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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6 21:59:03 조회 : 3890         
05 교회사 1강 A 이름 : 구득영(IP:203.223.97.223)

교회사 1강 - A
                                                                        05,10,15  강의 이근호



◈ 쟈크엘룰 - 뒤틀려진 기독교 !!


여러분들이 대장간에서 출판이 된 쟈크엘룰의 '뒤틀려진 기독교'를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기존의 교회사와는 전혀 다른 상당히 독특한 책인데, 이렇게 교회사를 다른 책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주로 참고로 하겠는데, 물론 다른 책들도 가미를 해서 강의를 할 것이다.


◈ 교회사에 앞서 과연 '교회' 라는 것이 있는가?


'교회사(敎會史)' 라는 말은 '교회역사(歷史)' 라는 말이다. 그러니 교회가 없으면 교회역사가 없다는 말이 되는데, 이 말은 역사란 교회가 계속해서 있다는 말에 '역사' 라는 말이 뒤에 따라온다는 것이다. 만약에 중도에 교회라는 것이 없어져 버린다면 교회사라는 것도 무의미하고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인물이 있었는데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면 역시나 그 사람의 역사도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사' 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교회가 있다고 하는 전제하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그런데 문제는 과연 교회가 있다는 것이 주님이 보시기에도 확실히 보장이 되는가? 과연 그러한가? 물론 사람들이 세상에서 교회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교회가 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얘들아, 저것이 바로 교회이다" 라고 확정하는 것은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사를 정의하기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교회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력이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교회사를 공부하는 것은, "흔히들 사람들이 교회라는 것이 과연 교회인가?" 라는 것을 추궁하는데 복음적인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무조건 있고, 그 교회의 내력은 이러이러하다" 라는 것은, 즉 자기 우호적이고 옹호적인 교회사는 너무 인간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화사(대구 팔공산에 있는 조계종에 속한 절)의 역사' 라고 이야기했을 때, 물론 동화사의 역사라고 해도 괜찮지만, 그러나 그것이 복음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동화사의 역사' 라고 했을 때, 물론 불교계나 일반학문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복음적인 안목에서 이 '동화사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그냥 그 동화사의 내력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동화사의 역사가 그 얼마나 비복음적이고 죄악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증명해주는 차원에서,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만 복음적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아하, 그래서 이 동화사가 비복음적이고 죄악이 되는구나" 라고 알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동화사의 역사가 비복음적인 것을 도출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역사' 라고 해도, 그것이 비복음적이고 죄악의 역사라고 같이 취급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동화사의 역사는 되고 교회의 역사는 안 되는가?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은 이 세상에서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 책은 보아도 되고 어떤 책은 보지 말라고 한다면, 과연 누가 그렇게 간섭할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그럴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사를 공부하는 것도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 두면 되는데,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교회사가 얼마나 비복음적이고, 교회사를 추앙하고 여기에 집착하는 자들이 복음적으로 볼 때 얼마나 죄악된 행태를 보여주었는가를 까밝혀 보여주는 것이 복음적 교회사 관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사를 공부하는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로는 교회사 공부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 즉 자기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런 교회에 소속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교회사를 공부해보니, "아하, 이런 한계가 있구나. 이것 때문에 내 교회사는 우수하고 남의 교회사는 열등하다" 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교회사 공부목적 !!  


① 나의 교회사와 남의 종교사가 다를 수 없다 !! 
② 스스로 나 자신의 주제파악 !!


다시 정리하자면, 복음적인 관점에서 교회사를 볼 때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하나는 기존 다른 종교의 역사와 다를 수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기 스스로 교회에 소속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에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자기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 세상이 과거시절 교회에 어떤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을 때 교회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이 세상과 얼마나 타협했는가를 공부함으로서, 지금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교회를 사수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세속적인 세력과 타협할 여지와 가능성이 있는가를 검토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자기 일기장을 스스로 펼쳐보면서 낱낱이 자기비판을 하는, 그런 방식의 교회사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자기의 입장을 자아 비판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긍정적인 점을 찾을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 예수님은 교회 역사를 생각해 본적이 없다 !!
 
그렇다면 이 '교회사' 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서 생기는고 하니까, 역사를 생각할 때는 반드시 교회 바깥에서 교회를 유혹하는 세력을 의식하면서부터 교회역사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어떤 신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예수님은 교회 역사를 생각해 본적이 없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사도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어떤 암시를 주는 말을 했는고 하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이 지상에 곧장 다시 오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라난타'가 아닌가?


(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세례요한도 자기 뒤에 메시야가 곧 오신다고 했는데, 그러니 세례요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메시아가 올 때까지의 역사가, 즉 그 시간이 불필요할 정도로 급박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급하게 오시기 때문에 달력을 들추어보면서 언제 오시는지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례요한은 상당히 다급하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라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다급하게 곧장 오신다고 느끼질 때는, 역사를 구태여 염두에 둘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시장에서 딸에게 휴대전화를 걸어서, "내가 지금 곧장 가니 집에 가만히 있어라" 라고 했을 때, 이렇게 곧장 온다고 했을 때는 역사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 교회가 따로 역사를 따지고 계산한 이유는?


그런데 교회가 따로 역사를 따지고 계산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떠났는고 하니, "곧 오신다" 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곧 오실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우리시대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즉 많이 지연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자기 일방적으로 해석을 해서, "그렇다면 교회를 붙들자" 라고, 그렇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외부에서 교회를 공격할 때 교회를 사수해야 하고, 그리고 이렇게 사수한 교회가 진짜 교회라는 것이라는 것을 후배나 후손들에게 증거로 남겨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야 후손들이 "아하, 우리 선배들이 이렇게 힘들게 지킨 것을 보니,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에게 전수를 받은 진짜배기 교회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교회역사는 일종의 유언 !!
 
만약 외부로부터 그런 위협이 없다면 그런 자체적인 교회는 항상 교회이니까, 늘 하나밖에 없는 교회니 역사를 남길 이유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위협이 있을 때는 후손들에게 전통이라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유언과도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죽고 자식이 죽을 때는,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할 때는 유언이 필요 없지만, 그러나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살아 남을 때, 그때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유언을 남기고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들이 역사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그 관심사가 하늘나라보다는 지상에 관심을 더 많이 둔다는 것이고, 그럴 때 사람들은 역사를 계산에 넣고 기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자기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후세가 알아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세력들이 교회를 위협했는가? 이제부터 그것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사실 원래 기독교는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성경은 복음이지 기독교, 즉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 기독교 - 보이는 자들이 장악 !!
◈ 복음 - 보이지 않는 분이 장악 !!


기독교의 특징은 어떤 대상으로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즉 어떤 조직체가 눈에 보이는 대상으로서 자리를 잡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즉 "저것이 기독교야" 라고 지목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주체가 교회가 되니, 교회가 외치면 자연스럽게 기독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해서 복음의 경우에는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 하면, 눈에 보이는 조직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신 분이 장악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회가 있다고 하면, 교회라는 것은 보이는 무리 집합체이고, 보이는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교회가 아니고 모이면 교회가 되는 것인데, 그런데 복음은 보이지 않는 분이 장악을 하고 있기에, 그분을 보이는 인간이 장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성경은 복음이기에, 그래서 사도바울은 교회나 기독교를 만드는데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감독과 집사의 직분도 보이지 않는 분이 성령의 역사로 그때그때 마다 은사로서 내려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알아서 임명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은사라고 하는 것은 받는 사람이 내려달라고 해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내려주는 것은 복음을 장악하고 있는 주님께서 필요 때마다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만일 이것을 소유하고 만들어내려고 하면 눈에 보이는 은사를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은 그런 생산공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교회를 공격하는 것 - 정치집단 !!  
◈ 복음을 공격하는 것 - 악령 !!


사도바울은 복음을 외쳤지 기독교를 외치지 않았는데, 다시 말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복음으로 구원받지 교회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복음의 관점에서 볼 때 외부의 적은 무엇인고 하니, 바로 비복음이고 이러한 비복음적인 악령이 복음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교회란 사람들의 모임이고 그래서 정치적 구조가 되어 집합체가 되어버리는데, 그래서 기존의 정치집단이 기독교를 공격하고 교회를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악령이 아니라 말이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어느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몸을 공격해서 무너뜨릴 수가 없다고 하는데,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로마이던, 공산당이던, 현 정부이던 간에, 우리가 그런 것으로부터는 공격받을 입장에 놓여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지 정치집단이 아니니 말이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무슨 말인고 하니, 보이지 않는 분은 이미 이 세상을 장악한 분이시고 이 세상을 이긴 분이시기에, 그 어떤 환난이 와도 그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분이 이기셨기에, 그 어떤 환난이라도 그분이 이긴 것을 취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되어버리면,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는 것이, "이기자, 이기자" 라는 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미 이긴 것이 아니라, "잘하면 이길 수 있다. 우리가 담대하면 이길 수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조직체이기 때문에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분에 의해서 장악된 복음이라면 이미 승패는 끝나버린 것인데, 그런데 기독교가 되어버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교회가 무너져 버리면 마치 모든 것이 실패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복음이 무너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결코 무너질 수 없는 복음인데 말이다.)


◈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는 건재하다 !!


바로 이런 경우에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어떤 것인고 하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인데, 지금 그 교회들이 다 어디에 가있는가? 분명히 그 교회들은 이미 다 무너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일곱교회가 다 무너지고 없어져도 여전히 주님 손에 완벽한 일곱교회가 존속해있다는 것이다. 환난이나 기근이나 핍박이나 천사나 악마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사가 무너지지 않는 복음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복음으로 시작하게 되면, 물론 그렇게 되면 교회사가 아니라 복음사가 되는데, 이 복음은 묵시적 역사이기에, 그렇게 되면 역사를 부정하기에 사실 그렇게 시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역사가 단절되었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부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내가 작년보다 올해가 믿음이 좋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음은 그분이 주신 선물이기에, 주님 것이지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작년에는 저렇게 사용하셨고, 올해는 이렇게 사용하신다" 라는 것은 말이 되지만, "작년에는 내 믿음이 시원찮았는데, 올해는 좋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자기와 주님과의 관계이기에 말이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것이 복음사가 아니라 교회사이기 때문에 복음에 대해서는 가끔씩 이야기할 것인데, 그야말로 이 복음에는 역사가 필요치 않고, 그래서 복음이 무너졌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깜짝 깜짝 놀라는 것은 교회사를 움켜쥐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 주님은 결코 무너진 적이 없다 !!


결코 주님은 무너진 적이 없는데, 그런데 그들은 자기가 세운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두고 마치 주님이 무너지는 것처럼 착각하고 벌벌 떨고있다는 것이다. 이 자체가 바로 교회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큰 오류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이런 것들이 단순히 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한계이고, 그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기존 정치 집단이 교회를 공격할 때 교회를 무엇으로 보는고 하면, 정치 집단으로 본다는 것이다. 왜 거시적 정치 집단이 있는데 미시적 정치 집단이 깔짝깔짝 그리느냐는 것이다. 왜 큰 정치적 집단이 시키는 대로 소수의 집단이 말을 듣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서 협박과 공갈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교회사를 통해서, 거대한 로마정치 집단이 어떤 핑계를 갖고 소수의 정치집단인 기독교를 공격했는지, 그것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교재 2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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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속사도시대 (100-313년) - 박해의 시대(박해의 원인)
①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증오하여 로마 통치자에게 고소함: 이로서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자들로 분류됨
②로마 황제 신격화에 대한 교회의 반발이 곧 국가 자체에 대한 반발로 이해됨
③불법적으로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인식됨
④제국 내에 다른 종교를 비난하고 교회 자체내의 법률 제정으로 국가법과 충돌을 일으킴
⑤자연 재앙은 기독교인 탓으로 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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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박해의 원인으로 먼저 1번을 살펴보자.


①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증오하여 로마 통치자에게 고소함: 이로서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자들로 분류됨


그 당시에는 기존 정치집단으로부터 먼저 인정을 받던 종교인 유대교가 있었는데, 기독교와 유사종교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기독교를 고소하게 되었는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이기에 그들이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고소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정부에 이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그들이 전도하지 못하게 다 잡아가도록 말이다. 물론 요구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정부의 답변은 대한 민국은 국교가 인정되지 않는 국가이기에 그런 요구는 들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합동측이 국교라면 여호와의 증인이 설자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이슬람교 국가는 대부분 국교로 되어있기에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이상 그런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합동측이 여호와의 증인을 고발하는가? 여호와의 증인이 합동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합동측이 이 대한민국에 먼저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정도 사회성을 인정받는 종교이고, 먼저 들어와서 선점한 종교이기에, 그 뒤에 후발주자로서 여호와의 증인이 들어와서 같이 맞먹으려고 하는 것은 그냥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텃세인가?)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주도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여호와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자기들과 유사해 보이는 여호와 증인이 설쳐대면, 정통인 자기들 대한예수교 합동이 같이 휩쓸려서 동일한 자들로 오해를 받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진리성을 선명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기에 저들을 차버릴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유대교가 기독교를 핍박했다는 것이다. 이미 유대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이미 로마 정부로부터 공식종교로 인정을 받았는데, 그런데 자기들과 비슷한 기독교가 들어와서 설쳐대니 이들을 처단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로마정부도 만일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유대인들이 데모를 잘하니까, 귀찮고 시끄러워서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로마는 각 지역마다 총독이 있어서 다스렸는데, 그들은 통치차원에서 각 지역의 그들의 종교를 방치 내지 인정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보다 더 시끄러운 신흥종교가 설쳐대니 로마에도 이로울 것이 없고 말이다. 물론 유대교에서도 "이렇게 신흥종교가 설치면 로마국가의 존립자체도 손해를 보니, 그들을 제거하는 것은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라고 아부를 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 유대교도 큰 정치집단 밑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즉 '유대교' 라는 자체조직을 큰 권력에 의지하면서 유지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대교와 로마국가 사이에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제 박해의 원인으로 2번을 살펴보자.


②로마 황제 신격화에 대한 교회의 반발이 곧 국가 자체에 대한 반발로 이해됨


로마가 황제를 신처럼 여기는 이유는, (황제가 신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로마가 워낙 큰 나라이니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로 권력을 집중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정리정돈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절대적이고 오류가 없는 최고자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국가든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황제를 숭배하는 것은, 여호와를 섬기지 않고 인간을 섬기는 것이니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이 교리가 되니까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감히 덩치가 큰 정치집단인 국가에게 덩치가 작은 집단인 교회가 까분다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초대교회서도 베드로전서에 의하면 왕들을 위해서 기도했고, 로마서 13장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력자에게 복종하라고 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께서 선한 사람에겐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세웠다는 것이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물론 이렇게 왕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상당히 우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인데, 누구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그에게 복종을 한다기보다는 사랑하는 태도로서, 오히려 사랑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도 얼마든지 한다는 것이다. 바로 교회의 이런 미온적 태도가 로마의 반발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박해의 원인으로 3번을 살펴보자.


③불법적으로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인식됨


이것은 성찬식에 관한 것인데,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이 무식한 민중들에게 오해가 되어서 사람의 인육을 먹고 피를 마신다고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실제로 사람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온 나라에 유포되면 사회질서가 혼란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핍박을 했다는 것이다.


이제 박해의 원인으로서 4번을 살펴보자.


④제국 내에 다른 종교를 비난하고 교회 자체내의 법률 제정으로 국가법과 충돌을 일으킴


국가에 엄연히 국가법이 있는데 그런데 교회 내에 교회법을 만들어놓으니, 국가법과 교회법이 서로 충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법을 따름으로 이것이 빌미가 되어서 핍박을 했다는 것이다.


박해의 원인으로 마지막 5번을 살펴보자.


⑤자연 재앙은 기독교인 탓으로 돌림


그 당시 로마제국에서의 자연현상을 어떻게 이해했는고 하니, 황제의 선정으로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에 재앙이 들 때는 황제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과거 왕조시대에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한 분위기가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국가에 흉년이라든지 하는 재앙이 들자,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했는고 하니, 황제의 기운에 대해서 헐뜯는 나쁜 놈들이 있어서 황제의 기운이 다 미치지 못해서 그렇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로마는 유일신이 아니라 다신교 국가였는데, 그런데 유일한 여호와 신을 믿는다는 것은, 여기에서 '유일하다' 라는 말은 독보적이라는 말이고, 그것은 바로 다른 종교를 깔보는 행위라는 것이다. 즉 기존의 신이 있는데 새로운 놈들이 와서 다른 것들은 허구라고 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신을 믿는 자들을 무신론자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런 것들이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박해가 초대교회에 있었다고 할 때,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가 이러한 5가지를 주장해도 왜 박해가 없는가? 지금도 성만찬을 하고 여호와를 유일신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것들을 지금 주장해도 왜 경찰이 잡지 않는가? 그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물론 1945년 이후에 북한에서, 공산당 아래에서 교회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박해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북한의 교회가 박해를 받았는가? 북한의 교회가 다 알아서 했다는 것이다. 일제 통치 때에도 교회가 신사참배를 하는 등 먼저 다 알아서 기었고 말이다.


한국 교회사에 보면 박형용의 조직신학 이전에 '유형기' 라는 유명한 조직신학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도 신사참배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물론 극소수의 신사참배를 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주기철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굉장히 고집이 센 사람이었는데, 자기 혼자서 반대한다고 교인들이 다 반대했겠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것이 지금 이렇게 해방이 되어서 문제가 된 것이지, 그 당시 분위기로는 독립이라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드라마의 끝을 보고 나니 이렇게 용감해지는데, 그런데 만약 그 드라마가 끝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거기에 무슨 용감해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그야말로 개죽음이지 말이다. 안중근을 권총을 발사해도, 이봉창이 도시락을 던져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일본이 끄떡도 없다면, 주기철 목사가 자기 하나 나서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주 목사는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자기는 개인적 신앙양심으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니,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거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순교는 누가 만드는고 하니, 교회 내부에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외부에 권력체가 존재함으로서, 거기에 대해서 교회가 신앙의 양심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서 순교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시대나, 그리고 21세기에서도 이슬람 등을 보면 왜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기존의 종교를 그렇게 미워하고 박살내려고 하는가?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 전체 이유가 교재 1페이지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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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욕망의 흐름인 인류사  - 인류 사회는 욕망을 생산하는 장이다. 개인의 심리적 억압과 사회적 억압은 연관되어 있다. 사회적 생산을 분석할 때, 욕망하는 기계는 사회적 기계로, 기관 없는 신체는 사회체 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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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권력형태 - 교회가 답습하고 반복 !!


우리는 국가라는 것이 어디에서 생겼으며, 왜 생겼으며, 그리고 왜 사람들은 국가의 최고의 권력단체로 의존하려는지, 내막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앞으로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이 국가의 권력 형태를 교회가 그대로 답습하고 반복하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인간들의 모임이기에 말이다.


여기 교재에서 "인류 사회는 욕망을 생산하는 장이다" 라고 했는데, 언뜻 보면 도대체 이런 것이 교회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국가란 다수의 욕망이 집결되어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국가의 본질이 무엇인가?" 라고 할 때,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어떤 조직체를 어떤 동기와 어떤 이유로 그런 조직체를 형성하는가?" 라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이 교회를 조직하려고 하고, 또한 그런 교회를 지키려고 하는가? 즉 어떤 심보를 가지고 교회를 사수하려고 하고 교회사를 만들고 하는가? 그것과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심보가, 마음가짐이 여기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인데 좀 쉽게 이야기해보면, 여기 교재에 '기계' 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보통 기계란 용어서 공장에서 쇠로 만들어 낸 것을 말하는데, 그러나 여기에서 기계란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소비가 아니라 생산을 말이다.


◈ 들뢰즈, 가따리 - 국가는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이다 !!


'들뢰즈'와 '가따리' 라는 철학자는 나름대로 이 국가를 분석하면서, 국가를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로 보았다는 것이다. 모든 개인이 다 일일이 욕망을 생산해서 나름대로 배치하고 비슷한 것끼리는 접속을 시키고 한다는 말이다.


◈ 침대의 욕망 - 아, 눕고 싶다 !!


예를 들어, 여기에 침대가 있다고 하자. 보통 사람이 침대가 있어서 누우면 자기가 자기 의지로 잔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모든 것이 다 자기 의지로 한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래서 의자를 만나서 앉으면 잠이 안 오는데, 침대를 만나서 누우면 잠이 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침대와 인간이 만날 때, 의자가 아니라 이렇게 침대를 만나는 순간, 인간은 자기가 자기 의지대로 자기가 그 침대에 눕는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그렇게 보지 않고, 인간은 자기 자신도 자기 욕망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침대를 만나는 순간 자기 속에 있는 침대에 눕고싶다는 욕망이 그만 자기를 이용해서 자기를 침대에 눕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자를 만날 때는, 잠잔다고 하는 새로운 욕망의 배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자는 것이 일종의 배치(설치)인데, 이렇게 잠을 잔다는 것은, 즉 침대를 만나면 그런 일이 생기니 그것은 사람의 욕망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침대의 욕망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침대의 욕망' 이라 하면 사실 상당히 듣기 거북한데, 왜냐하면 침대라고 하는 것은 이성도 없고 의지도 없는데 어떻게 욕망이 있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그 만나는 순간에 어떤 욕망이, 물론 잠재된 욕망이지만 새롭게 발생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철학자들의 주장이나 의견이 사람들로부터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유가, 보통 욕망이라는 것을 죄와 연관시켜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게 되고 말이다. 그래서 욕망이란 나쁜 것이고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 세상사 모든 것이 다 욕망에서 !!


하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이 모두가 다 욕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상 욕망이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욕망에 관해서는, 개인이 알아서 욕망을 절제할 입장이 못되고 새로운 사태와 만날 때는 욕망이 알아서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 코드화 - 타인의 욕망에 의해서 개인의 욕망이 종속 !!


예를 들어서, 아주  버릇이 없는 한 아이가 있는데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잠시 해병대 출신 조교를 만났다면, 그와 만나는 동시에 자기 욕망이 자제된다는 것이다. 즉 타인의 욕망에 의해서 자기 개인의 욕망이 수그러들었다는 말이다. 그 아이는 해병대 조교에 의해서 잠시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서 잠시 '코드화' 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코드화' 라는 말은 (일시적으로) 틀이 잡힌다는 것이다.


욕망이란 이렇게 생성하는 능력의 흐름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흘러간다는 것이다. 여기 있다가도 누구를 만나면 욕망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 까부는 아이의 행동도 해병대 조교를 만남으로 해서 자신의 욕망을 반납함으로 종속이 된다는 것이다.


교재에 있는 '기관 없는 신체' 라는 말은 무엇인고 하니, 사람이 종속되어 버리면, 즉 말썽꾸러기 어린아이가 해병대 조교를 만나면 그 해병대 조교의 기관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조교를 만나기 이전에는 기관 없는 신체였는데, 그리고 해병대 조교도 역시 그 아이를 만나기 전에는 기관 없는 신체이었고 말이다.


이 해병대 조교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조교가 아니라 백수에 불과한데, 그런데 "제가 돈을 드릴 테니 우리 아들을 교육 좀 시켜주세요" 라고 부모가 부탁을 하게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아이를 훈련시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자기 욕망을 생산하는 종속된 아이(부하)가 달려있는 기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와 헤어지면 그 기관은 해체되고, 즉 자유로운 욕망의 흐름만 있는 신체가 되고 만다는 말이다.


인간은 이렇게 계속해서 어디론가 가서 자기 욕망을 등록하고 해체하고, 또 등록하고 해체하고, 그렇게 반복하고 그것이 바로 이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 대해 가따리와 들뢰즈는 3가지 사회로 구분하는데, (1)토지사회(기계), (2)전제군주(기계), (3)자본주의(기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 교회사를 붙잡는 그 자체가 복음의 원수 !!


그렇다면 우리가 왜 교회사를 강의하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가? 로마는 전제군주에 속하는 나라인데, 이 로마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교회사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가 로마와 만남으로서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로마란 무엇인가?" 라고 할 때, 이 로마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나중에 이 로마가 교회형태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세가 되면 교회형태가 로마에 들어가게 되고 말이다. 이렇게 되면 로마가 행하던 행태를 교회가 그대로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저기 로마 바티칸을 보라는 것이다. 과거 로마와 똑같이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개신교의 교회당 건물양식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교회는 대부분이 다 고딕형태인데, 그 고딕이 바로 로마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누가 언제 태어나고, 누가 언제 죽고,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누가 언제 어떻게 순교했는가?" 라는, 그런 것만을 공부하자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버리면, 교회가 우리편이 되고 교회를 핍박했던 자들은 우리의 적들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누가 적인지 아닌지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사를 제대로 공부해야, 교회사를 붙잡는 그 자체가 진짜 복음을 가로막는 복음의 원수임을 같이 알아 가는 것이고, 그런 교회사 강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어렵게 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조금 되는데... - 10분 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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