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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9 21:05:22 조회 : 3607         
우리교회 수요설교(5월 9일)문 이름 : 이근호(IP:220.230.122.170)

주의 일어나심



2007년 5월 9일 본문 말씀: 이사야 33:1-3



(사 33:1)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사 33:2)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



(사 33:3) 『진동 시키시는 소리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며 주께서 일어나시므로 인하여 열방이 흩어졌나이다』



성경을 보면서도 상식적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 성경책을 그저 하나님의 자유분망함을 넘쳐나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자율권에 대해서 인간들은 감히 포착할 생각도 못하고 그냥 방치하는 식으로 딴 전을 피기 마련입니다.



워낙 마음대로 일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인간은 그냥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알 필요조차 없다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포자기를 당연시하기도 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에 어떤 일관성도 없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그 어떤 틀로 짜여질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 와서 보면, 하나님의 뜻은 최종적으로 확정된 틀을 가지고 찾아오십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모두 십자가를 증거하는 용도로 집합시키십니다. 그 십자가 중심이 구약이나 오늘 본문에서 이런 식으로 표출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원수들이 자기 백성들을 공격하도록 하십니다.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은 스스로 자기의 힘을 의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을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 버립니다. 그리고 난 뒤 하나님께서 일어나사 하나님께 대들었던 모든 세력을 다 물리쳐버리십니다.



바로 이 방식이 고스란히 신약의 십자가 안에 담기게 됩니다. 참된 하나님은 온 인류의 역사 가운데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나타내셨습니다. 다른 민족에게는 철저하게 낯선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의견이나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내세운 맹세나 언약을 차후에 계속 성취해 나가시는 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인간들과 의논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멋대로 원칙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신 것입니다. 일관된 목적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원칙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결코 참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신약의 십자가는 이 원칙의 최종 완성형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로 하여금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하시고, 주님은 자신의 죽음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에 모든 것을 일임합니다. 그리고 난 뒤 예수님은 약속대로 죽음 속에서도 다시 나오십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백성은 죽음에도 지지 않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사사기 3:7-9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속에 하나님의 일관된 맹세와 언약을 싣기 위해, 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도록 하십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태어나면서 죄인이기에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이 항상 자기 위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방민족과의 차이나는 것은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에만 전적으로 매달리는 속성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사 적들을 물러쳐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백성은 새삼스럽게 “여호와와 누구신가?”라고 해서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 하신 일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바도 이것입니다. 마태복음 16:15에 보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되물어십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도 이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천성적으로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삽니다. 교회를 다녀도 그 다닌 세월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득이 받아 챙겼느냐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신만이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참으로 원하시는 바는 이런 ‘이득 챙기기’가 아닙니다. 도리어 무엇을 챙기기 위해서 자기 절제를 하고 자기 관리에 나서는 그런 자아를 버리고 오직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하는 점에 두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고 고민거리와 걱정거리를 품고 있어도 최종적 시선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가있으면 그런 고민과 걱정도 순식간에 다 달아납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찾아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욥이나 욥의 친구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변화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욥은 오로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바다를 건너갈 때에 갑자기 불어닥친 풍랑으로 인해 죽음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황급히 예수님을 깨우고 예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지만,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 그들의 관심사는,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가 있게 됩니다. ‘저 분은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나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중풍이라는 고질병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예수님에게 왔던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의 의도대로 들어주지를 않습니다. 도리어 엉뚱한 말씀을 던지면서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 엉뚱한 말씀이란 곧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입니다.



이러한 발언은 우리 인간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차원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해야 될 일에 대해서 그 중풍병자를 이용하신 것입니다. 인간들은 마치 훌라후프를 하나씩 차고 다니는 것처럼 기껏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원하는 바를 주님에게 요구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요구를 위하여 그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요구란,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즉 예수님에게는 임의로 죄 사하는 유일한 권세자라는 사실입니다. 평소에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잊고 살다가 자신에게 죽음의 위기를 느낄 때, 비로소 모든 기대를 오직 십자가 완성에다 쏟아넣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소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관심을 우리 자신에게 두지 말고 예수님에게만 두고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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