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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6 22:01:43 조회 : 3808         
05 교회사 1강 B 이름 : 구득영(IP:203.223.97.223)

교회사 1강 - B
                                                                          05,10,15  강의 이근호



쟈크엘룰의 '뒤틀려진 기독교'는 누구나 다 기본적으로 읽어보아야 하는데, 이 양반은 사회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교회사를 언약중심으로 보더라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너무나 잘된 교회사 책은 처음 접했는데, 앞으로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언약중심으로 이 세상을 보느냐는 것이다. 물론 신학자가 아니기에 언약에 관해서는 좀 부실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언약적인 관점으로 교회를 보니까, 기존 교회에 대해서 전혀 두려움이 없이 글을 쓸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언약은 역사가 아닌 묵시로 보니 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가 아니었다" 라는 주장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는 없다' 라는 그런 종류의 책과는 비교할 바가 못되는데, 그런 책은 사이비이고 엉터리라는 말이다.


이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전제군주'에 대해서, 그것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인간은 토지에 속해서 살아가는 동물(?)인데, 창세기 3장에도 보면 '근본된 토지' 라고 나오고 말이다.


(창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 인간은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 !!


인간은 토지에 살면서 인간은 기계라는 것이다. 무엇을 생산하는 기계인고 하니까,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라는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욕망을 생산하는데, 기계이기 때문에 욕망을 절취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강에 갔는데 자기 앞에 물고기가 간다면 그 고기를 낚아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고기라는 욕망을 자기가 낚아챈다면, 즉 자기 욕망으로 절취(갈취)하는 그런 짓을 할 때 자기는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가 된다는 것이다. 어렵지 않지요?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이 땅(토지) 위에서 살아가는데, 그 살아가는 모든 것이 다 자연의 흐름 속에서의 자기는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로서, 즉 그것을 절취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하나의 기계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영웅이 등장해서, 즉 남들보다 더 많은 욕망을 생산하는,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갈취하는 더 큰 기계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산물이 더 큰 기계(영웅)에게로 몰리게 되는데, 이렇게 많은 생산물이 몰리고 이런 욕망이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이 발생하는고 하니, 바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 전쟁기계 - 생산물이 한쪽으로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


이것을 '전쟁기계' 라고 하는데, 이 기계는 이런 쏠림 현상을 미리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쟁을 하는 가운데서도, 선물도 주고, 물물교환도 하고, 아부도 하고, 딸을 상대방에게 시집을 보내는 외교정책도 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전쟁기계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 전쟁기계는 들뢰즈가 사용한 특수용어인데, 이 기계는 이렇게 한쪽으로 권력이나 힘이 쏠리지 않도록 골고루 분배를 해줌으로서, 즉 많이 생산한 쪽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많이 베풀어줌으로서, 상대방이 자기에게 악한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 국가 - 깡패 같은 놈 !!


그런데 어디선가 깡패 같은 놈이 나타난다면, 그렇게 되면 이 깡패 같은 소수가 다수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이 깡패가 바로 '전제군주기계' 이고 국가의 등장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국가라는 것은, 생산력이 증가해서 자연 발생적이고 진화론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어떤 돌발적 상태에 의해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게 되는, 즉 남의 욕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일단 발생된 국가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 기계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서 자기를 더욱더 튼튼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남의 욕망까지도 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즉 잉여(초과)된 생산물도 다 자기 것으로 흡수해버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다른 사람을 자기 코드 밑에 다 종속시키고 억압해버리고,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은 그 사람에게 종속이 되어서 그 사람의 기관이, 즉 부속품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제군주체재' 라는 것이다.


드디어 이렇게 전제군주체제가 등장하게 되면, 이 전제군주체제가 전능한 힘을 발휘해서 하위계급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은 좀 어려운 내용으로, 이것을 몰(mole)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몰'은 화학적 용어로 '집단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대비되는 용어가 '분자' 라는 개념으로 '개별적'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말이다.


♣ 몰(mole) - 화학에서 사용하는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 기호는 mol, M 또는 mole로 표시한다. 1몰은 원자량의 기준에 따라 탄소의 질량수 12인 동위원소12 C의 12g 중에 포함되는 원자의 수와 같은 수의 물질 입자를 포함하는 물질의 집단을 1몰로 정의한다.


◈ 탈(脫) 코드화 - 군주에게 복종하면서도 탈출하려는 욕망 !!


이렇게 거시적으로 국가를 이루기 위해, 즉 집단화시키기 위해 하위계급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계급 말고 일반 대중들은 개별자(분자)가 되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일반 대중들은 이 전능자(전제군주)에게 복종을 하면서도 여기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는 욕망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탈(脫) 코드화' 라고 하고 말이다.


지금 여기서 이런 어려운 철학용어들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권력체가 나오면 이것에 반드시 반발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쏠림을 방지하는 전쟁기계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수긍을 하면서도 반발하는, 즉 억압이 되면 욕망에서 반발하는 요소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교회사에 관련시켜보면, 교회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그대로 두면 괜찮은데, 외부에서 전제군주인 로마가 억압을 가하니 거기에 대한 복수심으로 반발이 생기는데, 즉 교회에 나오는 자들이 기회를 엿보아 힘을 모아서 뭉치게 된다는 것이다. 욕망을 발산하는 전쟁기계의 기능으로서 말이다.


◈ 다빈치 코드 - 교회의 전제 군주화 !!


이렇게 교회가 전제군주에 대항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와 유사한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즉 교회의 국가정치화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나중에 이런 교회가 전제군주형태를 가지고 그 군주노릇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히 여기에 대한 반발이 나오는데, 이런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다빈치 코드' 라는 것이다.


요즘 떠들고 있는 소설 '다빈치 코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읽을 가치도 없는 소설책이고 말이다. 이 다빈치 코드라는 것은, 이미 과거에 거룩한 성배와 성혈을 다룬 베스트셀러가 있었는데, 여기에 기초해서 우리나라 기독교 서점에서도 이것을 다룬 책들이 약 30권 정도가 나와있다는 것이다.


과거 1945년에 이집트 사막인 '나그함 마디' 라는 곳에서 1세 문헌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빌립복음, 마리아복음, 도마복음 등, 다수의 책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통적인 기독교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영지주의, 즉 그노시스파에 의해서 활용했던 문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나온 복음서들이 왜 정통적인 기독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이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심을 했는데, 즉 그것을 정치적으로 고려해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세 때 이미 교회가 이미 전제군주가 되었으니 여기에 대한 반발의 흐름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핍박을 많이 받아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별로 인기가 없었지만 그 당시 예수님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었는가를 제대로 알려면, 바로 이러한 빌립복음, 마리아복음, 도마복음 등을 참조해야 제대로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여기 빌립복음서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나오는데 그녀가 예수님과 염문이 있다는 것이다. 즉 처음에는 애인사이로 있다가 나중에는 부부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자주 이 마리아와 키스를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 애인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 위대한 종교적인 사도쯤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제자와 그녀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즉 남녀사이에 구별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신이 보시기에 다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 전설따라 삼천리 !!


그런데 전설(?)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려서 죽으신 후 무덤에 있을 때 예수님의 시체를 돈으로 매수해서 빼돌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예수님과는 애인관계이니 임신이 되어서 예수님이 죽은 후 예루살렘에 있지를 못해서 이집트로 갔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거기에 이집트에 있는 한 유대인 지역으로 가서 예수님의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딸이었고 이름이 '사라' 이었다는 것이다. 이 딸과 함께 이집트에서 10여년을 살다가 돛이 없는 배를 타고 프랑스 남부 해안지방으로 갔는데, 거기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그 해안이름이 '샹마리드라메르' 라는 것이다. 


이렇게 돛이 없는 배를 탔다고 하는 등의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어디에 나오는고 하니, 그 근처에 있는 성당에 보면 사라가 나오는데, 당시에는 이 여자를 이집트에서 데려온 하녀로 보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성당에 보면 '사라' 라고 하는 흑인여자가 숭상이 되어있고, 그리고 여기에 올 때 야고보와 요한의 엄마, 그리고 마리아 살로메와 막달라 마리아가 같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영국으로 가서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는 것이다. (좀 황당합니까?)


그런데 여기서 이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의 딸이 왜 중요한가 하니, 예수님의 피로서 구원받는다고 했을 때, 그런데 이 예수님의 피가 혈관을 통해, 즉 자기 딸을 통해 보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딸이 '메롤빙거' 라는 프랑스 왕조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 왕조는 5~7세기의 실제왕조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왕조 속에는 실제로 예수님의 피가 거룩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를 씻어 주는 그 피가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라 가문과 메롤빙거 가문이 결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족보가 '샹그레아' 라고 해서, 그 문서가 족보로 존재해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가계가 어떻게 이어져 왔나를 보여주는 문서가 실제로 존재해 있다는 것이다. 이 메롤빙거 가문은 그 뒤에 사라져버리고 말이다.


그런데 1099년 제 1차 십자군 전쟁에 의해서 로마가 예루살렘 성전을 함락시키는데, 이때 그 전쟁을 지휘했던 '부용' 이라는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사라 가문과 메롤빙거 가문이 결혼했다고 하는 샹그레아 문서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시온산 수도회에서 그 일을 수행했고, 그것을 보호하는 자들이 바로 템플 기사단이라는 것이다.


♣ 1차 십자군전쟁(1096년~1099년) ♣
셀주크 튀르크의 압박으로 괴로워하던 동로마 제국의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1095년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로마 가톨릭교도들에게 이슬람교에 대한 군사 행동을 호소하여 전쟁에 참가하는 자에게는 면죄된다고 선언하였다. 이 호소에 응한 서유럽의 기사들은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는 도시를 공격해 약탈을 저지르면서 예루살렘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당시 이슬람교 세계의 통치자들은 일치단결하지 못하고 제각각 분열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십자군의 공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1099년 십자군은 마침내 예루살렘 정복에 성공한다. 성 안으로 난입한 십자군은 많은 시민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시리아에서부터 팔레스타인에 걸쳐 이르는 중동지역에 예루살렘 왕국 등에 십자군 국가들이 세워졌다.


그래서 그것이 1200대에 오면, '까딸리' 라고 하는 실제 교회사에 나오는 프랑스 남부집단 이름인데, 이들은 기존 성직자의 향략과 사치를 비판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까딸리' 라는 집단을 처단하기 위해서 최초의 종교재판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때 수도사 4명이 샹그레아 족보를 빼돌려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당시는 이미 기독교가 국가적 형태로 커졌는데, 이렇게 커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 욕망상 제거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이미 많은 것을 제거한 것이 있기 때문에 커졌다는 말이다. 물론 반발세력들을 말이다.


다빈치 코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니케아 회의 때에 나그함 마디에 나오는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서 모두 다 제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니케아 회의 때는 무엇을 골라서 이단이라고 해서 제거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은 그 이후의 일이고, 이 때는 그냥 일방적으로 주장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성경이 정경으로 완성된 것은, 구약의 정경이 지금 39권(원전24권)으로 정해진 것은 90년경의 얌니야 회의였고, 신약의 정경이 현재처럼 27권으로 결정된 것은 397년 카르타고의 교회회의였다.)


♣ 니케아 종교회의 (Council of Nicaea, 325년) (네이버 지식) ♣
니케아 종교회의는 《다빈치 코드》가 소설 전반부에서 깊이 파고드는 여러 쟁점을 결정한 자리였다. 소설에서 레이티빙은 신약성서에서 어떤 복음서를 포함시키고 빼버릴지를 결정한 것은 니케아 종교회의였다고 주장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풀어내려고 애쓰는 수수께끼 중심에 있는 중요사건은 니케아 종교회의가 결정했다. 그 수수께끼란 그리스도가 인간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다(예수가 인간이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라고 믿는 신앙은 아리우스주의(Arian hersy)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니케아 종교회의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이며, 그렇기에 결혼했을 리가 없다고 법령으로 포고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아리우스파로 인하여 발생한 교회 내의 분열과 분쟁을 우선적으로 끝내고자 325년에 최초로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를 소집한 또 다른 목적은 부활절 날짜를 통일하는 일이었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아리우스파 문제를 논의하고 처리했으며 그리스도교의 신앙 중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여기에 나오는 도마복음이나 마리아복음 등을 외경, 혹은 위경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영지주의적 입장의 것들을 왜 배척하게 되는고 하니, 이들의 주장처럼 기존의 순교자의 피로 이룩한 교회 말고 개인적으로 양심에 의해서 구원이 된다면, 그렇게 되면 교회존립의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도와 사도의 제자들(속사도)과 같은 이런 사람들이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다 순교한 사람들인데, "교회 없이 구원 없다" 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설명을 했지만, 이미 로마라는 전제군주가 여러 이유로 박해를 해왔을 때, 교회가 가만있지 않고 자체적으로 단합을 해서 또 하나의 단단한 영토(고원)를 만들었고, 즉 그렇게 코드화(인식의 통일화)가 이루어져서 영토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코드화를 이루려고 하면 방해가 되는 것을 잘라내야 하는데, 그들이 바로 영지주의가 주장하는 복음서들, 즉 도마복음, 마리아복음, 빌립복음 등등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결혼을 했고 그 뒤에 죽었다는 것이다. 물론 부활은 사기인데, 시체가 있었고 그것은 누군가가 고의로 몰래 치웠다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의 시체가 있고, 막달라 마리아와 부부사이에서 아기가 있다면 정통적인 복음서들이 다 거짓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 교회 없이 구원 없다 !!


그래서 다빈치 코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초반부터 교회가 강력하게 자기 교리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다 핍박하고 제거했다는 것이다. 로마는 교회를 핍박하고, 교회는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을 핍박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교회 말고 다른 방식으로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은 전혀 있을 수가 없기에 말이다. 구원은 반드시 교회를 통과해야만, 오직 교회라는 것이다. 어쨌든 교회는 전통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이러한 영지주의 계통은 반드시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이단으로 분류된 집단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은데, 앞서 말한 메롤빙거 왕조가 사라의 가문과 혼인을 해서 정통적 예수님의 피가 이어졌다고 했을 때, 이 메롤빙거 왕조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면, 손만 대면 다 치유가 되고 심지어 짐승과도 대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기적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영지주의 - 나의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


이것을 믿는 신부들은 주장하기를, 기존의 교리중심 교회를 버리고, 영지(GNOSIS), 즉 자기가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자기가 영적인 초월적인 것을 체험하게 되면 더러운 물질로부터 깨끗한 천상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30개의 계단(에온)을 통해서 말이다.


다음시간에 이 영지주의에 대해서 강의를 하겠는데, 이렇게 되면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니고, 그래서 예수가 무엇을 했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고 깨달음(영지) 자체가 예수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행위를 의지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미지가 되고 하나의 힌트라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이 과연 이렇게 주장을 했는지 의구심이 들지 모르겠는데, 예를 들면, 이호식이나 이현래 쪽에서도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처음에는 십자가의 피를 믿고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더 신앙생활을 하면 자기가 예수가 되고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의지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알아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깨닫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를 나의 친구로 본다" 라는 말씀을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예수님과 맞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예수님께 벌벌 떨 필요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시범조교라는 것이다.


어떤 목사가 말하기를, "저는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라 그냥 여러분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 그는 그냥 가르치는 사람이듯이, 마찬가지로 자기가 믿음이 좋아지면 예수님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냥 목사처럼 말이다. 이게 바로 '영지주의' 라는 것이다.


처음 믿을 때는 예수님이 없으면 못살 것 같지만, 그러나 약간 믿음이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해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교회도 안 나간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자기가 다 알아서 다 하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무한을 향한 집념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교재 1페이지에서 '성적 도착증' 이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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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도착증이란, 정상적인 성(性)의 대상을 찾지 못해서 변태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전제 군주는 그 흐름들을 하나의 원리 하에 종속시키기 위해 ‘성적 편집증’을 발생시킨다.‘편집증’이란 하나의 대상 집요하게 집착하는 증세를 말한다(질투, 사랑, 갈구 같은 증세). 한 예를 들어, 원시 사회에서 혼인을 조작하는 행위는 그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행위이지만 매우 도착증적 성격을 갖는다. 또 조선 사회에는 모든 잉여를 형식적으로나마 전제 군주에게로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편집증이다. 반면 자본주의는 화폐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정신분열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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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인간의 욕망을 붙잡을 수가 없고 하나의 기계가 되어서 따라가는데, 그 모습이 바로 성적 도착증, 성적 편집증, 그리고 정신 분열증도 드러낸다는 것이다. 성적 도착증이란 남녀간의 관계가 아니라 그야말로 동성이라든지 아니면 짐승이라든지, 이렇게 비정상적인 성 관계를 말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해야하는가? 그렇게 해야만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적 도착증 환자가 정상적인 것으로는 만족함이 없어서 비정상적으로 나가면서 쾌감을 느끼듯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에는 만족함이 없고, 이제 자기가 예수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변태' 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적 편집증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의 대상에 너무 집착하는 증세로서, 질투나 지독한 짝사랑 등이 여기에 해당되고 말이다.


이런 편집증 증세가 바로 로마황제 네로, 도미티아누스, 트라야누스의 박해 등에서 나타나는데, 그야말로 박해를 가할 때 황제는 전제군주로서 성적 편집증에 사로잡힌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자기 황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그야말로 엄청 심하게 박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도 역시 로마황제와 같이 전제군주가 된다면 똑같은 편집증 현상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고 말이다. 당회장이 자기보다 똑똑한 부교역자를 질투하고 쫓아내는 것은 이미 자기가 전제군주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회장 본인의 욕망일 뿐만 아니라, 큰 교회를 이룩한 장로급들, 그리고 모든 교회와 교인들이 기존 한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부속기관으로, 즉 종속되는 것으로 다같이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교역자가 같이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그가 아무리 훌륭해도 교인들 다수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사에서 반복되고 있고, 우리가 이것을 공부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을 정당하게 해주는데 동원된 것이 바로 '교리' 라는 것이다. 물론 삼위일체 교리도 그렇고 말이다. 사실 이 교리라는 것은 남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라면 설교는 해야 하지만, 굳이 지도자가 교리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복음이란 바로 예수님이 쥐고 계시는 것인데, 그래서 본인은 이 복음에 대한 기쁨이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굳이 유포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예수님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유포해서 타인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보다 많은 집단을 소유함으로 쾌감을 맛보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바로 집단 전제주의에 대한 기대이고, 자기 욕망을 생산했다는데 대해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쾌감이 바로 편집증적 쾌감이고, 그것은 남의 욕망까지도 다 자기 코드 밑에 종속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지금 교재 1페이지에 나오는 내용들은 교회사를 강의하면서 계속해서 되풀이가 될 것인데, 아마 자꾸 듣다가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영지주의는 사실상 엄청 오래되었는데, 기독교 영지주의는 2세기 때부터 비로소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교회 안에서 '발렌티누스' 라는 사람이 영지주의적 사고방식을 제시했을 때 엄청나게 히트를 쳤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그 당시 교회는 복음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었다는 것이다.


자크엘룰의 '뒤틀려진 기독교' 라는 책을 보면, 그 당시 교회들은 빵을 나누어주는 등 착한 일을 많이 했기에, 그래서 사람들은 이 빵을 얻어먹기 위해서 교회에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왔던 민중들은 복음에는 관심 없었기에, 그냥 빵이나 먹고 좀 앉아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요즘도 일당 주고 사람을 데려다놓는 교회가 있지 않는가?


다시 말해서, 영지주의가 그렇게 쉽게 민중들을 정복했다는 것은, 즉 그들의 주장이 그렇게 파급효과가 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그 당시 교회가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교회가 전해야 하는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엉터리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교회가 가짜 복음에 관심이 있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 초대교회의 두 적들 - ①로마 !!  ②영지주의 !!


사실상 그 당시에는 교회가 크게 두 세력과 싸우고 있었는데, 첫번 세력은 로마인데, 이 로마에게는 아부를 해야하는데, 그 아부내용이 철학과 신학은 같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는 것이다. 초대교부인 오리겐이나 이레니우스가 이런 일들을 했고 말이다.


또 다른 하나의 세력은, 영지주의와 같은 반항하는 자들을 잘라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제거하는 방법은 하나인데, 기존 정통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은 제자들이, 소위 '속사도' 라고 하는데, 이들이 세운 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하는 것이다. 터툴리안은 자기는 속사도가 아니지만, 바로 이런 일을 속사도들과 연계해서 과감히 영지주의자들을 교회에서 잘라냈다는 것이다. 이때 나온 것이 바로 '교리체제' 이고, 그것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교리체제를 보면서, "왜 이런 교리가 등장했는가?" 라는 것을 중심으로 공부해보고, 오늘 남은 시간에는 "기존교회가 어떤 어떤 지역에 분포했는가?" 라는 것을 살펴보겠는데, 교재 3페이지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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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속사도시대 (100-313년) - 기독교가 기세를 떨치든 시대
(1)교회 확장의 중심지
* 예루살렘 -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 유대 각처로 흩어졌던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여러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여 기독교를 확장시켰다.
* 수리아의 안디옥 - 바울이 서쪽으로 전도해 나가는 근거지가 되었다. 수리아와 메소보다미아 전도의 거점
* 에베소, 서머나 - 소아시아에서는 서남방 해안 지방에 기독교가 가장 왕성하였는데 에베소, 서머나가 그 중심이었다. 이 곳을 기점으로 복음이 소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다.
* 빌립보, 데살로니가 - 마게도냐 지방 전도의 중심지
* 알렉산드리아 - 안디옥 다음으로 기독교가 흥왕한 곳이었다. 이 지방에 살고 있는 헬라인과 유대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3세기에는 성경의 애굽어(콥트) 번역도 이루어졌으며 신학교도 세워졌다. 또한 그노시스파의 근거지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 고린도, 아덴 - 헬라(그리스) 지방의 복음 전파의 거점 도시였다. 아테네에서도 변증자들과 순교자들이 나왔다.
* 로마 - 서유럽 전도의 중심지였다.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각처에 교회가 있었고 북은 갈리아, 남은 북부 아프리카, 서는 스페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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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사도 교부들의 시대(100-313년)는 기독교가 기세를 떨치든 시대로서, 처음에는 교회 확장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이었는데, 바로 이 예루살렘에서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으로 교회가 점점 확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예루살렘 -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 유대 각처로 흩어졌던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여러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여 기독교를 확장시켰다


이것은 로마의 티투스가 AD60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을 때 많은 유대인들도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래서 교회도 자연스럽게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수리아(시리아)의 안디옥, 에베소, 서머나, 빌립보, 데살로니가, 알렉산드리아, 고린도, 아덴, 로마의 순서인데, 여기서 이 알렉산드리아가 중요한데, 이곳은 안디옥 다음으로 기독교가 흥왕한 곳이었고, 또한 그노시스파의 근거지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 로마 - 서유럽 전도의 중심지였다.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각처에 교회가 있었고 북은 갈리아, 남은 북부 아프리카, 서는 스페인에 이르렀다


여기서 북부 아프리카의 튀니지를 살펴보면, 이곳은 아프리카의 중앙으로서 여기 '칼타고' 라는 곳에 기독교가 많이 퍼졌다는 것이다. (397년 칼타고에서 신약정경이 결정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독교가 많이 퍼졌다는 말은, 정말 복음이 제대로 증거되면서 퍼졌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었는지 말이다. 그들이 기독교를 받을 때에 어떤 의도였는지가, 그것이 영지주의가 확장할 때에 그들의 생각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리트머스 시험지??)


◈ 복음의 내용이 제대로 전파되었는가?


제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그들이 받아들인 복음이란 것이 제대로 된 복음이 아니라, 기존의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구세주 사상과 결부되어서, 예수님의 복음이 왜곡되어 이해되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미 로마나 이집트에도 부활의 신이 있었고(오리시스와 이시스), 그리고 사람이 죽은 후 그냥 끝이 난다면 너무나 아쉬우니 영혼이라도 살아야하는데, 바로 이런 것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해줄 근거가 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영원토록 살고 싶어서 호감을 가지게 되고 쉽게 흡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불멸사상이 필요하고 교회가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불멸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다가 부활을 했기에 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냥 기다려야 하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구름을 타고 오실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아니 이 정도로 완벽한 불멸사상이 어디 있는가?


그러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교회에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에만 의존했고, 그런 교회에 등록함으로 구원받으려고 하는 개인구원욕망에 의한 기독교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사를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부터 그 내막을 한번 제대로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되고 말이다.


◈ 교회사는 왜 순교자에 집착하는가?


마지막으로 이것만 이야기하고 마치겠는데, 그 당시 전국적으로 아주 잔혹하게 많은 박해가 있어서 수많은 교인들과 지도자들이 죽었고, 물론 죽을 때 도망친 사람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사는 이들은 기록하지 않고, 장렬하고 용감하게 죽은 사람만 순교자로서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사가 왜 이렇게 장렬하게 죽은 순교자들을 기록하는가? 교회라는 것이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조차도 초월하는 성도 개개인들이 있다는 것을, 즉 죽음조차도 이겼다는 순교자의 공로가 드디어 교회의 초석이 되었음을, 바로 그런 시점이 되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 07,09,26 오후 10시 10분에 마침 -- 아들자랑 구


 


* 이번 추석연휴때 하루에 하나씩 녹취한 것입니다. 다음 녹취는 내년 추석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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