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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1 22:10:28 조회 : 4910         
200700403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메시야 녹취 이름 : 한윤범(IP:59.6.189.170)
 

200700403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메시야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10과 메시야에 대해서 해봐야 되겠습니다.




우선 메시야라는 것이 다른 민족에서는 안 나오는 개념입니다. 오직 이스라엘 나라에서만 나오는 개념인데. 다른 민족에서 안 나온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에서는 메시야 개념이 나올 수 없다 그런 뜻이겠지요. 인간의 개념에서는.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하나님이 원래 원했던 그 메시야를 이스라엘 그들도 오해를 했습니다. 아마 인간 속에는 육적인 요소가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무슨 한 마디 하시면 자기 나름대로 일방적으로 재해석해서 이럴 거야. 라고 오해를 해서 엉뚱한 그런 메시야관을 나중에 품게 돼요. 그래서 갈라지는 간격이 점점 더 벌어져서 나중엔 충돌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알려주신 그 메시야관은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파악이 되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이 이 성경에 나오는데, 성경 로마서 16장 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그 메시야관을 인간들이 알 수 없는데 그 이유가 뭐냐? 로마서 16장 25절에 보면,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 전부터 감추었다가. 감추었다는 말은 은닉되어있다 이런 뜻이겠지요. 나타나지 않고, 그리고 나타난 것을 인간이 캐낸다고 해서 발굴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나타나는 것이 스스로 이렇게 나타나줘야 밀어줘야 비로소 사람들이 알 수 있는데 물론 성령이 와야 알 수 있는데. 창세전부터 감추어있던 그 비밀이 메시야라는 그 개념을 통해서 계속해서 감추어지는 연결, 연결, 전달, 전달되었습니다.




지금 이 말씀, 로마서 방금 읽었던 이 대목을 기억하시고, 성경 한 대목을 한 장 더 보겠습니다. 시편 110편. 구약성경 885. 시편 110편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얼마나 사람들로서는 해석이 불가능한 해석이거든요. 하나님이 너희들은 지금 하나로 보겠지만 나중에 되면 하나님이 둘로 보인다는, 하나님이 두 분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나중에 되면 세 분으로 나타나겠지요.




그 당시에 사람들은 하나님은 한 분이기 때문에 모든 일을 일괄 처리해서 하나의 통로로서 다 이렇게 다 깔끔하게 처리된다 생각했는데 이게 뱀 혓바닥 갈라지듯이 두 조각 나버리면, 하나님이 한 분 같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인간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모든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고 약속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여기 하나님이 둘로 갈라져 버리면, 새로 등장한 이 하나님과 이 주님과 인간 사이에 경쟁관계에 놓이는 겁니다.


                                                                                      도대체 우리가 하나님 계시고 우리는 인간 있고, 순종하겠나이다. 쉐마! 듣겠나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일이 처리된다고 그렇게 생각들 했었는데 하나님이 둘이 돼버리면, 아니 왜 하나님이 제 삼의 하나님이 등장해야 되느냐 말이죠. 우리가 엄연히 인간으로 잘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이 등장하느냐 말이죠. 지금 원수 이기는 것, 우리가 원수 이기면 되잖아요. 우리가 마귀 이기면 되잖아요. 우리가 열심히 잘하면 될 것 아닙니까? 왜 제 삼의 하나님이 등장하느냐 이 말이죠.




그런데 시편 110편에 보니까 그 하나님이 원수를 이긴다 하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하나님의 적을 이기고자했던 원수를 이기고자 했던 모든 수고가 도대체 그 가치를 이제 따져봐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지금 따로 하나님이 오셔서 주가 되셔서 원수를 이기는 것과 둘 사이에 하나님이 어느 쪽을 수용하고 인정하느냐에 대해서 비교되는 그런 시대에 돌입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 쪽을 포기해야 되겠지요. 말은 쉬워요. 우리 쪽을 포기한다는 말은 쉬운데, 사람이 뭘 포기할 때는 이유가 있어야 됩니다. 이유가. 우리가 도대체 우리가 생각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이, 니 포기해. 인간 쪽은 포기해. 도대체 내가 뭐가 잘못되었기에 인간 쪽이 포기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납득이 돼야 돼요.




그냥 포기한다는 쭈그리고 앉는 것은 이거는 뭐냐 하면, 꿍 참는 거고. 어떤 원한을 품고 있는지. 진짜 예, 저는 죄인입니다. 그거는 빈말에 불과하거든요. 너, 죄인이야. 예. 죄인입니다. 그런데 듣는 쪽이 기분 나쁠 수가 있단 말이죠. 내가 왜 죄인인데. 졸지에 가만있는데, 죄인입니다. 이거 말도 안 되잖아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어떻게 예수 믿고 난 뒤에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예수 믿고 난 뒤에는 부지중에 죄를 지을 적은 있지만 억지로 모의해서 죄를 짓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우리가요, 애들 사탕을 주머니에 가득 넣으면 돌아다니면서 뛸 때마다 뭐가 덜덜덜 쏟아집니까? 비실비실 사탕 다 떨어지잖아요. 질질 흘리고 다니지요. 사탕을. 우리는 이 몸뚱아리 가는 곳마다 죄를 질질 흘리고 다녀요. 오줌 질질 싸듯이 질질 흘리고 가는 거예요.




뭐, 계획 잡아서 조폭 만들어서 아주 계획적으로 죄 짓고 이거 안 해도 우리가 가는 곳마다 죄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데 뭐, 새삼스럽게 죄를 더 지어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그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부산 가면 부산서 죄짓고, 서울 가면 서울서 죄짓고, 대구가면 대구에 죄짓고. 어디가도 죄를 질질 흘리고 다닙니다. 그걸 말씀을 보게 되면 아, 이런 죄들을 질질 흘리고 다녔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죠. 




그러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내 주께서 죽어서 개입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님하고 인간하고 거래를 안 하십니다. 안 하는데 우리는 안 하는구나. 지금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아까 이야기했듯이 왜 우리는 하나님 우리하고 거래를 안 하고 우리한테 기대를 안 하는지 납득이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이유를 알아야 하지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느냐 이 말이죠. 열심히 하려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왜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은 왜 이렇게 저리 좀 가줘. 난 니하고 이야기 안 하고, 내 주 새로 갈라져서 나오는 하나님과 이야기한다. 라는 그런 식으로 왜 해야 되느냐 하는 겁니다. 그게 메시야관을 통해서 그게 밝혀지지요. 그런 이야기는 이걸 보면 하나도 안 나와 있어요. 이 책, 숙제 다 하셨습니까? 일단 다 보셔야 되고.



메시야라는 게 이것이 다른 민족에게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민족에는 없는데 이것은 인간은 육을 지니고 있는 이상 하나님이 다른 민족에 없는 걸 줬어도 이게 육적으로 잘못 해석해서 그 뒤에 나온 거예요. 그게 뭐냐? 메시야는 기름 부은 자다. 메시야가 기름 부은 자란 말이죠. 기름 부었다는 말은 이것을 바로 사람들은 뭐로 생각하느냐 하면, 혈육으로 생각해요. 육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가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더 우선적으로는 사람은 어느 지파가 어느 가문에서 계속적으로 세습적으로 기름 부은 자가 되느냐? 그러니까 기름 부은 자의 뭘 찾느냐 하면, 영원성을 찾아요. 영원성을 찾는데 이 영원성의 근거를 어디서 영원성 찾느냐 하면, 육적인데서 찾는다 말이에요. 혈통. 이게 잘못된 해석이거든요.




제사장이 옷 벗어주면 자식도 제사장 되잖아요. 지금 이스라엘을 영원하게 하는 것은 기름 부은 자가 영원하면 이스라엘도 영원하게 된다. 딱 머리에 떠오른 게 이거에요. 그들의 생각한 것은. 기름 부은 자가 인간의 혈통과 무관하게 주어진다는 생각은 초창기에 감히 생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한 분밖에 없고, 하나님하고 상대한 사람은 누구 밖에 없습니까? 천하 민족 가운데 택하신 민족, 거룩한 제사장 나라, 자기 밖에 더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줄 때 헛소리한 겁니까, 허공을 향하여 이야기한 겁니까? 대상이 있을 것 아닙니까? 대상이 누구에요? 자기 이스라엘 백성이니까 니가 아론에게 기름 부으라. 이거 분명히 이야기에요. 아론에게 기름 붓는 거 왜 못 부어요. 기름 부으면 되지.




아론에게 기름 부으라. 그 다음에 아론의 아들들이 동일하게 기름 부은 자 될 것이다. 어려울 게 뭐가 있느냐 말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떠나지 않는 이건 하나의 만남의 장소로서 설정한 것이 뭐냐 하면, 레위지파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혈통,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혈통이 이 나라를 영원히 지킨다는 거예요.




모세 당시에 이 해석이 다른 아이디어가 나올 수가 없어요. 이건 신학박사 천 명 달려들어도 이 해석 외에는 나올 해석이 없어요. 지금도 세대주의부터 천년주의부터 해서 소위 통합 측, 합동 측 모든 구약을 공부한 사람은 전부다 이 해석 이외에는 다른 해석은 생각을 안 합니다. 그 해석이 틀렸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를 못하지요. 그 해석을 들을 때, 감히 못해요.




하나님의 영원함,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하나님의 영원함은 레위지파의 영원함이 아니고, 유다지파의 영원함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7장에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십일조 이야기 나오죠. 그때 히브리서 7장에 십일조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함이 레위지파도 아니고 심지어 유다지파도 아니고, 세상에 멜기세덱이라는 아주 독특한 인물인데 멜기세덱의 뿌리가 이 땅에서 흔적조차 없어요. 모든 혈통은 흔적을 남깁니다. 이 땅에서. 이 땅에 영원한 흔적을 남겨요.




그런데 멜기세덱의 특징은 접촉점 이외에는 다른 흔적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이거는 접촉점이라는 말은 뭐냐? 위에는 있었는데 밑에는 없다는 말이 아니고, 위에도 없어요. 왜냐하면 아비가 없으니까.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자식도 없고. 그런데 있고.




이걸 다른 이방나라에서 이해를 하겠습니까? 아니, 자기 이스라엘도 이해 못했는데 이방나라 이해하겠어요? 육적인 생각을 가지고 인간은 태어나는데 육적인 생각의 인간들이 그 멜기세덱의 영원성을 사람들은 이해 못하고 그걸 뭐로 대체하느냐 하면, 레위지파의 영원성으로 대체한 겁니다. 마, 이걸로 됐다, 그만.




마치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이런 말 설교에 이렇게 성경 나와도 그만 우리 목사님, 영원히 있는 걸로 대체하고 때웁시다, 그만.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영원히 계시니까 우리 교회는 주님이 함께 계신 걸로 그걸로 그만 그렇게 교체해서 대체해서 생각해 봅시다. 안 보이니까 뭐 답답하다 이 말이죠. 안 보이는 건 답답하고, 보이는 목사는 수월하고. 그러니까 목사가 계속 있다는 걸로 계속 교회답다고 밀어붙이려 하는 겁니다.




이 교회 모든 문제 이것 때문에 생기잖아요. 눈에 보이는 영원성 때문에 생겨요. 멜기세덱을 사람들은 배척합니다. 왜? 멜기세덱은 인간의 육적인 것에 포착이 안 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가 없어, 멜기세덱은. 붕 떠서 천사 같아. 잡아야 잡히지를 않아요. 사람이 꽉 뭔가 쥐어야 쓰라 하면 쓰고, 내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는데 꽉 잡히지가 않으니까 주도권이 잡히지 않은 분에게 가 있으면 나는 쫄다구 되잖아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 더 이상 따 먹을 게 없어요. 다 따먹었으니까. 그게 선악과의 특징이에요. 마지막 카드를 따먹지 말라고 내민 그 카드마저, 판도라상자라 하지요. 다른 거는 다 봐다 이거는 들여다보지 말라 했는데 마지막에. 그러니까 마지막 카드로 제시한 선악과 따먹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더 이상 추가해서 하나님의 지시는 안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럼 하나님이 지시를 안 내리면 어떻게 하느냐? 일방적으로 구원하지요. 이게 복음이에요.




선악과까지도 따먹은 놈한테 무슨 제3의 제4의 제2의 법을 추가적으로 준다 말입니까? 해봐야 또 따먹을 건데. 선악과 따먹었다는 말은 이제는 다시는 니가 법 줘서 구원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그럼 뭐로? 메시야 주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들이 야, 법 안 주고 메시야 주겠다. 그러니까 이게 이방종교에서 있을 수 없는 겁니다. 메시야 줘서 한다는데 사람들은 그 메시야를 사람들은 혈통적으로 육적으로 재해석해서 눈에 보이는 메시야로서 계속 저희들 속에 간직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레위지파로 오는 거예요.




모세한테 율법을 안 줬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구원이 없었을까요? 갈라디아서에서는 430년에 아브라함 이후에 율법이 추가적으로 제시된 건데, 그 추가적으로 제시된 율법은 이미 창세기 전부터 구원된 사람들의 팔자를 고치는 것 하고는 상관없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천국 갈 사람의 복은 아브라함 안에서 이미 결정 났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이 여자가 애 배봐야 쌍둥이 같으면 두 명, 그 다음에 세 쌍둥이 같으면 세 명 정도는 있잖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배가 얼마나 큰지 아브라함 지 자식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는 얼마나 품었는지 만민을 품었다 이 말입니다. 이미 품고 시작한 거예요. 캥거루가 지 새끼 품은 것과 똑같은 거지요. 이미 품고 시작하는데 그것은 뒤에 선악과 같은 추가적인 법이 아무리 동원해도 이미 아브라함이 품은 운명에 대해서 고칠 수는 없어요.




그걸 제가 안과 밖으로 이야기했잖아요.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지옥 갈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아주 불쌍하기 짝이 없어요. 그 지옥을 한 번 봐야 되는데. 지옥을 못 보고 그냥 가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한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야 될 운명이에요. 그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이 아닌 겁니다. 그러면 혈통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혈통이 아니면서 혈통 속에 들어와야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신이 갈라져요. 하나님 여호와 계시고 또 주가 따로 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 혈통에서는 위에서 선조에서 후손으로 내려갑니다. 혈통의 법칙이. 선조 없는 후손은 없어요. 그런데 이 혈통을 공박하고 공격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후손이 있어서 선조 있다는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미래에 오신 그 분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조차도 예수님 때의 보기를 고대한 겁니다.




아브라함 선배는 누구냐 하면, 지 아버지지 뭐. 데라지요. 그런데 그건 혈통적 선배 아닙니까? 그죠? 아브라함이 기다린 것은 자기 혈통적 선조를 꺾어야 되는 그러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이삭을 바침으로 말미암아. 하여튼 혈통에 속하지 않은 선조가 나를 구원한다는 것을 겪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기존에 있는 혈통과 새로운 혈통 사이에 아브라함은 끼어서 갈등을 느껴야 했다 이 말이죠.




우리 아브라함이 생각한 아브라함 혈통, 혈통이라 하는 것은 선배 있어야 후배 있다든지 선조 있고 후손이 있다는. 아담 계통이 아담으로부터 내려오지만 이거는 거꾸로 쳐 올라가는 거죠. 이게 누가복음 3장에 족보가 나와 있지요. 누가복음 3장의 족보와 마태복음 1장의 족보의 차이점은,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그 족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언약이 다윗의 자식이거든요. 다윗이 어떻게 이 땅에 이 역사 속에 잠기느냐 그걸 하는 겁니다. 14대 올라가서 14대 내려가서 14대 회복하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하면, 나는 다윗언약을 한번도 포기한 적 없다는 거예요. 앞에 있는 역사는 다윗을 위한 역사고, 밑의 역사는 다윗을 조져버리는 역사고, 후에 예수님이 오신 역사는 마지막 14대는 다시 다윗으로 돌아가는 다윗을 회복시키는 역사고요. 다윗 왕 때 다윗언약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것만 한 것이지,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게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요.




그에 비해서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역사 가지고 역사를 논하되 보통 이방인들 그게 책이니까 역사를 논하되, 역사를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담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고, 거꾸로 차고 올라가는 겁니다. 올라가서 마지막에 아담을 뭐로 보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봐요. 이게 이 내용이 그 짧은 그거는 여기에 들어있어요. 여기 나중에 [인자] 부분인가 들어 있어요. 오늘 인자 부분까지 13장까지 다 해야 되는데.




거꾸로 소급함으로 말미암아 거꾸로 치고 들어오면 사람이 어떤 특징이 있느냐 하면, 내가 이렇게 바나나를 먹고 있는데, 바나나는 길지요. 내가 바나나를 이렇게 먹고 있는데 뭔가 개미들이 와서, 개미가 바나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거꾸로 파먹을 때 이쪽은 뭘 느낍니까? 눈으로 보면서 뭘 느껴요? 어, 내가 현재 내 소유화시키는 것이 저쪽 개미한테는 의미가 없다는 걸 느끼죠. 왜? 파먹고 들어오니까. 파먹으면 결국 내가 그동안 가졌다 하는 게 다 날아가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혈통은 현재 우리가 간직하고자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전부다 탈취하는 과정으로서의 쳐들어오는 겁니다. 여기 이 책을 내가 아무리 봐도 메시야라 하는 것이 어떻다 설명해 놨지만 메시야가 나를 파먹는다 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메시야가 나를 자아를 완전히 파먹어서 자아를 털 끝 만치도 그런 메시야적인 그런 영적인 해석이 가미되지 않았어요. 이 책은. 왜냐? 신학자들이 이게 장난감이거든. 신학 자체가 장난감이니까 자기 잘남을.




굴 파먹듯이 다 파먹어서 왜 그러냐 하면, 기존의 혈통의 메시야관을 공격하고 구박하는 데는 이 방법 밖에 없습니다. 메시야가 와서 나를 파먹는 방법 외에는 메시야를 알려 줄 은닉된 메시야가 나타난 방법 이외에 이 방법 외에는 은닉된 메시야가 나타날 방법이 없어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참 답답한 것이 지식으로 많이 안다는 것이 결국 그 지식이 계속 소유로 축적이 된다는 그 허점을 이 사람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말이죠. 목사들이 이걸 보고 그냥 교회에서 강의하거나 신학 강의해 버리면 자기 지식자랑 밖에 안 되거든요. 뭔가 메시야가 와서 우리가 생각한 바리새인이 생각한 메시야가 충돌을 일으켰다면, 도대체 유대인들이 바보가 아닙니다. 유대 신학자들이 바보가 아니거든요. 언어나 모든 면에서 완벽을 기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 유대신학은 뭐라고요? 말씀의 상황화.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말씀 덩어리. 이게 유대신학이에요. 뭐, 완벽에다 세상에 이런 완벽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걸어 다니는 말씀. 이게 유대신학이에요. 그런데 그게 예수님을 죽였다 이 말이에요. 그런 인간들이.




내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나는 말씀으로 흠이 없는 자라. 이게 누굽니까? 사도 바울 아닙니까? 몽땅 다 빼앗겼어요. 완전히 메시야란 개가 다 파 먹혔습니다. 심지어 눈마저 날아가 버렸어요. 몸에는 주님이 들어있다는 흔적을 가졌고. 일종의 몸 안에 들어있는 칩이죠. 니는 내거야 하는 칩. 그걸 빼면 안 되죠. 약한데서 강함이 있는 거니까. 하나님께서 너는 내거야 하고 문신 새겨놨는데 그 문신을 지가 빼달라고 세 번 기도해도 소용없어요. 그 가시가 있어야 그 가시가 딱 떨어서 계속 일을 시키기 때문에 그 몸에 가시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들은 어떤 가시가 있는 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똥배 나온 가시.




기존의 메시야는 혈통적 메시야관이었습니다. 이걸 이 책에서는 전혀 설명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저 머리로만 굴리려고 하는데. 그렇게 혈통적 메시야관을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 혈통적 메시야관이 시편 110편에 의해서 '주께서 내 주에게' 라고 하면서 그 주에게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건 뭐냐?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다 이 말이죠. 너희들이, 나중에는 하나님 믿는 그들이 원수 돼버려요. 바리새인들이 원수 아닙니까? 십자가 원수 누구에요? 바로 시편 110편 믿고 있는 대로 메시야를 고대하는 그들이 메시야의 원수다 말이죠. 이걸 그 당시에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 사람도 상상 못하는데 신학자들도. 재림 예수를 기다리는 그들이 재림 예수의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아닙니다. 라는 소리를 하려면, 재림 예수 기다리지 말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게 아니고 재림, 용어가 재림 예수든 복음이 됐든 십자가 됐든 뭔가 우리 자체가 진짜 메시야가 왔으면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돼요. 어느 정도로? 사도 바울처럼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난 상태에서 비로소 그 변화를 일으키신 분이 메시야다. 라고 해야 됩니다. 그 변화는 제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은 갉아먹는 그러한 메시야다 말이죠.




그 한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가 하는 말이,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니가 복이 있구나. 이렇게 칭찬을 늘어지게 받아놓고는 그 다음에 얼마간 돌아서서는 내가 고난 받아야 된다. 이렇게 하니까 주여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니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 이게 원수 아니고 뭡니까? 니가 나를 넘어지게 한다 이 말이죠.




지금 한국교회 전체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그걸 가르치고 있어요. 예수 믿는 그들이 예수님을 자빠뜨리고 짓밟고 또 십자가 못 박은 그러한 교육을 세뇌를 받고 있어요. 지독하게 받고 있지요. 그것은 바로 인간 자체에 메시야가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왜 예수님께서 혈통으로 왔는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설명할 것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야의 설명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메시야가 육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뭐냐? 그거는 이 뒤에 나오는 인자란 대목이 있지요. 그걸 가지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책에서 말하는 메시야가 뭐냐?




메시야를 가리킬 때에 이 책에서 그러니까 이 책 봐야 돼요. 뭘 잘 이야기 했느냐 하면, 사람들이 그 당시 민중들이 대중들이 '대중'이란 말은 현대사회니까 민중이라 합시다. 그 당시 민중들이 메시야를 어떻게 이해했고 그리고 그 민중들이 그렇게 이해하도록 부추긴 유대신학자들의 메시야관이 뭐였는가? 그거는 바로 정치적이었다. 그 대목이. 참, 그거는 이구동성으로 책 좀 봤다 하는 사람은 다 이야기해요.




그런데 만약에 정치적이란 말만 던져놓고,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오해해서 죽였습니다. 말만 해버리면, 마치 정치적이 아닌 걸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인 줄 착각하게 되잖아요. 정치적인 것 때문에 예수님 죽였다는 그 이야기한 그들이 교회 세우면 정치적으로 논다니까. 아니, 사람이 정치적으로 놀아서 예수님 죽였다고 하면 정치적인 어디서 어떻게 발생되었는가를 설명해 줘야지. 설명을. 그 설명을 이렇게 하다보면, 세상에 정치적에서 자유로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정치적일 수밖에 해석,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헤롯 보좌했던 마태복음 2장에 나오죠. 헤롯이 동방박사 왔을 때 박사들한테 의존할 때 그야말로 박사들 아닙니까? 헤롯의 박사들, 신학박사들. 그 신학박사들이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게 했다면, 그들이 구약성경을 어떤 식으로 해석했기에 정치적 메시야를 그릴 수밖에 없는가? 이게 나와야 된다 말이죠.




칼 바르트가 악마를 설명할 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성경에 악마와 귀신들 설명할 때 성경의 악마, 귀신을 부인하지 않았는데 칼 바르트는 그걸 어떻게 해석했느냐 하면, 정치적으로 해석했어요. 히틀러로 봤어요. 칼 바르트가. 영적인 악마, 영적인 귀신이 아니라 그 귀신, 악마라 하는 것은 영적이 아니라 실제적인 정치적인 핍박을 가하는 쪽이 악마다. 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칼 바르트가 그 위대한 신학자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기본적인 성경해석의 자기 틀, 인식 틀이 있잖아요. 어떻게 해석했기에 성경으로서 악마가 현재 있는 히틀러라든지 그런 세상 권력자냐 라고 볼 수 있느냐 하는 그걸 그 경로를 추적을 해 봐야 됩니다. 그럴 때 칼 바르트가 엔간히 당하긴 당했구먼. 핍박을 받긴 참 엄청나게 받았구나.




목사로 면직 당하고 노회로부터 강제로 추방당하는 과거의 전력의 그것이 자기 의로 정치적으로 또 활용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위대한 간증인이나 되는 것처럼. 그걸 극복하려면 그걸 극복한다는 말은 이미 영적인 사람이 아니면 극복할 수 없어요. 자기가 남들한테 억울함을 당하든지 피해자라든지.   




사람이 자기가 가해자가 아니면 사람은 주님 앞에 겸손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해자란 느낌이 없으면 자꾸 피해자 느낌을 받아버리면, 모든 것이 나의 적이 되고 그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안 느낍니다. 그런데 내가 가해자 입장에 서는 것만큼 이것보다 더 겸손한 게 없어요.




제가 이렇게 강의하고 이러하면, 사람들은 왜 당신은 자꾸 우리 자신을 죄인이라고 몰아세우느냐 하는데 우리 자신을 가해자 입장에 세울 때 모든 것에서 고맙고 감사가 나오는 법입니다. 가해자. 내가 이 집안에서 가장으로서 저지를 해놓으니까 내 아내가 고생한다 할 때 아내가 상 차려 줄 때 고맙다. 이렇게 되지요. 내가 만약에 피해자 느낌이 들면 아무리 아내가 밥상 잘 차려줘도 밥상 차버립니다. 내가 니 돈 벌어주는데 밥상 꼬라지, 이게 콩나물 이게 다가? 밥상 엎어버립니다.




이게 사람이 항상 가해자란 느낌을 받아야 누구한테도 공손하고 잘난 체 안 하고 겸손하고 마음을 낮추지요. 이게 광야에 담긴 비밀이에요. 모세는 하나님께 속하고 사십만 대군은 모세를 조지는 가해자로 등장해서 광야는 마음을 낮추게 합니다. 광야의 통과는 마음을 낮추게 하지요. 지독하게 너희들이 여호와를 원망했구나. 그러면 그들은 멀쭘하지요. 아니, 밥 없어 밥 달라했고, 물 없어 물 달라 하고, 고기 먹어야 되는 게 그게 무슨 가해자냐?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놈아, 너 때문에 고생한 사람 생각 안 하나? 누구에요? 모세.  




정탐군을 보내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피해자가 돼요. 누가 가해자가 됩니까? 믿음 없는 열 명의 정탐군 때문에 졸지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피해자가 돼버립니다. 지금 메시야는 모든 인간을 가해자로 만들기 위해서 메시야 자신은 피해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인간이 놓치고 있는 정치적인 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간에게 정치적인 면이 나오는 것은 뭐냐? 자기를 피해자로 만들어서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는 정치적인 발상, 그 발상을 메시야는 하나님은 놓치지 않고 그 발상 틀을 그대로 가져오시면서 그것의 역전극을 벌입니다. 그 안에서 역할을 완전히 뒤바꿔 버립니다.




자칭 나는 피해자다. 나는 하나님이여, 나는 평생 살아도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책임지세요, 하나님. 하나님은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입니다. 라고 여기는 그것을 그것으로 인하여 피해 보며 사람으로 등장하신 분이 메시야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날 때부터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 저주 받잖아요. 그거 자동적으로 뭡니까? 고생 많지요. 고생 많으니까 자기를 뭐로 봅니까? 자기를 피해자로 보는 자기를 그걸 가해자로 바꾸는 그런 능력은 인간에겐 없습니다.




그게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노동으로 얻지 않은 자신의 혈통으로 얻지 않은 이삭을 주고 이삭을 다시 엉뚱하게 피해자로 만들어버리지요. 이삭 왜 죽어야 됩니까? 아브라함 살리기 위해서 죽잖아요. 이삭은 아브라함을 위한 대속물입니다. 죽어야 될 것은 아브라함이지만 하나님께서 뭐 보고 뭐 살린다? 이삭 버리고 누구 살린다? 이삭 바친 아브라함 살리잖아요. 그때 아브라함이 아는 거예요. 니 덕분에 내가 산단 말이죠.




내 혈통에서 안 나오는 무엇이 혈통만 고수하는 나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시키는 겁니다. 이것은 아비도 없고 엄마도 없고 후손도 없는 멜기세덱에게 한 순간적인 접촉점처럼. 그런데 아브라함의 뭐라고 합니까? 아브라함의 족보라 하지요. 족보라 하는 게 아니라 용어가 뭡니까? 유다지파, 멜기세덱, 반차.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서.




멜기세덱이 무슨 반차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반차라 하는 것은 역사적 용어거든요. 역사에 뭔가 원인 결과가 있을 때 반차지, 하늘나라에 아무도 족보도 없는데 무슨 반차가 있어요. 그게 뭐냐? 반차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은 기존에 잇는 모든 반차, 역사적 계열을 저주하는 거예요. 그걸 아주 부셔내 버립니다. 갉아 먹는 거예요.




하여튼 메시야는 와서 우리가 알고 있는 용어를 다 갉아 먹어 버립니다. 갉아 먹으면 목사님, 남는 게 뭡니까?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죠. 신학적인 개념을 파악해서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신학적인 지식을 딱 품에 안아서 구원 받는 게 아니고, 십자가 지식을 품고 있다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치매 걸리면 그거 놓쳐버리니까. 안 돼. 큰일 나잖아요. 육십 평생 예수 믿다가 치매 걸려서 똥 싸고 오줌 싸다가 예수 오는데 (      ) 이러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으로 구원 받는 게 아니에요. 멜기세덱 반차로 구원 받는 그게 메시야는 멜기세덱 계열입니다. 이쪽 계열이 아니고. 유다지파는요? 유다 자손, 유다 계열은 아닙니까? 유다계열은 레위지파를 구별하기 위해서 등장한 겁니다. 둘 다 마찬가지인데 유다나라 구원 받습니까? 하여튼 레위지파는 아니다 이 말이죠.




레위지파가 유다지파의 특징은 레위지파는 옷 벗어주면 왕 돼요. 유다지파의 다윗 계통의 왕은 이것은 옷만 벗어줘서 왕 되면 전부다 가짜입니다. 그게 다 가짜에요. 솔로몬도 마찬가지고. 솔로몬 이후의 왕들은 전부다 지 마음대로 왕이에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그때그때마다 왕답게 해 줄때만 왕이 되지, 다윗의 촛불 덕택을 보고 있는 겁니다. 다윗의 촛불 등불 꺼져버리면 다 꺼져버리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게 어려운데. 그림으로 그려봅시다. 다윗은 영원해요. 그리고 다윗이 왕입니다. 그럼 다른 왕은요? 다른 왕이 없어요. 이게 레위지파는 아론제사장이고 그 다음 제사장 있잖아요. 그런데 다윗의 왕은 왕이 다윗뿐입니다. 끝이에요. 물론 다윗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지요.




그 밑에 있는 왕은 맨 다윗 왕의 재탕이에요. 다만 재탕인데 그 솔로몬이 다윗 왕의 재탕이란 말이 아니고, 솔로몬을 재탕되게, 그러니까 솔로몬으로 하여금 솔로몬을 없애버리고 가위질 해버리고 다윗 될 때만 솔로몬 왕이 왕입니다. 그게 언약의 법칙이에요. 언약이 당겨줘야 언약이 있어야 언약이에요.




제가 3월 17일 날 주례할 때 유명한 말 했지요. 나 혼자 유명해요. 다른 사람은 안 유명해요. 은닉 된 건데. 아내는 없는 거예요. 아내는 없어요. 여자만 있을 뿐인데. 여자가 언제 아내 되느냐 하면, 남편이 사랑해 줄 때만 아내가 돼요. 그런데 한 십년 살다가 남편이 아내를 사랑 안 하면 그거는 아내가 안 돼버리고 뭐가 되느냐 하면, 여자가 돼요. 동거하는 여자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오년 뒤에 사랑해 주면 비로소 또 아내가 되고, 또 사랑 안 해주면 또 여자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그걸 라캉은 뭐냐 하면, 여자는 없다. 다만 남자의 결핍성 밖에 없다. 여자란 게 없데요. 남자의 결핍성 밖에 없답니다. 이게 나중에 폐경기가 되면 테스토스테론 해서 남성 호르몬이 남고, 에스트로겐 여성호르몬이 줄어들어버리면 여성의 모든 것이 원래 테스토스테론 하는 남성호르몬만 있는데다 에스트로겐 들어가서 여성되거든요. 이게 끊어져버리면 남성화 돼버려요. 목소리도. 굵은 목소리에다 행동도 남성, 얼굴도 남성화되고, 여성적인 면이 없지요.




그래서 여자들은 그것에 화들짝 놀래서 쳐 바르게 됩니다. 옛날 젊을 때는 페르몬 향수도 퍼 발라서 옛날 여자로 돌아가기 위해서. 여자로 돌아가는 이유가 뭐라고요? 남자의 보충물이 되기 위해서. 어려운 말이다. 남자야, 나 필요하지? 날 원하지? I need you. 하는 거 있잖아요. 남자로부터 계속해서 원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요건 딴 이야기인데 이거 이야기해야 되겠어요. 이야기하면 재미있는데. 성경에서 남자가 사람을 구원하는 게 아니고 여자가 구원하거든요. 여자의 아들입니다. 여자의 특징은 아들만 달랑 사랑하고 있어요.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어요. 여자의 특징은 뭐냐? 남성하고 다른 점이 남성은 독립적이지만 여성의 특징은 순응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순응이에요. 이란 여자들이 데모하지 않습니다. 그냥 순응이에요. 북한 여자들이 김정일한테 대들지 않고 순응이에요.




지금 이데올로기가 사상이 뭐냐?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그거 하지 않고 순응하는 주특기를 갖고 있어요. 이게 뭐냐? 여자는 결혼하고 난 뒤에는 자동적으로 자아를 남편한테 반납합니다. 다 가라. 그리고 다 줘. 다 가져가라. 남자들이 멋도 모르고 여자를 한번 물었다가 이게 세퍼트 돼서 물은 놈은 물려 버려요. 꽃뱀 하잖아요. 물은 놈이 물려서 빼도 박도 못 해. 이게 여자의 본성을 몰라서 그래요. 그냥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거든요. 내꺼 줄 게 니꺼 전부를 달라. 이래 되는 거예요. 무섭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결혼하는 사람이 육신의 고난이 있으리라. 빼도 박도 못 해, 이제는. 거기다 애까지 낳아 보세요. 이거는 큰일 나지. 이제 애까지 낳으면 여자는 아들만 있으면 되거든요. 거기다 애들 세 명까지 낳으면 이거는 돗대지, 뭐. 세 명 갖고 있으면 이거는 하얀거탑이다. 부러울 게 없어. 코끼리 세 마리 올라탔는데 뭐가.




여성의 순응을 남성들이 이거 인력으로 못 배웁니다. 배울 수가 없어요. 주님의 가시가 있어야 우리가 여성이 되어서 주님의 신부가 되어서 주님 앞에 복종하지, 인간은 남자는 튀려고 해요. 개성을 가지려고 해요. 자기만의 개성, 남하고 다른 어떤 튀는 거. 그거 굉장히 안 좋거든요. 독자적인 노선, 그거 갉아먹어야 돼요. 주께서 갉아먹어버립니다.




어쨌든 정치적인 속성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는 그것을 그럼 정치적인 이야기를 해야 됩니까? 할 필요 없어요. 왜? 구약성경 전체가 놀랍게도 정치적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방신이라는 게 뭐냐 하면, 이방신을 믿는 게 아니고, 정치화된 신을 수입하는 겁니다. 이방신을 수입할 때 납득이 되는 거예요. 유다 왕이 이스라엘 왕이 이방신을 수입할 때는 충분히 수입이 가능한 것은 이미 정치화로 내용이 바뀐 신이기 때문에 충분하게 수입합니다. 동시에 자기가 믿고 있는 여호와를 정치화시켜버려요.




그게 여로보암 1세. 처음에 북 이스라엘, 유다 갈라질 때 여로보암이 힘차게 거침없이 하이킥 하면서 나라 갈라진 이유가 뭐냐? 대다수가 자기편이기 때문에, 열 지파가. 열 지파가 자기편이에요. 교회에서 자기 편 많아 보세요. 그거 신나지요. 교회는 진리 편이 아니고 다수 편이에요. 교회 자체가 정치적이라서 그래요.




교회 자체가 정치적이어서 교회가 교회답게 되려면 정치적인 것을 구박을 해야 되고 비난을 해야 됩니다. 교회 스스로가. 그럴 때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으로 구원받지 교회로 구원받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야 됩니다. 보이지 않는 분 능력으로 구원받지 보이는 교회로 구원받는 게 아니거든요.




구약성경에서 이방신을 수입했다는 이 말은 이미 이방신들의 신들은, 또 이거 여러분 알아야 돼요. 여러분 오늘 알게 많은데. 이방신들은 왕의 후광이라. 왕의 후광. 왕의 벽을 치장하는 뒤에 모자이크 장식품입니다. 신을 배경으로 깔아야 애들은 무릎을 꿇어요. 이방신들은 모든 것에.




주몽 보세요. 신녀들, 신탁녀. 사실 신탁녀 아닙니까? 신의 오라클, 신의 계시를 받는 여자. 그게 있어야  다물군인지, 입 다물든지 벌리든지 복종하는 법입니다. 하나의 배경이에요. 그래서 옛날 역사들은 뭐냐 하면, 왕이 되면 왕부터 새로 역사를 새로 시작합니다. ‘소화’ 몇 년 나오지요. 그것은 뭐냐 하면, 우리 이번에 FTA하고 제3의 건국이라고 신문에 났던데.




나라가 있고 왕이 있는 게 아니고요, 왕이 있고 나라가 있어요. 나라 자체가 이게 사무엘상에 나오지요. 나라 자체가 왕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왕이라는 것이 이게 신이 있고 인간이 있다면, 인간이 신에게 나가는 것은 혈통으로 나가죠. 혈통으로 해서 마지막 최고의 왕이 신과 직접 교류가 가능한 왕입니다.




만약에 김씨, 이씨, 박씨, 최씨, 여러 씨족들이 있다면 이 씨족들 가운데서 한 씨족이 신의 도움으로 영웅이죠. 영웅적 활약을 해서 영토를 넓히고 아주 비옥한 공간을 마련했다면, 그 이 사람 왕만 왕이 되는 게 아니고, 그 뒤에 세습적으로 왕 가문 자체가 다른 지파를 이겨서 되는 겁니다.




이게 신라 시대 때 삼국분열 때 하고 통일 시대 때 보면, 처음에서 통일신라 때 뭐냐 하면, 돌아가며 했어요. 그게 뭐냐? 이사금. 이사금이라 하는 건 이빨이에요. 이빨 보고 했다 말이죠. 이빨 보고 했던 시대가 일단 통일되고 난 뒤에 어떻게 됩니까? 그전에도 물론 했지만 확연하게 왕이란 제도가 있어요. 왕이 되는 겁니다.




이게 뭐냐 하면, 대구의 서문교회 원로목사 이성헌 목사입니까? 그런데 그 아들이 뭡니까? 담임목사 됐잖아요. 충현교회도 김창인 목사 그 아들, 그 아들 아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맞지요. 저 유명한 금란, 김홍도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되지요. 이게 뭐냐 하면, 지금 북한도 마찬가지고. 북한이 제일 좋은 예네.




하나의 왕국을 안정된 씨족이 있을 때 질서가 잡힌다는 거예요. 그럴 때 이것은 처음에 생긴 그것을 긍정한다는 겁니다. 처음에 생긴 왕을 주몽을 긍정하면 그 긍정이 계속 긍정에서 뭐가 이어지는가? 계속 긍정이 이어지는 거예요. 긍정에서 긍정으로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근데 이미 이러한 신들이 이렇게 필요한 신들이 뭘 해줘야 되느냐 하면, 과연 신이 우리와 함께 있는가를 확인작업에 들어가죠. 그게 뭐냐? 영토를 넓혀줘야 돼요. 위대한 영웅을 계속 어떤 업적을 남겨줘야 되는 겁니다.




업적을 남겨줘야 되는데 만약에 업적이 시원치 않고 뭔가 백성을 학대하고 여자만 밝히고, 호의호식하고 이러면 밑에 잇던 신하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신의 뜻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저를 죽여 놓고 부르투스, 너마저! 안 캅니까? 이것은 자기가 시저를 죽이는 게 아니고, 신의 뜻에 의해서 죽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죽였더라고 계속 신은 유지되는 거예요.




세상에 당회장 목사 뽑으면서 신의 뜻 안 찾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다 신의 뜻 찾지요. 당회장 목사 뽑을 때 철야하고 기도하고 이러잖아요. 신의 뜻 구한다고. 그래 뭐든지 신의 뜻대로 당회장 구해서 신의 뜻대로 돈 20억 날리고 도망치고. 다 신의 뜻이라 하니까.




유대신학에서 메시야가 정치적이라 이 말은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 어떻게 했느냐 하면, 메시야의 고난을 유다 자기의 고난으로 봤습니다. 자기가 현재 반성하고 있잖아요. 포로 잡히고 난 뒤에 회개하잖아요, 회개. 반성하며 회개하잖아요. 회개한 자에게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 했거든요. 지금 회개하잖아요. 회개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나라가 회복되지 않고 계속해서 강한 나라가 들어오지요. 이 책에도 약간 언급되고 있는데 다니엘, 조금 있다 다음 시간에 설명할 게요.




강하게 올 때 이거는 의인으로 받는 고난이지요. 그걸 가지고 아까 제가 이걸 피해자라 피해자. 강한 피해자 의식을 갖고 있을 때 피해가 많으면 많을수록 고난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마저 몽땅 보상 받으려 하면 엄청난 폭력적이어야 되지요. 왜? 자기가 폭력에 많이 당하면 당했으니까. 그 손해 본 것 다 갚아주려고 하면 몇 십 배 더 갚아줘야 되지요. 폭력적이란 말은 그만큼 더 휘황찬란하고 영광스럽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바룩스라든지 에스라 이런데 묵시적으로만 등장하는 거예요. 작살내요. 작살. 서서이가 아니라 박살낸다고요. 박살내려면 적이 있어야 돼요. 적이 없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적이 뭐냐? 바로 현재 이 나라를 핍박하는 마카비부터 일어나는 사대천왕. 바벨론, 메대파사, 헬라, 로마. 어떤 사람은 다섯 개, 네 개라 해요.




크세르크세스 왕, 그게 다리우스 왕의 아들이죠. 그 사람한테 까불다가 터진 영화가 300 하는. 그 300 그걸 히트 달아놨는지, 이거 [정죄할 이 없느니라] 로마서 책 내고, 연이어서 책 나오는 게 [질문답변 300]. 내가 보니까 내가 뽑아보니까 1800페이지 나와요. 질문답변, 옛날 십자가마을 게시판에 1800페이지 나와요. A4 용지 1800장입니다. 그걸 추리고 추려서 그걸 한 600페이지로 줄이려고 하니까 잘라내야 하지요. 양무리 하는 거 잘라내고 쓸데없는 거 잘라내니까 300페이지 해놓고 상, 하권은 또 300페이지 작업에 들어가요. 300 하니까 기드온의 300 그 비슷하게 되는데.




사대천왕이 있다는 거예요. 이 사대천왕이 다니엘이 사대천왕에서 그러면 이게 짐승 아닙니까? 그럼 짐승이라면 피해자가 있어야 돼요. 피해자는 누구입니까? 피해자는 바로 누구에요? 유다지파죠. 그러니까 도대체 성경을 보니까 완벽하죠. 그 자체가 완벽하지요. 이런 해석이 안 되면 모조리 이단이라는 말이 맞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 당시 죽어도 맞다 하니까.




우리가 지금 궁금한 게 이 책을 보면서 유대신학의 메시야를 쭉 보면서 도대체 맞는데 바리새인들이 맞잖아요. 지금. 맞는데 도대체 예수님은 또 무슨 생각을 가지고 맞는 걸 피해서 오느냐 말이죠. 그럼 예수님이 끄집어내는 메시야 코스는 무슨 코스냐? 그건 다음 시간에.


        


 이미아(IP:211.♡.190.65) 07-04-11 22:24 
목사님.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시고 계셨는지요?
사이트에 반가운 이름 석 자가 올라와 있네요.
사모님과 아이들 모두 건강하시지요?
오늘과 내일만 지나면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게 되네요.
건강한 모습으로 사경회때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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