게 그건 복음이 아니거든.




그렇게 알던 사도 바울이 나는 십자가 외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다 이 말이죠. 나를 위한 복음은 없어. 살든지 죽든지 예수를 위하여 살아야지, 나를 위한 예수 그런 게 없어. 그건 기존 한국교회가 장경동이가 그렇게 가르쳤고 다 가르쳤는데 바쳐야 복 받는다 그런 이야기 다 그런데 그게 아니야. 우린 교체 돼야 돼. 우리는. 라고 이야기하면 니는 자청해서 힘든 인생 살아가는구나. 하나님만 알 때 그땐 좋았는데. 나도 안다. 그때 좋았는지 안다.




여러분, 제가 이런 이야기하는 게 복음 모를 때 제가 생생하게 신앙생활 그래 했었어요.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열한 시에 하면서 칭찬이 자자하고, 참 빈틈없이 선한 일을 하는 재미. 선한 일을 하는 재미가 여러분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선한 일을 자꾸 모아보세요. 얼마나 기쁜지. 선한 일. 하루하루 그래프를 쌓아 점점 더 선한 일을 많이 쌓는 거예요. 오늘은 교회 갔다 오면서 다섯 군데를 걸인들에게 돈 100원씩 줬다. 이게 다음에 열군데 가요. 그래서 목사님 칭찬받았다. 교회 오늘 주일학교 뭐했다. 이게 선한 일 쌓아보세요. 참으로 이거 재밉니다.




내가 점점 더 완결해지고 순결해지고 순수해진다는 오는 요 쾌감은 보통 쾌감이 아닙니다. 남을 정죄하는데 아주 일가견이 있어요. 지금은 반대로 정죄하지만. 남을 정죄하는데 자기가 이만큼 착한데 이 착한 것을 죄라고 하는 놈은 누구냐 말이죠. 언 놈이 나 이렇게 착한 일 하는데. 예수 믿는 건 기본으로 안다 이 말이죠. 남는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거 몰두하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하는데 성화되는데.




신앙생활 주께서 하십니다. 우리가 안 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얼마나 내 힘으로 안 하는지 롯을 보여줬습니다. 다 가가라. 우리 집 딸내미고 다 가가라. 나는 이 약속을 믿는다. 그리고 롯은 아직 결혼은 안 했고 정혼한 약혼한 사위들한테 갔어요. 사위들아, 떠나자. 했어요. 장인어른, 무슨 근거로 이렇게 합니까? 우리 집에 온 손님들 있잖아. 알지? 손님 그 사람들이 이야기 하더라. 떠나라 하더라. 떠날 때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하더라. 그러니까 사위가 웃으면서 뭐라 합니까? 뭐처럼 여겼다? 여기 유명한 말 있지요. ‘농담’




여기 나오죠. 한번 봅시다. 농담. 14절에.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뭐로 여겼더라? “농담으로 여겼더라”




농담. 크게 한번 써보겠습니다. 농담이 뭐냐? 뭣을 농담이라 합니까? 놀리는 말이죠. 농담은 진실 아님이죠. 이는 거짓 또는 모호함 이런 뜻이에요. 그렇다면 자, 한번 보세요. 농담으로 여겼다는 말은 진실로 안 보고, 모호함 이 말 아닙니까? 그러면 농담으로 여긴 사람은 나름대로의 진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요. 뭐가 진실입니까? 자기 현재 몸둥아리죠. 현재 자기 몸둥아리 진실하다 말이죠. 자기 몸만 진실한 거예요.




여기에 롯의 말,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실 것이라. 약속이 들어올 틈이 없지요. 자, 여러분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마지막 심판 그러니까 십자가 용서 받은 자만 구원받는다 하는 것은 농담 아니지요? 농담 아니라면 저나 여러분이나 그 사위 못지않게 여러분 단단합니다. 맞지요. 맞잖아요. 우리는 우리 밖에 몰라요. 단단합니다. 이 사람 사위들만 자존심 있고 우린 자존심 없습니까? 단단하지요. 그리고 철저하지요. 자기 방어 강하지요. 체면, 위신, 품위 그거 우리 포기 안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농담으로 안 듣지요. 




그럼 묻습니다. 여러분 어느 부분에서 깨졌습니까? 허물어졌습니까? 한번 돌아보세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내가 인정 안 되는 건 다 거부해요. 그리고 우리 자존심 셉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십자가 피로 나는 용서 받고 나는 죄인이며 마지막 심판 오신다는 것이 이미 침투했습니다. 그러면 이 단단한 것이 뭉텅이로 허물어져야 되겠지요. 그게 허물어져야 돼요. 10%, 20%, 몇 퍼센트 허물어졌어요?




사실은 전체 다가 이미 허물어졌어요. 전체 다가 허물어진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내 위주인가를 너무나 잘 압니다. 우리는 뭐까지 그 점이 좋은 건데, 뭐냐 하면 그래서 우리가 허물어졌기 때문에 훌륭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게 아니고, 현재 이 모습은 그래도 두면서 다른 이것을 용서한다는 그런 새로운 방식에 의해서 우릴 구원하는 겁니다.




이게 율법 외에 구원인데. 우리 보고 허물어져라, 회개하라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대로 있으면서 율법적으로 지켜라, 뭔가 있으면서 그것은 우리를 죄 되게 하고, 이것 말고 다른 방식, 율법 외에 따로 어떤 분이 대신 용서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함을 우린 단단한 몸을 가지고 아는 겁니다.




그렇다면 롯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롯의 경우도 두 딸을 내 놓고 하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인간성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일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말을 한 것은 절대로 사위를 우리가 욕하지 말자는 겁니다. 왜? 사위나 우리나 막상막하입니다. 지금도 교회 교인들한테 복음 전하면 난 하나님 믿으니까 나한테 복음 이야기하지 마라. 하는 사람들, 많이 튕기는 사람이 대다수에요. 심지어 우리교회도 있을 수 있어요.




저는 목사님 교회 다니잖아요. 그러니까 복음 압니다. 설교는 목사님이 하시고 나는 내 일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 따로 있습니다. 그거는 손대지 마세요. 라고 하는 사람들 있어요. 제가 성도님의 일을 지금 터치하는 것이 아니고, 그 하시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본인이 아십니까? 할 말이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는 지금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전 자꾸 설교하며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거 의미 없어요.




어느 정도로 목사가 설교하는 게 의미 없듯이. 당신이 지금 의사입니까? 그 의사 의미 없어요. 의사 당신을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장사해요? 장사하는 게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구원하는 건 십자가 구원하고, 목사가 설교한다고 목사가 설교한 것 때문에 구원되는 게 아닙니다. 우린 십자가 바라봅시다.




이 말을 기쁘게 듣는 사람도 있고, 말은 맞는데 이상하게 땡기지 않네요. 안 땡긴다고 여기는 사람 있어요. 그 사람은 구원 못 받았다는 뜻은 아니고 제가 그런 뜻으로 한 건 아니고. 왜 자기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오히려 일하기 더 편할 텐데. 하는 그러한 약간의 걱정성은 있지요.




제가 만약에 교사라고 한다면, 교사가 최고다. 나 없으면 우리나라 교육계가 망한다. 이게 힘들지, 교사 왜 하십니까? 돈 벌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편하냔 말이죠. 사모님 내 이야기한다. 이게 얼마나 편한 이야기냔 말이죠. 돈 벌어 애 키우려고 합니다. 와 꼽니까? 나 그래 돈 벌어야 되겠어요. 이게 얼마나 편하냔 말이죠. 나 아니면 교육계가 안 되고, 한국교회는 내 손에 달렸고. 이게 얼마나 짐 돼요.




내가 하는 일이 안 중요해요, 그게. 그럼 안 중요한데 왜 하느냐? 주께서 그 일을 통해서 십자가 알게 하셔요. 아, 내가 이 일을 중요시 여기고 있지만 이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구나. 깨닫게 해서 그 일에 종사하는 거예요. 목사 왜 합니까? 목사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고, 목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께서 날 위해 기도해 주신 일이 주님이 더 귀하다는 걸 알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롯에 대해서 너무 부담을 갖지 말자 이 말이죠. 롯은 주께 인도하시는 대로 할 뿐이에요. 롯의 사위에 대해서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우리는 롯 사위와 막상막합니다.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래서 두 딸 가는데. 그 뒤에 일을 여러분 잘 아시죠. 피곤하시니까 조금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아시는데 여기서 뒤돌아보지 마라 하는 게 여기에 보면, 17절에 보면,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거나 하지 마라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을 면하라” 이래 돼있지요.




누가 누구를 구원합니까? 롯이 알아서 나갔습니까? 아니지요. 천사가 해서 한 동행을 이루어서 하여튼 무리를 이뤄서 나왔지요. 사도행전에 보면 천사가 옥문을 열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이때는 천사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면 우리가 그 구원하는 길을 가는데, 갈 때 조건을 줬습니다. 뭐냐 하면, 도망하여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라 했습니다. 힘들더라도 좀 참으세요. 조금만 하겠습니다.




‘돌아보지 말라’는 이 말씀을 두 번째,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이걸 어떻게 활용을 했습니까? 여러분 잘 아시죠. 돌아보지 말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어떻게 활용했습니까?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지요. 맞지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돌아보지 말라에서 이 세상 사랑하지 말라로 바뀔 때 개인적인 어떤 결심을 똑바로 하라. 이런 식으로 해석 해버리면 이것은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하는 것은 돌아보는 것이 아니고, 현재 우리가 이 세상에 그냥 살고 있잖아요. 이 세상에서 떠나서 여기 있는데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이러면 우리가 다시는 거기 안 갈게요. 이래 되는데 현재 우린 이 세상에 같이 살고 있잖아요. 살고 있는데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을 때 결국 이거는 뭐냐 하면, 여기서 교체를 이야기합니다.




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도망갈 곳을 비상을 주시고 구원하실 때 이 지금 죄악 된 관영한 세계에서 더 이상 미련두지 말라는 뜻에서 돌아보지 말라는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미련두지 말아야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돌아보지 말라. 라고 했을 때 롯의 처와 롯과는 서로 구분됩니다. 구분되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을 때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구원되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 쪽으로 일거리를 자꾸 어떤 사태를 우리가 사랑하지 안할 수밖에 없도록 그러한 조치로써 주님께서 약속대로 이끌어내시는 겁니다.




구약은 마치 개인적으로 안하면 안 될 것처럼 보여주지만 신약에 오게 되면 이 모든 말씀들은 예수님이 개입되지 않으면 아무도 이룰 수 없다는 쪽으로 이렇게 해석하는 겁니다. 만약에 그냥 구약대로 돌아보지 말라 하면 그건 안 돌아보면 되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이것은 우리가 못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렇게 마음을 변하게 새롭게 이 세상을 본받지 않게 해주시는 겁니다.




해주실 때 그러면 뭐, 명품 갖지 말란 말인가, 그러면 호텔에 가지 말라는 것인가? 그런 뜻이 아니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 세상이 아무리 본받고 싶어도 못 본받아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세상은 세상만 사랑하니까. 세상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니까 그거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게 된다 이 말이죠.




구약을 율법적이기 때문에 돌아보지 말라 하면 진짜 돌아보면 안 되게 돼있지만, 신약에서는 이거는 예수님 사랑하는 쪽으로 이 모든 말씀을 다 이룬 것으로 쳐주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은 우리의 하나의 본이 되는 겁니다.



그럼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뒤돌아보지 마라 하는 것은 이것은 보면, 26절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이 대목을 가지고 목사님, 요즘에는 뒤돌아보지 마라는 그런 계명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요즘은 무슨 계명입니까?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입니다. 목사님, 왜 그렇게 돼야 됩니까? 뒤돌아보지 마라 하면 뒤 안 돌아 볼 텐데 왜 그렇게 합니까? 우리는 뒤돌아보지 마라 뭘 해도 못 지킵니다. 우린 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사랑해야지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한다고 해서 그걸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누구만 사랑하면 오케이지, 내가 행동을 어떻게 하고 똑바로 어떻게 하고, 어떻게 안하고, 하고 안하고가 그걸로 우리 구원되는 게 아니고, 주님이 날 구원한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뒤돌아보든 백 번 뒤돌아봐도 구원받습니다. 이게 신약과 구약의 차이점이 이런 차이가 있어요.




우리 보고 요구하는 우리 보고 행해야 구원받는 법은 더 이상 우리한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율법을 생각하려 하면 그리스도에서 끊어진 자이다. 법은 우리가 안 되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법이 있는 것이지 지키라고 있는 게 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법을 못 지킵니다. 못 지킨 것에 대해서 너무 절망하지 마시고, 다 이루신 주님을 사랑하시면 그것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게 됩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자꾸 지키려고 해요. 교회 있는 불신자들 자꾸 성경말씀 지키려고. 뒤돌아보지 말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하니까 기도원 가서 기도하고. 그 짓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하니까 세상을 떠나면 된다는 거예요. 기도원 자체가 세상인데. 안 되는 거예요.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는 합당치 않느니라. 해석해 보세요. 목사님. 주님을 사랑하세요. 그 뜻입니다. 두 사람이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갈 때에 두 사람은 멸망당했다. 시집가지 말까요? 그럼 사도 팔지 말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면 돼요. 사랑이 모든 율법을 다 이뤘느니라.




목사님, 왜 그렇습니까? 아브라함 언약은 자기 새끼를 바쳐야 돼요. 아브라함 언약은 새 언약하고 달라요. 아브라함 언약은 명령이 들어오지만 새 언약은 모든 것을 예수님이 자기 피로써 모든 죄를 용서한다는 의미에서 자기 피를 흘렸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피를 흘린 게 아니에요. 자기 행함을 나타내요. 애를 잡고, 뒤돌아보지 말아야 되고, 모세는 제사를 드려야 되고, 십일조를 내야 되고, 이래야 돼요. 이거는 주체자가 아브라함이죠. 여긴 주체자가 누굽니까? 예수님이 되셔서 그 예수님이 흘린 피가 우리에게 적용됨으로써 우리가 구원받는 겁니다. 한 통속되는 거예요.




그러면 구약은 아브라함은 왜 있습니까? 어떤 인간도 이걸 지킬 수 없다 이 말이에요. 어떤 인간도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을 우리 힘으로 지킬 수가 없는 겁니다. 




31절에 보면,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딸이 아버지와 동침한 게 나쁜 일입니까, 좋은 일입니까? 이게 나쁜 일, 좋은 일 그 문제가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어쩔 수 없는 이걸 가지고 성도의 삶이에요. 성도의 삶은 나쁘다, 좋다가 아니라 주께서 인도하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에요. 성도의 남은 여생은.




그러면 목사님 말씀대로 하면 성도가 무슨 짓을 해도 잘했다는 말입니까? 잘했다가 아니라, 백날 얘기해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어요.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까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잘했다는 말 아닙니까? 잘했다는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까.




그러면 자기 일을 정당화하는 것 밖에 더 됩니까? 정당화가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이게 사람이 잘했단 말입니까, 정당했단 말입니까? 이것은 홀로 있을 때 그런데 주님께서 만들어준 그 환경 속에서는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이 딸년들이 평소에 아버지한테 반해서 평소부터 노리고 있다가 나중에 엄마 없고 난 뒤에 잘 됐다. 이럴 것 같으면 문제 되는데 그게 아니고 지금 엄마 없이 인종을 낳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이죠. 




그러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앞으로 그러면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또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고, 그때 그 나름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또 생기겠지요. 그런데 그 일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어쩔 수 없는 일만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놓이게 돼요.




왜 이렇게 해도 상관없느냐 하면, 이미 소돔과 고모라에서 벗어났잖아요. 이미 심판에서 벗어났다는 그 신분과 그 관계는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이미 구원관계 속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 문제 때문에 문제 삼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왜? 그게 바로 뭐냐 하면, 아브라함의 언약이 우리 행실보다 더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 언약이 우리 행실보다 더 강하게 어필되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 우리가 놓여있는 것이 십자가 은혜 아래 새 언약 아래 놓여있습니다. 십자가 은혜 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어떤 일을 해도 뭐보다 더 우세합니까? 십자가 피가 우리 행동보다 더 우세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을 어쩔 수 없는 일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마저 용서가 되는 그런 구원의 영역 속에 우리가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인종을 했지요.




이것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런데 모압과 두 딸이, 여기 38절 봅시다.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이거는 암몬 족속의 조상이죠. 사람들이 여기서 뭘 집어넣느냐 하면, 모압도 구원받았습니까, 암몬 족속도 구원받았습니까? 라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을 애 낳았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제가 잘하는 짓이라 했습니까? 잘하는 짓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짓이지요.




어쩔 수 없는 짓의 그 주인은 누굽니까? 여기 새끼 낳았는데 새끼는 누구 자식입니까? 딸  자식이 아니고 아브라함 언약의 자식이죠. 아브라함 언약 때문에 어쩔 수 없게 되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두 딸이 아들 둘 낳았으니까. 그 두 아들은 누구 소관이에요? 아브라함 언약 소관이죠. 




그러면 암몬과 모압은 아브라함 언약 가운데서 저주 받을 족속을 뭐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두 딸을 어쩔 수 없는 일로 한 거예요. 그래서 정당한 게 아니라니까요. 어쩔 수 없는 것이 정당한 게 아니에요. 자, 예수 믿고 난 뒤에 사기를 쳤다. 왜 그렇게 했는가? 어쩔 수 없었다. 라고 해서 정당화 되지 않습니다.




아, 그러니까 니가 사기 치는 일은 새 언약 안에서 그건 나쁜 짓이 되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 가운데서 결국은 예수님의 자비하심은 이건 의로운 것이고, 우리의 행동은 죄가 드러나는 이것을 새 언약의 바탕을 보여주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모압과 암몬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요. 아브라함 언약 때문에 생긴 자식이기 때문에 아마 구원받을 걸. 이게 아니라 아브라함 언약 때문에 생긴 두 족속은 아브라함 언약 가운데서 저주 받을 게 뭐냐를 보여주기 위해서 저주받는 쪽으로 부여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야 될 두 족속이 되는 겁니다. 그걸 누가 이야기했느냐? 두 딸을 통해서 이야기했다 말했다 이 말이죠.




두 딸을 통해서 낳았다 해서 두 딸이 나쁜 년이다. 나쁜 년, 이 못된 년 어떻게 아버지하고 관계하느냐? 이렇게 욕하지 마세요. 그거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행동이 똑바른 게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과속은 정당한 것이고, 지옥 갈 사람들의 과속한 것은 나쁜 짓이고 그게 안 되거든요. 둘 다 과속을 하던 안 하던 둘 다 구원문제하고는 상관없고, 그냥 지 성깔대로 튀어나오는 어쩔 수 없는 과속 습관입니다. 그거 고쳐야 되겠지요. 과속은. 속도 줄이고 해야 되겠지요. 그거 하고 이미 구원문제는 자기 행동과 상관없이 주의 새 언약에 인도하심으로 그렇게 결정되는 겁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의인과 악인을 철저하게 가려내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일관성을 오늘 보여줬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 언약이 우리 이 땅에 와서 여러 가지 일들을 발생시킨 것을 오늘 공부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의인이 악인과 함께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행동이 잘했다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약속을 의지하도록 믿도록 주께서 언약적으로 역사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 인생 살면서 자기 하는 행동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십자가 복음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그 사랑의 깊이를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게시물8,745건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읽음
606   박윤진, 김대식 성도의 글의 특징 이근호 07-11-08 3273
605   잡히는 교회가 이상하다 관리자 07-11-07 2778
604   서울, 경기 모임 안내 김명현 07-11-07 4012
603   20070309-(2) 서울강의녹취 : 갈라디아서 제 16강녹취 오용익 07-11-07 3654
602   안산 성경 공부 모임 안내 정경애 07-11-07 3786
601   칠곡 강의 녹취록을 공개수배합니다. 정낙원 07-11-07 4222
      칠곡 강의 녹취록을 공개수배합니다. (1) 구득영 07-11-07 4272
600   05 교회사 10강 - B 구득영 07-11-06 3559
599   05 교회사 10강 - A 구득영 07-11-06 3475
598   강성규 강성규 07-11-06 3932
597   부산 성경공부 모임 안내 서경수 07-11-05 4865
596   05 교회사 9강 - B 구득영 07-11-04 3867
595   05 교회사 9강 - A 구득영 07-11-04 3693
594   교회 탈출 김대식 07-11-03 2793
593   죽을 짓만 골라 하신 예수님 김대식 07-11-03 2848
592   05 교회사 8강 - B 구득영 07-11-03 3971
591   05 교회사 8강 - A 구득영 07-11-03 3476
590   오직 믿음(Martin Luther) 조 규 현 07-11-02 3077
589   05 교회사 7강 - B 구득영 07-11-01 3581
588   05 교회사 7강 - A 구득영 07-11-01 3815
맨처음 이전 411 [412] [413] [414] [415] [416] [417] [418] [419] [420] 다음 맨끝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