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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7 15:23:36 조회 : 484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철학과 신학의 허상 시리즈 이름 : 이근호(IP:220.64.214.3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저 정동호 역 책세상(서울: 2005)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흉내 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큰 스승으로 알려진 예수지만 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저자가 앞장서서 용감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저자는 주제를 정해놓고서 자신의 인생관을 피력해 놓고 있다.



그런데 자칭 스승이 되려면, 기존의 모든 견해와는 달라야 하고 독보적 입지를 갖추고 개성이 만발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자기 것 빼놓고서 다 부수고 또 부셔야 한다. 그래야 추종 세력을 얻는다. 이런 점에서 책 제목은 저자의 의도에 적당하다.



‘차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은 고대의 페르시아 예언자로서 영어로는 ‘조로아스터’라고 불리운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기독교 세력권에 의해서 이단사상으로 분류되었다는 점에서 저자 자신을 차라리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이단사상의 주동자로 불리우기를 자청해서 ‘차라투스트라’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싸우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경멸의 대상이 되고 싶어 했다. “하늘을 나는 자가 그 누구보다도 많은 미움을 받게 마련이다”(p.106) 기존의 기독교 정신 세계와 정면 충돌을 야기시키고 싶어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반대로 꺽으므로서 그동안 인간들이 몰랐기에 심하게 핍박해 왔던 참다운 진리의 세계를 소개해주고 싶어 한다.



그러면 니체가 환희와 정열을 가지고 전파하고자 했던 그 참다운 세계관이란 어떤 것인가? 기존의 기독교에서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대중들을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즉 인간들은 초월적인 신에게 쫓기다시피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초인(차라투스트라가 제시하는 새 인간상)은 “나는 하고자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하고자 한다’는 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이 과연 인간에게 있을까?



니체는 말한다. “어린 아이를 보라. 그들은 그냥 놀지 않는가!”라고 말이다. 즉 순진무구하게 스스로 자기 놀이를 시작하고, 긍정하면서 창조 하는 어린아이들이 참으로 초인에 합당한 품성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소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초인이라는 것은 ‘어린아이 같이 놀기’인데, 이 순진무구한 창조성을 질식하듯이 통제하고 징벌하는 자들을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들에 대해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누군가? 바로 신의 말씀을 앞장 세우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저자의 주장을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목소리 다발로 묶어진다.



신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사람의 작품에 불과하며 망상에 불과하다.(p.48) 신의 음성을 들을 생각말고 대지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원래 인류의 신이란 하나가 아니라 다수였다. 이는 곧 신은 인간이 창조해낸 산물임을 증거한다. 인간의 신체는 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대지(大地)에서 왔다. 따라서 그 대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자신을 대지가 요구하는 다른 신체로 해석하여 비인간처럼 살아가는 셈이 된다.



대지는 우리 신체가 뿜어내는 창조성을 반기도록 되어 있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창조성을 짓누르는 모든 세력에 반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을 앞장 세우면서 우리의 창조성을 짓누르는 자들이 그동안 우리들에게 강요한 특수한 개념들이 있었다.



그것이 ‘피’요 ‘죄’라는 그런 개념들이었다. 인간 세상에는 ‘어리석거나 바보’ 같은 자는 있을 지라도 ‘악하다거나, 죄인인’ 자는 없다. 즉 각자의 인간 속에는 각자의 신이 속에서 춤추고 있기에 그 신은 그 자신에게 악하거나 죄를 짓는 신은 될 수 없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기독교 사제들은 많은 사람을 악하거나 죄인이라고 몰아붙이기 위해서 그들에게 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했다. 사제들이란 실은, 자신들부터 너무나도 많은 고통을 받아온 자들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당한 고통을 되갚아주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겸손을 위장한 복수심으로 충만한 자들이다.



이들은 자진해서 도덕군자로 행세하지만 거기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에 화를 내면서 외부로부터 보상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명령하기를 좋아하지만, 실은 명령은 순종보다 더 어렵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명령하는 자는 순종하는 자 모두의 짐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소위 교양으로 칭칭 감은 자들은, 마치 알몸을 빈약한 깃털로 감추고 날아다니는 새와 같다. 치장했다고 해서 뼈만 남아 있는 속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들이 신앙이 외치지만 신앙이란 사물의 그림을 믿는 것에 불과하다.



신앙은 창조의 능력이 아니다. 되풀이하는 확인 작업일 뿐이다. 너희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창조를 분만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그저 자기 열정에 대한 황홀한 비유에 불과하다. 예수는 말했다. “웃고 있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라고. 하지만 어린이는 안다. 이 세상에는 웃을 일이 많다고!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이 대지 안에서 차라리 춤을 추어라”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고. 하지만 과연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여 곧바로 저주해야만 하는가? 예수는 그 자신이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해보았더라면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네 이웃들에게 온정을 베풀지 말라”. 그 이웃은 스스로 극복해야 하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권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차하게 부여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남들에게 관심 끌기 위해 자신을 극복하려는 자는 기껏 어릿광대에 불과하다. 인간이 하는 일은 그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되풀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만 복종해야 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 하는 것은 창조하는 자가 결정한다. 계속해서 창조하는 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인 악인지를 모른다. ‘도덕질 말라! 살인하지 말라!’라는 옛 서판들은 부셔버려야 한다. 차라리 그 계명 자체로 인하여 강탈당하고 살인당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아니한가



십자가를 보지 말고 네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네 미래를 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더러움이 있지만 손대지 말고 그냥 두어라. 그 더러움 속에서도 창조는 숙으려들지 않고 있다. 최선을 위해서라면 최악이 필요하다. 최악이 별개 아님을 알아야 최선도 별개 아님을 안다.



이처럼 인간은 영원히 되돌아온다. 다시 돌아옴에서 오는 권태, 이것이 니체의 목을 조른다.



(평) 니이체는 실패를 두려워한다. 인간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망해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즉 인간은 저주받으면 안 되는 존재인 줄로 안다. 그는 십자가를 모르기에 왜 인간이 저주받아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 십자가 밖에 놓여진 인물이다. 십자가 밖에서 자신과 세상을 보면, 이처럼 맹목적인 투쟁을 벌릴 수 밖에 없다. 실은 자신의 욕망과의 내부적 모순과 분열의 상황을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



 신직수(IP:220.♡.9.66) 06-12-28 08:00 
세상의 스승은 오직 예수님의 개성있는 독보적 창조능력뿐이군요?
 이근호(IP:220.♡.214.30) 06-12-28 08:29 
그런 셈입니다. 그 분은 창조주시고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그 분이 창조능력을 펼치는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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