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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6 05:06:19 조회 : 51         
서울의존강의20221013b 베드로후서 3장 6절(주님과의 일체성)-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하림(IP:219.251.37.139)
서울의존강의20221013b 베드로후서 3장 6절(주님과의 일체성)-이 근호 목사

첫째 시간에 중요한 것은 물과 불은 사람 말을 안 듣는다는 거예요. 다른 데서 지시받아요. 그런데 인간은 인간하고 상대하죠. 뭔가 핀트가 틀린 거예요. 사람이 사람하고 상대하는 것은 어쨌든 간에 이 안정된 자연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자기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하는데 자연 자체가 안정하지 않아요. 주님의 지시에 따른다고요.

그러면 사람들은 뭘 모르느냐 하면 물과 불은 어떤 원리와 어떤 원칙에 의해서 주님의 어떤 원리와 원칙에 의해서 그들은 움직이느냐. 그 원칙만 알면 되는데 그들은 원칙 알 생각은 안하고 자연이 안정적이기만 하면 우리는 그냥 잘만 하면 거기에 맞춰서 살 수 있다고 고집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조롱하는 자가 그거에요. 조상 때부터 그냥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별나게 설칠, 이런 약속을 받을 이유가 뭐가 있느냐 하는 거죠. 조상 때부터 이 대자연은 너무나 안정적인 모습을 갖추었다 이 말이죠, 이 대자연이. 거기에 대해서 베드로가 반박하기를 “전에 노아 홍수 있었잖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노아 홍수가 있다는 말은 물이 주어졌다는 말이고 그 물은 누구의 지시를 받았다는 뜻인데 누가 지시했으며 어떤 원칙에 의해서 지시에 따랐는가 하는 그 점을 성도가 미리 알아야 되겠죠.

열왕기상 18장 1절에 보면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되어있어요. 17장 1절에서는 수년 동안이라고 되어있죠. 삼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18장 1절에 보면 드디어 하나님께서 비를 내린다는 겁니다.

이 비 내리고 엘리야가 관여하고 있는 이 공간은 전 세계적인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지역에만 국한되는 계시를 준 거예요. 특별한 지역에 엘리야가. 그럼 다른 민족은?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자연의 질서 아닌 하나님의 자체적인 질서, 이것은 다른 민족에게는 알려준 바가 없고 이스라엘에게만 알려주는데 알려주는 방식이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줬고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의 내용이 어떤 내용인가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현 상태와 거기에 대처하는 하나님의 대처, 이 두 가지를 다 알아야 하나님의 원칙을 여기서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비가 오지 않는 이스라엘, 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야기가 이것부터 출발해야 돼요. 우상, 이것은 거짓된 신입니다. 거짓된 신. 하나님은 이것을 신이 아니다, 했어요. 신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우상을 섬기는 게 아니에요. 신을 섬기죠. 나 이제부터 우상 섬길래. 이런 인간 없잖아요. 나는 하나님을 섬긴다. 절대자를 섬긴다. 그러니까 인간이 신을 섬길 때는 무엇을 내다보느냐 하면 이 자연에 대해서 발언권을 가지고 통제권이 있는 신이라고 여기고 그 신에게 잘함으로써 이 자연이 자기 존재가 생존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라고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골랐던 신, 바알신이죠, 신과 인간 사이에 모르는 바가 있습니까? 서로 뭔가 틀어지는 게 있어요, 없어요? 없죠. 둘 사이에 다른 본질이 있느냐 이 말이죠. 나는 신을 섬기고 신은 신을 섬기는 나에게 내가 원하는 걸 채워준다. 이 둘 사이가 죽이 잘 맞죠. 뭔가 이질적인 것이 들어있지 않죠.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신은 뭡니까? 우상이 되는 거예요.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게 뭐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원칙이 뭐냐 그걸 지금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원칙을 알려면 먼저 인간들이 신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느냐를 알고 ‘이건 아니지’ 가 되어야 돼요. 이건 우상이지, 가 되어야 돼요. 엘리야는 이걸 우상으로 봤다고요.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뭐부터 거쳐 와야 돼요? 우상 섬김부터 거쳐 와야 하나님의 진짜 뜻을 알 수가 있는 거예요. 우상이라 하는 것은 인간과 신이 서로 잘 통하는 게 우상이에요. 인간의 소원, 인간의 애씀, 인간의 노력, 인간의 아이디어, 인간의 양심 여기서 긍정적으로 그것을 받아주는 신, 그게 우상입니다.

그리스 제우스 같은 신들은 신들의 연합체가 되었는데 거기는 신들이 인간하고 똑같아요. 질투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연애하고 바람피우고 전부다 똑같이 해요, 똑같이. 복수하고. 그렇게 하니까 신과 인간이 잘 내통하고 서로 거리낌 없이 필요할 때는 요청하고 또 들어주고 하는 일들이 있는 겁니다. 그게 그리스 로마 신화에요.

다른 민족에도 다 신화가 있잖아요. 신들이. 그 신들의 공통점이 뭡니까? 인간이 갖고 있던 인간의 마음과 그 신의 마음이 한결같이 서로 잘 통한다는 데에 있어요. 그러니까 신을 섬긴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죠. 자연을 섬긴다는 것은 자연 자체가 신이 움직이는 계시로 보기 때문에, 태양신, 달신, 별신에게 그저 인간으로서는 자기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자인하고 부족하지만 도와주소서, 이렇게 하면 흔쾌히 도와주시는 신.

오늘날 한국 교회 신이죠. 한국 교회. 그래서 교회 나가시라 이 말입니다. 그게 왜 우상인지, 그게 왜 엉터리고 거짓인지를 교회를 다녀봐야 알죠. 그거 안 다녀보면...... 교회하고 절하고 서로 싸우는데 싸울 필요 없어요. 둘 다 우상이에요. 부처나. 부처가 무슨 신을 믿어요. 그러나 부처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부처가 신이 돼버린 거예요.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인도엔 힌두교가 거의 90% 되고 불교는 흔적만 남아있어요. 왜 그럴까요? 힌두교 자체가 모든 잡신들을 연합하는 연합체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불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이유가 부처도 또 한 신이니까 지금 신을 잘 믿고 있는데 또 부처신으로 바꿀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교가 별 인기가 없는 거예요.

“저희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로마서 1장에 나온 것처럼 인간은 자연을 우러러보면서 자연스럽게 우상을 신을 섬기게 되어있는 존재입니다. 구체적으로 경전이 있어서 구체적으로 신을 세분화하지 않더라도 그냥 마음 자체가 조상신이든 무슨 신이든 절대적인 신에 대해서 의존하고 싶고 기대고 싶고 그 신에게 빌고 싶은 게 본심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우상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죠. 우상과 대결했다는 겁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우상을 마주해서 우상과 대결한 거예요. 어디에서? 다른 나라에서? 아니요. 다른 나라는 내어버려둬요, 그냥. 원체 버린 인간인데 그거 뭘 거쳐요. 여기는 뭐냐? 약속의 땅에서. 약속의 땅에서 비가 오고 안 오고가, 첫 번째 바알에게 빌어서냐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으로서 비가 오고 안 오고냐. 비는 누구 말 듣느냐 하는 그 싸움을 한 거예요, 엘리야를 통해서.

그러면 우리가 이스라엘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선지자가 이렇게 나오고 여호와 하나님이 이렇게 나오면 우리는 편하게 생각해서 그럼 여호와 믿지. 이러잖아요. 그럼 여호와 믿으면 되잖아, 이렇게 된단 말이죠.

그런데 그 당시 인간들이 바알 신을 섬겼잖아요. 신을 섬겼으면 하나님이 이 신을 공격하는 타겟이 어디까지 이어져야 되겠어요? 인간에게 가는 거예요, 인간에게. 인간에게 가면서 뭐를 하나님이 요구하느냐 하면 네가 믿는 신을 네가 철회하라는 거예요. 바알 신을 철회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이걸 요구하는 거예요.

문제는 인간이 그 바알 신, 자연 신을 철회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철회할 마음도 없고 방법도 없고 어떤 식으로 철회되는지 그 수단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여호와께 돌아오면 되는데 돌아올 수가 없어요, 여호와께. 이거 어떻게 하면 좋죠?

오늘 본문으로 가봅시다. 옛날에 물로 심판받은 것처럼 앞으로는 불로써 전 세계가 불바다 된다. 오케이, 믿습니다. 문제는 그걸 믿을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불이 오겠지. 불오면 완전히 다 타지. 타면 되지. 지구도 탄다니까 같이 타지 뭐. 그게 대책입니까?

아주 쉽게 하겠어요. 지금 물심판, 불심판이 있잖아요. 그럼 인간 자체가 어떤 인간만 구원받느냐 하면 물에서 건짐 받은 사람, 불에서 건진 사람만 구원되는 거예요. 불에서 건진 사람 누가 있죠? 다니엘 세 친구죠. 물에서 건진 사람 누굽니까? 노아죠. 그럼 노아 방주가 노아 아이디어에서 나왔습니까? 아니죠.

이걸 지금 못하는 거예요. 물이 왔다는 것은 물에서 건져낸 자만 구원받는다는 뜻이고 불을 보낸다는 것은 불속에서 건짐 받는 자만 구원받는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무슨 수로 물에서 건짐 받고 불에서 건짐 받습니까? 해군의 UDT도 안 되겠다. 물속에 잠수해서 한 5분은 모르겠지만 2시간동안 물에 숨 안 쉬고 있습니까? 안되잖아요. 죽잖아요.

그러니 지금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엄청난 이야기를.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 우리가 어떻게 물에서 건짐 받고 불에서 건짐 받습니까?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손들고 이야기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방법이 있어요? 이때는 잠수함 만든다, 이런 거. 불에서는 불길을 막을 수 있는 특수복을 제작해서 입는다. 무슨 불이 특수 제작한 옷으로 견딜 수 있는 불이 오겠어요. 지구도 태운다는데. 모든 원소, 110개의 원소를 다 태운다는데 뭐로 제작을 해요? 제작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제작할 게 없는데요.

방법에 대해서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보니까 물심판, 불심판이 보통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죠. 오면 그만이지, 가 아닙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구원된 자가 아니라는 뜻이죠.

거기에 대한 대책은 여기 마태복음 24장 27절에 보면 있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인자의 임함.

대책은 뭐냐 하면 엘리야가 하늘로 갈 때 하늘에서 불수레가 준비된 것처럼. 그럼 엘리야는 어떻게 돼요? 불수레가 준비됐다는 말은 엘리야는 불속에서 건짐 받는다는 거예요. 그거 뜨거워서 어떻게 타요? 좌석도 불일텐데.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인자의 임함. 하나님께서 준비한 것은 불수레도 아니고 방주도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준비한 것은 인자, 예수님 그 자체가 오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거예요,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 이것을 강림이라고 하는 거예요. 강림, 오시는 것. 그럼 예수님께서 첫 번째 이 땅에 오실 때는 강림이 아니고 그건 출생이죠. 이 땅에 태어난 거죠. 문제는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서 어른이 되어 활동했을 때 제자들뿐만 아니고 보통 인간 가운데서도 그 분이 장차 올 불심판에서 우리를 건져 낼 사람이라는 것을, 불수레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택시 불러서 택시 왔는데 택시 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말이죠. 예수님을 알아야 동행을 하든지 예수님 가신 길을 가게 될 텐데 제자들도, 예수님 네가 가라. 당신이나 가세요. 이렇게 된 거예요. 너는 어디 가나? 난 고기 잡으러 갈란다. 예수님 근처에 안 가기 운동. 뭐 운동까지는 아니지만. 열두 제자 중 하나 팔아먹은 자는 물론이고 나머지 열한 제자가 예수님 잡힐 때 했던 행동은 뭡니까? 예수님 곁에서 도망치기였어요. 예수님 곁에서 도망치기. 하나님께서 불수레 보냈는데 안 타고 도망치기. 그런 거예요.

그럼 아까 열왕기상 이야기처럼 인간이 생각해놓은 신과 그 중보자 메시아는 도대체 어떤 내용입니까? 도대체 제자들이 생각하는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이나 용어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하나님이라는 그분과 그리고 그분이 구원한다는 메시아. 메시아가 어떤 메시아에요? 메시아 믿는다고 다 구원받는 거 아니거든요. 어떤 메시아를 믿는가, 그들이.

왜 예수님 곁에서 도망쳤어요? 그는 내가 원하는 메시아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여호와가 아니기 때문에 도망친 거예요.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는 생명이 없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3)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오지 아니하면 아무도 나한테, 예수님을 방주로 본다면 또 광야의 만나로 본다면,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나는 만나다. 나는 방주다.” 소개한다고 “아이고, 기다렸습니다.” 올 위인은 있다, 없다? 아무도 없는 거예요, 아무도.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시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요6:65)

그래서 자연 안에 물과 불로 이루어진 대자연 안에 산다는 걸 뭐로 규정해야하느냐 하면 【이미 심판 안에 산다】라고 규정을 해야 이 문제가 풀립니다. 나 지금 숨 쉬고 사는데 장차 죽고 난 뒤에 천당 가기 위해서 뭘 하지? 교회 다닐까? 지금 이래가지고는 문제가 안 풀려요. 뭐부터 알아야 되는가. 여기 에베소서 2장 1절 한번 보겠습니다.

지금 교회 다녀서 예배 출석하고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그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너희의 허물과 죄로 ( ) 되어 있죠. 너희의 허물과 죄로 네가 어떻게 됐어요? 이미 죽은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안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이 언약을 줄 때 어떤 안목으로 주느냐? “아이고, 그동안 살아있었구나. 언약 받아라.”가 아니라 죽은 자에요, 죽은 자. 에스겔 37장에 보면 그 인자되는 에스겔을 데리고 해골 있는 골짜기로 데려갔죠. 그리고 묻습니다. “쟤들이 살겠느냐?” 하나님이 질문한 거예요. “저들이 살겠느냐?” 그 질문이나 “주의 강림이 과연 오시겠습니까?” 그 질문과 맥락이 같아요. 오시면 우리가 마중 나가면 되지. 지금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돼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 어디까지 일을 하느냐. 어디‘까지’ 일을 한다는 걸 알아야 돼요. 어디까지. 우리한테 와서 좋은 설교하고 우리에게 은혜 주고 우리 잘 살게 취직시켜주고 우리에게 양식 주고 그 일하는 게 아니고, 우리를 살았다는 우리를 ‘나는 죽었다’까지 일을 하셔요. 너는 이미 죽었다, 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확실하게 하는 그 일을 누가 하신다? 우리 주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앞장세우는 겁니다.

인간은 내가 뭘 해야 되는지, 뭘 할 수 있고 어디까지 되고 어디까지 안 되는 조차도 몰라요. 뭐 얼추 하면 되는 줄로 알고 있어요. 인간들의 문제 가운데서 여러 가지 문제 있지만 그중에 참 못 고치는 일이...... 모기를 잡아야 되는데...... 못 고치는 일이 뭐냐 하면, 내가 모기를 잡을 수 있다 이런 거예요. 내가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자꾸 끄집어내는 일을 한다는 거예요. 내가 행할 수 있다.

남편이 아프다. 아내가 뭐합니까? “여보, 걱정하지 마. 내가 돈 벌어줄게.” 무심코 나오죠. “당신 아파도 내가 당신 키워줄게. 걱정하지 마.” “당신은 정말 훌륭하고 지혜로운 여인 같아. 여호와의 여인 같아.” 하나님께서, 둘 다 참 놀고 있다. 둘 다 죽은 존재들이. 뭘 할 수 있는데?

인간은 인간하고 상대합니다. 인간하고 상대하니까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까지 안 할 수 있다는 그 사항을 어디서 골라내느냐 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골라내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은 저렇게 하는데 나는 못할까? 아, 저 사람은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나는 못한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 게임에 두 골 넣는다. 발리킥 했다. 아, 저건 손흥민만 할 수 있어. 나는 못해. 되게 겸손해요. 난 동네 조기축구는 할 수 있어. 저건 못해.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인간이 24시간 생각하는 게 그거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비행기 한번 몰아보시겠습니까? 아 그건 안 돼. 비행기 가는 건 내가 맨날 봐, 이 동네에 살면서. 가는 건 보지만 비행기 몰고 가는 건 난 못 해. 하지만, 아르바이트 하시겠습니까? 오 그건 하지. 내가 할 줄 아는 거.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모기 잡는 것도 못한다, 난. 인간이 지금 어디에 막혀 있느냐 하면 내가 이런 일은 할 수 있고 이런 일은 못한다는 것을 본인이 결정한 것 때문에 자기가 여전히 죽은 자가 아니고 산 자가 되는 거예요. 산 자 티를 내고 산 자 값을 하는 거예요.

B.C. 3세기 경, 구체적으로 B.C. 220년 경에 중국에 진시황제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진시황제가 하도 잘난 척하니까 어떤 사람이 농담 삼아 약을 올릴 겸해서 그리고 황제니까 까불면 또 죽으니까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임금님은, 아니 임금이 아니라 황제죠, 최초의 황제를 쓴 것이 진시황이니까. “황제님인 진인(眞人)과 같습니다.”

참 진(眞)자 써서, 진인(眞人)과 같습니다. 하니까 그 황제가 진인, 안 들어본 용어니까 궁금한 거예요. “진인이 뭐냐?” 이렇게 하니까 그 사람이 이렇게 설명했어요. “진인이란 물에 들어가도 안 젖고 불에 들어가도 안 타고 구름을 탈 수 있고 천지와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신선을 진인이라 하는데 당신이 바로 황제님이 바로 진인입니다.” 이렇게 아부를 떤 거예요. 아부를 떨어도 진담인지 안 그러면 농담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부를 떨었어요. 중국 역사책에 나오니까 실제 있는 사실이고요.

자, 여기 한번 봅시다. 물에 들어가도 안 젖고 불에 들어가도 안 타고 구름을 타고 다니고 그다음에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는 신선과 같다고 했을 때 이게 결국 어디서 나온 겁니까? 인간의 마음속에 이런 희망과 여망이 들어있다는 거잖아요.

이게 바로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이게 죽은 거예요. 신이 될 수 있고 신선이 될 수 있고 진인이 될 수 있고 할 수만 있다면 구름까지는 안 타겠지만 요새는 비행기타고 다니죠. 비행기를 라이트 형제가 만들었잖아요. 그 형제가 비행기 그거 왜 만듭니까? 나는 죽었어. 죄로 말미암아. 그래서 만들었습니까? 아니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측정하고 싶은 거예요.

그 비행기 만들어가지고 1차 대전 때 써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비행기를 정찰하면서 비행기 타서 손으로 폭탄을 밑으로 내리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죠. 이게 2차 대전 때는 폭격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폭격기 없는 나라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서 점령당하게 되어 있죠.

일본이 마치 한국을 지배하듯이. 2차 대전 때 우리나라 독립군이 비행기가 몇 대 있었습니까? 무슨 비행기가 있겠어요. 발각되면 다 폭파당하죠. 비행기가 있을 수 있었습니까? 없죠. 비행기 없으면 딱콩 딱콩, 그거가지고 일본을 이깁니까? 한국이 일본을 이긴 이유가 뭐에요? 독립운동해서 이겼습니까? 아이고, 요새 이 발언 새면 안 되는데. 정치적 발언. 큰일 난다, 이거. 일본보다 더 무기가 발달된 미국과 러시아에 의해서, 사실은 미국이에요. 왜냐하면 러시아가 참전한 것은 미국이 핵폭탄 터트리고 난 뒤에 참전했기 때문에. 나가사키 히로시마 떨어지고 난 뒤에 뒤늦게 이건 완전히 거저 먹기로 해서 들어온 거예요, 스탈린이.

그러니 더 구름 많이 타고, 물에 들어가 안 젖는 것은 방수복이잖아요. 불에 안 타는 것은 요새 소방관들이 입는 그 옷이죠. 영원과 함께 있다, 이건 DNA저장하면 되죠. 인간의 DNA저장. 보세요. 옛날에 진인이라고 여겼던 것이 지금은 점점 더 이걸 인간이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거예요. 하늘로 뚫고 지나가는 건 로켓이죠. 달까지 갔잖아요, 달까지. 구름은 아니지만 우주선 타고 달까지 갔잖아요.

이런 인간들보고 Stop, 멈춰라. 됩니까? 더 쉽게 말해서 인간이 주를 십자가를 믿겠어요? 안 믿죠.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왜 믿어요,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인간이 살아있으면서도 믿고 천당 갈 수 있는 방법을 교회가 제공해야 교회가 유지 가능해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전부다 왜곡된 가짜 예수, 가짜 십자가, 가짜 복음, 가짜 성령 전하는 거예요. 가짜 삼위일체. 삼위일체는 가짜가 아니고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그건 가짜라 할 것도 없어요, 설명하는 사람도 모르니까. 그냥 삼위일체.

그렇게 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뭐냐? 교회가 있어야 우리가 구원받는다. 그거잖아요. 교회 중심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특별한 목사가 있어서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복음이 중요하다고 하는 주장도 있어요. 복음이 뭔데? 복음이 뭔데? 또 몰라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 믿으면 된다. 어떤 인간이? 살아있는 인간이. 그러니까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살아있는 인간은요 우상밖에 안돼요. 이게 십자가든 피든 언약이든 예수님의 재림이든 어떤 성경구절을 갖다대도 본인이 살아있다고 여기는 한 그건 전부다 우상으로 다 변해버립니다.

에스겔 37장을 다시 얘기한다면 에스겔이 뭘 보게 하느냐 하면 언약적 안목에서 보게 해요. 언약적 안목에서. 우리도 한번 봅시다. 에스겔 37장. 지금 제가 진도 어디까지 나갔느냐 하면요. 여러분 또 잊을까봐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물에서 건짐 받지 못하면 물에서 건짐 받지 못하죠. 똑같은 말이니까. 불에서 건짐 받지 못하면 불에서 건짐 받지 못하죠. 똑같으니까. A는 A이고 B는 B. 똑같은 말이니까.

그 불세례가 뭐냐? 십자가에요. 왜? 예수님부터 먼저 물에서 건짐 받고 예수님부터 먼저 불에서 나와야 돼요. 그게 물세례이고 그게 불세례에요. 인자부터 먼저 해야 돼요. 그 인자부터 먼저 하는데 인자도 인자되신 예수님이 본인 의지로 했습니까, 아니면 성령 충만해서 했습니까? 성령 충만해서 했죠.

이제 모든 비밀이 풀렸네요. 예수님께서 이뤄놓은 그 업적이 주님의 그 십자가 다 이루었음이 성령을 통해서 오지 아니하면 불심판이고 물심판이고 어느 누구도 살아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성령 받지 않는 자는 무슨 자이기 때문에? 죽은 자이기 때문에. 성령 받지 않은 자는 죽은 자에요. 믿거나 말거나요. 뭐 그게 맞는데.

여기 에스겔 37장 봅시다. 3절에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물었죠. 그러니까 에스겔이 하는 말이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건 뭐냐 하면 비나 불이 누구 말 듣습니까? 주님 말 듣죠. 마찬가지로 인자라는 특수한 관계 속에 있는 선지자도 누구 말 먼저 들어요? 모든 권한, 주도권을 여호와께 돌립니다. 이걸 이 문장으로 한번 써볼게요.

【인간은 말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내가 말하는 게 아니고 말이 나로 하여금 말이 나오도록 해준다, 말이. 하나님의 계시가 나오도록 해줘요. 지금 인간의 문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본인이 뭐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자부하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에요.

‘예수 믿고 어떻게 삽니까? 양심껏 살면 안 되겠습니까?’ 예수 믿고 양심껏 살게 되면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예수 믿는 것도 본인이 할 수 있는 거고 양심껏 사는 것도 본인이 하겠다는 거예요. 네가 그걸 왜 하는데? 제가 살아있거든요. 네가 어딜 봐서 살아있는데? 어딜 봐서 살아있어요? 왜 본인이 살아있어요, 본인이? 왜 본인이 살아있습니까? 본인은 죽고 그 안에 누가 살아있어야 돼요? 인자가 살아있어야 되죠. 예수님이 살아있어야 되죠. 우리는 예수님을 태우는 불수레에 불과한 거거든요. 가마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는 주님의 운반꾼이죠.

그래서 다시 에스겔 돌아와서, 지금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에스겔에 보면 언약에 내가 내 신을 너한테 보낸다고 하는 대목이 나와요, 에스겔에 (겔36:27, 37:14). 그리고 에스겔 37장 4절,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금 제가 쓴 게 이거잖아요. 인간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통해서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은 왜 말을 못해야 되는가? 바짝 마른 뼈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뼈가 어떻게 말을 해? 뼈는 말을 못하죠. 그러나 말해질 수는 있죠. 누구 힘으로? 주의 힘으로. 주의 말씀으로. 인간을 사용해서 말이 나올 수는 있죠. 그럴 때 그것을 가지고, 주님의 일이 나오는 것을 가지고 세 자로 ‘살았다’고 해요. 살았다.

그래서 에스겔 37장 10절에 보니까 그렇게 살았을 때에 그들이 개인적으로 살았어요, 안 그러면 뭐로 살았습니까? 개인적으로 살았습니까, 뭐로 살았죠? 개인이 아니고 뭡니까? 하나님의 군대로 살았죠, 10절에.

여기 10절에 보면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군대죠. 군대는 개인의 자격으로 움직일 수 없어요. 군대는 지시체제가 따로 있습니다.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할당이고 배치이고 배당이 되는 겁니다. 너는 이 땅에서 이거하고 살라고 하나님께서 할당을 주고 배당을 주는 거예요. 그걸 은사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자, 에스겔 37장 11절을 봅시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런데 12절에 보면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의 무엇을 열고 나오라? “무덤을 열고 나오라”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심판 없는 구원은 없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물에서 건지고 불에서 건지기 위해서는 심판을 몸에 장착하고 있어야 돼요. 구원 되고 난 뒤에 이런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몸에 장착되어야 돼요. 그걸 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이 말이죠.

십자가가 나를 심판할 때 십자가거든요. 십자가는 죄수를 매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십자가에 매달려야 될 인간이었더랬습니다. 그게 내게 합당했습니다.’라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내 이야기가 아니고 이미 십자가 죽었던 나를 십자가로 살리신 그 분의 외침으로서 내가 이렇게 외칩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느냐.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 보면, 다시 산 자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 주님을 위해서 살게 함이라.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게 없어요.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자기를 위해 살면 예수가 됐든 여호와가 됐든 그건 뭐가 돼요? 우상이 돼버려요, 우상이. 뭐 신학을 다 하고 성경을 외워도 그건 우상입니다. 왜? 항상 그 목적의 끝은 뭡니까? 이래서 나는 살았다,가 되니까. 내가 사는 것은 끝났어요. 끝났다니까. 내가 자랑하는 것은 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자랑하죠. 죄인의 자격으로 이미 죽었다는 것을 자랑하는 거예요. 그게 십자가를 자랑할 때 같이 섞여서 들어가야 돼요.

그래서 12절에 보면 너희가 무덤을 열고 거기서 나온다 이 말이죠. 그런데 무덤을 열 때 자기가 알아서 나옵니까? 그럼 자기가 죽은 자가 아니죠. ‘여기 무덤의 입구가 어디더라?’ 이렇게 나오면 그건 죽은 자가 아니죠. 바짝 마른 뼈가 어떻게 저절로 결합이 됩니까? 그럼 어떻게 하느냐.

여기에 하나님의 신을 두어서 살린다. 그게 14절에 나옵니다.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바로 우리가 이것을 지킨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못 지켜요. 방금 이 본문 자체를 누가 지키는가. 인자 되신 예수님이 이 코스대로 그대로 온 거예요.

마태복음 24장 27절에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자,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부활함으로써 번개부터 해서 번개고 태양이고 별이고 하늘이고 이 세상 자연세계는 다 누구의 지시를 받게 되어 있어요? 주님의 지시를 받는 거예요. 주님의 지시를.

그러면 이 자연 세계는 뭐를 묘사하고 뭐를 표현하기 위해서 여전히 활동하느냐. 주님의 강림하심을 대비하고 주님의 강림하심의 흔적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자연세계는 나름 굉장히 분주하고 바쁘죠. 번개도 바빠요. 심지어 28절에 독수리도 바빠요.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 자연세계 모두가 잔칫집 같아요. 뭐 자기 맡은 역할에서 되게 바빠요.

마태복음 24장 29절 읽겠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런 사실을 모르고 보게 되면 야, 신기하다 하죠. 그런데 주께서 모든 경우를 거쳐서 주께서 주가 되고 난 뒤에 다시 보니까 이게 신기한 겁니까, 마땅한 거예요? 마땅하죠.

여기 컵이 있는데 컵이 두 개 나란히 있잖아요. 제가 컵을 하나 옮겼어요. 옮기니까 한쪽 컵이 “야, 너 무슨 수로 옮겼어? 되게 신기하다.” 이렇게 하거든요. 뭐가 신기해? 내 컵 내가 옮기는데 뭐. 이게 신기합니까? 하나도 신기하지 않아요. “너도 해줄까? 너도 옮겨줄게. 신기하냐? 너 지옥 가. 신기하냐? 너 천국 가. 신기하냐?” “주의 합당한 주되심입니다.” “그렇지, 그렇지.”

이걸 구원 받은 사람은 알고요. 지옥 가는 사람은 아직도 뭐가 뭔지 내가 왜 지옥에 와 있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나중에 지옥 가보면 알아요. 이게 인간의 일이 아니고 남보다 나쁜 짓을 더 많이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일방적 자기 선택이라는 사실을. 일방적 자기 조치라는 사실을 알죠.

다시 베드로후서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들은 대자연이 잠잠하게 있으니까 때를 기다리는 걸 모르고 시기를 기다리는 것도 모르고 원래 대자연은 그냥 잠잠히 있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는 우상적 사고방식이에요.

5절에 보면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게 창세기 1장 이야기고요. 6절에 보면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창세기 노아 홍수 때, 7장 8장 이야기죠. 노아 홍수 때 물의 넘침으로 멸망했다.

자, 여기서 한번 물어봅시다. 오늘 강의 잘 이해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물이 넘친 게 신기한 겁니까, 이것은 마땅한 거예요? 어떻습니까? 물로 되어서 물이 넘치는 게 자연스럽죠. 진짜 이게 내추럴, 자연스러운 거예요. 쉽게 말해서 세상이 물로 심판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극히 자연스럽죠.

내가 빌딩을 샀는데 빌딩이 물에 휩쓸려 다 쓸어져버렸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면 안 되고 ‘참, 하나님이 하나님답게 했다.’ 누가 누구처럼 했다는 말이 나오잖아요. 하나님이 하나님처럼 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 박수~ 잘 하셨습니다.

계단에 올라가다 엎어져서 계단에 정강이가 다쳤다. 참 하나님, 하나님처럼 하셨습니다. 이래야 되지, 왜 저한테 이런 일이...! 네가 뭔데, 네가? 네가 뭔데? 죽은 인간 정강이 좀 깐다고 해서 네가 그렇게 죽은 게 사라지고 갑자기 산 자 돼버렸구나, 네가.

그러니까, 나는 베드로후서 3장 6절 믿습니다, 그런 말 믿지 마세요. 그건 지식으로 안다는 뜻이고 이거 아니까 나한테 불행이 안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사전에 자기 단도리 하는 거 밖에 안돼요. 비겁한 변명밖에 안 되는 거예요.

7절에 봅시다. 7절은 아주 진짜 신바람 나요, 이거는. 7절 보고 모든 우울증은 다 날라가야 됩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전에는 물로 심판받았지만 앞으로는 뭐로 심판받는다? 동일한 말씀이에요, 동일한 말씀.

물을 보냈던 그 말씀이, 말씀이 말씀 값을 할 때는 전에는 물이었지만 지금은 말씀이 말씀 값하기 위해서는 물로써는 안하고 불로써 한다. 거기에 대해서 간수되었다는 말은 지금 대기상태에 있다 이 말이에요.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다. 이걸 한번 설명해봐야 되겠죠.

내가 받을 불세례가 남아있다. 불세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할 때 함축해서 소개했어요. 그가 오시면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준다. (마3:11)세례 요한 나는 물로써 세례주지만 그분이 오시면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보기에 불과 성령은 시간적인 거리가 있는 게 아니고 동시에 일어나는 걸로 보는 거예요. 불과 성령으로 온다는 말은 성령 받은 사람은 알곡이 되고 불세례를 받은 사람은 지옥 불에 간다라고 세례 요한은 시간을 압축해서 보는 겁니다.

산이 이렇게 겹겹이 있는데 A라는 산, B라는 산, C라는 산 다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 때는 가족사진 같이 바로 뒤에 딱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듯이 시간이 이렇게 응축되어 보이는 거예요. 이게 얼마 후에 되는가는 세례 요한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말씀이기 때문에. 이게 언제 일어나든 관계없이 동일한 말씀이다. 어떤 말씀? 물로 내렸던 동일한 말씀. 물을 내린 말씀이 불은 안 내리랴? 내리죠.

그러면 그 동일한 말씀이 있다면 이게 물이 되든 불이 되든 멀쩡하든 우리는 뭘 쳐다봐요? 말씀만 쳐다보는 이 사람을 경건한 사람이라 하고 이 사람은 세례 요한처럼 시간을 압축해서 봐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거예요. 그 시간의 흐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중요한 것은 말씀인데.

그 말씀이 내가 말씀을 말한 게 아니고 말씀이 나로 하여금 말씀되게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그 와중에서 우리는 내가 했다,를 일체 허용하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없으면 좋은 점이 뭐냐 하면 내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어요. 내가 뭐 한 게 있어야 죄를 짓지. 논리가 그렇게 되잖아요. 뭔가 내가 한 게 있어야 죄를 짓지. 그럼 죄는 뭐냐? 내가 한 게 있다는 자체가 죄가 되어버렸죠.

왜 죄책감을 느끼느냐? 내가 한 게 있다는 기억 때문에 그래요. 오늘은 애들한테 밥해줬지. 밥해줬으니까 밥해줬겠죠. 그런데 애가 맛있게 먹어. 난 역시 잘했어. 이 자체가, 그렇게 하고 있을 때 복음을 들어보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 그러면 밥해주는 것은 헛됨에서 뺄까요, 집어넣을까요? 어떻게 할까요? 집어넣어야죠. 바짝 마른 뼈가 밥도 잘하더라, 이렇게 되면 곤란하잖아요. 바짝 마른 뼉다구를 통해서 자식에게 밥해주는 뼉다구가 되게 하셨어요.

주께서 하시지, 우리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습니다. 그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버려요. 새털같이 가볍게 만듭니다. 우리가 한 게 없어요. 그러면 공부마치고 갈 때 내일 아침부터 우리는 뭐하면 됩니까? 주님한테 물어볼까요? 그 물어볼까요, 가 내가 하는 일이거든요. 그것도 하지 마. ‘물어볼까’도 하지 마.

그런데 자꾸 물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합니까. 저거는 내가 안하는 게 아니고 할 것 같은데. 멀리서 차가 온다. 피해라, 피해라. 피하고 싶어요. 안 피하면 아플 것 같아. 아프다가 30분 내에 죽을 것 같아. 내 본능에 그냥 피하죠. 본능에 피했다 이 말이죠. 죽은 자가 산 척 했구나. 이미 죽은 자인데 또 살라고 무슨 행동을 했구나.

그런 책망을 우리는 평생 들어야 됩니다. 고칠 필요 없이 ‘주께서 이미 고쳤다’ 라는 확인만 하시면 됩니다. 내가 사업구상을 하고 뭘 해도 이 사업구상을 하고 다음엔 뭘 해야지. 오후 2시에는 뭐하고 오후 4시에는 뭐 해야지. 이 고질병을 이미 고쳤다, 라는 상태에서 그 고질병이 도져서 계속 나오는 겁니다. 오늘은 반찬 뭐하고 아침에는 뭐해야지. 내일 아침에는, 냉장고 넣어놨다, 얘야.

전부다 뭡니까? 이미 우리의 모든, 내가 했다는 이 고질병을, 고쳐진 상태에서 주의 말씀을 경유해 볼 때 굳이 그런 거 하나 안하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을 경유해서 발견하는 것. 이게 경건한 사람이고 이게 불로써 이미 구원 받으심이요 물로써 이미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이게 뭐냐? 주님과의 일체화. 오늘 제목은 <주님과의 일체화>입니다. 자연과의 일체화가 아니라 주님과의 일체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더 이상 물심판 불심판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두려워하기는커녕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고마워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에서 살게 할 만큼 산다는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서울의존강의20221013b 베드로후서3장 6절(주님과의 일체성)-이 근호 목사.hwp (99.0K), Dow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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