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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3 22:20:02 조회 : 3501         
05 교회사 8강 - A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0)

교회사 8강 - A
                                                                        05,12,03  강의 이근호



◈ 신조(信條)란 무엇인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드디어 개신교가 교리로 정착이 되는데, 이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것이, 즉 종교개혁자들의 주장하던 것들이 교리로서 굳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리로 정착이 되는데 기여한 것이 바로 '신조(信條)' 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조들이 등장하게 되면, 이 신조들은 교리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사람들은 이 교리 덩어리를 지적(知的)으로 받아들이면 신자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리를 지적으로 수용하면 신자가 되는, 그런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고 하면, 만약 이렇게 교리를 지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신자라면, 그런데 신자라는 것은 영적으로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즉 영적으로 거듭나야하는 것이 신자인데, 아니 영적으로 거듭나야하는 사람이 지적인 교리를 자기 지식으로, 즉 합리적으로 수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신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리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성경 내용을 축약해서 보여주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교백서를 보면 알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성경내용의 개념들과 정신들을 축약해서 굳힌 것이 신조들이고, 그것들이 교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경내용을 그냥 굳혀서 거기에 지식적으로 동의한다고 해서 과연 신자이겠느냐는 것이다. "성경의 교리가 이렇고, 내용이 이렇습니다" 라고 동의한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과연 신자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 경건주의 운동 - 개신교의 교리화에 대한 반동으로 !!


여기에서 경건주의 운동이 벌어지는데, 이 경건주의 운동은 개신교가 교리화되고 스콜라화 해버리니, 여기에 대한 반동으로 18세기에 독일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삶 자체의 획기적인 변화, 즉 "중생된 경험이 없으면 과연 신자라고 볼 수 없다" 라고 여기에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신자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인가? 신조나 교리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영적이고 정신적인 대변혁이 개개인에게 일어나야 하고, 그런 변혁의 결과로서 자기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그것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젠돌프 같은 사람은 나중에 모라비안 교도가 되는데 (그 다음은 별들에게 물어봐?)


(선교에 엄청나게 열정적이었던) 이 모라비안 교도들이 미국으로 왔다가 영국으로 돌아가는 여객선 위에서 존 웨슬레를 만나게 되는데, 웨슬레가 이들의 영향을 받아서 주로 영국에서 부흥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그 배 위에서 무슨 일이?) 윗필드는 미국에서 주도했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과학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렇게 과학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천주교회의 특징, 즉 '한 하나님 밑에 하나의 감독' 인데, 즉 한 하늘아래 태양이 둘이 될 수 없단 말인데, 영적으로 하나의 지시를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모토인데, 그래서 1870년에 드디어 '교황무류설'이 나오는데, 즉 교황에겐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오류가 말이다.


◈ 아하, 진리에도 반항할 수가 있구나 !!


이렇게 천주교 밑에 완전히 주눅이 들어있던 사람들이, 그런데 소위 개신교가 나오니, "아하, 진리에도 반항할 수가 있구나. 반항이 가능하구나" 라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반항, 바로 그것이 과학이 싹틀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자기 속에 성령이 계셔야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러나 천주교는 개개인 속에 있는 성령이 아니고, 교회의 성만찬을 행할 때 임재하시는 성령이란 것이다. 즉 천주교는 성령이 임하는 모임에 참여해서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이고, 개신교는 교화가 아닌 자기 속의 성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 라고 할 때에, 개신교는 자기 속에 있는 성령을 의미하는 것인데, 천주교처럼 교회의 주교나 사제가 대표하는 믿음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 죄로부터 자유를, 개인의 자유로 바꿈 !!


개신교에서의 이러한 자유주의는, "죄로부터 자유이고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다" 라고 루터가 그렇게 외쳤지만,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이 세상의 모든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로 여기게 되었고, 그래서 개인의 주체의식을 강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칼빈주의 召命論 - 과학기술의 축적과 발전으로 !!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루터주의보다는 오히려 칼빈주의가 온 나라와 유럽에 인기가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칼빈주의 소명론(召命論) 때문인데, 어떤 일을 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본인이 소명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칼비주의 예정론은, "너는 천국가, 너는 지옥가" 라고 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미 예정되었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나 직업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자부심 하나가 하나가 과학기술의 축적과 발전으로 이어졌다고 말이다. 인쇄술의 발달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니 과학자들이 모여서 뭐라고 하겠는가? "이제는 우리 속에 있는 인간이성의 힘으로 이 대자연의 원리와 원칙을 설명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천주교를 믿든지 개신교를 믿든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종교는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되었기에 말이다.


◈ 이제는 종교가 인간의 문화활동으로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그 이전까지는 종교가 문화가 아니라, 천주교 시대에는 종교는 신이 허락한 자기 운명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복종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문화활동으로 전락했는데, 그러니 정작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고, 또 자기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이 있고 신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행동 여하에 따라서 밝혀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 되는데, 이전에는 성경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폈는데, 이제는 갈릴레이 갈릴레오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성경이 아닌 실험과 실습과 관찰을 통해서, 즉 망원경을 통해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주를 바라보고 말이다.


아니 이렇게 달을 관찰하면서, (그 당시에 가능했나?) 즉 성경에 없는 내용을 이렇게 살피면서 그런 관찰력을 어디로 조명하겠는가? 그 이전까지는 교회의 압력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개신교가 나타나서 성경이 교회보다 우위이고 우선이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그러니 교회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개혁주의에서 "성경대로 돌아가자" 라고 할 때에 그 이유가, 지난 시간에 "성경의 내용은 간편하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교회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뭔가가 축적이 되어서, 관행과 관습이 축적되기에, 즉 지킬 것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으로 돌아가면, (간편해지고) 그래서 교리를 지적으로 수용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경건주의 수준이라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변화되면 그만이고 말이다.


그런데 종교 자체를 벗어난 사람들은, 이제는 이성의 눈으로서 성경을 분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말도 듣지 않고서,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믿겠어. 성경대로 믿겠어" 라고 교회에서 뛰쳐나왔는데,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이, "과연 성경이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즉, 성경마저 관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을 부인하는 태도가 아니라, 이제는 신이 있다면, 자기들이 직접 만나겠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자기들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것을 통해서 신의 명령을 받고, 교회를 통해서 신에게 예배도 드리고 하면서, 신에게 영광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7가지 성례가 있다는 것이다. 소위 카톨릭의 '7성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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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톨릭의 7성례
1. 세례성사  2. 견진성사  3. 성체성사  4. 고해성사  5. 병자성사 6. 성품성사  7. 혼인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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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개신교는 이것을 성경에 있는 것만 한다고 해서, '세례'와 '성만찬', 이렇게 2가지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교리적인 설교를 통해서 하면 되고 말이다. 성경의 내용을 함축한 것이 곧 교리인데, 이 교리에 복종할 때 구원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 과학주의 - 이제는 내가 직접 신에게 !!
 
그러니 신에게 나아가는 것은 결국은 성경을 통해서 나아가는데, 그러나 이제는 신에게 자기가 바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에게 바로 나가기 위해서는, 성경대로 해야하고, 그러면 성경이 무엇이냐를 분석해야 하는데, 그런 자격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성경을 분석할 수 있는 자격 말이다. (그래야 신에게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자신감은 과학의 발달에 기인되어 있는데, 과학의 발달이라는 것은 예상과 예측능력이 있다는 말인데, 즉 어떤 일에 대해서 미리 예상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이란, 미리 예측하고 그것이 달성되면,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진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될 거야" 라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어야 하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몸을 열어서 해부해보니 영혼이 없다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눈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되풀이해서 실험하고, 그렇게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올 때, 그것은 진리가 되는데 말이다. 그리고 쪼개고 분석하면 원인이 나오고, 그 원인을 분석하면 또 원인이 나오고, 즉 동일한 원인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콧물이 나고 기침이 난다면 감기에 걸린 것인데, 그런데 옆 사람도 똑같은 감기에 걸렸다면, 그것은 감기가 옮는다는 말이다. 즉 감기 바이러스가 옮긴다는 것인데, 그래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그래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왜 성경이 굳이 필요한가?


그리고 이러한 감기 바이러스를 신과 직접 연결시켜 버리면, 신에 의해서 창조된 감기 바이러스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성경이라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으로 신에게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을 두고 '합리주의' 라고 하는데, 무엇이든지 따져서 합리적으로 맞으면 진리가 된다는 것이다.


◈ 진화론 - 이젠 진화의 주체자가 인간 !!
 
이 합리주의는 지적인 지식의 축적으로 일어나고, 이렇게 지식의 축적이 '발전'과 '발달'로 이어지고, 이것이 나중에 '진화'가 되는데,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이 자신 책 '종의 기원'(1859년)으로 말미암아서 등장하는데, 진화가 된다는 말은, 신이 만든 대자연의 원동력을 과거에는 신의 성령(은총)으로 했지만, 이제는 발전과 발달과 그 진화의 주체자가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고, 즉 하나님 나라를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신의 뜻이라고 하는, 그런 새로운 인식들이 자신만만한 과학의 발달로 말미암아서, 사람들에게 역시 자신만만하게 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기가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면 되고, 자기가 이 땅에서 만들어 가면 되는데, 그렇다면 결국 천국을 자기가 만들어나가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것이 과학적 지식으로만 가능한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사회적 불평등도 해소되어야 하고, 이웃사랑도 역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인간들이고 말이다.
 
이 땅에서 만들어지는 하늘나라의 주인공인 인간들의 이러한 성품의 발전은 당연한데, 인간들이 정신적이고 영적으로 발전과 진보를 거듭하면, 곧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발전과 진보란 것은, 죄악으로 물든 이 세계에서 의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란 말이다. 이것이 과학발달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 죄와 대속의 문제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


이러한 찬란한 미래상과 연관시켜볼 때, 인간 속에 있는 품성이 죄악보다 의로움이 나온다면, 윤리와 도덕이 인간에게 내장되어있고, 신의 뜻에 의해서 인간에게 갖추어져 있다면, 개신교에서 교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죄라는 문제, 그리고 "대신해서 용서한다" 라는, 즉 대속(代贖)의 문제는 다 버려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합리적이며 고대적 사고방식이고, 그야말로 무지와 무식과 몽매에 푹 잠겨있을 때, 그야말로 지나간 시대의 고색 찬란한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지식이 축적되기 이전에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런 시절의 의식상태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기 속에 있는 윤리와 도덕성으로서 이 사회를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과학적인 힘으로 스스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여력과 저력을 키우면, 바로 이 땅이 지상낙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천년왕국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 땅에서 이루어내자는 것이다.


◈ 이제는 합리주의 시대이고 理神論의 시대 !!


이런 시대가 바로 유럽에서의 합리주의 시대이고 이신론(理神論)의 시대인데, 이렇게 이성으로 따지는 합리주의로 인해서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시비를 걸고,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을 다 제거해나가는 분위기가 18세기에 영국과 미국에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개척시대에 전국민이 다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 나오다가, 이런 합리주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채 10%도 나오지 않게 되었고, 유럽에 있는 개신교와 카톨릭의 교회들도 텅텅 비게 되었다는 것이다. (20세기도 아닌) 이미 18세기 초반에 말이다.


◈ 카톨릭의 몸부림 - 옥스퍼드 운동 !!
 
여기에 카톨릭이 위기를 느끼고 전통을 강화하는 '옥스퍼드 운동'을 펼치는데,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옛날 카톨릭의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교회가 고객을 모으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현상인데) 교회의 예배당은 객장이 되는데, 객장이란 쳐다보고 지적으로 배우면 된다는 것이다. 왜 증권회사의 주식이 오르내리는 전광판을 쳐다보는 그 객장 말이다.


이렇게 하면서 카톨릭은 더욱더 카톨릭화가 되는데, 즉 타협하다가 타협하다가 너무 벗어나니 다시금 옛날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옛날 향수에 다시 젖는데, 즉 다시금 보수적인 경향으로 되돌아가려고 몸부림을 친다는 말이다. 물론 나중에 바티칸 회의에서 이런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지만 말이다.


◈ 드디어 종교냐, 과학이냐 !!


이러한 분위기가, 이전에는 "천주교로부터 해방이다" 라고 했는데, 그 다음에는 "천주교냐, 개신교냐" 라고 하다가, 이제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쳐서, "종교냐, 과학이냐" 라는 것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700년대부터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공동체 운동 - 과학을 해보니 행복하더냐?
 
그때부터는 과학을 받아들이면 깨어있는 사람이고, 종교에 매인 사람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되는데, 그래서 과학에 속한 사람이 종교 쪽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종교 쪽은 대꾸할 것이 없고, 그래서 대꾸하지 않고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는데, "너거들, 과학을 해보니 행복하더냐?" 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진실로 성경에 나오는 참된 신의 뜻, 즉 참된 공동체를 이루겠다" 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과 공동체의 공통점은, 이 땅에 지상낙원을 이루는 것인데, 그런데 과학은 "날마다 발전을 해야한다" 라는 것이고, 이에 반해 공동체는 "언제까지 발전을 기다릴 것이냐. 지금 이 바닥에서 해버려야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지 미래의 행복은 보장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행복해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 운동으로 인해서 사회주의 운동이 벌어지는데, 사회주의 운동이란, "진짜 성경대로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서, 과학을 주장하는 너희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해주겠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험적인 공동체 운동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 공동체 운동 - 류터의 책 '메시아 왕국' !!


이런 공동체 운동이 류터의 '메시아 왕국' 이라는 책에 잘 나오는데, 후트파, 메노나이트파, 아비숴파 퀘이크파, 몰몬교, 그리고 몸을 흔드는 쉐이크 교도 등등 말이다. 그리고 '광야의 여인' 이라는 독신공동체가 있었는데, 이것은 1694년에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만들어졌는데,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광야의 여인이 마지막 남은 자가 되어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싸우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 본떠온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 운동을 하는 자들이 항상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서 많이 이용을 하는데, 요한계시록에서 이 세상은 말세라고 하면서, 숫자가 999가 들어가고, 천년왕국을 이야기하고 말이다. 광야의 여인의 경우에, 예수님의 재림을 보기 위해서 지붕 위에서 망원경을 놓고 천사들이 언제 오는지를 살핀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신주의로 살면서 낡은 수도승 옷을 입고 극히 간소한 생활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지적이고 음악적인 문화를 거부하고, 물론 거부하지 않는 단체도 있었는데, 이것이 1920년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1800년경에 보면, '소알파 집단' 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부분에서 보면, 롯의 가족이 소알로 피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아서 소금기둥이 되었고 말이다. 즉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마지막 때이니 피하자" 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나(?)' 공동체라고 있었는데, 이들은 어떠한 실험들을 했느냐 하면, (별들에게 물어봐?) '후트파(?)' 라는 공동체는 주장하기를, 모든 정치권력은, 즉 "교회든 국가든 다 저리로 가라. 우리들 마음대로 살겠다" 라고 하는 무정부주의로서, 사유재산을 모두 없애고,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하고,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소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 4장에도 나오듯이, 즉 서로 믿는 무리가 되어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물건을 필요에 따라서 나눠주고, 서로 자기 것이라 전혀 여기지 않는, 그것을 이상적으로 여기고 펼친 운동이라는 말이다.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행 4: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행 4: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그렇다면 왜 성경말씀을 연구하는 운동은 없는가? 성경연구는 이미 합리적인 자유주의 쪽에서 모두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말하기를, 성경을 통해서는 개신교가 주장하는 칼빈주의 5교리와 같은 것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그렇게 계속해서 밝혀내고 있다는 것이다.


◈ 공동체 운동 - 소유욕을 제거하면 이상사회 건설이 가능 !!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과수원에서 공동생산과 공동소비를 하는데, 공동체 운동에서 왜 이런 공동생산 공동소비를 하는고 하니, 죄악이란 이기심과 소유욕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기심을 제거하고 소유재산을 제거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상적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운동들은 대부분 소규모 종교집단들이 벌였고 말이다.


자유주의 쪽에서도 공동체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했는데, 이것은 대규모의 사상운동으로서, 인간이 갖고 있는 양심과 이성으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명한 로버트 오웰, 프리웨, 쌩시몽, 그리고 부르돔 등이 있다는 말이다.


◈ 오웰 - 노동자들도 인간다움을 부추겨주면 !!


로버트 오웰은 실제로 공장을 경영하면서, 노동자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그러면서 청교도를 보고 비웃는데, 왜냐하면, 청교도는 사회의 노동문제를 두고서, 노동자가 가난한 것은 죄를 짓고 게을러서 가난하다고 보았기에 말이다. 그러나 오웰은 그렇지 않고, 그들에게 인간다움을 부추겨주면 얼마든지 그들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가 그들에게 베풀어주게 되면, 그들은 더욱더 신이 나서 일하기 때문에 자본가에게도 유리하고 노동자에게도 역시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청교도들처럼 이 세상을 너무 그렇게 죄악시하지 말고, 인간들의 선한 의지만 잘 부추기면 얼마든지 새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가 이야기하기를, '일반적 의지' 라고 해서, 즉 인간 속에는 근본적인 자연적인 착함이 있다고 했는데, 이러한 착함을 교회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도 독점하지 말고, 이제는 일반 시민들에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착함을 개발하면, 이 사회는 교회나 성경이 없어도 인간의 양심으로서 얼마든지 좋은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정신으로 오웰이 공동체 운동을 펼쳤고 말이다.


쌩시몽은 공상적 사회주의를 주장했는데, 이제는 이 세상 자체가 교회에 갈 필요가 없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상적인 낙원을 지상에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계속해서 문제를 수정보완하고 개선하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이 세상은 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곳이 된다는 것이다.


◈ 제1,2차 세계대전 -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


그런데 이런 주장이 언제 와장창 박살이 나는고 하니, 인간들이 제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인간이란 이렇게 악하다는 것을, 과학이 참된 이성을 주장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과학 때문에) 함께 멸망하는, 즉 공멸하는 결과를 낳았을 때, "인간이 무엇이며, 자연은 무엇이며, 신의 뜻은 무엇이며, 성경의 뜻은 무엇인가?" 라고 하면서, 여기에 대해서 다시 한번 반성하면서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 신정통주의 - 현실에 맞는 새로운 정통으로 다시 돌아가자 !!


옛날 개신교들이 주장한 "인간이 죄인이며,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이다" 라는, 그런 개신교에 있던 죄 관념으로 자신들을 반성하면서, 이제는 현실에 맞는 새로운 정통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신정통주의' 라는 것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재산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는데, 실제로 19세기 미국에서 자본가들은 소득이 600% 늘었는데 노동자들은 소득이 오히려 25%가 줄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라가 자본주의화가 되면서 소득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데도, 그런데 미국 청교도들을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칼빈을 이야기할 때, "인간이 갖고 있는 재산도 하나님의 축복이다" 라고, (소위 소명론으로) 칼빈이 가르쳤다고 했는데, 여기에 반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나눠주는 것이 복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옛날 영토국가일 때는 사제들 대부분이 어설픈 공무원(?)이었는데, 근대국가가 되기 이전에는 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될수록 양 사방에서 (주로 교회이겠지만) 압박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주어라. 그리고 줄 때는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 주어라. 그렇게 하면 교회가 배부르다" 라고 말이다.
 
그 당시에는 모든 진리는 교회가 독점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교회당을 짓고 사제들에게 대우를 잘했다는 말은, 그것이 곧 이웃사랑의 수단이 되니, 그래서 부자들에게 가진 것을 다시 교회에 내어놓으라고 헌금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가 그 헌금을 가지고 구제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어디에 얽매이겠는가? 물론 돈은 부자가 내는 것이지만, 그들은 실제로 교회에 매달리게 되니, 교회는 계속해서 정신적으로 그들을 자기들에게 예속되도록 조치하는 방편이 된다는 것이다.


◈ 개혁주의 - 내 안의 성령 !!  
◈ 카톨릭 - 교회가 베푸는 성령 !!


그런데 이제는 칼빈주의 등장으로 말미암아서, 교회가 베푸는 성만찬을 통한 성령이 아니라, 이제는 '내 안의 성령' 이기 때문에, 그리고 잘 사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 잘살아야 하니, 계속해서 근검절약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칼빈도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을 두고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는데, 그러나 가난한 자를 구제를 할 때 어떤 한계가 있는고 하면, 자기 재산이 축적되는 그 범위 안에서만 가난한 자를 구제해야지, 그냥 무턱대고 가난한 자에게 무조건 나누어주어서 자기 재산이 줄어들게 되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부자가 되어서 가난한 자에게 다 나누어주어서 그만 자기마저 가난하게 되면, 그만 본인이 저주받은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어떤 수단이 되는고 하면, 부자를 더욱더 부자가 되게 하는 그런 베풂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본가가 공장을 세우게 되면, 보다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임금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임금 단가가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오늘날 기업을 하는 사장과 똑같은데, 임금을 몇 사람에게 많이 주는 것보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모아서 하게 되면, 불쌍한 사람들에게 그만큼 베푸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게 비정규직의 시작인가?) 이렇게 되면 누구의 재산이 늘어나는가? 그 당시 미국의 기득권자들이, 즉 자본가들이 누구인가? 청교도들인데, 그들의 재산이 마구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자본가들이 돈을 마구 끌어 모아도) 교회가 반발을 하지 않고 호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교회도 돈이 있어야 제대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래서 돈줄을 놓치면 안 되는데, 그 돈줄이 바로 부자들이라는 것이다.


◈ 구원 문제는 신조(교리)로 해결 !!


그렇다면 구원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신조를 통해서, 즉 교리를 가지고 하면 되는데, 가난한 자이든지 부자이든지 간에 교리를 지적으로 배워서, 그렇게 머릿속에 잘 담아 놓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구원론, 성령론, 그리고 교회론을 다 외우면 된다는 것이다. 성례, 치리, 예배 등도 줄줄 암기하면 되고 말이다.


18세기 중반에 웨슬레나 조나단 에드워드 등이 부흥운동을 주도할 때,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고 하니, "내가 구원받았는가?" 라는 것인데, 그래서 그 다음부터 성경의 어느 구절이 자기를 구원했는지, 거기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렇고 말이다.)


◈ 자유주의 - 예수가 아닌 성경을 공격하라 !!


흔히들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할 때, 이 자유주의가 무엇을 공격하는고 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아니라 성경을 공격하는데, 즉 "성경이 하나의 책으로서 묶이기 이전에, 이미 성경 내용이 각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 담겨있다" 라는 것을 증명하고 까발리는 것이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에서 성경을 공격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성경 자체를 공격할 때, 이것이 나중에 가면 신약신학과 구약신학으로 나누어지는데, 즉 성경신학이 발달하는데, 오늘날에 '신약신학' 혹은 '구약신학' 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런 용어들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러나 과거 천주교에서는 그런 신학들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학자체가 삼위일체 그 자체로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신학은 니케아 회의 때,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삼위로 계신다" 라고 하면 이미 다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여기에 대해 지적(知的)으로 수용하면 되고,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교화가 베푸는 7가지 성례를 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내용은 교회가 독점하기 때문에, 즉 성경말씀은 교회가 제대로 알기 때문에 교회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고 말이다.


◈ 스피노자 - 모세가 과연 모세오경을 썼는가?
 
그런데 신약신학과 구약신학이라는 용어가 튀어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는 내 똑똑한 머리로서 내가 성경을 나름대로 분석해보겠다" 라는 것이고, 그 선두주자가 바로 '스피노자' 이었는데, 이 양반은 그야말로 천재 중에 천재라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구약을 보면서 질문하는 것은, "모세가 과연 모세오경을 썼는가?" 모세가 흔히 모세오경을 썼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는 것이다. 그들은 "아니다" 라고 외치는데, 왜냐하면 신명기 마지막을 보면 모세가 죽은 후에 일어난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니 어떻게 그가 썼으면 그런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모세 자기가 죽고 난 뒤의 일을 자기가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과거에는 이것을 교회가 어떻게 해석했는고 하니, 모세가 죽기 이전에 앞당겨 계시를 받아서 썼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베푸는 성만찬 없으면 지옥으로 가야하니 말이다.


이 성만찬을 사제가 주관하고, 이 사제는 교황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았고, 이 교황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으니, 그러니 사제가 시키는 대로만 지적으로 수용하면 되지, 감히 함부로 어디 성경을 보고 따지느냐는 것이다. 혹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제나 신부에게 물어보고,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 권위에 고개 숙이고 복종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성만찬이 효과가 있고 말이다. 감히 일반 교인들이 성만찬을 거행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교회가 주도권을 쥐고 마음대로 하는 시대가 지나갔으니 제대로 한번 따져보자는 것이다. 따져보니까 스피노자 같은 경우에, 이것은 성경은 하나 하나를 분석해볼 때, (그 다음은 별들에게 물어봐? 다음 두 번째 강의에 계속해서 나옴)


◈ 라이마루스 - 기독교와 예수님은 아무런 상관없다 !!


'라이마루스' 라는 사람은 신약성경을 건드린 사람인데, "기독교와 예수님은 아무런 상관없다"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이고, 기독교를 만든 사람은 나중에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메시야라고 하면 사람들이 호응할 줄 알았는데, 물론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막판에 판돈까지 다 날린 사람이 예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에 대한 영광은 이미 우리 속에 있는 선한 양심으로 충분하니, 옛날 구닥다리 신화의 개념으로 예수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분 휴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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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강의가 재미(?)가 좀 있나요? 다음시간에는 그들에 의해서 모세, 다윗, 예수, 그리고 사도바울까지도 다 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하는 짓은, 십자가를 거부하고 그것을 대체할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 질문 - ???


* 답변 - 공동체에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한 쪽은 엄청나게 금욕적이고, 다른 한 쪽은 상당히 자유분방(?) 하다는 것이다. 결혼을 해도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 여러 명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것은 객장에 온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서 하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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