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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6 16:16:05 조회 : 4455         
"예수사회가 이상하다" 이름 : 강구만(IP:210.124.12.8)
이번호에 게재된 글들에 대해 이근호 목사님의 의견을 부탁합니다
 이근호(IP:117.♡.144.217) 07-09-26 18:10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받는다”라고 사도 바울이 말했을 때, 이것은 사도가 ‘다른 복음’과 바른 복음‘ 양쪽 다를 명확하게 아는 것이 참된 성도라는 말이 됩니다.

만약 어떤 자가 ‘나는 바른 복음을 전한다’라고 나오면 필히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는 다른 복음의 내용이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뭔가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자가 답변하기를, “나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만 복음을 증거하지 남들이 주장하는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사항이 아니며, 그것에 관심도 없으며, 나는 잘 모르겠으며, 그런 복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지요. 어쨌든 나는 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 맞습니다”라고 나온다면 대단히 수상한 사람입니다.

바른 복음이란 반드시 ‘바른 복음이 아닌 것’과 대비시켜서 등장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에 담긴 취지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른 복음과 ‘다른 복음’의 기준으로 무엇으로 갈라집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있는 지혜와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지혜로 갈라집니다.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지혜는 오직 하나 ‘십자가입니다. (고전 1장) 왜냐하면 십자가 지혜만큼은 하나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기에 사람의 지혜로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고전 2장)

문제는 왜 인간의 지혜로는 십자가를 알 수 없더란 말입니까? 갈라디아서 1장에서는 인간은 죄를 지었고 그 죄의 권세에 지배를 받기에 인간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지혜도 이 죄성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지혜’로서 아무리 십자가를 알고자 해도 십자가를 알 수가 없고, 바로 이 십자가를 알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하여 이 인간 세상 한 복판에 십자가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만약 인간들이 죄에서 빠져 나온 지혜가 있었다면 그들은 메시야를 그런 식으로 대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구원의 능력 한 복판을 장식케 하시는 이유는,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구원 얻을 지혜를 확보할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은 인간이 전적 죄인임을 지적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아는 성도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모두 죄덩어리이며 죄의 종류임을 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다른 복음이란 ‘인간은 전적으로 죄인이 아니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에게는 죄 아닌 지혜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으로 인하여 자력으로 십자가 지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복음’이란 ‘자력으로 십자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음’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도개인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이지요. 그들의 아비는 마귀니까!(요 8:44)

그렇다면 예수를 언급하고 복음을 언급하고 십자가를 언급해도 ‘다른 복음’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들이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해도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하시면서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은 악마의 일꾼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고린도교회는 악마의 일꾼을 진짜 주의 종인양 가주하고 대 환영을 했으며 도리어 사도 바울은 이단 취급하며 비난을 퍼붓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십자가 복음을 말하는데도 이단되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자력으로 ‘십자가를 안다’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구원의 능력이 되는 십자가 지혜는 인간에게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 인간도 자력으로 그 십자가를 이해못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면 이해되는 그 십자가 지혜만이 참으로 구원의 능력임을 인정하는 자가 이단이 아닌 참된 성도입니다.

여기서 왜?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도대체 인간의 지혜에 뭐가 문제가 되기에 인간의 깊은 지혜로도 십자가를 알 수 없다는 말일까요? 그 정답은 바로 죄의 권세에 숨이 막힐 듯이 지배를 받기에 스스로 그 죄를 탈출하고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는 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수님의 영이 임하니까 그들은 장차 올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벧후 1:10-11)

그렇다면 ‘참된 복음’과 ‘거짓 복음’의 구분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구분됩니다.

인간들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죄라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느냐를 따지면 됩니다.
즉 과연 참된 복음을 전하는 자인지 아니면 저주받은 ‘다른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을 저주의 세계(지옥)로 인도하는 악마의 종인지의 구분은 그 사람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보라고 외치느냐를 들어보면 안됩니다.

더 쉽게 말해서, 그 사람이 증거하고자 하는 바가, 십자가 앞에서 죄라고 규정된 것들을 획득하고 그것을 구원의 증거라고 선전한다면 그 사람은 십자가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앞에서 죄라고 규정받은 것을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선전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에 십자가 앞에서 죄라고 규정된 것을 죄라고 말하고 그런 것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그 피의 능력으로만 구원받았다고 외치는 자는 십자가 복음만을 증거하기에 참된 복음 증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 자체가 인간에게서 나온 것 중에서 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즉 아담 속성에서 내뿜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이 죄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죄를 아는 틀은 잡혔습니다. 인간들이 도대체 하나님을 생각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대하려는 것인가 그 의도와 그 기대와 그 소망을 추적하면 됩니다. 즉 신을 섬길 때에 얻을 수 있다고 기대되는 그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그것은 창세기 2장부터 살펴보면 벌써 나오게 됩니다.

신이 되고자 하는 것부터, 천국, 영생, 전도, 선교, 예배, 찬양, 제사, 율법, 사랑, 소망, 믿음, 구제, 헌신, 희생, 고난, ‘메시야 기다리기’ 등 그 어느 것 하나 죄 아닌 것이 아니도 없습니다. 이런 기대마저 죄의 지배에서 발현되는 열매입니다.

이런 것을 얻고자 하고, 규정하고자 여기에서 종교가 나오고, 거기에서 신학도 나오고, 거기에서 윤리도 나오고, 거기에서 삶도 나오고, 거기에서 행함도 나옵니다. 하지만 십자가 지실 주님의 눈 앞에서 모두 ‘죄 아래 있는 자들이 죄된 본성으로 자동적으로 나오는 소망이요 기대성’ 뿐입니다.

이것들은 결코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라는 이사야의 탄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담의 동네들에서 벌어지는 종교시장의 상품들입니다. 인간 우월함과 인간 자랑이 넘쳐나지요.    

반면에 성도의 소망은 십자가 안에서 무한대로 주어지는 예수님의 용서하심 그 능력에 감사해서 자꾸만 그 용서와 은혜가 어디서 넘쳐나오는 지 본성에 눈이 가고 귀가 가고 마음이 가서 그것만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이런 현상이 안 일어납니다.  

마음이 십자가 은혜에만 박힌 채 거기서 나올 줄을 모르고(갈 6:14) 거저 주어지는 긍휼하심을 받으면서 즐거움과 감사에 충만해서 오로지 그 원천인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만 온 우주를 향해 증거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른 복음을 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이번 52호 각 글들을 보시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바른 복음’이란 반드시 ‘다른 복음’과 대비되어서 증거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각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른 복음’과 그리도 ‘다른 복음’을 상호 대비해 보시면서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즉 그들이 주장하는 ‘바른 복음’이 과연 십자가만을 두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에다 뭘 더 보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지,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다른 복음’이 과연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가리고 모독하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 ‘다른 복음’에 대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성토하고 비난 하는 그 ‘다른 복음’이라는 것이 십자가 공로만을 높여세우지 않는데서 오는 성토인지 아니면 반대로 인간의 공로와 열심을 높여세우지 못해서 성토하고 비난하는지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급할 수는 바는, 궁극적 관심사가 사랑의 원천인 ‘십자가 공로’에 두지 않는 자는 정신머리가 엉뚱한데 가 있는 ‘다른 복음 전문 제조자’라는 겁니다.
 이근호(IP:117.♡.144.217) 07-09-27 21:12 
먼저 글에 글자 틀린게 있습니다. 가주는 '간주'로 맞고, 들어오면 안됩니다는 '들어보면 됩니다'가 맞습니다. 

어쨌든 종교적이고 성스러운 기분만 잔뜩 내봤자 그저 기분에 불과하지요. 결국 십자가 피 뿐입니다. 이 피 로 되돌아오지 않는 자는 이미 이단의 길로 가버린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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