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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0 07:05:29 조회 : 69         
20221007a 울산강의-역대기상(14강) 12장 8절 : 시험전쟁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96)
20221007a 울산강의-역대기상(14강) 12장 8절 : 시험전쟁
(강의:이근호 목사)


역대상 12장은 다윗이 한창 버림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버림받은 자, 다윗은 버림받았어요. 국가로부터 민족으로부터 현재 왕 권력으로부터 버림받았어요. 기껏 따라다닌 사람은 600명 정도. 다윗이 버림받은 잔데 다윗이 뭘 하고 있느냐 하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관계 잘 보세요. 버림받은 잔데 전쟁을 한다.

그러면 이 전쟁은 어떤 전쟁이냐? ①승리하는 전쟁이다. 승리해야 할 전쟁이다. ②시험받지 않아야 될 전쟁이다. 다윗이 한 전쟁이 둘 중에 어느 것이겠습니까? 보통 성경을 보면서 다윗 대목에 와서 사람들은 승리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보지요.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자가 제일 멋있는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주기도문 보세요. 우리를 무엇에 들지 마옵시고 돼 있지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로 돼 있지요.

지금 다윗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안 받았지요. 바로 그 전쟁이에요. 사람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버림받으면 어느 인간이든 좌절하게 마련입니다. 내가 인생 잘못 살았나 하는 그런 생각 들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 시험 들었다고 할 수 있느냐 하면 사람한테 버림받지 않고 존경받으면 이거는 승리한 거고, 사람한테 계속 버림받고 무시당하면 이거는 곧 하나님께 버림받은 걸로 여기는 그런 생각들이 있어요.

문장을 제가 써볼게요. 사람의 본심은, 사람의 심정은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세상 살아가면서 형성돼 있는 심정, 정서, 감정 다 해당되는데 이것들은 어떤 목적이 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거예요. 괜찮은 사람이라고 대우 받고 그들로부터 수긍이 되고, 그들이 나를 용납해주고, 그들이 나에게 버리지 않고 관심 두는 것. 그럴 때 사람들은 사는 맛을 느끼게 돼 있어요, 인간은.

그래서 인정받은 것에 반대되는 경우가 어떤 경우냐 하면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게 아니고 버림받았지요. 보세요. 우리가 믿는 주님은 우리의 본성과 반대쪽으로 가잖아요. 그 전쟁이에요. 버림받아도 상관없음을 유지할 수 있느냐를 보는 전쟁, 주기도문에 우리에게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그다음에 뭡니까? “악에서 건져 주옵소서”

복음을 안다는 게 이미 전쟁 속에 들어왔는데 그 전쟁은 바로 시험 속에서, 시험은 유혹이니까, 테스트니까, 유혹 속에서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전쟁이에요. 그럼 시험의 전쟁이 뭐냐? 승리한 전쟁 아닙니다. 승리라고 해버리면 남들한테 인정받잖아요. 다윗이 어릴 때 인정받았지요. 골리앗을 이기고 난 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선 어디로 내쳤습니까? 인정받기는 받았는데 고작 따라온 사람이 600명이었고, 그 사람들이 주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따라왔어요.

그런데 다음에 차기 대선주자로 내세울만한 변변한 캐비닛, 내각 변변한 자체적인 조직이 안 된 겁니다. 차기 대선에 나갈 수 있는 참모진부터 해서 재력, 뭐 준비된 게 없어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으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무엘상 16장인가 모르겠는데 사무엘 보내서 다윗을 차기 왕으로 이미 확정지었지요. 차기 왕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결정을 하고 난 뒤에 다윗을 생각했을 거고 다윗의 주변 참모들도 생각했을 거고 하나님의 결정이 어떻게 실현되느냐, 현실화 할 것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해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 안목으로 볼 때에 사정이 호전되는 게 아니고 갈수록 궁지로 몰리지요.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다윗을 버림받은 대표자로 삼았던 겁니까? 그것은 바로 다윗이 선지자가 때문에 그래요. 마지막에 올 때 예수님이 이 땅에서 처하게 되는 그 형편을 앞당겨서 다윗의 인생 가운데 그렇게 복제를 해서 집어넣은 겁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전쟁은 시험받지 않은 전쟁인데 좀 모호하지요.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런 겁니다.

어느 게 진짜 현실인가? 이 전쟁입니다. 현실의 중심이 사람들 패거리가 많은 사울 쪽이 현실을 꽉 쥐고 있느냐, 아니면 그쪽 대다수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사울 쪽에 의해서 나약하게 지금 현상수배 당해 쫓기고 있는 다윗 중심으로 현실이 전개되는가? 그 시험을 다윗은 겪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요.

세상이 내 중심으로 내가 잘나고 내가 성공하는 인생 중심으로 현실이 흘러가는가, 아니면 예수님 중심으로 흘러가는가? 성경은 어느 쪽을 이야기합니까? 내 중심입니까, 예수님 중심입니까? 예수님 중심이지요. 다시 말해서 내 중심은 아니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현실은 내 중심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된다 했어요. 예수님이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예수님 중심이다, 라고 이야기해도 되는데 말을 바꿔봅시다. 내 중심은 아니지요. 그러면 내 중심도 아닌데 내 중심으로 사는 것은 어디에 빠진 거예요? 시험에 빠진 거죠. 주기도문은 뭐냐? 그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그 악에서 나를 건져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말로는 주기도문을 잘도 외워요. 건져달라고 해놓고는 실제로서는 제발 안 건져줬으면 좋겠다. 반대로 나가지요.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이런 식이에요.

하나님, 나 중심으로부터 나를 빼내주세요, 이게 성경인데 실제 일상의 삶은 왜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이렇게 나오더란 말이죠. 그게 뭐냐 하면 시험에 흠뻑 빠졌어요. 거기서 나오는 쇼가 뭐냐? (샤이의) 흠뻑 쇼. 내가 본 적은 없는데 비를 많이 맞는 모양이라. 엉뚱한 소리해서 미안합니다. 사람은 흠뻑 취하고 싶어요. 어디든지. 미친 세상에서 제 정신으로 못 살고 뭔가 흠뻑 취하는데 너무 취해서 마약에 취해서 어린이집 애들 사십 명 죽이고 이런다니까요, 태국에서.

그럼 우리는 어디에 취했습니까? 아니 말 잘못했어요. 우린 어디에 취하고 싶습니까? 우리는 나의 중심에 취하고 싶고 내 성공에 취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내 중심의 현실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하면 참석하지 않잖아요. 내 중심에 기여하지 못할 걸 내가 뭐하려고 시간 낭비하느냐. 차라리 전국제전 개막식이나 가지. 내 중심이 아닌데 뭐.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여러분들이 만나는 사람 쪽쪽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면 내 중심으로 성공하겠다고 승리하겠다는 사람만 다 만나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하지 말래도 여러분만 시험에 들지 않으면 온통 전도 기회고 선교 기회가 되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그게 부러워서 헬렐레 하고,

“저 사람 잘 돼서 너무 좋겠다. 나는 뭐야, 지금 이 나이에? 왜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대들고. 지금 하나님은 일 잘하고 계시는데 우린 반대로 그런 하나님께 불만을 품고 대드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이 바로 그게 얼마나 뒤바뀐 상황인지 그게 시험에 든 상황이란 걸 언급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을 따르는 소수지만 600명은 자진해서 뭐하겠다는 사람입니까? 자진해서 시험에 들지 않겠다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면 그 버림받은 자리가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중심 자리란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 사람들. 방금 문장이 좀 길었지요. 짧게 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왕이 현재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면 이거야말로 하나님께서 선택받았다는 확연한 징후가 되지 않겠는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이 선택한 겁니까, 하나님이 선택한 거예요? 하나님이 선택했지요. 하나님의 선택에 인간이 관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관여 못하지요. 이건 순전히 백 퍼센트 하나님 일이지요.

하나님의 일이 백 퍼센트 드러난 그 현실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게 인간들의 본심인데 하나님의 택한 사람은 버림받고 있으니까 버림받은 자리에 합류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일이 확실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겠어요? 멋진 기회 아닙니까? 주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겠다, 모호하다. 모호한 게 아니고 본인 자체가 시험에 빠졌으니까 예수님 없는 곳만 찾아다니는 거예요. 예수님 소식이 안 들리고 예수님이 일 안 하는 곳만 찾아다니는 거예요.

그게 어떤 자리라 했습니까? 사람의 본심은 남들에게 인정받는데 있습니다. 아니에요? 이렇지 않은 사람 있으면 손들고 나와 보세요. 어떤 사람은 진짜 손들고 나올 수도 있는데,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남한테 인정받는 걸 싫어하고 버림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인간세계엔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누구 일이냐 하면 구원이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 일이에요.

주기도문에 뭐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뭐하라? 악에서 건져 주옵소서. 악에서 건져 주옵소서, 하니까 너무 모호하잖아요. 구체적으로 마약에서 건져 주옵소서, 이거는 잘 이해되고, 가난에서 건져 주옵소서, 그런 것은 잘 이해하면서, 사채업자한테 건져 주옵소서, 이런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악에서 건져달라는 것은 바로 남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이게 나다, 자아다. 이 자아로부터 나를 빼내달라는 겁니다. 왜? 나는 못하니까. 나는 내 편이니까, 나는 내 위주니까 내가 나에게서 뽑아낼 수가 없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서 버림받는 것이 어떤 누구도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 못한 이유가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인간이라면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예수님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거는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기 위해서 애를 쓰고 노력하는 그런 모습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여겼던 베드로가 끝판에 가서 예수님을 배신할 때 그것도 한 번 배신한 게 아니고 다짐을 하듯이 삼세판이잖아요. 세 번이나 배신했잖아요. 그 배신한 이유가 뭡니까? 그 당시 세상으로부터 자기가 버림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인간이 아무리 숨기고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주님께서 이끄시게 되면 인간의 본 마음은 들통 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뭐냐? 꼬깃꼬깃 숨겨놓은 우리 본심이 들통 나는 현장, 그게 바로 교회고, 그래서 교회는 장소가 아니고 사건입니다. 예상 못한 사건, 내 본심이 들통 나는 사건, 이게 복음 사건이고 말씀 사건이에요. 인생을 몇 년 살았는지 자꾸 그것 계산하지 마세요. 적금 붓는 것고 아니고. 인생 몇 년 살았는지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진짜 내 모습을 내가 수긍하고 있고 동의하고 있고 인정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내 모습은 뭐냐? 나만 남한테 인정받는 거예요. 누가 버림받는다면 그 버림받은 사람 쫄랑쫄랑 따라갈 자들의 아니에요, 우리가. 주판 튕기면서 어느 쪽이 대세냐? 어느 것이 정의냐는 배부를 때나 하는 소리고요 진짜 힘들 때는요 나를 살리는 게 어느 쪽이냐, 이렇게 나오는 게 인간의 본심이에요.

지금 하나님은 다윗을 인간을 보기에 더 사는 쪽으로 안 보여요. 그래서 오늘 12장에 나오는 시글락이란 장소가 이스라엘 땅이 아니에요. 이거는 블레셋 땅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도망을 치되 남의 나라 영역까지 가서 도망을 치겠습니까. 시글락까지 오게 된 경위도 있어요. 블레셋 땅에 목숨 부지해볼까 싶어 갔는데 거기서도 추방됐다고 보면 돼요.

블레셋 땅에 가서 위장취업해서 있으려고 했지만 이스라엘과 전쟁 나서 거기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시글락 땅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유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을 비록 쫓겨 다니는 신세지만 이스라엘 왕으로서 자기 본분은 다하면서 아말렉을 쳤던 그런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시글락은 버림받은 자로서 간 겁니다.

그래서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 전쟁은 승리하는 전쟁이 아니고 다윗이 시험에 들지 말아야 될 전쟁입니다.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택은 무효화되지 않는다는 사실. 이 말을 다시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선택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땅에서 버림받을 수도 있는 그런 험악한 극단적인 지경까지 몰아세울 수가 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말로는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지만 실제로는 나 좋으라고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경우를 색출하기 위해서. 그런 마음, 하나님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내가 인정받고자 하는 본심에 유리하게 작용하고자 내 쪽에서 먼저 하나님의 손을 덥석 잡았던 가짜 선택 있잖아요. 종교적인 열심 그걸 색출해서 전부 다 배제시키기 위한.

하나님 철저하지요. 가짜는 오지 말라는 거예요. 천국에는 가짜는 못 들어가는 겁니다. 시험에 이긴 자만 들어갈 수 있어요. 방법은, 첫째 모델 주시고, 두 번째 비교하고, 세 번째 배제시키고. 모델케이스 제공하고 모델과 비교시켜서 그 비교해서 맞지 않으면 이걸 배제시키고, 제거하고. “나가, 어딜 가짜가 끼어들어? 어디 쭉정이가 알곡에 붙어서 흉내 내기하고 있어?” 하고 제거해버리는 겁니다.

모델 누구십니까? 예수님.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거예요. 예수님을 참된 인간이잖아요. 참된 인간 보내시고 오늘날 우리와 비교시켜서 가짜는 지옥 갈 자가 여기 왜 끼어들었는데? 이 자리가 어느 자린데 니가 왜 끼냐? 나 하나 끼어야 교인 수가 부흥되잖아. 교회 부흥 같은 건 네가 신경 쓸 문제 아니지요. 교회 부흥된다고 그 교회가 구원 받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하나님은 택한 자만 구원하는 걸로 저는 소식을 그렇게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 또 제가 알기로는 로마서 9장, 하나님의 자비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인간은 두 종류로 돼 있고 구원 받는 건 하나님의 사랑의 그릇만 구원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다른 생각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인간이 달음박질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만 해당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아닌가요? 하나님이 선택해야지 내가 예수님을 선택해선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이 옳다면, 맞는다면 하나님께서 일을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이 선택한 것과 네가 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네가 선택한 그 두 가지 경우에서 둘이 같이 섞일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뽑아내기 위해서 내가 예수님을 선택한 자는 어떻게 하든 잘라내야 하지 않습니까. 털어내는 거예요. “달라붙지 마. 너는 이쪽 동네 아니야, 저쪽 동네야 지옥이야.” 하고 떨어뜨리는 거죠.

구원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뭐냐? 예수님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고 성도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 달랑 하나님이 먼저 선택했다는 그것밖에 없어요. 로마서 8장에 나옵니다.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름 받을 때에 주님을 미리 알았다는 사실을 성도라도 몰라요. 불러주니까 내가 예수 믿었구나, 이게 아니고 예수 믿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나를 선택했음을 불러줄 때 아는 거예요. 그렇게 부름 받은 자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자를 어떻게 했다? 영광스럽게 영화롭게 했다.

그게 로마서 8장에 나오는 이야기잖아요. 이것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 아니지요. 이것이 기본으로 깔려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누굴 만나더라도 그게 현실화되고 사실화돼야 되지요. 로마서 8장 30절 말씀에 나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정했다고. 그다음에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정한 것이 주님이 먼저 정했지요. 하나님이 먼저 정했잖아요.

이 사실을 로마서 8장 30절 말씀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늘 주님이 묻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안 되면 주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널 미리 정했잖아. 내가 너를 미리 선택해서 미리 정했어.” 이게 대낮 열두 시에도 왕왕왕, 밤 열두 시 잘잘 때도 왕왕왕, 새벽 여섯 시 일어날 때도 왕왕왕, 우리가 서울에 올라가도 왕왕왕, 미국 가도 왕왕왕, 유럽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왕왕왕. 미리 정하시고.

비행기 무서워 죽을 것 같아, 할 때 왕왕왕. 너는 비행기 타고 유럽 가다 죽어야 돼. 왜? 미리 정하셨으니까. 미리 정한 대로 비행기 타다 빨리 비행기 폭발해서 죽는 건데, 그 신경을 우리가 왜 씁니까? 우리가 신경 쓰면 그건 시험에 빠진 거죠. 시험 빠졌느냐, 밖에 나왔느냐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할 수 있지요.

인간세계에서 언약세계로. 인간으로 태어날 때는 하나님이 나를 미리 정한 걸 몰랐어요. 언약이 와서 나를 악에서 건져 주니까 비로소 우리는 인간세계 속에 있으면서 언약세계 속에 있다는 사실, 넓게는 인간세계에 있으면서 인간세계와 언약세계의 차이점은 언약은 언약 자체가 현실인 것을 언약세계에 있는 사람은 아는데 인간세계 사람은 인간세계가 유일한 현실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오늘도 울산에서 전국체육대회 합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관심 있어요. 사람들은 언약세계에 관심 없습니다. 우리는 오면서 차 밀리는 데 관심 있고. 왜 차 밀리느냐, 그럴 게 아니라 차 밀리는 이유가, 언약세계는 인간의 힘으론 못 들어가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차 밀리는 거예요. 논리가 몇 개 빠졌습니다만.

인간세계에서 언약세계로 전달, 이걸 달리 표현하겠습니다. 같은 건데 천국을 바깥에서 구경하려는 자와 천국에 이미 들어온 자의 차이. 언약세계가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이 아니고 지금 신약이거든요. 다 이루었다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늘나라가 다 이뤄진 거예요.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 천국이 다 이뤄진 거예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너희 것임이라. 이미 천국이 이뤄진 거예요.

천국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이미 정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알아챈 자는 이미 천국에 들어갔기 때문에 알아챈 거예요. 이미 정했다는 것으로 끝나버렸어요. 이 모든 게. 그다음 절차는 우리가 손댈 절차가 아니고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절차기 때문에 우리가 걱정하거나 염려할 문제가 아니에요.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불러줄 때 우리는 인식을 하지요.

하지만 이미 불러주는 것조차도 주님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일이에요. 불도저로 그냥 밀어붙여요. 이명박 사장으로 있을 때 경부고속도로 공사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냥 밀어붙였잖아요. 천연기념물 나무고, 여기는 최 씨의 본고향이고, 최 씨고 김 씨고 유 씨고 간에 지금 도로가 똑바로 뚫려야 되는데 그런 것 무시하고 그냥 밀어붙였잖아요. 이명박 전 대통령 일할 때 새벽 네 시에 일어났어요. 현대건설에 있을 때 고속도로 뚫는다고.

제가 지금 과거 고생한 이야기가 아니고 그냥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나의 추억도 밀어붙이고요 내가 정들었던 나의 가족도 밀어붙여요. “너희 집안들?” “집안 맞습니다.” 집안이 너의 원수니라, 하고 말씀으로 밀어붙여요.

다윗이 버림받았다는 게 기준이 되는 거예요. 그 시대에 구원의 기준이 된 거예요. 다윗은 하나님께 선택받음으로 왕으로 임기 시작한 거예요. 사울 왕 가짜 왕이에요. 나중에 엔돌의 신접한 여인 만나서 인생 끝날 겁니다. 이스라엘에는 신접한 여인을 용서하거나 살려주면 안 돼요.

그런데 사울이 소위 이스라엘 왕이라고 하면서 엔돌이란 지방에 가서 신접한 여인을 찾았다는 말은 하나님 뜻도 모르고 우리나라에선 무당이나 점쟁이 용서해선 안 돼, 지가 왕으로서 행정적 처리했을 뿐이지 자기 마음은 그들과 같은 마음이란 것을 사울은 몰랐어요. 지가 아쉬울 때 괴로울 때 역시 찾을 것은 무당, 점치는 자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울 왕은 어떤 사람이냐? 천국을 바깥에서 구경만 한 사람이에요. 천국은 어떻게 생겼지? 나도 천국에 들어가 볼까, 성경보고 기도하면서 노력해볼까? 지금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다윗은 천국 안에 이미 들어온 사람이에요. 천국에서 멱살 쥐고 잡아당겼으니까 “들어와. 너는 이스라엘 왕으로서 내 언약대로 해야 돼. 그게 다윗언약이거든요. 언약대로 움직여야 돼. 언약이 주가 되고 너는 언약의 종이 되는 거야. 그런 관계야. 너는 홀로 못 살아. 하나님의 약속대로 살 수밖에 없어.”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한 자를 영화롭게 할 수밖에 없는 그 코스에 이미 너는 들어섰다고 잡아당겨주는 거예요. 이게 이미 천국에 들어온 사람이에요.

천국에 들어오지도 않고 바깥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교회 와서는 둘 다 천국 왔다고 우기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회 온 걸로 쳐주지 않고 흩어져서 일상생활에 매진하게 만들지요. 일상생활하면서 자기가 천국의 바깥에서 기웃거리면서 예배참석하면서 흉내 내면서 찬송 부르면서 기도하는 흉내 내면서 기웃거리지만 막상 가정에 일 터지면 어떻게 됩니까? “나, 버림받기 싫어요.” 그게 바로 시험에 든 거예요. 현실도 아닌 걸 현실로 여기고 진짜 현실은 현실 아니라고 배척해버리고. 그게 시험든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어떤 일을 하셨느냐 하면 하늘에 예수님 계셨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디에 왔습니까? 아까 든 용어, 인간세계에 왔지요. 인간세계는 현실 아닙니다. 인간세계는 내가 남들의 인정받기를 원하는 집합체에요. 그걸 악 속에 죄 속에 들어온 거예요. 죄에서 건져달라는 기도가 그것 때문에 있는 거예요. 인간세계와 하늘나라를 주께서 여기에 언약으로 하늘나라를 만들어버려요. 만들어서 언약세계 따로 인간세계 따로 분리시켜서 이쪽을 버리는 거예요. 버림받게 하는 거예요.

유치하다고 전제하고 좀 유치한 예를 들어보겠어요. 어떤 나라의 왕의 후계자가 사고 나서 기억이 상실되어 길거리를 헤매다가 어떤 집에서 양육이 됐다 칩시다. 거지같은 아이 거뒀다고 농촌에 살면서 모든 험한 일 다 시켰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자기가 이 집에 살 사람이 아니고 왕궁에 살 왕자, 왕의 후계자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임금과 연락을 취하면서 자기를 받아준, 자기를 이용한 거죠. 자기를 이용한 같이 살았던 그 사람들에게 막대한 금은보화를 선물로 줬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을 키워주고 온갖 허드렛일을 시켰던 그 가정은 갑자기 그 아들로 말미암아 막대한 부자가 된 거예요. 그러면 성공한 겁니까, 아니면 빼내기 위한 작업입니까? 성공한 거예요, 떨어지기 위한 작업입니까? 떨어지기 위한 작업이죠. 짐승 도살하기 전에 잘 먹이는 것과 똑같지요.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게 그런 거예요.

이 땅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상태가 된다는 뜻이고, 이것은 버림받는 이 세상, 침몰하는 여객선에 객실 하나 잡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결혼한다고 아파트 잡으려고 3억씩 빚내서 장만하잖아요. 둘이 벌어서 하는 이자주고 하나는 생활비로 쓰고 하잖아요. 그것 왜 합니까? 침몰하는 여객선에 객실 하나 잡으려고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걸 성공했다고 보거든요.

“우리 아들 결혼해도 집 사줄 돈도 없어요.” 그게 슬픈 일입니까, 낙담할 일이에요, 안 그러면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우리 아들 장가보내는데 집 못 사줘.” 이게 굉장히 얼마나 내가 참 나한테 감사한지, 이런 이야기 되겠어요? 안 그러면 “미안하다, 아들아.” 그렇게 되는 거예요? 답변을 기대하진 않겠습니다만 “못난 어미를 용서하라. 아빠가 무능해서 집도 못 사주고 니만 고생이구나.” 그게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닙니까.

분명히 성경에 마태복음 8장인가 보면 나와요.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땅이 고향이 아니고 고향이 어디 있다? 하늘에 있다. 이 땅에선 나그네였다. 분명히 나와 있지요. 엄마 돼서 너 장가가는데 집도 못 사주고 미안하다, 하면 자식이, “어머님. 이 땅엔 나그네입니다. 좋은 집 소유한들 무슨 소용 있겠어요. 물론 집주면 받겠습니다만. 그것이 진리가 아닙니다.” 그럼 엄마가 아들보고, “네가 시험에 들지 않았구나, 인간아.”

이건 뭐 엄마도 시험 들어, 아빠도 시험 들어, 자식도 시험 들어. 전부 다 이 세상에 남한테 인정받는 인간이고 싶다, 그것 하나에 푹 빠져서 어디서 들은풍월은 있어서 주기도문은 잘도 하네. 악에서 구하옵소서. 악이 뭔데? 니가 악인데 뭘 악에서 구해. 성경하고 설교 들으라 하면 천리 밖으로 내빼면서. 내빼는 이유가 뭡니까? 자기 성공하는 데 보탬이 안 되니까 내빼는 것 아닙니까.

버림받은 것이 표준입니다. 이 땅에서 표준은 뭐냐? 버림받은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서 뭘 지워야 되는가? 나를 지워야 되고, 남는 것은 뭐냐? 다윗? 아니에요. 예레미야? 아닙니다. 엘리야? 아닙니다. 누가 남아야 돼요? 변화산에서 보였듯이 예수님만 남아야 돼요. 이 땅에서 예수님만 보여야 됩니다. 예수님만 남기는 작업, 이게 주님의 작업입니다.

여기 600명 모였거든요. 사실은 시글락 끝나고 난 뒤에 사울은 지는 해도 다윗은 뜨는 해기 때문에 숫자가 늘어납니다. 미리 숫자 알려드릴게요. 이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오늘 역대상 12장 23절에서 37절까지 내용이에요.

“싸움을 예비한 군대 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유다 자손 중에서 방패와 창을 들고 싸움을 예비한 자가 육천 팔백 명이요 시므온 자손 중에서 싸움하는 큰 용사가 칠천 일백 명이요 레위 자손 중에서 사천 육백 명이요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와 그와 함께한 자가 삼천 칠백 명이요 또 젊은 용사 사독과 그 족속의 장관이 이십 이명이요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 아직도 태반이나 사울의 집을 좇으나 그 중에서 나아온 자가 삼천 명이요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 본 족속의 유명한 큰 용사가 이만 팔백 명이요 므낫세 반 지파 중에 녹명된 자로서 와서 다윗을 세워 왕을 삼으려 하는 자가 일만 팔천 명이요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이백 명이니 저희는 그 모든 형제를 관할하는 자며 스불론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항오를 정제히 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 납달리 중에서 장관 일천 명과 방패와 창을 가지고 함께한 자가 삼만 칠천 명이요 단 자손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이만 팔천육백 명이요 아셀 중에서 능히 진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사만명이요 요단 저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능히 싸우는 자가 십이만 명이었더라”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왔습니다. 끝부분에 하나의 국가가 돼야 되니까. 참모진들이 확보가 돼 있어야 돼요. 이 많은 사람들이 누구 보고 왔어요? 오직 한 사람밖에 안 봐요. 다윗이죠. 왜 다윗을 봤습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완전한 다른 세상 되려면 기존 세상의 중심축 자체가 뽑혀서 다른 축으로 대체돼야 되거든요.

바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외치는 게 그겁니다.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요, 내가 곧 생명이요 제가 하나 보탠다면, 내가 곧 축이다. 이 세상의 중심축이다. 내가 바로 주다. 내가 바로 심판주고 구원주고 오직 이 세상은 나의 세계만 남고 나머지는 지옥으로 떨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되는 겁니다. 흔히 어린애들도 다 안다는 것, 우리가 세월이 너무 지나다 다 잊어버렸습니까?

주께서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실 때 우리는 소급해서 나를 부른 것을 믿었으니까 구원 받는 게 아니고, 그건 믿음이 아니지요. 그거는 기웃거리는 거죠. 천국을 바깥에서 구경하는 거예요. 성경말씀 뭐 있는가, 어느 것 믿을 만 한가, 좋은 것만 골라보자 기웃거리는 거고. 천국에 온 사람은, 내가 예수를 믿었다, 자체가 날아가 버리고 정하셨다, 주께서 믿기 전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 정했음을 마음의 축, 중심축으로 꽂혀버린 거예요. 중심축 알지요? 오뚝이 안에 철 조각 들었잖아요. 이것 때문에 오뚝이 백날 넘어져도 안 넘어지잖아요.

주님의 언약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시험에 들지 않는 자는 이미 주님이 들어있어서 주님의 일방적인 밀어붙이는 계획만 있기 때문에 이미 그 계획을 계획답게 들춰내기 위해서 그 안에 뭐가 있는가를 알려주는 방식의 일들이 터져 나오는 그게 시험이에요. 유혹 일으켜놓고 시험에 들지 않게 되었단다, 이 아들아.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 시험을 못 이겨요. 내 힘으로 못 이긴다고요. 내 안에 내 힘보다 더 센 힘, 주께서 창세전부터 꽂아놓은 힘이 있을 때 그 꽂아놓은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우리로 하여금 경험하도록 인간 같으면 수백 번 더 넘어질 일들은 우리 인생을 살면서 주위에 발생시키는 겁니다. 자식에게 문제 있고, 남편에게 문제 있고, 아내에게 문제 있고, 교회에 문제 있고, 국가에 문제 있고, 우크라이나에 문제 있고, 러시아에 문제 있고, 물가 올라가고 이런 것.

작은 시험부터 큰 시험까지 늘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다 이루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소소한 것까지 다 찾아와요. 심지어 드라마가 주인공이 죽어버리는 이것 보고 우리는 얼마나 시험 들었습니까. 드라마 16회까지 봤는데 주인공이 행복하질 못해. 다음에 제2탄을 기대하세요, 이럴 때 얼마나 우리는 시험 들겠습니까? 밥맛이 없어. 드라마 그런 식으로 끝나느냐, 항의할까, 이런 식으로. 북한에 돈을 왜 그렇게 퍼주느냐고 그게 불만이 되어 데모하고. 전부 다 이게 뭐예요? 시험 드는 거잖아요. “내 돈을 네가 뭔데 보이스피싱 삼천만 원 빼앗느냐? 못 살겠다. 뛰어내리고 싶어.” 전부 다 시험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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